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주로와 계류장 사이 둔덕 위 도구 1리 마을 수호신 ‘소나무’ 2022년 재선충병에 수명 다해 고사 3년 만에 부지 철거 추진 향토사학자 “터라도 남겼으면”
포항시 남구 동해면 도구리 포항경주공항 활주로와 계류장 사이에는 특별한 공간이 있다. 높이 11.2m, 길이 43m, 너비 74m 규모의 둔덕(면적 2897㎡)이다. 활주로 끝단에 있는 방위각제공시설(LOC·로컬라이저) 구조물과는 다르다. 로컬라이저 구조물 개선 공사 중인 한국공항공사는 계류장 옆 둔덕도 철거하기 위해 설계용역 입찰을 진행 중이다.
포항경주공항 한복판 ‘둔덕’은 마을 수호신이 250년 넘게 있던 자리여서 관심이 더 쏠린다. 수령이 250년 넘는 소나무가 있었는데, 도구1리 주민들은 ‘할배나무’, ‘당수나무’, ‘당산나무’ 등으로 불렀다.
부모가 제관을 맡은 관원이었다는 김윤자씨(81·여)의 기억은 이렇다. ‘할배나무’ 50m 아래에 우물이 있었고, 제관으로 뽑힌 부부는 우물로 목욕재계한 뒤 그 물로 술을 빚어 제사를 지냈다. ‘할배나무’ 아래에서는 평소 주민들이 모여 마을 일을 의논했고,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제례를 지냈다. 김씨는 “‘할배나무’는 신령이 깃든 마을의 수호신이었다”고 했다.
민간 여객기가 정기 취항하는 공항 중에 유일하게 해군 소속 공항인 포항경주공항이 1970년 2월 도구1리에서 포항비행장으로 개항했다. ‘할배나무’는 군부대 경계 안으로 편입돼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면서 더는 제사를 지낼 수가 없었다.
1999년 계류장 확장공사 때 ‘할배나무’가 뜻하지 않게 계류장 한 가운데에 놓이게 됐다. 안전과 효율 문제가 대두되자 ‘할배나무’ 이전을 시도했다. 그러나 마을 주민들은 수호신을 함부로 옮길 수 없다면서 강력하게 반발했다. 2002년 확장공사를 마무리하면서 비행기가 ‘할배나무’를 피해 이동하는 동선을 마련했고, ‘노거수’로서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게 됐다.
안타깝게도 이 수호신은 2022년 8월 생명을 다했다. 소나무재선충병에 걸려서다. 조영래(56) 도구1리 이장은 “공항공사에서 수목 전문가까지 불러 ‘할배나무’를 살리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라고 전했다.
향토사학자인 이상준 포항문화원 부원장은 “예로부터 사당이 있던 오천읍 일월리 당산나무는 일제강점기에, 오천읍 세계리 당산나무는 2003년 태풍 매미 때 고사하고, 도구리 당산나무마저 사라졌다”라면서 “포항의 정체성이 담긴 ‘할배나무’ 터라도 남겨둘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고 했다.
한국공항공사는 ‘할배나무’ 고사 3년 만에 둔덕 철거에 나섰다. 둔덕이 활주로가 아닌 계류장 옆에 있는 점과 사업 우선 순위, 예산 확보 등을 고려해서다.
이상욱 극동대 항공안전관리학과 교수는 “원칙적으로 공항에 장애물이 없어야 하지만, ‘둔덕’이 이미 조종사들에게 안내된 데다 공항에서 활주로로 이어지는 항공기의 통로를 말하는 택시웨이를 따라 저속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치명적인 위험은 없다”고 말했다.
“조종사가 위험을 감수하며 임의로 피하는 구조는 아니다”라고 강조한 이 교수는 “경주 APEC 정상회의 때 포항경주공항이 글로벌 CEO 전용기 이착륙장으로 쓰인다고 하더라도 주요 내빈들은 항공기에서 바로 내려 곧바로 이동하기 때문에 둔덕 자체가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고 했다.
/김보규기자 kbogyu84@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