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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진짜 성공한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힘 `회복탄력성`

`회복 탄력의 힘`(문학사상사)은 독일과 유럽에서 경제 분야 회복탄력성 훈련의 대표적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는 데니스 모울란 박사가 펴낸 책이다. 심리치료사인 모울란 박사는 `회복 탄력의 힘`에서 과학에 토대를 둔 지식과 자신의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각자가 지니고 있는 회복탄력성 개념을 알려줄 뿐 아니라 그것을 발전시킬 수 있는 다양한 스킬을 소개한다.회복탄력성은 오늘날 심리학, 정신의학, 간호학, 교육학, 사회학, 커뮤니케이션학, 경제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다뤄지고 있는 개념으로, 크고 작은 역경과 실패를 딛고 튀어 오르는 `마음의 근력`을 의미한다. 이를 테면 `인생의 밑바닥`같은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그것을 극복해 더 높은 성취를 이루어내는 내면의 힘이다.모올란 박사는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한 인물들의 스토리를 살펴보면, 역경과 실패를 극복하는 특별한 힘이 있음을 알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들은 힘든 상황을 극복할 때 쓰이는 `마음의 근력`, 즉 `회복탄력성`이 뛰어난 공통점이 있다는 것.모올란 박사는 고도의 회복탄력성을 지닌 사람들은 삶이 그들에게 던져 주는 여러 가지 도전거리에 희망, 평정심, 자신감, 용기, 인간성 그리고 일관성 및 규율을 잃지 않는다. 그들은 일이 전복되거나 잘못된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어떤 어려움도 그들의 자존감을 파괴하지 못하며, 그들은 그러한 경험을 배움의 기회로 삼는다. 불확실한 상황과 압박 속에서도 그들은 평정심을 잃지 않고, 가능한 긍정적이고 목표지향적인 태도를 유지한다. 흔히 이야기하는 `반쯤 채워진 물 잔`을 보고 “아직 물이 반이나 남았네” 하고 말할 수 있는 긍정적인 태도는 그들에게 스스로를 탐색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그들은 이를 토대로 `진정한 성공`으로 가는 길을 선택한다고 설명한다.특히 회복탄력성이 가장 강한 인물로 평가되는 고(故) 스티브 잡스를 중점적으로 다루면서, 그가 가지고 있었던 강력한 회복탄력성 요소 네 가지와 취약했던 세 가지 요소, 그리고 그에게 인간의 다섯 가지 기본 욕구가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살펴본다.`회복 탄력의 힘`에서 소개하는 `회복탄력성을 키우는 레시피─9 + X`는 다음과 같다.ㆍ이제부터 새로운 능력을 가져라ㆍ스킬1_사랑하고, 바꾸고, 떠나라ㆍ스킬2_영향력의 레이더를 켜라ㆍ스킬3_생각을 창조하라ㆍ스킬4_감정 레이더를 켜라ㆍ스킬5_길을 가로막는 빙산을 녹여 없애라ㆍ스킬6_생각의 함정을 피하라ㆍ스킬7_긍정하라ㆍ스킬8_마음을 살펴라ㆍ스킬9_커넥션을 하라ㆍ스킬X_사람이 되어라/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7-03-24

식품학자의 과학적으로 먹고살기

식품학자 이한승은 지난 20년간 방송, 신문, 블로그 등 다양한 채널로 사이비 과학과 뉴스에 난무하는 잘못된 식품 정보를 바로잡아온 전문가다. 하지만 개별 식품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알리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저자가 `솔직한 식품`(창비)을 쓰기로 마음먹은 이유다. 그는 과학자는 답을 내주는 사람이기보다는 답을 찾는 방법을 안내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며 잘못된 식품 정보를 독자 스스로 가려낼 수 있도록 반드시 기억해야 할 원칙들을 알려준다. 책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불안한 마음으로 밥상을 대하는 이들에게 `과학적으로 먹고 살기`를 도와준다.1부에서는 식품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 6가지를 바로잡는다. 가장 대표적인 오해는 음식을 약으로 보는 인식이다.`항암식품`을 먹어서 암을 고치고, 건강기능식품을 섭취해 질병을 치료하려고 한다. 하지만 식품에는 대개 엄정하게 통제된 단일성분인 약품과 달리 다양한 성분이 뒤섞여 있다.(1장 `식품은 약이 아니다`) `전통음식`에는 선조들의 지혜가 담겨 있어 몸에 좋다거나, 동의보감과 같은 고서에 실린 음식의 효능을 맹신하는 것도 대표적 오류다. 저자는 이를 `음식 근본주의`라고 꼬집으며 전통도 업데이트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발효식품이 건강에 좋다는 것 역시 이제 상식처럼 돼버렸지만, 사실 발효는 과학적으로 부패와 같은 과정이며 발효음식이 반드시 몸에 좋은 것도 아니다.2부에서는 그런 오해를 촉발시킨 원인 제공자들, 정보 수용자, 식품회사, 식품 연구자 각각의 역할을 차례차례 살핀다. 공업용 우지 파동, 통조림 포르말린 사건, 사카린, MSG 등 한국 사회에서 일었던 식품파동을 통해 허황된 홍보나 과장된 보도에 속지 않는 법을 소개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3-24

책으로 다 함께 성장하는 따뜻한 매체 지향

독서문화 매거진을 표방하는 `월간 독서경영`이 최근 창간호를 펴냈다. `월간 독서경영`은 `월간 출판저널` 발행처 (발행인 정윤희)인 피알엔코리아(주)가 `독서를 통한 성장, 성장을 통한 경영`을 모토로, 우리나라 독서문화의 확산을 위한 매거진으로 독자들과 함께 독서에 대한 담론과 사례를 공유할 계획이다. 내 인생을 경영하고, 조직과 사회, 기업 및 기관 등을 경영자, 독서경영담당자, 독서동아리 등 책 읽는 독자들에게 책으로 다함께 성장하는 따뜻한 매체를 지향하고 있다.`월간 독서경영` 창간을 주도한 정윤희 발행인은 올해 창간 30주년을 맞이한 `월간 출판저널` 발행인.`월간 출판저널`은 1987년 창간된 출판전문잡지로 2008년 8월 발행처 대한출판문화협회가 휴간 당시 수석기자였던 정윤희씨가 독립해 지금까지 햇수로 10년간 한 번도 휴간 없이 발행해 오고 있다. `월간 출판저널`은 지난 6일, 2017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우수콘텐츠잡지로 선정됐다. `월간 출판저널`은 5회째 연속 우수콘텐츠 잡지로 선정됐고, 올해 창간 30주년을 맞이하고 9월호에 통권 500호가 된다.`월간 독서경영`은 창간특집 `다시, 독서`라는 주제로 우리사회의 독서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고은 시인 인터뷰를 통해서 짚어봤다.2017년 제4회 이탈리아 로마재단 국제시인상을 수상한 고은 시인은 신중선 소설가와의 인터뷰에서 “눈이 둘이고 귀가 둘이고 손과 발이 둘이며 서로 대칭을 이루듯 읽기와 쓰기도 양 대칭입니다. 사람들은 나를 쓰는 작가로만 알고 있지만 나는 읽는 작가이기도 합니다. 읽을 때의 행복을 위해 끊임없이 읽습니다”고 독서를 하면서 느끼는 행복과 의미를 말했다. 고은 시인은 요즘도 한 달에 50여 권의 책을 서점에 가서 직접 산다고 고백한다.창간특집에서 이현청 한양대 교육학 석좌교수는 청소년기의 독서에 대한 중요성과 방안을 제시했고 문화강국 프랑스의 바칼로레아, 프랑수아 미테랑 국립도서관을 통해 우리의 교육정책과 독서문화가 어떻게 바껴야 하는지 보여준다.또한 창간 특집호에는 어머니에 대한 1천통의 감사편지로 유명한 박점식 천지세무법인 회장의 독서인터뷰, 리더십 전문가이며 재능교육 사장을 지낸 양병무 재능대학 교수 인터뷰, 독서동아리 트레바리 윤수영 대표 인터뷰, 연합나비독서포럼 김형환 대표 인터뷰가 실렸다.이밖에 유영만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의 독서코칭, 김찬배 박사의 변화와 혁신 등 기획연재도 담았다.정윤희 `월간 독서경영` 발행인은 “`월간 출판저널`은 책을 기획하고 출판(생산)하는 출판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잡지라면, `월간 독서경영`은 책을 읽고 삶에 실천하는 독자들을 위한 잡지”라고 설명했다.한편 `월간 독서경영`은 독서전문가로 잘 알려진 한근태 박사, 고현숙 국민대 경영학과 교수, 김민주 리드앤리더 대표 등의 독서멘토링도 진행한다.이외에도 독서경영 방법, 독서경영 사례, 전문가들의 독서 멘토링, 독서동아리 사례, 북큐레이션 등 독자들에게 유용한 도서정보도 제공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3-24

마음을 다독이고 내면을 성찰하는 시

“많이 힘들고 지치셨나요? 이젠 시(詩)로 위로 받으세요.”시집 `세기말 블루스`로 유명한 시인이자 사진작가인 신현림(56)씨가 마음을 다독이고 내면을 성찰하는 시 91편을 골라 담은 `시가 나를 안아준다`(판미동)를 펴냈다.10만 부 이상이 팔린 베스트셀러 시집 `세기말 블루스`를 비롯해 여러 시집과 에세이에서 신씨는 내밀한 자기 고백을 통해 많은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내 왔다. 현대를 살아가는 도시 사람들의 불안감, 세계화한 시대에 겪는 소외감과 쓸쓸함을 호소력 있게 담아냈다는 평을 받았다.`시가 나를 안아준다`는 “자신의 영혼을 만나거나, 힘들 때 영혼을 쉬게 하는 쉼터가 시”라고 생각해온 저자가 단순히 위로와 힐링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적 성장까지 이끌어 줄 수 있는 시와 그림을 엄선했다.이 책은 오래도록 곁에 두고서 자꾸만 들춰보며 읽게 되는 `베갯머리 시`를 표방한다. 괴테, 틱낫한, 잘랄루딘 루미, 니체 등의 시를 담았지만 단선적인 잠언적 성격의 시도 아니고, 자칫 난해하거나 공감하기 어려울 수 있는 문학적이기만 한 시도 아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되 울림이 있는 시를 담았다. 윤동주, 신동엽, 이성복, 정호승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시인들의 시를 비롯해 동서고금을 망라해 좁은 현실에 갇혀 있는 시야를 열어 더 멀리 바라보게 하고 삶에 대한 통찰을 일깨워 주는 시들이다. 또한 레이먼드 카버, 에쿠니 가오리, 웬델 베리 등 국내에 시가 잘 알려지지 않은 문학가의 새롭고 신선한 시들도 만나볼 수 있다. 너무 뜨겁거나 차갑지 않게, 소박한 듯하지만 참신하고 마음에 울림이 남기는 시들이기 때문에 베갯머리에 오래 머물 수 있는 시들이다.▲ 신현림 시인또한 이미지가 살아 있는 시를 쓰는 시인이자 시적인 사진을 찍는 사진가로, 대중성과 예술성, 이미지와 텍스트 중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는 저자가 그림 역시 국내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나비파 그림들을 중심으로 파울 클레, 앙리 마틴의 작품을 주로 다뤄 실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시와 기도, 밤과 고독, 성장과 사랑, 감사와 희망을 믿는 저자와 함께 자신의 내면을 고요히 들여다보고 삶을 살아갈 힘을 얻게 될 것이다.저자가 시를 통해 보여 주는 `밤, 고독, 사랑, 감사, 희망의 힘`은 이러한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고 은은하게 비춰 준다. 이 책에 실린 시들은 외롭고 불안한 나로부터 벗어나는 계기가 `한 편의 시`가 될 수 있다는 또 다른 증거다. 밤이기 때문에,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는 시를 읽으며, 시를 읽기 때문에 감사와 희망이 진정 무엇인지 새로이 깨닫게 된다.우리는 마음으로 시를 읽고, 마음을 보듬어 영혼을 성장시킨다. 따라서 시를 읽는 것은 우리의 영혼을 조금 더 성장하고 성숙하게 만드는 길이다.이 책은 시가 일상에서 가장 멀게 느껴지는 사람도 시를 통해 자신이 보다 자유로워지고 조금 더 본래의 자신에 가까워진다고 느끼게 해 줄 것이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7-03-17

