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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TV 수신료의 운명

홍석봉 대구지사장 TV수신료는 1963년 처음 징수됐다. 당시 돈 100원을 냈다. 그 때만해도 TV보급률이 낮아 일부 부유층만 TV를 보유하고 있었다. KBS 징수요원들이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TV를 확인, 징수했다.생활 수준 향상과 함께 TV보급률이 높아졌다. 일일이 방문 확인이 어려웠다. KBS는 1994년 한전에 징수업무를 위탁, 전기요금과 합산 청구했다. 이 때부터 전국민은 TV 시청료를 강제 징수당했다.TV수신료는 1981년부터 2천500원으로 정해져 전기요금 고지서에 포함돼 청구된다. KBS2가 광고를 받고 있기 때문에 수신료 비중은 45% 정도라고 한다. KBS는 그동안 정권의 나팔수로 비난받았다. 적자 누적으로 재정위기에 부딪히자 공영방송 존립을 위해 필요하다며 시청료 인상을 꾀했다. 국민 반응은 냉랭했다.대통령실이 나섰다. 방송통신위와 산자부에 KBS TV 수신료 분리 징수를 권고했다. 방통위는 조만간 방송법 시행령 개정에 착수할 전망이다. 수신료와 전기요금의 통합 징수 방식에 대한 국민들의 불편 호소와 변화 요구를 반영했다.대통령실이 TV 수신료 징수 방식을 국민참여토론에 부치자 방송의 공정성 및 경쟁력, 방만 경영 등 문제가 지적됐고 수신료 폐지 의견이 제기됐다. 사실상 세금과 다름 없다는 의견이었다. 국민 기대에 못 미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수신료를 분리 징수하면 상당수 시청자들이 수신료 납부를 거부할 가능성이 높다. KBS의 수익구조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KBS노조가 사장과 이사진의 전원사퇴를 촉구하는 등 파장이 커지고 있다. 편향 방송의 자업자득이다. TV수신료 분리 징수 결정을 보면서 30년 체증이 쑥 내려가는 기분이라는 이들이 적지 않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6-07

스무살 정신으로 돌아가자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일은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갓 스무살 축구선수들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을 향하고 있다. 나라 안 소식은 답답하기 그지없는데, 그들이 보내오는 소식에 가슴이 다 시원하다. 어른들이 나라를 어지럽히고 아이들이 세상을 흔들고 있다. 국내뉴스로 국격이 내려가는데 해외뉴스가 나라체면을 붙들고 있다. 정치와 경제와 외교와 국방에 날마다 낙제점수가 쌓여가는데 스포츠 한 방에 백점 기분이 되어 하루가 즐겁다.이겨놓고도 태도가 놀랍다. 누구 하나 나서는 이가 없고 모두가 서로를 칭찬할 뿐이다. 천금같은 골을 넣고도 잘 올려준 코너킥 덕분이라고 했다. 승리를 따낸 감독은 끊임없이 선수들을 다독이고 선수들은 하염없이 동료들을 챙긴다. 나라야 어찌 되든 내 자리만 지키는 이 나라 정치판과 얼마나 다른가. 국민이 어찌 살든 내 욕심만 채우려는 어른들과 얼마나 다른가. 뻔히 보이는 실수에도 남들만 탓하는 그네들과 참으로 다르다. 어쩌다 좋은 일에는 자기자랑으로 침이 마르는 당신들과 너무나 다르다. 힘들고 어려워도 욕심없이 서로 부추기며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스무살 정신이 부럽고 자랑스럽다. 어디까지 이길 것인지 묻는 기자에게 감독은 바로 앞 경기에 집중할 뿐이라고 했다.스무살 그들이 나라 안 어른들보다 백 배는 멋지다. 이기고도 한없이 소박한 청년에게 배워야 한다. 끝없는 탐욕을 날마다 들키는 나라 안 어른들이 창피할 일이다. 한 경기 한 경기 최선을 다해 달리고 달리는 너희들에게 부끄러울 뿐이다. 정치판 악다구니에 식상한 국민들이 새벽잠과 싸워가며 축구경기에 몰두하는 까닭이 있다. 빈껍데기 약속들과 거짓말 스테레오에 지칠대로 지친 시민들이 젊은이들에게서 희망을 보기 때문이 아닐까. 경기에 집중하여 열심히 달리고 욕심없이 함께 땀흘리는 팀스피리트를 청년들의 축구경기에서 드디어 발견하기 때문이 아닐까.나라는 백마타고 오는 초인이 구하지 못한다. 겸손하고 소박한 보통사람이 힘을 모아 지킬 뿐이다. 어려운 경제도 허장성세 한 방에 풀어지지 않는다. 성실한 국민이 티끌모아 쌓아올릴 때 나아질 터이다. 무엇을 해도 욕망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어른들과는 다르게, 길러온 실력으로 오늘의 최선을 던지는 젊은 선수들이 고맙고 고맙다. 자신이 힘든 만큼 함께 달린 동료들도 힘들다는 걸 인정하고 고개숙일 줄 아는 청년들이 너무나 귀하다.다음 경기에 기대가 높이 걸린다. 이기든 지든 온 힘을 다해 달려줄 선수들에게 높은 기대를 건다. 화려한 정치 술수보다 그네들의 축구실력이 훨씬 정직하고 순수하다. 경기 내내 보여줄 거짓없는 열심과 욕심없는 협력에 힘찬 응원을 보낸다. 내일의 경기에도 혼신의 열정을 다하여 이겨주길 간절히 원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더라도 낙심하지 않을 젊은 기백에 박수를 보낸다. 선수들이 하나가 되어 멋지게 싸워 줄 것으로 기대한다. 쉬운 경기가 없고 쉬운 정치가 없다. 나라를 책임진 당신들도 스무살 정신을 다시 찾았으면 한다.

2023-06-07

낯설고 새로운 곳으로

곧 일본 여행을 떠난다. 이번 여행을 위해서 한동안 잠들기 전에 유튜브 속 일본 여행 영상을 많이 찾아봤다. 도톤보리에서 꼭 먹어봐야 할 초밥집이나 타코야끼집, 우메다의 쇼핑센터나 각종 오사카 관광 스팟을 체크하며 구글 지도를 하트 마크로 점찍어 두는 것이 소소한 즐거움이자 행복이었다.처음 가는 해외 자유여행이라 더욱 설렘으로 가득 차 있다. 늘 여행은 즉흥적으로 떠나는 타입이라 잠은 아무데서나, 먹는 것도 아무거나 먹으며 하루 온종일 정처 없이 걸어 다니곤 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다르다. 얼마나 들떠있는지 여행 일정을 스스로 난생 처음으로 계획해서 모든 일정을 문서로 정리했을 정도다.‘여행’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은 대학 졸업 이후 홀로 자유 기차여행을 떠났을 때다. 당시 만나던 연인과 헤어진 이후 이별의 헛헛함을 달래기 위해 기차에 올랐다. 당시 코레일에서 내일로 티켓을 끊으면 무궁화호에 한해서 기차를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었기에, 수중에 있던 아주 적은 금액의 돈과 배낭만 챙겨 들고선 서둘러 기차에 올랐던 여행이었다.처음으로 향한 곳은 포항이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지역이면서 푸른 바다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좋겠다 싶어 택한 곳이었다. 포항역에서 내리자마자 역에 배치된 관광지 팸플릿을 보았고 별 다른 고민 없이 호미곶으로 목적지를 정했다. 당시 불안으로 휩싸인 적막은 참을 수 없는 고통에 가까웠기에, 재빨리 파도와 갈매기 그리고 밝고 활기찬 관광객의 소란스러운 목소리로 적막을 채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음이 급해져선 간단히 숙소에 들려 배낭을 내려놓고 휴대폰과 카드만 챙긴 채 호미곶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분명 스마트폰이 알려주는 지도대로 따라가 버스 환승을 하려 했지만 어느 작고 외진 마을에 내리고 말았고 환승할 버스는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점점 해는 지고 있었고, 마을은 조용했으며 마을회관조차 인기척을 찾을 수 없어서 계속 초조한 마음이 더해졌었다. 정처 없이 걷던 와중 다행히 나와 비슷한 처지의 관광객을 만나 정신을 차리고 택시를 불러 겨우 호미곶으로 향했던 기억이 난다. 겨우 도착해서 해가 지는 것을 멍하니 앉아 보고 있는데 그때 불현듯 깨닫고 말았다. 이 여행은 아무래도 도망에 가까운 것이구나. 아무리 낯선 곳으로 멀리 도망친다 한들 뜨겁고 눅눅한 후회의 감정은 떨어트릴 수 없는 거로구나, 하며 물거품이 되어버린 모든 것들을 바라만 보았던 여름날의 습한 기억이 잔잔히 남아 있었다.당시의 무력함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하루 온종일 낯선 거리를 걸어 다니며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더 물 수 없도록 몸을 지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렇게 포항 다음은 부산, 그리고 경주 그 다음은 진주를 오가며 낯선 이들을 만나 새로운 주제의 이야기를 나누고 또 헤어지며, 수많은 거리를 정처 없이 쏘다녔었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시큼하게 파랗던 하늘, 묵묵히 우거진 초록과 그늘을 내어주던 커다란 나무들, 깊은 골목에서 묵묵히 머무르고 있는 오래된 집과 사람의 흔적들은 쓸쓸함으로 스스로를 내던지는 와중에 자꾸만 고개를 기울여 바라보게끔 했다. 내가 아름다움을 느끼는 대상들은 이토록 묵묵하고도 견고한데, 나는 왜 작은 이유로 흔들리는 건지 알 수 없었고 아리송한 의문은 더욱 외로운 도피로 느껴지게끔 했다.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레 가라앉는 기억들이, 불현듯 떠오를 때가 있다. 이번 여행을 위한 짐을 싸다 불쑥 그날의 기차 여행이 떠오르고 말았지만 이젠 과거의 기억 위로 새로운 짐을 챙겨 넣을 수 있게 됐다. 시간이 많이 흘렀기도 하고, 사랑과 존중의 깊이를 다시금 헤아리면서 더는 과거 어린 날의 나의 모습에서 씁쓸함을 느끼지도, 필요 이상으로 애틋해 하지도 않기 때문이다.6월의 일본은 덥고 습하므로 얇고 가벼운 옷 위주로 잘 개어 넣고 다음으론 편한 잠옷과 슬리퍼를 담는다. 기초 화장품과 약, 액세서리류는 작은 통에 소분해서 투명 파우치에 챙겨 넣는다. 그렇게 새로운 여행의 기대를 차곡차곡 쌓아 올린다.이번 여행은 과거의 후회로부터 달아나는 것이 아닌, 좋음을 가득 채워 올 여행을 할 것이다. 더없이 소중한 이와 나란히 낯선 길을 걸을 것이고, 그 지역의 유명한 음식을 먹고, 그 나라의 언어를 쓰고, 역사적인 곳도 방문하면서 아름답다고 느끼는 대상을 오랫동안 누리며 가득 담아올 것이다.

2023-06-06

향기로운 봄날의 금강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정지용, ‘향수’)아까시 꽃냄새가 흐르고, 청보리밭이 에메랄드빛으로 반짝이면 충북 옥천 안남면 지수리, 금강 청동여울의 봄이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는 금강의 봄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나는 봄마다 정지용 시인의 ‘향수’가 굽이쳐 흐르는 금강에서 루어 낚시를 즐긴다. 루어 낚시인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길, 금강휴게소에서 라바댐 지나 금강4교, 보청천 합수부 원당교 앞 엘도라도 펜션, 청마교, 합금교, 가덕교 콧구멍다리 또 지나 부연 먼지를 일으키며 비포장길을 달리다 멀리 지수리 취수탑이 보이면 마음의 가속 페달을 더 세게 밟게 된다.언제 와도 고향집 같은 ‘등나무가든’에 짐을 푼다. 민박과 식당을 겸하는 집이다. 주인 어르신 내외가 반갑게 맞아주신다. 낚시에 미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이 집을 찾았는데, 그렇게 드나든 지 벌써 10년쯤 됐다.할아버지 할머니와 여기 함께 살던 손자는 자기가 키우는 햄스터를 내게 자랑하던 초등학생이었는데 어느새 대학생이 돼 타지로 나갔다고 한다.아저씨는 숙원사업이던 마당 연못을 만들어 5짜 쏘가리 두 마리, 4짜 붕어 몇 마리, 잉어, 마자 등등을 넣어두셨다.내가 마당에 주차하고 내리자마자 이것 좀 보라며 얼마나 자랑을 하시는지.아주머니는 대뜸 “더 훌륭해졌네” 하신다. 나는 뭐가 훌륭한지 모르면서, 어떡해야 훌륭해질 수 있는지 모르면서 어떻게든 훌륭해지기로 마음먹는다.낚시 준비를 해서 청마대교 밑 여울로 들어갔다. 쏘가리가 나오면 제일 좋고, 끄리 손맛만 봐도 좋다. 역시나 막무가내 우당탕탕 끄리가 루어에 달려든다.힘이 제대로 붙은 끄리들을 연신 낚아내며 손맛을 즐기고, 잡자마자 사진만 찍고 다시 놓아주는 걸 반복하는데, 저쪽 다리 건너편에 한 백발 어르신이 앉아 낡고 엉성한 낚싯대로 낚시 중이다. 물고기는 못 잡고 강물 위로 흐르는 구름과 바람과 봄볕만 빈 바늘로 건져내고 있다. 그러다 겨우 끄리 한 마리를 잡아내셨다. 하지만 그 한 마리 낚은 게 전부다.한 시간쯤 지났을까, 어르신이 낚싯대를 접더니 겨우 잡은 그 한 마리 맛없는 끄리를, 기생충 감염의 위험을 아는지 모르는지 녹슨 칼로 회 떠 초장 찍어 잡수는 게 아닌가. 나는 미간을 찌푸리다 이내 어르신이 좀 측은했다. 어르신은 내가 팔뚝만 한 끄리 수십 마리를 잡았다가 다시 놔주는 걸 다 봤을 테고, 낡고 망가진 낚싯대와 빈 그물이 꼭 자신의 나이든 처지처럼 여겨져 쓸쓸했을지도 모른다.끄리 몇 마리를 잡아 어르신께로 갔다. 도마에 묻은 핏물과 마구 썰어 뭉개진 회가 비위생적으로 보였지만 괘념치 않았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끄리회 한 점을 정말 맛있게 씹으며 소주를 들고 계신 어르신께 “끄리회 맛있죠. 회 뜨기 좋은 놈으로만 몇 마리 챙겼는데 혼자 먹기엔 많네요.” 큰놈 세 마리를 드리고는 말없이 다시 내 낚시 자리로 왔다. 보리밭에는 초록 바람이 불고, 강물냄새가 머리칼에 배여 마음까지 향기로운 봄날의 금강……오후 다섯 시, 맑은 강물과 해거름이 뒤섞여 금강이 그야말로 금빛 비단처럼 미끄러진다. 낮 동안 잠잠했던 아까시 향기가 노란 송홧가루와 함께 강물에 실려 오는데, 아아 그 달콤하고 아찔한 들숨! 정신을 차릴 수 없다. 나는 석양에 취해 꽃내음에 취해 그리고 여기저기서 퍽퍽 루어를 때리는 끄리의 손맛에 취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황홀하다. 아까시 향기와 노을이 강과 나를 삼킬 때, 그 오감의 충만함에 내 영혼도 삼켜진다.늦은 저녁, 등나무가든 마당 평상 위에 아주머니께서 닭도리탕 술상을 봐두셨다. 이 집은 백숙, 닭도리탕, 민물매운탕 등을 하는데, 아주머니 솜씨가 끝내준다. 매콤한 닭도리탕에 술잔을 비우는 사이 다리 밑을 흐르는 여울 물소리와 풀벌레 소리가 화음을 이룬다.맑고 향기로운 평화가 감도는, “밤하늘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 거리는” 금강 지수리, 세월이 아무리 지난다 한들 이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2023-06-06

