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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말하는 사랑은 두 존재의 융합이 아닌 함께이며 동시에 각각인

윤희정기자
등록일 2017-03-17 02:01 게재일 2017-03-17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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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글씨로 쓰는 것김준현 지음민음사 펴냄·시집
신예 시인 김준현(30)의 첫 시집 `흰 글씨로 쓰는 것`(민음사)이 출간됐다. 시집`흰 글씨로 쓰는 것`에는 `인간적인 것`을 밀어 내려는 척력이 흐른다. 김준현은 인간의 역사에서 가장 뿌리 깊게 고정돼 있던 언어, 종교, 사랑이라는 가치들을 흔들고 의심한다. 그는 쓰였지만 보이지 않는 흰 글씨로, 합의되고 분류된 존재에 대해 `있지만 정말 있는가`라고 질문하는 시를 써 나간다. 인간성에 가 닿기 위해 인간으로부터 가장 먼 곳의 감각을 불러온다는 점에서 김준현의 시 쓰기는 산책이 아닌 순례에 가깝다.

“두 갈래로 나뉜 이어폰이 귀와 귀로 이어져 있다//귀와 귀가/어긋나는 젓가락처럼 어긋하는 가락처럼/다른 귀와 닮은 귀/(….)속으로 이어지는 두 가지 감정을/하나의 감정으로/믿고 사랑하다가 죽겠다고 말하는 단 하나의 감정으로”(`둘의 음악`중)

하나이면서 하나이지 않은 것들에 대해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쓰기. 이것은 시인이 `인간적인 감정`에 대해 부정하며 감정에 대해 말하는 방식이다. 시집의 2부 `둘`의 세계에서 사랑하는 이들은 동일한 기관이지만 단독적으로 존재하는 양쪽 귀나 이어폰처럼 동시에 같거나 다르게 존재한다. 그는 함께인 것들에 대해 말하지만 함께 있음에도 각각 단독자로서 지닌 차이와 이질성에 주목한다. 둘이지만 하나가 되고자 하는 것은 사랑의 속성이다. 그러나 시인은 사랑의 속성을 거부하며 사랑에 대해 말한다. 김준현이 그려 내는 사랑의 관계는 두 존재가 하나가 되는 융합이 아니라 함께이면서 동시에 각자로 존재하는 공존이다. 언제나 사랑을 의심했던 섬세한 독자들에게, 이 멀고도 가까운 사랑의 속성을 권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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