한번 죽고 나서야 또 다른 삶을 시작할 수 있다

2011년 문학동네작가상을 받으며 등단한 황현진(38)의 두 번째 장편소설 `두 번 사는 사람들`(문학동네)이 출간됐다. 황현진은 등단작부터 “정말 하나같이 매력적인 캐릭터들”, “가장 사랑스러운 캐릭터”라는 평을 들으며, 소설 속 인물들의 “살아 있음”을 입체적이고 매력적으로 그려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왔다. 그리고 오랜 시간 예비해온 두 번째 장편소설 `두 번 사는 사람들`을 통해 세계를 살아가는, 혹은 살아낸 사람들의 “누구도 같을 수 없는 삶의 드라마”를 감정의 과잉 없이도 가슴 저릿하게 펼쳐 보인다.소설은 1979년 10월26일 박정희라는 이름의 두 남녀가 세상을 떠나면서 시작한다. 1917년생 남자 박정희는 총에 맞아 죽고, 1960년생 여자 박정희는 딸 구구를 낳고 죽는다. 구구의 아버지 조금성은 1917년생 박정희가 태어난 도시에 홀로 하숙집을 꾸리며 억척스레 구구를 키워낸다.금성의 하숙집에는 저마다 남다른 이야기를 지닌 인물들이 큰 물줄기로 흐르는 시내처럼 자연스레 모여든다. 하루 세 끼 홍시만 먹고 사는 홍시 할머니, 컬러TV 만드는 공장에 취직한 기욱과 그의 애인 순점, 운동권 청년 용태 등이 구구네 하숙집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기욱은 감전사고로 숨지고 순점은 사산아를 낳는다.어쩐지 불운하고 불행하게 느껴지는 삶의 굴곡들이지만, 움푹 팬 상처의 이면으로 어느새 새살이 돋아나는 것처럼 황현진은 이들의 삶을 결코 불운하거나 불행해지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오히려 한 번 죽고 나서야 또다른 삶을 시작할 수 있다는 `삶의 비의`를 넌지시 드러내 보여준다. 소설이 구구를 중심으로 한 삼대의 이야기라는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째보와의 `혼인 불가`를 선언한 뒤로 졸지에 여성운동가가 돼 버린 금성의 어머니 김말녀와,쪼다이지만 마음만은 선량한 금성의 아버지 조복남. 고무공장 직원이지만 투전판으로 출근하는 일이 많았던 정희의 아버지 박두남과 그의 첫번째 아내가 운영하는 미장원에서 일하던 정희의 어머니 두자. 그리고 조금성과 박정희에서 구구로 이어지는 삼대의 이야기는 수난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통과해낸 자들만이 지닐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작가의 말`에서 작가 스스로도 고백했듯이, 어쩌면 우리는 “여러 번 살고 죽는 게 삶인데, 마치 한 번 살다가 죽을 것처럼 살아가려니 불편”한 삶을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삶의 무게에 비례하는 삶의 비의를 발견해낼 수 있다면 덜 고통스럽겠지만, 그럴 수 없기에 또다른 삶을 예비하고 맞이해야 하는 것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3-17

그가 말하는 사랑은 두 존재의 융합이 아닌 함께이며 동시에 각각인

신예 시인 김준현(30)의 첫 시집 `흰 글씨로 쓰는 것`(민음사)이 출간됐다. 시집`흰 글씨로 쓰는 것`에는 `인간적인 것`을 밀어 내려는 척력이 흐른다. 김준현은 인간의 역사에서 가장 뿌리 깊게 고정돼 있던 언어, 종교, 사랑이라는 가치들을 흔들고 의심한다. 그는 쓰였지만 보이지 않는 흰 글씨로, 합의되고 분류된 존재에 대해 `있지만 정말 있는가`라고 질문하는 시를 써 나간다. 인간성에 가 닿기 위해 인간으로부터 가장 먼 곳의 감각을 불러온다는 점에서 김준현의 시 쓰기는 산책이 아닌 순례에 가깝다.“두 갈래로 나뉜 이어폰이 귀와 귀로 이어져 있다//귀와 귀가/어긋나는 젓가락처럼 어긋하는 가락처럼/다른 귀와 닮은 귀/(….)속으로 이어지는 두 가지 감정을/하나의 감정으로/믿고 사랑하다가 죽겠다고 말하는 단 하나의 감정으로”(`둘의 음악`중)하나이면서 하나이지 않은 것들에 대해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쓰기. 이것은 시인이 `인간적인 감정`에 대해 부정하며 감정에 대해 말하는 방식이다. 시집의 2부 `둘`의 세계에서 사랑하는 이들은 동일한 기관이지만 단독적으로 존재하는 양쪽 귀나 이어폰처럼 동시에 같거나 다르게 존재한다. 그는 함께인 것들에 대해 말하지만 함께 있음에도 각각 단독자로서 지닌 차이와 이질성에 주목한다. 둘이지만 하나가 되고자 하는 것은 사랑의 속성이다. 그러나 시인은 사랑의 속성을 거부하며 사랑에 대해 말한다. 김준현이 그려 내는 사랑의 관계는 두 존재가 하나가 되는 융합이 아니라 함께이면서 동시에 각자로 존재하는 공존이다. 언제나 사랑을 의심했던 섬세한 독자들에게, 이 멀고도 가까운 사랑의 속성을 권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3-17

냉혹한 CODA의 삶과 농인사회 현실

마루야마 마사키의 추리소설 `데프 보이스 - 법정의 수화 통역사`(황금가지)는 한 농아시설에서 17년의 간격을 두고 벌어진 두 살인사건에 얽힌 전말을 밝히려 하는 수화 통역사의 이야기를 그린 사회파 미스터리다. 촘촘하고 탄탄한 플롯을 바탕으로 청각장애의 세계를 세밀하게 포착한 이 소설은 400여 편의 응모작이 쏟아진 제18회 마쓰모토 세이초 상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단 4편에 불과한 최종 후보작에 선정됐고 출간 후 `코다`를 비롯해 대중에게 낯선 농문화(文化)에 대한 시야를 트이게 했다는 호평을 받으며 독자들의 입소문을 탔다. 코다(CODA)란 `Children of Deaf Adults`의 줄임말로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자란 건청인 아이를 일컫는다. 코다인 수화 통역사 주인공의 시각에서 담담하게 풀려 나가는 이야기는 청각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현실을 세세하게 보여 주며 깊은 시사점과 진한 감동을 선사한다.모종의 사건으로 쫓기듯이 직장을 그만두고 결혼생활에도 실패한 아라이 나오토는 구직 활동을 하면서 실리적인 이유로 수화 통역 자격증을 취득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수화를 또 하나의 모어로서 자연스럽게 체득한 `코다`인 그에게는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데프 보이스`는 수화 통역사란 직업을 택함으로써 아라이의 삶의 방식에 찾아온 변화와 코다인 그가 겪어야 했던 고뇌를 생생하게 보여준다.가족 중 유일하게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아라이는 성장하면서 가족을 비롯한 농인 사회에서 이질감과 소외감을 느끼고 점차 멀어진다. 한편으로 비장애인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사회의 몰이해 역시 그에게 아픈 경험을 안긴다. 특히 그의 뇌리에 남은 사건은 경찰서 사무직으로 근무할 당시 농아시설 해마의 집 이사장 살해 용의자인 농인의 취조 과정을 억지로 통역해야 했던 일이었다.그는 성장과정은 물론 살인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작중 `언어적 소수자`로 묘사되는 농인들이 던지는 `너는 우리 편인가, 아니면 적인가`라는 질문에 부딪혀 좌절을 겪기도 하지만, 그들에게 한없이 가까운 주변인으로서 그들의 세계를 이해해 나가고 목소리를 전달한다. 다양한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 문제가 화두인 이 시기에,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큰 울림을 준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3-17

해답에 집착하기보다 새롭게 질문하라

우리는 많은 책을 읽지만 막상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모를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책 읽기의 달인을 찾아본다. 인문학자로부터 깊은 독법을 배우기도 하고, 또 정치인, 광고인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책에서 어떻게 그들만의 인사이트를 찾는지 엿보기도 한다. 그렇다면 뇌과학자는 책을 어떻게 읽을까?뇌과학자 김대식 교수는 먼저 질문한다. 남들이 제시한 답에 집착하기보다는 새로운 질문을 찾고자 노력한다. 그것이 더 큰 차원의 통찰에 이르기 때문이다. 과학자만 그럴까? 우리도 당장 문제가 코앞에 닥쳤다고 편리한 해결책만 찾으면 결국 더 큰 문제에 봉착하게 되지 않았던가. 본질을 꿰뚫는 시각을 갖기 위해서는 보다 깊게 생각해 보고 반대로 고민해 보아야 한다.저자에게 이러한 가능성을 열어 준 세계가 바로 책이다. 특히 여기 소개되고 있는 책들은 모두 저자에게 참신한 영감의 원천들이었다. 삶의 가치를 고민하게 만드는 사르트르와 랭보로부터 역발상의 지혜를 보여 주는 역사학자, 지식보다 진실을 추구했던 전문가들, 그야말로 과학과 인문학의 통섭을 실천하는 책 읽기를 보여 준다.김대식 교수는 10대 때부터 그리스 비극 같은 여러 고전을 독파해 온 책벌레다.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민음사)는 `빅 퀘스천`으로 독서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던 저자에게 지적 상상력을 제공한 책들을 향한 `오마주(hommage)`다. 과학자의 `빅 퀘스천`은 바로 이 책들로부터 비롯됐다고 할 수 있겠다.학자들에게 늘 자료가 풍부한 건 아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일상에서도 문제 해결을 돕는 정보가 다 내 손 안에 있는 것도 아니다. `미메시스`에서 제한된 정보가 오히려 풍부한 해석을 나을 수 있음을 지적한다. 아우어바흐의 통찰을 통해 김대식 교수는 현실에 제한받지 말고 진실을 찾을 것을 제안한다.어떤 책들이 과학자의 사고력에 영향을 주었을까는 매우 궁금한 점이다. 특히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에서 언급된 책들은 모두 저자가 아끼는 작품들이다. 19세기 시인 랭보, 이탈리아 소설가 이탈로 칼비노,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거장 보르헤스, 그리고 움베르토 에코, 보르헤스, 카프카, 베케트, 제임스 조이스 등이다.저자는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을 읽고 영웅이 되려고 고군분투하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사실 가장 추구하는 것은 작은 행복에 있다고 말한다. 또 사르트르와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소개하면서 `함께 혼자` 사는 태도를 제안한다. 이처럼 위대한 작가들로부터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거대한 물음의 조각들을 찾아 나간다.AI를 비롯한 최첨단 기술로 그 어느 때보다도 사회적 패러다임이 급변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더 이상 기존의 룰만을 따를 수 없기에 무엇보다도 현상을 명확히 이해할 수 있는 사고력이 필요할 때다. 이제 남들이 정한 룰 안에서 경쟁하기보다는 그 룰 자체를 변화시키고 새로운 룰을 만들어 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김대식 교수는 답을 찾기보다 질문을 찾으라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 시대에 우리가 코앞의 문제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기계가 언젠가 질문할 수 있는 이 위험한 질문”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기계는 무엇을 원할까? 왜 기계는 사람을 위해 일해야 하는가? 왜 인간은 존재해야 하는가? 이 거대한 질문들에 답할 수 없다면, 우리 인류의 미래도 없다는 말이다.”사실 우리의 진정한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우리는 여전히 남들이 다 하고 남은 `설거지` 연구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뿐만이 아니다. 철학, 역사, 사상 다 마찬가지다. 새로운 질문보다는 남들이 이미 다 풀어 본 교과서적 문제들, 그 누구도 보지 못한 새로운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보기보다 남들이 이미 다 보고 깔끔하게 앨범에 정리한 사진들이나 다시 정리하는, 그런 일들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 그런 걸까? 모든 진정한 과학과 철학과 종교의 기원은 질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질문이 아닌, 남들의 답에서 시작했다. 시작을 기억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하기에, 우리는 그 누구보다 주어진 답의 형식적 순결에만 집착한다.이제는 창조적인 파괴가 필요하고, 전혀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보기도 하고, 남들과 다른 방향으로 접근해 보기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다 본질적인 질문을 찾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오랫동안 독서광이었던 저자의 읽기 스펙트럼은 고전에서 현대까지, 문학에서 인문학으로, 자연과학에서 기술과학으로, 종횡무진 확장되고 있다. 나만의 읽기 혁명을 실천하고 있는 과학자의 책 읽기를 통해 우리는 어떻게 사유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될 것이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7-03-10

“스스로 노력하며 끊임없이 진보하고 굳세게 항쟁했던 인물”

13세기 초 세계적인 대제국 몽골제국을 일궈낸 칭기즈칸(1162~1227·아명 테무친). 그는 세계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지배한 군주다. 그가 건설한 대제국은 로마제국보다 두 배 컸고 알렉산더 대왕의 제국보다는 4배나 큰 규모로,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제국이기도 했다.영웅이 늘 그러하듯 테무친 역시 어린 시절부터 고난을 겪었다. 아홉 살 때 그의 부친이 독살된 뒤 하루아침에 풀뿌리를 캐고 들쥐를 잡아먹으며 지내는 고초를 겪었다. 결혼 한 달여 만에 부인은 다른 부족에 납치됐다.아버지를 죽인 원수, 아내를 빼앗은 원수는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었다. 복수는 그가 성장하는 데 중요한 동력이 됐다. 아버지에 대한 복수를 하기 위해 타타르 부족을 적으로 삼았고 부인을 되찾기 위해 첫 번째 전쟁을 시작했다.사람을 쓸 때도 주인을 배신하는 자는 절대 용서하지 않았다. 그러나 재주가 있다면 민족과 출신을 묻지 않았고 자신을 반대했던 사람이나 이전의 적도 과감하게 기용해 인재를 구했다.서방정벌 역시 복수를 하겠다는 의지에서 시작됐다. 1219년 칭기즈칸은 무역을 위해 450명 규모의 상단을 조직해 호라즘에 파견한다. 그러나 상단이 호라즘 변방의 오트라르 성(지금의 카자흐스탄 지역)에 도착하자 성주인 아날추크(가이르칸)가 상인들을 죽이고 상단의 재물을 빼앗았다.분노한 칭기즈칸은 사흘 밤낮을 단식하며 `저를 도우시어 저에게 복수할 힘을 달라`고 기도한 뒤 산에서 내려와 서방정벌에 나섰다.중국 베이징대 교수였던 주야오팅은 `칭기즈칸 평전`(민음사)에서 칭기즈칸을 무엇보다 스스로 노력하며 끊임없이 진보하고 굳세게 항쟁했던 인물로 평가한다.먼저 칭기즈칸은 기존 씨족 부락의 한계를 타파하고 십진 단위의 천호제를 실시했다. 천호제하에서 군대와 백성은 하나였고, 성인 남성은 모두 군역을 졌다. 오로지 전쟁에 임하기 위한 목적으로 전 민족을 조직한 것은 칭기즈칸이 처음이었다. 그는 일사불란한 지휘 체계를 확립한 아흔다섯 개의 천호군에 의지해 금나라와 서하를 차례로 패배시키고 서방을 정복했다.칭기즈칸은 그 자신이 뛰어난 전사였을뿐더러 전략 전술에 정통하고 치국의 도를 아는 군사 전략가이자 정치가였다. 상대방 부족이나 나라 간의 갈등을 이용할 줄 알았고, 몽골 부족의 규모와 상황에 맞게 군사 조직과 정책, 기율을 채택했다. 적군의 포로를 활용해 전선에서 바로 인력을 획득하고 보충하는, 즉 `적의 힘에 의지해 적을 공격하는` 책략으로 몽골의 수적 열세를 극복했다.책을 번역한 이진복 서울사이버대학 외래교수는 “저자는 중국인의 입장에서`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의 관점 아래 칭기즈칸을 중국인의 영웅으로 화려하게 부활시켰다”면서 “책을 읽을 때 칭기즈칸의 생에 전반에 관한 상세한 내용뿐 아니라 현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가 정책인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이 투영돼 있음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윤희정기자

