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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폭염 적응능력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연구본부장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가 지난달부터 45℃에 육박하는 날씨가 이어지는 이례적인 괴물 폭염에 시달리고 있다.기상학자들에 의하면 올해 적도 지역의 바닷물 온도가 하강하는 현상인 ‘라니냐’가 수그러들고 다시 그 반대 현상인 ‘엘니뇨’가 발생한 것이 가장 큰 이유라 한다.이러한 이유로 동남아시아의 폭염은 중국을 거쳐 한국 등 동아시아 지역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과거 2015년에도 ‘슈퍼 엘리뇨’ 현상이 발생하여 인도는 당시 5월 기온이 50℃ 가까이 치솟으면서 2천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듬해인 2016년은 역대 가장 더운 해로 기록되었고 우리나라도 엄청난 폭염에 시달렸다.지난 50년간(1971~2021년) 기상청 자료를 분석해본 결과 대구광역시 폭염일수와 열대야 일수는 지속해서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2018년(7월 27일)은 최고기온이 39.2℃를 기록하여 39.5℃를 기록한 1977년 이후 최고기온이었다. 또한 폭염일수 40일, 열대야 지속일수 16일로 50년의 기상청 관측 기록 중에서 각각 5위와 2위로 역대급 수준이었다. 그리고 5위 이내 최상위 폭염 기록은 2000년대 이후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의 미래 온실가스 배출량에 따른 온도와 기후변화를 예측하는 도구인 RCP(대표농도경로) 모델의 8.5 시나리오(현재 배출추세 적용)로 대구광역시 미래 기후변화를 전망해 보았다.폭염일수가 2100년에는 현재(21.9일) 대비 무려 56.8일 증가하여 78.7일로 전망되었다. 특히 서구와 중구 지역은 각각 94.4일과 94.0일로 폭염에 가장 취약할 것으로 전망됐다.열대야 일수는 현재(6.1일) 대비 2100년에는 50.2일 증가하여 56.3일로 전망되었고, 역시 중구(70.8일)와 서구(70.7)가 폭염일수와 같이 열대야 일수도 가장 길었다.시나리오와 같이 현재 수준을 유지하면서 특단의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하지 않으면, 기온상승으로 인해 우리의 미래는 감당할 수 없는 암울한 수준으로 나빠질 것이다. 여기에다 대구광역시내 폭염에 취약한 계층인 65세이상 노인인구 증가율이 1995년에 6.1%에서 2018년에는 14.8%로 급격히 증가하였다.그 결과 2025년에는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20% 이상이 되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폭염 등 기후재난 대응정책에 활용하는 기후변화 취약성 지표는 기후변화의 악영향을 받기 쉬운 정도로 정의하는데, 대구시 폭염 취약성은 ‘폭염 적응능력’을 높이지 않으면 계속 나빠지게 된다.대구시는 ‘폭염 적응능력’을 높이기 위해 응급의료 생활화, 주거환경 개선, 취약계층 건강관리, 공동편익시설, 녹지네트워크 구축, 지역에 도움되는 폭염활용, 멀리 내다보는 폭염준비 등 다양한 과제를 추진하고 있다.이번주 5월 17~19일은 ‘2023 대한민국 국제쿨산업전’이, 7월 13~15일은 ‘2023 대구국제폭염대응포럼’ 이 각각 개최될 예정이다. ‘폭염 적응능력’을 높이고자 대구에서 개최되는 전국 최초, 최고 권위의 행사로 지역민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2023-05-15

국민이 그렇게 우스워 보이나

김진국 고문 참 실망이다. 민주당 김남국 의원의 가상화폐 투자가 논란이다. 그동안 김 의원의 언행과 보도 내용은 너무 딴판이다. 내 돈으로 내가 투자하는 것을 비난할 사람은 없다. 그렇지만 김의원은 그게 아니다. 김 의원은 “엄청난 손해를 봤다”라고 주장한다. 의혹을 제기한 언론에 대해 “강력한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한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아직도 모르는 것 같다.연일 돈 문제가 터지고 있다. 수천억 원을 만든 ‘대장동 게이트’부터 입에 오르내렸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연루돼, 주변 사람들이 줄줄이 구속되고, 여러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송영길 전 대표는 전당대회 때 돈 봉투를 뿌린 혐의로 수사받고 있다. 이제 대표적 소장파인 김의원의 코인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민나 도로보데스”(みんな泥棒です; 모두 도둑놈이다)란 말이 생각난다.‘공직자가 돈을 밝히면 안 된다’라고 하면 ‘어느 시대 사람이냐?’고 비웃을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공직자에게는 금도(襟度)가 있어야 한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주권을 위임받아 행사한다. 그걸 자기 치부(致富)에 이용하면 나라 꼴이 어떻게 되겠나. 김 의원은 그런 의심을 받고 있다. 그런데도 핵심 의문에는 답하지 않은 채 보도한 언론 탓만 한다. 민주당 소속 청년 정치인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보도 내용이 사실이라면 의원직을 사퇴해야 한다”라고 요구했다. 민주당에서도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이와 별도로 윤리감찰도 시작했다.김 의원은 상임위에 참석하면서 코인 투자를 한 것만으로도 의원 자격이 없다. 그는 지난해 5월 9일과 10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 청문회를 하면서 9차례나 코인 거래를 했다. 청문회 전과 점심시간까지 합치면 31번이다. 그러니 ‘이모(李某) 교수’를 ‘이모(姨母) 교수’라고 착각했을 것이다. 핼러윈 참사를 논의한 상임위에서도 코인을 거래했다. 그래 놓고 변명이라는 게 “화장실·휴게실에서 한 것”이라고 한다.이해 충돌 가능성도 있다. 김 의원은 자신이 보유한 코인에 과세를 1년 유예하는 법안을 공동 발의해 통과시켰다. 게임머니를 가상화폐로 규정하는 법안을 공동발의, 처리했고, 민주당의 대선공약으로 채택하는데도 역할을 한 의혹도 있다.‘도둑맞은 가난’(박완서)이란 소설이 있다. 가난한 경험까지 탐내는 부자의 염치없는 허영을 신랄하게 꼬집는 내용이다. 김 의원은 ‘모텔 한 방에서 보좌진과 셋이 잤다.’, ‘매일 라면만 먹었다.’, ‘3만7천원 주고 산 운동화에 구멍이 났다’라며 가난을 호소해 지난해 의원 중 후원금을 가장 많이 모았다. 그를 믿고 응원한 사람을 허탈하게 만들었다. ‘가난 코스프레’라는 말이 안 나올 수 없다.더구나 코인에는 청년세대의 한이 맺혀 있다. 부동산값이 폭등해 손댈 엄두를 못 내고, 코인에 투자해 그나마 모은 돈을 털린 청년이 많다. 그런데 돈과 정보와 인맥으로 무장한 국회의원이 수십억 원을 쓸어갔다니, 가장 청년을 위하는 척하면서 그들의 눈물을 훔쳐 간 꼴이다. 김 의원은 무슨 돈으로 투자했는지, 어떻게 사고팔았는지 감추고 있다. 주식을 판 돈이라고 해명했지만, 해명할 때마다 뒤집힌다. 양파처럼 새 의혹이 불거진다. 김 의원은 “하늘에서 떨어진 돈은 없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민주당 조사팀도 종잣돈이 불법 로비 받은 게 아닌지 의심한다. 아무리 ‘공정’을 떠들어도 정책을 만드는 사람이 특권을 누리려 하면 그 정책은 실패한다. 공직을 맡은 사람이 자신에게 더욱 엄격해야 하는 이유다.공정이 시대적 화두다. 지난 대선의 최대 공신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라고도 한다. 그런데도 다시 내년 총선에서 조 전 장관이나 그의 딸 출마설이 나온다. 비위 사건이 터지면 잠시 무마하고, 곧바로 뒤집는 행태가 반복된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영웅으로 묘사한 영화가 나온다. 위장 탈당했던 민형배 의원을 복당시키고, 위안부 후원금을 유용한 윤미향 의원, 부동산투기 의혹으로 제명된 김홍걸 의원은 민주당 소속처럼 움직인다. 국민이 그렇게 우습게 보이나. 민주당이 우물쭈물하면 개인 비리가 아니라 당의 비리가 된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5-14

유난히 불안하고 걱정이 많은 것도 ‘병’

사공정규동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학박사 사람들은 누구나 불안(不安)한 감정을 안고 살아간다.불안의 사전적 의미는 ‘마음이 편하지 않다’는 뜻이다. 불안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가 안전하지 않을 것이라는 느낌이나, 걱정하는 마음’이다.누구나 오지 않은 미래를 알고 싶어 하고 예측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다. 미래는 준비하고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불안 덕분에 미래를 대비하고 미래를 안전하게 만들고 나를 성장하게 한다.이렇듯 불안은 매우 고마운 감정이다. 즉, 불안(不安) 자체가 병적인 것은 아니다.그러나 병(病)적 불안(pathological anxiety)은 미래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 특별한 이유 없이 막연하게 그 결과를 재앙(災殃)적으로 예측한다. 재앙적으로 예측하는 불안은 오히려 미래를 효율적으로 대비하지 못하게 해 미래를 안전하게 만들지 못하게 하고 성장하지 못하게 한다.병(病)적 불안으로 과도한 심리적 고통을 느끼거나 현실적인 적응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는 질환을 불안장애라고 한다. 불안장애에는 여러 질환이 있는데, 우리에게 비교적 친숙해진 진단명 공황장애도 불안장애의 일종이다.그러나 불안장애의 대표적인 질환은 범 불안장애(汎不安障碍, generalized anxiety disorder)인데 잘 알려지지 않는 것 같다. 정신장애의 진단 및 통계편람 제5판에 따르면 범불안장애 진단기준의 핵심적인 특징은 일상생활을 할 때 사소한 일에도 지나치게 과도한 불안과 걱정을 하는 상태를 말한다.범 불안장애의 핵심은 걱정이다. 걱정은 과거보다는 미래에 대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걱정을 하면 더 나은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과도한 걱정은 오히려 더 큰 걱정을 가져오고 불안을 증폭한다.앞서 언급한 공황장애의 평생유병률은 3%인데, 범 불안장애의 평생유병률은 9% 정도로 알려졌다. 범 불안장애는 이렇게 흔한 병임에도 진단이 잘되지 않고 적절한 시기에 치료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첫 번째로 범 불안장애의 걱정은 남이 느끼기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일을 걱정하기 때문에, 또한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하는 만성적인 경과이기에, 단순히 ‘예민한 성격’으로 치부된다.따라서 걱정이 많은 것은 자신의 예민한 성격이 문제이지 병으로 보지 않는 경우가 많다. ‘걱정이 팔자’라는 말이 있는데, 유난히 걱정이 많은 것은 범불안장애 일 수 있다.또 범불안장애 불안의 특징은 ‘부동성(浮動性)’이다. 일상적인 삶 속에서 불안이 너무나 만연해있기에, 일상 상황이나 활동에서 막연하게 둥둥 떠다닌다는 의미에서 ‘부동성 불안’이라고 한다.갑자기 짧은 기간 극심하게 삽화적으로 일어나는 공황장애에 비해 서서히 덜 극심한 양상으로 발병하고 지속적이고 만성적인 경향이 있다. 따라서 어떤 특정 상황에서의 불안감이 아니고 갑작스럽게 심각한 양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므로, 이를 병(病)이라 생각하지 않고 성격이라 생각하고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두 번째로 범 불안장애는 만성적인 자율신경계의 과잉 각성 증상으로 인해 신체적 증상으로 많이 나타난다.특히 우리나라는 불안의 감정 표현이나 걱정의 인지적 표현보다 신체적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예를 들면 두통, 근육통, 피로감, 소화불량, 가슴 두근거림, 숨이 참, 빈맥, 빈뇨, 급박뇨, 땀이 남, 목안의 이물감, 안검경련, 손발 떨림, 손발 저림, 어지러움, 얼굴이나 가슴이 화끈거림 등의 신체적 증상이다. 따라서 신체 불편감이 우세하므로 신체장애의 일종이라 생각하고 소화기 내과, 심장내과, 호흡기 내과, 이비인후과, 신경과, 산부인과, 비뇨기과 등을 전전하며 정신건강의학과로 방문하는 경우가 드물다.세 번째로 범불안장애 환자는 불안과 걱정이 아닌 다른 증상들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불안하고 걱정이 되어서 잠들기 어렵고 자주 깨는 불면증이 나타나지만, 그냥 ‘불면증’으로 만 호소한다. 불안과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에너지가 소진되어 피곤한 것을, 그냥 ‘만성 피로’라고 호소한다. 불안과 걱정으로 머리가 멍하고 집중력이 떨어진 것을, 그냥 ‘주의력 저하’라고 호소한다.따라서 범 불안장애의 진단이 가려져 놓치는 경우가 많다. 모든 질환은 조기 진단, 조기 치료가 중요하다. 범 불안장애는 대개 청소년기 후반에서 성인 초기에 많이 발병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그런데 진단은 중년기에 가장 많이 된다. 왜냐하면, 상기 열거한 이유 등으로 진단이 잘되지 않고 적절한 시기에 치료를 놓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범불안장애 환자의 3분의 2 이상이 10년 이상 경과 후 정신건강의학과를 내원하는 등 진료가 늦어지는 경향이 있다.범 불안장애를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면 예후가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공황장애, 우울장애, 알코올 의존, 약물 남용 등의 합병증으로 발전할 수 있고, 삶의 질을 현격히 떨어뜨리기 때문에 조기에 전문적인 정신건강의학과 진단과 치료가 필요하다.

