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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경계와 구분이 흐려진 자리 나라고 믿던 내가 지워지고…

`제35회 김수영 문학상`수상 시집`감은 눈이 내 얼굴을`(민음사)이 출간됐다.2014년 `문예중앙`신인상으로 등단한 안태운 시인의 첫 시집이다. 액체처럼 유연하게 읽히는 문장들과 그 문장으로 짜여진 시집 전체가 지니는 견고함이 상반된 놀라움을 선사하는 시집`감은 눈이 내 얼굴을`은 첫 시부터 마지막 시까지 막힘없이 고요하게 흐르는 물줄기 같다. 문장은 정련됐고 이미지는 선명하며 구성은 빈틈이 없다. 안태운의 시는 수면 위의 잔잔함과 수면 아래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는 에너지를 포괄한다. 수면 아래가 궁금해 자꾸만 그 물속을 들여다보게 하는 힘, 그것이 시인 안태운이 보여 주는 그의 `첫` 세계다.“ 그는 안에 있고 안이 좋고 그러나 안으로 빛이 들면 안개가 새나간다는 심상이 생겨나고 그러니 밖으로 나가자 비는 내리고(….)얼굴의 물 안으로얼굴의 물 밖으로비는 계속 내리고 물은 차오르고 얼굴은 씻겨나가 이제 보이지 않고”-`얼굴의 물`에서물의 이미지는 안태운 시집 전반에 걸쳐 `비`, `눈물`, `파도`, `탕` 등으로 다양하게 변주돼 나타난다. `비`로 내리는 물은 구분된 경계를 무화(無化)시키는 존재다. `안`과 `밖`의 경계는 그로 인해 구분지어진 이들에게 자리를 지정한다는 점에서 인식을 고정시키고 안주하도록 만든다. 안태운의 시에서 모든 곳에 내리고 차오르는 비는 `나의 현실과 타인의 현실`, `내부의 내면세계와 외부의 현실세계`와 같은 구분이 세계에 대한 상투적인 이해에 불과했음을 깨닫게 한다. 비는 서 있는 자리에 그어져 있던 경계를 지우고, `나`를 다른 자리로 옮겨 놓다가, 결국은 `나`마저 지워 버린다. 비에 씻겨 나가 `보이지 않는 얼굴`(「얼굴의 물」)은 그 자체로 질문이 된다. 나라고 믿던 내가 지워진 이후, 무엇을 담을 수 있는가. 흐르는 물이 안팎을 허물어 버린 자리에서 이전에 볼 수 없던 생경한 것을 보는 것, 시인은 이 낯설고 불편한 기회를 권한다.“바라는 사람들 곁에서 네가 낳기로 하고 낳게 될 때까지 기다리고나는 사람들 곁에 없었다(….)그런가 하면 사람들은 이내 그것을 그치고 너를 돌아보고 있다 수를 세면서너는 낳기로 하고 그러므로 여덟을 낳고 낳은 후 누워서 바라고 있다 너는 내 얼굴을 찾고 있나 그러나 찾지 못했지 나는 사람들이 되어 울고 있었지”-`낳고`에서흐려진 경계 위에 등장하는 안태운 시의 인물들은 서로 자리를 바꾸며 관계를 분열시킨다. `너는 내 얼굴을 찾고 있나 그러나 찾지 못했지`(`낳고`) 라는 고백은 `너`와 `나`의 구도를 가늠하지 못하게 한다. `네`가 `부서져 나간 자리에 내 몸을 이어 붙인다.`(`원경`)는 진술은 `나`와 `네`가 일치하는 지경에 이르는 이미지를 보여 준다. 안태운의 시는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었던 구도를 전복시키며 묻는다. 나는 누구고, 어디에 있는가. 시 속에서 `너`와 `내`가 일치한 것과 같이 독자는 시인이 건넨 질문을 제 것처럼 여기게 된다. 읽는 자와 쓰는 자의 자리도 어느덧 희미해지는 것이다. 시인은 지난한 세계에 대한 질문과 함께 새로운 읽기를 가능케 한다./윤희정기자

2016-12-23

꽃들은 피다가 멈추고 새들도 그러하지만…

2011년 `내일을 여는 작가`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설야(48) 시인의 첫 시집 `우리는 좀더 어두워지기로 했네`(창비)가 출간됐다. 시인은 등단 이후 줄곧 고통받는 민중의 자리에 시선을 고정한 채 처절한 삶의 경험을 한땀 한땀 엮고 꿰매는 듯한 시적 진성성으로 민중시에 바탕을 둔 새로운 리얼리즘의 시세계를 개척해왔다. 등단 5년 만에 펴내는 첫 시집에서 시인은 냉철한 관찰력과 가슴 밑바닥에서 솟구쳐오르는 뜨거운 언어로 소외된 자들의 궁핍한 삶의 모습과 헛것과 거죽뿐인 음지의 세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여전히 죽음과 폭력이 도사린 억압과 소외의 시대에 맞서 “내면의 어둠을 삶의 온기와 미래의 동력으로 갱신하겠다”는 ”(최현식, 해설) 결연한 의지가 가슴을 울리는 시편들이 “고통을 뚫고 나오는 진실과 희망에 귀 기울이는 태도와 방법을 넌지시 보여” 주는 “참혹하게 아름다운”(김해자, 추천사) 시집이다.“나는 집 나간 고양이/문 닫은 상점의 우울을 즐기는/나는 뚱뚱한 개 새끼/아무거나 처먹고 검게 탄 인형을 토하는//내가 낳은 그림자를 뭉개며 막차를 쫓는/나는 깜깜한 아버지의 온도/가질 수 없는 사랑만 골라 하지//나는 네 발로 뒤로 걷는 수수께끼/두 발로 거짓말을 즐기는/맑은 날은 깨금발로 금을 밟아/두꺼운 질서를 비웃곤 하지//나는 아무것도 포개고 싶지 않은 낮달/오래된 시계가 버린 그늘/잠자리 눈으로 뒤통수만 바라보는/새끼 고양이들을 자꾸만 죽이는”(`문 닫은 상점의 우울`전문)이설야의 시는 고통의 세월을 건너온 비루한 존재들에게 바치는 `수난곡`과 같다. 그의 시에는 “꽃들이 피다가 멈추고 새들이 날다가 멈추”(`성냥팔이 소녀가 마지막 성냥을 그었을 때`)는 어둠속의 세계에서 들려오는 신음 소리로 빼곡하다. 어둠속에서 흰 빛을 찾아 더듬거리는 것이 시인의 운명임을 아는 시인은 “우리는 좀더 어두워지겠지만, 흰 빛들을 끌어 모을 것”(시인의 말)이라고 다짐한다. 그리하여 “혁명을 말하던 책상들”이 “금세 더러워”지고 “햇빛 속으로 망명한 자들”은 “축축한 그림자들을 결국 버”(`레드 멜랑콜리아`)리고 만 이 야만의 시대에 시인은 “모든 경계선을 지워가며” 가슴속에 “새로운 정부”(`날짜변경선`)를 수립하고자 한다. 이제 시인에게 “생의 골목골목은 광장이 되고 광장은 시가 될 것이다”(시인의 말).“내가 머뭇거리는 동안/꽃은 시들고/나비는 죽었다//내가 인생의 꽃등 하나 달려고/바삐 길을 가는 동안/사람들은 떠났고/돌아오지 않았다//먼저 사랑한 순서대로/지는 꽃잎/나는 조등을 달까부다”(`조등(弔燈)`전문)/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6-12-23

욕구와 충족의 끝없는 연쇄에서 탈출하라

현대 프랑스 철학을 대표하는 철학자 알랭 바디우의 `행복의 형이상학`(민음사)이 출간됐다.행복을 말하기 어려운 현실과 만족과 체념을 설파하는 행복론의 홍수 사이에서 바디우가 펼치는 혁신적 행복론이다. 침울한 일상 속에서 빛나는 삶을 획득하기 위해 우리는 스스로 새로운 행복을 선택하고,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행복이란, 주체로 서는 것이다. 지금 이곳 열정과 분노로 가득한 광장에서, 다시는 이전과 같은 세계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우리가 알아야 할 새로운 행복의 정체가 밝혀진다.언제나 한 편의 시, 두 사람의 사랑, 배움의 기쁨, 거리의 시위와 같은 `가까운` 영역에서 진리를 발견해 온 바디우는 사뮈엘 베케트의 시에서 출발한다.“짐승의 썩은 고기 조각 하나도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은. 뭐 입맛만 다실 수밖에. 아니. 조금만 더. 아주 조금만. 이 공백을 열망할 시간. 행복을 알아 갈 시간.”바디우는 말한다. 행복이란 만족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일상적 만족을 주는 자잘한 보상들, 훌륭한 직업, 적당한 보수, 무쇠 같은 건강, 명랑한 부부 관계,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휴가, 유쾌한 친구들, 잘 갖춰진 집, 쾌적한 자동차….”로 이어지는 “평온한 삶”의 목록은 행복과 무관하다. 세계는 기존의 세계 그대로 굴러가기 위해서 기존의 만족에 머무르도록 사람들을 길들인다. 하지만 우리는 욕구와 충족의 끝없는 연쇄에서 벗어나 삶다운 삶, 참된 삶을 추구할 능력이 있다. 그리고 참된 삶을 추구하는 도정을 증명하는 표지가 바로 행복이다. 바디우에 따르면 이렇듯 참(Vrai), 참된 삶(la vraie vie) 그리고 행복 사이의 논리적 필연을 밝히는 것이야말로 철학 고유의 욕망이다. “요컨대 모든 철학은 행복의 형이상학이다.”`행복의 형이상학`은 주저인 `존재와 사건`3부작의 마지막 권`진리들의 내재성`(미출간)으로 가는 여정에서, 행복이라는 감정의 근본적인 위상을 사유하기에 이른 바디우를 보여 준다. 일찍이 랭보가 “진정한 삶이란 없다.”(`지옥에서 보낸 한철`)라고 읊었던 근대 이후, 숱한 사람들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현대인의 숙명과 출구 없는 산문적 현실, 급진적 변화가 차단된 역사에 대해 서술했다. `진정한 삶`, `참된 삶`, `진짜 행복`이라는 말이 조소를 사는 이러한 시대에, 바디우는 우리 모두가 침울한 삶을 빛나는 삶으로 바꾸는 주체로 설 때 행복이 필연적으로 수반된다고 단언하는 것이다.이 시대의 세계적인 철학자이자 급진적인 행동가 바디우는 `진리`와 `주체` 개념을 완전히 새롭게 정립한 것으로 평가된다. 바디우의 행보는 철학사상으로는 허무주의로 귀결되는 포스트모더니즘을 비판하고, 역사적으로는 더 이상 근본적인 변화가 불가능해진 세계에서 실천의 실마리를 찾는 것이었다. 사람들의 삶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철학에 혁신을 요구하며, 누구나 가담할 수 있는 예술, 사랑, 학문, 정치라는 네 영역에서 진리를 발견하는 바디우는 이번에도 학자들 그리고 독자들에게 사고의 자극과 활발한 논쟁을 예비한다.나의 문제를 남에게 떠맡기거나, 자포자기하며 축소되지 않고 스스로 진리의 주체로 일어서기를 촉구하는 바디우는 그러한 과정에서 지극한 행복이 온다고 말한다.“참된 이념의 명령 아래 걸어갈 때 우리는 행복이라는 목적지로 향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6-12-16