2017-03-10

마침표보다는 물음표로 정답을 향해 나아가는 것일 뿐

여류 김개미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자면서도 다 듣는 애인아`(문학동네)가 출간됐다. `시와 반시`에 시를, `창비어린이`에 동시를 발표하며 등단한 시인은 성인의 언어와 어린이의 언어를 혼용해 독특한 시어를 구사한다.빛과 어둠의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대비시킨 이 시집에 대해 평론가 황예인은 이렇게 말한다. “`자면서도 다 듣는 애인아`를 읽으며 할 수 있는 일은 이 어둠의 독특한 속성들을 찾아내 기록해두는 일일 것이다. 한 시인이 집요하게 반복하며 그려낸 그만의 독특한 어둠의 무늬를 우리가 배워온 어둠의 이미지들로부터 분리시켜 더 선명하게 만드는 일. 때로는 그게 읽는 일의 전부인 것 같다.”시집은 총 3부로 구성됐다.각 부의 머리말이 돼준 소제목 `울면서도 웃었어`, `우선 좀 혼탁해져야겠다`, `소리에도 베인다는 말`에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가 그득 배어 있다. 사실 이 시집은 손에 쥔 그 순간 그 자리에서 술술 읽어 넘길 수 있는 그런 유의 시집은 아니다. 한 편 한 편 한 연 한 연 한 문장 한 문장이 아프기 때문이다. 짙기 때문이다. 질기기 때문이다. 상처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현재진행형의 `나`이며 내 이야기이기 때문이다.황예인 평론가는 해설에서 “이 시집을 김개미 시인의 도저한 사춘기가 오롯이 기록된 뜨거운 일기장이라 부르고 싶”다고 적고 있다.김개미 시인에게 시인만의 사춘기는 일정 기간 끓어올랐다가 식은 나날이 아니고 평생 계속될 물음표라는 것이 짐작이 되고도 남음이어서이다. 어려서 늙었고 늙어서 어릴 거라는 것. 정답을 찾지 않고 정답을 향해갈 뿐이라는 것. 어쨌거나 마침표로 단정짓는 단아함보다는 물음표로 갈고리를 거는 호기심에 더한 재미를 느낄 거라는 것.“나는 왜 개미들의 행진을 쫓아가는”(`복숭아뼈에 고인 노을`)지 명백히 이해했다면 쫓지 않는 것은 어른이고 그럼에도 종종걸음으로 쫓고 있는 것은 어린이일 것이다. 동시와 시 모두를 섭렵하고 있는 김개미 시인에게서 독자들이 기대할 수 있는 영역도 아마 그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질, 정의할 수 없는 우리의 나고 감이라는 이야기의 똥줄일 것이다. “무서운 건 쥐/ 쥐는 안 망해/ 할미꽃 뿌리를 던진 항아리 속에서/ 흰 구더기들만 죽어/ 고요하게 풀을 기르지”(`고요한 봄`)라는 시에서 짐직 유추할 수 있듯 비유와 사유의 교차에서 가르침은 하나 없고 말해주고 보여주기에 급급한 겸손함으로 이 시집은 단단히 채워져 있다.이 시집은 완벽하게 새로운 스타일의 사랑 시집으로 읽혀도 좋겠다. “흐린 날에도 눈이 오는 날에도 우리의 임무는/ 해를 기다리는 것이라는 것/ 해가 떠도 해를 기다리는 것이라는 것”(`하얀 밀림의 시간`)이 바로 사랑일지니 나는 궁금할 따름이다. “왜 아무 때나 한숨을 푹푹 쉬게 되는지. 왜 돌멩이를 걷어차게 되는지. 왜 사타구니가 손을 끌어당기는지.”(`무료한 아이들`). 사랑이라는 알 수 없음, 사랑이라는 설명 불가의 덩어리와 놀기 위해 이 시집은 태어났다. 키보다 빨리 자라는 궁금증을 점점 더 증폭시키며 이 시집은 `놀고 있다`. 이 시집의 건강함은 “매일 한 가지씩 시시한 것들이 생”(`무료한 아이들`)겨나기에 “공벌레처럼 혼자서도 똘똘 뭉칠 수밖에”(`무료한 아이들`) 없게 된 우리들의 생명력이 점점 자생력을 더욱 갖추게 된다는 사실에 입각한다. “나의 역할은 눈코입이 없는 구슬. 차이고 밟혀도 명랑하게 굴러다니는 것.”(`잔인한 동거`)이라지 않은가.김개미 시인의 `자면서도 다 듣는 애인아`는 시인 안의 어린이가 없었다면 쓰일 수 없는 시집이다. 우리 안의 어린이가 있다면 우리 이야기로 기꺼이 다 읽어낼 시집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3-10

“정치 혐오는 지배자에게 우리 운명 맡기는 것”

“최종적으로는 정치의 창조적 가능성을 인정하고 참여해야 한다. 한국사회에 만연한 정치혐오가 아수라 같은 오늘을 만들었다. 정치를 혐오하는 것은 대표자가 아닌 지배자에게 우리의 운명을 맡기는 것이다. 설사 선한 지배자라 하더라도 그를 믿어서는 안 된다. 악한 지배자도 선한 대표자처럼 행동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슈톰카의 말처럼 민주주의는 불신의 제도화를 통해 신뢰를 만들어낸다”- `한국사회, 어디로?`중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혼돈과 정체에 빠진 한국사회, 그 본질적 문제는 무엇인가? 어떻게 극복하며 더 나은 사회로 전진할 것인가?”`한국사회, 어디로?`(아시아)는 최근 탄핵 정국 막바지를 맞아 혼돈이 더욱 커지고 있는 한국 사회에 대해 `시대의 지성`으로 불리는 4명의 학자의 `더 나은 한국 사회로 가기 위한 길`에 대한 고민을 풀어낸 책이다.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80),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80), 송호근(61)·장덕진(51)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박태준미래전략연구소가 `미래전략연구`시리즈로 기획한 여섯 번째 단행본인 이 책에서 시민들의 의식 변화를 통해 이번 사태를 풀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책은 `좌 촛불, 우 태극기`- 이 상충 에너지가 어떤 정권을 만들든 그들 세력이 가장 먼저 세심히 살펴봐야 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이고, 그들 세력이 가장 공들여야 하는 시대적 책무는 그것을 시민과 더불어 극복하고 치유하는 길을 닦는 일이라는 당대 석학들의 고뇌 어린 목소리들과 그 실증을 담았다. 김우창 교수와 송복 교수는 당대 최고 석학으로서 가히 경지에 도달한 그 인문적이고 역사적인 사유를 진지하고도 감동적인 교향악처럼 한국사회에 들려준다. 송호근 교수는 실증적이고 분석적인 통찰력에 인문학적 상상력을 겸비한 보기 드문 학자로서 그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장덕진 교수는 실증적이고 분석적인 학문의 세례를 받은 세대의 대표적인 학자답게 세 필자의 사상과 통찰력에서 나오는 주장들을 다양한 경험적 증거들에 근거한 변주를 보여준다. 책은 총 4장으로 구성돼 있다. 송호근 교수가 집필한 1장은, 한국이 당면한 여러 가지 사회적, 경제적 장벽을 돌파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과제를 시민민주주의로 설정하고, 그것의 미시적 기초로서 `시민성 배양`을 강조하고 있다. 2장에서 송복 교수는 `더 나은 사회`를 위한 한국인의 의식전환 문제를 두 가지로 압축했다. 하나는 일반 국민의 `문치의식`에 대한 재고(再考)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사회 고위직층의 `희생의식`에 대한 제고(提高)다. 김우창 교수가 집필한 3장은, 우리 사회가 보다 인간적인 사회가 되고 그러한 사회의 안정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살만하고 좋은 사회가 되는 데에 필요한 교육과 문화가 어떤 것인가에 대해 동서고금을 넘나들며 심오하고 광범하면서도 정연한 사유를 전개하고 있다. 4장은 장덕진 교수가 김우창, 송복, 송호근 교수의 `더 나은 한국사회를 위한 사유와 제언`을 여러 나라의 경험적 증거에 견줘 그 정당성을 증명해주는 글이다.김병현 박태준미래전략연구소장은 “우리 사회에는 거대담론적인 미래전략도 있어야 하고, 실사구시적인 미래전략도 있어야 한다. 거대담론적인 미래전략 연구가 이상적인 체제를 기획하는 원대한 작업에 주력한다면, 실사구시적인 미래전략 연구는 가까운 장래에 공동체가 당면할 주요 이슈들을 예측하고 대응책을 제시하는 작업에 주력한다. 그 작업의 일환으로, `더 나은 한국사회`를 위한 길을 안내하는 것에 이 책의 방점이 있다”고 전했다.한편 지난 2013년 2월 출범한 포스텍 박태준미래전략연구소는 미래사회를 조망하고 대응전략을 탐색하는 연구에 주력하고 있으며, 그 결실들로서 `박태준미래전략연구총서`를 지속적으로 출간하고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3-03

`코스모스`의 인기 비결, 그리고 한국교육의 해묵은 병폐

한국 천문학계 원로 학자 홍승수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명예 교수의 첫 단독 저술 대중 과학서 `나의 코스모스`(사이언스북스)가 출간됐다. 이 책은 명저 `코스모스`로 우주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보여준 미국의 천문학자 칼 세이건(1934~1996)의 `코스모스`가 한국 독자들에게 오기까지의 역사와 `코스모스`의 핵심 내용, `코스모스`의 성공 비결 등을 소상하게 설명하고 있다책은 지난해 5월 팟캐스트 `과학하고 앉아 있네` 3주년 기념 강연을 완전 수록한 것으로, `코스모스` 번역 뒷이야기, `코스모스`의 성공비결, 자신의 삶과 한국 지식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까지 흥미진진한 이야기와 깊은 통찰이 담겨 있다.이 책은 크게 여섯 꼭지로 구성돼 있다. 첫째, 한창 연구에 몰두하고 있던 50대 후반의 서울대 교수가 `코스모스`라는 대중 과학서, 그것도 한때는 `과학 전도사`로 살짝 낮춰 봤던 칼 세이건의 책을 번역하게 된 “저간의 사정”이 흥미진진하게 설명돼 있다.둘째, 모두 13개 장으로 이뤄진 `코스모스`의 핵심 내용을 소개하며 칼 세이건의 자신의 주장을 독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는 “스토리텔링의 전략”이 “뻔한 사실에서 울림 깊은 진실을 찾아내는” 것임을 자세히 밝히고 있다.셋째, `코스모스`가 국내외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둔 이유를 분석하고 있다. 홍승수 교수에 따르면, 칼 세이건은 이 책에서 “지구 생명의 출현과 진화, 그리고 인류 문명의 현재와 미래를 빅뱅(big bang·대폭발)에서 비롯한 우주 진화의 거대한 시공간적 틀에서 조망”한다는 것이다. `우주에서의 인간의 위치`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건드림으로써 사람들의 주목을 끌고, 특히 “자기 조상의 시원을 빅뱅의 순간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면 가슴이 설레지 않을 한국인이 어디 있겠습니까”라는 홍승수 교수의 반문은 칼 세이건의 성공 비결을 명확하게 보여 준다.넷째, 이러한 비판적 책읽기를 통해 홍승수 교수는 칼 세이건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한국 지식 사회의 한계, 그리고 그러한 지식 사회를 잉태한 한국 교육의 문제를 비판한다. 문과, 이과 분리 교육이 낳은 “해묵은 병폐”를 극복할 방법을 “융합의 전범”을 보여 준 칼 세이건의 글쓰기에서, 그의 해박한 지식과 깊은 통찰에서 찾아보자는 것이다. 한국의 교육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는 주장은 한국 근대 교육의 당사자인 홍승수 교수 자신의 경험과 반성을 토대로 한 것이라 강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다섯째, 이번 강연을 기획한 과학과 사람들, 사이언스북스의 스태프들과 홍승수 교수의 제자들로 현재 학계와 문화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윤성철 서울대 교수, 이강환 서대문자연사박물관 관장, 박순창 메타스페이스(주) 대표 등이 무대에 올라 함께 좌담을 나누며 청중의 질문을 받고 대답을 하는 내용이다. 홍승수 교수의 인간적인 면모와 강연에서 미처 다 말하지 못한 그의 우주관과 세계관을 살짝 엿볼 수 있다.여섯째, 앞에서 언급한 좌담에 출연한 제자들과 과학과 사람들 원종우 대표, 천문학자이자 과학 저술가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이명현 박사의 추천사가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3-03

