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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만에 불바다 ‘0명 사망’ 기적… 영덕 지품면장 결단 빛났다

박윤식기자
등록일 2025-04-08 20:39 게재일 2025-04-09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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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덕 면장, 상급기관 지시 전 전면 대피 발빠른 판단으로 주민들 구해<br/>잿더미로 변한 마을, 재건·복구작업 앞장… 정부의 현실적 지원 급선무
의성 산불로 화마가 휩쓸고 간 영덕군 지품면 수암리의 모습. /박윤식기자

영덕군 지품면, ‘0명 사망’의 기적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전면 대피’ 결단 1시간 후, 마을은 불바다가 됐다. 그리고 살아남았다.

“면장님, 여기는 곧 불이 닿을 것 같습니다. 주민들부터 내보내야 합니다”

지난달 25일 오후 영덕군 지품면사무소에 긴박한 보고가 이어졌다. 청송을 집어삼킨 불길이 시속 수십㎞의 강풍을 타고 지품면으로 빠르게 향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당시까지 상급 기관의 대피 지시는 내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김상덕 지품면장은 판단을 미루지 않았다. “기다릴 수 없습니다. 지금 당장 대피시키세요. 전면 대피입니다.”

곧바로 각 마을 이장들에게 긴급 연락을 했고, 면사무소 직원들은 분주히 마을 곳곳으로 흩어졌다. 차량이 없는 집, 거동이 불편한 노인, 그리고 “나는 집 안 떠난다”는 주민들을 직접 찾아 나섰다.

“아버지,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닙니다. 불이 오고 있어요. 같이 가셔야 해요”

설득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상황은 시급했다. 일부 주민은 눈물을 머금고 집을 떠났고, 끝내는 공무원들의 부축을 받아 집을 나서야 했다. 이날 오후 마지막 시내버스 한 대가 주민들을 태우고 마을을 벗어났다. 그 직후, 산 능선 너머에서 불길이 타올랐다.

지품면이 불바다가 되는데 걸린 시간은 채 1시간이 되지 않았다.

산불이 휩쓸고 간 자리에 남은 것은 잿더미 뿐이었다. 주택 400~500채, 송이버섯 집산지, 과수원, 창고, 농기계, 연간 수십억 원의 수익을 내던 삶의 터전이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살아남은 게 기적이죠. 다시 시작해야지요, 뭐.”

지품면 수암리 한 주민은 무너진 비닐하우스 앞에서 담담히 말했다. 표정은 담담했지만, 손끝은 떨리고 있었다. 정부의 지원이 도착하기 전까지, 주민들은 거의 맨손으로 복구를 시작했다.

김 면장은 불길이 밀려온 직후 대피소에 도착한 주민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확인했다.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살아 있는 게 맞나”라는 확인이었다. 생존은 그에게도, 주민들에게도 믿기 어려운 현실이었다.

김상덕 지품면장
김상덕 지품면장

“결국 사람입니다”

김상덕 면장은 그날의 결정을 두고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주민들의 생각은 다르다.

“그 판단이 없었으면, 우리도 숫자로만 남았겠지요.”

지금 그는 복구 지원을 위한 서류를 챙기고, 주민들의 애로사항을 메모한다. 그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였던 그는 이제 가장 오랜 복구의 시간을 준비 중이다.

“농기계도, 자재도 없습니다. 주민들 손으로는 한계가 있어요. 정부가 더 빠르게, 현실적으로 지원해야 합니다.”

지금 지품면에는 이재민 임시시설이 들어서고 있다. 불탄 트랙터 대신 임대 농기계가 들어왔고, 주민들이 농기계를 서로 나눠 쓰고 있다. 주민들은 다시 흙을 일구기 시작했다.

“우리는 살아남았습니다. 그러니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지품면은 그렇게 기적을 현실로 바꿔가고 있다.

/박윤식기자 newsyd@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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