2023-05-14

전염병을 향한 인간의 도전

박문하 전 포항시의회 의장 우리에게 평소 마이크로 소프트사의 창업자로 잘 알려진 ‘빌 게이츠는 탁월한 기업가라는 이미지 외에도 통 큰 기부와 봉사활동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인간적인 면모와는 별도로 그는 다양한 사회적 이슈를 정확하게 진단 하는 것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 CEO들에게 주문한 변화의 필연성은 혁신을 거부하고 현실에 안주한 노키아의 몰락으로 충분히 증명되었으며 인공지능이 인간만큼 훌륭한 가정교사 노릇을 할 날이 멀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도 적중해가고 있다.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행한 발언 중에 주목할 것은 전염병에 대한 언급이 아닌가 한다. 만약 인류가 멸망하게 된다면 가뭄이나 홍수로 인한 식량 기근이나 핵 전쟁 같은 재앙이 아니라 전염병에 의해 파멸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역설한 대목이다. 이 말은 코로나19 팬데믹이 오기 전에 예상한 것이어서 새삼 그의 혜안이 놀라울 뿐이다.기원전 3000년 고대 이집트의 미라에서도 천연두의 흔적을 볼 수 있을 만큼 인류의 역사는 질병의 역사라고 해도 아닐 정도이다. 역사 이래로 인간은 강력한 세균과 바이러스의 도전을 받아 왔고 더불어 전염병은 우리 인류의 역사에 있어 한 국가나 사회의 존망뿐만 아니라 역사의 방향까지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도 하였다. 흔히들 우리는 절망스러운 역사를 기억하면서 끔찍한 전쟁을 떠올리지만 기실 질병이 인간에게 안긴 고통에 비하면 이내 아주 사소한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BC 431년 도시국가 아테네는 콜레라로 인해 190만 명이 사망하였고 서기 165년에 로마제국에서 시작된 천연두로 50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서기 541년부터 한 세기 동안 페스트가 650만 명의 생명을 앗아갔다고 기록되어 있다.끔찍한 전염병의 역사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1347년부터 유럽 대륙을 다시 찾아온 페스트(흑사병)는 6년여 동안 7천500만 명에서 2억여 명의 인명을 집어 삼켰고 이때 사망한 인구가 정상으로 회복하는데 300년이 걸렸다고 하니 전염병이 얼마나 무섭고 인간을 괴롭혔는가를 확인해주고 있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흑사병을 고치기 위한 노력은 사람들로 하여금 지나치게 머신에 의존하게 하는 나약함을 드러내게 만들었고 일반 민중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던 보카치오의 ‘데카메론’도 페스트 팬데믹을 피해 피렌체 교외 별장으로 피난 온 젊은 남녀 10명의 이야기에 기반을 두고 있는 내용이다.이후 19세기 인도와 중국에서 창궐한 콜레라로 1천500만 명의 생명이 쓰러졌고 20세기 스페인 독감은 5천만 명 이상의 목숨을 빼앗아갔다.21세기가 도래한 최근의 코로나 19까지 질병은 인간의 생존과 진화 과정에서 얼마나 두렵고 공포스러운 존재인가를 보여주었고 15세기 중반 유럽 전역을 덮쳐 유럽 인구의 거의 절반을 삼킨 대재앙은 실제 인류가 완전히 멸망하는 것으로 예측한 학자들이 상당수였다는 것이 속속 밝혀졌었다.또한 유럽대륙에서 발생한 천연두는 16세기 아메리카 대륙의 잉카와 아즈테카의 강대한 제국을 덮쳐 신대륙 원주민의 90% 절멸시켰다. 거대 제국들은 전염병 앞에 바람 앞에 촛불처럼 쓰러져 갔다. 20세기 들어 발생한 스페인 독감으로 사라진 생명들은 제1차 세계대전 사상자 4배를 넘고 있다.한 대륙의 제국을 초토화 시킨 천연두는 치명적인 질병이기도 하지만 운 좋게 회복되어도 얼굴에 흉한 상처로 삶의 질을 떨어트리는 최악의 질병으로 기록되고 있다.1873년 우리는 전염병의 역사에서 주목할 만한 사람을 만날 수 있으니 그 이름은 ‘에드워드 제너라는 영국인 의사이다. 제너는 소의 젖을 짜는 여성들은 이상하게 천연두에 안 걸린다는 것에 착안하여 소와 천연두 면역력과의 연관성을 연구한 결과 최초의 효과적인 우두 종두법 실험을 통해 마침내 인류는 천연두와의 치열한 싸움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유케 되었다.‘하나님의 천벌로 내린 전염병은 인간이 극복하지 못한다’는 종교계의 주장도 천연두 퇴치에 대한 그의 확신과 집념을 꺽지 못했다1979년 WHO는 마침내 지구상에서 천연두의 박멸을 공식선언 하였다. 길고도 무시무시한 전염병과의 전쟁에서 인간이 승리하는 순간이었다. 질병으로 죽음에 직면한 엄혹한 조건의 극한 상황 앞에서 억누를 수 없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인간의 도전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보여 주는 일례가 아닐 수 없다.때마침 지난주에는 대통령이 우리의 일상을 송두리째 흔들었던 코로나 19 팬데믹 종식을 선언한 바 있다. 2020년 1월 코로나19 발생이후 장장 3년 4개월 만이다.기나긴 팬데믹 기간에서 정상으로 오기까지의 험난한 여정은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과 심각성을 확인시켜 주기에 충분했다. 어쩌면 지금도 전염병은 탐욕스러운 인간을 향해 소리 없이 공격을 준비하고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전염병과 인간이 공존하는 한 새로운 도전을 준비해야 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필연이거나 숙명일지도 모를 일이다.

2023-05-14

공자와 법륜

유영희 작가 며칠 전 어버이날이 지났다. 작년에 아이들에게 어버이날은 신경 쓰지 말라고 말했지만, 귀가하는 사람들 손마다 카네이션과 케이크가 들려 있는 것을 보면서 꼭 그럴 것도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니, 유교 문화의 뿌리가 참 깊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교는 사상을 넘어 생활문화로 깊이 자리잡고 있지만, 이제는 애증이 교차하는 딜레마가 되어가고 있다.사실은 두어 달 전부터 브런치스토리에 ‘주주금석 논어생각’을 매일 한 편씩 올리고 있다. 김도련의 저서 ‘주주금석 논어’를 내 나름대로 재해석하는 것이다. ‘주주금석’에서 주주는 주자의 해석이고, 금석은 정약용의 해석을 중심으로 저자가 풀이한 것인데, 브런치스토리에서는 두 해석을 비교하면서 내 생각을 덧붙이고 있다. 학창 시절 때 ‘논어’를 읽으며 느낀 감흥은 이제 거의 사라졌지만, 그때는 보지 못했던 부분이 새롭게 보여서 또 다른 재미가 있다. 그런데 아무래도 효에 대한 이야기는 예나 이제나 공감하기 힘들다.‘논어’에 나오는 효에 관한 유명한 구절은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에는 그 뜻을 살펴보고, 돌아가신 뒤에는 그 행실을 살필 것이니, 삼 년 동안 아버지의 도를 고침이 없어야 효라 할 수 있다”라는 말이다. 이 문장에 대해 금석이 주주와는 풀이가 약간 다르지만, 자식이 부모 뜻을 따라야 한다는 것에는 이의가 없다.그러나 이런 공자의 이야기를 현대에 적용하기는 힘들다. 여러 매체를 통해 접하는 부모 자식간의 갈등은 자녀에게 부모의 뜻을 관철시키려는 데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자녀의 진학이나 진로 선택에 부모가 강하게 개입하는 경우도 있고, 결혼했거나 집 떠난 자녀에게 매일 안부전화를 요구하거나 주말마다 찾아오기를 바라는 부모도 있다.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은 방청객의 고민을 즉석에서 풀어주어 인기가 많다. 방청객 사연 중에는 부모와 자녀의 갈등 문제도 자주 등장하는데, 주로 자식에게 서운한 부모나 부모에게 죄책감을 가진 자녀의 이야기다. 법륜 스님의 답을 거칠게 요약하면 이렇다. ‘부모가 자녀를 돌보는 것은 의무이므로 착한 행동은 아니다. 대신 자녀가 스무 살이 되면 독립시켜라. 이제 부모와 자식은 모두 성인이므로 자신은 자기가 책임져야 한다. 자녀가 부모를 돌보는 것은 의무가 아니므로 착한 행동이다. 착한 행동은 하면 좋지만 안 한다고 나쁜 것은 아니다. 부모의 외로움은 스스로 해결해라.’유교 사상에 비추어보면 말도 안 되는 답변에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생활환경의 변화 때문일 것이다. 유교가 지배하던 농경사회에서는 경험 많은 부모의 뜻이 옳은 경우도 많았고, 부모가 죽기 전까지 재산은 모두 부모의 것이었다. 반면, 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 부모의 경험은 무용지물이기 십상인데다, 자녀 또한 부모와 독립하여 재산을 가질 수 있어서 온전히 성인으로 독립할 수 있다. 유교의 ‘중용’은 때에 맞게 한다는 ‘시중’이라는 뜻이다. 아직도 ‘논어’는 많은 이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지만, 가족 윤리에서는 ‘시중’의 의미를 찾는 지혜가 필요하다.

2023-05-14

원리의 규명과 개선 역량

엄주선 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인간의 모든 활동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으며 결과는 현상 즉 나타나 보이는 현재의 상태가 된다. 이 원인과 결과 사이에 원리가 있고 그 원리에 따라 행동하는 규정을 원칙이라 한다. 생산 현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과 결과에 대해서도 원인이 있으며 원리가 존재한다. 이 원리는 대부분 학교에서 물리 화학 등을 통해 배운 것들이며 이 원리가 일하는 사람을 고통스럽게도 하고 행복하게도 하는 분기점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개선활동을 함에 있어서도 이 원리를 규명하여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생산현장에서 발생하는 현상 중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것 중의 하나가 결로이다. 결로는 수분을 포함한 대기의 온도가 일정한 압력상태에서 변화될 경우 대기가 포화할 수 있는 수분량 이하로 떨어져 대기가 함유하고 있던 수분을 물체 표면에 물방울로 맺히게 하는 현상을 말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겨울철 기온이 내려가 외부와 내부의 온도 차가 커지게 되면 아파트 거실 창문 안쪽 면에 맺히는 물방울과 주전자에 뜨거운 물이 외기와 접촉시 표면에 생기는 물방울이다.즉 결로의 발생 원리는 대기 온도의 변화에 따른 포화 수분량의 변화이다. 20℃ 온도 1㎥의 공기는 최대 17.3g(0℃는 4.8g)의 수분을 가질 수 있으며 같은 공기는 따뜻해 질수록 포화 수분량이 증가하며 더이상 포화 못하는 상태를 포화점이라 하고 상대습도 100%라 한다. 예를 들어 20℃에서 0℃로 공기의 온도가 변화할 경우 20℃의 포화 수분량 17.3g에서 0℃ 포화 수분량 4.8을 빼면 12.5g의 수분이 발생하는 것이다. 반대로 0℃에서 20℃로 온도가 올라가면 12.5g의 수분을 포화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일례로 제철소 생산라인 중 밀폐형구조로 된 공정집진기는 고온의 열과 분진을 흡입 블로워(Blower)로 빨아들여 먼지(Dust)와 분진은 집진 장치로 거르고 깨끗한 공기를 굴뚝을 통해 대기로 방출한다. 가끔 상부 집진 장치로 빠져나가야 할 뜨거운 공기가 공정의 불균형이나 설계 미스 등으로 인해 집진기 하부의 분진 배출 덕트로 흡입되어 대기 온도와 접촉하게 되면 고온에 포함된 다량의 수분이 저온의 대기 온도와 만나 배관 내부에 결로를 유발시키고 분진과 혼합되어 배출구를 막는 트러블을 일으킨다.트러블이 발생하면 직원들은 생산라인을 정상화하여야 하기 때문에 재해발생 위험을 감수하면서 배출구의 막힌 부분을 제거하느라 고생을 많이 하게 된다. 이런 경우 개선방안은 상부의 뜨거운 온도와 하부 대기 온도가 바로 접촉하지 못하도록 완충지대를 두거나 온도 차가 생기지 않도록 가열 설비를 설치하는 등의 개선이 필요하다.이렇게 설비의 트러블이 생기는 원리를 규명하여 개선방안을 마련하면 근본 원인을 제거하게 되므로 재발을 방지하게 된다. 이를 반복하면 단순히 지식습득을 넘어 지식을 활용해 성과도 얻고 성취감과 보람을 느낄 수 있기에 개선의 수준과 역량이 지속 향상되게 된다.

2023-05-14

서울행

김규종 경북대 교수 아침 아홉 시 반에 시작한 여정(旅程)이 자정 넘어서야 끝난다. 학회의 정례 학술논문 발표회에 참석하고 돌아온 것이다. 나는 학회 활동에 열렬한 연구자가 아니다. 공부를 혼자 해 버릇한 이유로 독야청청 독불장군의 길을 허위단신 달려온 세월이 30년 가까우니 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자청해서 발표를 결정하여 서울에 다녀왔다.정년을 불과 석 달 앞둔 백발의 연구자가 이반 투르게네프의 희곡 ‘시골에서 한 달’ 연구 결과를 설명하는 자리를 가진 것이다. 19세기 90년대 안톤 체호프의 극문학 성립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극작가 투르게네프의 장막극을 여러 각도에서 천착하고 러시아 최초의 심리 드라마로 언급되는 ‘시골에서 한 달’을 곡진하게 들여다보았다.청도역에서 동대구역으로, 동대구역에서 다시 서울역으로, 서울역에서 지하철 1호선으로, 그리고 다시 6호선으로 갈아타고 도보로 학술논문 발표회장에 도착한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자발적으로 봄날의 환희가 약동하는 토요일 한나절을 거리에서 거리로 떠돈 셈이다. 세대교체가 완연하게 느껴지는 자리에서 뭔가 아쉬움과 쓸쓸함 같은 게 감촉된다.불꽃처럼 뜨겁고 여름 햇살처럼 찬연(燦然)하게 빛났던 아름다운 시절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구나, 하는 아쉬움이 찾아들었다. 추석이고 설이고 연말연시고 다 팽개치고 연구실에 처박혀 논문과 작품을 읽으며 깊은 한숨과 탄식으로 늦도록 끙끙댔던 시절이 어느새 자취도 없이 스러져 버렸구나, 하는 깨달음에 문득 주변이 쓸쓸한 것이다.하지만 돌이켜보면 내 곁을 영원히 사라져간 그 시공간은 학문 후속세대의 눈과 영혼과 가슴으로 다시 채워지고 있지 아니한가, 하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소리도 없이 그들은, 낯선 모습의 청년들은 각자에게 허여된 문학과 언어학과 연극학과 역사와 세상과 만나고 있었다. 서울에서 대구에서 러시아 곳곳에서!4시간의 긴 발표를 마치고 몰려간 뒤풀이 자리는 실로 은성(殷盛)하여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절로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기실 나의 서울행은 그들에게 따스한 저녁을 대접하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은퇴하고 나면 두 번 다시 보기 어려울 것 같은 연구자들에게 맛난 저녁 식사를 대접하겠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오던 참이다.대략 20여 명의 러시아 어문학 연구자들의 뒤풀이 자리에서 오가는 정담(情談)과 웃음소리는 여전히 우리 사회가 건강하고 아름다우며 약동하는 곳이라는 확신이 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학회장의 권고에 따라 짧고 간명하게 인사말을 한다. 나는 그들에게 불운했지만, 불멸의 이름을 간직한 피렌체의 시인 알리기에리 단테가 남긴 말을 전했다.“사람들이 떠들게 내버려 두어라. 그리고 그대에게 주어진 길을 가라. 그리하면 그대는 영광의 항구에 다다를 것이니!”학문하는 자의 배포와 당당함을 촉구하고 싶었던 게다. 밤하늘에 별들이 총총하게 빛난다.