인간은, 삶 속에서 길을 잃지만 진실 또한 배우고

2009년 단편소설 `제니`로 문학동네신인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등장한 기준영은 2011년 장편소설`와일드 펀치`로 창비장편소설상을 거머쥐며 매우 돋보이는 소설적 재능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첫번째 소설집 `연애소설`을 묶어낸 이후 3년 만에 선보이는 두번째 소설집 `이상한 정열`(창비)의 표제작`이상한 정열`은 2014년 문학동네 젊은작가상과 문지문학상을 수상했고 같은 해 황순원문학상과 이효석문학상 최종후보로 거론되며 빼어난 수작임을 증명했다. 그리고 2016년, `누가 내 문을 두드리는가`는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으로 선정되고`조이`는 문지문학상 `이달의 소설`에 뽑히며 다시금 기준영 소설의 저력을 과시하기도 했다.격렬한 사건도 고통도 없이 담담한 문체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기준영의 소설은 그럼에도 “삶이라는 이름으로 통과해야만 하는 무한한 어둠”(추천사 백지연)을 고스란히 보여주며 삶의 일면을 예리하게 포착해낸다. 인간은 삶이 덧없다는 것을 뼈아프게 자각하면서도 몸과 마음을 뒤흔드는`이상한 정열`에 몰두하기도 하는 `이상한` 존재이다. `이상함`과 `정열`과 `슬픔`이 삶 속에서 마구 뒤엉킬 때 사람들은 길을 잃기도 하지만 그 혼란 속에서 일견 진실을 발견하기도 한다.총 9편을 수록한 `이상한 정열`에는 과연 어떤 생을 살아왔을까 싶은, 삶의 내력이 궁금해지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어둠을 품고 슬픔을 통과해온 듯한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서늘한 틈새를 가지고 있을 거라 짐작되지만 구구절절한 사연을 풀어놓지는 않는다.`불안과 열망`의 `수경`은 사람들에게는 그저`이상한 여자`로 받아들여질지 모른다. 돌연 결혼을 미루고 그의 약혼자가 신혼여행지로 가고 싶어했던 브리즈번으로 혼자 떠나온 수경은 비행기에서 우연히 만난 남자에게 자신의 직업을 거짓으로 꾸며 말하기도 한다. 신상은 거짓으로 꾸며냈지만 실은 이 모든 순간이 수경에게는 `진심`이다. 그저 진심으로 스스로에게 솔직해졌을 뿐이지만, 약혼자는 수경이 왜 이런 돌발행동을 하는지 어쩌면 끝내 이해하지 못할지 모른다. 수경은 이상해 보이지 않기 위해 자신을 속이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 균형을 잡는 일을 잠시 놓았을 뿐이다.`이상한 정열`은 `무헌`을 사로잡은`이상한 정열`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 열기에 어떤 합당한 이유가 있는지 속 시원히 말해주지 않지만 말해지지 않은 것들이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해주는 작품이다. 무헌은 서른에 만나 7개월을 사귀고 헤어졌던 여자 `말희`와 근 20년 만에 재회한다. 중년이 돼 버린 무헌은 말희를 향한 때늦은 정열에 사로잡히는데, 그는 자신의 인생이 텅 빈 채로 무엇인가를 그냥 건너뛰어버렸다고 느낀다.`4번 게이트`의`나`는 의붓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이내 엄마가 편지 한장을 남겨놓고 집을 나가자 친오빠가 아닌 `오빠`와 단둘이 남게 된다. 오빠는 “멍청하고 안타깝게 느껴지는 구석”(68면)을 가진 스물여덟 남자인데 `나`는 그런 오빠에게 이상한 다정함을 느낀다.한편 기준영은 소설 속 인물들의 모습을 세련되고도 담담한 문체로 그려내며, 그들이 자기 삶의 균열된 지점을 어느정도는 받아들였으리라 짐작하게끔 만든다. 그들은 인생의 어느 기로에서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선택을 하기도 하고, 이상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 길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기도 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6-12-16

세계적 비즈니스 리더 40인의 최고 경영전략 `심플함의 법칙`

`싱크 심플- (비즈니스 리더 40인이 선택한 최고의 경영 전략)`(문학동네)의 저자 켄 시걸은 17년간 스티브 잡스 곁에서 애플의 광고와 마케팅을 이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아이맥과 아이폰으로 대표되는 `아이(i)` 시리즈의 창안자이기도 하다. 그는 전작 `미친듯이 심플`에서 스티브 잡스와 함께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애플의 잇따른 혁신을 가능케 한`심플함`의 11가지 법칙을 제시했다. 그후 켄 시걸은 같은 길을 가고 있는 세계 각국의 비즈니스 리더 40여 명과 만났다. 현대카드, 밴앤제리스, 홀푸드, 컨테이너스토어, 스터브허브, 웨스트팩 은행 등 제조업부터 유통, 금융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의 대표였다. 그들은 모두 심플함의 법칙이 자사의 성장에 어떻게 도움이 되었는지, 경쟁사들과 어떻게 격차를 벌렸는지에 대해 확고한 견해를 지니고 있었다.`싱크 심플`은 심플함의 법칙을 도입해 성공한 현장의 사례를 두루 소개한다. 목표와 가치관, 내부조직, 브랜드, 규모, 소비자충성도까지, 심플함은 모든 비즈니스 분야에 적용가능하다.△심플한 사명(社命)과 문화가 먼저다△가치관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라△심플한 브랜드 하나가 회사를 살린다△저항을 줄이는 전략을 세워라△숫자보다 본능을 따르라수천 명의 직원들이 근무하는 글로벌기업의 프로세스를 단순화하기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복잡함이 있는 곳에 기회가 있다. 켄 시걸은 복잡하기로 이름난 금융업계에서 심플함의 전략을 멋지게 성공시킨 사례로 현대카드의 정태영 부회장을 든다. 정태영 부회장이 처음 현대카드·현대캐피탈에 부임했을 때 두 회사의 손실액은 8천960억원에 달했고, 32종 이상의 신용카드 상품을 판매중이었다. 정 부회장은 특징에 따라 신용카드를 단 4종으로 줄였다. `심플함`을 전 회사가 추구해야 할 문화로 삼고, 상품 디자인·의사결정 체계·사무공간을 이에 기반해 변화시켰다. 복잡한 요소를 제거하자 고객들은 자신이 원하는 상품을 손쉽게 선택할 수 있었고, 현대카드는 소비자와의 단단한 연결고리를 확보하게 됐다.심플함이 그렇게 강력한 힘을 지녔다면, 왜 더 많은 기업들이 심플함의 법칙을 적용해 비즈니스를 운용하지 않을까? 아마 대부분의 기업들이 확실한 데이터 없이는 중요한 결정을 내리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즉각적인 투자수익률을 증명하는 수치 없이는 어떠한 프로젝트도 시작하지 못한다. 이 책의 리더들은 공통적으로 리더에게는 개인적인 신념을 기반으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본능, 그리고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본능은 마음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전 생애에 걸친 교육과 경험, 승리와 실패로부터 얻은 배움에서 얻어지는 능력이다.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고객의 관점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기업에 대한 애착은 생각보다 작은 부분에서 형성된다. 소비자경험까지 심플함의 원칙을 적용하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6-12-16

삶의 마침을 참관하며 몸의 욕망을 내려놓고…

신문기자를 거쳐 번역가, 문학평론가, 출판 편집인으로 활동하며 한국문학의 역사를 함께 해온 원로 김병익(78)씨의 서평칼럼집 `시선의 저편-만년의 양식을 찾아서`(문학과지성사)가 출간됐다. 이 책은 2013년 여름부터 한겨레에 `특별 기고`라는 이름으로 써온 글들을 엮은 것으로, 은퇴 후 마음대로 읽고 쓰고 생각하며 누려온 시간의 기록이다. 이 글들을 써오는 2013년부터 2016년의 시간은 저자가 76세에서 79세에 이르는 시간으로 고요하고 한적한 시간일 듯하지만, 그사이 `나이 듦`의 죄 많음을 증거하듯 고통스럽게`어린 죽음`을 목격해야 했고, 50년 지기 친구를 앞세운 허탈함과 함께 `비수(悲愁)`의 한스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저자는 책 읽는 일상을 지속할 수밖에 없었는데, “자유롭지만 방만하며 넓지만 얕고 나직하지만 수선스런 글꼴”이라는 저자의 겸허한 고백은 아마도 그렇게 스쳐온 `현재` 시간을 무겁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이 책은 특히 저자가 그사이 읽은 70여 권의 목록을 꼼꼼하게 기록하고 있는데, 그 목록은 소설에서부터 과학 교양서, 경제학 이론서와 생과 죽음을 고백하는 자서전에 이르기까지 다양해, 지치지 않는 `탐서`의 마음과 함께 오래 품은 생각도 `책`을 통해 의심하고 자신을 바꾸려는 `배움`의 자세를 엿보게 한다.아직 연재 중인 시점에서 책을 서둘러 내는 것은 초등학교 동창으로 만난 아내와의 결혼 50주년(golden wedding, 금혼식)을 기념하기 위함이라는 수줍은 고백도 이 책을 더 아름답게 만들어주고 있다.이 책은 `사유의 도구`로서의 책의 쓰임을 여실하게 담고 있다. 산업화, 과학화, 도시화의 시대에 `발전`을 지지하는 의견과 그것의 위험성을 폭로하는 의견의 책을 고루 읽으며 저자는 이쪽도 옳고 이쪽의 말도 맞다는 딜레마에 부딪힌다. “언젠가 우리는 내핍생활을 하거나 아니면 붕괴의 길을 택해야 할 것이”라는 무서운 경고의 말을 피할 길이 없지만 산업화의 혜택을 과거의 `제로 상태`에서 현재의 `풍요 상태`까지 목도해온 저자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일 것이다.이렇게 저자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의견을 모두 경청하듯, 스스로를 긴장의 줄타기로 내모는 독서를 즐기는 것이다. 또한 전혀 다른 성격의 두 사람이 이끈 독립운동(`이승만과 김구`)을 생각하며 어떤 주의주장도`하나만`이 옳을 수 없다는 것과 아무리 오래 다듬은 생각도 시대에 맞지 않거나 잘못된 점이 발견되면 수정돼야 할 것을 고백기도 하는데, 이런 모습은 저자만의 삶에 대한 정직한 태도와 방식을 잘 보여준다.저자는 “그이는 오랫동안 최선의 삶을 살았고 일부러 음식을 끊음으로써 위엄을 잃지 않은 채 삶을 마쳤다”(`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는 헬렌 니어링의 고백을 읽으며 무심한 삶을 졸여오는 죽음의 숭고를 실감하기도 한다. `삶의 마침`을 참관하며 “몸의 욕망을 내려놓고 내면의 고요함을 끼워 넣기”를 권하고 이유이다. “누구도 경험할 수 없는 죽음은 고통스런 불안이고 일상으로 겪는 노화는 애달픈 불평이어서, 나이 들수록 게으르고 무모해지는 타성에 이처럼 아름다운 평정의 마음을 바라는 것”이 과람한 욕심이라고 말하지만,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나이를 거스르려는 괴물스런 노력보다는 고요와 안식을 기도하는 이런 자연스런 노화에서 진정한 생의 아름다움을 느낄 것이다./윤희정기자