언어라는 슬픈 도구가 얼마나 풍요로울 수 있는지…

실험적이고 낯선 느낌의 시를 주로 써온 박상순(55) 시인이 네 번째 시집`슬픈 감자 200그램`(난다)을 펴냈다. `러브 아다지오`(2004) 이후 13년 만에 펴낸 이번 시집도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해석과 의미화를 거부하는 52편의 시가 3부로 나뉘어 실렸다. 한국 시단에서 흔히 볼 수 없던 독특한 개성과 그만의 리듬으로 독보적인 자리매김을 한 박상순 시인의 진가를 다시 한 번 여실히 드러내 보일 수 있게 완벽하게 세팅된 무대다.시인은 현실세계의 단면이나 인간의 감정을 이미지로 재현하는 대신, 오로지 언어로써 쌓아올린 하나의 세계를 감각하라고 권유한다.일견 그래왔던 것처럼 녹녹하게 읽히는데 그 뒷맛은 녹록치가 않다. 꿈틀대는 말의 뼈마디가 유연하기 그지없는데 그 부드러운 관절들의 춤을 뭐라 제목 짓기 또한 만만치가 않다. 무작정 덮어놓고 좋은데 그 좋음을 도통 설명할 길이 만무하다면 그 좋음은 실로 진실이고 진심이 아닌가.시마다 참으로 자유로운 사유가 반짝이는데, 시마다 반짝이는 자유 속에 나도 미처 예상하지 못한 규율이자 규칙이 새로 반짝여서 속도를 내어 걷다가도 이내 멈춰서서 나를 찾게 되니 이처럼 끝도 없이 나, 나라는 자의식을 물고 늘어지는 시집이 또 있겠나 싶은 감탄을 참으로 하게 되는 것이다.`슬픈 감자 200그램`은 언어라는 슬픈 도구가 얼마나 풍요롭게 시의 잔치를 벌일 수 있게 하는지 그 일련의 과정들을 몹시도 아름답게 복작거리는 말과 그 말맛의 다채로움으로 펼쳐보이며 우리를 흥분시킨다.“잘못 알았음/ 그곳은 병실인데 또 잘못 알았음. 아뿔싸./ 겨울이 왔음/ 창밖엔 크리스마스트리 반짝이는데, 누가 있겠음?”(`내 봄날은 고독하겠음` 부분)시인은 1991년 등단 이후 줄곧 낯설고 전위적인 작품들을 써왔다. 난해하고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의 시들로 2000년대 중반 평단에 격렬한 논쟁을 일으켰던 소위 `미래파`의 토양을 제공했다는 평가도 있다.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세상은 지각이나 감각 또는 인지의 결과와는 다른 것일 수 있고, 나는 그 한계 안에 있다. 허구처럼 보이는 사건들과 이미지로서의 환영을 교차하면서, 미미한 나의, 문제와, 절박하게, 침통하게, 그러나 따뜻하게 대면하고자 했지만, 더 즉물적으로 그것을 드러내고자 한다면 어떠한 의미도 배제해야 한다”고 썼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3-03

`자유로 버스에서의 나와 무장공비` 객관을 놓아버린 역사의 공간화

서효인(36) 시인의 세번째 시집 `여수`(문학과지성사)가 출간됐다. 제30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한 `백 년 동안의 세계 대전`이후 6년 만에 선보이는 시집이다.분노를 비틀어 뿜어내며 오늘의 소년소녀들에게 메시지를 투척하던 첫 시집과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정치·경제·사회적 폭력의 지도를 그려내던 두번째 시집이 마그마처럼 들끓고 있었다면 이번 시집은 상온에 가깝다.서효인이 그려온 시의 궤적으로 미뤄보자면 이 변화는 앞으로도 오래도록 이어질 폭력의 세계에 응전하기 위한 대안 모색이자 일종의 시적 성장일 것이다.끓는점을 높이고 깊이를 더한 `여수`에서 시인은 `역사의 공간화`를 시도한다. 하나의 공간을 두고 과거와 현재가 사적인 기억과 공적인 역사가 겹쳐지면서 서효인이 스쳐간 어딘가는 객관적 `공간`이기를 멈추고 새로운 의미를 획득해 유일무이한 `장소`가 된다.“수평적 공간뿐 아니라 공간의 위아래를 꿰뚫는 수직의 시간, 공간이 품고 있는 분위기와 공기를 예민하게 캐치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고 말하는 서효인의 시에서 공간은 시간의 체취가 담겨 있는 곳이다. `여수`속 63편의 시들 가운데 50편의 제목이 공간과 관련된 것인데, 크게는 서울, 목포, 여수처럼 지역의 이름이거나 연희동, 이태원, 금남로 같은 도시 안의 구역, 자유로와 올림픽고속도로처럼 지역들을 잇는 길들, 작게는 학교 연못이나 주차장까지를 포함한다.이 시집의 발문을 담당한 문학평론가 김형중은 서효인의 세번째 시집 속에서 만나게 되는 장소들이 과거와 현재가 겹쳐지고 사적 기억에 공적 역사가 중첩돼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 곳들이라고 말한다. 이를테면 자유로 위 출근길 만원 버스에서의 나와 1968년의 무장공비 김신조가 오버랩되고(`자유로`), 체육관에서는 1970년대의 프로레슬링과 1980년대의 체육관 선거, 최근의 외국 뮤지션 공연이 동시에 펼쳐진다(`장충체육관`). 성장과 가족사, 조문, 짧은 여행, 출퇴근과 일상의 범위를 넘지 않는 여정들이다. “비동시적인 것들이 동시적으로 존재하는 특이한 장소들, 역사가 공간화된 장소들”, 사적 기억과 공적 기억 들이 누적·교차된 서효인의 장소들은 그러므로 여기 아닌 어딘가로 도망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곳을 겹쳐 밟았을 언젠가의 누구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된 치밀한 기록, 지리지로 읽히곤 한다. 시간과 공간이 세로축과 가로축이 돼 만날 때 장소는 생명을 얻는다. 그 교차 지점에 서효인의 시가 위치한다.“사람이 죽는 일은 거대한 일은 아니다. 우리는 잠자코 앉거나 서서, 각자의 도착지를 생각할 것이다. (….)사방이 어두운 역, 전철은 대체 여기서 왜 멈추는 것일까. 지축역 지난다. 상주의 표정은 전철에서 빈자리를 찾는 것처럼 조급하면서 평온했다. 사람이 죽었지만 거대한 일은 아니다. 지축역을 묵묵히 지나는 우리에게는 다발로 묶인 시신도 그다지 큰일은 아닐 것이다. (….) 지축역에서 모두가 작은 흔들림에 몸을 맡기고 각자의 휴대폰을 본다. 날마다 죽는 사람은 분명히 있고, 이유를 물을 경황 없이 다음 역이 온다. (….) 슬픔을 자랑하지 않으려 흔들리는 지축을 붙잡은 노인과 내가 노약자석 앞에서 잠시 겹쳐 앉았다가, 다시 일어나 제 갈 길을 간다. 지축역 지난다. 별일 없었다.”―`지축역` 부분/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2-24

인종과 신분으로 바라본 현대 미국사회 민낯

`하얀 이빨`로 세계 문단의 일약 스타가 된 영국의 소설가 제이디 스미스(41)의 세 번째 장편소설 `온 뷰티`(민음사)가 출간됐다. 이미 케임브리지 대학교 영문과 재학 시절 단편 소설과 에세이를 여러 편 발표하며 출판사 편집자들의 눈에 띈 제이디 스미스는 스물다섯 살에 `하얀 이빨`을 발표했다. 이 작품은 출간되자마자 `새로운 살만 루슈디` 또는 `포스트모던 찰스 디킨스`라는 찬사와 함께 여러 유명 작가와 비평가의 호평을 받았으며, 휘트브레드 신인 작가상, `가디언` 신인 작가상, 커먼웰스 신인 작가상, 제임스 테이트 블랙 기념상 등을 수상했다. 2003년 `그랜타가 뽑은 최고의 젊은 작가 20인`에, 2006년 `타임이 뽑은 100대 영문 소설`에 선정됐다.`사인 파는 남자`(2002)에 이어 세 번째 장편 소설 `온 뷰티`(2005)를 출간한 그녀는 커먼웰스 작가상과 오렌지 상을 수상했고, 부커 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최근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백인 우월주의가 우세하면서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적 인식이 점점 힘을 얻어 가고 있는 지금, `온 뷰티`가 그리는 미국 사회의 모습은 예리하기 이를 데 없다.`온 뷰티`는 보수와 진보라는 양 극단에 위치한 두 중산층 지식인 가정의 모습을 통해 현대 미국 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모순적 상황을 지적이고 꿰뚫는 듯한 필체로 쓴 소설이다. 전작 `하얀 이빨`에서 영국 내의 문화적 차이와 인종 간의 갈등을 흥미진진하고 위트 넘치게 그려냈던 제이디 스미스는 이번 작품에서는 무대를 미국으로 옮겨, 인종적, 사상적 갈등을 겪는 두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미시적 시점에서 다룬다. 이 소설은 트럼프의 당선이 얼마나 미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지 그 배경부터 시작해, 더 나아가서는 미국이라는 거대한 국가의 정체성 문제까지 아울러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줄 훌륭한 리얼리즘 소설이다.하워드 벨시 가족은 미국 사회의 신분 격차와 인종을 뛰어넘은 개방적인 가족의 전형이다. 중하층이었던 부모 밑에서 자라 대학 교수라는 상류층으로 진입한 백인 하워드 벨시와, 몇 세대에 걸쳐 노예 계급에서 우연한 기회에 주인에게 상속받은 재산을 통해 거부로 올라선 흑인 시몬즈 집안의 딸 키키, 그리고 그 둘이 낳은 세 자녀는 계층적으로는 상류층 지식인 계급이지만, 백인 일색의 동네에서는 `흑인 혼혈`이라는 따가운 시선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학문적 성향 역시 매우 진보적인 하워드 벨시 교수는, 자신과 다르게 사사건건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는 킵스 교수에 대해 상당한 불편함을 느낀다.한편 몬터규 킵스 교수는 하워드 벨시와는 달리 흑인이면서 백인 여성과 결혼한 전형적인 `흑인 보수주의자`다. 흑백 사이에서 언제나 백인 보수 진영의 편을 들어 왔던 킵스 교수에 대해 하워드 벨시는 언제나 자신과 대척점에 선 인물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일례로 학내에 우호적인 의견이 퍼져 있는 `어퍼머티브 액션(미국에서 주립대 입학이나 공무원 채용 시 인종이나 소수계를 우대하도록 한 소수 계층 우대 정책)`에 대해 킵스 교수가 반대한다는 사실을 알고, 벨시 교수와 동료들은 뜨악한 반응을 감추지 못한다. 이 두 교수의 적대적인 입장은 학내 갈등뿐만 아니라 학문적 입장, 자녀 양육 문제에 있어서도 사사건건 드러나기 시작한다. 미국 사회의 다양한 모순되는 입장을 대변하는 벨시 가, 그리고 킵스 가는, 두 자녀인 제롬과 빅토리아가 사랑에 빠지면서 얽히고 설킨 갈등으로 휘몰아치기 시작한다. 책장을 놓기 힘들 정도로 점점 흥미진진해지는 이야기와 제이디 스미스 특유의 예리하고 생생한 문체와 어우러져 강력한 매력을 더한다./윤희정기자