2023-05-14

“아이들은 가라”

우정구 논설위원 노키즈존의 한국식 표현은 No Kids Zone이나 영미권에서는 Kids-Free Zone으로 쓴다. 얼핏 아이의 자유로운 공간으로 보이지만 본뜻은 아이로부터 자유로운 곳을 의미한다.2010년대 중반쯤 등장한 우리나라 노키즈존은 어린아이를 동반한 고객의 출입을 금지하는 음식점, 카페 등을 일컫는 말이다. 출입 어린이의 과도한 행동으로 다른 손님에게 피해를 끼치거나 어린이 안전사고를 미연에 막자는 것이 설치 이유다.그러나 업소 측의 주관적 기준과 가치 판단으로 다수의 손님이 차별을 받는다는 이유로 노키즈존 반대 여론도 많다. 최근 제주도의회가 전국 최초로 노키즈존 금지 조례를 추진하다 유보했다. 법률적 근거가 없고 영업 자유권 침해로 또다른 갈등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어서다.작년 전북 완주군의 어린이 의회에서는 어린이들이 아동권리 침해의 대표적 사례로 노키즈존을 꼽기도 했다.최근 워싱턴포스트(WP)는 “한국에 500개의 노키즈존이 존재한다”고 밝히고 “세계 최저 출산율을 보이는 한국에서 이는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공공장소에서 어린이 출입을 제한하는 것은 육아에 대한 어려움을 강조하고 아이 갖는 것을 한층 꺼리게 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최근 한 카페가 노시니어존을 만든 것이 알려지면서 온라인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궜다. 조그마한 동네에 테이블 두 개 있는 작은 카페라 불가피했다는 해명에도 특정 계층의 출입을 제한하는 것은 차별이라는 반대의견이 많이 올라왔다. 차별과 권리의 주장 사이에 합일점 찾기가 쉽지 않다.다행히 아이를 위한 별도 공간을 마련하는 예스키즈존도 늘고 있다니 이를 장려하는 것이 논란에서 벗어날 해법이 아닐까 한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5-14

새벽 1시, 구미에는 365소아응급센터가 있다

김장호 구미시장 2023년 4월 8일 새벽 1시. 생후 7개월 된 영아가 고열을 동반한 열성 경련으로 울산에서 구미를 찾았다.26일 밤에는 경북 의성에 거주하는 7살 남자아이가 구토와 복통을 호소하며 구급차에 실려 구미로 왔다. 다행히 두 아이 모두 증세가 호전돼 다음날 오전 귀가했다. 모두 소아 전담 전문의가 있는 구미 365 소아청소년진료센터 덕이다.구미에는 365일 24시간 운영되는 ‘365 소아청소년진료센터’가 있다.경북 중서부권의 유일한 소아전문 응급의료센터이자 필수의료 지역 거점병원. 야간이나 휴일에 갑자기 아이가 아파 당황한 부모에게는 더없이 간절한 병원이다.최근 수도권 대형병원들이 소아청소년과 입원진료를 중단하고 소아과 폐과를 선언하며 소아진료 대란이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자연스럽게 우리 시의 ‘365 소아청소년진료센터’에 이목이 쏠리면서 구미시는 주변 지자체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게 됐다.올 초 운영을 시작한 ‘365 소아청소년진료센터’는 필자의 민선 8기 공약사업이다. 많은 이들이 한발 앞서 진료센터를 개소할 수 있었던 비결을 물어온다. 답은 간단하다.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기 때문이다. 취임 전후로 만난 시민들의 바람은 대체로 한결같았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구미시의 소아청소년은 7만8천200여 명. 전체 인구 대비 19.2%에 달한다.도내에서 소아청소년 인구 비율이 가장 높은 도시가 바로 우리 구미다. 그런 구미에 소아응급실이 없어 다른 도시를 헤매서야 되겠는가. 취임 직후 여러 차례 병원 관계자들을 만나 설득하는 한편 시의 지원을 약속했다.모두들 소아응급실의 필요성에는 공감했지만 선뜻 시와 손잡겠다는 병원이 없었다. 여러 차례 설득에 나섰지만 이해관계에 부딪혀 번번이 무산되다 올 초 순천향대 구미병원에 둥지를 틀게 되었다.구미시가 매년 시비 9억 2천만 원을 지원하는 ‘365 소아청소년진료센터’는 소아청소년 전문의 4명과 소아응급 전담 간호사 8명으로 구성돼 있다.개소 첫 달인 1월에는 464명, 지난 4월에는 918명이 진료센터를 찾았다. 4개월 동안 2천2백여 명의 환자가 센터를 이용했으니 그 필요성은 충분히 증명됐다고 본다. 구미뿐 아니라 인근의 김천, 칠곡, 성주를 비롯해 영주와 의성에서도 센터를 찾아온다. 소아청소년 응급환자에 대한 전문적이고 효율적인 의료 인프라가 얼마나 부족했는지 되돌아봐야 할 대목이다.얼마 전 대구에서 십대 청소년이 응급실을 찾아 떠돌다 구급차에서 숨진 일명 ‘응급실 뺑뺑이’ 사건이 있었다. 이 일을 계기로 소아청소년과 및 응급 의료체계 전반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고 있다. 이제 돌봄의 역할이 가정과 양육자 개인에만 주어지는 시대는 지났다. 지역사회가 손을 보태고 시가 정책적으로 노력해야 한다.올해 전국 대학병원에서 내년 전반기 소아과 전공의를 모집한 결과, 대구·경북을 포함해 영남권 병원에 한 명의 의사도 지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필자는 시민의 건강과 공공복리를 위한 의료 서비스에 구미시장으로서 책임감을 느낀다. 저출생, 인구 소멸에 고민을 하지 않는 행정에 시민들이 무엇을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구미시는 아이 키우기 좋은 구미를 위해 ‘365 소아청소년진료센터’ 외에도 자정까지 운영하는 야간연장 어린이집을 확대하는 한편, 밤 12시까지 아이를 맡길 수 있는 마을돌봄터도 도내 최대 규모로 추가 조성한다. 가칭 ‘아픈 아이 돌봄 센터’ 도 하반기 개소할 예정이다. 부모를 대신해 돌봄사가 아동 픽업부터 병원 진료 전 과정을 동행하고, 아픈 아이의 간호 돌봄 서비스까지 제공하는 도내 최초의 돌봄 센터다. 맞벌이 가정의 걱정을 덜어주고 지역 사회가 육아를 분담하기 위한 고육책이다.구미시에 이어 광주와 경주, 포항에서도 소아청소년 공공의료체계를 구축한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지역의 미래이자 대한민국의 미래인 아이들을 위한 더 좋은 정책들이 경쟁적으로 나오길 바라며, 구미 ‘365 소아청소년진료센터’를 통해 많은 아이들이 밝고 건강하게 자라길 기대한다.

2023-05-14

그리움으로 읽는 책

이희정 시인 아버지, 라는 책은 표지가 울퉁불퉁했고어머니, 라는 책은 갈피가 늘 젖어 있었다그 밖의 많은 책들은 부록에 지나지 않았다건성으로 읽었던가 아버지, 라는 책새삼스레 낯선 곳의 진흙 냄새가 났고눈길을 서둘러 떠난 발자국도 보였다면지가 찢긴 줄은 여태껏 몰랐구나목차마저 희미해진 어머니, 라는 책거덜난 책들을 따라 소금쩍이 일었다밑줄 친 곳일수록 목숨의 때는 남아보풀이 일 만큼은 일다가 잦아지고허기진 생의 그믐에 실밥이 다 터진 책―박기섭, ‘달의 門下(작가, 2010)’ 중 ‘책’ 전문세상에서 가장 숭고한 책이 있다. 애잔하고 미안한 것들로는 에두를 수 없는 아버지와 어머니, 라는 책이다. 가족 서사로 빼곡한 오월의 서가에서 시인은 가장 깊이 있고 끈질긴 질문의 책과 조우한다.박기섭 시인(1954~)이 기억하는 두 책은 외피부터 대조적이다. “아버지라는 책은 표지가 울퉁불퉁했고, 어머니라는 책은 갈피가 늘 젖어 있었다”는 비유처럼 아버지와 어머니는 각자 그들 ‘다움’의 모습을 품고 있다. 아버지는 ‘표지’이고, 어머니는 ‘갈피’라는 인식의 시어는 잔상을 드리운다. 시인은 “그 밖의 많은 책들은 부록에 지나지 않았다” 며 이 모든 우주의 중심 서가에 두 책을 놓고 있다.시인이 읽는 책의 서사에 주목해 보자. “건성으로 읽었던가 // 새삼스레 낯선 곳의 진흙 냄새가 났고 // 눈길을 서둘러 떠난 발자국도 보였다”고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던 아버지의 생을 재독하고 있다. 이처럼 아버지는 가족을 부양하는 존재로서 집 밖의 영역에 속하는 사람으로 인식했다. 이에 반해 자식에게 헌신적이고 포용적인 어머니라는 책은 그것을 만지는 시인의 갈피에도 습기가 묻어난다. “면지가 찢긴” “목차마저 희미해진” “거덜난 책”이란 비유에서 보듯이 어머니라는 존재는 온통 눈물의 소금밭임을 알 수 있다. 그들의 삶은 “목숨의 때” “생의 그믐에 실밥이 다 터진 책”이라는 밑줄 아래 연민이 곡진하게 스민다. 이 대목은 어머니다움의 본질이다.시는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렇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항상 궁금하고 모를 듯한 삶을 살면서 결과적으로 우리가 이르는 궁극의 주제다. 어머니는 어떠한가. 현대사회의 확장된 어머니의 역할과는 다르게 과거 어머니의 삶이 있기나 했을까. 우리는 왜 뒤늦게 그리움과 영원의 주제로 항상 눈물과 가슴앓이를 했을 어머니와 주목하지 않았던 아버지의 서사 도정을 발견하고 관찰하는 것인가.책은 역사와 서사의 저장고다. 시인은 퇴색한 과거에 미래의 가치를 부여하는 일을 한다. 이는 인간의 보편적인 주제인 부모를 갸륵하게 기억할 뿐만 아니라 생의 진정성에 대한 의미 있는 탐색이기도 하다.은자의 미덕이 통하지 않는 시대다. 그럼에도 박기섭 시인은 비슬산 한 자락에서 수북하게 쌓인 철 지난 책이나 고미술품과 함께 있다. 그의 삶이 소중한 것은 사라져가는 옛것을 수집하고 지키는 일상 가운데 발견이 발명하는 한결같은 시인의 자리에 흔들림 없이 거하기 때문이리라.오래전 인터넷 헌책방을 샅샅이 훑은 적이 있다. 당시 찾던 책은 ‘신학국문학전집, 세로쓰기, 어문각, 1974년판’이었다. 아버님께 빌려온 몇 권의 책을 남편이 분리배출을 해버렸는데 김동인 외 무슨 책 몇 권 인지조차 가물가물했다. 오래된 책은 더군다나 세로쓰기 책은 가치 상실 도서라고 홀대했던 발언에 마음이 상하신 듯 반납을 명하셨다. 어렵던 시절 그분들의 할부 책의 역사를 간과(看過)했다. 이제 고인이 되신 아버지라는 책을 그리움으로 다시 읽는다.오월의 목차에는, 실밥이 다 터진 애잔한 그리움의 책,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다.

