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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靑松) 주왕산, 자연스러운 아름다움

등록일 2023-03-27 19:51 게재일 2023-03-28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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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사에서 바라본 기암단애.

자연은 인공적이지 않을 때, 그 어떤 꾸밈도 필요치 않은 아름다움을 지닌다.

산세가 험준하여 사람의 손때가 덜 묻어나는 청송에는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이 있다. 이 일대는 선캄브리아시대 변성암·응회암 산악지형, 중생대 퇴적암과 공룡발자국 지형, 신생대 관입암맥 지형 등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없는 천혜의 자연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

여러 전설이 전해지는 주왕산, 영화 촬영지로 유명한 주산지, 신비한 하얀 돌이 즐비한 신성계곡, 돌 속에 꽃을 품은 구과상 유문암(꽃돌) 등 가장 순수한 자연의 모습 그대로 오랫동안 사랑받아왔다.

주왕산은 우리나라 3대 암산이자 조선 8경으로도 유명하다.

암석이 병풍 같다고 하여 석병산, 김주원이 은거했다고 하여 주방산 또는 대둔산, 중국 주왕이 피신했다고 하여 주왕산, 조선 8경으로서 작은 금강산을 닮았다 하여 소금강산이라고도 불린다.

주왕산을 유람한 기록만 36편이 남아 있는데, 특히 ‘택리지’의 저자 이중환(1690~1756)은 “돌로만 골짜기를 이뤄 마음과 눈을 놀라게 하는 산”이라 했다. 예나 지금이나 자연의 아름다움을 탐하는 눈은 똑같았던 모양이다.

주왕산 초입 주왕계곡 탐방로에 들어서면 7개의 커다랗고 하얀 기암단애(旗巖斷崖)가 우뚝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깃발 바위’라는 뜻인 기암은 주왕의 전설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중국 당나라 덕종 15년에 진나라의 복원을 꿈꾸던 주왕이 전쟁에서 패하여 주왕산에 숨어든다. 신라 마일성 장군은 세수하러 나온 주왕을 화살로 맞혔고, 신라 병사들은 승리를 알리는 대장기를 이곳에 세웠다. 죽은 주왕의 피가 골짜기를 흘러 수달래라는 붉은 산철쭉을 피워냈다.’ 이와 더불어 주왕이 숨었다는 주왕굴, 주왕의 딸 백련 공주가 성불했다는 연화굴, 무기를 숨겼다는 무장굴은 모두 주왕과 관련된 이름이다.

대전사(大典寺)에서 왼쪽 갈림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면 상단부의 바위에 비해 하단부의 주상절리(柱狀節理 : 다각형 기둥의 암석이 모여있는 모양새)가 잘 드러나는 급수대라 불리는 바위가 보인다.

급수대에는 신라 무열왕의 6대손 김주원에 관한 전설이 내려온다. ‘37대 선덕왕은 김주원을 왕으로 추대했으나 홍수로 인해 신라에 오지 못했고, 이를 하늘의 뜻으로 여겨 상대등 김경신(38대 원성왕)을 대신 왕으로 옹립했다. 김주원은 주왕산에 머물며 물이 귀해지자 계곡에서 물을 퍼 올려 식수로 사용했다.’ 전설에서는 하늘의 뜻이라 했으나 김경신은 무력으로 왕위를 계승한 것으로 보인다. 김주원은 지금의 강릉으로 물러나 지냈으며, 30년 뒤 그의 아들 김헌창이 ‘억울하게 왕이 되지 못한 아비의 한’을 내세우며 반란을 일으킨다. 신라말 김헌창의 난은 9개주 중 5개주가 가담한 대규모 난이었지만 성공하지는 못했다. 그는 ‘주왕산에서 진압되어 목숨을 잃는 것’으로 전해진다.

급수대 옆의 봉우리인 학소대는 ‘청학과 백학이 둥지를 짓고 살았다.’ 하여 불리는 이름이다.

‘사냥꾼이 학 한 마리를 쏘아 죽이자 다른 한 마리는 구름 사이로 날아가 버렸다. 사냥꾼이 집에 돌아와 보니 가족들이 모두 죽어있었다.’라는 전설이 전해진다. 이곳은 신선 세계로 가는 길목이라 여겨져 예로부터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며 청학동이라 불리기도 했다. 학소대 아래로 흐르는 계곡물은 용추·용연폭포로 이어지는데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물이 있는 곳이라면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용과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진다.

주왕산은 산세가 험준한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실제로 가보면 푸근한 이웃집 할아버지가 품어주는 느낌을 받는다.

이는 산봉우리가 다른 산들에 비해 뭉뚝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형은 경상분지(평지)에서 화산활동으로 인해 지면이 솟아올랐음을 짐작하게 한다. 시루봉, 학소대, 급수대, 연화봉과 맞은편의 병풍바위도 평지였다가 산지가 된 뭉뚝한 산봉우리 모양이다. 백악기 말 경상도 일대는 경상분지라는 저지대가 지각변동으로 인해 형성된다. 경상분지는 퇴적암과 화성암 위주로 이뤄진 유라시아판의 끝부분으로, 원시 태평양판과 수시로 마찰을 일으켰고 이로 인한 화산활동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화산재가 쌓인 두꺼운 경상분지 일대의 지층은 빠르게 식으면서 틈이 생기고 틈을 중심으로 침식되어 주상절리가 형성됐다. 청송의 주왕산은 9번 이상의 화산 분출과 지반의 융기로 만들어진 지형이다. 어렵사리 만들어진 지형만큼이나 주왕산 일대의 풍광은 누가 뭐라고 해도 지상 최고의 절경이다.

주왕산에는 찾아오는 사람들만큼이나 많은 이야기가 숨어있다. 지형의 형성과정도 알면 알수록 신기한 이야기지만 그 안에서 역사와 사람을 함께 품어 온 이야기도 몹시 풍부하다. 찾아보지 않으면 모르는 이야기, 어떤 꾸밈도 없이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품은 이야기는 오랜 세월을 머금은 채 여전히 우리 곁을 지키고 있다.

 

◇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

 

/최정화 스토리텔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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