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면서도 다 듣는 애인아김개미 지음문학동네 펴냄·시집
`시와 반시`에 시를, `창비어린이`에 동시를 발표하며 등단한 시인은 성인의 언어와 어린이의 언어를 혼용해 독특한 시어를 구사한다.
빛과 어둠의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대비시킨 이 시집에 대해 평론가 황예인은 이렇게 말한다. “`자면서도 다 듣는 애인아`를 읽으며 할 수 있는 일은 이 어둠의 독특한 속성들을 찾아내 기록해두는 일일 것이다. 한 시인이 집요하게 반복하며 그려낸 그만의 독특한 어둠의 무늬를 우리가 배워온 어둠의 이미지들로부터 분리시켜 더 선명하게 만드는 일. 때로는 그게 읽는 일의 전부인 것 같다.”
시집은 총 3부로 구성됐다.
각 부의 머리말이 돼준 소제목 `울면서도 웃었어`, `우선 좀 혼탁해져야겠다`, `소리에도 베인다는 말`에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가 그득 배어 있다. 사실 이 시집은 손에 쥔 그 순간 그 자리에서 술술 읽어 넘길 수 있는 그런 유의 시집은 아니다. 한 편 한 편 한 연 한 연 한 문장 한 문장이 아프기 때문이다. 짙기 때문이다. 질기기 때문이다. 상처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현재진행형의 `나`이며 내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황예인 평론가는 해설에서 “이 시집을 김개미 시인의 도저한 사춘기가 오롯이 기록된 뜨거운 일기장이라 부르고 싶”다고 적고 있다.
김개미 시인에게 시인만의 사춘기는 일정 기간 끓어올랐다가 식은 나날이 아니고 평생 계속될 물음표라는 것이 짐작이 되고도 남음이어서이다. 어려서 늙었고 늙어서 어릴 거라는 것. 정답을 찾지 않고 정답을 향해갈 뿐이라는 것. 어쨌거나 마침표로 단정짓는 단아함보다는 물음표로 갈고리를 거는 호기심에 더한 재미를 느낄 거라는 것.
“나는 왜 개미들의 행진을 쫓아가는”(`복숭아뼈에 고인 노을`)지 명백히 이해했다면 쫓지 않는 것은 어른이고 그럼에도 종종걸음으로 쫓고 있는 것은 어린이일 것이다. 동시와 시 모두를 섭렵하고 있는 김개미 시인에게서 독자들이 기대할 수 있는 영역도 아마 그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질, 정의할 수 없는 우리의 나고 감이라는 이야기의 똥줄일 것이다. “무서운 건 쥐/ 쥐는 안 망해/ 할미꽃 뿌리를 던진 항아리 속에서/ 흰 구더기들만 죽어/ 고요하게 풀을 기르지”(`고요한 봄`)라는 시에서 짐직 유추할 수 있듯 비유와 사유의 교차에서 가르침은 하나 없고 말해주고 보여주기에 급급한 겸손함으로 이 시집은 단단히 채워져 있다.
이 시집은 완벽하게 새로운 스타일의 사랑 시집으로 읽혀도 좋겠다. “흐린 날에도 눈이 오는 날에도 우리의 임무는/ 해를 기다리는 것이라는 것/ 해가 떠도 해를 기다리는 것이라는 것”(`하얀 밀림의 시간`)이 바로 사랑일지니 나는 궁금할 따름이다. “왜 아무 때나 한숨을 푹푹 쉬게 되는지. 왜 돌멩이를 걷어차게 되는지. 왜 사타구니가 손을 끌어당기는지.”(`무료한 아이들`). 사랑이라는 알 수 없음, 사랑이라는 설명 불가의 덩어리와 놀기 위해 이 시집은 태어났다. 키보다 빨리 자라는 궁금증을 점점 더 증폭시키며 이 시집은 `놀고 있다`. 이 시집의 건강함은 “매일 한 가지씩 시시한 것들이 생”(`무료한 아이들`)겨나기에 “공벌레처럼 혼자서도 똘똘 뭉칠 수밖에”(`무료한 아이들`) 없게 된 우리들의 생명력이 점점 자생력을 더욱 갖추게 된다는 사실에 입각한다. “나의 역할은 눈코입이 없는 구슬. 차이고 밟혀도 명랑하게 굴러다니는 것.”(`잔인한 동거`)이라지 않은가.
김개미 시인의 `자면서도 다 듣는 애인아`는 시인 안의 어린이가 없었다면 쓰일 수 없는 시집이다. 우리 안의 어린이가 있다면 우리 이야기로 기꺼이 다 읽어낼 시집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