“전기 많이 쓰는 기업 경북도로 오세요”

심충택 논설위원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지난해 재선 직후, 민선8기 경북도 준비위원회와 국민의힘 예산정책협의회에서 임기 중에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 도입을 하겠다고 강조했을 때 대부분 반신반의했다. 이 지사는 당시 페이스북 등을 통해서도 “KTX 요금을 거리에 따라 부과하듯이 전기요금도 발전소 거리에 따라 차등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발전소와의 거리를 기준으로 요금을 책정하면 원자력발전소와 거리가 가장 먼 수도권이 전기요금 폭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선진국인 미국, 영국, 호주 등은 이미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를 시행하고 있긴 하지만, 전체 지역구 의석의 절반을 장악하고 있는 수도권 국회의원들이 이를 수용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다들 생각했다.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지난달 25일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의 근거를 담은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분산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이 지사의 요구가 현실화됐다. 특별법 제45조에는 ‘전기 판매사업자는 국가균형발전 등을 위하여 기본 공급약관을 작성할 때에 송전·배전 비용 등을 고려하여 전기요금을 달리 정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법안 공동 발의자는 국민의힘 박수영(부산 남구갑), 민주당 김성환(서울 노원구병)·양이원영(비례대표) 의원이다. 경기도 행정부지사를 역임하며, 수도권 소재 전력소비가 많은 기업을 꿰뚫고 있는 박 의원은 이미 대규모 데이터센터들을 PK(부산경남) 쪽으로 유치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도 현재 전력효율화와 지역균형 발전차원에서 데이터센터의 지방 분산을 유도하고 있다. 수도권에 데이터센터가 몰리는 경우 그만큼 전력 공급을 위한 고압송배전 설비가 필요한 것도 정부로선 부담이기 때문이다.산업통상자원부는 현재 분산법 국회통과의 후속조치로 시행령 및 시행규칙, 고시안 마련에 착수했다. 경북도가 최근 전기료 할인 폭이나 감면 방안 등이 담길 후속조치 마련 과정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대응에 나선 것은 바람직하다. 경북은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원자력 산업의 중심지다. 현재 국내에서 운영 중인 25기의 원자력발전소 가운데 12기(경주 5기·울진 7기)가 경북에 있다. 12기 원전 설비용량은 총 11.4GW에 이른다. 원전부담을 안고 사는 경북 동해안 지역 주민과 기업들에게 저렴한 전기요금 등의 혜택을 주는 것은 당연한 조치다.우동기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장도 밝혔듯이, ‘분산법’의 궁극적인 목적은 지역 균형 발전이다. 현재는 원전이 집중된 영남권 지자체나 원전이 하나도 없는 수도권 지자체의 전기요금이 똑같다. 이로인해 전력소비가 엄청난 분야(데이터센터나 반도체, 2차전지 등)의 기업들도 원가부담 없이 수도권에 공장입지를 정할 수 있는 것이다. 분산법에 의해 전력생산지역과 소비지역의 요금 차이가 많이 날 경우 관련 기업들은 우선적으로 원전주변 산업단지를 물색할 수밖에 없다. 지역별 차등요금제는 국가 전체로는 송전비용 절감을, 발전지역에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기업에는 생산비용 절감을 이끌어내는 일석삼조 효과가 있다.

2023-06-06

NGO 정신

우정구 논설위원 NGO는 비정부기구, 비정부단체 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순수 민간단체다. 영어로 Non-Governmental Organization으로 표기한다. 대개 그 출발점은 1863년 스위스에서 시작한 국제적십자사 운동을 손꼽는다. 국제적십자사는 지금까지도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규모의 인도주의적 구조활동을 벌이고 있는 네트워크 중 하나다.NGO란 용어가 국제사회에 널리 사용된 것은 UN이 주관하는 국제회의에 민간단체들이 본격 참여한 1970년대부터다.NGO는 입법, 사법, 행정, 언론에 이어 제5부(제5권력)라 불린다. 정부와 기업에 대응하는 제3섹터라고도 한다. 정부가 해결하지 못하는 일을 시민사회가 직접 해결하자는 취지에서 등장한 단체여서 시민운동의 중심에 선 단체다. 때론 정부가 추진하기 어려운 분야의 사회문제에 대해서도 직접 나서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수많은 시민단체가 이러한 NGO 정신에 입각해 등장해 경제, 환경 등 각 분야별로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런 시민단체는 어떠한 정치적 영향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해관계가 첨예화되는 현대 사회에서 비정부기구의 영향력이 날로 커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세계 각 나라 안에서 활동하는 비정부기구가 이미 100만개를 넘어선 것은 민간단체의 영향력이 커지는 시대적 흐름을 반영한 결과다.NGO가 건전하게 성장하려면 철저한 자기관리를 통한 청렴이 전제돼야 한다. NGO의 부정 비리는 정부와 기업을 견제할 능력을 상실한 것과 같다는 뜻이다. 정부가 비영리 민간단체의 대규모 부정 비리를 적발했다는 소식은 우리 사회의 건전성이 위험에 빠졌다는 경고다. NGO 정신을 다시 생각할 때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6-06

인공지능 규제와 데이터

김경외 한동대 교수·AI융합교육원 인공지능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심상치 않게 들린다. 한마디로 인공지능을 지금부터 통제하지 않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하는 SF영화와 같은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에 유럽연합(EU)은 생성형 AI가 학습에 이용된 데이터의 출처와 저작권 등의 공개를 의무화하는 인공지능법을 준비하고 있다. 해당 법안은 데이터의 위험도에 따라 인공지능 기술을 금지, 고위험, 제한된 위험, 최소 위험으로 분류하는데, 그 중 금지된 인공지능에 해당될 경우에는 인공지능 기술의 적용을 금지할 수도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를 두고 다른 한편에서는 이러한 규제들이 오히려 인공지능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동시에 나오고 있다.사실 기술 규제는 비단 인공지능만의 이슈가 아니다. 기술에 대한 규제는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끊임없이 논의되어 왔다. 아무리 완벽한 기술이라 할지라도 그 파급효과까지 완벽할 수는 없다. 그래서 기술 규제는 기술이 조금은 제한된 환경에서 보다 올바른 방향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설계된다.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 사회의 인공지능 규제는 어디에 초점을 맞춰 설계되어야 할까? 유럽연합의 사례를 통해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성과 관련된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유럽연합의 인공지능 규제 법안을 간단히 정리해보면 결국 요지는 인공지능 기술 그 자체보다 인공지능을 개발하는데 있어 활용되는 데이터를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인공지능의 활용, 시장에서의 경쟁, 기술 그 자체의 진보에 있어서 데이터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앞으로 인공지능 경쟁은 사실상 데이터 경쟁임을 의미하며, 좋은 양질의 데이터를 보유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또 다른 시사점은 인공지능 시대에서 완전한 지식의 공유는 없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이 보편적 지식 확산에 기여하더라도 여전히 학습한 데이터의 가치에 따라 지식의 불균형이 발생하게 될 것이며 이는 지금보다 더 불평등한 사회적 구조를 초래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앞으로 인공지능 시대에서 우리나라가 다른 선진국과의 경쟁에서 잘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업 뿐만 아니라 여러 구성원들의 노력과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적절한 기술규제의 설계가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앞선 사례들을 통해 파악한 것처럼, 인공지능 규제는 우리나라가 보유한 양질의 데이터를 보호하고 그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하며, 동시에 우리 사회 안의 지식 불균형 혹은 인공지능으로 인한 정보 차별을 방지 또는 완화할 수 있어야 한다. 인공지능 기술규제가 단순히 기술에 대한 규제가 아니라 데이터에 대한 규제인 것을 기억하자.우리가 결국 지금 더 보호해야하는 것은 최첨단의 기술이 아니라 남들이 갖지 못한 우리만의 고유한 데이터일지도 모르겠다. 우리 기업과 젊은 청년들이 인공지능 시대에서 자유롭게 역량을 펼칠 수 있는 그런 인공지능 규제가 마련되길 바란다.

2023-06-06

한흑구 문학의 자취를 찾아서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모처럼의 여유로운 주말, 가벼운 차림으로 버스에 올랐다. 바람을 타고 두둥실 하늘을 떠가는 구름처럼, 버스에 몸을 맡기고 느긋하게 차창으로 어리는 초여름의 풍경 속을 누비니 가뿐하기만 하다. 실로 얼마만의 여유와 쉼표 같은 떠남이던가. 큰길에서 벗어나 군데군데 샛노란 금계국이 반겨 맞는 구불구불한 길을 한참 지나 다다른 곳은 안동시 도산면 원촌리에 위치한 이육사문학관이다.포항의 시인묵객들과 화가, 예인, 가인 등이 안동으로 문학기행을 떠난 것이다. ‘내 고장 칠월은’으로 시작되는 이육사 시인의 ‘청포도’ 시의 배경지가 포항(도구리)이고, 일제강점기 이후 포항에 살면서 주옥같은 수필 명작을 남긴 한흑구 선생의 ‘이육사의 청포도’ 수필 등과의 연관성이 있기에, ‘한흑구 문학, 그 자취를 찾아서’란 명목으로 포항시민과 함께 떠나는 문학기행이 이뤄진 것이다. 이는 곧 2022년 3월에 출범한 한흑구문학기념사업추진위원회의 중요하고도 의미있는 기념사업을 단계적, 실질적으로 추진하는 과정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민족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육사(陸史) 이원록의 삶과 문학작품, 편지 등을 정리, 비치, 조명하고 있는 이육사문학관은 그의 작품과 짧은 생애만큼이나 단출하고 정갈하다. 육사선생의 고향마을 원촌리 북미골 어귀에 자리잡아 시인의 작품을 닮아선지 화려하지 않고 검박하다. 2004년 개관한 이육사문학관은 차분한 회백색톤의 전시관과 생활관, 생가를 옮겨와 복원한 육우당(六友堂), 사색마당, 수경시설 등으로 조성돼 있으며, 2017년 올해의 최우수 문학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또한 독립유공자를 기리는 곳이기에 국가보훈시설로 지정돼 있고 안동시내와의 원거리 등으로 접근성에 다소 불편함이 있지만, 인근에 시비공원과 수필에 등장하는 지명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자취 등으로 고향이라는 테마와 스토리가 많은 문학관이기도 하다.전시관 실내외 곳곳을 둘러본 후 문학관장의 간단한 설명과 함께 문학관 운영에 대한 질의응답을 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대부분의 문학관 건립과 초기운영은 지자체의 몫이다가 민간위탁운영으로 전환하게 되는데, 해를 거듭할수록 예산부족 등 운영난에 시달린다고 한다. 그래서 운영업체 자구책으로 관람객을 유치하기 위한 스토리 체험형 문학테마 발굴이나 청포도 와이너리, 청포도빵 등의 브랜드화로 별도의 수익사업을 창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가칭 ‘한흑구문학관’ 건립, 운영 시 눈여겨볼만한 대목이 아닐까 싶다.구름꽃 피는 하오의 원촌마을을 뒤로 하고 일행은 한흑구문학비가 있는 내연산 계곡으로 향했다. 등산로 초입의 한적한 곳에 자리한 문학비를 둘러보며 한흑구문학비의 건립 내력을 더듬어 보고, 선생의 보경사 앞 회화나무를 소재로 쓴 수필 ‘노목을 우러러보며’를 낭독하기도 했다. ‘1987년에 이곳엘 처음 찾았던 필자로서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외진 곳에서 외롭게 서있는 시비가 아쉽게 여겨졌음은 나만의 기우였을까? 안동과 보경사를 두루 거친 문학기행의 취지와 성과가 올곧게 반영되어 흑구선생의 문학적인 업적이 재조명되기를 사뭇 기대해본다.

