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고령 지산동 고분군, 대가야를 품은 평온함

등록일 2023-04-10 18:42 게재일 2023-04-11 17면
스크랩버튼
고령 지산동고분군

고령의 지산동에는 오래된 봉분들이 즐비하다. 주산의 등산로를 따라 조금 오르다 보면 나무들 사이로 빼곡하게 드러나는 봉분들을 만날 수 있다. 주로 산의 정상부 능선, 하늘과 맞닿은 곳을 따라 볼록하게 솟은 이 고분들은 옛 고령에 터를 잡고 4~6세기를 풍미했던 대가야 왕족들의 흔적이다. 그 아래 산각과 사면에도 능선만큼은 아니지만 직경 10m 내외의 중형고분들과 그 보다 작은 소형고분들이 줄지어 놓여 있다. 스스로 천신과 산신의 후예로 여겼던 대가야인들은 죽은 후 하늘과 땅이 맞닿은 곳에 터를 잡고 그들의 품으로 돌아가 평온을 즐긴다.

‘산신인 어머니 정견모주(正見母主)와 아버지 천신이 결합하여 두 알을 낳았는데, 두 아들 중 하나는 대가야를 세웠고 다른 하나는 금관가야를 세웠다.’ 대부분의 건국 신화는 남성 중심의 사회를 대변하는 남신이 주가 된다. 그에 비해 고령의 건국 신화에는 신화 이전 모계 사회의 흔적과 여럿으로 나눠 다스리던 옛 사회의 모습이 남아있다. 이는 대가야가 오랜 역사를 지녔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후 ‘대가야국 왕후는 죽어서 산신이 되었’고, 사람들은 해인사의 정견모주 신당(지금은 없다)에서 산신제를 지냈다고 한다. 약 100년 전까지도 산신제가 이어졌으니 정견모주에 대한 이 지역의 믿음이 굳건함을 알 수 있다.

대가야의 역사는 옛 기록에서도 남아있는 유물이나 유적에서도 잘 찾아보기 힘들다. 주로 평가하기로는 삼국에 비해 고대 국가를 형성하지 못하고 쓰러진 소국들의 연합체로 여겨진다. 하지만 최근 밝혀지고 있는 바에 의하면 삼국시대가 아니라 사국시대라고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올 정도다. 고구려가 남하정책을 펼쳐 백제와 신라가 가야를 덜 견제하던 시기인 5~6세기 초, 대가야는 서쪽의 백두대간을 넘어 백제와 마주했으며 동쪽으로는 신라를 경계에 두었다. 신라의 영역인 낙동강을 교류의 창구로 활용할 수 없었던 대가야는 섬진강을 따라 길게 세력을 넓혀 독자적인 활로를 개척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고령-거창-함양-운봉-구례-하동’으로 이어지는 섬진강 루트는 대가야에게 꼭 지켜야 하는 중요한 요충지였다. 이곳을 중심으로 진안 태평봉수대(太平烽燧臺)와 같은 군사시설이 40여 개나 밀집해 있으며, 여수 고락산성(麗水 鼓樂山城)이나 하동 고소성(河東 姑蘇城)과 같은 산성들도 찾아볼 수 있다. 모두 섬진강 루트를 중심으로 찾아볼 수 있는 옛 군사시설이다. 또한 진안 장수·장계분지 고분, 장수 삼봉리 고분군(三峰里 古墳群) 등 진안·임실·장수·남원 등에는 대가야식 고분군이 종종 발견된다. 촘촘한 물결 무늬가 특색인 고령식 토기와 가야계 수혈식 석곽묘(竪穴式 石槨墓)가 대가야의 영역이었음을 밝힌다.

대가야의 지정학적 위치를 보면 내륙 고령이 중심이며, 서쪽으로는 기문·대사 지역에서 백제와 날을 세우고, 동쪽으로는 신라와 마주하고 있었다. 홀로 다른 나라와 교역하기에 어려운 지역으로 보이는데, 대가야는 중국에 독자적으로 사신을 보내 그 국가적 지위를 인정받은 적이 있다. 또한 오키나와에서만 생산되는 야광조개국자나 일본에서 발견된 금동관과 금세공품으로 보건대 일본과도 활발히 교류했음을 알 수 있다. 섬진강이 교류의 창구였을 것으로 짐작하게 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대가야가 섬진강 루트를 통해 중국·일본과 교류했다는 증거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많은 봉수대와 산성, 섬진강 상류의 가야계 고분이나 토기만으로는 가설을 증명하기에 부족하다.

한 시절을 풍미했던 대가야는 고구려가 한강 유역을 신라에게 빼앗기는 과정에서 결국 쇠퇴의 길을 걷는다. 어쩌면 당시의 험난했던 전선에서 섬진강 루트를 지키지 못해서일지도 모르고, 아니면 확장하는 신라를 견제하기 위해 백제를 돕다가 전쟁에서 패해서일지도 모른다. 대가야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기에 주어진 정황을 살펴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게다가 562년 이사부(異斯夫)의 공격으로 신라에 복속된 이후에는 더더욱 찾아볼 수 없다. 그저 산등성이 위로 하늘에 맞닿은 촘촘한 고분군이 옛 영광을 노래할 뿐이다.

한때는 야로(冶爐, 지금의 합천)에서 생산되던 풍부한 철광석과 섬세한 금동 제련술로 한반도의 한 지역을 호령하던 옛 대가야인들이 고령 주산에 옹기종기 모여있다. 봄이 날개를 편 4월, 지산동 고분군 등산로를 천천히 거닐며 옛 대가야인들을 그려본다. 잘 정비된 등산길도, 산새들의 지저귐과 봉분을 호위하는 나무들도, 이곳을 찾은 등산객도 모두 어머니 산신과 아버지 천신의 품에 안긴 옛 대가야인들처럼 평온을 즐긴다.

◇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

/최정화 스토리텔러

대구·경북 문화 메모리즈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