청도군 화양읍에는 시공간을 넘나들며 사색하기 좋은 읍성이 하나 있다. 조선시대에 개축된 이 읍성은 나지막한 성곽을 기준으로 성안으로는 현재의 삶을 영위하는 마을 주민들의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군데군데 옛 공간들이 함께 현존해 있다. 성밖으로는 태극 문양의 연못과 정자, 형옥·향교나 석빙고 등과 같은 옛 역사적 장소들이 포진해 있어 관광객들을 불러 모은다. 복원된 청도읍성은 역사적 시공간과 현재의 생활 공간이 서로 잘 어우러져 독특한 마을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성이라 하면 들어가는 관문이 정해져 있어 함부로 침범할 수 없고, 높은 성벽으로 인해 공간과 공간이 명확하게 구분되며, 전시를 대비해서 행정과 군사 시설이 밀집해 있는 집약적인 전통 도시를 말한다. 조선시대의 성은 산성이든 읍성이든 군사적 목적으로 만들어졌고, 대개 한양으로 향하는 길목에 놓인 도시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성종은 삼포왜란(1510년) 이후에 왜인의 침투에 격강심을 가졌고, 한양으로 향하는 길목에 놓인 13개의 읍에 축성을 계획한다. 그러나 실제 축조된 것은 80년이 지난 임진왜란 직전이 대부분이었다. 호남과 영남지역은 왜와의 전쟁을 대비해야 했으며 그 중 청도읍성도 이때 기존의 성곽을 바탕으로 개축된 것으로 보인다.청도읍성은 아마도 고려 때부터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처음의 성곽은 돌과 흙을 섞어서 만든 토담과 석담의 중간 형태였는데, 선조 23~25년(1590~1592년) 군수 김은휘가 이 성곽을 석축형으로 축조한다. 청도읍성은 완만한 구릉(대략 100~120m) 위에 세워졌으며, 남북보다 동서 간의 길이가 긴 사각 모양으로 만들어졌다. 남쪽이 주산이며, 정문은 서문이다. 성곽의 둘레가 약 1.6km로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타 읍성에 비해 규모가 큰 편에 속한다. 반면 성곽의 높이는 타 읍성의 절반도 되지 않는 약 1.65m로 아담하다. 높지 않은 성곽은 전란으로부터 백성들을 보호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백성을 수용하는 것에만 신경 써서 노동력을 낭비한” 성으로 평가되었다. 실제로 임진왜란 때 왜인들은 청도읍성에 무혈입성하여 자신들의 작은 성을 쌓고 본거지로 삼았다. 당시에 동·서·북문이 소실되고 일부 성벽이 파괴되었으며, 화재로 소실된 부분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를 17세기 중반에 부서진 문과 관아시설, 성벽, 문루 등을 여러 차례 재건하였다. 고종 7년(1870년)에는 남문을 건립하여 4대문을 처음으로 갖추기도 했다.그러나 일제강점기의 읍성 철거정책으로 폐성이 된 후 1916년 군청을 이전하고 민가가 건립되며, 1920년 신작로가 개설되고 1954년 화강지가 축조되면서 읍성의 기능은 거의 상실되었다. 근대에 이르러서는 토지의 사유화로 민가가 생기고, 마을길이 확장되고 경작지가 조성되면서 성벽 및 성내 시설의 파괴는 가속화되었다. 장관청, 아전청, 회계소, 군기고 및 3개의 누각 등이 성 내부에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객사, 동헌, 척화비, 석빙고, 성내지, 향교 등은 현재까지 남아있다.조선시대에는 시기별로 많이 활용되던 축성법이 있었다. 청도읍성은 그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탐색할 수 있는 장소로서, 조선 전기의 끝자락에 유행하던 축성법(내외협축식)과 명종 16년 이후에 사용된 축성법(외축내탁식) 그리고 조선 후기에 개축한 부분에 적용한 축성법을 모두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적이 성문을 공격할 때 방어와 공격력을 높이기 위해 툭 튀어나와 있는 부분을 옹성이라 하는데, 서문과 북문의 옹성은 반시계방향 반원형으로 생겨서 서문과 북문을 겉에서 드러나지 않게 보호한다. 특히 임진왜란 이후에 축조된 서문의 옹성은 지대석이 없고 작은 돌을 위주로 만들어져서 시기적 특성이 잘 드러나 있다. 또한 행정과 군사 시설은 물론 민가까지 읍성 안에 어우러졌던 흔적이 남아있어 조선시대 성안 풍경을 상상해 볼 수 있다.현재 청도읍성은 역사적 공간과 현재의 마을 공간이 어우러져 하나의 생활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주차장이 있는 동문지에는 과거 선행을 한 선비들의 비석이 한 줄로 놓여있고,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연못이, 왼쪽으로 길을 건너가면 석빙고를 볼 수 있다. 성안에 들어서면 골목길과 마을 주민들의 집, 성내지와 같은 복원된 공간과 벽화가 그려진 집들도 눈에 띈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길 위로 버스와 경운기 소리도 간간이 들려온다. 과거에 백성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했던 낮은 성곽은 사색하며 걷기에 딱 좋다. 성곽 위를 따라 세워진 삼각 깃발들의 펄럭임과 어쩐지 가깝게 느껴지는 하늘의 구름마저도 길게 늘어선 성곽처럼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듯하다. /최정화 스토리텔러 ◇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
2023-0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