2016-12-09

버지니아 울프·헤밍웨이·호손… 한손에 잡히는 고전 5選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은 출판사 민음사가 세계 문학 거장 전집에 바탕한 새로운 총서 `쏜살 문고`를 최근 펴냈다.지난 1998년부터 350여 권에 이르도록 전 세계의 문학을 국내에 널리 알리고, 시대를 초월한 고전을 정확한 우리말로 소개해 온 `세계 문학 전집` 중에서 끊임없이 사랑받아 온 다섯 명의 작가를 선정해, 그들의 작품을 새로운 편집과 디자인, 좀 더 가벼운 가격으로 펴냈다. 한 손에 잡히고 휴대하기 용이한 판형과 완독의 즐거움을 선사해 줄 200쪽 안팎의 부담감 없는 분량, 아이부터 어른까지 누구나 가볍게 구입해 읽을 수 있는 합리적인 가격과 세월에 구애받지 않는 참신한 디자인, 이와 더불어 민음사가 줄곧 지켜온 양서(良書)를 향한 집념과 인문학에 대한 열정까지 빠짐없이 담아냈다.이번에 선보이는 5권의 작품은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 F 스콧 피츠제럴드의 `리츠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 너새니얼 호손의 `미를 추구하는 예술가`, 어니스트 허밍웨이의 `깨끗하고 밝은 곳`, 토마스 만의 `키 작은 프리데만 씨` 등이다.민음사 측은 “쏜살은 1966년 창립된 출판사 민음사의 로고 `활 쏘는 사람`의 정신을 계승한 작은 총서입니다. 가벼운 몸피에는, 이에 어울리는 인생의 경구, 때로는 제법 묵직한 사상과 감정을 담았습니다. 우리의 활시위를 떠난 화살들이 아름다운 글줄로 독자의 가슴에 가닿기를 희망합니다”라고 밝혔다.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서두를 필요가 없습니다. 재치를 번뜩일 필요도 없지요.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려고 할 필요도 없고요.”(`자기만의 방`부분)20세기 페미니즘 비평의 선구자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은 수많은 에세이와 소설을 남긴 버지니아 울프의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이긴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한 작가의 대표작이라고 말해 버리고 말기에는 부족한, 이를테면 `여성 문학`을 총체적으로 다루면서 그 미래를 밝힌 글이기도 하다.버지니아 울프는 묻는다. 왜 언제나 남성들만이 권력과 부와 명성을 가지는가? 여성은 아이들 말고는 가진 것이 없는데…. 그리고 주장한다. 만약 여성이 자유의 문을 열 수 있는 두 가지 열쇠를 찾을 수 있다면, 미래에는 `여성 셰익스피어`가 나올 수 있으리라. 그 두 개의 열쇠는 바로 고정적인 소득과 자기만의 방이다. △ F 스콧 피츠제럴드 `리츠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그래, 모든 이들의 젊음은 꿈이야.” -F. 스콧 피츠제럴드`리츠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에 담아진 미국문학의 거두 피츠제럴드의 단편 소설 다섯 편은 파란만장한 작가의 일생을 보여 주는 동시에 `재즈 시대의 메아리(호황과 대공황의 풍경)`를 고스란히 들려주는 작품들이다.그의 대표작 `위대한 개츠비`에선 영웅적으로 그려진 재즈 시대의 사랑과 비극이, 이들 단편 소설에서는 취기가 가시고난 다음에 찾아오는 현실 감각처럼 통렬하게 드러난다. 이어서 `기나긴 외출`은 매우 짧은 소설이지만 피츠제럴드의 재능이 유감없이 발휘된 서정적인 소품이다. 그리고 이 책의 표제작 `리츠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는 피츠제럴드의 뛰어난 상상력과 재치 있는 스토리텔링이 한데 섞인 놀라운 작품이다. △너새니얼 호손 `미를 추구하는 예술가`“진정한 아름다움…. 넌 내 가슴에서 떠난 거야. 다시 돌아올 수는 없어.” - 너새니얼 호손너새니얼 호손은 19세기 초 미국 소설의 든든한 초석을 세우는 데 크게 기여한 미국 낭만주의 소설가다. 에머슨, 소로 등이 인간 정신과 인류의 진보를 신뢰한 데에 반해, 호손은 어두운 내면적 삶, 무의식의 세계, 죄와 악의 문제 등 이른바 인간이 지닌 `검은 힘`을 놀라운 상상력으로 집요하게 탐험한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깨끗하고 밝은 곳`“필요한 것은 밝은 불빛과 어떤 종류의 깨끗함과 질서야.” -어니스트 헤밍웨이`깨끗하고 밝은 곳`에 실린 다섯 편의 단편들은 건조하고 단단하게 보이는 `하드보일드 문체`의 아래에 감춰진,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헤밍웨이 문학의 속살을 들여다보고, 바다 속에 잠긴 빙산의 뿌리를 탐사하는데에 더없이 훌륭한 길잡이가 돼 줄 만하다. 특히나 매우 짧은 글이지만 제임스 조이스의 말대로 걸작 반열에 오른 `깨끗하고 밝은 곳`을 읽어 보면, 헤밍웨이 특유의 정돈된 문체와 선명한 주제 의식이 정교하게 짜여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그리고 인생이라는 게임에서 끝내 파멸할 수밖에 없는, 그러나 결코 패배하지는 않는 인간 존재의 위대한 힘을 그린 `킬리만자로의 눈`과 `프랜시스 매코머의 짧지만 행복한 생애`는 헤밍웨이의 대표적인 장편 소설들을 압축해보여 주는 듯한 수작이다. △토마스 만 `키 작은 프리데만 씨`20세기 독일 문학의 정점이자 가장 위대한 소설가 토마스 만의 초기 단편 소설은 친가와 외가, 시민성과 예술성, 북독일과 남독일 등 서로 다른 두 세계의 긴장 관계가 빚어낸 산물이다. 훗날 대가가 될 싹을 보여 준 첫 작품 `타락`과 작가의 핵심 모티프라고 할 수 있는 삶과 예술의 갈등 문제를 오롯이 담아낸 `키 작은 프리데만 씨`는 토마스 만의 문학 내부로 들어서는 데에 훌륭한 길잡이가 돼 줄 것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6-12-09

여성이므로 느끼는 모종의 불안

일상에서 감지되는 불안의 기원을 천착하는 신인작가 강화길의 첫 소설집 `괜찮은 사람`(문학동네)이 출간됐다. 그는 201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할 당시 심사를 맡았던 소설가 황석영, 최인석으로부터 “꾸밈없이, 흔들리지 않고 인물과 주제를 탐구해”나가는 작가라는 평가를 이끌어냈다. 갓 작품활동을 시작한 시점에 이미 “주제를 장악하는 힘”을 내재하고 있었던 믿음직한 소설가가 탄생한 순간이었다.이후 강화길은 그 힘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86년생 여성으로 살아오며 느꼈던 모종의 불안감을 생생하게 재현해낸 `가상현실`로서 자신의 소설세계를 구축하는 중이다. 그런 만큼 이 책에 수록된 8편의 소설 속 장면들은 동시대 여성의 일상 경험과 맞닿아 있다.표제작`괜찮은 사람`은 결혼을 약속한 연인과 함께 살 집을 보러 떠나는 `나`의 이야기로, 공간적 배경이 시종일관 남자의 차 안으로 고정돼 있는 독특한 작품이다. 며칠 전, 남자는 `나`를 (실수로) 밀쳐 다치게 했는데 상처를 돌봐주려는 남자의 배려는 오히려`나`를 불편하게 만들 뿐이다. 팔을 들어올리는 것 같은 남자의 사소한 행동들마저 위협적으로 느낌에도, `나`는 왠지 남자에게 거절을 할 수 없다. `나`를 다치게 했던 그의 행위가 정말 실수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6-12-09

하이드리히 암살 전말 생생히

히틀러의 후계자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암살사건의 막전막후를 담은 장편소설 `HHhH`(황금가지)가 출간됐다.`HHhH`는 프랑스 공쿠르상과 일본 서점대상 해외도서 부문 1위, 미국 비평가 협회상 파이널 리스트 선정을 비롯해 뉴욕타임스, 가디언, 르몽드 등 전 세계 유수 언론매체의 극찬을 받으며 화제를 불러모았다.저자 로랑 비네 스스로 `토대 소설(infra novel)`이라고 명명한 `HHhH`는 실존 인물과 역사적 사건, 오디오와 속기 자료를 토대로 에피소드와 대사를 구성하고, 여기에 저자의 취재 및 집필 과정까지 소설로 담아내 이전에는 볼 수 없던 새로운 역사 소설을 선보였다.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친위대 내부 정보기관의 책임자로서 나치스의 정치 공작과 비밀 작전을 모두 지휘하는 천재적 역량을 발휘한 인물이며, 인류 최악의 사건으로 불린 유대인 말살 계획을 주도한 인물이기도 하다. 친위대 사령관은 히틀러였지만 사실상 모든 작전은 하이드리히가 지휘했기 때문에 당시`히틀러의 두뇌는 하이드리히라고 불린다`라는 말이 항간에 떠돌았다고 한다. 하이드리히 암살작전은 영화 `새벽의 7인`의 소재가 된 적 있으며, `HHhH` 역시 세드릭 히메네즈 감독에 의해 영화화 돼 2017년 개봉 예정이다.로랑 비네는 초반부터 `실존 인물과 실제 사건이 아니면 쓰지 않는다`는 기준을 정해놓고 소설을 집필한다.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와 나치, 그리고 당시 국제 정세를 상세히 사실에 입각해 묘사하는데, 이때 저자는 소설 집필을 위해 사건 현장을 방문하거나 관련 인물을 인터뷰하는 과정, 때론 오디오 자료나 속기 등을 토대로 정확한 대사를 소설에서 구현할 방법에 대한 고뇌, 역사 속 인물들의 행동과 결과에 대해 주관적 견해까지 그대로 글로 담아낸다. 저자는 이를 통해 독자에게 압도적인 현장감을 주는 한편, 이전 역사소설에서 볼 수 없던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낸다. 특히 작품의 마무리에 이르러, 저자는 상상력만으로 집필된 짧은 소설적 구성을 추가함으로써 역사적 진실과 작가의 상상력이 교차되는 순간 배가되는 감동과 놀라운 경험을 독자에게 전한다. 이러한 시도는 큰 화제를 불러모았으며. 영국의 `가디언`은 `힘이 넘치는 엔딩`이라 평가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6-12-02

“점점 홍학으로 변한다 햄버거 가게 노인은 내 천적 물수리다”

신인작가 오한기(31)의 첫 장편소설 `홍학이 된 사나이`(문학동네)가 출간됐다.2012년 `현대문학`신인상으로 등단한 그는 2015년 첫 소설집 `의인법`을 출간한 바로 다음해, 등단 10년 이하의 젊은 작가들이 한 해 동안 발표한 중단편소설 중 가장 뛰어난 일곱 편을 선정해 시상하는 제7회 젊은작가상에 단편소설 `새해`가 수상하면서 작품세계를 알렸다.`홍학이 된 사나이`는 2013년 모바일진 `서울생활`에 6화까지 연재되다가 중단됐고 2년 후인 2015년 `언리미티드에디션―서울 아트북페어`(독립출판물 마켓·페스티벌)에 참여한 후장사실주의자들의 문예지 `매널리즘` (analrealism vol.1)에 전재되면서 그 온전한 모습을 드러냈다. 500매에 조금 못 미치는 경장편 분량의 이 소설은 질서정연한 논리와 인과관계는 없지만 신선하고 힘과 매력이 있다는 평을 듣는다. 홍학, 그 붉은 동물로 변해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초현실적 스토리에 시 형식의 독백이나 대화가 자주 등장한다.▲ 오한기 작가나는 홍학이다. 외삼촌에게 물려받은 펜션 110호에 살며 글을 쓰는 나는 점점 수컷 홍학으로 변한다. 펜션 근처 원자력발전소를 둥지로 여기지만 햄버거 가게 노인은 원전 철거를 주장한다. 나는 노인을 홍학의 천적 물수리라고 생각한다.나는 저수지 보트에서 잠자는 소녀를 발견한다. 이름은 DB.`디럭스 버거`의 줄임말. 죽기 전에 이 세상 모든 햄버거를 먹어보는 게 소원이라는 DB는 원자력발전소에서 일하던 아버지를 잃고 물수리의 도움을 받는다. 햄버거를 공짜로 만들어 주던 물수리의 도움은 곧 끔찍한 학대로 바뀐다. 나는 도망쳐 나온 DB를 지키려 하고 물수리는 나를 계속 찾아온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6-12-02