2023-06-06

자식을 범죄자로 만들지 마라

김진국 고문 “느그 아부지 머 하시노?”배우 김광규는 이 대사로 떴다. 부산 조폭들을 그린 영화 ‘친구’에서 고교 교사로 나와 이 대사를 날리며 학생들을 구타했다. 옛날에는 학교에서 학생 신상을 탈탈 털었다. 아버지 직업은 물론 말하자면 숟가락 개수까지 조사했다.유오성이 (우리 아버지는) “건달”이라고 대답한 뒤, 선생님의 매질에 발끈해 뛰쳐나가자 김 씨가 당황하는 장면이 나온다. 교복을 입은 학생은 다 똑같았다. 학부모는 달랐다. 직업이 다르고, 재산이 달랐다. 부모를 살피면 학생은 뒷전이 된다.가계도에서 그 사람의 많은 부분을 엿볼 수 있는 건 사실이다. ‘본데없다’라는 말이 큰 욕인 것도 그런 맥락이다. 책보다는 경험으로 배우던 시절 가족과 친구를 보고 그 사람을 판단했다. 그러나 편견이 더 많다. 한 배에 난 동기 간에도 다른 구석이 많다. 부모 직업이라는 안경으로 학생을 보면, 공정하게 평가하기 어렵다.소설 ‘빨치산의 딸’을 쓴 정지아 씨는 같은 반 친구로부터 “느그 아부지가 빨갱이람서?”라는 말을 들은 뒤로 ‘천형(天刑)’처럼 외톨이로 살았다고 한다. 자신은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 부모가 ‘빨갱이’ 노릇한 것을 본 적도 없다. 그런데도 나면서부터 낙인이 찍혔다. 혈통을 무시할 건 아니지만, 개인의 노력이 더 중요하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시절이다.고려와 조선에는 음서(蔭敍)제도가 있었다. 5품 이상 고위 관리 자제는 시험을 보지 않고도 하급 관직을 받을 수 있었다.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고관이면 ‘빽’으로 관직을 얻었다는 말이다. ‘뼈대’가 있다느니, ‘씨’가 훌륭하다느니 하는 말을 한다. 그렇다면 시험을 쳐서 합격하지, 왜 몰래 뒷구멍으로 들어가나.검찰총장 출신인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된 건 ‘공정’이라는 시대정신을 업은 덕분이다. 야당 내에도 정권 교체의 1등 공신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라는 사람이 많다. 조 전 장관이 한 일은 오히려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 무슨 문제냐고 핏대를 올리는 통에 그 부담을 몽땅 민주당이 떠안았다.조 전 장관 말마따나 모두 개천의 용이 될 필요는 없다. ‘가붕개’(가재·붕어·개구리)가 행복한 세상이 좋은 세상이다. 그렇지만 내 자식은 부모 힘으로 용을 만들려고 하면서, ‘너희들은 가붕개로 살아라’라고 하면, 그걸 받아들일 사람이 어디 있겠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결정적 방아쇠도 정유라 씨의 ‘엄마 찬스’다. 정 씨가 페이스북에 “능력이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 돈도 실력이야”라고 올리면서 민심이 폭발했다.자녀 문제는 영원한 약점이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고 한다. 필부야 그 본능을 피하기 어렵다. 그런데 공직을 맡은 사람도 자식 문제에는 눈이 멀어버리는 모양이다. 인사청문회에서 두들겨 맞는 문제 대부분이 자녀 욕심이다. 정권이 뒤집히는 일을 두 번씩이나 겪고도 정신을 못 차렸다. 2022년 교육부가 조사한 결과 대학 교원과 미성년 자녀가 공동 저자로 등재된 논문이 1천33편이나 된다. 새 정부가 발탁한 사람도 줄줄이 ‘아빠 찬스’ 의혹으로 물러났다. 정호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는 자녀 의대 편입, 김인철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자녀 장학금 수령에 발목이 잡혔다. 부모야 자기가 지은 죄니까 책임을 져야 하지만, 자식은 왜 죄인을 만드나.선관위 고위직들이 자녀 채용과 승진에 ‘아빠 찬스’를 썼다는 의심을 받았다. 지난해 김세환 전 사무총장에 이어 박찬진 사무총장과 송봉섭 사무차장이 지난달 말 자녀 채용 부정 의혹으로 퇴진했다. 채용 6개월, 1년 만에 승진도 했다. 사무와 감사를 총괄하는 사람들이 모두 연루됐다. 선관위 자체 조사에서 드러난 의심 사례만 10건이다. 아빠 찬스, 세습 채용이란 말까지 나온다. 외부조사를 하면 얼마나 더 많을지 알 수 없다. 감시받지 않은 조직인 탓이다.어디 선관위뿐이겠나. ‘아빠 찬스’는 이념과 여야, 귀천을 가리지 않는다. 자동차 노조는 고용세습 단체협약 문제로 갈등을 겪었다. 일부가 특혜를 받으면 나머지 사람들은 고용 기회를 박탈당한다.사회 전반을 뒤져 불공정 채용과 승진은 뿌리 뽑아야 한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6-04

정치인들의 탈선과 비리 이미 도를 넘었다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여야 의원들의 탈선(deviant behavior)이 심상치 않다. 여야 가릴 것 없이 의원들의 비리가 드러나고 탈당, 사퇴, 구속되는 사태까지 전개되고 있다.이러한 비리와 비행이 터질 때마다 여야는 상대만을 극렬하게 비판 비난한다. 이들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은 엄청나지만 의원들의 진정한 반성이나 자각은 찾아 볼 수 없다. 흔히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고 했다.그러나 최근 진보를 자처한 민주당의 탈선은 보수정당에 못지않게 빈발하고 있다. 민주당은 이념이나 무늬만 진보이지 비리와 탈선은 보수 정당에 못지않다. 정치권은 비리가 노출될 때마다 부패 척결이나 정치 개혁을 외치지만 의원들의 탈선은 증가하는 추세이다. 이 와중에서도 양대 정당 지지율이 30%대를 유지하니 지극히 한심한 작태이다.최근 민주당의 돈 봉투 관련 스캔들이 정치권을 강타하고 있다. 과거 배고픈 야당 시절에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부패스캔들이 연이어 터지고 있다. 그들이 과거 야당일 때는 진보와 개혁을 외치면서 도덕성면에서는 집권 보수당보다 우월하다는 의식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당시 부패 척결, 약자와의 동행, 사회정의 실현을 당의 슬로건으로 내걸었고 그것이 당시에는 상당히 먹혀 들었다.김대중 대통령 이후 세 번이나 집권한 민주당은 보수 기득권 정당이 될 정도로 변질되었다. 지난 집권당 시절 서울, 부산, 충남지사의 성 스캔들은 성추문 정당으로 낙인 찍혀 지방 선거의 패배로 이어졌다. 지난 송영길 당대표 선출과정의 돈 봉투 배포 의혹은 당의 이미지를 또 다시 추락시켰다. 현금을 돌렸다고 의심받던 두 의원은 탈당하였다. 연이은 김남국 의원의 코인 투자는 그 개인뿐 아니라 당의 위상을 흔들고 있다. 가뜩이나 당대표 사법 리스크로 휘청거리던 판에 의원들의 비리는 당을 더욱 위기로 몰고 있다.집권 정당 국민의 힘에도 탈선과 비행의 전통은 민주당에 못지않다.해방 후 장기 집권 보수당은 부패의 상징으로 낙인찍혀 버렸다. 고인이 된 전직 대통령 전두환과 노태우의 국고 환수액은 각기 2천억 원을 훨씬 넘었다. 전두환은 추징금 922여억 원이 아직 미납 상태다.이회창 당 대표 시절의 차떼기 정당이라는 오명은 아직도 남아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변호사비 대납 등 금전 문제로 구속되었고, 박근혜 대통령 역시 측근비리와 부정으로 탄핵까지 선고받았다. 최근 곽상도 의원은 50억 뇌물 수뢰 혐의는 재판에 계류 중이다. 보훈부 장관 후보자는 겸직 금지된 12건의 변론을 재임 중 수임한 사실이 드러나 있다.최근 경실련조사에서 임대업을 겸직한 국회의원이 수두룩하고 재산증식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늘어났다는 것이다. 전체 의원들의 주식이나 가상자산을 정밀 조사한다면 여당의원 역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이 같은 정치인들의 탈선과 비행은 국민들의 정치 불신의 근원이 된다. 의원들의 이러한 탈선이 정치에 대한 무관심뿐 아니라 정치적 냉소주의로 이어질 수도 있다. 여야 모두 정치인들의 탈선이나 비행을 질타하지만 소나기만 지나면 모두 잠잠해진다.정치인들의 비행과 탈선 바탕에는 거대한 여야의 공존구도가 버티고 있다. 양대 정당은 상호 묵인과 야합이 언제나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실 국회의원들은 특권부여 등 기득권 보장에는 여야가 구분 없이 잘 협조하였다. 국회의원의 세비인상과 연금, 겸직, 특권 부여에는 여야가 협력해 왔기 때문이다.지방의회에도 의원 세비 심의위원회가 조직되어 그들의 세비 인상을 통제하는데 국회에는 그런 장치마저 없는 것이 사실이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의원 정수 조정이나 의원 선출 방식마저 합의하지 못하고 있다. 솔직히 공천이나 기득권 포기하는 의원은 없기 때문이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항상 부패의 온상이 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여야 정치인들의 탈선과 비리는 더욱 지능화되고 증가된다. 이러한 정치인들의 탈선과 비리를 근원적으로 막을 장치는 마련할 수 없을까.우선 국회에 대한 시민들의 견제 장치부터 마련할 필요가 있다. 국회 자율적 정화 장치인 윤리위원회만으로 의원들의 탈선까지 막을 수 없다. 언론의 국회에 대한 감시 비판 기능이 보다 강화되어야 한다. 문제는 언론, 시민 단체, 유권자 단체마저 진영정치로 인해 양쪽으로 갈라져 있다. 공정한 감시나 비판을 원천적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양극화된 한국 정치 구도 하에서 여야 정치인들의 탈선과 비리는 더욱 기승을 부릴 가능성이 높다.내년 총선은 또 다시 다가오고 있다. 이런 정치 문화에서 깨끗한 후보를 선택할 수 있을지 여전히 의문이다. 이런 구도에서는 양식 있는 유권자들의 정치적 무관심은 더욱 증대될 것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그레셤의 법칙이 정치판에서도 예외가 아니라는 점을 새삼 느꼈다.

2023-06-04

한국, 3차산업혁명 문턱서 좌절위기

위현복 (사)한국혁신연구원 이사장 1차 산업혁명은 1760년대 영국에서 일어났다. 이에 비해 미국은 1800년대 후반에 1차 산업혁명이, 1900년대 전반기에 2차 산업혁명이 일어났다.탄소중립의 세계적 구루 제레미 리프킨에 의하면, 경제적 변혁이 발생하려면 기본적으로 3가지 요소에 전반적인 변화가 상호작용해서 일어난다고 한다. 첫째 동력원으로써 에너지, 둘째는 커뮤니케이션 매개체, 셋째는 운송·이동 수단의 변화다. 이들이 상호작용해서 경제적 변화와 혁명을 일으킨다는 것이다.19세기 후반에 1차 산업혁명이 일어난 미국은 유럽보다 100년 늦게 산업혁명이 시작되었다. 20세기에는 저렴한 석유를 바탕으로 한 중앙제어식 전력과 전화, 라디오, TV, 그리고 전국 도로망을 달리는 내연기관 자동차가 상호작용하며 2차 산업혁명을 이끌었다.현재는 3차 산업혁명이 진행 중이다. 3차 산업혁명의 동력원인 에너지는 재생에너지 바탕의 에너지원으로 바뀌고 있으며, 디지털화한 재생에너지 기반의 거대한 컴퓨터 통신망과 재생에너지로 구동되는 전기 및 연료전지, 그리고 디지털화한 운송·물류망이 상호작용해 3차 산업혁명을 이끌어가고 있다. 미국의 1차 산업혁명 때 우리나라는 조선시대 말기로 산업혁명이 뭔지도 모르는 사이에 지나갔다. 2차 산업혁명 시기에는 일제 식민지 치하에 있었다. 해방 후에는 6·25 전쟁이 발발했다. 미국보다 100년 늦은 1960년대에 이르러서야 군사정부에 의해 1차 산업혁명, 70년대와 80년대에 2차 산업혁명이 뒤늦게 일어났다. 그후 21세기 3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산업의 쌀로 불리는 반도체와 각종 디지털 산업, 제조업이 가장 발전된 나라가 된 상태에서 선진국과 동시에 맞았다.그러나 지금 3차 산업혁명 와중에도 대한민국은 없는 것 같다. 아직 전반적인 국민 의식은 1차 산업혁명 시대에 머물러 있고, 정치인과 관료들도 2차 산업혁명 시대에 안주하고 있다. 최첨단 기업들 또한 2차 산업혁명기 ‘제조업 시대’의 유혹에 빠져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 외면하고 있다.3차 산업혁명에 필요한 각종 디지털 기기, 반도체, 전기 배터리, 전기자동차 등을 가장 잘 만드는 나라인데도 의식과 가치관은 과거에 안주하고 있다. 어떤 나라보다도 앞서갈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는데도 아직도 개발도상국 코스프레를 하는 것 같다. 전 세계는 유럽 선진국을 필두로 해서 탄소중립과 에너지 전환을 위해 전력 질주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만 뒤처지고 있다.지난해 독일은 재생에너지 비중이 49%를 넘어섰고, 미국도 30%를 향해가고 있다. 심지어 중국조차 28~29%에 달하고 일본도 25%를 넘어섰다. 반면 우리나라는 7.2%다. 재생에너지 시범지구인 제주도가 재생에너지 18%를 달성했지만, 송배전 선로 부족으로 지난해 103차례 셧다운 사고가 났다.왜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현상이 발생할까. 탄소중립 실천에 국가들이 미적거리자 글로벌기업들이 나서서 RE100(제품생산에 재생에너지 100% 사용) 달성을 주도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정부까지 나서서 CF100(원자력까지 포함해서 탄소중립)을 달성하면 안 되느냐며 글로벌 조류에 어깃장을 놓고 있다. 우리나라의 모든 공산품은 수출과 무역에 연관되어 있는데도 산업현장에서는 공장 지붕에 만이라도 태양광을 설치하자고 해도 “나라가 알아서 해주겠지”라며 딴전을 피운다.쌀이 남아돌자 ‘콩 심으라, 팥 심으라’하면서도 농지 태양광 설비는 법으로 규제해 놓고 ‘땅이 좁아 탄소중립이 불가능하다’는 타령만 하고 있다. 재생에너지는 분산에너지여서 수많은 마이크로 송배전망이 필요한데도 그간 이를 대비하지 못해 제주도는 재생에너지 18%에 셧다운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총체적인 부실 상황인데 우리나라는 탈원전을 폐기하며 재생에너지 확대정책도 함께 폐기해버린 듯하다. 선진국 문턱에서 맥을 놓아버린 모양새다. 탄소중립 정책은 에너지 자립, 에너지 안보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충분히 이 땅에 내리쬐는 햇볕과 바람을 이용해서 에너지 자립을 할 수 있는데도 딴전을 피우고 있다.송배전망을 촘촘하게 하기 위해서는 민간 참여 등 한전 단일 판매망 변화가 필요한데 오히려 한전 국유화를 외치는 이들도 있다. 수백·수천 년간 관리되어온 농촌의 전답을 이용하여 태양광과 풍력 발전을 하면 농촌도 회생하고 국토 균형 발전도 이루고 에너지 자립도 가능한데 땅 없다는 타령만 하고 있다. 더욱 한심한 행위는 마을에서, 도로에서 500m 이격거리를 두어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데 시·군 당국과 시·군 의회가 경쟁적으로 앞장서고 있다는 것이다.대한민국은 3차 산업혁명 요소들이 가장 잘 갖춰져 있는 국가다. 세계에서 휴대폰과 TV, 자동차 배터리를 가장 잘 만드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라는 것을 세계 각국이 잘 알고 있다. 이러한 조건을 가지고 있음에도 정치인과 관료, 기업인들의 의식 부족으로 3차 산업혁명 문턱에서 무너질 위험에 처해있다. 지금 우리는 글로벌 선도국으로 가느냐, 후진국으로 퇴보하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2023-06-04