2023-05-14

다목적 스프레이제

강길수 수필가 더는 참을 수 없는 임계점에 도달했다. 나름 거금 들여 산 건데 네댓 해 지났다고 괴상한 소리를 내다니 품질에 문제가 있다. 한 시간 정도 걷는 출퇴근 동안 어떤 의성어로도 표현 못 할 남모를 소음에 노출되어 뒤틀리는 마음을 다독이며 참아왔다. ‘도대체 뭐가 잘못되어 그런 거야.’ 속 불평이 폭죽처럼 터졌다.고치려고 여러 궁리를 해 보았다. ‘비 오는 날 시작되어, 비 그치고 며칠 지나면 괜찮아진다. 갈수록 소리는 커지고 시간도 늘어난다. 이런 현상은 틈이 늘어나 그 속에 스며든 물기 때문일 거다’ 하는 추론과 판단이 들었다. 당장 고치기 작업을 시작했다. 헤어드라이어로 이곳저곳 물 스몄을 자리를 말렸다. 그래도 소리는 그대로다.아니면, 공기주머니가 막혀서 그렇겠다는 생각이 뒤따랐다. 서류용 클립 한 개를 펴 공기구멍이 있을법한 곳 몇 군데를 찔러 유입구를 키웠다. 조금 나아진 듯했으나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고장 난 데가 어딜까. 오랜 실험실과 연구소 경력도 별 수 없다는 절망감마저 들었다. 못 고치고 저절로 소리가 멈추기만을 바라며, 냉가슴 앓듯 분기를 또 참는다.그 후 어느 날, 긁어 부스럼 사태가 벌어졌다. ‘그래. 아예 공기주머니를 본드로 때우면 소리가 발버둥 쳐도 별수 없이 멈출 거야’ 하는 결론이 머리에 불쑥 솟았다. 곧바로 본드를 가는 철사에다 찍어 공기구멍 있을 곳에 발라 말렸다. 한데, 결과는 더 괴상하고 큰 소리가 났다. 곁을 지나치는 사람도 들으면 불쾌할 정도로 커졌다. 고무 재질에 고무 본드를 붙여 굳혔으니 제거도 난감했다. 진퇴양난이 되었다.‘궁하면 통한다’라고 했던가. 어디선가 ‘그래. 지푸라기 잡는 마음으로 이걸 한번 써보자’ 하는 아이디어가 번쩍했다. 다목적 스프레이제다. 불문곡직 스프레이 통을 꺼내 본드 붙였던 자리에 뿌렸다. 한데, 이게 웬일일까! 심기를 긁어대던 불쾌한 소리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야바위꾼에게 홀리면서도 기분 좋은 모양새다. 물에 젖은 길이나, 비 오는 날 걸어도 괜찮았다. 대성공이다.장미꽃 아름다운 출근길을 걷는다. 오가는 한 학교는 동, 서, 남 세 곳 담장에 장미가 산다 하여 장미의 계절엔 어느 길을 가든, 장미꽃의 웃음과 생기를 선물 받는다. 문득, 얼마 전까지 괴상한 소리로 귀청을 긁던 오른쪽 운동화를 내려다본다. 이어, ‘우리 정치권이 이 운동화 같이만이라도 되면 좋겠다’라는 마음이 들었다.한 야당 의원은, 대통령 부인의 캄보디아 아동 심장병 환자 문병을 ‘빈곤 포르노’라며 폄훼하는 궤변에 이어, 방미 중인 대통령의 화동 볼 뽀뽀 인사를 ‘성적 학대’라 주장하는 황당한 망발을 저질렀다. 이런 자들의 마음엔 대체 무엇이 도사리고 있을까. 나라의 외교에는 여야가 있을 수 없지 않은가.나라와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정치권이다. 여야 할 것 없이 저들의 정치적 목적에만 눈이 멀어 궤변과 망발, 괴상한 소음만 내고 있다. 이런 망국적 처사를 일거에 없앨 수 있는, 다목적 스프레이제 같은 이가 우리 사회 어디에 없을까.

2023-05-11

가정은 ‘행복의 샘’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이 ‘계절의 여왕’ 5월의 화사한 치마폭에 싸여 가정의 사랑을 부르고 있다. 요즘 점점 잃어버릴 것만 같은 가족의 사랑과 믿음을 다시금 품어주며 가정의 소중함을 되새겨 보아야겠다.가정은 소중한 보물이지만 어려운 현실에 부딪히다 보면 그 가치를 잊어버리고 소홀하기 쉽다. 또 가정은 국가와 사회를 이루는 근간이기에 부모와 자식 모두가 올바른 인성과 규범으로 그 가치를 높여나가야 한다. 우리는 가정과 집의 의미를 같이 쓰고 있지만, 집(house)은 가족이 살아가는 외형적 공간이고 가정(home)은 삶의 최고 가치, 즉 행복을 가꾸어 가는 내면적 관계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그런데 요즘 가정의 근간, 즉 구성원들인 가족에 대한 가치관이 변하고 있다. 출산율 저하와 인구 고령화로 인해 가족들 간의 상호접촉이 소원해지고, 비혼과 만혼 등으로 증가하고 있는 1인 가구는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31.7 %이며 가정이 사라진다는 우려에 인간성 부족과 함께 여성의 사회생활 다변화에 따른 자기중심적 자유를 향유하려는 경향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와 함께 미혼모, 비혼모뿐만 아니라 이혼과 사별에 의한 한부모가족도 약 37만 가구라 하니 사회적 편견과 경제적 빈곤을 겪고 있는 이들 가정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지원이 절실하다.가정이 불화하면 가정폭력, 아동학대, 성폭력 등이 일어나게 되고 그 신체적 정신적 피해로 인해 가정의 파괴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여성가족부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부부 2.5쌍 중 1쌍은 1년간 배우자로부터 가정폭력을 당하고 있고 부부싸움 또한 1년에 1천300여 건이 119출동을 부르고 있다. 경북의 가정폭력 신고는 지난해 9천185건으로 전년 대비 5.3%나 증가했다고 하니 가족 구성원에 대한 사랑의 성찰이 필요하다. 이혼율은 작년에 인구 1천명당 1.8명으로 OECD 회원국 중 9위, 아시아 1위라는 슬픈 기록으로 혼인비 53%이고 출산율마저 0.7명이니 가정의 달에 다시 한번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봐야 할 것이다.고독사 문제도 심각하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16%인 65세 이상 독거노인의 무연고 사망이 최근 5년 사이 2배로 증가하였고 청장년층도 증가추세라고 하니 사회적 관계망을 잘 유지하고 위험한 환경에 있는 노인들에게는 ‘고독사 제로 프로젝트’와 같은 사회 안전망이 절실히 필요하다. 고독사 통계를 보면 작년 3천378명 중 50대 남성이 약 30%로 1천명 정도이고 여성의 4배 이상이라고 하는데 이는 가사노동과 건강관리에 익숙하지 못한 탓이라고 한다.젊은이들은 집 구하기 어려워 결혼을 미루고 노년층은 사회와 단절된 삶 속에서 우울하고 무기력한 생을 보내고 있으며 아이들은 아동학대에 시달리는 등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보는 마음은 아프다. 우리 모두 한마음으로 용기를 북돋우고 관심을 가지며 사랑으로 보살펴서 ‘가정 소멸’이라는 엄청난 사태가 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가정은 ‘행복의 샘’이다. 맑은 마음, 밝은 얼굴, 고운 손길로 따뜻한 사랑의 샘물이 솟아나도록 하자.

2023-05-11

5·18의 강을 건너야

홍석봉 대구지사장 5월만 되면 우리 사회는 심한 가슴앓이를 한다. 43년이 지났지만 우리 가슴 한켠엔 5·18광주 민주화운동의 쓰라린 상처가 남아있다. 쉬이 아물지 못하는 생채기다.특권폐지국민운동본부가 지난 9일 광주 금남로에서 ‘호남총궐기대회’를 가졌다.지역 시민단체 등 참가자들은 민주당을 호남의 적폐이자 특권세력으로 규정하고 권력을 독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586을 학생운동 경력과 5·18팔이로 정치하는 세력이라고 질타했다. 5·18을 사유화하고 독점하려는 세력이라고 못박았다. 호남 시민의 뜻을 모아 이들을 척결하겠다고도 했다.이 단체는 당초 국회의원과 고위공직자 등의 특권과 특혜 폐지를 목적으로 결성됐다.강기정 광주시장은 같은 날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수록할 것을 국회와 정부에 요청하면서 의미있는 언급을 했다. 5·18이 특정 단체, 특정인들의 전유물이 됐다고 비판했다. 5·18의 숭고한 뜻이 왜곡되고 있다고 통렬하게 일갈했다.‘5·18 비판’의 금기(禁忌)가 깨지고 있다. 성역이 허물어졌다. 5·18의 고장에서 5·18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기 시작했다. 우리 사회가 그만큼 성숙하고 이성적으로 단단해졌다는 반증이다. 그동안 호남과 손 잡은 좌파 인사들이 조자룡 헌 칼 쓰듯 5·18을 전가의 보도로 활용해왔다. 좌파와 호남의 결합은 좌파 집권을 보장했다.호남의 심장인 광주가 과거의 덫에 빠져 있는 사이 5·18과 민주를 앞세운 운동권의 목소리가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이익은 덤이었다. 광주와 호남에는 경제성 검토도 필요 없었다. 정치적 명분만 그럴듯하면 됐다. 국책사업을 추진하고 기업을 끌어왔다. 43년을 그렇게 흘러왔다.5·18 국가유공자 선정도 인우보증(이웃과 친구가 보증)이라는 이름으로 허술하게 진행됐다. 보훈처 심사도 필요 없었다.43년이 지났는데도 5·18 유공자는 계속 늘었다. 5·18 국가유공자 명단을 전면 공개하라는 주장은 소리없는 외침이다. 5·18과 상관 없는 인사도 버젓이 이름을 올렸다.이제사 일각에서 바로잡자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호남 지식인층 중에는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을 반대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광주가 추구하는 가치가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반한다는 이유에서다.5·18과 관련된 국민적 의혹과 마음 한켠 찝찝함을 호남인 스스로 털어내야 한다.보수의 무턱댄 ‘호남 혐오’도 그쳐야 한다. 혐오가 아닌 ‘비판’을 해야 한다. 사실관계를 정확히 알리고 건전한 비판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5·18을 대한민국 자산으로 인정해야 한다. 5·18민주화운동특별법도 폐지해야 한다. 사람 입에 자물쇠를 채운, 왕조시대에나 있을 법한 법을 만든 대단한 국회는 반성과 함께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한다.5·18 정신에 대한 신성모독이기 때문이다. 호남인들은 호남의 위대한 정신이자 자산인 5·18을 스스로 훼손시키는 일은 더이상 않아야 할 것이다.일제침략, 4·3사건, 5·18 등 현대사의 비극이 된 과거사의 강을 건너야 한다. 그래야 미래가 있다.

2023-05-11

퓰리처상

우정구 논설위원 기자들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퓰리처상에는 전쟁을 배경으로 한 특종기사가 선정된 사례가 많다.6·25 전쟁 당시인 1951년 부서진 대동강 철교다리를 건너 탈출하는 피난민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퓰리처상을 받았다. 베트남 전쟁을 대표하는 ‘소녀의 절규’ 사진도 1972년 퓰리처상 수상작이다.전쟁은 인간이 만들어내는 비극의 현장이다. 전쟁의 와중에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고 또 생명의 위협을 받는다. 전쟁이란 위험 속에서 이러한 비극적 장면을 취재하고 사진으로 담는 것은 전쟁이 던져주는 참상을 만방에 알리기 위한 언론의 노력이다. 또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게 모든 이에게 경각심을 주고 전쟁으로 실의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희망을 주기 위해서다.퓰리처상은 미국의 신문 저널리즘과 문학적 업적 등에 가장 높은 기여자에게 주는 상이다. 미국의 언론인 조지 퓰리처가 남긴 유언에 따라 50만달러 기금으로 1917년 제정됐다. 미국 언론인에게만 수여하는 상이지만 언론인에게는 가장 영광스런 상으로 평가 받는다.소련의 침공으로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이 지난 2월 전쟁 발발 1년을 맞았다. 이 전쟁으로 우크라이나 민간인 2만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지금도 전쟁이 진행 중이며 전쟁의 끝이 언제일지 알 수 없어 안타까움을 준다. 이 전쟁으로 국제적 긴장감이 높아졌고, 글로벌 경제도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우크라이나 항구도시 마리우풀 등에서 전쟁 현장을 취재한 AP통신기자들에게 퓰리처상이 돌아갔다는 소식이다. AP 사진기자 등은 우크라이나 민간인 피해를 생생하게 전달한 사진으로 공공보도 및 특종사진 부문 수상을 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언론의 본분은 이어지고 있다는 반증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5-11

경추통과 낙침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한의원에 오는 가장 많은 환자군이 통증이다. 통증 중에도 제일 많은 환자가 염좌 환자이다. 흔히들 삐었다 혹은 담이 결렸다고 표현을 한다. 그 외에도 별일이 없었지만 갑자기 특정 부위가 아프다고 하면 담이 왔다 담이 결렸다고 표현을 한다.누가 담결렸다라고 하면 처음 떠오르는게 자고 일어났는데 갑자기 목이 너무 아프고 안돌아가는게 생각난다. 한의학에서는 베개에서 떨어졌다는 표현으로 낙침(落枕)이라고 한다. 목에 담이 결리면 우선 목을 돌리는게 너무 아프고 돌아가지 않는다. 심한 경우는 위 아래로 움직일 수도 없고 목과 어깨 등까지 아파서 움직임 자체가 힘들다.환자가 들어오는 모습만 봐도 목에 담결렸구나 알 수 있을 정도로 환자 본인의 통증은 심하다. 물론 경중은 있어 목은 돌아가지만 뭉치고 아픈 경우, 목이 반만 돌아가는 경우, 목이 아예 움직이지 않는 경우 다양하다. 그러나 내 몸의 가시가 제일 아픈 법. 목에 담결린 환자 모두가 많이 아프고 괴롭고 힘들다.빨리 내원한다면 치료는 의외로 간단하고 통증이 심한 것에 비해서 빨리 낫는다. 우선 아픈 곳을 정확히 파악한다. 대부분 오른쪽이나 왼쪽 한쪽의 경추 5번 위아래 부분을 누르면 심한 통증이 있다. 목의 통증과 그쪽 어깨와 날개뼈를 따라 통증이 있는 경우도 있고 없는 경우도 있다. 경추만 아프면 목만 돌리기 힘들고 날개뼈 따라 등까지 아프면 몸 전체를 돌리기 힘들다. 아픈 곳을 확인 후 그 부분에 부항으로 사혈을 하고 당겨서 피를 뽑고 나면 한결 시원해진다. 그리고 아픈 곳을 찾아 침과 약침을 놓아 근육을 풀어준다. 원한다면 각 한의원에 달여논 담약까지 먹으면 더 빨리 치료가 된다. 통증이 심하지 않은 경우는 1~3회 치료로 거의 완치되고, 아주 심한 경우도 3~5회 정도로 거의 완치가 될 정도로 잘 낫는다. 급성통증이라 초기에 제대로 치료하면 금방 낫고 별 후유증도 없다. 아픈 정도에 비해 잘 낫는다.빨리 오지 않아 병을 키웠거나 일부 심한 경우는 담이 결리면 목이 많이 뭉치기 때문에 이에 따른 두통이 발생 할 수도 있고 일부는 팔이 약간 저리다는 경우도 있다. 팔이 저린 경우는 디스크도 의심을 해봐야 하나 그전엔 그런 증상이 없었고 담이 결리면서 팔이 조금 저린 경우는 담이 풀리면 팔저림도 해결이 된다. 대부분의 담은 빨리 낫지만 몇 달 되어서 온 경우는 4~5회가 아닌 10회 정도가 되어야 해결되는 경우도 있으니 담은 결리면 바로 내원 하는 것이 좋다.평소 목이 뭉치고 어깨가 굳은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담이 오기 쉽다. 자세를 바로 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특히 사무직은 책상에서 작업 시 똑바로 앉는다. 의자의 바닥면과 나의 허벅지가 닿게 하고 허리는 죽 편다. 그리고 어깨와 가슴을 펴고 시선은 약간 아래로 한 다음 턱을 당긴다. 키보드와 마우스는 모니터와 같은 책상에 올려놓고 쓴다. 처음은 힘들겠지만 생각이 날 때마다 바른 자세를 취해주다 보면 어느새 바른 자세로 근무 하는 자신을 볼 수 있다. 이 자세는 허리와 어깨 목을 통과하는 척추 건강을 한 번에 챙길 수 있는 가장 쉬운 자세다.