부재와 소멸을 생의 일부로… 미완을 긍정하며…

“상처 많은 삶이라도애써 별일 아닌 듯 상처들을 살다 가게 했다.이젠 내보일 만한 상처 하나 흠집 하나 남아 있지 않다고?두 손으로 무릎을 탁 치게.”황동규 시 `무릎` 부분원로 시인 황동규(78) 시인의 열여섯번째 시집`연옥의 봄`(문학과지성사)이 출간됐다.시인은 1958년 `현대문학`추천으로 등단한 이래 지난 58년간 존재와 예술, 세계를 향해 질문하는 절실하고 독한 시 창작 여정을 계속해왔다. 미당문학상·대산문학상·호암상 등 국내 굴지의 문학상을 수상한 이력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적인 사랑 노래”로 꼽히는 `즐거운 편지``조그만 사랑 노래` 등의 시로 알려진 대표적 서정시인이다.이번 시집에서는 `연옥의 봄`연작 네 편을 포함한 총 77편의 시가 묶였다. 직전 시집 `사는 기쁨`에서 꺼져가는 삶도 생명의 진행 과정에 있음을, 살아 있는 한 생명이 다 하는 날까지 “아픔의 환한 맛”을 달게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삶의 숭고를 표현했다면, 이번 시집에서는 일상적인 부재와 소멸의 `사소함`을 생의 일부로 수용하고, 삶과 죽음을 아우르는 `기다림의 자세에 대한 생각`을 심화해간다. 미완을 스스럼없이 긍정하며, 시 안에 살아 숨 쉬는 인간과 삶의 미묘한 섬광을 담아내고자 꾸준히 들여다보고 사유해나가는 황동규 시인의 열정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잔눈 맞고 밟으며 왔다.어느 결에 눈이 그치고달도 별도 없는 바닷가파도도 물소리도 없다.먼 데서 울던 밤새 소리도 없다.어둠 속에서 혼자 불빛 비추고 있는 등대나무 몇만 사는 조그만 섬도 길 잃은 배도 없는수평선마저 없는 바다를 천천히 훑고 있다.더 없는 것은 없냐? 반복해 훑고 있다.가만, 마음에 모여 있던 생각들 다 어디 갔지,자취 하나 남기지 않고?순간 가슴 한끝이 짜릿해진다.이 짜릿함 마음의 어느 함에 넣을까?”황동규 시 `바가텔(Bagatelle)`전문눈이 그친 밤 바닷가, 달도 별도, 물소리도 새소리도 없는 이곳은 “없는 것”들의 세상이다. 수평선마저 없는 바다 멀리 어둠 속에서 혼자 빛나고 있는 등대만 오롯하다. “더 없는 것은 없냐?”는 시인의 물음은 현재의 `나`의 실존이 “없는 것들”(부재)에 의해 지탱되는 역설을 피력하며, 문득 심중의 생각으로 눈을 돌리게 한다. “마음에 모여 있던 생각들”이 사라졌음을 깨닫는 순간의 “짜릿함”, 이 `텅 빈 감각의 카타르시스`는 존재를 유지하고 운동하게 하는 부재라는 근본 조건에 대한 이해를 관통한다. 여기서, 이 시의 제목 `바가텔 (bagatelle)`이 `하찮은 것, 사소한 일`을 의미한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이번 시집의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김수이는 이 `사소함`의 기표를 이렇게 분석한다.▲ 황동규시인“황동규는 없음과 사라짐 앞에서 안타까움과 슬픔 등의 감정적 반응에 충실하지도, 의미 부여의 가공 작업에 매진하지도 않는다.한 인간으로서 피할 수 없는 감정과 물음들을 보존하면서도, 없음과 사라짐 자체를 향유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에 몰두한다. 그가 부재와 소멸을 존재가 수시로 겪는 바가텔로 명명한 것은 그것이 정말 사소해서가 아니라, 사소함의 빈도로 부재와 소멸을 살아내야 하는 것이 유한한 존재의 필연적이며 불가역적인 삶의 원리이기 때문이다.”(해설 `연옥의 봄에 눈이 내린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6-12-02

만연하므로 느끼지 못한 소외·공포

제한적이지만 열광적인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로베르트 발저(1878~1956)는 기이한 노벨레의 작가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와 초현실적 사실주의 작가 프란츠 카프카의 중간쯤에 위치하는 신비스러운 존재다. 일찍이 그는 헤르만 헤세, 쿠르트 투홀스키, 로베르트 무질, 프란츠 카프카, 발터 벤야민 등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당대의 대중에게는 그리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다. 오늘날에는 어느 누구보다도 선구적인, 20세기 초반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인정받고 있다.20세기 문학의 새로운 영토를 개척한 수수께끼 같은 작가, 로베르트 발저의 작품집 `산책: 로베르트 발저 작품집`(민음사)이 출간됐다.수전 손택의 말처럼 “카프카가 보여 준 문학에 먼저 가닿았던” 로베르트 발저는 찬란한 문명과 무한한 진보가 약속하는 미래의 환상에 가려 미처 보이지 않았던 `소수자`, `소외당한 개인`, `도구처럼 소모되는 인간 존재`의 모습을 문학 속에 펼쳐 보였다. 게다가 그는 전통적인 서사 구조를 거부하면서 완벽히`새로운 문학의 영토`를 열어젖혔고, 단어를 선택하거나 시제를 사용하는 데에 있어서도 상식을 파괴했다.`산책: 로베르트 발저 작품집`에는 발저의 산문 작품 중에서도 가장 널리 읽히며 나날이 더욱 중요해지는 `산책`을 필두로 작가 본인의 예술관을 결정적으로 보여 주는 `툰의 클라이스트`,`시인`, `작가`와 대표작 `벤야멘타 하인 학교`의 모티프와 주제 의식을 뚜렷하게 살펴볼 수 있는 `어느 학생의 일기`, `그것이면 된다` 등 11편의 다채로운 작품들을 두루 만나 볼 수 있다. 특히 표제작 `산책`은 로베르트 발저의 뛰어난 문학적 성취를 결정적으로 보여 주는 매우 귀중한 작품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6-12-02

방황하는 이 시대 청춘들에게 내미는 이정표

연합뉴스와 수림문화재단(이사장 하정웅)이 신진 작가 발굴을 위해 공동 제정한 제4회 수림문학상 수상작인 김혜나(34) 장편소설 `나의 골드스타 전화기`(광화문글방)가 출간됐다.문학은 시대와 사회상을 그대로 반영하는 거울이기에 청춘의 초상은 최근 출간되는 한국 소설의 단골 메뉴 중 하나다. 주로 젊은 작가의 단편소설을 묶은 소설집에서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장편소설로 이 시대 청춘의 고민과 내면을 깊이 파고든 작품은 찾아보기 어려웠는데,`나의 골드스타 전화기`는 그런 점에서 수작으로 평가되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고 있다.`나의 골드스타 전화기`는 김혜나 작가가 2010년 민음사의 신인작가 공모전 `오늘의 작가상`에 당선돼 등단한 후 5년 이상 다져온 필력을 자신의 20대 시절 분투기에 맞춰 과감하고 도발적인 문체로 완성한 작품이다.`나의 골드스타 전화기`는 명문대 대학원에서 연구 보조 아르바이트를 하는 스물다섯 살 작가 지망생 혜정의 이야기다. 질풍노도의 10대 시절을 거쳐 뒤늦게 대학에 진학해 문학을 공부하며 소설가의 꿈을 키워가는 화자의 성장기에 작가의 자전적 경험을 녹여냈다.`나의 골드스타 전화기`의 주인공 혜정은 지방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뒤 소설가가 되겠다는 각오로 취업은 하지 않고, 패스트푸드점, 식당, 주점, 사무보조, 경리 등 온갖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꿈을 향해 살아간다. 그러던 중 온라인 소설 창작 동호회에서 만난 공대 교수를 통해 대학원 연구실에 업무 보조 일을 하게 되지만 전화를 돌려 학회 참석 여부를 일일이 확인하고 행사를 준비하는 일은 막상 해보니 만만찮았다. 게다가 같은 연구실 대학원생에게 빌려준 소설책이 논문집 사이에서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모습은 충격으로 다가온다. 집안 형편 때문에 학비가 안 드는 카이스트를 나와 명문대에 자리를 잡은 교수가 이제라도 즐기면서 살아야겠다고 한탄하는 모습은 오히려 불쌍하고 초라해 보인다. 아르바이트 일이 끝나자 자신이 소설을 쓰며 이런 삶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 지 회의에 빠진다.젊은 작가 지망생의 답답한 현실과 불투명한 미래가 소설의 큰 주제다.소설은 혜정을 통해 냉정하고 치열한 삶에 지친 외로운 청춘을 위로하고, 고민과 갈등 속에서 성장해 가는 과정을 공감할 수 있도록 세심한 리얼리티로 과거와 현재를 그리고 있다.또 현실 그대로를 바라보면서 쉽게 들뜨거나 절망하지 않고 남들과 비교해 쓸데없는 우월감이나 열등감에 빠지지 않으며 자신의 길을 가는 주인공의 모습은 젊은 독자에게는 든든한 위로를, 기성세대에게는 진지한 성찰의 여지를 준다. 특히 혜정의 모습은 시간이 지나도 여전치 현재진행형인 우리 시대 청춘들의 고민과 맞닿아 있다.▲ 김혜나 작가작가는 무한 경쟁을 해야 하는 냉혹한 현실과 마주한 젊은 세대의 내면을 짜임새 있게 들춰낸다.저자는 좋은 스펙을 가지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을 것이라고 애써 외면하는 우리 시대의 청춘들에게 `또 다른 길`로 가는 이정표를 제시한다.김혜나 작가는 “저와 함께 이 땅에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청년이 눈에는 보이지 않는 자기 안의 이야기를 찾아가기 바라는 마음으로 쓰고 또 썼다”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찾아가는 이 소설의 주인공처럼 독자들도 소설을 읽으며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6-11-25

여자이기 때문에 받아왔던 부당함대한민국은 과연 진보하고 있는가

엄마를 뜻하는 `맘(Mom)`과 벌레를 뜻하는 `충(蟲)`의 합성어인 `맘충`은 제 아이만 싸고도는 일부 몰상식한 엄마를 가리키는 용어다. 그러나 `맘충`이란 호칭은 육아하는 엄마 대부분에게 무차별적으로 사용되며 많은 여성들에게 공포심을 주고 상처를 안겼다. 뿐만 아니라 이 표현은 육아가 마치 여성의 일인 것처럼 인식되게 함으로써 성차별적 시선을 고착화하는 데도 일조해 논란의 대상이 됐다. 조남주 장편소설 `82년생 김지영`은 2014년 말 촉발된 `맘충이` 사건을 목격한 작가가 여성, 특히 육아하는 여성에 대한 사회의 폭력적인 시선에 충격 받아 쓰기 시작한 소설이다. 소설을 쓸 당시 작가는 유치원 다니는 자녀를 둔 전업주부였다. 온라인상에서 사실 관계도 확인되지 않은 상황만 놓고 엄마들을 비하하는 태도에 문제의식을 느낀 작가는 지금 한국을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이 과거에서 얼마나 더 진보했는지, 혹은 그렇지 않은지 질문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기로 했다.슬하에 딸을 두고 있는 서른네 살 김지영씨가 어느 날 갑자기 이상 증세를 보인다. 시댁 식구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친정 엄마로 빙의해 속말을 뱉어 내는 통에 시댁 식구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드는가 하면 남편의 결혼 전 애인으로 빙의해 그를 식겁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남편이 김지영씨의 정신 상담을 주선하고, 지영씨는 정기적으로 의사를 찾아가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소설은 김지영씨의 이야기를 들은 담당 의사가 그녀의 인생을 재구성해 기록한 리포트 형식이다. 리포트에 기록된 김지영씨의 기억은 `여성`이라는 젠더적 기준으로 선별된 에피소드로 구성된다. 발화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녀가 선택한 이야기들이 바로 일생에 거쳐 `여자이기 때문에 받아 왔던 부당한 일들`이기 때문이다.이러한 개인의 고백은 1999년 남녀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이 제정되고 이후 여성부가 출범함으로써 성평등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 이후, 즉 제도적 차별이 사라진 시대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존재하는 내면화된 성차별적 요소가 작동하는 방식을 보여 준다. 지나온 삶을 거슬러 올라가며 미처 못다 한 말을 찾는 이 과정은 지영씨를 알 수 없는 증상으로부터 회복시켜 줄 수 있을까?상담은 자기 고백 형식으로 이뤄진다. 이 소설의 백미도 김지영씨의 자기 고백을 중심으로 드러나는 세밀한 심리 묘사다. `그때 그 상황`에서는 차마 말하지 못했던 것들을 차분히 쏟아 내는 그녀의 말들은 `김지영`을 이 시대 여성의 대변자로 삼기에 충분할 정도로 자세하고 보편적이다. 더욱이 김지영의 이름은 이 시대 젊은 여성들의 삶을 보편적으로 그리기 위한 작가의 전략적 선택이기도 하다. 실제로 1982년에 태어난 여아 중 가장 많이 등록된 이름이 `지영`이기 때문이다. 김지영이라는 개인의 고백을 30대 여성, 나아가 이 시대 여성들의 고백으로 볼 수 있는 이유다.조남주 작가는 2011년 지적 장애가 있는 한 소년의 재능이 발견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통해 삶의 부조리를 현실적이면서도 따뜻하게 그려낸 작품 `귀를 귀울이면`으로 `문학동네소설상`을 받으며 데뷔했다. 신작 `82년생 김지영`에서 30대를 살고 있는 한국 여성들의 보편적인 일상을 완벽하게 재현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6-11-25

