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순
(전략)
내가 거울 밖에서 나를 쳐다보며 우는
여자를 가여워하지 않는 건
떠나겠다는 것
내가 전화기를 끄고 전화기를 던지는 것
내가 계단이 없는 곳에서 계단을 내려가는 듯 춤을 추는 것
내가 이 음악이 무거워서 견딜 수 없는 듯 허우적거리는 것
겨울 속 편두통
내가 떠나겠다는 것
물속에 잠긴 공주는 부패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거울 밖으로 거품을 내뿜으며
춤을 추는 것
내가 이 거울을 떠나겠다는 것
……
‘거울’은 이상의 시 ‘거울’ 이래로 주체를 문제시하는 상징적인 제재가 되었다. 위의 시에선 거울 속의 ‘나’가 주체다. ‘나’는 거울을 떠나려 한다. 거울 속 “나를 쳐다보는 우는/여자를” “떠나겠다는 것”, 그녀의 반사상으로서의 틀이 물속에 빠진 자의 무게처럼 너무 무겁기 때문이다. 거울 속에서 부패해가기보다는, “거품을 내뿜으며/춤을 추”면서 ‘나’는 거울로부터 자유로워지려 한다. 이 ‘나’는 무의식 아니겠는가.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