2023-05-10

형평운동 100주년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올해로 형평운동 100주년이 되었다. 1923년 4월 25일 진주에서 창립한 형평사는 12년 동안 ‘백정’에 대한 차별철폐와 자강을 위한 운동에 힘썼다. 형평운동 100주년을 맞아 진주에서는 기념 학술대회 및 전시회가 개최되었지만, 형평운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매우 낮은 편이다.‘3·1 운동’과 같은 민족해방 운동이나 ‘5·18 민주화 운동’과 같은 민주화 운동과 결을 달리하기 때문이다. 민족독립 운동이나 민주화 운동은 여전히 진행 중인 사건이며 이에 대한 국가적 관심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반면 형평운동이 내건 신분제 폐지는 이미 지난 과거의 일이 되어 버렸다고 인식하기 쉽다.법적인 신분제 폐지가 일상에서의 차별까지 없애지 못하는 상황은 100년 전에도 유사했다. 1894년 갑오개혁으로 공식적인 신분제가 폐지되었지만, 백정에 대한 실질적 차별은 지속되었다. 1910년 한일합방 이후 일본은 백정을 제도권으로 편입시켰지만, 백정들은 경제적 수탈로 받아들였다. 민간에서의 신분 차별이 이어져 왔음은 물론이다. 요컨대 1923년 형평사 창립은 사회적 소수자인 백정이 자신들에 대한 차별 철폐와 인간적 존엄을 지키기 위한 인권 운동의 시발점이었다.형평운동을 인권의 관점에서 재정의한다면, 당장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장애인이나 성소수자 등에 대한 차별이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차별금지법’조차 제대로 시행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경제 양극화에 따른 새로운 신분제의 출현을 목격하고 있다. 2015년 사회적으로 널리 공유된 ‘흙수저/금수저’와 같은 신조어는 이러한 사실을 명확히 보여준다.1920년대 반형평운동에 중심에 농민이 있다는 사실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양반에게 차별받아 온 농민이 백정의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받은 차별을 되돌려주는 상황은 일견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에 페미니즘 운동에 대한 백래쉬를 겹쳐 읽으면 논리 구조가 일치한다.차별받아 온 존재들이 자신의 인권을 지키고자 일어날 때, 기존의 문화구조에 익숙한 주체들의 혐오와 차별의 움직임이 생겨난다는 점에서 100년을 초월하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공평은 사회의 근본이고 애정은 인류의 본령이다’로 시작하는 조선형평사 주지문(主旨文)은, 안타깝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비록 백정은 사라졌지만, 그 자리를 채우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못하는 현실과 백래쉬 현상이 웅변하듯 한국 자본주의 100년 역사의 본질은 조금도 변하지 않고 있다.그럼에도 희망을 읽어낼 수 있다면 진주를 전국에 알린 ‘어른 김장하’ 선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일찍부터 형평기념사업회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선생은 형평운동 70주년을 기념하며 ‘진정한 개혁과 민주화를 앞당겨 이루기 위해서는 모든 일에 형평정신 곧 평등사상을 바탕삼아야 할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형평운동 100주년을 맞아 다시 한번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어쩌면 ‘어른 김장하’에 대한 전국적 관심은 우리의 무의식에 있는 평등에 대한 그리움을 보여주는 것 아닐까./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05-10

곰소에서

배문경 수필가 ‘그날 아침 한 염부가 죽은 채 발견되었다’라는 첫 문장에서부터 강렬한 소금밭의 묘사로 시작되는 박범신 소설가의 ‘소금’을 떠올린다. 나는 3일간의 일정을 잡아 휴가 중이다. 태안반도의 채석강과 적벽강, 내소사는 꿈에서조차 나를 유혹한 곳이었다.나는 지금 곰소다. 곰소는 일제 강점기 때 만들어졌으며, 전라북도에서 군산항 다음으로 규모가 큰 어항(漁港)이었다.이미 소문난 슬지제빵소로 사람들이 끝없이 밀려들고 있다. 후배에게 찐빵과 커피를 사달라고 부탁하고 도로에서 벗어나 염전을 살핀다. 소금부족으로 염전에서 죽은 염부인 그 아버지를 찾아나서는 주인공. 소설처럼 나도 검은 타일이 박혀있는 염전의 바닥과 소금을 나르는 레일을 훑어본다. 그리고 소금창고를 본다. 비가 내리고 있다. 염전의 휴일이다.한국의 중요 문화유산인 천일염은 바닷물을 염전으로 끌어들여 전통기술과 소금장인의 노하우를 이용해서 만들었다. 바람과 햇볕만으로 수분을 증발시켜 소금을 생산하는 전통어업활동이다. 곰소의 소금은 국내 생산되는 소금 중에 으뜸이라고 했다. 소금이 서로 붙지 않고 맛이 최고라며 시어머님께서는 가는 김에 소금을 꼭 사오라고 당부하셨다. 소금이 바다의 상처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소금이 바다의 아픔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세상의 모든 식탁위에서 흰 눈처럼 소금이 떨어져 내릴 때 그것이 바다의 눈물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눈물이 있어 이 세상 모든 것이 그 맛을 낸다는 것을. 류시화 시인의 ‘소금’이란 시다.바닷물이 짜듯이 세상사 인생살이에 상처와 아픔과 눈물이 있기 마련이다. 오히려 그래서 삶에 참맛이 있다는 뜻은 아닐는지. 혼자 비에 젖은 염전을 보며 생각에 잠겨본다.양수는 바닷물과 같은 염도다. 사람의 혈액 속에는 0.9%의 나트륨이 있고 출혈이나 전해질의 발란스가 깨지면 생리식염수를 공급한다. 우리의 시조는 바다에서 왔으리라는 정황이 조금은 설득력이 있다. 바다가 썩지 않고 버티는 것도 소금 때문이리라. 성경에서 조차 세상에 소금이 되라는 말은 꼭 필요한 사람이 되라는 것이고 음식에 소금이 없으면 맛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최후의 만찬’이란 작품에서 유다 앞에 소금그릇이 넘어져있는 상황은 유다가 예수를 배신하며 신뢰를 깨뜨릴 것을 암시했다. 그리고 소금은 부의 상징이었다. 서양에서는 소금을 대접할 때 은이나 보석으로 장식한 그릇을 내놓았다고 한다. 벤베누토 첼리니(미켈란젤로의 제자)가 금으로 만든 그릇작품(16c 소금통 살리에라)이 600억을 호가했다고 한다.친정어머니는 장독대에 놓인 항아리에 소금을 담아두면 간수가 빠지고 단맛도 난다며 내게 보여주셨다. 소금 독은 그 아래 네모진 나무를 두 개 놓아 보이지 않는 수분증발을 도왔다. 결국 김치며 찌개에 맛난 간이 되었다. 그 뿐이랴 된장위에 벌레가 혹여 들어가 상할까봐 소금을 가득 흩뿌려두고 촘촘한 흰 천으로 독의 목에 고무줄로 단단히 묶어두었다.햇빛이 맑고 좋은 날 항아리들의 뚜껑이 걷히고 흰 천들이 걷어지면 위가 꾸들꾸들 말라있었다. 늘 장맛이 좋아 된장찌개는 숟가락 전쟁이었다. 윗집에서는 간혹 된장을 얻어가곤 했다. 메주가 된장이 되고 간장이 될 때 소금은 새로운 탄생을 돕는 착한 역할을 했다.시어머니는 현관 앞에 둔 달항아리에 소금을 한 가득 담아 두었다. 액운은 모두 사라지고 좋은 복만 들어오란 뜻이리라. 사람의 몸도 정신도 세월에 늙어가지만 정신만큼은 혈액에 담긴 소금의 영향으로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인류의 역사보다 장대한 채석강의 단층을 보며 세월의 단면에 감동한다. 바위사이로 파도가 치자 어린 소라와 고동, 조개가 생명을 지켜나간다. 산 것들은 늘 신비롭고 아름답다. 소금이 오늘도 신비한 뭇 생명을 키우고 있다.

2023-05-10

기해일주

육십갑자 중 서른여섯 번째는 기해(己亥)다. 천간(天干)의 기토(己土)는 화초나 묘목을 심은 작은 정원이나 논밭이며, 지지(地支)의 해수(亥水)는 큰 강이다. 그러니까 강을 끼고 있는 비옥한 초원의 형상이다. 동물로는 황금돼지다.기해일주는 기토(己土)라는 작은 땅이 해수(亥水)라는 물을 만나 ‘물기 촉촉한 땅’을 이룬다. 사람이 반듯하고 깔끔하고 섬세하고 흐트러짐을 싫어한다. 작은 것, 세세한 것까지 챙기므로 주변사람에게 신뢰감과 믿음을 준다. 너무 실수하지 않고 규칙을 잘 따르는 성향으로 인해 융통성이 없고 고지식해서 단점이 되기도 한다.삶의 안정성을 추구하는 분들이 많다. 허나 모든 것을 뒤엎는 혁명의 기운도 품고 있어 삶의 불예측성이 높은 일주이기도 하다. 바다처럼 넓다가도 세숫대야처럼 좁기도 하다. 굉장한 처세술을 부리다가도 어느 날 만사 싫증을 느껴 뜬금없이 반전을 꾀하기에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라는 말을 자주 듣기도 한다.여기에는 자신의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고, 주변 상황에 맞게 자신을 포장하는 능력이 뛰어난 탓도 있다. 본인 스스로도 모순을 느껴 간혹 우울증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보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관찰하는 힘도 길러야 한다.또한 남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있어 보증을 서거나 사기당하기가 쉬워서 돈이 많이 모이다가도 한 번에 재물을 잃을 수 있다. 돈을 만들어 내는 능력은 좋으나 재물의 관리가 허술해 주의가 요망된다. 개인사업보다는 조직생활이 더 나으며 가족 간의 돈거래는 가급적 자제하는 것이 좋다. 특히 부모 유산으로 인해 분쟁의 소지가 있어 조심해야 한다.물상으로는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섬과 같다. 사회와 떨어져 있어 소외된 생활로 외로움이 수반되는 삶을 살기도 한다. 영국의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의 작품 ‘펨페스트(폭풍)’가 있다. 밀라노 군주인 프로스페로는 마술에 빠져 정사를 소홀히 하는 바람에 동생에게 나라를 빼앗긴 채 어린 딸 미란다와 함께 나무 상자에 넣어져 바다에 버려진다. 기적적으로 외딴 섬에 당도한다. 거기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다.다만 섬에는 마녀가 죽으면서 나무에 가둔 많은 선량한 정령들이 있었다. 프로스페로는 마법을 사용해 그들을 풀어준다. 우두머리 이름은 에어리얼이다. 그는 작은 요정 에어리얼을 하인처럼 부린다. 동생을 도와 자신을 추방한 나폴리 군주가 자신의 딸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돌아가는 뱃길에 프로스페로는 마법으로 폭풍을 일으켜 배를 난파시킨다. 이들의 죄를 응징하기 위해서다.미란다는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 불쌍하다며 마법을 중단해 달라고 요청한다. 이때 딸에게 12년 전에 동생에게 추방당한 일을 이야기해준다. 요정 에어리얼은 나폴리 군주의 아들 페르디난드를 외진 곳으로 피신시키고, 미란다와 만날 수 있도록 해준다. 처음으로 남자를 본 미란다는 잘생긴 청년 페르디난드와 사랑에 빠진다. 프로스페로는 딸 미란다와 페르디난드의 사랑을 통해 보복 대신에 동생을 용서하고, 화해와 관용을 통해 새 삶을 누린다는 내용이다.그는 섬을 떠나면서 마법에 사용한 지팡이를 섬에 버리고, 요정 에어리얼도 자유롭게 풀어준다. 여기서 마술이 권선징악으로 이용된다. 마술과 마법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흥미를 유발한다.해(亥)는 동물로 돼지다. 돼지꿈을 꾸면 로또에 당첨된다는 속설이 있다. 또는 저금통을 돼지 모양으로 만들어 아이들에게 저축하는 습관을 길러주는 좋은 이미지로 사용한다. 우리는 고사를 지낼 때 돼지머리를 사용한다. 여러 가지 이설이 있지만 돼지 돈(豚)과 돈의 발음이 비슷해서 사용한 것이 아닐까? 돈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으니까.돼지를 뜻하는 다른 한자어로는 저(猪)가 있다. 서유기에 나오는 저팔계(猪八戒)의 원래 이름은 오능(悟能)이다. 오능의 뜻은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이미 부처요, 이미 깨달음의 상태가 부처라는 소리다. 문제는 돈이나 이성 또는 재물을 보면 그만 술 취한 무리가 되어 헤까닥 중생으로 변한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여덟 가지 계율만 지키라는 뜻에서 이름이 팔계(八戒)로 불린다.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마지막 부분에 ‘어느 쪽이 돼지인지, 어느 쪽이 사람인지 구별할 수 없다’는 말은 작가가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였을 것이다. 돼지처럼 지나친 욕심을 낸다면 경을 칠 일이 생기고 신랄하게 비판당할 일이 생긴다. 그렇지만 인간에게 각인된 돼지의 이미지와는 별개로 ‘돼지’는 인간에게 효용성의 측면에서 유익한 동물이다.기해일주는 기본적으로 재물의 기운을 깔고 있어 꼼꼼하고 부지런하긴 하지만 스케일이 좁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 해야 할 일과 감당해야 할 몫이 커지면서 바쁜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다. 마음속에 큰 산을 품고 있어 삶은 안정성이 있지만 나를 얽매는 규제를 깨버리고 싶은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즉 특별한 재능을 숨기다가 한꺼번에 터뜨리는 기운으로 볼 수 있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남녀 모두 배우자에게 충실하다. 남자는 현명한 아내를 만나 해로할 가능성이 높다. 노래를 잘하거나 목소리가 좋은 경우가 많다. 선견지명과 탁월한 감각, 유머 위트에도 뛰어나다. 다정다감한 면이 있고 순박하며 재주도 많아 팔방미인이다. 영감, 직감, 예감이 좋아 모든 감각이 살아있다고 하겠다.반면 부드러우며 여성적인 성향이 있어 말과 행동이 소극적이고 우울, 근심, 걱정, 애수가 있다. 귀가 얇아 타인의 말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경향이 있어 주의해야 한다. 의심과 이기심이 있어 이해타산적이고 짜증을 많이 내는 편이다. 역마성이 있어 직장생활을 하지 않는다면 여행이나 무역과 같이 해외에서의 생활이 유리하겠다.우리는 누군가가 자신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고 다르게 느끼는 것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마음이 ‘사랑’이다. 사랑은 두 사람 사이에 놓인 보이지 않는 다리다. 그리고 내 안에 존재하는 단점이나 외면하고 싶은 어두운 면을 포용하고자 하는 힘이 자기애(自己愛)다. 이것이 ‘너’와 ‘나’를 넘어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다.