현대인의 딜레마는 이성과 믿음의 혼동으로부터…

인간의 의식 수준을 계량화한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책으로 펴내 화제를 모았던 미국의 과학자이자 정신의학자인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미국 정신과 학회의 평생회원이었던 그는 1973년 노벨상 수상자 라이너스 폴링과 함께 펴낸 `분자교정 정신의학`은 이후 수많은 정신과학 연구자들에게 자극을 주는 기념비적 저서가 됐다. 신체운동학 이론을 바탕으로 한 의식 지도의 탄생 과정과 그 의의를 담고 있는 저서 `의식 혁명`을 시작으로 `나의 눈`, `호모 스피리투스`, `진실 대 거짓`, `내 안의 참나를 만나다`, `의식 수준을 넘어서` 등의 저서를 연이어 출간하며 세계적인 영적 스승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2012년 9월 19일 호킨스 박사는 행복과 사랑, 환희, 성공, 건강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깨달음에 이르는 여정이 좀 더 수월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놓아 버림`을 마지막으로 애리조나 주 세도나에 있는 자택에서 눈을 감았다.데이비드 호킨스 박사가 현대 사회의 복잡다단한 지형을 의식 지도로 한눈에 그려내며 올바른 의식 성장의 구체적인 길을 제시하는 책 `현대인의 의식 지도`(판미동)가 출간됐다.`현대인의 의식 지도`는 `내 안의 참나를 만나다`를 시작으로 `의식 혁명`, `놓아 버림`등 국내에 소개돼 온 호킨스 박사의 `의식 연구 시리즈(총 9권)`의 대미를 장식하는 책이다. 특히 이 책에서는 오늘날의 첨예한 정치적·과학적·종교적 쟁점들을 인간의 의식 수준과 마찬가지로 1부터 1천까지 수치화 해 전체적인 담론 및 문화 지형도를 명쾌하게 보여준다.저자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삶이 과거 어느 때보다 더 혼란스러울 수 있다고 전제한다. 과학기술은 나날이 더 많은 정보와 편리한 일상을 제공했지만, 인간의 존재론적 문제들은 여전히 그대로 남아 오히려 더 복잡해졌다는 것이다. 그 근본적인 이유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진실과 거짓을 가르는 기준을 알지 못하고 사실과 의견, 실재와 환상, 본질과 외관을 구분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여기에 과학을 중심으로 교육받은 현대인의 딜레마로서 이성과 믿음이라는 두 층위의 진실을 혼동하는 양상이 덧붙여진다.저자는 이를 진단하면서 무신론자와 신자, 이슬람 대 기독교 등 소위 `문명의 충돌`은 서로 다른 의식 수준의 차이에서 야기된다고 말한다. 이 책은 테러리즘, 연쇄살인, 악에 대한 신격화, 거짓된 정치적 프로파간다를 비롯해 전 세계의 독재, 내전 등 쟁쟁한 문제들을 폭넓게 다루며 역사적·문화적 차이를 가진 다양한 담론과 사회 현상들을 새롭게 바라보도록 이끈다.오늘날 과학과 믿음의 문제는 이제 더 이상 법적인 문제로 불거지지 않지만, 여전히 시원하게 풀리지 않는 매듭으로 남아 있다. 저자는 이러한 `종교로부터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를 둘러싸고 이성과 믿음을 통합하지 못하는 문제를 지적하면서, 이것이 현대인들을 회의주의나 상대주의에 빠지게 하거나 학문·정치·종교적인 사회 문제들로까지 비화된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이 책은 신앙 안에서의 믿음과 세속적 비신앙에 대한 믿음의 문제가 `갈등`이 아니라는 점을 알려주기 위해 쓰였다. 과학과 종교, 영성은 애초에 대립하지 않으며, 맥락을 확장시키면 저절로 해소되는 문제라는 것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6-11-25

정지용 문학 섬세한 아름다움 만끽

“넓은 벌 동쪽 끝으로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얼룩백이 황소가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중략)”- 정지용 시`향수`부분`현대시의 아버지`라 불리는 정지용(1902~1950) 시인의 `향수`는 많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시다. 교과서에 수록된 것은 물론 노래로도 만들어 굳이 외우려 하지 않아도 싯구를 읊을 수 있는 그런 시다.정지용은 현대시의 가장 기념비적인 서정 시인이며, 청록파 시인들을 비롯한 수많은 시인을 발굴해낸 문인이다. 그의 시는 섬세한 언어 감각과 감정의 절제를 통한 생동감 있는 이미지의 창출로 한국 현대시의 기원으로 평가받고 있다.정지용의 작품들을 한데 모은 전집 `정지용 전집`(민음사)가 새로 완간됐다.시, 산문, 미수록 작품 총 3권으로 구성된 이번 전집은 국문학자 권영민 교수가 과거 정본의 오류를 바로잡고, 이후 발굴된 작품을 추가해 정지용의 문학 세계를 총망라했다.정지용은 생전 `정지용 시집`, `백록담`, `지용시선` 등 모두 세 권의 시집과 `문학 독본`, `산문` 등 두 권의 산문집을 펴냈는데, 이들 수록작을 기본으로 신문·잡지에 발표한 원문을 찾아 함께 수록했다.`정지용 전집 1 시`의 경우 각 작품의 원문을 현대어로 표기하고, 발표된 모든 원문을 정밀히 대조, 풍부한 주석을 붙여 나란히 배열해 독자가 정지용 시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면서도 원문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왔다.`정지용 전집 2 산문`에는 정지용의 문단적 위상을 가늠할 수 있는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글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정지용 전집 3 미수록 작품`에는 정지용이 자신의 시집이나 산문집에 수록하지 않은 작품들과 최근까지 새로 발굴된 작품을 총망라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6-11-18

다문화 엄마 36인이 말하는 한국인의 삶과 행복

개인마다 삶의 모습은 각기 다르겠지만,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인생의 목표는 `행복한 삶`일 것이다. 행복은 개인적 측면들, 요컨대 가치관이나`마음 비우기`같은 수양에서 비롯되기도 하지만 개인이 살아가고 있는 시대의 사회적 환경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어쩌면 사회적 존재인 인간에게는 사회적 영향이 더 클지도 모른다.이러한 맥락에서 포스텍 박태준미래전략연구소는 올해 실사구시적인 미래전략연구 주제의 하나로서 `더 행복한 한국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가장 중요한 과제가 무엇인가`를 선정했다.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환경에 초점을 맞추고, 조금 더 나은 사회적 환경을 건설하기 위한 방안에 대해 모색하기 위해서다. 구체적으로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이`불행하다`고 느끼게 만드는 다양한 정치·사회·경제적 문제들을 직시하고 고찰하고자 했다.박태준미래전략연구소(소장 김병현)가 `미래전략연구` 시리즈로 기획한 네 번째 단행본 `대한민국 행복지도`(아시아)는 러시아, 인도, 네덜란드, 베트남, 중국, 미국, 일본 등 한국에 살고 있는 21개국 외국인·다문화 엄마 36명이 경험을 통해 한국인의 삶을 진단했다.유학생, 회사원, 강사, 방송인, 기자, 교수, 사장, 연구원, 작가, 칼럼니스트, 번역가, 통역가, 이주공동체 대표, 다문화활동가, 관광해설사 등 다양한 직업군에 있는 이들의 목소리에는 다정한 질책과 실용적인 제안, 따끔한 충고가 고루 담겨 있다.`대한민국 행복지도`는 제1부 `어떻게 쉴까요?`, 제2부 `무엇을 내려놓나요?`, 제3부 `다문화 엄마들이 말해요`등 총 3부로 구성됐다.제1부는 정치, 경제, 문화, 사회의 다방면에 걸쳐 행복과 쉼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를 담았다. 케냐, 아프가니스탄, 러시아, 에스토니아, 우즈베키스탄, 루마니아, 스페인, 인도, 네덜란드, 베트남, 중국, 부탄에서 온 이들의 목소리다. 유학생, 회사원, 강사, 방송인, 기자 등 다양한 직업군 중 유학생의 비중이 가장 높았다. 한국으로 공부를 하러 온 이들에게서 `행복한 한국사회`의 이면을 듣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제2부는 행복한 사회가 되기 위해 바꾸고 내려놓아야 할 것들을 이야기한다. 미국,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북한, 독일, 우즈베키스탄, 중국, 일본에서 온 이들의 이야기이다. 교수, 사장, 기자, 연구원, 작가, 칼럼니스트, 번역가, 강사, 이주공동체 대표 등 다양한 직업군을 가진 가운데 교수의 비중이 가장 높았다. 시대를 이끄는 지식인들의 격조 높은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다.제3부는 대한민국 행복에 대한 다문화 엄마들의 생각을 꺼내 놓았다. 네팔, 중국, 베트남, 필리핀, 몽골에서 온`엄마`들의 생각이다. 협동조합 임원, 강사, 통역사, 번역가, 이주공동체 대표, 다문화활동가, 기자, 관광해설사 등이 주를 이룬 가운데 통번역 프리랜서가 가장 많았다. 1, 2부와는 조금 결을 달리하는, 직접 겪은 생생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김병현 박태준미래전략연구소장은 “`대한민국 행복지도`는 한국을 사랑하는 외국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어 `행복한 한국사회`로 가기 위한 가장 중요한 과제와 해결책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면서 “무엇보다 국가와 사회의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미래 사회를 조망하고 대응전략을 연구해 사회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적격의 기회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6-11-18

`의도적 일 미루기`는 당신을 여유롭게 한다

하루 24시간, 우리는 누구에게나 같은 시간이 주어진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조금만 더 있다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 이들에게`시간을 2배로 늘려 사는 비결`(문학사상사)의 저자 로리 베이든은 자신만의 시간배가법으로 하루 24시간을 하루 48시간으로 늘려 사는 비결을 소개한다. 세계적인 자기계발 전략가이자 국제적인 교육 기업 사우스웨스턴 컨설팅의 공동 창립자인 로리 베이든은 자기계발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다. 그의`미루는 습관을 극복하고 생산성을 향상하는 데 대한 독특한 통찰`은 오프라 라디오와 폭스 뉴스뿐만 아니라 월스트리트 저널, 석세스 등의 잡지를 통해서도 널리 소개된 바 있다.이 책의 원제는 `Procrastinate on Purpose`이다. 우리말로 옮기면 `의도적인 일 미루기` 정도가 될 것이다. 저자 로리 베이든은 만성적인 과잉성취자(overachiever)는 언젠가 `우선순위 약화` 문제를 꼭 겪게 된다고 말한다. 이들은 엄청난 양의 일들을 빠르게 해치우면서 성공할 수는 있지만 점점 책임져야 하는 일이 많아질수록 당장에 급한 일을 먼저 하느라 정작 중요한 일을 뒤로 제쳐두게 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의도적인 일 미루기`라는 것이다.로리 베이든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통해 해야 할 일을 하나하나 따진 뒤에 우선순위를 정하라고 조언한다.이 일은 △제거할 수 있는가? △자동화할 수 있는가? △위임할 수 있는가? △나중에 해도 되는가? △집중해도 되는가?진짜 우수한 성취자는 오늘보다 미래에 커다란 성공을 가져다 줄 의미 있는 일에 주목한다. 양보다 질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얘기다.로리 베이든은 중요한 사안을 식별하고 거기에 초점을 맞추는 방법을 위해 다양한 접근법을 제시한다. 그는 달력이나 체크리스트 혹은 전자기기를 늘리는 대신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우리가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지 못하는 감정적 원인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여유를 더욱 많이 만들어내면서 더 나은 결과를 얻기 위해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줄 수 있는 다섯 가지 새로운 시간관리 개념 즉, 다섯 가지 `허용사항`을 밝힌다.△일과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우선사항들을 식별하는 법△결과를 희생시키지 않고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할 시간을 더욱 많이 만들어내는 법△중요하지 않은 일에는 “No”라고 말하고 중요한 일에는 “Yes”라고 말하는 법△내일의 시간을 오늘보다 더욱 늘려줄 시스템을 실행하는 법△`멀티플라이어식 사고방식`을 채택함으로써 삶의 통제권과 마음의 평화를 얻는 법/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6-11-18