중고 거래의 딜레마

유영희 작가 옳고 그름을 무 자르듯이 딱 자르기 어려운 경우는 많지만, 절약이나 친환경 같은 이슈는 누구나 공감할 만한 옳음의 범위에 속한다. 제리 스피넬리의 ‘돌격대장 쿠간’은 초등 고학년이 읽을 만한 동화책인데도, 그 안에 담긴 주제는 비폭력, 친환경, 성 평등 등 여러 사회 문제에 대해 옳음이 무엇인지 편안하게 보여주어서 재미있게 읽고 주변에 많이 추천하기도 했다.주인공 존 쿠간은 언제나 새 옷을 입고 고기를 즐겨 먹으며 특유의 적극적 성격으로 학교에서 ‘핵인싸’다. 그런데 전학 온 펜 웹은 중고 옷만 입고 온 가족이 채식주의자인데 남다른 친화력으로 금세 여자아이들한테도 인기 많은 ‘핵인싸’가 된다. 쿠간은 그런 웹을 싫어하지만 웹이 쿠간의 할아버지를 위해 자기가 너무나 아끼는 흙을 기꺼이 내어주자 마음의 문을 열게 되고, 그토록 혐오하던 중고 물건을 사며, 백화점 건립 반대 운동에 참여한다. 이 책에는 소비를 반대하는 메시지가 듬뿍 담겨있다.나 역시 당근마켓이라는 중고 거래 사이트를 자주 이용한다.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당연히 가장 먼저 들어가 보는 곳이기도 하고, 필요한 물건이 없어도 슬그머니 들어가 본다. 작은집으로 이사하면서 많은 물건을 판매한 곳이기도 하다. 새 것을 살만큼 여유가 없기도 하지만, 내 나름대로는 착한 소비를 한다는 자부심도 조금은 있다. 옷만 가지고 보면, 2019년 기준 생산량은 대략 1천300억 개, 이중에 버려지는 옷이 최소 920만 톤 이상이라고 한다. 그 중 일부는 소각되는 과정에서 대기가 오염되고, 소각하지 못한 옷은 쓰레기 산을 이룬다고 하니, 나 한 사람이라도 중고 옷을 이용하면 옷 생산량이 줄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요즘 들어 현실에서는 중고 물품 이용이 정말 옳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겼다. 나처럼 중고 마켓 물건이 싸다고 쉽게 사다가 물건이 쌓이는 사람도 많을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중고 마켓을 믿고 소비를 많이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어느 경제 유튜버의 말을 빌리면, 사람들이 중고 마켓에 내다 팔 생각에 옷이나 물건을 많이 산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중고 물품을 이용하는 것이 친환경적이거나 절약이라고만 하기는 어렵다. 필요한 것도 없는데 괜히 검색하느라 시간 버리는 것도 문제다.중고 물건 이용의 또 다른 문제는, 분명히 자기 물건을 샀는데도 중고 마켓에 팔기 위해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책도 마찬가지다. 새 책을 사도 나중에 팔 생각에 마치 빌린 책처럼 밑줄도 못 긋고 메모도 못한다. 이러다 보니, 내 책인데도 읽기가 불편하고 읽은 것 같지 않다. 중고 거래를 위해 물건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기이한 소비 현상이 벌어지니, 중고 물품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질문하게 된다.옛사람들이 만든 오래된 그릇이나 가구를 보면, 은근한 감동이 밀려온다. 그 정도의 품질은 아니더라도 나만의 물건을 귀하게 여기고 오래 쓰는 것이 환경도 보호하고 삶의 질도 높인다는 오래된 진리를 새삼 깨닫게 된다.

2023-06-04

미래를 향한 삶과 기업혁신

정상철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삶을 살아가면서 내 자신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까.대체로 어렵다고 말하지만 의외로 간단히 알 수 있다. 지금 자신의 생각과 습관을 보면 알 수 있다. 내가 원하는 삶을 꿈과 비전으로 정하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충족 요건을 목표로 설정해서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하면 그 결과만큼 내 미래는 그려진다.‘계획한 만큼 남는다’라는 말이 있다. 계획이 수립되려면 꿈이 있어야 하고 시간 개념이 들어간 꿈과 목표가 설정되어야 하루를 가치 있게 보내는 것이다.이를테면, ‘20년 내 회사에서 기술명장이 되겠다’라고 하면, 기술명장의 요건을 목표로 세우고 매년 계획을 실행하면 20년 내에 꿈이 실현되는 것이다. 기업의 미래 예측은 여러 대내외 변화와 다양한 변수가 있지만 현재에 직면한 경영분석을 통해 바람직한 모습의 밑그림을 그려서 그 실현한 결과가 미래의 모습인 것이다. 스마트팩토리로 성공한 독일의 지맨스도 99%의 생산자동화시스템을 완성했지만 미래를 계획하고 실행하지 않았으면 오늘날 모습은 기대 할 수 없는 것이다. 미래를 향한 혁신은 대체로 4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첫째, 디지털화와 인공지능이다. 기업은 디지털화와 인공지능기술을 채택하여 생산과정을 혁신해야 한다. 센서, 빅데이터, 머신러닝, 자연어 처리 등 기술을 활용하는 것이다. 두번째는 로봇 공학과 자동화이다. 미래는 로봇이 일하고 사람이 행복한 유토피아 세상을 열어간다고 한다. 일은 적게, 쉽게 하고 충분한 휴식과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다. 세번째, 친환경에너지이다. 지구촌 온난화 현상으로 이상 기온과 피해가 커지고 있다. 이산화탄소 저감을 위한 전기, 수소차 등 지구환경을 생각하는 산업이 발전해나가야 한다. 네번째, 혁신적인 조직문화 구축이다. 기업의 습관화는 조직문화의 근간이며 혁신은 조직문화의 일부로 자리 잡아야 한다. 실패를 용납하고 창의성을 마음껏 발휘하게 해야 한다. 미래는 창의성의 싸움이라 할 수 있다. 필자가 지원하고 있는 P사는 스마트 제철소 비전을 갖고 단계적 전략과 목표를 수립하여 로봇자동화를 추진하고 있다. 스마트 제철소가 되면 정비의 기능이 커지며, 최근 협력 정비사는 미래 전문성과 정비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그룹사 격으로 출범한다. 농경시대 손으로 일하던 시절부터 산업혁명을 통해 기계화, 자동화 하며 일하는 방식에 많은 변화를 주었고 오늘날 4차 산업혁명은 지구촌 과학기술 문명이 어떻게 변화하여 우리 앞에 다가올 지 상상하기 어려운 스피드로 진화 발전하고 있다. 이것은 기술의 발전과 함께 인간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 주요 목표가 될 것이다. 인간의 복지와 행복을 중시하는 사회구조, 일과 삶의 균형을 고려한 일자리 형태, 정신 건강과 행복을 위한 프로그램 등이 더욱 중요시 되는 사회가 될 것이다.미래의 혁신은 자율주행자동차처럼 삶의 편리성과 효율성을 추구하고, 기업에서는 지속 가능한 경영과 최적 생산시스템화를 통해 생존 경쟁력을 높여 기업복지는 물론 시민과 함께 인류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 일을 하게 된다. 개인과 기업의 미래는 계획하고 실행한 만큼 그려진다.

2023-06-04

춘앵각

우정구 논설위원 일제 강점기인 1920년대 평양, 개성, 진주 등과 함께 대구도 기생이 많은 도시로 유명했다. 지금의 대구시 중구 종로 일대는 기생들이 자주 나들이하는 장소였고 변두리에 사는 서민들은 기생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 일부러 종로 거리를 찾아나서기도 했다고 한다.당시 기생 세계도 엄격한 규율이 있었다. 고급기생은 붉은색 양산(紅傘)을, 그보다 낮은 기생은 푸른색 양산(靑傘)을 썼다. 푸른색 양산을 쓴 기생이 붉은색 양산을 쓴 기생을 만나면 길을 양보하는 등 깍듯한 예의를 차렸다.어느 기생 열전에 나온 이야기의 한 토막인데, 실제 대구 종로 가구골목 일대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이런 기생을 둔 요정이 50군데나 됐다. 요정(料亭)이란 기생을 두고 술과 요리를 파는 고급 요리집이다. 지금은 사찰로 바뀐 서울의 대원각이나 삼청각은 서울서 유명한 요정이다.춘앵각은 1970년대 대구 대표 요정이다. 옛 만경관극장 인근에 자리한 춘앵각은 당시 대구에서 행세 꽤 한 정, 재계 인사라면 한번쯤은 들른 곳이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전직 대통령도 대구 방문 때면 이곳서 식사를 했다. 정치적으로 많은 에피소드를 간직한 장소다.6·25때 남하한 나순경이 1969년 요정으로 문을 열었고, 온갖 일화를 남기고 2003년 문을 닫았다. 최근 영화관 업체가 춘앵각을 매입하면서 곧 철거될 운명에 처했다는 소식이다.비록 요정이지만 대구 사회의 숱한 일화를 간직한 장소란 점에서 철거에 대해 아쉬워하는 이가 적지 않다. 대구 근대역사 골목길의 한가운데 위치해 있으니 대구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는 의견도 있다. 역사 뒤안길로 사라질 춘앵각이 화제를 뿌리고 있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6-04

어떤 경험

김규종 경북대 교수 개인의 경험과 지식은 그가 지상에 머문 시간의 길이와 비례하지 않는다. 오래 살았다 해서 개인이 도달하는 지적·정신적 성취가 그 시간만큼 깊고 너르지 않다는 얘기다. 오히려 어떤 이는 짧은 생을 열렬하게 불태움으로써 경이로운 높이에 이르기도 한다. 식민지 조선의 시인 소월과 동주, 소설가 김해경과 김유정 같은 사람들이 그러할 것이다.어떤 교수는 100살이 넘도록 살았다지만, 그가 도달하는 지평은 어느 지점에 멈춰버린 것이었다. 그것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개인에게 허여된 사유와 인식의 근저를 근본적으로 혁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익숙하고 평판이 좋으며 어딜 가나 중간 정도 수준에 머무는 대중의 취향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것에 만족하는 인생이기 때문이다.세상은 넓고 고수는 도처(到處)에 있다는 명제를 수용한다면, 우리는 실수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이 먹은 인간들은 종종 이런 명제를 망각한다. 노인을 떠받드는 오랜 전통과 그것을 당연시하는 사회적 풍토가 철부지 노인을 양산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노인을 경시한다고 불만을 터뜨리는 노인도 적잖다. 과연 그런지는 그들만이 알 것이다.논어 ‘계씨 편’에는 공자가 인간을 네 부류로 나누는 흥미로운 구절이 나온다.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사람, 공부해서 아는 사람, 곤경을 당한 끝에 배워서 아는 사람, 곤경을 당해서도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백성 나부랭이들. (生而知之者 上也. 學而知之者 次也. 困而學之 又其次也. 困而不學 民斯爲下矣.)공자는 자신을 공부해서 아는 사람으로 규정한다. 평생 학인을 자처했던 공자가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대단한 자부심이다. ‘불치하문’ 네 글자에는 학문의 정점을 향해 치달려가는 학인 공자의 모습이 온전하게 담겨 있다. 그래서 그가 도달한 기막힌 경지가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것이다. (朝聞道 夕死可矣.)얼마 전에 두피를 콕콕 찌르는 통증이 찾아왔다. 누구에게 물어도 뾰족한 대답은 없었다. 뭐 이런 걸로 병원에 가나, 하고 하루를 넘긴다.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오른쪽 눈썹에 상처가 나 있고, 두피 통증은 사라졌다. 아하, 염증이 눈썹 부위로 터져나가면서 통증도 사라졌네 하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 번째 날 아침에 통증이 불청객처럼 조용히 찾아왔다.통증의학과의 자상한 의사는 대상포진이라고 잘라 말한다. 어이쿠, 이런 일이?! 토요일 오전에 급히 처방을 받고 투약을 시작한다. 그러다가 병원에 입원하여 닷새 만에 퇴원한다. 은퇴를 앞두고 장거리 운전과 강연, 방송과 강의, 논문 발표. 학과 행사 참가 같은 강행군을 한 달 넘도록 이어왔다. 평소에도 하지 않던 일을 몰아서 해치운 것이다.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지는데, 길 서두는 나그네처럼 허둥지둥 살아온 게다. 그것의 결과가 대상포진이었다. 허망한 노릇이다. 하지만 하나 배웠다. 마음과 몸의 나이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뻐꾸기가 보름달 환한 저녁에 구슬피 운다.