2023-05-10

팔거산성

홍석봉 대구지사장 대구 팔거산성은 금호강 북쪽에 위치한 함지산 정상에 축조된 산성 유적이다. 산 모양이 함지같다고 해 ‘함지산성’, ‘반티산성’이라고도 부른다. 팔거산성은 7세기 초 신라의 지방 거점이자 군사요충지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다.당시 신라 서쪽 지역에서 왕경인 경주시로 이어지는 통로는 오늘날 낙동강을 통해 칠곡-대구-경산-영천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이 길목에서 가장 서쪽에 있던 팔거산성은 수로와 육로를 동시에 통제하는 중요 거점이었다. 남쪽으로 대구 분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고, 금호강과 과거 주요 교통로였던 영남대로가 교차하는 길목을 한눈에 볼 수 있어 주변 지역을 감시하기에 적합했다.학계에서는 입지 특성으로 미뤄 삼국시대 신라 왕경(王京) 서쪽의 가로축 방어 체계를 담당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시 신라의 수도인 경주를 외곽 방어하는 산성이었던 것이다.팔거산성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만 접근할 수 있는 현문(縣門)식 구조와 둥근 돌출부 형태의 곡성(曲城) 등이 확인됐다. 신라 산성의 독특한 축성 양식이다. 완만한 경사의 성벽, 곡성과 성벽의 접합부 축조 방식 등이 확인돼 역사적 가치가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2021년 팔거산성의 집수지(集水池) 유적에서 7세기 초 신라시대의 목간(木簡·글을 적은 나뭇조각) 16점이 발견됐다. 산성 축조 시기와 산성의 운영 방식 등을 연구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서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팔거산성은 6세기 신라산성 목조집수지가 보존된 유일한 유적이다. 문화재청은 최근 ‘대구 팔거산성’을 사적으로 지정하겠다고 예고했다. 사적 지정을 계기로 팔거산성을 원형 복원해 새로운 명소로 가꿔나가길 바란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5-10

대학개혁, 진심이라면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정부가 3대 개혁을 내걸었다. 노동, 연금, 교육 분야를 혁명적으로 바꾸겠다고 하였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뀔 것인지 세간의 관심과 기대가 집중된다.마침, 교육부장관이 교육개혁을 위한 3대정책을 제시하고 연내에 구체적인 내용을 발표하겠다고 하였다. 세 가닥 가운데 ‘대학개혁’이 솔깃하지만, 대학교육의 ‘내용’을 바꾸기 위한 고민과 철학이 담겼다기보다 대학교육지원을 위한 ‘돈’관리체계에 집중된 것으로 보여 실망스럽다.대학교육과 관련하여 해묵은 과제들이 많지만 대학입시제도를 한번 생각해보자.수능, ‘대학입학수학능력시험’은 그 이름으로 시행된 지 벌써 30년이 되었다. 학력고사, 예비고사 등 유사한 기능을 가졌던 제도까지 생각한다면 무려 반세기를 넘는 동안 연례행사처럼 치러온 시험제도가 아닌가. 교육계에서는 취지와 내용 등에 변화가 있어왔다 하겠지만, 수험생들과 사회일반에게는 그냥 같은 제도가 수십 년째 시행되고 있는 터이다.인구감소로 학령인구가 대폭 줄고 고교학점제가 곧 시행될 것이며 대학교육의 기능과 실체도 여러 각도에서 도전을 받는 가운데, 대학입학을 위한 기본관문격 제도로서 수능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대학교육과 관련하여 바꿀 가닥이 있다면 가장 먼저 떠올려야 하는 것이 바로 ‘입시제도’이며 그 가운데 가장 시급한 것이 ‘수능’이다. 본질과 취지를 다시 생각해야 하며, 구체적인 내용과 시행방식도 개선해야 한다. 수능 다음날이면 입학가능 점수가 예측되는 걸로 보아 수능의 기능은 점수로 학생의 실력을 가늠하여 줄을 세우는 격이었다. 대학 공부를 앞둔 학생들을 평가하는 잣대가 이전보다 다양해진 현실을 보더라도 수능점수로만 실력을 평가하는 일은 더 이상 적절하지 않다. 수능의 역할을 실력평가가 아닌 학력인준이나 적성평가도 바꾸어 대학입학을 위한 최소기준을 확인하거나 수험생 개인의 적성을 가늠하는 도구로 바꾸는 게 어떨까 싶다.수능의 형식도 오지선다형 객관식 시험에서 이제는 벗어날 필요가 보인다. 대학생활을 기대하는 수험생의 다양한 생각과 의견이 표현될 서술형, 논술형, 또는 단답형 주관식 시험을 시도할 때가 아닐까 싶다. 수능이 중요한 시험이긴 하지만 일 년에 딱 하루만으로 정하여 그 한 날의 시험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도박형 시험제도도 수명을 다하였다. 몇 번도 응시가 가능하게 하여 학생들이 불필요한 긴장과 극도의 압박에서 벗어나도록 배려해야 한다. 대학교육을 바라보는 시선도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대학의 이름에 따라 서열을 정하던 사회적인 평가도 서서히 바뀌어 간다. 대학명을 간판삼던 세태에서 실제 역량을 기대하는 인식으로 변화하고 있다.대학이 스스로 변해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대학 재정을 정부에 기대던 체질이 자연스럽게 바뀌도록 유도해야 한다. 돈으로 대학을 좌지우지하던 정부의 태도가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돈이 아니라 교육이 살아나도록 살펴야 하고 대학은 스스로 일어서는 기초체력을 키워야 한다. 대학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2023-05-10

우리가 주도하는 4차 산업혁명

김경외 한동대 교수·AI융합교육원 보통 역사를 ‘인간 활동의 기록’ 또는 ‘인간사’라고 많이 얘길하지만, 역사 속 굵직한 사건들을 되돌아보면 기술의 역할이 인간보다 더 중요하게 작동한 경우들이 종종 있었다. 대표적으로 산업혁명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종종 당시의 핵심 기술을 발명한 사람보다는 기술 그 자체를 떠올린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발명가 없는 발명이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기술을 발명하는 인간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결국 산업혁명을 통해 발생한 여러 산업적 또는 사회적 변화들이 새로운 기술의 활용과 확장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적어도 산업혁명만큼은 이를 인간사 보다는 기술사로 보는 것이 더 적합하다고 볼 수 있다.산업혁명을 기술과 그 활용의 관점으로 바라보았을 때 발견할 수 있는 흥미로운 사실은 바로 각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 기술이 가진 긍정적 기대 효과와는 별개로 그것이 실제 우리 사회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의 무게가 상당히 무거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2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 기술이었던 내연 기관은 기대처럼 대량 생산을 통한 경제 성장 및 도시화를 촉진시켰지만, 한편으로는 소득 불평등이나 환경 문제와 같은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디지털화가 본격화된 3차 산업혁명도 마찬가지다. ICT 기술은 디지털화나 자동화를 통해 정보 차원에서의 불평등 문제를 완화시켰지만, 동시에 디지털 격차, 사회적 고립, 개인정보 및 보안 문제와 같은 심각한 문제를 낳기도 했다.결국 기술의 등장으로 인한 변화들은 실제로 해당 기술을 접한 사람이 어떻게 사용하고 또 이로부터 야기되는 일련의 변화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내연 기관의 등장으로 전보다 노동의 수고는 줄었지만 팽배해진 인간의 이기주의는 빈부의 격차를 악화시키고 심각한 환경 문제를 야기했다. ICT 기술의 활성화는 인간이 서로 더 잘 소통하며 공유할 수 있게 해주었지만, 온라인 상에서의 익명성은 사회를 단절시키는 개인주의 문제를 일으켰다.우리가 현재 살아가고 있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기술인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이 지금보다 더 활성화되고 고도화된다고 가정했을 때, 앞으로 우리는 사이버 공간과 물리적 공간의 경계가 없어지는 세상에서 이전보다 더 고도화된 ICT 중심의 개인 맞춤형 서비스를 활용하며 살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 수준이 어느 정도일지 확언할 수는 없지만,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두 기술의 수준과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을 종합해서 생각해보았을 때 적어도 하나 분명한 것은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이 거의 모든 산업과 사회 영역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하지만 우리가 이미 경험했듯 앞으로 우리가 마주하게 될 변화라는 것은 결국엔 그 기술을 사용하는 우리에 의해서 결정될 것이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기술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사용하고 또 이로 인해 발생되는 변화들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우리 사회는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도 있고 더 나빠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기억하자. 앞으로 우리가 마주하게 될 변화들은 바로 우리 손에 의해 좌우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2023-05-09

선물 같은 하루, 축제 같은 나날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지난 주 연휴 내내 휘몰아친 비바람으로 크고 작은 피해가 속출했다. 강풍으로 가로수가 뿌리째 뽑히면서 지나가던 승용차를 덮쳤고, 축대가 무너져 집이 붕괴되거나 도로가 유실되는 등 남부지역에 집중된 예기치 못한 풍수해로 시름이 깊어졌다. 입하의 문턱에 쏟아진 단비가 해갈에는 도움이 됐다지만, 순식간에 돌풍과 함께 들이닥친 폭우가 적잖은 상흔을 남긴 ‘눈물비’가 돼버린 듯해 안타깝기만 하다. 이렇듯 ‘밤새 안녕’이 무색하리만치 변덕스런 날씨나 불의의 사고 등으로 하루를 무탈하고 온전하게 보낸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인지 모른다.하루하루 살얼음판 걷듯이 조바심 태우며 보냈던 코로나19 비상사태를 세계보건기구(WHO)가 3년 4개월만에 해제했다. 그에 맞춰 국내의 일상회복도 단계적으로 진행되어 국민들의 삶과 일상이 코로나 이전처럼 조금씩 꺼리낌없이 펼쳐지고 있다. 코로나의 집요한 발목잡기에 조마조마한 나날을 보내다 보니 하루가 정말 얼마나 위태하고 소중한지 절실히 느낀 나날이 아니었나 싶다. 그만큼 제약되고 억눌린 상황에서의 생활은 무엇 하나 아쉽고 간절하지 않은 것이 없었으랴만, 일단 사회적 거리두기와 방역수칙이 완화되고 있으니 사람들은 너나 없이 안도하며 반기는 모습들이다.그래서일까? 봄을 즐기려는 상춘객들이 부쩍 늘어나고 나들이나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현저하게 많아지고 있다. 또한 대부분 4년만에 열리는 축제나 체육대회 따위의 야외행사가 봇물 터지듯 열렸거나 열리고 있어서 실로 전국 곳곳에는 모처럼만에 활기를 띠고 생동감이 감돌고 있다. 경북만 하더라도 문경찻사발축제가 흥행 ‘대박’으로 마무리됐고, ‘신바람난 선비의 화려한 외출’을 테마로 한 영주한국선비문화축제나 안동민속축제를 봄축제로 확대 개편한 차전장군 노국공주축제 등이 성황리에 열렸는가 하면, 이 달 말경엔 전국 3대 불꽃축제인 포항국제불빛축제가 환상적인 불빛 판타지를 선사할 예정이다. 이처럼 지역별 특색이나 역사적인 배경에 걸맞는 테마로 만화방창(萬化方暢)하듯이 신명나는 축제나 행사로 이어지니, 즐기려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그러고 보니 실로 얼마만에 누려보는 여유와 완상(玩賞)이던가. 당연할 것 같은 일상의 움직임이나 현상에 자연스러운 반응이나 대처가 어렵고 걸림돌이 생긴다면 무엇 하나 제대로 해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하루를 평온하게 보낸다는 것이 무심코 쉬우면서도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최근에 필자는 불의의 춘사(椿事)로 열흘 정도 병원 신세를 지고 나니 새삼 선물 같은 하루가 그리 고맙고 소중할 수가 없었다. 무덤덤하고 예사스러운 일상 같지만, 일단 무엇인가에 얽매이거나 불편이 뒤따르게 된다면 평범한 일상이 그리 간절해질 수가 없을 것이다.황사 같은 코로나의 시름도 남풍 결에 사라져가는 봄날, 선물 같은 하루하루가 자신의 평안함 속에서 삶의 맛과 멋을 더하는 축제 같은 나날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일상을 숙제하듯 살지 말고 축제하듯 즐겨보자!

