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국회에서 정무위원회가 열렸다. 정무위원회는 국회의 상임위원회 중 하나로 권익위원회 등 국무총리 직속 기관에 속하는 여러 기관을 관할한다. 이날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문제가 현안으로 상정되자, 국민의힘 정무위원들은 문재인 전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의 명품 옷과 귀금속,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논두렁 시계도 마찬가지 아니냐며 바로 전원 퇴장해 버렸다.
그 후 진행된 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의 국회의원들이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와 관련하여 질의했는데, 류철환 권익위원장은 시종일관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대통령기록물로 이관되었다는 답변만 했다. 이런 회의 태도를 지켜보는 국민의 마음은 참담하기 짝이 없다. 국회의원들의 회의 수준이 너무나 기대에 못 미쳤기 때문이다.
나는 대학에서 강의할 때 토론을 꼭 챙겨서 수업하기도 했고, 여러 토론대회에서 심사를 맡기도 했다. 아카데미 토론을 많이 하면, 논리적 사고도 길러지고 잘 지는 법도 배우게 되어 건강한 대화 문화를 만드는 힘이 성장한다. 토론은 상대를 이기기 위한 말싸움이 아니라 무엇이 옳은가를 도출하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듣는 것은 토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요소가 된다. 아무리 정치라도 무조건 나만 이겨야 한다고 하면 정국은 진흙탕이 될 수밖에 없다.
문제에 집중하는 것 역시 무엇이 옳으냐와 직결된다. 상대가 제기한 토론 쟁점에서 벗어나는 다른 주제를 꺼낸다든지 상대의 사람 됨됨이를 트집 잡는 인신공격을 하는 것은 옳은 것을 찾아가는 데 걸림돌일 뿐이다. 상대 주장에 간결하고 명료하게 질문하는 것 역시 상대방의 허점을 드러내는 데 큰 역할을 하므로 매우 중요하다. 이런 아카데미 토론을 현실에서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으나 그 기본 정신은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사회가 건강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로지 국민의 이익을 추구해야 하는 정무위원들의 회의 모습은 이런 토론의 원칙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이 김건희 여사 명품백 논의에서 벗어나는 주제를 꺼내든 것은 논점을 일탈한 것이고, 자진 퇴장한 것 역시 대화를 거부한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안건을 다루는 방식에도 문제는 있다. 명백한 근거가 있는 내용도 괜히 질문으로 시작하여 발언 시간을 초과하는 의원이 대다수고, 설득력 있게 논증을 이어가지 못하고 혼자 마음대로 결론 내는 모양새를 자주 보였다.
대통령실의 ‘몰카 정치 공작’이라는 입장도 논점에서 비껴가 있다. 정치 공작이든 아니든 대통령 부인이 일반인에게 300만 원짜리 명품백을 받은 것이 적절한가 하는 것이 핵심문제다. 명품백을 준 사람이 과거에 무엇을 했느냐를 문제 삼는 것도 인신공격의 오류이다.
학교에서 토론을 많이 해도 정치인들이 건강한 토론 문화를 보여주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오는 7일 대통령은 KBS와 방송 대담 형식으로 국정 운영 구상을 밝히면서 부인의 명품백 문제도 설명할 것이라고 한다. 이번에는 핵심 문제에 대한 입장이 꼭 나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