2023-06-04

경주 도심 곳곳은 관광객 물결로 넘실

주낙영 경주시장 경주 도심 곳곳과 지역 대표 관광지 등에 관광객과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지난달 대릉원, 불국사, 동궁과 월지 등 3곳을 찾은 관광객 수는 58만7천945명으로 전년 동기(43만5천61명) 대비 35% 증가했다.또 지난 1월부터 정식 집계가 가능한 지난달 황리단길 방문객 143만2천331명을 합치면 총 202만276명으로 5월 경주는 관광객들로 초만원을 이뤘다.지난달 26일 금리단길 ‘불금예찬’ 야시장이 개장하면서 8천명의 인파가 몰려 첫날부터 준비된 먹거리 재료가 소진되는 등 문전성시를 이뤘다.대릉원 무료 개방과 천마총 발굴 50주년을 기념해 ‘2023 경주 대릉원 미디어아트’가 4일까지 한 달 간 운영됐다. 이번 행사는 대릉원에서 출토된 유물의 고고학적 가치를 현시점에서 재고하는 동시에 이를 첨단 ICT와 예술적 가치를 결합한 새로운 시각적 콘텐츠로 연출함으로 관람객들에게 신개념 역사교육의 현장을 제공했다. 무엇보다 대릉원 전체를 미디어아트 영역에서 연출하기 위해 인공적인 구조물을 추가하지 않고 대릉원 고분군의 구조적 특성을 있는 그대로 살리는 방향에서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하고 구성했다.또 미추왕릉 설화를 토대로 제작한 키네틱 그림자 연극, 천마총 내·외부 미디어 파사드, 발굴 유물로 제작한 바닥 조명, 신라의 별자리 라이팅 아트 등 다양한 영역의 미디어 아트는 흥미와 감동을 동시에 선사했다. 또한 구도심 중심 상권인 금리단길에서 열리고 있는 골목야시장 ‘불금예찬’이 원도심 활성화를 견인하고 있다.지난달 26, 27일 이틀간 열린 경주 중심 상권 골목야시장 불금예찬에 약 8천명의 시민과 관광객이 다녀가 성공적인 출발을 알렸다.특히 올해 야시장은 지난해 아쉬웠던 부분들이 대폭 보완됐다. 방문객들이 편하게 앉아 생맥주와 먹거리 등을 먹을 수 있는 공간 외에도 셀러와 판매품목도 다양화했다.또 먹거리와 프리마켓 부스를 대폭을 늘려 가리비치즈구이, 오코노미야끼, 육전, 닭꼬치 등 풍성한 메뉴와 함께 다양한 소품을 판매하고 타로카페도 입점 시켜 색다른 재미를 선보였다.야시장은 10월 28일까지 6개월 동안 열린다. 6월과 9월은 매주 금요일, 8월과 10월은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에 야시장이 열린다. 운영시간은 오후 6시부터 11시까지다.경주 동부사적지 ‘첨성대’ 일원 3만9천584㎡ 규모의 단지에 봄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붉은 양귀비꽃과 노란 금영화가 만개해 관광객들을 눈길을 사롭잡고 있다.만개한 꽃양귀비와 금영화는 지난해 가을 파종 후 생육한 꽃으로 더욱 풍성한 꽃을 자랑하고 있다. 또 라넌큘러스, 루피너스, 마가렛 등이 함께 만개해 다채로운 색을 느낄 수 있다.경주 형산강 금장대와 시내 일원을 희망의 연등 불빛으로 수놓았던 ‘2023 형산강 연등문화축제’가 27일일간 대장정을 마치고 29일 화려한 막을 내렸다.개막식의 하이라이트인 제등행렬은 개막식 무대에서 영마을 삼거리를 지나 봉황대로 이어지는 3.1㎞ 구간으로 취타대를 앞세워 연등을 손에 들고 불빛으로 경주 일원을 가득 채웠다.경주에서만 즐길 수 있는 수준 높은 국악여행도 경주의 새로운 볼거리이다. 공연은 지역 관광명소인 교촌마을, 월정교 광장, 첨성대 광장, 보문호반 광장 등에서 지난 달 20일부터 10월 28일까지 총 20회 펼쳐진다. 지역의 대표 야간관광인 프로그램인 ‘신라달빛기행’도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갔다. 월정교 안내부스에서 백등을 받은 뒤 백등에 손수 그림을 그리고 소원을 적어 나만의 백등을 만든다. 이후 백등을 들고 달빛을 따라 계림과 월성해자, 첨성대를 차례로 둘러보는 일정이다.옛 경주역이 ‘경주문화관 1918’로 탈바꿈하는 등 복합 문화공간으로 변신해 활기를 띠고 있는 가운데 그 중심엔 1918 콘서트가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지난달 20일은 ‘소란’, 이달 10일은 ‘KCM원슈타인’ 등 8월까지 총 5회의 미니 콘서트가 펼쳐져 토요일 경주 밤을 들썩인다.매주 열리는 세계 유일의 고분 콘서트인 ‘봉황대 뮤직스퀘어’ 관광객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경주는 이제 스마트 관광도시조성, 사계절 축제 운영, 보문관광단지 리모델링 등의 관광산업 혁신을 통해 글로컬 관광도시 조성에 더욱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2023-06-04

산들은 눈치채지 못하게 자란다

이희정시인 산들은 눈치채지 못하게 ―자란다.그 자줏빛 모습은시도도, 피로도 없이,도움도, 또한 박수갈채도 없이 일어선다.그 영원한 얼굴 속에서태양은 크나큰 기쁨으로바라본다―오래―오래―금빛에 물들 때까지,밤의 친교를 위해.The Mountains grow Unnoticed,Their purple Figures riseWithout attempt, exhaustion,Assistance or applause.In their eternal facesThe sun ―with broad delightLooks long ―and last ―and golden,For fellowship―at night.―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 강은교 옮김, ‘고독은 잴 수 없는 것’에서 ‘산들은 눈치채지 못하게 자란다(The Mountains grow Unnoticed)’ 전문.1830년은 영문학 시사(詩史)에서 지상의 가장 아름다운 별을 탄생시킨 해이다. 지성과 영원의 시인으로 평가되는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 나는 그녀를 영화 ‘조용한 열정’으로 먼저 만났다. 벨기에와 영국에서 제작된 영화는 실은 영상시집에 가깝다. 롱테이크 화면 가득 디킨슨의 시편으로 흐르는 절제된 대사는 예술의 슬픈 미학을 느리지만 뜨겁게 담아내고 있다.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슬픔을 공부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읽어야 할 시인”이라고 했다. 사랑에 실패한 후 디킨슨은 현실에 대한 문을 완전히 닫았다. 결혼도 물론 거부되었다. 디킨슨의 은둔은 피투성(내던져있음)의 은둔이 아닌 기투성(스스로내던짐)의 은둔이다. “영혼은 선택해서 사귀지, 그리고 닫아버리지” 그녀에게 있어 남성은 성스러운 세계, 끝도 없고 시작도 없는 ‘영원한 세계 속의 우주’로 대체되었다. 디킨슨은 매일 흰옷을 차려입고 6년 동안 일천여 편의 시를 지었다. 그녀가 평생 쓴 작품 수의 반 이상을 넘는 숫자였고, 1862년 한 해에만 366편의 시를 썼다. 그 비극의 기간은 신생 미국의 역사를 결정짓는 한 격동기였던 남북전쟁(1861~1865)의 시기와도 일치한다. 또한 프래그머티즘과 경이적인 과학의 발전이 이루어진 시기이기도 하다. 에밀리 디킨슨의 내부에서도 단단한 과거가 부서지고 위대한 미래가 태어나려는 과도기가 충돌하고 있었다. 그러나 디킨슨은 휩쓸리지 않았다. 새로운 미를 추구했으며, 그 어느 것에도 자기를 예속시키지 않고 독자성을 지켰다. 시인 강은교의 해설처럼 “그의 시는 완전히, 홀로, 어떤 ‘이즘(ism)’의 감염도 없이 순수하게, 그만의 양식으로 순화되었다.”생전에 그녀는 단 7편의 시만 발표했다. 당시 여성은 사회 속에서 기능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대시(dash)와 대문자의 사용, 행과 연의 특이한 구분 등의 디킨슨의 독특한 작법 스타일이 문제시되어 출판은 어려웠다. 하여 그녀의 고결한 시는 산처럼 “눈치채지 못하게 자랐다” 완전히 가려진 채 시인의 고독 속에서 은밀히 창조되었다. 세상을 향한 그 어떤 “시도도, 박수갈채도 없이 일어선다” 사후 69년이 되는 해 평생을 은둔했던 그녀의 방에선 파시클(fasicle, 손제본) 형태의 1800편에 가까운 시가 발견되었다. 그해 비로소 하버드대학 출판부에서 발간되어 세상에 나왔다. 디킨슨의 시는 사랑과 불멸, 자연과 신 등 여러 주제로 분류될 수 있으나, 무엇보다 동양의 죽음에 가까운 ‘고독’과 ‘자연에 대한 이해’는 내면의 깊은 심리를 담고 있다. 시어 “밤의 밀교”는 곧 시적인 순간과의 은밀한 친교를 말한다. 고도로 응축된 이미지로 그려진 ‘고독’은 우주로부터 화해하는 몰입의 순간이다. 그녀의 맑은 영혼은 조용하고도 폭발적인 열정의 시를 낳았다. 유월로 들어선 길은 영원의 깊고도 푸른 생명을 노래한다. 해파랑길 18코스 포항 오도(烏島)리 사방기념공원의 긴 수평선과 신록의 봉우리에 눈이 시리다. 커피향 한 올 피워물고 격자로 난 창가에 앉아 기다림을 키우는 대신 ‘고요’를 키워보기로 한다.“태양은 크나큰 기쁨으로, 바라본다―오래―오래―금빛에 물들 때까지”

2023-06-04

태풍 마와르의 교훈

우정구 논설위원 지난달 23일 남태평양 휴양지 괌을 강타한 태풍 마와르는 20년만에 찾아온 슈퍼 태풍으로 괌섬을 단숨에 지옥처럼 만들어 버렸다. 미 정부는 주민 15만명에 대해 긴급 대피령을 내리고 비상사태를 선포했다.때마침 이곳을 찾은 한국인 관광객 3천여명도 태풍에 갇혀 마실 물과 음식이 모자라 대혼란을 겪었다. 시속 240km 강풍에 자동차가 날아가고 공항 활주로 붕괴 등 각종 시설물이 파괴되면서 괌섬 자체가 난장판이 돼 버린 것이다.엘리뇨 현상은 페루와 칠레 연안에서 일어나는 해수 온난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수년마다 주기적으로 수온이 평소보다 높아지는데, 0.5도 이상 높아진 상태로 5개월 이상 지속되면 엘리뇨가 시작된 것으로 본다.기상학자들은 “현재 발생 중인 엘리뇨가 슈퍼급일 가능성이 높다”고 예견한다.세계기상기구(WMO)도 “5년 안에 인류 역사상 최악의 더위가 올 것”을 경고했다.특히 학자들은 내년이 지구 역사상 가장 뜨거운 해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지금 지구촌은 기상 이변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태국과 베트남, 미얀마 등지는 본격적 여름이 오기도 전에 폭염에 시달리고 있다. 태국 북서부 딱지역은 4월 낮기온이 45.4도를 기록했으며, 방콕과 푸켓 등은 체감온도가 50도를 웃돌아 야외활동 자제령이 내려지기도 했다.폭염과 폭우, 산불, 홍수, 가뭄 등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는 기후 변화는 지구촌의 위기를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 괌섬에서 벌어진 태풍 마와르의 급습이 새삼스런 것은 아니다. 인류가 저질러 놓은 기후 위기에 상응하는 대가일 뿐이다. 우리나라도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6-01

시민단체, 탈 벗나

홍석봉 대구지사장 시민단체의 ‘감별 작업’이 시작됐다. 가뜩이나 보조금과 기부금 전용, 불투명한 회계 처리로 비판받던 터이다. 일부 시민단체의 설립취지를 벗어난 활동이 계기다.‘정의기억연대’가 단초를 제공했다. 회계 집행 투명성 의혹이 제기됐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름으로 받은 후원금과 보조금을 전 이사장이 사적으로 사용했다. 전 광복회 회장은 독립유공자 자녀들에게 써야 할 돈을 옷값 등 개인 용도로 썼다.시민단체의 부도덕성과 불법이 문제가 됐지만 시민단체들은 침묵했다. 단골로 내던 규탄 성명서는 기대할 수도 없었다. 가짜 뉴스로 매도했다. 시민단체의 자질을 의심받았다. 문재인 정권아래서 친 정부 활동에 앞장섰다. 정부 지원금을 받으면서 회비에만 매달리지 않아도 됐다. 쪼들리던 살림은 옛 얘기가 됐다. 무늬만 시민단체였다.국민의힘 ‘시민단체 선진화 특별위원회’가 출범했다. ‘회계 부정, 괴담 유포, 폭력 조장’을 시민사회의 ‘3대 민폐’로 규정하고 뿌리 뽑겠다고 나섰다. 정부 지원금을 받으면서도 무늬만 시민단체인 곳을 골라내 선별 지원하겠다고 했다. ‘비영리 공익 활동’은 허울뿐이고 엉터리 회계, 가짜 뉴스를 생산·유포한 시민단체가 타깃이다. 참다못한 여당이 특별기구라는 메스를 든 것이다.특위는 기존 시민단체의 문제점을 샅샅이 살펴본 후 대안을 모색하겠다는 입장이다. 하태경 특위 위원장은 “시민사회를 탄압하려고 만든 것이 아니라 지원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밝혔다. 사드 전자파와 천성산 도룡뇽 논란 등 환경괴담과 5·18 괴담 단체는 콕 집어 대응하겠다고 했다. 지난 대선때 윤석열 대통령도 ‘시민단체 불법이익 전액 환수’를 공약한 바 있다.시민단체의 일탈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일부 민간단체들은 ‘시민단체’ 간판만 내걸고 정치활동에 주력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정부 고위직 자리에 앉거나 국회의원이 됐다. 어느 새 성공의 지름길이 됐다.암울한 군사정권과 민주화 운동 시기 시민운동은 사회에 등불이었다. 시민운동가의 헌신적인 삶은 사회의 귀감이 됐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권력과 유착한 시민단체는 감시의 ‘주체’에서 감시의 ‘대상’이 됐다.노무현·문재인 정권 시절 시민단체 출신은 중앙부처는 물론 지자체와 공공기관에 중용됐다. 관련 시민단체에는 혈세가 줄줄 흘러들어갔다. 역사의 아픔을 앞세워 개인적인 착복과 출세의 수단으로 삼았다. 국민의 지탄을 받았다. 여성단체 출신 의원은 민주당의 성범죄 앞에 침묵했다. 환경단체 출신 인사는 태양광을 묵인했다. 모두 본분을 잊었다. 불의와 불법에 눈감고, 귀닫았다. 어용 시민단체의 민낯이었다.시민단체인지 민주당 조직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혈세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세금을 축냈다. 이권카르텔 주장이 나왔다. 민주당과 시민단체가 손 잡고 나라를 뒤흔들었다. 여론몰이를 했다. 시민사회를 정치집단화했다.정부 여당이 메스를 들이대자 ‘시민단체 재갈 물리기’라고 주장한다. 내로남불의 전형이다. 시민단체의 본질은 도덕성과 투명성에 있다. 시민단체가 본 모습을 찾길 바란다.