20살 코피노 주인공의 사랑·가족 발견 이야기

2016년 계간 `창작과비평`창간 50주년 기념 장편소설 특별공모의 당선작인 금태현 작가의 `망고스퀘어에서 우리는`(창비)이 출간됐다.`망고스퀘어에서 우리는`은 필리핀과 일본을 배경으로 갓 스무살이 된 코피노 주인공이 사랑과 가족을 발견하는 이야기로, 한국소설의 참신한 상상력과 힘 있는 서사를 발굴하기 위해 제정된 창비장편소설상이 2년 만에 선정한 수상작이다.“이야기를 잇고 끊는 고유한 리듬을 조성하며 담담한 듯 노련하게 서사를 이끈 점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은 소설은 경계 위에서의 삶을 이례 없이 담백하게 다루면서 새로운 형태의 사랑과 가족애를 설득력 있게 풀어냈다.`망고스퀘어에서 우리는`의 주인공은 한국인 남성과 필리핀 현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인 코피노다. 주인공 하퍼의 한국인 아버지는 도망친 것이 아니라 필리핀에서 어머니와 삼겹살 가게를 하다가 병으로 죽었고, 어머니는 일본에서 재혼해 후쿠오카에 살고 있다. 어머니를 만나러 일본에 간 주인공은 소매치기와 불법 영상 업로드 등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새로운 가족이 꾸려진다`망고스퀘어에서 우리는`의 인물들 특유의 상큼하고 담백한 모습과 삶의 방식 덕분에 혈연으로 엮이지 않은 사람, 죽은 사람까지 모두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은 설득력 있게 전개된다.강영숙 평론가는 “작가가 세련된 감수성과 놀라운 장악력을 발휘해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는 쪽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고 평했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6-11-18

주역 이해로 나아가는 가장 믿음직한 길 제시

주역은 논어 노자와 함께 중국 고전으로 꼽힌다. 본래 이론서가 아니라 각종 시공간적 상황을 설정해 그것에 알맞게 처사하는 지혜를 일러주는 책이다. 중국에서 고문헌학·고문자학·고고학 등 `3고의 대가`라 불리는 리링(68) 베이징대 중문과 교수의`리링의 주역 강의`(글항아리)는 그의 수년간 주역 강의록을 모은 책이다.주역은 서주시대부터 있었던 역경과 이를 후대에 해설한 역전으로 이뤄진다. 흔히 `경`은 점술을 말하고 `전`은 철학을 말했다고도 하지만, 이 둘은 결코 분리될 수도 분리된 적도 없다. 주역은 경과 전의 관계가 특히 긴밀해, 전을 버리고 경만 읽는다면 아무 맛이 나지 않는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역전`의 해석이 주역의 본뜻에 부합하는지 여부는 또 다른 문제다.`경`의 판본부터가 다양해 해석이 분분한데, 리링 교수는 경문의 본뜻에 가까이 가는 길잡이를 제시하고 있다.이 책에서 리링 교수는 왕필본을 저본 삼고, 출토본별 차이를 밝히면서 역경 본문을 해설한다. 수천 년 역학사에 대한 단단한 이해와 문자학·음운학 지식을 바탕으로, 한위당송(漢魏唐宋)의 방대한 주와 근현대 연구가들의 해석을 비교 분별하며 주역 이해로 나아가는`가장 믿음직한 길`을 보여주고 있다.`주역`은 상하(上下)의 두 경(經)과 십익(十翼)으로 이뤄진 책이다. 두 경은 괘효(卦爻) 및 괘사(卦辭)와 효사(爻辭)로 구성돼 있다.8괘(八卦)는 전설상의 인물인 복희씨(伏羲氏)가 점을 치기 위한 수단으로 만들었고, 문왕이 그것들을 중첩시켜(8×8=64) 64괘로 발전시키고는 거기에 담긴 상징적 의미를 글(괘사 또는 단사(彖辭))로 덧붙였으며, 문왕의 아들인 주공이 384개의 효(爻, 하나의 괘는 여섯 효로 이뤄져 있으므로 64×6=384가 된다.) 각각에 역시 글(효사)을 달았다는 것이다.십익이란 「단전(彖傳) 상하(上下), 「상전(象傳)」 상하, 「계사전(繫辭傳)」 상하, 「문언전(文言傳)」, 「설괘전(說卦傳)」, 「서괘전(序卦傳)」, 「잡괘전(雜卦傳)」을 통틀어 일컫는 말로, 괘효의 원리와 순서, 그 철학적 함축 등을 밝힌 공자의 작품으로 알려져 왔는데, 오늘날 학자들은 그것을 후인들의 가필로 간주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6-11-11

`실존과 도덕` 피로 얼룩진 이스라엘 현대사

800만 인구, 한국의 3분의 1 면적의 `소국`에서 역경을 헤쳐 강소국으로 떠오른 나라.2000년 동안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다시 생긴 유일한 나라. 1인당 GDP 2만8천700달러, 인구가 건국 당시보다 13배 늘었고 최대도시인 텔아비브는 미국 다음으로 많은 수의 정보기술(IT) 회사들이 신기술을 실험하고 있다. 바로 이스라엘이다.하지만 올해 건국 68주년을 맞은 이스라엘은 기로에 서있다. 주변에 수많은 적을 둔 태생적 환경 탓에 팔레스타인 문제 등에서 자국 안보 이기주의에 너무 몰입해 보편적 정의를 등지는 길을 걸어왔다는 비판이 높아졌다.최근 출간된 `약속의 땅 이스라엘`(글항아리)은 이스라엘의 저명한 언론인인 아리 샤비트가 자신의 조국에 대해 진솔하고 균형 잡힌 시각을 제시한다.1950년 이후의 역사 중 굵직굵직한 장면을 뽑아 소개하면서 이스라엘과 유대인이 생존을 위해 피로 얼룩진 길을 걸어왔다고 자평한다.그는 자신의 증조부가 영국에서 배를 타고 이스라엘로 건너와 정착한 1897년부터 미국과 이란이 핵 협상을 타결한 2015년까지 약 120년간의 역사를 시간순으로 돌아본다. 저자의 가족사뿐만 아니라 심층 면담, 일기와 편지, 각종 문헌 등 개인적 사건들을 통해 현대사를 재구성한다.저자는 현상황을 새롭게 바라보기 위해 인터뷰, 개인 경험, 사료 등 다양한 자료를 활용해 과거를 조명한다. 이스라엘의 구조적 복잡성과 모순을 진단하며 `실존적 공포`와 `도덕적 분노`의 이중성을 고발한다. 샤빗은 주변국의 침략에 취약한 현실을 직시하는 동시에 1948년 수많은 팔레스타인들을 몰아낸 역사에 도덕적으로 분노한다. 그는 이스라엘의 존재 근거가 된 점령에 대해 “우리 민족, 나 자신, 내 가족을 살리기 위해 했던 더러운 일이었다”고 말한다.이 책은 전쟁과 핵개발, 문화, 종교적 광신, 인구변화 등 이스라엘의 다양한 면모를 다뤘다. 저자는 이스라엘의 평화와 장래에 대해 낙관적이지도 비관적이지도 않다. 이처럼 긴박한 벼랑 끝 삶을 살아가는 것이 이스라엘의 현실이라 그는 결론짓는다.전례가 없을 정도로 대내외적 압력에 직면한 이스라엘은 지금 존재론적인 위기에 처해 있다. 저자는 그래서 자신의 가족사를 서곡으로 삼고 개인적 경험뿐만 아니라 심층 면담, 역사 문헌, 일기와 편지들을 밑바탕 삼아, 개체(부분)의 합보다 더 클 수밖에 없는 이스라엘 전체 역사의 매혹적인 파노라마를 묘사하기 위해, 개인적이면서도 사회적이고 또한 극히 인간적이면서도 역사적 연원이 깊은 시오니스트 국가의 결정적 순간들을 조명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6-11-11

군웅할거 대한민국…`치세의 능신` 등장할까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최순실 국정농단`파문이 연일 이어지는 요즘, 누구나 한번 쯤은 내년 대선이 하루빨리 왔으면 하는 생각을 했을 지도 모른다. 더욱이 시민사회나 잠룡급 대권주자들이 박 대통령에게 더 이상 국정운영을 맡겨선 안 된다고 탄핵·하야를 주저하지 않고 얘기하고 있어 국민들의 마음은 동요되고 걱정스러운 심정으로 이번 사태를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김재욱 고려대 한자한문연구소 연구교수가 최근 펴낸 `군웅할거 대한민국 삼국지`(투데이펍)는 2017 대선을 앞두고 정권을 바꿀 능력이 있는 `야권 정치인`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특히 사실에 근거한 이들의 행적과 삼국지등장인물들의 일화를 절묘하게 비교해 마치 옛날과 지금의 인물이 거울을 대하고 보는 듯해 흥미를 일으키게 된다. 아울러 군데군데에 서려 있는 작가의 신랄하고 진정어린 쓴 소리도 재미를 더하는 요소가 된다.저자 김재욱 교수는 “현재 대한민국 정치 상황은 많은 영웅들이 각각 한 지방에 웅거(雄據)해세력을 과시하며 서로 다투는 이른바 `군웅할거의 시대`다. `난세의 간웅`과 `치세의 능신`의 등장이 절실할 때”라면서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소설 삼국지 등장인물에 현재 대한민국 정치인을 비유해 향후 대선에 승리의 동남풍이 어디로 불지 예측해보고, 바람직한 정치 사회상과 `치세의 능신`, `난세의 간웅`이 누구일지 독자로 하여금 판단하게 하는 책”이라고 소개했다.또 그는 머리말에서 “나는 지난 10년 간 `보수`를 자임하는 정치세력이 `보수`라는 말이 부끄러울 만큼 우리나라 정치 수준을 떨어뜨렸고, 역사를 퇴행시켰다고 보고 있다.아울러 이들은 다수의 서민의 삶을 하루하루 파탄지경으로 몰아가고 있으면서 그 잘못을 모두 `야당`과 `개인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현재 정치권에는 `친박`, `비박`, `친문`, `비문` 등으로 불리는 계파가 존재한다.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조직해 유권자의 분열을 획책하고, 판단을 흐리게 하며, 더 나아가 정치혐오를 조장하려는 의도로 만들어 진 것이라고 하더라도 실제 이와 같은 명칭을 지녔는지는 모르겠으나, 계파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할 것이다. 어찌 보면 정치권에 계파가 없는 것이 오히려 비정상적이지 않은가. 그러나 나는 오늘을`기록`하는 사람으로서 이를 그대로 인정하되, 특정 계파의 시각으로 인물의 삶을 조망하지 않았으니 이점 독자여러분께서 살펴주시기 부탁드린다”고 말한다.이 책에는 대한민국 대표 정치인 20명이 등장한다. 저자는 `유언`에 박원순, `유표`에 문재인, `원소`에 안철수, `공융`에 유승민, `조자룡`에 표창원, `손권`에 안희정을 매칭했다.이 책은 `소설`을 기반으로 삼고, 필요에 따라 `정사`의 내용을 첨가하는 방식으로 삼국지 등장인물의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정사`의 내용은 김원중씨가 옮긴 `정사 삼국지`(민음사)를 참고했고, 필요에 따라 작가가 원문을 번역하기도 했다. 주요한 장면을 위주로 서술하면서도 독자가 해당인물의 생애를 알 수 있도록 노력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6-11-11