2023-05-09

모럴 헤저드

우정구 논설위원 모럴 헤저드는 19세기말 영국의 보험회사들이 피보험자들의 부도덕한 행위를 가르키는 말로 처음 사용됐다.자동차 운전자가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면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최대한 안전운전을 할 텐데 보험에 가입했기 때문에 사고가 나더라도 비용은 보험회사가 물어준다는 생각에 운전을 소홀히 한다는 뜻에서 ‘도덕적 해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지금은 법적 제도적 허점을 이용해 자기 책임을 소홀히 하거니 집단이기주의적 행위를 가르키는 행동 등에 이르기까지 그 사용 범위가 넓어졌다. 우리 사회의 각종 병리현상이나 정치인의 도덕적 결함도 모럴 헤저드의 범주에 든다.미국 등 서구 사회를 지탱하는 ‘도덕의 힘’으로 표현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가르키는 용어다. 부와 권력은 그에 따른 책임과 의무를 수반하는 것이므로 사회 지도층일수록 지위에 걸맞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뜻이다.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대표적 예시로 프랑스 칼레시 지도층의 행동이 자주 인용된다. 영국과의 전쟁에 패배한 대가로 6명의 대표시민 목숨을 요구받은 칼레시는 당시 도시의 최고 부호와 고위층이 스스로 먼저 목숨을 내놓겠다고 나서면서 위기에 빠진 도시를 건진다.사회지도층이 가져야 하는 도덕적 책임은 이처럼 매우 엄중하고 엄숙하다. 특히 가진 자의 도덕심은 어느 시대를 불문하고 사회적 불안을 조장할 계층 간의 갈등을 해소할 최고의 덕목으로 여겨진다.한국 사회지도층의 도덕적 덕목은 과연 어느 수준일까. 궁핍 마케팅으로 유명한 더불어민주당 김남국 의원의 거액 가상화폐 보유 논란을 보면서 한국 정치의 모럴 수준을 걱정해본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5-09

당무감사 앞둔 與현역, ‘물갈이론’에 떤다

심충택 논설위원 여야가 최근 내년 총선 공천준비작업에 들어감으로써 정치권이 초긴장 상태다. 국민의힘은 총선후보자들의 자질을 평가하기 위해 곧 당무감사에 착수하고, 민주당은 그저께(8일) 중앙위원회를 열어 ‘공천룰’을 확정했다.내년 총선에 패배할 경우, 정부 여당은 조기 레임덕으로 인해 식물상태가 되고, 야당은 수권정당 기능을 상실하기 때문에 여야 모두 정치적 명운을 걸어야 한다. 현재로선 다양한 변수가 잠복해 있어 승부를 예측하기 어렵다. 진영논리에 갇힌 양대정당의 극한 대립으로 무당층이 급증하는가 하면, ‘제3지대론’까지 수면 위로 떠오른 상황이다.TK(대구경북)지역에서는 ‘현역의원 물갈이 공천’이 최대 관심사다. 경북매일신문이 지난주 발표한 여론조사(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중에서 독자들의 눈길을 끈 부분도 현역의원들에 대한 평가였다.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각각 52.5%와 55.1%의 지지를 받으며 여전히 민심을 얻고 있지만, TK 현역의원들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20%대로 뚝 떨어졌다. ‘다른 인물로 교체해야 한다’는 응답률이 절반(51.2%)을 넘어섰다. 총선 때마다 ‘공천 개혁’이란 타이틀로 가장 먼저 TK 현역의원을 칼질했던 보수정당의 관행이 내년 총선에서도 되풀이될 가능성이 커졌다. 2020년 21대 총선에서는 TK 지역구 의원 25명 중 9명만 공천을 받아, 현역 교체율이 64%에 달했다.실제 대통령실이나 법조인 출신 인사들의 TK 낙하산설이 그럴듯하게 흘러나오고 있어 현역의원들이 긴장하고 있다. 이 지역은 공천만 받으면 손쉽게 당선되기 때문에, 대통령 주변 유력인사들이 출마욕심을 내는 것도 어떻게 보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국민의힘의 역대총선 공천과정을 보면, 내년 총선에서도 당무감사위원회가 현역교체 근거자료를 만들 가능성이 높다. 지난 21대 총선에서도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은 TK지역에서 당무감사 형식을 빌어 현역 의원을 대폭 교체했었다. 감사 결과를 등급(A∼E)으로 매겨 평균 등급(D,E) 이하 국회의원과 당협위원장을 공천에서 배제시켰다.국민의힘은 지난달 신의진 위원장을 포함한 당무감사위원 7명을 선임했다. 위원 명단은 비공개로 했다. 당무감사위원회는 여름휴가와 정기국회 일정 등을 고려해 오는 7월부터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정치부 기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당무감사를 앞두고 공천탈락을 염두에 둔 일부 의원들이 벌써 무소속 출마설을 흘리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예를들어 ‘TK지역도 이제 공천만 받으면 무조건 찍어주지 말고, 일을 잘하면 공천을 받지 않더라도 당선시키는 케이스가 많아져야 한다’는 등의 논리다.공감이 가는 말이다. 대구·경북 지역의 경우 ‘보수의 본산’이라는 이름에 비해 중견정치인들이 많지 않다. 공천 때마다 현역을 대거 날린 결과다. 집권당이 우선 역량 있는 인물을 공천해야겠지만, 유권자들도 ‘공천=당선’이라는 TK 선거풍토를 바꾸는 작업을 할 필요가 있다.

2023-05-09

이상한 평론가 김갑수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 참석한 배우 박은빈씨. /연합뉴스 ‘문화평론가’ 김갑수가 배우 박은빈의 백상예술대상 수상 소감을 저격했다. “울고불고 눈물 콧물 흘렸다”는 게 비판의 요지다. 자신만의 생각과 작품을 하면서 겪은 고뇌에 대해 말해야 하는데 스피치가 딸리니 ‘감사합니다’만 남발한다고 혹평했다. “18살도 아니고 30살이나 먹었으면 품격이 있어야 한다”고, “송혜교에게 배우라”는 훈수까지 빼먹지 않았다.하나부터 열까지 다 틀렸고 다 구리다. 첫째, ‘무절제한 감정의 격발’은 오히려 그 자신이 범하고 있다. “울고불고” 운운은 저열한 인상비평이다. 소감을 다 들었는지조차 의문스럽다. 들었다면 박은빈이 ‘자기 생각과 작품에서의 고뇌’를 충실히 밝혔음을 모를 리 없다. 그냥 “울고불고” 하는 게 눈꼴 시렸던 것 같은데, 과잉된 자의식 격발이야말로 꼴 보기 싫다.“세상을 바꾸겠다는 거창한 꿈은 없었지만 적어도 이전보다 (사람들이) 친절한 마음을 품게 할 수 있기를, 또 (우리 사회가) 각자의 고유한 특성들을 다름이 아닌 다채로움으로 인식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연기했습니다. 제가 우영우를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큰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두려웠습니다. 자폐인에 대한 생각들이 편견에서 기인한 건 아닌지 매 순간마다 검증해야 했습니다”라던 박은빈의 수상 소감과 김갑수의 발언을 두고 보면 누구 스피치가 더 딸리는지는 자명하다. 정신적 성숙도 딸린다. 다양성에의 존중,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를 말한 박은빈의 품격에 비하자면 평론가의 교조적 태도는 치기나 다름없다.둘째, “아끼는 마음으로 얘기”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오만한 위계의식이 틀려먹었다. 수직적 꼰대이즘은 무엇이든 구별 짓고 등급을 매겨 규격화, 영토화한다. “송혜교와 탕웨이 정도가 교과서”라니, 감정마저도 표준화하려는 그가 설마 들뢰즈도 안 읽은 걸까? 셋째, “세계가 지켜본다는 걸 인식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한 말”이라는 해명은 전형적인 사대주의 열등감이자 스노비즘이다. 결국 “남 보기 부끄럽다”는 것 아닌가? 그가 추앙하는 아카데미였다면 박은빈이 눈물을 흘릴 때마다 모든 이들이 기립박수를 쳤을 것이다. 수상 소감은 오직 그녀의 시간이고, 개별성에 대한 존중과 관용이야말로 서구 사회의 근간이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넷째, ‘내로남불’이다. 그는 2015년 한 방송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생전 육성이 나오자 눈물을 흘린 바 있다. 그 눈물은 맞고 이 눈물은 틀리다면 과한 자기확신이다. 다섯째, 사회 보편인식과 괴리되었다. 박은빈의 눈물은 비판하면서 학교 폭력으로 타인의 생을 망가뜨린 황영웅의 비열한 미소는 옹호했다. “애들끼리 때리면서 크는 거지”라는 건데, 그는 2015년, 작품 활동을 한 번도 한 적 없는 아들의 소설책 출간을 팔 걷고 도왔다. 아들과 함께 잡지사 인터뷰에 나가기도 했다. 자기 아들이 학폭의 피해자였더라도 가해자를 옹호했을까? 박은빈은 아역 배우 시절을 거쳐 부모 찬스 없이 혼자 힘으로 성장했다.여섯째, 자기경험을 절대화하고 있다. 그는 살면서 한 번도 그런 영광을 경험해보지 못한 모양이다. 그러니 북받쳐 저절로 토해지는 환희를 알지 못한다. 일곱째, 시대 모드와 동떨어졌다. 이제는 감정을 절제하고 점잔 빼야 했던 유교적 옛날이 아니다. 그의 강퍅함에서는 ‘장미의 이름’의 호르헤 수도사가 보인다. 여덟째, 대중을 폄하하고 있다. 지식인 특유의 우월의식인데, 김수영 시인은 대중의 위대함을 믿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그러하다. 아홉째, 귀걸이 코걸이다. 만약 박은빈이 제임스 카메론처럼 “I’m king of the world!”라고 외쳤다면? 오만방자하다고, 겸손을 알라고, 세계가 보고 있다고, 여자는 ‘킹’이 아니라 ‘퀸’이라고 비난했을 것이다.열째, ‘관심병’이다.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권상우가 이정진에게 말한다. “그렇게 말하면 네가 멋있어 보이냐?”고. “두고두고 창피한 것은 회사 처음 들어가 만난 여자 앞에서 노동자들이 불쌍하다고 울음을 터뜨린 것이다. 관심을 끌기 위해서였다”(이성복, ‘관심을 끌기 위해서였다’)는 시가 떠오른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대사를 옮기고 싶다. “아름다운 것들은 관심을 바라지 않아.” 꼰대 지식인의 너절하고 애처로운 관심 끌기에도 아랑곳없이 박은빈의 광채는 더욱 찬란하기만 하다.

2023-05-09

봄과 여름 사이를 지나며

봄에서 여름 사이, 계절이 바뀔 때마다 폭식을 끝낸 것처럼 공허함이 자리한다. 소화시키는 건 오롯이 나의 몫인데, 가슴팍을 두드려보고 같은 자리를 빙글빙글 돌아 몸을 움직여 보아도 목까지 차오른 더부룩함은 사라지지 않는다.요즘 비가 많이 와서 그런지 마음이 물먹은 솜처럼 무겁다. 집에서 쉬고 있는 와중에도 해치워야 할 집안일이 차례대로 떠올라 괴롭다. 이번 주말엔 겨울 내내 가장 많이 붙어 있었던 전기장판을 정리해야 하고, 겨울 이불도 빨래해서 장롱 깊숙한 곳에 넣어야 한다. 7월 말엔 4년 간 살던 집을 떠나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가야 해서 그간 창고 속에 쌓아 둔 쓸모를 잃은 짐들은 버리거나 나누어야 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신경 써야 하는 번거로운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와중에 하루하루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정신을 차리면 달력이 넘어가고 있고 눈을 감았다 뜨면 낮과 밤이 바뀌어 있다. 이 길이 출근하는 길인지 퇴근하는 길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매일매일 꿈결 같은 몽롱한 삶을 살고 있다.퇴근 후 집에 들어가면 대체로 6시. 샤워를 하고 잠옷을 갈아입고 잠을 잔다. 다시금 눈을 뜨면 오후 9시. 식사를 하기엔 애매한 시간이라 빵 한 조각이나 요거트를 대충 먹으며 허기를 달랜다. 엇비슷한 일상을 살아가는 동안 새로운 재미와 자극을 찾는 일은 쉽지 않다.오늘도 어김없이 무료함과 피로를 소화시키고 있는데 재채기가 나와 쉼을 방해했다. 요즘 미세먼지가 심한 탓인가 싶어 인터넷에 날씨 검색을 했더니, 5월 6일자로 입하에 들어섰다고 한다. 24절기 중 일곱 번째 절기로 여름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절후다.봄과 여름 사이, 환절기는 꼭 미열을 앓고 있는 것만 같이 달뜨고 불편한 감정이 든다. 예상치 못하게 여름의 냄새가 훅 퍼질 때에 생각나는 어린 시절의 기억 몇 가지가 있다.여름이 되면 가족끼리 수영장에 놀러 가곤했다. 내가 살던 지역의 커다란 야외 수영장이었다. 그곳은 얕은 물과 깊은 물로 구역이 나누어져 있었는데 당시의 나는 키가 작아 깊은 물에 들어갈 수 없었다. 늘 얕은 물속에서 깊은 물에서 놀고 있는 대학생 언니 오빠들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곤 했다.튜브가 있으면 괜찮지 않을까 싶어 호기롭게 깊은 물가를 서성였는데, 하필 어떤 대학생 무리의 손에 잡혀 예고도 없이 깊은 물속으로 빠지고 말았다. 세 네 번 머리가 수면 바깥과 안을 드나들었을 때 쯤 그들은 단순히 장난이었다며 해명했지만 어린 나는 얼마나 놀랐던지. 무리 중에 한 명이 겁에 질린 나를 알아채고선 물 밖으로 꺼냈고, 내팽겨치듯 홀로 물 밖에서 놀란 마음을 진정시켰던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맵고 뜨거운 목구멍 속 일렁이는 분노와 나약함으로 산산조각 부서지던 그때의 여름. 처음으로 크게 겁을 먹은 때였고, 이후로 겁을 먹을 때면 누군가 밀어 버리기 전에 스스로 깊은 물로 뛰어들어 버리곤 했다. 물론 본질적으로 타고난 성격 탓도 있겠지만.여름이 깊게 남긴 쓸쓸함은 가라앉아 있다가도 계절이 찾아오면 수면 위로 떠오른다. 나에게 여름은 성장통을 앓고 있는 몸처럼 억눌린 통증이 시작되는 계절이라고 해야 할까. 실은 몇몇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혀 있긴 하지만, 객관적으로 보더라도 여름은 정말 사랑할 수 없는 계절이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40도 가까이 육박하는 무더위는 걸어 다니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히고 이마에 맺히는 땀 때문에 애써 드라이한 앞머리는 볼품없어 진다. 자외선에 자극받아 올라오는 빨간 두드러기들은 얼마나 가렵고 신경 쓰이는지. 장마철 엄청난 비를 퍼부었다가도 다음날 뜨거운 태양빛을 쏟아 붓는, 시시때때로 날씨를 바꾸는 심술궂은 변덕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하지만 어쩌겠는가. 그저 무력하게 컨베이어벨트에 실려 오는 여름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역설적이게도 여름날 쓸쓸했던 여럿 기억들은, 트라우마를 마주할 때까지 그 쨍하고 눈부신 빛 속에서 잔인하게 빛나고 있다. 언젠가 반드시 이 눈부심을 마주해야 한다는 듯이.상처는 아물 때 가렵다. 쓸쓸함을 긁다보면 애틋함으로 번진다. 내키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마주하는 서툴고 쓸쓸한 기억들이 여름이 지나 가는 동안 다시금 내면 깊이 가라 앉아 나를 이룬다. 봄에서 여름으로, 가을에서 겨울로 변화할 때마다 쓸쓸함을 간직하는 내면의 깊이가 미묘히 깊어지고 있다. 그러니 봄과 여름 사이에서 그저 유유히 흔들리는 수밖에.