2023-06-01

글로컬대학 30의 꿈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지방대학들의 생존을 위해 정부가 제안한 ‘글로컬대학 30’ 신청이 마감되었다. 지난 3월 지역대학의 세계화를 위해 결성된 ‘글로컬대학위원회’가 공고한 후 대학가에서 초미의 관심사가 된 터였다. 오늘날 저출산, 수도권 집중이라는 현실에 비추어볼 때 지방의 학력 인구가 급감하고 있으니 지방대학을 살려보자는 정책이다. 글로컬(glocal)은 글로벌(global·국제)과 로컬(local·지방)의 합성어로 지역 특성을 살린 세계화, 즉 글로벌 지역주의라는 의미가 있다.현재 전국에는 336개의 대학이 있는데 서울 인천 경기 이외의 지방대는 220개이며, 올해 정시지원자가 한 명도 없는 학과가 전국 26곳으로 이 또한 모두 지방대학이며 비수도권 중 경북이 10개로 최고이고 폐교의 위험도 있다. 정부는 2월 1일 제1차 인재양성전략회의에서 ‘글로컬대학 30 선정 사업’을 제안하고, 지방대학 경쟁력 강화와 지역 균형발전을 이끌어 세계적 대학으로 육성하기 위해 비수도권 30개 대학을 선정하여 5년 동안 대학마다 1천억 원을 지원한다는 것이다.예비지정의 평가 기준은 비전과 목표의 혁신성(60), 자율적 실행의 성과관리(20), 산학협력의 지역적 특성(20)에 대해 5쪽 분량의 ‘혁신기획서’를 제출받는데 대학 안팎의 경계를 허무는 과감한 혁신성을 가장 중요한 모티브로 선정했다. 먼저 15개 대학을 선정하고 9월 말에 최종 10개 대학을 지정하면 지자체도 재정지원금을 줄 것으로 기대되어 생존의 문제라는 생각으로 많은 대학이 통합과 교류협력을 주 과제로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 경북도는 33개 대학 중 16개 대학(일반대 13, 전문대 3)이 공모에 신청한 것으로 밝혔는데 포항공대의 실리콘밸리 육성, 한동대의 ESG, 경주대-서라벌대의 문화관광 등이 혁신안으로 선정되어 지방 소멸의 방패가 되었으면 한다.우리나라는 1970년대 산업화와 더불어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대학 교육이 빠르게 확대되어왔었다. 1965년에는 70개 대학이었지만 1995년 대학설립준칙주의와 정원 자율화 등으로 우후죽순처럼 생겨 2000년대 초반에 150개가 넘고 이후 400여 개 가까이 되었으나 근래 폐교 등으로 감소하는 추세이다. 90년대 후반 입시홍보 활동을 하면서 많은 대학의 신설이 걱정되어 출생아 수를 알아봤더니 1960년 100만 명을 넘어 10여 년 가까이 유지되다가 60만 명으로 떨어졌고 2000년경에는 다시 50만 이하로 줄었기에 이 아이들이 대학에 진학하는 2020년쯤에는 입학정원 1천 명인 대학이 100개쯤 사라질까 걱정했던 것이 현실이 되어 가는 듯하다.대학의 통폐합과 연합 등으로 인재양성의 전략을 마련하고 있지만, 부산과 충남에서는 대학생들의 반발로 갈등을 겪고 있다. 유연한 학제 운영으로 대학과 지역, 또 산업과의 벽을 허물고 담대한 혁신으로 지역의 산업, 사회 연계, 특화 분야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고 혁신을 시도하는 대학, 즉 ‘글로컬대학 30’에 선정되어 지역 균형발전의 허브가 되길 바란다.‘말은 나면 제주로, 사람은 서울로’라는 옛말이 어색해지도록 지방대학이 인재양성의 요람이 되길 빌어본다.

2023-06-01

국회의원 특권폐지 국민운동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이 누리는 특권(特權)은 무려 180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보통사람들에게는 하나도 없는 특별한 권리가 국회의원들에게는 그렇게나 많이 필요한 까닭이 뭔가. 하물며 그 많은 특권은 누가 준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든, 소위 ‘셀프특권’이라는 것에 어이가 없고 배신감마저 든다. 여야가 헐뜯고 싸우다가도 그 셀프특권을 위해서는 의기투합 한다니 가관이 아닐 수 없다.국회의원들에게 주어지는 금전적 특혜만도 다 헤아리기에 숨이 찰 정도다. 1억5천500만 원 정도의 연봉을 비롯해서 연간 입법 활동비로 약 1억200만 원이 지원되는데다 차량 유류비 월 110만 원, 차량유지비 월 35만8천 원, 출장비 연 400만 원, 의원실 보좌직원 업무용 교통비 연 100만 원, 야근식대 연 770만여 원, 현지 출장비 연 91만여 원, 사무실 운영비 연 348만여 원, 소모품 519만여 원, 정책개발비 2천500여만 원, 정책홍보물비 연 1천200만여 원, 문자메시지 및 자료 발송료 1천230여만 원, 명절휴가비 800여만 원 등이다.지난 4월 16일에 발족한 ‘특권폐지운동본부’는 국회의원 전원에게 ‘특권폐지 질의서’를 발송하고 동의 여부를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질의서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1, 국회의원의 연봉이 1억5천500만 원인데, 이것을 도시근로자 평균임금(월 400만 원 정도)으로 하고, 의정활동에 필요한 경비는 국회사무처에 신청해서 사용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는가?2. ‘의원실 지원경비’라는 명목으로 정책개발비, 수당 등 다양한 이름의 의정활동 지원비가 1년에 1억200만 원인데, 이를 모두 폐지하고 입법활동 및 기타 의정활동에 필요한 경비는 필요시 국회사무처에 신청해서 사용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데 동의하는가?3. 보좌진이 7명인데(인턴 2명 추가 채용가), 이들은 의정활동을 보좌하기보다 개인적인 비서 역할을 하는 경우가 더 많고, 보좌진의 상당수는 사실상 지역구에서 국회의원의 재선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선거기간에는 보좌진의 거의 전부가 선거사무원으로 등록도 하지 않은 채 선거운동을 하는데, 이것은 명백한 불법 선거운동이다. 보좌진도 국가에서 봉급을 주는 공무원이어서 선거운동을 하는 자체가 불법이다. 의정활동에 필요한 사항은 국회 입법조사처나 예산정책처의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보좌진을 3명으로 줄이는 것이 옳다고 보는데, 동의하는가?4. 국회의원 선거가 있는 해에만 후원금을 1억5천만 원까지 받을 수 있게 하고 그 밖의 후원금은 받을 수 없게 하며, 선거비용 환급은 없애야 한다는 데 동의하는가?5. 국회의원에게 헌법상 부여된 불체포특권과 면책특권은 오늘날 시대착오적인 규정일 뿐이므로 폐지해야 한다고 보는데 동의하는가?이 질의서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반응과 태도가 바로 대한민국 국회의 현주소일 터이다. 아무튼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나서서 정상배를 위한 정치를 끝장내고, 국민을 위한 정치를 이뤄야 할 때”라는 특권폐지운동본부 장기표 상임대표의 말이 공허한 메아리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2023-06-01

‘아빠찬스’

홍석봉 대구지사장 아빠찬스란 자녀가 아버지의 명망과 인맥, 부, 권력 등 사회적 배경을 활용, 입학과 취업 등에 이득을 누리는 것을 말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고위 간부들이 자녀 특혜 채용 사실이 밝혀져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의심 사례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급기야 선관위원장이 사과하고 전수조사, 대책을 내놓겠다고 발표했으나 여론의 불만은 쉽게 숙지지 않고 있다. 여당쪽에서 선관위원장 책임론과 사퇴까지 거론하는 마당이다. 헌법상 독립기구인 선관위의 신뢰성과 윤리성을 크게 훼손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선관위의 공직기강이 무너진 탓이 크다.조국 사태때도 아빠찬스가 논란이 됐었다. 교육의 공정성을 무너뜨린 일로 비난받았다. 20, 30대 젊은 층은 심한 상실감과 자괴감에 빠져야 했었다. 우리사회의 불공정의 대표적 사례가 된 아빠찬스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심심찮게 터져 나온다.고려와 조선 시대때도 이와 비슷한 제도가 있었다. 나라에 공을 세운 신하나 지위가 높은 관리의 자손을 과거를 치르지 않고 관리로 채용하던 음서제도(蔭敍制度)다. 아빠찬스는 현대판 음서제라고도 불린다. 아빠찬스는 선관위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해치는 엄중한 사례로 지적되고 있다.선관위의 아빠찬스는 공정한 채용과 승진 질서를 해치고, 선관위의 권력과 책임을 남용한 것이다. 선거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보장하는 선관위의 역할과도 상충된다. 국민의 신뢰를 잃게 한다. 국민의 권리와 이익에도 영향을 미친다.사정기관에 의한 수사와 조직개혁이 필요해 보인다. 감사원 등의 외부 통제도 있어야 할 것이다. ‘개천 용’은 불가능한 시대가 됐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특권층의 도덕 불감증이 심각하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5-31

교육, 기본으로 돌아가라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경제가 어렵고 외교가 복잡하다. 안보가 위태롭고 사회도 불안하다. 온 관심과 신경이 대통령실과 국회에 쏠리다 보니 상대적으로 도외시되는 가닥이 있다. 그런 중에 절대로 소홀히 할 수 없는 분야가 ‘교육’이다. 생각을 놓고 있으면 퇴보한다.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 끊임없이 고심하고 지혜를 모아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교육이다. 겉으로 중요해 보이는 사회적 관심분야들이 즐비하지만, 가장 먼저 살펴야 하는 가닥이 교육이다.미국교육의 개혁을 이끌었던 다이앤래비치(Diane Ravitch), 위대한 미국교육을 한 단계 올리기 위해 새로운 발상을 여럿 제시하였다. 시장의 논리를 교육에 도입하였고 학교들을 평가하여 선택적으로 줄을 세웠다. 경쟁과 시험을 적극 강조하여 잘하는 학교들을 밀어주었다. 경제논리를 적용하면 미국교육이 살아날 것으로 기대하였다. 수년간의 시도 끝에 그는 교육이 오히려 뒤로 물러나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교육개혁이 추진될수록 공교육의 질은 퇴보하고 처음 목표에서 벗어나 정반대의 상황이 전개되었다. 기대를 저버린 결과에 실망하였지만, 교육에 관하여 중요한 진실을 깨달았다.사람을 길러야 하는 교육을 시장논리로 접근하면 오히려 다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우리의 교육개혁을 위한 실험은 실패하였다. 경제적 선택과 집중을 강조하기보다, 오히려 학교에 진정한 교육적 요소를 불어넣으며 진정한 가르침과 배움을 가능하게 할 여건을 회복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고백하였다. ‘대한민국의 선한 양심’으로 알려진 손봉호 교수는‘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 공부하도록 이끄는 일과 기본적 도덕성을 길러주는 일’이라고 하였다. 혼자서도 배우며 세상을 헤쳐나갈 힘과 누가 보지않아도 양심을 지키며 살아가는 용기를 길러주는 것보다 필요한 게 있을까.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특히 교육은 기본을 지켜야 한다. 교육부는 수년 내에 지방대학들 가운데 30개 대학을 선별하여 글로컬대학으로 키운다고 한다. 그야말로 선택과 집중을 교육에 적용하고 시장의 논리를 교육에 도입하여 대학들을 줄세우고 탈락하는 대학들이 쏟아져 나올 모양이다. 선발되지 못할 수많은 지방대학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경쟁과 시험, 선발과 탈락의 굴레에만 머무르는 교육의 모습은 처연하다. 학교의 운명이 그저 돈만 바라보게 된다면, 이미 교육의 본질에서 멀어진 게 아닐까. 교육은 국민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보편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서열을 짓고 특권층을 만들며 차별이 생기는 교육은 지양해야 한다.세월도 변하였다. 그간 교육의 주제어가 추격과 경쟁이었다면 이제 세상은 상생과 협력을 요청하고 있다. 상상과 창의로 가득한 다음세대를 길러내려면 오늘 우리의 교육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져야 한다. 교육개혁에 실패했던 미국으로부터 배워야 한다. 교육에 평생을 바친 노교수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경제로 교육을 어찌해 보려는 시각을 거두어야 하고, 나라의 교육은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교육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2023-05-31

책이음카드

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연구실에 들어오는 학생들이 모두 놀란다. 문과 창문을 제외하고 삼면을 꽉 채워 천장까지 쌓인 책들을 보고는 꼭 한마디씩 한다. 교수님은 이 책들 다 읽으셨어요? 워낙 자주 받는 질문인지라 대답은 한결같다. “당연히 다 읽은 것 아니다. 수도 없이 여러 번 읽은 책도 있고, 단 한 줄만 읽은 책도 있고 안 읽은 책도 많다. 논문 쓰기 위해 필요한 책은 반드시 사야 해서 갖고 있는 책도 많고 앞으로 읽을 필요가 있어서 사 둔 책도 있다. 저 위 자료집은 대부분 안 읽은 것들이지.”게다가 해마다 2~4회까지 발행되는 몇 권의 학술지며 정기간행물들이 25년이나 보태어졌으니 오죽하랴. 그래도 책에 둘러싸여 지낸 시간은 행복했었다. 은퇴를 몇 달 앞두고 책들을 정리했다. 논문 쓸 일 없으니 학술지와 정기간행물을 다 버렸다. 최근에는 학술지가 PDF로도 제공되기도 때문에 더 이상 필요없기도 했다. 그렇게 많이 버렸음에도 책은 1톤 트럭 두 대를 가득 채웠다. 어딘가 둘 곳을 찾아야만 했다. 소중한 나의 책들은 의성의 작은 마을도서관에 임시보관해 두기로 했다.이미 집엔 두 방도 넘쳐 베란다까지 점령한 책들이 있었다. 대학도서관에 8천 권의 책을 기증하고 남은 책들이었다. 2년 전 남편의 연구실을 비운 책들은 따로 서재를 마련할 정도로 우리집엔 책이 많고 많았기 때문에 내 책까지 비집고 들어올 데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책을 다 함께 모을 수 있는 공간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 계획을 이룰 수 있을 때까지 난 더 이상의 책은 사지 않기로 결심했다.그래도 읽고 싶은 책, 예전 종이신문을 볼 때 주말섹션에 소개되는 신간을 사던 버릇은 여전해서 인터넷으로 종종 소개되는 책의 유혹들이 있었다. 사지 않고도 읽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공공도서관. 집 가까운 시립도서관을 검색해서 찾아가 바로 발급받은 게 책이음카드였다. 내가 사는 수성구 내에 10곳의 도서관이 있는데 이 모두를 이용할 수 있고, 전국 공공도서관을 모두 이용할 수 있는 카드다. 1인당 도서관별로 10권, 최대 30권을 15일간, 나같은 65세 이상 노인은 30일을 대여할 수 있는 고마운 제도다. 카드 만든 김에 도서관 서가에 꽂힌 책들을 둘러보고, 평소 읽고 싶었던 책을 세 권 빌렸다. 빌려 온 책을 열심히 읽다 보면 반납 기일을 통보하는 문자가 온다. 날짜 어김없이 반납하게 되는 친절한 정보다.지난해 가을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되자 평소 친하게 지내던 교수와 독일의 외사촌과 그의 작품 얘기를 하게 되었다. 나는 몰랐던 작가와 수상작들이었다. 시립도서관에 검색해봤더니 어떤 책은 있고 어떤 건 없다. 있는 책은 대출 중이었다. 대출대기자 명단에 올렸더니 며칠 뒤에 대출 가능하다는 문자가 왔다. 어디 그 뿐이랴…. 도서관에 없는 책은 희망도서로 신청해 두면 며칠 뒤 책이 확보되었으니 대출 가능하다는 문자가 또 온다. 친절하고 신속하고 멋진 정보화의 시대를 고마워하며 노후의 즐거운 독서생활을 하고 있다. 책이음카드를 모바일로 등록해 두면 더 편리하다.