기괴하고 뒤틀린 인간 본성을 마주하다

201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조수경 작가의 첫 소설집 `모두가 부서진`(문학과지성사)이 출간됐다.조수경 작가는 그간 발표한 소설들로 호기심을 자극하는 강력한 서사를 구사하는 데 탁월함을 보여줬으며, 인간 사회의 어둡고 추한 민얼굴에 주목하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아왔다. 성인용품 판매점에서 일하는 고독한 장애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등단작 `젤리피시`는 “단순한 유행 감각의 소산이 아니다. 이 작가는 인간의 깊은 내부 세계를 들여다보는 안목을 갖췄다. 또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묘사 능력도 탁월했다”(문학평론가 방민호·소설가 성석제)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이번 소설집에서 작가는 아무렇지 않은 듯 보이지만 모두가 조금씩 부서진 채로 살아가는 우리 일상의 면면, 그 안에 도사린 등골 서늘한 균열들에 집중한다.`모두가 부서진`의 수록작 여덟 편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도시 속에서 각자의 부서짐을 치열하게 경험해 간다.이는 하반신 마비(`젤리피시`)처럼 눈에 보이는 장애에서부터, 눈앞에 직면한 이혼(`유리`), 아버지의 외도에서 기인한 강박적 순결 콤플렉스(`마르첼리노, 마리안느`), 부모에게 버려진 뒤 방향을 잃어버린 청춘(`떨어지다`), 거짓으로 유지된 연인 관계의 파경(`할로윈―런, 런, 런`), 임신 문제를 둘러싼 고부 갈등(`지느러미`) 등 다양한 방식으로 구현된다.사소한 균열은 점차 뚜렷한 붕괴가 되고 이내 걷잡을 수 없이 일상을 망가뜨린다. 결말에 이르러 인간 본성에 존재하는 기괴하고 뒤틀린 면모를 마주하게 한다는 점은 조수경 소설의 특장이다. 특히 작가는 소설 도입부에 종종 꿈을 배치함으로써 이 불쾌한 진실을 고지하곤 하는데, 일반적인 도피처로서의 꿈이 아닌 지독한 악몽을 통해 어떤 각성을 이끌어낸다.문학과지성사 측은 “조수경이 들여다보는 삶의 진실은 왜곡된 욕망에 이끌려 약한 사람이 더 약한 이에게 폭력을 가하고 타인의 불행을 집요하게 캐내며 균열을 은폐해가는 방식으로만 생이 유지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작가는 악몽이야말로 우리가 살아내야 하는 현실임을 분명히 보여주고, 누군가는 완벽한 고독 속에서 이미 분절돼 버린 몸을 다시 잇는 재생의 꿈을 꾸도록 한다. 모두 쉽게 눈감고 합리화함으로써 왜곡된 진실이 세계를 지배하게 된 우리의 오늘에 각성의 안경을 건네준다”고 전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6-11-11

통치의 종말…인간회복의 정치

`말하는 입과 먹는 입`,`제국일본의 사상`의 저자이자, 조르조 아감벤의 `예외상태`, 카를 슈미트의 `정치신학`등 다양한 책들을 번역·소개해온 연세대 국학연구원 김항 교수의 신작 `종말론 사무소`(문학과지성사)가 출간됐다.이 책은 조르조 아감벤, 발터 벤야민, 미셸 푸코, 카를 슈미트, 위르겐 하버마스 등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에 응답하거나 대립했던 위대한 사상가들 간의 논쟁을 교차시키며 분석한다. 그를 통해 근대 통치질서의 실체를 밝히고, 인간의 삶을 `벌거벗은 생명`으로 치환해 통치의 대상으로 삼는 `오이코노미아-생명정치`의 패러다임에 맞서 인간이 스스로를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행위인 `정치`의 가능성을 타진한다.저자는 20세기 이후 서양 정치철학의 근저에 흐르는 종말론적 사유를 들여다본다. 조르조 아감벤은 질서정연한 관리, 즉 오이코노미아(oikonomia)의 통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벤야민을 끌어들인다. 종말론은 인간을 대상화해 권력과 법의 지배를 집행하는`통치`로부터 인간을 존립하게 만드는 고유한 행위인 `정치`를 분리해낸다.이 책은 `종말론 사무소` 이외에도, 벤야민과 슈미트 사이의 숨겨진 논쟁을 논제로 삼아 예외상태를 둘러싼 서구 정치사상의 근원적 대립을 분석하기도 하고, `적`이라는 개념에 대한 칼 슈미트, 레오 스트라우스, 프로이트의 논의를 검토하고 이를 통해 `정치적인 것`의 재구성을 향한 20세기적 상상력의 전용 방향을 제시하는 등 다양한 층위에서 `정치`의 문제에 접근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6-11-04

읽는 이를 아름답게 만드는 힘

박정대(51) 시인의 여덟번째 시집 `그녀에서 영원까지`(문학동네)가 출간됐다.총 43편의 시가 총 200페이지에 담겨 있는데 앞서 출간된 시인의 시집들처럼 읽는 우리를 아름답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다. 시라는 형식의 모양새가 있다면 그 틀을 깨고자 태어난 박정대 시인의 언어들은 때론 덩어리로 때론 파편으로 뭉쳤다가 흐트러졌다가 제 안의 제 음악에 이끌려 제 몸을 부리면서 `자유`를 말한다. “카자흐스탄에서는 말을 타고 검독수리로 사냥하는 사람을 자유라 부른다지// 카자흐스탄의 언어적 관점으로 보면 나는 자유”(`자유`)라고 노래한 시인은 “그게 누구든 그게 무엇이든 자유를 노래하는 건 그들의 자유/ 스스로 꿈꾸고 스스로 노래하는 자유는 만인의 의무”(앞선 시)라며 이 한 권의 시집 속 절제절명의 `멋`을 그 `자유` 안에서 맘껏 부린다. 그와 동시에 읽는 우리로 하여금 `자유`를 온몸으로 통과해보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 시집은 접기보다 밑줄 긋기를 능하게 만드는 재주를 갖고 있다. 한 줄 한 줄 감해 접어가며 읽기도 가능하겠지만, 한 문장 한 문장 무너져 밑줄 그어가며 읽을 때 그 탄복의 푸른 멍은 거기 더 오래 배일 것이다. 말을 좇지 않고 그 말들을 제 뒤로 좇게 만드는 힘, 그건 억지로 부릴 수 있는 완력이 아니다. 쓰는 자와 부르는 자의 묵묵함이 읽는 자와 듣는 자의 심장을 건드릴 때 그건 완벽한 시이자 노래일 터, 주저 없이 그를 베가본드(vagabond)라 칭해본다. 그는 이렇게도 여전히도 청춘의 심벌이다. 그는 이렇게도 여전히도 시가 전부인 사람이다.강원도 정선 출신인 박정대 시인은 올해 등단 26년차를 맞았으며 김달진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대산문학상 등 그간 주요 문학상을 휩쓸었다. 현재 무가당 담배 클럽 동인, 인터내셔널 포에트리 급진 오랑캐 밴드 멤버로 활동중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6-11-04

길과 거리, 그리고 그 안에 담겨 있는 우리의 삶

국내의 내로라는 토목공학 전문가이자, 다수의 교량과 터널 공사에 참여한 김재성 동명기술공단 부사장이 `본격 인문학`이라고 할 수 있는 책을 두 번째로 펴냈다. 지난해 초 나온 `문명과 지하공간`(문화체육관광부 세종도서)이 땅 밑 공간의 확장은 어떻게 문명을 이끌었는가를 역사적으로 살폈다면, 이번에 선보이는 `미로(美路), 길의 인문학`은 `길`을 사유의 대상으로 삼아 역사 속 이야기와 사색을 구불구불 펼쳐내고 있다. 집 나오면 길이라는 말이 있듯, 인간에게 길처럼 평생의 동반자도 없을 것이다. 집에서 자고 길에서 걷는 인간은 산을 깎고 바다를 메워 길을 만들어왔으며, 땅 밑에도 하늘에도 길을 냈다. 출퇴근길도 길이지만 하늘을 나는 새의 길도 길이고, 지하수가 흐르는 길도 길이며, 카톡을 주고받는 비트의 길도 길이다. 그 길의 네트워크를 머릿속에서 한번 그려볼라치면 이 얽혀 있는 난마와도 같은 길이 카르마로 다가오기도 하고,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는 해묵은 명제를 헤아리게 되기도 한다.저자는 이 아득한 길의 교차로에서 우리를 본능적으로 이끄는 매력적인 길을 골라서 총 6부의 목차에 담아냈다. 제1부에서 그 첫 자리에 오는 것은 `생각의 길`이다. 모든 현실적 길이 `생각`이라는 실타래에서 풀려나왔듯이 저자는 길의 시초를 생각에서 찾고 있다. 그리고 그 생각이 모여 있는 공간으로 도서관의 역사를 탐험한다. 바벨의 도서관에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성 카타리나 수도원 도서관에 잠들어 있는 고대의 생각들을 깨우고, 금서의 역사, 책을 불태운 인간들,`장미의 이름 `속 이야기 등을 통해 `생각과 책과 도서관이 만들어내는 미로`속을 거닌다.사유는 이어져 유년의 숲길에 해당하는`동화` 속 길을 다루고 신화 속의 미로의 세계를 엿보기도 한다. 낯선 곳을 향한 생명의 의지가 만들어내는 여러 가지 현상을 길의 원동력으로 살핀`낯선 길을 찾아서`에서는 모나코 나비의 여로, 빙하가 만든 피요르드, 생명에 깃든 정교한 길은 혈관과 신경망을 언급함으로써 길의 지평에 대한 상상력을 촉발시키기도 한다.길을 화두로 삼아 집필을 시작한 저자의 행로는 제2부에서는 `나를 찾아 떠나는 길`을 통해 순례와 종교적 세계에서의 길을 다루고, 제3부에서 `유랑`이라는 인류사의 시원부터 현재까지 인간의 변치 않는 숙명과도 연결된다. 제4부에서 6부까지는 수로와 운하와 옛길을 살피면서 문명화 과정의 실제 역사에서 길이 분화되어온 경로를 더듬는다. 여기서 터널은 길의 경계를 허물고, 다리는 길의 틈을 잇는다.“무언가를 잃어버렸을 때 그것을 찾으려는 첫째 조건은 망각에 대한 기억이다. 잃어버린 것이 무언지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오래 우리가 잃어버린 것에 대해 무관심했다. 나는 인간이 만들어온 길과 거리에 대해 말할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 담겨 있던 우리의 삶에 대해서도 말할 것이다. 무엇보다 아름다움과 정겨움에 대하여 느린 소의 걸음으로 이야기할 것이다. 이 글은 생각을 달리하는 글과 조율하거나 동조하면서 조금씩 아름다운 길은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접근해 갈 것이다. 그 모든 관점과 사색이 글을 읽는 사람의 생각과 동조되면서 도시를 마땅히 있어야 할 곳으로 이끌고 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기를 희망한다.” (프롤로그)/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6-11-04