2017-02-24

숲으로 간 시인, 마침내 삶의 주인이 되다

도종환 시인의 산문집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난다)가 재출간됐다. 같은 제목으로 지난 2008년 출간됐다가 오랜 기간 절판 상태에 놓였던 이 책을 도종환 시인이 몇 년에 걸쳐 하나하나 다듬고 새로이 증보해 근 10년 만에 다시금 선을 보이게 된 것이다.이 책은 2004년 지병으로 교단을 떠난 시인이 보은 법주리 산방에 머무는 동안 쓴 산문을 엮은 것으로, 자신을 도시라는 이름의 사막에서 구해내 숲속의 청안한 삶으로 되돌려보낸 이야기를 진솔하고 담담하게 담아낸 기록의 산실이다.시인에게 도시는 도처에서 모래바람 같은 것이 몰려와 눈을 뜰 수가 없는 사막 같은 곳이었다. 도시에서 그는 뜻이 있어 세상의 큰일을 도모했으나 원한 바대로 성사되지 않았다. 몸은 온전치 못하고, 마음도 균형을 잃은 채 밥벌이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그렇게 숲으로 들어갔다. 깊은 산중에 집을 짓고 홀로 텃밭을 일구며 몇 해를 지냈다.“내가 살고 있는 곳이 사막 같다는 생각이 들 때면 떠나고 싶어 견딜 수가 없습니다. 숨을 제대로 쉴 수 없는 모래 도시 같다는 생각이 들 때면 벗어나고 싶습니다. 파도치는 곳으로 달려가고 싶습니다. 숲 우거진 그늘을 찾아가고 싶습니다. 나무 아래 진종일 누워 있고 싶습니다. 먹지도 않고 말하지도 않고 나무의 그림자나 비릿한 물 냄새를 덮은 채 누워 잠들고 싶습니다. ”(217~218쪽)숲에서 시인은 직접 쌀을 씻어 밥을 지어 먹었고, 텃밭에 푸성귀를 심어 먹을거리를 마련해야 했으며, 끼니를 세끼에서 두 끼로 줄여야 했다. 물론 그뿐만은 아니다. 겨울에는 짐승들 먹을 시래기와 밤을 내다놓았고, 봄에는 할머니들을 따라다니며 나물 뜯는 걸 배우다 산천이 온통 먹을 것으로만 보일까 두려워했다. 여름에는 아까시나무 꽃, 조팝나무 흰 꽃을 보며 빛깔로 화려하기보다 향기로 진하기를 소망했고, 가을에는 가을바람 한줄기가 마음을 다독이는 걸 알았다.숲속에서 자연과 동물과 함께 지내는 일상을 통해 시인은 천천히 삶의 주인 자리를 되찾는 기쁨을 느꼈다.먹을 것을 내 손으로 만들어 먹으면서 낭비하지 않고 소박하게 사는 삶의 기쁨을 만나게 되었다. 그 기쁨은 생명의 기쁨이자 고통 속의 기쁨이다. 우주의 일부이자 전체가 되는 기쁨이다.“그렇습니다. 신체의 욕망에 갇힌 채 새로우면서도 쾌락적인 것, 자극적이면서도 크고 많은 어떤 것을 찾아가다가 만나는 흡족함과 이 기쁨은 다릅니다. 고통을 최소화하고 편안함만을 추구하는 육신이 본능적으로 움직여 가는 길과 생명의 길은 다릅니다. 이 기쁨은 고통 속에서 만나는 기쁨입니다. 고통을 만나 그 고통 속에서 나를 해체하고 다시 태어나면서 만나는 기쁨입니다. 찬물에 손을 담그며, 땀을 흘려 일을 하며, 험한 길을 걸으며, 내 하루치의 목숨에 대해 뼈저리게 생각하며 내 삶의 주체를 바꿔가는 동안 내게 찾아오는 기쁨입니다. ”(272쪽)▲ 도종환 시인시인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삶에서도 그대로 행하고자 노력한다. 지난 세월을 보아도, 앞으로 걸어갈 길을 짐작해보아도 그렇다. 따라서 이 책은 철저한 지행합일(知行合一)의 삶을 살고자 하는 한 인간의 간절한 물음이다. 기실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라는 문장은 숲에 있던 그가 사막에 있는 자신에게 던지는 물음이기도 하다.절절한 물음을 품고 사는 것은 곧 기도다. 그렇게 기도가 된 물음만이 타인에게로 가 닿는다. “그대가 사막에 있다면 다시 숲으로 오시도록 부르고 싶다”는 시인의 말이 와 닿는다면, 바로 그 때문이다. 이 책은 두려움으로 가득 찬 사막에 있는 이들을 영혼의 거처인 청안의 숲으로 불러들이기 위한 시인 도종환의 초대장이자 기도문이다.“너 때문에 죽을 수 있는 곳, 그곳이 사막입니다. 너 때문에 내가 사는 곳, 그곳이 숲입니다. 너 때문에 세상이 싫어지는 곳, 그곳이 사막입니다. 너 때문에 세상이 아름다워지고 살고 싶어지는 곳, 그곳이 숲입니다. 너 때문에 내가 황폐해지는 곳, 그곳이 사막입니다. 너 때문에 내가 풍요로워지는 곳, 그곳이 숲입니다. 너 때문에 내가 독한 사람이 되는 곳, 그곳이 사막입니다. 너 때문에 내가 선하게 변하는 곳, 그곳이 숲입니다.”(309쪽)/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7-02-24

미지의 현상에서 느끼게 되는 원초적 공포 다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추리소설 작가인 스티븐 킹의 2014년작`리바이벌`(황금가지)이 번역 출간됐다.출간 즉시 `뉴욕 타임스`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저자가 같은 해 출간한 `미스터 메르세데스`와 함께 `시카고 트리뷴`이 선정한 2014년 화제의 책 12선에 꼽힌 인기작이다.기타리스트가 된 소년과 신을 등진 목사의 평생에 걸친 기이한 인연과 거기에서 비롯된 초자연적인 공포를 다뤘다. 근래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끈 대작들을 연이어 발표해 온 스티븐 킹은 `리바이벌`에서 자신의 초기 작품들에서 드러냈던 장기를 십분 발휘해 미지의 현상에서 느끼게 되는 원초적인 공포를 흡인력 넘치는 이야기 속에 생생하게 담았다.저자는 아서 매컨의 `판이라는 위대한 신`, 메리 셸리의`프랑켄슈타인`, H. P. 러브크래프트의 작품들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하면서 “오랜만에 초자연적 공포를 다룬 본격 호러를 쓰고 싶었다. 또한 러브크래프트의 크툴루 신화를 새로운 방식으로 활용해 보고 싶었다”고 밝혔다.현재 `리바이벌`은 `안녕, 헤이즐`의 조시 분 감독이 영화화를 준비 중이며, 제이컵스 목사 역으로 새뮤얼 잭슨이 물망에 올라 있다.이야기는 노년에 접어든 주인공 제이미 모턴이 그의 인생을 뒤흔든 `제5의 인물이자 변화 유발자이자 숙적`인 제이컵스와의 만남을 회상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평범한 가정의 막내아들인 제이미는 여섯 살 때 처음으로 마을에 새로 부임해 온 목사 제이컵스와 조우한다.전기에 비상한 관심이 있던 제이컵스는 여러 가지 실험과 발명품을 통해 단박에 제이미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또한 자신의 기술을 발휘하여 일시적으로 목소리를 잃은 제이미의 형 콘래드를 치유하는 기적까지 일으킨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인해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를 잃고 절망에 빠진 제이컵스는 가족의 장례식 이후 집전한 설교에서 신앙을 모독하는 발언을 함으로써 마을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린다.성장하면서 기타를 접하며 록의 세계에 빠져든 제이미는 약물에 중독되고 밴드 동료들에게도 버려져 그야말로 바닥을 치던 30대 중반에 우연히 `번개 사진사`로 탈바꿈한 제이컵스와 재회한다. 그리고 대니, 댄, 찰스, 찰리 등 다양한 이름을 가진 전직 목사와 또다시 결별과 만남을 반복하며 파국적인 결말로 치닫는다.`리바이벌`은 보다 기나긴 세월 동안 경험할 수밖에 없는 상실감과 절망을 낱낱이 보여 줌으로써 더욱 비정하고 지독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어찌 보면 작품 후반부에서 실체가 드러나는 초자연적인 공포 보다도 이러한 부분들이 더 소름 끼치는 감각을 선사하며 스티븐 킹표 공포소설의 진가를 드러낸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7-02-17

지난 반세기 가장 빛나는 미래 예견 SF명저

SF문학계 거장 아서 C. 클라크(1917~2008)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클라크의 대표작 `스페이스 오디세이` 시리즈가 한꺼번에 번역돼 나왔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로 시작해 `2010 스페이스 오디세이`(1982), `2061 스페이스 오디세이`(1985), `3001 최후의 오디세이`(1996)까지 이어지는 4부작이다. 이 가운데 `3001 최후의 오디세이`는 국내 SF마니아들이 번역해 돌려읽은 적이 있지만 정식 출간은 처음이다지난 반세기 가장 사랑받았던 그의 전설적인 시리즈를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유일한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인류 진화에 대한 통찰과 우주를 향한 무한한 상상력을 담아내어 지난 반세기 동안 가장 빛나는 SF로 사랑받은 시리즈로서, 저자인 아서 C. 클라크는 아이작 아시모프, 로버트 A. 하인라인과 함께 SF의 3대 작가로 꼽힐 뿐 아니라 `통신 위성`과 `인터넷`, `우주 정거장`, `핵발전 우주선` 등 현대 과학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미래학자로서도 잘 알려져 있다.`스페이스 오디세이 완전판`의 대표적인 상징인 인공지능 컴퓨터 HAL 9000은 현재 화두가 된 4차 산업혁명의 주력 산업인 인공지능의 롤모델로 회자되고 있으며, 소설에서 묘사된 `섭동 기동`은 실제로 10여 년 후 보이저 1호가 동일한 조건에서 실행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그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묘사한 장면이 현실에서 이루어진 부분들이 많다.대표적으로 영화에서는 우주선 디스커버리 호가 목성을 목적지로 하고 있었지만, 소설에서는 디스커버리 호가 목성의 중력을 이용해 속력을 올린 다음 목적지인 토성으로 날아간다. 디스커버리 호가 이용한 이 `섭동(攝動) 기동`은 11년 후 우주선 보이저 1호가 같은 장소에서 실제로 정확히 그대로 이용해 많은 이들의 경탄을 자아냈다.아서 C. 클라크가 예견했던 것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1945년 발표한 `정지궤도`에 관한 논문이다. 논문에서 인류의 로켓 기술이 발달한다면 지구 상공에 위성을 쏘아 올려 특정 궤도에 위성을 올려놓을 수 있게 되고, 위성은 지구의 자전과 같은 속도로 돌며 통신이나 방송 신호를 주고 받을 수 있다는 이론이었다.▲ 아서 C. 클라크 /황금가지 제공세계 최초 정지궤도용 통신 위성이 발사된 때가 1963년이니 아서 클라크의 아이디어는 시대를 약 20년이나 앞선 셈이다. 이 외에도 유선을 통해 엄청난 정보를 주고받는 인터넷과 핵추진 우주선, 우주 정거장과 우주 방위 시스템, NASA 등에서 현재 연구 중이며 일본 학자들이 최근 그 실현 가능성이 높다고 인정한 `우주 엘리베이터` 등이 모두 그의 소설 속에서 가장 먼저 선보여졌다.미래에 대한 그의 놀라운 식견은 인류의 과학 발전과 우주 여행의 원동력이 되었으며, 대표적인 우주인 닐 암스트롱은 달에 발을 내딛은 그 순간에, 아서 C. 클라크가 바로 이 우주시대를 열었다는 격찬을 보내기도 했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7-02-17

시 언어의 투명성… `날이미지` 오규원 첫 시집 46년만에 복간

한국 현대 시사에서 시적 방법론에 대한 가장 첨예한 자의식을 지닌 시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시의 언어와 구조`의 문제를 누구보다 치열하게 탐구했던 시인 오규원(1941~2007). 10권의 시집과 4권의 시론집· 시 창작이론서를 비롯한 30여 권의 저서를 통해 언어로써 세계의 구조를 갱신하고, 죽음에 이르는 병마와 싸우는 내내 시적 언어가 가닿을 수 있는 최대치의 투명성을 보여줬다.오규원은 한국 자본주의 체제 속 시와 언어의 존재론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을 누구보다 앞서 던지며, `이념`과 `관념`, `주관`과 `감상`에 경사돼온 한국 현대시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본격적으로 진행시킨 장주인공이다. 전통적인 시의 문법을 해체하고 새로운 시적 경향을 모색하는 데 전념했던 그의 첨예한 시론은 `관념의 구상화`-`관념의 해체·해방`-`현상 읽기`-`날이미지`라는 미학적 입장으로 나아가며 그를 한결같은 한국 현대시의 전위로 있게 했다. 그의 `시론`으로서의 이론적 가치뿐만 아니라 시 창작 교육의 교본으로 익숙한 `현대시작법`(1990)은 실제 습작에 대한 사례 분석과 시적 언술에 대한 실질적인 분석으로 개념적인 시론의 한계를 돌파한 것으로 평가받기도 한다.20여 년간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 몸담으며 유수의 많은 제자 작가, 시인들을 길러낸 훌륭한 선생이기도 했던 그의 10주기를 맞아 첫 시집 `분명한 사건`(문학과지성사)이 46년 만에 복간됐다.`문학과지성 시인선R`의 열한 번째 시집인 작품집에는 시인의 시적 존재가 여전한 현재형으로 살아 숨 쉰다. `분명한 사건`은 등단한 해를 전후로 7년간(1964~1971) 쓴 시들에서 30편을 추려 묶은 것으로, 출간 그해는 시인의 연대기에서 전기로 기록될 만한 굵직한 사건들이 있었다.이번 복간 시집에는 35년간 그와 문우로 지낸 문학평론가 김병익의 발문 `오규원에게 보내는 뒤늦은 감사와 송구`가 함께한다. 이 글에서 김병익은, 잡지 간행이 녹록지 않던 시절, 당시 태평양화학 홍보실에서 일하던 오규원이 경제적으로 문지에 도움을 준 사연을 비롯해, 40여 년을 이어 오는 문지시인선의 디자인 장정과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976),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1978) 등의 표지를 오규원이 직접 맡게 된 일화와 추억들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사물에 대한 그의 극도의 정밀성을 근접촬영 수법으로 획득해 나름의 방식으로 개념화한 `날이미지`의 시들”에는, “오직 투명한 시선과 거기에 포착된 사물의 순수한 형상과의 직절한 교호만이 존재했다. 그 극도의 객관성을 통해 역으로 그는 이 세상의 유정(有情)한 공감을 감염시키고 있는 것이었다”는 비평적 시선으로 옮겨간다. 생명의 소진에 다가선 오규원과의 영원한 작별을 돌아보는 자리를 `말 없는 우정`으로, 다시 `분명한 사건`으로 복원해내는 글 말미의 소회는 깊은 감동을 전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2-17