2023-05-31

우리아이 건강관리와 성장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자식을 낳아 키우면 그로 인한 기쁨과 즐거움도 있지만 아플 때는 걱정이 되고 마음이 아프다. 밥을 잘먹지 않아도 걱정이고 또래보다 작아도 걱정이다. 감기나 수족구 장염 등 한번씩 전염력이 높은 병이 돌 때마다 다 걸려서 고생 하는 거 보면 차라리 내가 아플 수 있으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다.키는 유전자에 정해져 있다. 많은 연구가 키는 정해져 있으며 유전자에 정해진 이상은 키울 수 없다고 한다. 어릴 때 헤어져 따로 큰 쌍둥이들을 추적 관찰해서 나온 결론이다. 따라서 애초에 아무리 잘 먹고 건강해도 일찍 클 순 있어도 더 클 순 없다. 아이가 작다고 너무 걱정하는 것도 지나친 걱정인 것이다. 따라서 호르몬 주사든 건강식품이든 정해져 있는 이상의 키는 더 키울 수 없다.그러나 영양공급이 충분하지 않으면 덜 클 순 있다. 가장 쉽게 알 수 있는 게 북한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북한의 평균키는 남자 165cm, 여자 154cm이다. 같은 한민족이지만 잘 먹지 못해 오랜 시간 영양 실조를 앓은 북한 사람들은 한국 사람보다 평균키가 10cm 정도 작다. 한국 남성은 174cm, 여자는 161cm가 평균키다. 탈북민들 유튜브를 보면 북한에선 키가 작았는데 대한민국에 정착 후 고른 영양소 공급으로 키가 많이 커졌다는 소리를 한다. 즉 영양공급에 오랜 시간 제한 되면 키가 덜 클 수도 있다.한의원에서 볼 수 있는 어린이들 건강관리와 성장은 이 쪽에 집중된다. 아이들의 건강과 성장은 같이 간다. 건강하면 성장이 잘 되고 또 성장으로 건강 여부를 알 수 있다. 한의원에선 면역력을 증강시키고 위장과 배를 튼튼하게 해주는 처방을 많이 사용한다. 밥을 잘 먹게 해주는 것과 한약으로 영양의 불균형을 되찾아 주는 것이다. 밥을 잘먹고 잘 놀면 자기가 타고난 건강과 키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운동을 하면 밥맛이 좋아지는 걸 누구나 안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밖에서 뛰어 놀기엔 안전하지 않고 놀 시간이 없는 아이들도 있다. 이럴 때 좋은 것이 태권도다. 요즘은 태권도 뿐만 아니라 줄넘기 피구 등 다양한 운동을 배워 올 수 있고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을 만나 사회적 정서적으로도 도움된다.간혹 보면 아이를 위해 좋은 것만 먹인다고 직접 한 것만 해 먹이는 엄마들이 많다. 만약 아이가 햄버거나 피자 통닭은 잘먹는데 엄마가 해주는 건 잘 안먹는다고 하는 경우가 있다면 어머니한테 이렇게 말씀드린다. 아직은 아이한테 엄마의 음식이 입에 맞지 않으니 아이가 원하는걸 해주라고 말한다. 너무 아이를 위해도 오히려 아이는 적게 먹고 다른 또래 보다 영양이 부족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너무 건강식만 챙기다가 정작 중요한 밥을 안먹는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다. 아이와 어른은 다르다. 어른이야 건강을 위해서 맛이 없어도 먹지만 아이들은 먹지 않는다. 이게 오래되면 위장이 작아지고 더 먹지 않게 된다. 밥을 맛있게 해주고 가끔씩 햄버거 피자 치킨 등 원하는 것도 사줘 많이 먹게 하는 것이 아이들 건강과 성장에 더 도움이 된다.무엇이 아이를 진정 위한 길인지 생각해 아이의 건강을 부모가 관리하자.

2023-05-31

봄비 내리던 날에

윤명희 수필가 새벽부터 내린 비가 종일 갈 것 같다. 주말에 겹벚꽃 보러 우리 동네에 온다고 했는데 비에 다 떨어져 버리면 어쩌나. 연거푸 터져 나오는 기침을 팔뚝으로 막는다. 까똑 소리에 폰을 확인하니 꽃 볼 생각에 벌써 마음이 들뜬다는 영숙씨가 톡에 음악을 올렸다. 클릭하자 바이올린에 실린 이문세의 목소리가 빗속에 스며든다. 기침이 음악을 덮친다.지난 주말에 딸네에 갔다. 기껏해야 일 년에 두어 번 가는 길이 기차의 연착으로 더 멀었다. 이제 괜찮아졌다고 하더니 온 집안이 아직도 감기 중이었다. 오전에 수액까지 맞았다는 딸은 목안이 부어 반가움조차 손짓으로 했다. 손자들의 기침 소리만이 온 집안을 콩콩 뛰어다니고, 먼저 기운을 차렸다는 사위가 저녁준비를 하고 있다. 며칠 손이 가지 않은 욕실에는 머리카락이 흩어져 있고 싱크대에는 음식물 쓰레기봉투가 비스듬히 벽을 기대고 있다.나는 모과차를 끓여 널브러진 딸에게 건넸다. 뜨거움이 목을 적시자 기침이 잠시 멈추는 것 같더니 다시 쇠 긁는 소리를 냈다. 잠시나마 편히 쉬게 방문을 닫아주었다. 열기가 다 식은 건조기에서 마른빨래를 꺼내 갰다. 도시의 공기가 매캐하다. 방과 거실에 있는 공기청정기를 분해해 씻고 청소기를 돌렸다. 손자는 내 꽁무니에 붙어 서서 아주 옛날에는 다섯 살이었는데 이제 여섯 살이 되었다고 자랑한다. 내 입은 웃는데 눈은 자꾸만 딸의 방에 들어갔다.“서울 가니 딸이 감기 중이더라고. 나는 그걸 또 좋다고 가져왔네.”한동안 꼼짝없이 아파야 할 것 같다는 말을 에둘러 단체 톡에 툭 던졌다. 폐를 쥐어짜며 나오는 기침이 목을 할퀸다. 내가 아픈데 겹벚꽃이 뭔 대수라고.“그게 진정한 딸바보. 지금 우리 가족 전체도 일주일째 감기로 엄청 힘든데 나만 멀쩡, 코로나 때도 그랬고. 아빤 늘 말로만 딸바보지? 이땐 뭐라 해야 할까요? ”P선생님이 내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나를 딸바보로 만든다. 나는 자식 바보와는 거리가 멀다. 밥벌이에 매여, 대학입학과 동시에 타지로 떨어져 나간 딸에게 반찬 한 번 보내지 못했다. 멀리 있다는 이유로 직장생활의 고단함도 결혼 준비도 딸이 알아서 해야 했다. 아들 연년생을 낳아 힘들어할 때 친정엄마라는 체면치레를 위해 겨우 시간을 냈을 뿐이다.음악을 올린 영숙씨의 답 톡이 올라온다.“아빤 늘 말로만 딸바보지? 저도 우리 아빠한테 이런 말 한 적이 있는데~ 깜놀~ 그때마다 우리 아빠는 방금 우리 딸내미 뭐 하는지 생각했는데 라고 하셨어요.”톡 방이 한참 조용하더니 다시 그녀의 얘기가 뜬다.“에고고~ 딸바보 이야기하시는 통에 아빠 생각이 나서 찔끔찔끔 울다가 통곡합니다. 아침에 할 일도 많은데 눈물이 멈추질 않네요. 이런…. 그래서 적당한 게 좋은 듯요. 저도 우리 딸이 너무 예쁜데 나중에 저 없으면 마음 아플까 봐 혼자만 좋아하고 적당히 하고 무심한 듯 넘어가네요. 딸은 섭섭하겠지만.”그녀가 지금 비와 함께 울고 있다. 다른 이들의 눈물 이모티콘이 여기저기 올라오고, 저마다의 부모 얘기가 한마디씩 뜬다. 가슴을 푹 찌른다. 나는 다시 음악을 클릭한다. 조금 전에 듣던 것과는 음색이 다르다. 물 먹은 이문세의 목소리가 눈을 찌른다.“한없이 사랑하고 그래서 한없이 그리워하고, 또 펑펑 울고. 모든 게 다 아름답습니다. 그냥 마음이 시키는 대로 다 표현하며 삽시다. 나중은 또 그 때 가서 감당이 되겠지요.역시 어른이신 P선생님이 달랜다. 음악은 흐르고 우리는 말이 없다.딸에게 전화가 왔다. 잠긴 내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다.“엄마가 내꺼 가지고 갔구나, 그래서 내가 괜찮아졌나보네”그래, 내가 그거라도 해 줄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이니. 잠시, 나도 딸바보가 되는 순간이다. 기침이 딸에게 다시 갈까봐 얼른 폰을 끈다. 톡 방은 눈물 이모티콘 사이로 비가 내려 고요하다. 겹벚꽃이 떨어져도 괜찮겠다. 꽃은 벌써 우리들 마음에 앉았으니.

2023-05-31

계묘(癸卯)

2023년은 육십갑자 중 마흔 번째에 해당하는 계묘(癸卯)다. 천간(天干)은 계수(癸水)로, 비 또는 시냇물이다. 지지(地支) 묘목(卯木)은 어린 나무이고, 계절로는 음력 2월이다. 동물로는 검은 토끼다.계묘일주(癸卯日柱)는 천간과 지지가 음(陰)이다. 연약한 모습으로 어린아이 같이 순수하다. 남성적인 면모가 부족하여 자신감, 독립심, 투쟁심이 약하며 소심하고 겁이 많다. 자신의 신념에 애착이 강하여 특정 부분에 고집이나 자부심이 강하다. 무시나 간섭을 받으면 잘 삐치지만 오래가지는 않는다. 계묘일주의 계수(癸水)는 봄비를 말하고, 묘목(卯木)은 봄의 계절에 어린나무다. 봄비를 맞으며 자라는 작은 나무나 화초의 모습이다. 계묘(癸卯) 글자 모양은 빗물이 흘러내리는 모습이며, 화초의 모습처럼 날씬하여 미남과 미녀가 많고 살찐 사람은 드물다. 물속에서 핀 연꽃같이 기품이 있고, 도도한 외모와 말솜씨가 뛰어나다.일지(日支) 묘목은 도화(桃花)와 천을귀인이 있어 자기 자신을 잘 가꾸고 뽐내며, 나르시시즘과 같은 모습을 보인다. 문창귀인(文昌貴人)도 있어 학문적인 습득이 좋으며, 지식을 표현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예술분야와도 잘 맞아 전문성이 있는 창작과 기획에 재능이 있다. 계묘는 배우자 자리에 천을귀인이 있어 배우자 복이 많다. 비를 맞고 있는 어린 화초의 물상으로 남녀 모두 예쁘고 잘생겼다. 이성에게 인기가 좋아 이성문제로 장애가 생길 수 있다. 그와 같은 사례로 사마상여와 탁문군의 로맨스가 있다.사마상여(기원전 179∼117)는 중국 한나라 때 문장가다. 준수한 외모는 물론 시와 거문고에 능했다. 그는 고을의 부자 탁왕손의 잔치에 초대받았다. 17세의 나이에 과부가 되어 집에 돌아와 있는 탁왕손의 딸 탁문군이 그의 거문고 타는 모습에 반한다. 눈이 맞은 두 사람은 그날 밤 야반도주를 한다.어이없는 애정의 도피행각에 화가 난 탁왕손은 단 한 푼도 줄 수 없다며 딸을 멀리했다. 집이라고 해봐야 ‘네 벽밖에 없던’ 가난한 처지의 사마상여인지라 탁문군은 말과 수레 따위를 처분해 술장사를 시작했다. 그 당시 시대상황에서는 참으로 어려운 결정이었다. 그 뒤 탁왕손은 집안사람들의 설득으로 딸에게 재산을 주었고, 두 사람은 고생을 멀리하고 부유한 삶을 누릴 수 있었다. 이 무렵 ‘자허부’에 매료된 한 무제가 사마상여를 불러들여 마침내 자신의 문장으로 벼슬을 얻게 되었다.무제의 발탁으로 형편이 나아지자 사마상여가 첩을 들인다는 소문을 듣고 탁문군은 ‘백두음’을 지어 보내 남편의 마음을 되돌렸다. 누군가 사마상여가 뇌물을 받았다고 밀고하자 그는 벼슬에서 과감히 물러났다. 병을 핑계로 나라 일에는 관여치 않고 한가롭게 지냈다. 벼슬에 목매지 않았고, 아내가 과부라는 사실에도 개의치 않았으며, 술장사도 마다하지 않았다. 술도 나르고 술잔도 기꺼이 닦았다. 아내 탁문군은 글재주가 뛰어났기도 했지만, 격식이나 제도에 구애됨이 없는 자유분방한 성격과 자립정신을 가졌다. 이천년 전의 여성으로서는 대단한 지성과 미모를 갖춘 여성이었다. 가도벽립(家徒壁立·집안에 세간은 하나도 없고, 사면에 벽만 둘러 있어 매우 가난하다는 말)은 사마상여와 탁문군의 이야기에 나온 고사성어다.계묘일주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귀인의 도움으로 위기를 극복한다. 유쾌하고 매력적이며 성격이 밝고 순수하나 적극성이 부족하다. 이 때문에 빈곤하지는 않지만 큰돈을 벌기는 힘이 든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속이려 하지 않고 남을 돕거나 베푸는 심성 덕분에 주변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게 되고 좋은 평가를 받게 되는 경우가 많다. 19세기 후기인상주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와 동생 테오의 이야기다. 고흐와 테오 형제는 목사인 아버지를 둔 신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다. 고흐는 원래 신학자가 되고 싶었다. 그는 병약하며 가난하고 고생하는 자를 위해 사역하기를 꿈꿨다. 하지만 그 당시 실상이 보여주기식 신앙심이라는 것을 알아버리자 고흐는 큰 공허함과 좌절감을 느끼고 말았다. 꿈을 이루지 못해 좌절하는 형에게 동생 테오는 대신 그림을 그리라고 권유했다. 테오는 언제나 형이 미술활동을 충분히 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었고, 고흐는 자신을 알아주는 동생에게 보답하고자 늘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미술중개상 일을 하던 테오는 형을 세상과 연결시켜 주었고, 고흐의 작품세계를 누구보다 이해하고 충고를 해주었다.평범한 인간들보다 섬세하고 감수성이 뛰어났던 고흐에게는 항상 우울증, 공황장애, 정서불안, 신경증 등이 있었다. 안타깝게도 정신병동으로 가게 되었고, 세상과 고립되었다. 결국 형이 37세에 자살로 세상을 떠나자, 형의 작품으로 회고전을 준비하는 데 열중했던 테오는 형의 뒤를 따라 6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33살 테오가 죽자. 29살의 나이에 과부가 된 테오의 아내 요한나에게는 한 살이 된 아들만이 남았다. 예술에 대한 어떠한 지식도 없었던 요한나에게 형제가 나눈 편지는 예술을 가르쳐주며 온갖 그림까지 그려진 편지 자체가 하나의 예술이었다. 요한나는 고흐의 그림과 스케치며 편지를 수습하며 세상에 알리려고 애썼다.남편과 고흐가 나눈 668편의 편지를 공개해 형제의 남달랐던 우애를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 편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소외받았던 고흐의 깊은 절망감을 이해하게 만들었다.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다. 요한나는 남편 테오의 무덤을 이장해 형 옆에 영원히 함께 있도록 묻어 주기도 했다.우리는 세상을 혼자서만 살아갈 수가 없다. 항상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간에 타인의 도움을 받으며 빚을 지고 살아간다. 고흐 형제 뒤에는 테오의 아내 요한나의 보이지 않은 수고로움이 있었다. 그 덕분에 고흐의 그림이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천을귀인 같은 사람이다.다른 사람을 위해 행동을 한다는 것은 고결하다. 자기 자신이 아니라, 타인을 이롭게 하는 것은 훌륭한 행동이다. 누군가에게 은혜를 베푸는 행위는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존경을 받을 만하다. 작은 것을 통해 큰 것을 알고, 가까운 것을 통해 먼 곳을 알아야 한다.

