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가 국가체제를 정비하던 6세기 초반의 행정·법제 운영을 실물로 보여주는 ‘신라 동해안 3비(포항 중성리비·포항 냉수리비·울진 봉평리비)’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본격 검토에 들어갔다.
세 비석은 신라 중앙이 지방에서 발생한 사건과 행정 결정을 돌에 새겨 남긴 공식 기록으로 초기 국가 운영 체계를 복원하는 데 핵심 자료로 평가된다. 27일 열린 등재 학술대회에서는 3비의 가치와 등재 기준 충족 여부가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이상호 한국국학진흥원 본부장은 세계기록유산을 “인류가 반드시 보존해야 할 기록을 선정하는 제도”라고 소개하며 “신라 동해안 3비는 제작 당시 형태가 잘 남아 있고 공적 기록물로서 성격이 분명해 진정성·완전성 기준을 충족한다”고 말했다.
김창석 강원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3비는 중앙의 판단을 지방에 공시한 신라 초기의 공식 결정문”이라며 중성리비는 판결 내용, 냉수리비는 행정·형벌 규정, 봉평리비는 지방조직 운영을 기록한 자료라고 설명했다.
강종훈 대구가톨릭대 교수는 3비의 세계적 가치를 언급하며 “국가의 행정 결정을 돌에 새겨 공시한 사례 자체가 세계적으로 드물다”며 3비의 기록문화적 가치를 강조했다.
윤진석 계명대 사학과 교수는 문헌사와 금석문을 비교해 3비의 역사적 의미를 해석했다. 그는 “냉수리비는 신라 왕위 계승 시기 해석을 바꾼 결정적 자료이며 중성리비·봉평리비는 부체제·관직 운용·지방 행정 구조를 재구성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특히 비문이 판결·관직명·행정 절차를 직접 기록하고 있어 “문헌 사료의 공백을 메우는 실물 자료”라고 평가했다.
고광의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3비의 문자·서체·장법을 분석하며 “중성리비의 해서·예서 경향, 냉수리비·봉평리비의 자형 구성은 당시 문자 체계의 실제 모습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는 “글자 배열과 장법의 일관성은 공적 기록 제작에 표준이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근거”라고 설명했다.
조영훈 국립공주대 문화재보존과학과 교수는 비석의 보존관리 현황을 점검하며 “동해안 환경 특성상 풍화·박락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비석의 재질·제작기법·손상 단계를 분석한 뒤 “정기 조사와 모니터링, 보호구역 관리 강화, 디지털 기록 구축이 등재 준비의 핵심”이라고 밝혔다.
종합토론에서는 세 비석이 모두 “중앙의 결정을 지방에 공시한 공적 기록”이라는 공통점이 확인됐으며 등재를 위해서는 국제사회가 이해할 수 있는 내용 정리와 서사 구성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
김규빈 포항시 문화예술과 팀장은 “이번 학술대회는 신라 동해안 3비가 초기 국가체제 확립 과정을 보여주는 핵심 기록임을 확인한 자리였다”며 “울진군과 협력해 등재 준비에 속도를 내겠다”고 말했다.
글·사진 /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