책이 된 `역사저널 그날` 태조~순종 조선 500년 역사를 바꾼 `그날` 조명

총 여덟 권으로 구성된 `역사저널 그날`(민음사) 조선 시대 편이 완간됐다. `역사저널 그날`은 매주 주말 저녁 인기리에 방영됐던 KBS의 교양 역사 토크쇼 `역사저널 그날`의 재미와 깊이를 온전히 책으로 담은 시리즈다. 지난 2015년 2월 출간된 1권(태조에서 세종까지)으로 시작해 지난달 출간된 8권(순조에서 순종까지)에 이르기까지 만 2년에 걸쳐 나온 이 시리즈는 역사를 바꾼 결정적 `그날`을 주제로 역사 대중화의 흐름을 이끈 토크쇼 방송 프로그램에 깊이를 더해 역사 부문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세트에는 태조에서 순종까지 500여 년간을 다루는, `역사저널 그날`의 엄선된 에피소드 61개가 시대순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또한 특별 부록인 `인포그래픽으로 보는 조선의 그날`이 포함돼 있어 조선의 역사를 이미지와 그래프, 지도를 통해 한눈에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지난 2013년 가을에 첫 방영을 한 KBS `역사저널 그날`은 역사의 대중화라는 흐름을 가장 먼저 이끌었다고 평가받는다. 여러 출연자가 그날의 주제를 수다로 풀어나간다는 신선한 형식을 취하면서도, 가볍지 않은 울림을 전해 주며 재미와 깊이를 모두 잡았다는 찬사를 받았다.`역사저널 그날`은 역사를 바꾼 결정적인 `그날`의 주역들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오늘의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인지를 재치 있고 유쾌한 수다를 통해 전달한다.`역사저널 그날`의 가장 큰 장점은 지면으로 그대로 옮겨 온 생생한 대화다. 쉴 새 없이 주고받는 수다를 흥미진진하게 따라가다 보면 지루함을 느낄 틈이 없다. 확연하게 드러나는 출연자들의 다양한 의견과 개성도 장점이다. 무엇보다 `역사저널 그날`이 주제를 이야기하는 방식이 자연스럽게 독자의 생각을 자극하고 대화의 즐거움, 나아가서는 토론의 즐거움을 깨닫게 해 준다는 장점이 눈길을 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2-10

남북한 작가들 `북한인권`을 외치다

“북한 인권 문제는 진보, 보수와 상관없는 인륜, 인간의 문제입니다”최근 출간된 `금덩이 이야기`(예옥) 는 탈북 문인과 국내 문인이 함께 북한 인권 문제를 소재로 한 단편소설이다.남북한 작가들의 공동소설집은 지난 2015년 `국경을 넘는 그림자`에 이어 두 번째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후원으로 서울대 국문과 교수인 방민호 작가가 주도했다. 방 작가는 “북한에서 고난을 겪다 남쪽으로 와 소설의 형식으로 떠나온 땅의 기억을 증언하고 있는 귀한 작가들, 그리고 북의 일이 북의 일이 아니요 남의 일이자 세계 전체의 일임을 의식하고 있는 남쪽 태생의 작가들, 이 양쪽의 작가들이 하나 된 염원으로 이 책을 엮었다”고 소개했다. 또 그는 “인권이야말로 보수나 진보를 따지지 말아야 할 인간의 기본이다. 탈북작가층이 형성되는 상황에서 이 문제를 문학적으로 풀어나가는 게 문학인의 도리”라며 “이번 소설집은 첫 번째 책보다 리얼리티가 강화됐다”고 전했다.소설집에는 도명학·윤양길·이지명·김정애·곽문안·설송아 등 탈북작가 6명이 단편소설을 1편씩 냈다. 이경자·박덕규·이대환·유영갑·이성아·정길연·방민호 등 그동안 남한 문단에서 북한 문제에 관심을 쏟아온 작가들의 작품을 합해 13편이 실렸다.`북한 인권을 말하는 남북한 작가의 공동 소설집`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소설집에는 북한을 고향으로 둔 사람들의 삶과 꿈이 담겨 있고, 이들과 가까이 있는 남한 작가들의 이야기가 함께 실려 있다.무엇보다 여전히 북한의 현실과 그로부터의 탈출, 남한 사회에서의 적응 등에 관해 해야 할 말들이 무수히 남아 있음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특히 탈북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고 할 수 있을 `배고픔`과 `가난`에 관해 여러 작품들이 그 끔찍한 실상을 잘 그려내고 있다.이지명의 `금덩이 이야기`는 정치범관리소에서 만난 윤칠보 노인의 비극적인 사연을 드러낸 작품이다. 맏딸은 굶어 죽고, 작은 딸은 실종된 상황에서 사랑하는 아내마저 집에 홀로 남겨둔 채 관리소로 들어온 윤칠보는 그곳에서 영수를 만나 자신의 집에 금덩이가 묻혀 있다고 꼭 나가서 그것을 확인해달라고 말한다. 노인은 죽고 영수는 풀려나 약속대로 노인의 집을 찾는데, 그곳에서 자신과 인연이 닿았던 은혜가 노인의 딸이었음을, 노인이 말한 금덩이는 노인의 아내를 가리키는 것임을 비극적으로 깨닫는다. 은혜, 노인의 아내까지 모두가 가난으로 죽는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일말의 희망마저 발견할 수 없는 북한 사회의 단면을 투박하지만 강렬하게 드러낸다.김정애의 `밥`도 마찬가지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남한에 정착해 원 없이 “흰쌀밥”을 먹는 `지금`은 향이에게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여전히 북한에 남아 있고, 엄마와 둘만 남한으로 내려와 있는 상황은 늘 마음의 짐이 된다. 향이 엄마가 남편과 어렵사리 전화를 연결해 탈출을 종용하면서도 결코 북으로는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은 `밥`의 문제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절실하고 갈급함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윤양길의 `어떤 여인의 자화상`은 불구가 돼버린 남자의 곁을 끝까지 지키는 `나`의 이야기를 다룬다. 불구자와의 결혼을 반대하는 부모, 희생과 인내로 점철된 결혼 생활 등은 익숙한 서사이지만 그 과정에서 그들이 겪어야 했던 북한 사회의 어떤 실상들과 끝내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지만 깊이 서로를 이해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몇몇 장면들은 인상적이다. 남편의 자살과 `나`의 어쩔 수 없던 `다른` 임신, 그리고 그 아이를 “당신처럼 나라를 위해 한 몸 바칠 영웅으로” 만들겠다는 마지막 다짐의 장면은 지독한 아이러니로 읽힌다. 이대환의 `중량초과`는 남한과 북한 사회가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지 평양의 민족작가대회로부터 시작해 남한의 노동 파업 전야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통해 보여준다. 법정에서의 증언 혹은 검찰에서의 신문처럼 서술되는 목소리는 남한과 북한 사회가 모두 `중량초과`의 상태임을 씁쓸하게 드러낸다. 작가에 따르면 누군가는 계속 부족하고 다른 누군가는 늘 넘쳐흐르는 비균형의 사회는 남북한이 동일하다는 것이다. 다소 희극적인 서술로 이뤄진 이 작품은 그래서 오히려 더 현실의 비극성이 부각된다.설송아의 `제대군인`은 군 제대 후 극도로 생활이 어려워진 북한사회를 마주한 철혁이 절도 행각을 통해 자기 운명을 다시 개척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제 북한 사회는 돈이면 뭐든 할 수 있는 사회로 뒤바껴버렸고 자신에게 다가올 파국을 예측하지 못한 채 철혁은 점점 더 대담해진다. 급기야 군수물자를 실어 나르는 열차에서 물품을 빼내다가 군인들에게 적발돼 총을 맞고 철혁은 사망한다. 이 소설에서 인상적인 것은 부유한 화순을 만나고 난 후 철혁에게 찾아오는 변화인데 북한 사회 역시 자본의 격차가 엄연하고 그것이 매우 심각한 상황임을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이경자의 `나도 모른다`, 방민호의 `시간여행`, 박덕규의 `조선족 소녀`는 북한 사회와 탈북자들을 바라보는 남한의 시선을 각각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세 작품은 모두 문학이라는 예술로 이들을 이해하고 자신들의 신념을 지키며 올바른 가치를 실천할 수 있는지를 진지하게 묻고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2-10

반려동물과 함께 한다는 것, 그들의 존재가 특별한 이유는…

개나 고양이 같은 집에서 키우는 동물을 이제는 예전부터 전통적으로 사용하던 장난감이라는 의미가 들어간 `애완동물`보다 인생의 동반자라는 의미가 강조된 `반려동물`이라고 부른다. 최근 출간된 `동물을 사랑하면 철학자가 된다-만남부터 이별까지, 반려동물과 함께한다는 것`(문학과지성사)은 수의사 이원영씨가 반려동물과 공존하는 방법을 안내하는 책이다.반려인이자 수의사인 저자가 직접 겪은 에피소드를 통해 `만남, 이해, 교감, 매듭, 공존` 5개의 키워드로 첫 만남부터 이별까지, 반려동물을 집 안에 들이는 순간부터 각 단계별로 부딪히게 되는 여러 가지 상황과 문제 들을 흥미롭게 풀어낸다.각 장 말미에는 수의사들이 가장 많이 받는 질문들―반려동물을 키울 때 반드시 지켜야 할 것, 중성화 수술 여부, 발병률 1순위 질환, 안락사에 관한 궁금증 등―에 대한 답을 간략히 정리해 실용성을 더했다. 또한 `여백이`를 쓴 `봉현` 작가의 실제 이야기로 구성한 여섯 편의 일러스트를 실어 색다른 재미와 감동을 준다.기존의 반려동물을 다룬 책들이 주로 반려동물을 키우는 데 필요한 정보나 상식을 알려주는 매뉴얼적인 성격을 띠었다면, 이 책은 기술적인 측면보다는 본질적인 차원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차이를 갖는다. 예를 들어, 반려동물을 대하는 바람직한 자세나 태도는 무엇이며 나의 마음가짐은 어떠한지, 그들의 존재가 내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 이유는 무엇인지, 반려인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상황 속에서 한번쯤 고민하고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들을 짚어준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2-10

일상의 나쁜 습관만 고쳐도 고질적 통증을 줄일수 있다

“잘못된 것을 그만두면 올바른 것은 저절로 이뤄진다.”앉기, 서기, 걷기, 호흡 등 일상의 움직임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고질적인 통증과 긴장을 줄이고 몸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도록 이끄는 `알렉산더 테크닉, 내 몸의 사용법`(판미동)이 출간됐다.`인간의 몸과 마음은 사용(use)하는 것`이라는 개념을 최초로 전파한 고전이자,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알렉산더 테크닉의 창시자 프레더릭 알렉산더(1869~1955)의 대표작으로, 삼면거울을 방에 설치해 9년간 자신의 몸을 관찰하며 어떻게 `알렉산더 테크닉`을 발견하고 적용했는지를 보여 주는 생생한 체험담과 그 핵심 원리가 상세히 담겨 있다.이 책은 1932년 출간 당시 작가 올더스 헉슬리, 철학자 존 듀이 등 저명인사들이 앞다퉈 추천했을 뿐만 아니라, 여기서 시작된 `알렉산더 테크닉`은 목과 허리의 통증 및 각종 만성질환 치료, 운동·감각·인지기능 향상, 스트레스 감소 등에 탁월한 효과를 보이며, 현재에 이르기까지 바디-마인드 영역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또한 호흡, 발성, 자세, 움직임에 있어서 사상가, 정치가, 연기자, 무용가, 성악가, 연주가 등에게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이에 예일대, NYU, 줄리어드 음대, 영국왕립연극원, 영국왕립음악학교, 런던드라마스쿨 등 세계적인 예술학교에서 정규 과목으로 채택하고 있으며, 베네딕트 컴버배치, 휴 잭맨, 키아누 리브스, 줄리엣 비노쉬, 폴 매카트니, 스팅, 마돈나 등 수많은 배우와 가수들이 훈련했다. 인간의 한계와 잠재력을 끌어올리려는 저자의 열망, 의지와 인내, 탐구심 등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알렉산더 테크닉의 핵심은 고착화된 몸과 마음의 불균형적인 습관을 스스로 인지해 인체의 잘못된 사용을 자제하고 원래의 상태로 회복하는 데 있다. 이는 치료 요법, 정형화된 운동법이나 바디워크가 아닌, `알렉산더 테크닉, 내 몸의 사용법` 감각 및 운동 시스템의 근본적인 재교육을 뜻한다. 자신에게 구두로 디렉션(지시)을 줘, 무의식적이고 본능적으로 행해 왔던 심신의 습관을 의식적으로 바꾸는 방식, 다시 말해 의식을 통제할 수 있는 인간의 힘과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원리부터 차근차근 알려준다. 몸과 마음의 균형이 무너진 현대인들의 삶을 바로 잡는 새롭고 탁월한 기준을 제시해 줄 것이다.미숙아로 태어난 프레더릭 알렉산더는 호흡계 질환 때문에 학교에 다니지 못할 정도로 병약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배우와 셰익스피어 낭송가로 명성을 얻었으나, 공연 중 목이 쉬어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문제에 부딪혔다. 다양한 의학 치료를 받아도 호전이 없자 스스로 해결책을 찾기로 결심하고 방에 삼면거울을 설치한 뒤 낭독할 때 자신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9년에 걸쳐 관찰한 끝에 `알렉산더 테크닉`을 창안했다. 알렉산더는 이 원리들을 스스로에게 충실히 적용해 목과 성대의 문제를 비롯해 고질적으로 앓아 왔던 호흡계 질환까지도 모두 해결했다. 그뿐만 아니라 인체 기능과 사용법을 바로잡는 방식으로 의사들도 치료하지 못했던 만성 질환 환자들을 완치시켰다. 작가 조지 버나드 쇼, 배우 헨리 어빙 경, 철학자 존 듀이, 작가 올더스 헉슬리,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찰스 셰링턴 등 수많은 유명 인사들이 알렉산더 테크닉을 통해 치료를 받았고, 자신의 연구를 발전시켜 나가는 데 큰 영향을 받았다.알렉산더는 일상에서 걷고, 앉고, 서고, 먹고, 말하고, 생각하는 등의 행위가 나쁜 습관 속에서 이뤄지는 것, 즉 심리적-육체적 메커니즘을 해로운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이 만병의 근원임을 발견했다. 알렉산더 테크닉의 진정한 가치는 이를 일상으로 가져와 매 순간 사용할 수 있다는 데 있다.또한 이 책에서는 몸과 마음이 서로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밝히며, 통합적인 `자신(self)`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그 원리와 방법을 선명하게 제시한다. 궁극적으로 몸과 마음에서 본능적이고 습관적으로 행해 왔던 것들을 멈추고, 그 방향을 재설정하는 자기 판단의 기준을 세우도록 돕는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2-03