2023-05-31

인류를 위협하는 것은 정말 AI일까?

최근 미국의 비영리단체 ‘퓨처 오브 라이프 인스티튜트’(이하 FoLI)에서 ‘거대 AI 실험 일시중지 공개서한’을 공개했다. 서한의 주된 내용은 AI 기술이 갖는 위험성이 인간의 통제 가능 범위를 벗어났다는 것. 따라서 전 세계의 AI 개발사들이 6개월 동안 ‘GPT-4’ 이상의 강력한 인공지능에 대한 연구를 중단하고 이에 대한 윤리적, 철학적, 과학기술적 모색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 FoLI의 입장이다.서한이 공개되었을 때 대중을 놀라게 했던 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일론 머스크(테슬라 CEO), 스티브 워즈니악(애플 창업자), 유발 하라리(역사학자) 등 업계의 유명인사 및 석학들이 이 서한에 참여했다는 사실. 다른 하나는 AI 기술이 갖는 위험성이 현실적 문제로 다가왔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는 다만 SF 영화의 설정 정도로 치부되었던 AI 기술이 인류에게 핵무기, 인간복제 기술과 같은 현실적 위협으로 다가왔다는 점이다. 때문에 FoLI는 인간과 경쟁하는 AI는 사회와 인류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최소 6개월 간 AI 시스템 훈련을 중단하고, 그 기간 동안 독립적인 외부 전문가에 의한 감시, 감독을 위한 안전 프로토콜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하지만 업계는 이 서한에 대해 부정적인 분위기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인 빌 게이츠는 AI 기술 개발 일시 중단이 궁극적인 문제 해결 방안은 아니라고 말하며, 중단을 수행할 주체는 누구이며 모든 기업과 국가에게 강제할 수 있는지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다. 워싱턴 대학 컴퓨터공학 명예교수 페드로 도밍고스는 반세기 이상 사용된 인터넷 기술에 대한 규제 및 제한조차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AI 기술에 대한 규제 방안을 6개월 안에 만든다는 것이 가능한지 현실적인 측면을 지적한다.물론 AI 기술이 갖는 위험성은 분명 현실적인 것이다. 가령 노동 시장을 예로 들자면 최근 중국의 경우 AI 기술의 도입에 따라 약 200만 명의 실업자가 발생하였으며, 미국의 경우 근시일 내에 전체 일자리의 1/4에 해당하는 약 3천600만 개의 일자리가 AI에 기반한 자동화 시스템으로 대체될 전망이다. 특히 인적 관리 측면에서 대다수의 플랫폼 노동자들이 AI에 기반한 알고리즘 시스템에 의한 관리 속에서 노동에 종사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자면, 노동시장은 이미 AI 기술로 인해 그 저변에서부터 돌이킬 수 없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하지만 대중이 느끼는 AI의 위험성을 마냥 현실적인 것이라 말하기도 어렵다. AI의 위협은 분명 현실적인 것이지만, 공포감은 SF 영화를 비롯한 창작물에서 기반한 비현실적인 것이라는 생각. 물론 새로운 기술의 발달이 예기치 못한 부작용을 발생시켜 인류에게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은 의학 분야와 군사 관련 분야에서 초래된 경험적인 것이겠으나, AI 기술의 실질적 위험성에 대한 대중의 체감에는 인간이 아닌 이종이 인간을 지배한다는 SF적인 과장이 뒤섞여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러한 비현실적인 공포가 이미 일어난 노동시장과 컨텐츠 시장에서의 변화를 은폐한다는 사실이다. 축약해 말하자면, 상당수 노동자는 이미 AI 기술로 인해 변화한 시스템에 종속돼 있으며, 소비와 향유 역시 알고리즘에 의해 제어되고 있다. 그럼에도 AI가 근미래에 인류에게 위험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주장은 대중의 비현실적 공포를 부추기는 동시에, 대다수의 인류가 처한 실질적인 종속과 지배의 구조를 비가시화시키는 효과를 발생시킨다. 더불어 지금 AI 기술에 반대하고 있는 기업가들이 실질적인 AI 기술 시장의 잠재적 참여자들로 평가받고 있다는 사실은 이러한 주장이 과연 인류라는 대의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각 기업의 사적 이익의 추구를 위한 것인지 모호하게 만든다.물론 신기술의 개발과 발전에 따른 부작용은 인류가 늘 주의해야 하는 사안. 우리는 이미 핵무기를 통해 인류가 통제할 수 없는 기술이 인간에게 미치는 해악에 대해 알고 있다. 하지만 AI 기술의 발전을 둘러싼 담론에는 어딘가 석연찮은 게 있다. 여기에서 충돌하고 있는 것이 과연 ‘인간’의 가치를 비롯한 정신적인 가치들 뿐인 것일까. 아니면, 새로운 시장의 개척과 형성을 둘러싼 거대 기업들의 각축인 것일까. 지금 우리 앞에 놓인 것은 실질적인 위협일까, 아니면 무지에서 비롯된 비이성적인 공포일까. 공포를 부추기고, 공포를 먹고 사는 누군가가 있는 건 아닐까. 우리가 의심해야 하는 것은 AI 기술일까, 아니면 기술 담론의 참여자들일까.

2023-05-30

수식에 잡아먹히지 않기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와 ‘새벽의 약속’ 등의 작품을 남긴 로맹 가리는 말했다. “나는 삶을 살아가기보다는 내 삶에 의해 살아졌다는 느낌이 듭니다. 내가 삶을 선택했다기보다는 삶의 대상이 되었다는 느낌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덧붙인다. “사람들이 나에 관해 쓰는 모든 것에서 매일 나를 보지만 나는 내가 끌고 다니는 그 이미지 속에서 결코 나를 알아보지 못합니다.”로맹 가리에 관해 이야기하자면 에밀 아자르를 빼어놓을 수 없다. 어느 날 혜성같이 등장한 신인 작가 에밀 아자르는 자신의 이름 이외에 어떤 것도 밝히지 않는다. 그는 ‘자기 앞의 생’이라는 작품을 발표하고 대중적인 흥행과 동시에 작품성까지 인정받게 된다. 1980년에 로맹 가리가 권총 자살을 하면서 놀라운 진실이 밝혀지게 된다. 에밀 아자르가 사실은 로맹 가리였다는 사실이다.어쩌면 예견된 일일지도 몰랐다. 에밀 아자르의 정체에 관해 추측하던 사람들은 문장과 문체의 유사성에 집중하면서 그가 로맹 가리일 것이라는 의견을 내어놓았다. 그러나 일부 평론가와 기자들은 “로맹 가리는 그런 글을 쓸 능력이 없다”고 말했고 “로맹 가리는 이미 끝난 작가. 그가 그런 글을 썼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라도 단언하기도 했다.로맹 가리는 ‘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이라는 글을 썼다. 거기에 그는 책을 어떻게 출판할 것인지에 관한 지침을 적어놓았다. “사람들이 만들어 준 얼굴”이 작가를 얼마나 구속할 수 있는지를 말하며 그를 두고 떠들어대던 사람들의 오만함을 고발한다.이것은 비단 한 작가의 일화에서 끝나지 않는다. “사람들이 만들어 준 얼굴”은 우리에게도 존재하며 일상적인 삶에서 쉽게 엿볼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불량한 태도로 학교에서 모두에게 좋지 않은 평가를 받고 있는 학생이 있다. 그의 이름을 말하면 모두가 혀를 내두를 정도다. 그러던 어느 작문 시간, 놀라우리만치 아름다운 이야기를 과제로 내어놓은 학생이 있다. 이름을 지우고 진행된 평가이기에 그 작품이 누구의 것인지 아무도 몰랐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은 불량 학생의 작품. 그 역시 자기 작품이 그렇게까지 좋은 평가를 받게 될지 몰랐기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그날 이후로 불량 학생은 아름다운 이야기를 쓰는 학생으로 불릴 것이다. 그러다 보면 이전에는 생각지도 않았던 작가의 꿈을 꾸게 될 수도 있다. 이렇듯 자기를 꾸며주는 수식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 그런데 만약 사람들이 처음부터 그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불량한 학생의 글을 마음 다해 꼼꼼하게 읽어봤을까? 더 나아가 그것이 정말 좋은 작품으로 평가받을 수 있었을까?그것도 나고, 저것도 나다. 타인의 평가 혹은 사회적 시선, 그것도 아니면 나 자신이 스스로 만든 울타리에 갇혀서 우리는 진짜 내가 누구인지 잊어버리곤 한다. 우리는 평생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수식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한다. 더 좋은 대학 출신이 되고 싶고, 더 좋은 직장에 다니고, 더 좋은 곳에서 살고 싶다. 그런 것들이 나를 더 대단하게 만들어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그러다가 예기치 못한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내가 만든 수식에 내가 잡아먹히게 되는 것이다. 본질이 사라지고 수식만 남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자신을 소개할 때, “저 삼성 다니는 사람입니다”라고 외치는 사람을 보면 어쩐지 불편해진다. 그런 식으로 자신이 온전히 설명될 수 있다고 믿는 건 두려운 일이다.그렇다면 진정한 ‘나’는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로맹 가리조차 자신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타인의 시선으로 나를 가늠하는 것이 올바르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가끔은 나 자신의 시선마저 신뢰하기가 힘들다. 진정한 자신의 모습이라는 건 허상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을 찾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아주 사소한 것부터 찾아보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무슨 말을 들었을 때 행복한지, 어떤 작가의 책을 읽었을 때 가슴이 뛰는지. 그런 작업이 지속되면 자연스레 나만의 중심이 잡힌다.삶을 살다 보면 인생의 물살이 우리를 밀어주기도 하고 방해하기도 한다. 그때마다 물살에 휩쓸릴 순 없다. 스스로 중심을 잡고 전진해야 한다. 타인의 시선을 인지하되 거기에 매몰되지 않을 힘이 생길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 자신을 조금이나마 똑바로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2023-05-30

포스텍 의대설립… 논리적 타당성이 중요

심충택 논설위원 지난주 포항출신 김정재·김병욱 의원이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한 ‘포스텍 연구중심 의대 설립 정책토론회’는 상당히 타이밍을 잘 맞춘 행사였다.연구중심 의대의 핵심분야인 바이오산업 동력확보가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인데다, 최근 의사정원 확대가 민감한 이슈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대구·경북 시도민은 특히 지난 2020년 대유행한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상급(대학병원) 의료기관과 백신산업의 중요성을 체감했다. 열이 펄펄 나는 코로나 환자 수천명이 병실이 없어 입원하지 못하고 집에서 하염없이 기다릴 때, 우리 사회는 의료시스템 마비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절실하게 느꼈다. 그리고 미국의 제약회사인 화이자와 모더나가 백신개발에 성공했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 우리는 바이오산업 선진국을 얼마나 부러워했던가.국회 토론회 방향을 ‘한국형 보스턴 클러스터 첫걸음’으로 잡은 것도 적절했다. 미국 보스턴 클러스터에는 세계 바이오산업을 이끄는 제약회사와 명문대학이 몰려 있다. 모더나와 바이오젠 등 글로벌 제약회사, 하버드대와 MIT, 매사추세츠종합병원 등이 보스턴 클러스터의 핵심멤버다.보스턴 클러스터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대학을 중심으로 우수 인재가 모이고, 바이오 벤처 창업이 확대되면서 세계적 신약기업들이 탄생했다. 포스텍 연구중심 의대 설립이 현실화되면 포항이라고 해서 세계적인 바이오 클러스터가 되지 말란 법은 없다. 김철홍 포스텍 의과학전공 주무교수가 토론회에서 포항지역 의료계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형태의 미래산업을 제안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왔다. 김 교수는 포항지역 내 병원들이 ‘포스텍 협력병원’으로서 네트워크를 만들고, 여기에 바이오 헬스 기업 등이 더해져 ‘바이오 헬스 클러스터’를 구축할 수 있다고 했다.토론회에서는 포스텍 의대 설립 추진위원회(공동위원장 이철우 경북도지사, 이강덕 포항시장, 김무환 포스텍 총장)가 챙겨야 할 주요과제도 제시됐다.‘포스텍이 의대를 설립할 역량이 있느냐’ 여부를 냉정하게 판단하는 일이다. 포스텍이 계획하고 있는 교육과정은 ‘2-4-2’(MD-PhD-MD) 커리큘럼이다. 임상실습 전 기초의학과 임상이론 등을 2년간 교육받고, 4년간 전일제 연구프로그램을 통한 박사과정 후, 다시 2년간 의무석사과정으로 돌아와 임상실습 교육을 마치는 과정이다. 정원은 50명이다.의사과학자의 자질을 담보하려면 무엇보다 교수 규모와 수준이 밑바탕에 깔려있어야 한다. 이날 토론회에서 신찬수 한국의과대학 이사장이 “현재 포스텍에 290명의 전임 교원이 근무하고 있는데, 말씀하신 수준의 의대를 유지하려면 200명가량의 신임 교수를 채용할 각오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장이 다소 섞이긴 했지만 귀담아들어야 할 말이다. 세계를 무대로 활동할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해서는 분야별 우수 교수진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한데, 포스텍이 이를 위한 준비를 얼마나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연구중심 의대 설립이 성사되려면 반드시 재원확보를 비롯한 논리적 타당성이 전제돼야 한다.

2023-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