`인간에게 일은 무엇인가`에 대한 전환적 사유

사람은 평생동안 일을 하며 살아간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사람은 지친다.`일철학`(판미동)은 이처럼 살아가면서 피할 수 없는 `일`이란 행위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기술이나 처세의 측면이 아닌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여주는 책이다.저자 박병원씨는 그 실마리를 서양의 철학이나 이론이 아닌, `중론`을 비롯한 불교의 가르침에서 찾는다. “일이란 단순히 잡(job)이나 `워크`(work)가 아닌, 세상 속에서 사람이 임하는 일종의 액션(action)”이라고 규정하고, “일은 우리 삶의 구체적인 좌표이자 `사람과 세상`을 이어주는 다리이며, 모두가 다 즐기며 피안에 이르는 뗏목”이라고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인공지능(AI)의 등장으로 인간의 본성과 능력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에 직면하고 있는 오늘날, 앞으로의 인간의 일은 무엇이고 그 일을 어떻게 해 나가야 하는지 자각하고, 그에 맞는 자세를 갖추기 위한 실질적 기준을 제시한다.30년 가까이 다양한 현장에서 역동적으로 일하며 독자적인 학문체계를 쌓아 온 `현장(現場) 철학자`인 저자의 날카로운 문제제기, 묵직한 철학적 사유, 미래 지향적인 비전이 담겼다.특히 직업적 의식이나 경제적 가치로 국한되는 일뿐만 아니라 `사회역사적 관계 맺기로서의 일`에 주목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사람과 세상을 잇는 다리로서, 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관계`임을 밝히고, `일자리 창출`보다 시급한 것은`일의 본래 가치 회복`임을 천명하며, 일을 일답게 정립해 사회역사적 건강성을 담아 낼 수 있는 새로운 공론의 장을 함께 고민해 나간다.취업활동이나 효율적인 일의 기술, 직장에서의 처세 등에 매몰돼 정작 내가 지금 하고 있는`일`자체에 대해선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이 책은, 일이란 무엇인지 근본적으로 고민해 보며 좀 더 인간다운 삶으로 이끄는 성찰과 변화의 기회를 제공해 줄 것이다.저자 박병원씨는 이 책에서 “일의 속성은 사람의 존재속성도 아니고, 그렇다고 세계속성도 아닌, 존재와 세계가 소통하는 그 원리를 대변하는 현상적 표상”이라고 말하며, 사람과 세상을 잇는 매개 개념으로서 일의 영역을 정의한다. 이는 철학 일반에서 쓰이는, 무가치한 요소들까지 포괄적으로 포함되는`행위(行爲)`라는 개념과는 다르다. 여기서 `일`이란 사람과 세상 모두에 유의미한 가치를 창출하는 통로가 될 때에만 성립된다. 개인의 행위이지만 동시에 사회적 행위가 될 수 있는, 즉 개인의 욕구가 사회적 합리로 결합되고 승화될 수 있는 구체적이고 보편타당한 행위가 `일`이며, 궁극적으로 그 일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자아실현`을 하고, `사회성`을 획득하며, `역사성`을 만들어 갈 수 있을 때 비로소 일다워진다는 것이다.1부 `고(苦)- 세상의 고통`에서는 저성장, 일자리 대란, 신계급사회, 관료의식 등 우리가 당면한 시대적·사회적 현실의 고통을 진단하고, 2부 `집(集) - 고통의 뿌리`에서는 인간의 내면에 초점을 맞춰 `관계의 상실(무명)·기준의 상실(애욕)·목적의 상실(집착)` 등 개인의 고통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낱낱이 해부한다. 3부 `멸(滅) - 일철학 선언`에서는 관계를 관계답게(무잉여 선언), 가치를 가치답게(타당성 선언), 존재를 존재답게(투명성 선언) 복원하자고 선언하고, 4부 `도(道)-시절의 물결`에서는 기존의`직업적 인간`을 넘어서는 `일이있는 인간`이라는 새로운 인간 유형이 미래사회의 핵심 구성원으로 등장할 것을 예견하며, 앞으로 지향해야 할 구체적인 대안으로 공공, 품류, 체계화 등을 제시한다.저자는 기성의 관습적 조직 생리, 직업적 행태에서 벗어나 개인 스스로 사람과 세상과 일을 근본적으로 재사유하고 깊이 있게 성찰해야 함을 책 전반에 걸쳐 강조한다. 나아가 사고와 인지 능력을 기반으로 나 자신에서부터 모든 행위를 출발하는 `생각하는 인간(호모 사피엔스)`의 시대는 저물고, 앞으로 사회역사적 건강성을 지닌 `일이 있는 인간`의 시대가 다가올 것으로 전망한다. 기능, 스펙, 직무를 중요하게 다루던 과거의 낡은 집단성에 속한 `직업적 인간`을 넘어 이전 조직 사회에서는 보지 못했던 성숙된 개별자들, 즉 `일이 있는 인간`들이 만들어 갈 새로운 집단성(체계화)에 주목하자는 것이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6-11-04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은 흐르고… 파리의 사랑과 낭만을 흠뻑 느끼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은 흐르고 우리의 사랑도 흘러내린다.내 마음 깊이 아로새기리기쁨은 늘 고통 뒤에 온다는 것을.밤이여 오라, 종아 울려라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손에 손을 맞잡고 얼굴을 마주보자우리 팔 아래 다리 밑으로영원의 눈길을 한 지친 물결이저렇듯 천천히 흐르는 동안.밤이여 오라, 종아 울려라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프랑스 현대시의 심장`이라 불렸던 기욤 아폴리네르(1880~1918) 의 시 `미라보 다리`다.그가 미라보 다리를 걷다가 연인 마리 로랑생(1883~1956)과의 사랑을 회상하며 썼다는 이 시는 초현실주의 시인이었던 그의 대표작으로 샹송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화가인 마리 로랑생과의 사랑이 파국을 맞은 뒤에 지은 이 시는 고통스러운 추억을 되새기며 사랑의 종말을 노래한 절창. 기욤 아폴리네르 연구로 고려대 불문학과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황현산 문학평론가가 기욤 아폴리네르 대표시를 가려 뽑은 시 선집 `사랑받지 못한 사내의 노래`(민음사)가 출간됐다.황현산 문학평론가는 아폴리네르를 중심으로 상징주의와 초현실주의로 대표되는 프랑스 현대시를 연구해 왔다. 이 선집에 수록된 작품들은 `신호탄`, `도시와 심장` 외 네 편을 제외하고는 모두 `알코올`과 `상형시집`에서 뽑은 것이다. 대표 시집 `알코올`에서는 자유시의 모범작을 중심으로 시를 선택했으며, `상형시집`에서는 전위적 시론으로서의 시와 잘 만들어진 상형시를 뽑아내 번역했다. 3부 `기타 시편`에서는 최근 프랑스 애니메이션학교에서 아폴리네르의 시편을 바탕으로 제작한 동영상의 원작들을 번역 수록했다. 모든 시에는 치밀한 주석을 덧붙여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도왔다.표제 시 `사랑받지 못한 사내의 노래`는 약 300 행으로 구성된 장시다. 스물한살 나이에 동료 가정교사인 애니 플레이든과 사랑에 빠져 문학성 높은 작품으로 승화시켰다.“잘 가거라 멀어져 가는 여자와지난해 독일에서내 잃어버리고이제는 다시 못 볼 그녀와한데 얼린 거짓 사랑아”―`사랑받지 못한 사내의 노래`에서(25쪽)/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6-10-28

세종로·국회의사당, 왜 열린공간이 되지 못하는가

`건축이 건네는 말`(아트북스)은 건축가 최준석이 길 위에서 건축물을 만나며 폭넓은 상상력과 감수성으로 감응해온 이야기를 직업인으로서, 예술 애호가로서, 생활인으로서 풀어낸 에세이다. 지난 2010년에 `어떤 건축`이라는 제목으로 처음 세상에 나온 이 책은 이후 집을 증·개축하듯 변화한 시대에 맞춰 부족한 부분은 보강하고 덜어낼 부분은 과감히 덜어내고 필요한 부분은 추가해 새롭게 완성했다.지은이는 선유도 공원, 쌈지길, 종로타워,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등 현대적인 도시의 명소에서부터 추사고택, 소쇄원, 선교장 등 전통적인 고택과 구엘 공원, 롱샹 성당,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에펠탑 등 이미 전설이 된 해외 건축가들의 걸작에 이르기까지 총 30곳, 다양한 건축의 세계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그는 어려운 용어를 사용하는 법 없이 건물과 그것이 세워진 지역의 역사를 짚어내고, 건축가의 건축 철학을 들려주며, 예술과 함께 건축물을 바라보며 상상력을 펼치고 장소에 의미를 부여한다. 여기에 `리노베이션` `계단` `마천루`라는 키워드로 엮어낸 세 개의 건축 이야기에서는 풍부하고 흥미로운 해외 사례를 들려주며 국내 건축의 방향을 모색하기도 한다.저자는 글을 왜 쓰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그의 말처럼, 이 책은 건축가가 건축물에 대해 쓴 `조금 다른 이야기`다. 그는 건축에 대해 말하지만, 이야기는 `건축물 안`에만 머무르지 않는다.저자가 건축 이야기로 독자를 안내할 때 가장 즐겨 불러내는 `조수`는 단연 예술이다. 미니멀리즘 건축 기법이 사용된 `김옥길 기념관` 문을 열기에 앞서, 지은이는 도널드 저드의 `무제` 시리즈와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인체 조각을 소환한다. 앙상하게 뼈대만 남은 듯한 자코메티의 인체가 독자의 눈앞에 불러낸 이미지와 함께, 그의 건축 이야기가 시작된다.건축가인 저자가 삶의 현장으로서 집중하는 곳은 `도시`다. 아파트를 비롯해 도시인들의 삶을 구성하는 건물들에, 저자는 각별히 주의를 기울인다. 1958년 처음 세워진 종암아파트에서 시작해 롯데월드타워가 준공된 잠실 개발까지로 흘러가는 서울의 `아파트 역사`는 작은 생활사라 불러도 좋을 정도로 흥미진진하다.또한 그는 종로타워, 아이파크 사옥, 서초 삼성타운 등의 거대한 건물이 도시에 불어넣는 감상과 풍경 변화에 촉각을 세운다. 이러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공공공간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오랜 역사를 지닌 세종로가 여러 시도에도 불구하고 시민을 위한 열린 공간으로 거듭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독재의 흔적을 간직한 국회의사당에는 새로운 쓰임새가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한다./윤희정기자

2016-10-28

역사와 문화가 흐르는 중국 고대도시를 가다

중국 고대 도시는 정치·역사·지리 조건 등에 따라 다양한 유형으로 나눠 볼 수 있다. 행정·군사·문화 중심 등 기능에 따라서는 도(都)·부(府)·주(州)·현(縣), 상업도시·수공업도시·방어도시·항구도시 등으로, 형태에 따라서는 방형·원형·자유형·연하곡대형(沿河谷帶形)·산성(山城)·이중성(雙重城)·조합성(組合城)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고대 도시 이름의 유래와 명칭 변화는 중국 역사 문화의 두터움을 드러낸다. 대부분 오늘날까지 쭉 이어져오고 있는 지명들을 연구하고 정리하는 일은 도시 건설의 역사 및 특징 연구에도 유익한 일이다. 한 권으로 살펴보는 중국 도시의 다채로운 면면. 도시는 역사 문화가 펼쳐지는 커다란 무대이자 역사 문화의 메신저다. 도시계획과 건설의 측면에서 중국 고대 도시의 뛰어난 성취는, 오랫동안 쇠하지 않고 흥성한 중국의 찬란한 문화를 증명해준다.`고대 도시로 떠나는 여행- 중국 고대 도시 20강`(글항아리)은 다채로운 중국 고대 도시의 면면을 펼쳐 보이면서 그 전체적인 윤곽을 체계적으로 잡아준다.한 권에 압축적으로 많은 내용을 담아내다보니 좀더 자세한 설명이 아쉬운 부분도 있다고 느낀 옮긴이는 독자들을 위해 최대한 자세히 옮긴이 주를 달았다.제1강과 제2강은 고대 도시의 유형과 명칭에 대한 개괄이다. 제3강부터 제9강까지는 특정 도시를 다룬다. 제10강은 강남의 수향 마을을 포괄적으로 설명한다. 제11강부터 제20강까지는 거주 구역, 시장, 도로 시스템, 사원, 궁전, 명절, 원림 등 고대 도시의 다양한 측면을 개괄하고 있다.중국의 이른 시기의 도시 명칭들은 대부분 별다른 뜻 없이 오로지 그 지역을 의미하는 고유 명칭이었다. 때로는 산천과의 상대적 위치에 따라 이름이 지어지기도 했다. 특히 산 남쪽과 강 북쪽을 `양`, 그 반대를 `음`이라 하해 생겨난 이름이 낙양, 하양(河陽), 한양, 강음(江陰), 회음 등이다. 또 장안(長安)·무위(無爲)·상숙(常熟)·안길(安吉)·만전(萬全)·대동(大同) 등의 이름에는 평안을 바라는 소망이 직접적으로 드러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6-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