삶에 대한 비애·회한·유머·감동 동시에 담아내

`망상, 어(語)`(문학동네)는 201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내기의 목적`이 당선돼 등단한 김솔의 기발한 `짧은소설` 36편을 모은 소설집이다. 김솔은 등단작부터 “패기 있는 작품”, “발상도 좋고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힘도 좋다”(심사평)라는 평을 들으며, 기존의 어느 작가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던 기발한 소재와 이국적인 문체로 새로운 스타일리스트의 탄생을 알렸으며, 이후 문지문학상, 김준성문학상, 젊은작가상 등을 연달아 수상하며 그 잠재력을 놀라운 수준으로 드러냈다.`망상, 어(語)`는 오랜 습작기 때부터 채집해온 “세계의 믿지 못할 이야기”들을 특유의 몽환적인 문장들로 풀어냈다. 신문이나 뉴스에서 접한 믿기 힘든 이야기, 작가 자신이 오랜 직장생활과 외국생활에서 경험한 웃지 못할 비애와 생경한 이야기들이 통쾌하고 속도감 있게 그려진다.김솔은 소설의 시간과 공간, 국적, 심지어는 성별까지 뒤섞어버린 채 오롯이 `이야기하다`라는 행위 자체에 골몰한다. 대개 소설을 읽다보면 작가의 모습이 투영된 것은 아닐까 짐작되는 지점이 있는데, 김솔의 소설에서는 작가의 모습을 헤아리기 어려운 까닭도 여기에 있다. 김솔은 오로지 이야기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이야기가 말해진 이후의 세계에는 개입하지 않는다.그러면서 단편소설보다도 훨씬 짧은 이야기 속에 삶에 대한 비애와 회한과 유머와 감동을 동시에 담아내고 있다. 특히 김솔은 엄연히 우리 주위를 살지만 어딘가 이상하다고 손가락질받곤 하는 사람들에게 주목하면서, 그들의 모습은 결코 유별난 것이 아니며 정작 이상한 것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이 세상이라고 역설한다.누구에게나 자신만 아는 망상의 세계가 있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누구나 이따금씩 휴대전화 벨소리가 들리는 듯한 환청을 겪는데, 여기서 더 나아가 누군가의 몸속에서 수술 도중 실수로 남겨둔 휴대전화가 울리는 것은 아닐까 상상할 수도 있다 (`환각지통`). 아니면 어린 시절 사고로 미각을 잃은 남자에게, 사는 데 꼭 기억해야 하는 맛은 무엇일까 느닷없이 물을 수도 있다 (`미각`). 어쩌면 김솔은 성실하고 정직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그러니까 강력한 우승 후보이면서도 다른 선수들이 결승선을 통과할 때쯤 출발하는 것으로 고국 이라크의 현실을 알리고자 한 모하메드 압둘 (`그들만의 올림픽`)이나 사랑하는 여인을 지키기 위해 전자발찌를 드러내 보여야 했던 남자 (`의심`)처럼 자신의 삶을 잃지 않기 위해 수많은 꿈과 유머와 망상을 차압당해야 했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신 들려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2-03

꿈이 현실이 되다… 꿈을 이룬 그 다음 이야기

이유의 첫번째 소설집 `커트`(문학과지성사)가 출간됐다. 2010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후 7년 만의 소설집이다. 2015년 장편소설 `소각의 여왕`으로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했으며, 당시 2012년 이후 3년 만에 선정된 수상작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커트`에서 작가는 꿈을 꾸고, 이루고, 실패하고, 다시 꿈을 꾸는 반복적인 상황에 판타지적 요소를 가미했다. “꿈이 그대로 현실이 돼버리는 황당한” 세상 혹은 “이건 진짜 현실이지만, 꿈이라고 열심히 생각하면 정말 꿈이” 되는 더 황당한 세상이 이유의 소설을 통해 실현된다. 특히 꿈이 이뤄졌다는 기쁨과 그 이후에 오는 또 다른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이 교차하면서 꿈과 현실 속에서 갈팡질팡하는 이들의 고뇌를 고스란히 담았다. 이유의 소설은 꿈을 이룬 그 다음의 이야기다. 자면서 꿈을 꾸면 그 꿈이 그대로 현실이 되는 세계(`꿈꾸지 않겠습니다`), 자신의 꿈을 좇아 야츠로 떠난 남자(`지구에서 가장 추운 도시`), 공간이동 연구를 성공시킨 천재(`깃털`) 등 모두 꿈을 꾸고 실제로 꿈을 이룬다. 여기서 이야기는 다시 시작된다.“공간이동은 기본적으로 원본이 완전히 분해돼 사라지고 난 다음 복사본이 인터넷 망을 이용해 다른 장소에서 재조립이 된다는 거거든. 노골적으로 말하면 원래의 내가 없어져야만 새로운 내가 탄생한다는 거지. 내 몸에 담긴 모든 정보가 고스란히 조립된다고 해도 이걸 과연 나라고 부를 수 있겠냐는 거야.”-`깃털`이러한 악몽의 무한 반복을 나타내기 위한 형식으로 이유의 소설은 거울을 마주 세운다. 거울을 마주 놓은 상태에서 들여다보면 같은 이미지가 계속 반복해서 만들어지는 장면을 누구나 경험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마주 놓은 거울은 거울을 보는 주체를 대상화한 이미지와 그 이미지의 이미지와 그 이미지의 이미지의 이미지를”(양윤의) 가져다 놓는다.첫 소설집의 표제작 `커트`는 악몽의 세계를 끊어내는 결정적 역할을 수행하는 작품이다. 작품 속 미용사 `나`는 “온갖 잡냄새로 시달리던 머리통”을 그야말로 한 방에 `커트`, 잘라내버린다. 악무한의 세계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들의 썩은 내 나는 머리를 시원하게 잘라버림으로써, 숨통을 틔우고 다시 살아가게 한다.이런 상징적인 행동은 `지구에서 가장 추운 도시`에서도 등장한다. 추운 도시 야츠에서 꿈을 모두 잃은 그는 동상으로 자신의 발가락 세 개를 잘라야 했다. 야츠에서 벗어나면서 동시에 나쁜 기억을 떨쳐내듯 신체의 썩은 일부를 덜어낸 것이다. 악몽이 반복될지라도 썩어가는 부위를 조금씩 잘라내면서 그 자리, 그곳에서 다시 한 번 발자국을 남기고 삶을 이어가도록 하는 것이 이유가 작품 속 화자들을 다루는 방식이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7-02-03

제3세대 `청정 석탄화력발전소` 가능성 모색

▲ 하얀석탄“나는 석탄이다.”중진 작가 이대환이 최근 펴낸 `하얀 석탄`의 첫 문장이다.`하얀 석탄`은 최소한 나이를 수만 년 먹은`나, 석탄`을 1인칭 화자로 내세워 작가가 그의 토로를 받아쓴 형식의 글이다. 한국의 바른 전력 정책을 모색하는 책이지만 글은 딱딱하고 건조한 논문 냄새를 전혀 풍기지 않는다. 시종일관 문학적인 에세이로 풀어낸다. 누구나 쉽게 읽어낼 표현과 문장으로 가되 문학적 품위가 그 안에 녹아들어야 한다는 원칙을 지켜내고 있다.중진작가 이대환, 바른 에너지 정책 제안서 `하얀 석탄` 출간한국·일본, 미세먼지·이산화탄소 포집 기술·설비 완성 단계원전 위험성·태양광 발전 등 대체에너지 비효율성 대안 제시이 책에서 `검은 석탄, 더티 에너지`는 미세먼지, 먼지, 더러운 연기,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오래된 기존 석탄화력발전소`를 가리키고, `하얀 석탄`이란 질산화산소(녹스), 황산화산소(삭스), PM2.5 같은 미세먼지, PM10 같은 먼지, 일반먼지 등을 배출하는 수준이 제로베이스에 가깝고 이산화탄소를 따로 빼돌리는(포집하는) `제3세대 석탄화력발전소`를 가리킨다.한국은 영흥석탄화력발전소 5, 6호기를 가장 깨끗한 석탄발전이라 자랑하는데, 그것은 미세먼지의 배출기준부터가 일본 요코하마 이소코석탄화력발전소에 한 걸음 뒤처져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이소코석탄발전에도 `하얀 석탄`의 자격을 부여하진 않는다. 그것은 `하얀 석탄`의 가능성을 보여주면서 그 출발선에 서 있는 석탄발전, 2세대 석탄발전의 정점에 도달한 석탄발전이라 규정한다.그러면`하얀 석탄`이라 부를 제3세대 석탄화력발전소는 가능한가? 이 책은 `하얀 석탄`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한국, 일본 등 여러 나라의 기술연구와 설비개발이 미세먼지를 거의 완전히 잡아내고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몰려온 이산화탄소를 포집하는 기술과 설비를 거의 완성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기술과 설비를 석탄발전에 장착하는 비용이다.이 작가는 물그 상용화 비용은 현재 전력 생산비가 태양광발전이나 LNG화력발전의 절반에 불과한 석탄발전의 전력 요금에 대한 소비자 부담을 조금 올리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이야기 한다. 그 상승비용은 기존 석탄발전들이 먼지, 미세먼지, 이산화탄소 배출을 통해 야기하는 사회적 비용에 비하면 아주 낮은 수준이고 소비자에게 경제적 부담감을 거의 주지 않는 수준으로 조정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대환 작가이대환 작가는 “작년 경주 강진 이후의 원전 공포와 날로 심각해지는 미세먼지에 대한 국민 불안감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으로 자리 잡았다. `하얀 석탄`은 미세먼지를 없애고, 핵폐기물과 지진 등 원전의 위험성과 태양광발전 등 대체에너지의 비효율성을 보완할 수 있는 전력 정책을 모색하는 책”이라고 전했다. 이대환 작가는 포항 출신으로 1980년 국제PEN클럽 한국본부가 주관한 장편소설 현상공모, 1989년 `현대문학` 지령 400호 기념 장편소설 공모에 각각 당선되면서 작가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고향을 지키면서 포항문학의 성장에 앞장서고 한국 최초의 지역 연구 및 시민운동 종합지 `포항연구`를 주도했다. 시대적 격랑에 휘말려 고투해 나가는 인간의 운명을 집요하게 추적한 장편소설`슬로우 불릿`, `붉은 고래`, `큰돈과 콘돔`과 소설집`조그만 깃발 하나``생선 창자 속으로 들어간 詩`, 산문집`프란치스코 교황 그리고 무지개`등을 펴냈다. 2004년에는 평전`박태준`을 펴내 “외국에서 출간되는 수작(秀作)의 전기에 비견될 작품이 나왔다”는 찬사를 받았다. 현재 계간문학지`ASIA`발행인을 맡고 있다.한편 `하얀 석탄`은 이대환 작가, 윤민호 일본국제금융정보센터 특임연구위원실장(경영학박사), 임재현 경북매일신문 편집국장 등 세 명이 공동기획하고 이대환 작가가 집필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1-25

“자아는 행위의 주체가 아닌 객관적 대상”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1905~1980)의 첫 번째 철학 저작인 `자아의 초월성`(민음사)이 국내 초역 출간됐다. `자아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의 근본 질문에 대해 사르트르는 자아가 행위의 배후에 있는 모종의 주체가 아니라, 의식의 활동을 통일하는 초월적 대상이라고 논한다. 이러한 새로운 자아개념은 자아의 본질이 미리 정해져 있지 않음을 함축한다는 점에서 “인간에게는 실존이 본질에 선행한다”라는 사르트르 사상의 핵심 명제를 예견하고 있다.1933년, 사르트르는 후설을 연구하기 위해 독일로 떠났다. 베를린에서 유학하는 동안 후설의 현상학을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독자적인 의식 이론을 펼친 결과가 곧 1936년에 출간된 사르트르의 첫 번째 철학서`자아의 초월성(La transcendance de l`Ego)`이다. “모든 의식은 무엇에 `대한` 의식이다”라는 사르트르의 유명한 명제가 등장하는 이 책은`존재와 무`라는 현대 철학의 대작을 예비한다.근대 철학은 진리를 탐구하는 도정에서 더이상 의심할 수 없는 확실한 토대를 사유 주체인 `나`에서 찾았다. `나는 생각한다(Cogito)`에서 출발한 데카르트 이래 철학의 화두였던 `나`는 세계 전체를 자기 자신으로 환원하고, 타자를 알 수 없는 것으로 기각할 위험을 늘 수반했다.`자아의 초월성`은 이러한 주관적 관념론 또는 유아론을 비판하며 윤리적·정치적 실천을 위한 새로운 토대를 찾으려는 사르트르의 지향이 초기부터 일관적으로 견지됐음을 보여준다.사르트르에 따르면 자아는 의식 속에 사는 `거주자`와 같은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대상이다. 자아는 의식의 모든 활동을 통일하는 초월적 대상이다. 우리의 모든 상태, 행위의 배후에 존재하는 자아란 허구이며, 자아는 오로지 반성을 통해서만 출현한다는 것이다. 나, 나의 의식, 나의 내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서양 전통과 결별하며 `내적 삶`에서의 해방을 추구한다.`자아의 초월성`의 1부는 칸트에서 시작한다. 칸트는 주지하듯 모든 표상들의 통일 원리로 작용하는 초월적 통각을 상정했다. 사르트르는 이러한 칸트의 해결이 `사실`의 차원까지 미치지 못했음을 지적하며 여기에서 후설의 현상학을 가져온다.이어 2부에서는 자아의 구성이 본격적으로 검토된다. 자아 또는 의식과 혼동되곤 하는 `상태`, `행위`, `성질` 등의 요소를 철저히 분석하는 가운데 사르트르의 자아론이 제기된다.“자아는 모든 상태들, 행위들, 성질들의 통일이라 할 수 있으며, 그 자체 초월적인 것이다. 그리고 자아의 본질적인 기능은 실제로 이론적이라기보다는 실천적인 것이다.”(127쪽)/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1-20