2023-05-09

동물 없는 동물원

홍덕구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어린이날을 맞아 동물원 나들이를 다녀온 가족이 적지 않을 것이다. 코끼리, 기린, 하마, 사자, 얼룩말 등 책에서만 보던 동물들을 실제로 볼 수 있는 동물원은 가족 나들이의 단골 코스다. 어린 시절의 필자 또한 동물원에서 즐거운 추억을 많이 만들었다.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동물원에 가지 않는다. 철이 들어서, 동심을 잃어서가 아니다. 동물원이라는 공간에서 동물들이 행복하지 않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동물원 우리 안에서 뱅글뱅글 맴도는 동물을 본 적이 있는가? 이러한 이상행동의 원인은 너무 좁거나 관람객들의 시선에 무방비로 노출된 공간 때문에 발생하는 극도의 스트레스다. 만약 당신이 기후도 식생도 익숙하지 않은 곳으로 납치되어 우리에 갇힌다면? 더구나 낯선 이들이 갇혀 있는 당신을 바라보고 가리키며 웃고 떠든다면? 우리는 이를 ‘폭력’이라고 부를 것이다.제국주의 국가들이 아시아, 아프리카 등지의 식민지에서 포획한 ‘이국적인’ 동물들을 본국으로 보내 전시한 것이 동물원의 시초다. 희귀종의 보존이나 생태 학습 등의 기능은 한참 뒤에나 덧붙여진 것이고, 그나마도 최우선 목표는 아니다. 동물들을 본연의 서식 환경에서 강제적으로 이탈시켜 관람 대상으로 만드는 것이 동물원의 본질이다. 초기의 동물원에서는 ‘인간 전시’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서구인들의 눈에 신기하게 보이는 원시 부족민을 동물들과 함께 전시한 것이다. 이처럼 동물원이라는 제도는 시초부터 제국주의적 폭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지난 3월, 서울 광진구의 동물원을 탈출한 얼룩말 ‘세로’가 도심지와 주택가를 돌아다니는 모습이 다수의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다. 사람들은 아프리카 사바나에 있어야 할 얼룩말이 대도시 한복판을 활보하는 이색적인 이미지를 흥미롭게 소비했다. 문제는 동물원과 인간의 도시 모두가 세로에게는 편안하지 않은 공간이라는 것이다. 닭발집과 중화요리점 앞을 지나가는 세로의 모습이 이질적이라면, 동물원 우리 안에 있는 세로 또한 자연스럽지 않다. 다행히도 최근 들어 이러한 동물원의 폭력적 속성에 대한 비판과 반성이 이루어지고 있다. 청주동물원에는 코끼리 같이 관람객에게 인기 있는 외래동물이 거의 없다. 기후와 풍토가 맞지 않는 동물은 사육하지 않는다는 방침 때문이다. 외래동물이 차지하던 넓은 공간에서는 늑대, 수달, 오소리 같은 고유종들이 사육된다. 고유종의 종 보존과 번식, 생태 연구도 이루어진다. 다쳐서 구조된 동물들을 치료하고 돌본 뒤 야생으로 돌려보내기도 한다. 전시는 청주동물원의 수많은 기능 중 하나일 뿐이다. 가장 이상적인 동물원은 관람객들에게 동물이 거의 보이지 않는 동물원일 것이다.에버랜드 동물원의 아기판다 ‘푸바오’의 귀여운 모습이 화제다. 필자 또한 온라인으로 푸바오의 영상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여러 번 지었다. 하지만 푸바오를 직접 보기 위해 동물원을 찾지는 않을 것이다. 1년 뒤면 중국으로 돌아갈 푸바오가 또 다른 동물원이 아닌 야생의 대나무숲으로 돌아가길 바란다. 푸바오가 그곳에서 잘 지낸다는 소식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행복할 것이다.

2023-05-08

다문화 정책, 이대로 좋은가

김규인 수필가 우리가 꺼리는 가장 힘들고 가장 위험한 일터를 지키는 이주민들. 그들이 없으면 대한민국은 여러 분야에서 멈추어 선다. 농업도 뿌리산업도 줄기 산업도 모두가 외국인들의 손을 빌린다. 외국 이주민들이 일시에 다 떠난다면 농사를 짓는 일도 중소기업도 문을 닫아야 한다. 다문화 이주민들이 없으면 우리나라는 산업의 동력을 잃는다.다문화 이주민 200만 명의 시대다. 학생이 모자라는 학교도, 산업 인력이 모자라는 산업체도, 일손이 모자라는 농촌도, 신부가 모자라는 개인까지 우리 사회의 모든 곳에 그들이 자리한다. 우리의 선배와 아버지들이 독일로 일본으로 미국으로 돈을 벌기 위해 떠났듯이 그들도 코리안 드림을 가지고 우리나라를 찾는다.가정의 미래를 위하여 홀로 떨어져 악착같이 돈을 벌어 최소한의 생활비만을 남긴 채 가족들에게 보내는 가장을 보면 마음이 숙연해진다. 그들의 모습에서 그리움을 억누른 채 가장을 기다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하루빨리 돈을 벌어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를 기도한다.코리안 드림을 이룬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소식을 접할 때면 괜히 미안하고 기분마저 우울해진다. 그들이 우리나라에서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언어 문제이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어디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겪는 정착단계에서 어려움이 가장 크다.범죄에 연루되거나 소통 부재에 따른 이해 부족으로 괜한 오해를 받거나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거나 화재로 금쪽같은 자녀를 잃어버린 소식을 접할 때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어느 사회나 사소한 사건이 있지만, 제대로 된 교육과 안내가 부족하여 일어난 측면도 있다.정부도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니다. 19개 정부 중앙행정기관, 17개 지방자치단체, 6개 이민 관련 위원회에서 외국인과 다문화와 관련된 사업을 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어 교육 지원과 같은 초보적인 단계의 지원이 중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2021년 기준 다문화사업 중 중복되거나 유사한 예산은 521억 원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러한 사업을 총괄할 중앙부처가 필요함에도 각 부처의 이기적인 생각으로 예산 집행도 교육도 문제점을 노출하고 혜택을 받는 사람의 답답함은 크게 줄지 않는다.이민과 다문화 정책을 총괄하는 중앙부처를 설치하여 외국의 우수한 젊은 인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일을 추진함에는 대만 같은 외국의 기관처럼 출입국 정책 수립에서 각종 정책을 시행하고 교육하며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련의 일이 원스톱 체제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이 예산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이주민들에게도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길이다.고용허가제 시행 19년에 불법체류자 40만 명의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2026년 기준 이주민 유입 경제 효과는 100조를 넘는다. 급격한 인구감소를 보이는 대한민국에서 이민자가 없으면 경제 활력의 동력과 성장을 잃게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더불어 사는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 이민자 정책을 총괄하는 부처의 설립이 하루 속히 이루어져야 한다.

2023-05-08

국회의원이 아닌 지역민을 위한 선거구를 원한다.

심한식 경북부 제22대 총선이 1년도 남지 않았지만, 선거구 획정을 두고 설왕설래가 계속되고 있다.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국회의원 선거구획정위원회는 “인구수 변동으로 내년 총선에서 조정이 필요한 선거구가 30곳으로 나타났다”고 밝히고 경북에서도 군위가 대구시로 편입되며 선거구의 조정이 불가피하다.이 때문에 “어디가 어디와 합쳐져 2인 선거구가 된다”는 등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오르고 있다.특히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선거구 획정에 합의하지 못했지만, KBS와 선거제도 공론화 500인 회의를 개최하고 나서 그 결과가 주목된다.이를 통해 선거구제 개편과 현재의 승자독식 소선거구제의 장단점을 살피고 국회의원의 대표성과 책임성, 비례성을 강화한다 해도 국회의원을 위한 선거구가 도입되어서는 곤란하다.자치단체마다 정당과 관련된 현수막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타 정당을 비방하고자 시정잡배나 사용하는 단어들이 고스란히 옮겨진 현수막을 비롯해 치적을 홍보하는 현수막이 날이 새면 새롭게 게시되는 등 공익을 가장하며 내년 총선을 겨냥한 현수막들이 거리를 오염시키고 있다.지역민들은 현수막 정치가 아닌 소통과 가까운 거리를 원한다.끼리끼리 뭉친 그들만의 정치가 아닌 거리에서 만날 수 있는 정치인, 국회의원을 원한다.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다급하게, 상냥함을 가장한 정치인이 아닌 평소에도 다가갈 수 있는 정치인을 원하고 있다.공천권을 행사하는 중앙당에 예속된 국회의원이나 정치인이 아닌 공천권이 지역민에게 있다고 확신하는 정치인을 원하고 있다.일부 정치인들은 정당에서 차지한 위치를 자랑하며 지역민을 현혹한다. 국민의힘이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경북권에서 당직으로 권력을 자랑하기도 한다.하지만, 지역과 선거구민이 아닌 자신의 권력과 배경을 위한 당직은 부메랑이 될 것이다.앞으로 어떻게든 결론이 날 선거구 획정이 국회의원을 위한 것이 아닌 지역민을 위한 선거구로 결정되기를 바란다. 또 국회의원 배지보다는 지역민의 아픔과 발전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정치인이 선출되는 총선도 기대해 본다.shs1127@kbmaeil.com

2023-05-08

동맹, 도청 그리고 외교

변창구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동맹국을 도청한 나라의 ‘국빈 자격’ 방문외교라는 ‘이 웃픈 현상’은 힘과 국익이 지배하는 국제정치의 냉혹한 현실을 보여준다.‘동맹·도청·외교’의 공통점은 모두가 ‘국익을 위한 수단’이라는 사실이다. ‘동맹’과 ‘외교’는 합법적이고 ‘도청’은 불법적이지만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다.이러한 상황에서 동맹외교에 나선 윤석열 대통령의 책임은 그 어느 때보다 무거웠다. 북핵 고도화에 대한 실효적 대응, 중국 및 러시아 관련 이슈들에 대한 한미공조, 반도체법과 인플레감축법(IRA)의 해결, 도청의 재발방지 등 우리의 국익과 직결된 중대현안들이 산적해 있었기 때문이다.국익이 충돌하고 힘의 우열이 존재하는 외교협상에서는 동맹국이라고 해서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협상의 성과를 극대화시키는 것은 오직 동맹국을 설득할 수 있는 전략과 능력이다.물론 이번 정상외교를 통해 북핵 위협에 대응하는 ‘핵협의그룹(NCG)’ 신설에 합의함으로써 확장억제의 신뢰도를 높인 것은 평가할만하다.하지만 최대 관심사인 반도체법과 IRA는 해결하지 못했고, 미국에 밀착됨으로써 한·미·일 대 북·중·러의 대결구도는 더욱 악화되었다. 따라서 정부는 이번 정상외교의 전략적 문제점 및 협상결과에서 비롯되는 파장을 예의주시하고 그 대책을 면밀히 강구해야 한다.무엇보다도 전략적 측면에서 미국의 도청을 ‘외교의 지렛대’로 삼지 못한 것은 실책이었다.NBC 앵커의 “친구가 친구를 염탐합니까?”라는 질문에 윤 대통령은 “철통같은 신뢰를 흔들지 못한다”라고 답변함으로써 도청에 항의하는 대신 사실상 면죄부를 주었다. 도청으로 민감한 국가기밀이 노출되었고 한·러 관계도 악화됐다. 그럼에도 주권국가로서 재발방지는 요구하지 않고 동맹의 선의에만 의존했다.국익은 동맹국이 선의로 나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고도의 전략으로 내가 지키는 것이다.한편 신설되는 NCG의 실효성 확보 역시 중요한 외교과제다. NCG 설립 자체가 미국의 확장억제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NCG 출범으로 핵전력 운용에 있어서 우리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지만, 기존의 차관보급 ‘확장억제협의체’보다 실효성이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핵사용 결정권은 전적으로 미국의 고유권한이기 때문에 발언권이 갖는 영향력은 여전히 의문이다. 따라서 향후 NCG의 구체적 운영과정에서 우리의 발언권 제고에 각별히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마지막으로 ‘동맹의 강화 및 확장에 따른 양면성’ 인식이 절실하다. 한미동맹은 강화되고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확장됐다.미국에 대한 의존이 커질수록 우리외교의 자율성은 줄어든다. 미국은 인도·태평양전략, 미·중 패권경쟁, 우크라이나 전쟁 등에서 우리에게 더 많은 역할을 요구할 것이고, 북한·중국·러시아와의 이해관계 충돌은 한국외교의 부담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예상되는 ‘고난도 외교환경’이 ‘고난도 외교역량’을 요구하고 있다. 여야와 보혁을 초월한 국가적 차원의 외교역량 결집이 절실한 시점이다.

2023-0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