강직·청렴의 표상 성혼의 인간적 삶에 초점

임금을 향해 목숨 걸고 직언을 토해 냈던 강직하고 청렴한 참선비의 표상 성혼의 삶을 그린 `우계 성혼 평전`(민음사)이 출간됐다.성혼은 절친한 친구 율곡 이이와 함께 조선 후기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지만 그 삶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본 시조 “말 없는 청산이요, 태 없는 유수로다….”를 쓴 깨끗한 선비, 성리학의 대가 정도로만 기억된다. 그간 성혼을 조명한 저작이나 논문들도 대개가 그의 학술적 업적이나 문학 세계, 교육 사상 등을 다루고 있다.조선 시대 연구에 매진해 온 원로이자 우리 시대 대표적 국사학자인 한영우 교수는 `우계 성혼 평전`을 통해 “가학(家學)의 전통이 있고, 의식주의 생활도 있고, 건강상의 문제도 있고, 희로애락의 감정도 있는 사람”으로서 성혼의 인간적인 참모습을 보여 주고자 한다. 이러한 삶의 현장을 알고 난 뒤에야 그의 학문과 가치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성혼은 1535년(중종 35년) 청송 성수침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성수침은 조광조의 문인이 돼 벼슬을 포기하고 깨끗한 재야 선비의 길을 걸었는데, 벼슬이 없는 성수침의 삶은 곤궁해 종종 식량이 떨어질 정도로 가난했다. 넉넉지 않은 가세는 아들 성혼에게도 이어져 환곡을 받지 않으면 봄철을 넘기기 어려울 정도였으며, 항상 생활에 곤궁을 느끼고 살았다. 그나마 가솔이 많지 않아 겨우 자립은 했으나 임진왜란 이후에는 그마저도 유지하지 못하고 처참한 말년을 보내야 했다. 왜란 때 집이 불타 버리고 먹을 양식도 없어 절에서 밥을 얻어먹는가 하면 종이로 옷을 만들어 입고 친구에게 옷을 부탁하는 편지를 여러 차례 보내기도 했다.이렇듯 궁핍한 생활에도 성혼은 수십 차례 거듭된 임금의 부름을 거절하고 부귀영화를 멀리한 채 파주 우계의 오두막집에서 후학을 가르쳤다. 그는 절친한 친구 이이에게도 가정 형편을 이유로 벼슬하면 언젠가는 이욕에 매달리는 타락한 선비가 될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게다가 이이의 벼슬살이를 지켜보며 선조가 진정으로 선비를 등용하고 받아들이는 임금이 아님을 알았기에 더욱 조정에 나아가기를 거부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바깥세상에 대해 관심을 거둔 것은 전혀 아니었다. 그는 나라와 백성을 안정시키려는 노력을 한시도 저버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벼슬자리에 갇히거나 당파의 압력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을 꼿꼿이 지킴으로써 임금을 향한 자신의 직언에 더욱 큰 힘을 실을 수 있었다. 결국 성혼의 삶은 선조의 미움과 반대파의 거센 공격 속에 쓸쓸히 끝나고 말았다.저자 한영우 교수는 전작 `율곡 이이 평전`을 저술하면서 이이와 실과 바늘처럼 붙어다니는 또 한 사람, 성혼을 만났다고 말한다. 두 사람은 살아서도 한 몸 같았고, 죽은 뒤에도 함께 문묘에 배향됐다. 성혼은 아버지 성수침의 영향으로 성리학 전도사이자 자기완성을 지향하는 도인의 경지에 이르렀고, 친구 이이의 영향으로 이기설의 새로운 경지와 나라를 경영하는 경세를 터득했다. 성혼과 이이는 학문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가장 가까운 평생 동지였다. 성혼과 이이는 모두 경장의 필요성을 공감했다. 자신들이 처한 시대가 토붕와해(土崩瓦解), 즉 흙이 무너지고 기와가 깨지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하고 시급히 경장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나라가 망할 것이라고 임금을 압박했다. 둘은 여러 차례 만언(萬言)에 달하는 장문의 상소와 경연에서의 서슴없는 직언으로 현명한 인재 등용과 공납제도 개선 등을 임금에게 강력히 역설했으나 뜻을 이루지는 못했고, 그 결과는 임진왜란으로 이어지고 말았다.이 책에서 저자는 성혼과 이이 사이에 오간 교류와 토론을 통해 조선 후기 사회를 연 큰 스승들의 학문과 정치적 식견이 형성되는 과정을 상세히 보여준다. 조선 후기 붕당의 정쟁으로 인해 굳어진 `이이는 노론, 성혼은 소론`이라는 도식에서 벗어나 본래 한 몸이었던 두 물줄기의 원류를 바로 보고, 오직 나라와 백성을 위하는 마음으로 몸과 마을을 불사르고 후학을 길러낸 참선비의 모습을 찾는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1-20

나 자신으로 살아가고자 분투하는 사람들 이야기

2006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이래 11년간 문학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왕성하게 활동해온 작가 명지현의 두번째 소설집`눈의 황홀`(문학과지성사)이 출간됐다. 광고 회사 카피라이터와 방송사 다큐멘터리 작가로도 십수 년간 일해온 이력의 소유자답게 명지현은 다채로운 소재와 과감한 묘사로 `맵고 독하지만 중독적인 이야기`를 구사해왔다. 그는 사회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며 2009년 `작가선언69`에 동참해 용산참사 현장에서 1인 시위를, 2014년 광화문광장에서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릴레이 단식을 하는 등 구체적 실천을 꾸준하게 이어온 작가로도 유명하다. “작가란 기본적으로 서러운 자들의 편”이라는 신념과 “머릿속에 다른 세계가 있어, 글을 쓸 때 너무나 행복하다”는 그만의 개성과 창의력이 만나 명지현의 소설 세계에선 진흙 위에 황홀이 핀다. 비극적이고 고통스런 삶 속에서도 `찰나의 희열`, 눈이 시릴 만큼 찬란한 아름다움이 있음을 명지현 소설은 발견하고 보여준다.이번 소설집에서는 만들고, 부수고, 또 다시 궁극의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매진하는 `호모 파베르(만드는 자)`들, 그중에서도 자기 삶에서 주체성을 되찾고 나 자신으로 살아가고자 분투하는 용감한 존재들의 이야기가 단연 돋보인다. 여전히 어둠 속에 있는 우리의 오늘 앞에 명지현이 펼쳐 보이는 여덟 개의 `다른 세계`, 빛나는 생의 황홀이 열리기 시작했다.명지현은 창작 욕망에 들린 예술가-장인들의 뜨겁고 맹목적인 열정,`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고자 하는 처절한 지향을 오랫동안 공들여 묘사해왔다. 전작들에서 벌레들이 만드는 빛의 회오리를 보겠다고 눈 속에 벌레를 키우다 시각마저 포기해버린 도예가(`충천`)나, 매운 음식에 조금씩 독 가루를 넣어 사람을 홀리는 치명적인 맛을 내는 덕은(`교군의 맛`)이 보여준 예술가들의 광기(狂氣)는 이 작품집에서도 여전히 충격적이다. 표제작 `눈의 황홀`에서는 할머니·어머니·손녀로 이어지는 화장(花匠) 삼대가`진정한 아름다움`을 재현하기 위해 매진하다 못해 `저승에나 가야 본다는 천상의 꽃`을 보려고 자기 목을, 심지어 딸·손녀의 목까지 조르는 괴기한 집착을 다룬다. 지옥에 살더라도 끝내 이루고 말 어떤 경지를 향한 지독한 갈망은 읽는 이를 매료시키고 뜨겁게 한다.작가는 유기된 아이(`실꾸리`), 비혼모(`구두`)처럼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차별받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흙과 실리콘 뼈로 만들어진 인간(`흙, 일곱 마리`)이나 김유정 로봇(`단어의 삶`)처럼 비(非)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마저 빼앗긴 존재들을 이야기 주체로 등장시킨다. 특히`흙, 일곱 마리`에 등장하는 흙-인간들은 전쟁터에 팔려 나와 인간 살상 기계로 소모되던 중 동기들과 다시 모여 흙-고양이로 새로 태어나는데, 이를 통해 하찮다고 여겨지는 존재들을 함부로 학대하고 조종하려드는 문명의 폭력에 적극적으로 저항하려는 강한 의지를 보여준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1-20

삶의 불편한 진실 마주하기, 그러므로 오히려 윤리적인…

▲ 소설가 김살로메“이 소설집을 계기로 마음이 흐르는 대로 소설이 오는 대로 받아 적기로 한다. 소설이란 살아내는 사람의 자연스런 방식 안에서 말해지는 거니까.”- 김살로메 소설집`라요하네의 우산`저자의 말 중포항지역 여류 소설가 김살로메씨가 등단 12년만에 첫 소설집 `라요하네의 우산`(문학의문학)을 펴냈다.`라요하네의 우산`에는 표제작 `라요하네의 우산`을 비롯해 `암흑식당`, `누가 빈지를 잠갔나``강 건너 데이지` 등 10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한 편 한 편이 일정한 성취를 이루고 있는 그녀의 작품들은 섬세한 미문 대신 투박하고도 중성적인 문체로 사회 저변의 다양한 인간상과 관계성, 그리고 개개인의 내면을 다채롭고도 풍요롭게 조명해나간다.세련되고 인공적인 미학이 주조를 이루는 있는 한국단편소설의 조류에서 비켜나 돌밭 길을 가는 듯한 그녀의 소설은 인간 존재의 복합성에 대해 불편할 정도로 들여다보고 있지만, 그럼으로써 오히려 우리가 소설에서 요구하는 진정한 윤리성과 건강함을 획득하고 있다. 소재에서부터 주제에 이르기까지 다루는 영역의 폭이 넓고, 대상을 보는 시선도 거리두기 식 객관성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 객관성은 냉혹하기보다는 심장의 피가 도는 따뜻함이 깃들어 있기도 하다.읽다 보면 이런 재미 때문에 소설을 읽는다는 느낌이 한 번쯤은 찾아오는 소설들이다.김씨가 그리는 인물들은 대체로 우리 사회의 주변인들이자 삶의 저변을 이루는 인간들이다. 작품에 뚜렷이 드러나는 대로 꼽아 보더라도, 알비노증이 있는 약사, 무력한 대학의 시간강사, 영세기업 사장과 직원, 혼자 사는 한지인형 제작자, 불륜에 빠져 있는 간호사, 살인을 주도한 무기수, 매춘을 겸하는 텔레마케터, 시대착오적인 가부장, 불법 의료장, 가난한 영세 상인이나 과외교사, 아르바이트와 인턴을 병행하는 고학생, 성폭행범, 시메트리 증후군 환자, 삼류 시인 등이 줄을 잇는다. 이들의 삶은 생물학적인 본성과 경제적인 유인에 크게 휘둘리고 있으며, 그런 만큼 삶의 비속함과 적나라함을 생생하게 보여준다.작품이 재현하는 현실 또한 풍성한 양상을 보인다. 아마추어 독립영화 모임이나, 장애인 단체, 결손 가정 및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한 사회 교육기관, 북한을 탈출해 나온 새터민 단체, 지방의 문인 모임 등에서, 텔레폰 클럽이나 암흑식당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의 여러 모습들이 망라돼 있다. 이들이 대체로 사회의 이면이나 기층에 해당함은 물론인데, 바로 이렇게 사회의 저변을 두루 형상화하는 것이`라요하네의 우산`의 특징이다.▲ 소설집 `라요하네의 우산`박상준 문학평론가(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는“`라요하네의 우산`은 우리들이 흔히 보는 삶의 현장, 공적으로 이야기되는 사회상과는 거리가 멀다 할 수 있는 장을 찾아내어, 이렇다 하게 내세울 것이 없는 인물들을 다양하게 등장시키고 있다”면서 “배경 자체가 전적으로 사회의 주변부라 할 수는 없어도 인물들의 삶을 보면 주변부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들에 시선을 주어 작품화하고 있는 것”이라고 평했다. 그는 “그 결과 `라요하네의 우산`을 통해 작가가 축조해 낸 것은 우리 사회의 비루한 삶들이 빚어내는 판타스마고리아(fantasmagoria) 곧, 환영과도 같은 변화무쌍한 광경”이라고 작품 해설에 적었다.김살로메 작가는 안동 출신으로 경북대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했으며 2004년 영남일보 신춘문예에`폭설`이 당선돼 등단했다.한편 김살로메 작가는 18일 오후 6시 30분 포항 티파니웨딩홀 3층 티파니홀에서 소설집 `라요하네의 우산`출판기념회를 갖는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