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수원 잿더미·농기계 소실… “더이상 농사지을 의지 없어” 한탄 <br/>특산물도 큰 타격… 송이 등 일부 정부 지원 제외 주민들 발 동동
“우리 같은 농사꾼은 평생 땅 파먹고 사는 것만 알지 다른 일은 할줄 몰라. 나이가 적으면 뭐라도 새롭게 시작할 텐데 나이가 들어 그것도 힘들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지난 22일 의성에서 발생한 산불이 인근 5개 시·군으로 확산하면서 이들 지역에 살던 농민들이 가장 큰 손실을 입었다. 31일 경북도에 따르면 현재 이번 산불로 농작물 1500여ha, 시설하우스 290여동, 축사 70여동, 농기계 2600여대 등이 피해를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산불 당시 임하면에 있다 대피한 조 모(78)씨. 할아버지라고 불러야 할 그는 “산불이 산 밑에 있던 과수원까지 내려와 10년 넘은 나무들이 다 불에 탔다”고 힘없이 말했다. 이어 “다시 묘목을 사서 심는다고 해도 사과를 얻기까지 몇 년을 기다려야 하는데 팔십 가까운 내 나이에 그게 가능한지도 모르겠다. 무슨 지원을 해준다고 해도 잠시일 뿐일 것이고 앞으로 먹고 살길이 막막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조 씨 과수원에 화마가 덮친 건 지난 25일 새벽이었다. 조 씨는 그전에 길안면에서 강풍을 타고 불길이 임하면으로 넘어오기 전에 대피 문자를 보고 대피했다. 그는 하루가 지나 자신의 과수원이 큰 피해를 입은 사실을 직접 눈으로 보고 알았다.
수십년 간 사과를 재배해 온 조 씨는 “지난해 농약 살포기 등 농기계를 새롭게 구입했는데 이번에 사과나무와 함께 농기계도 모두 탔다. 더 이상 농사지을 의지도 능력도 없다”며 한탄했다. 그는 또 “이번 산불로 인근 옥산과 점곡 등 사과를 주로 재배하는 지역이 큰 피해를 입었다. 이대로 사과 농사를 망치게 되면 최근 사과 대란이 다시 발생할 것 ”이라고 걱정했다.
이날 안동에서 산불로 과수원을 잃은 사람은 조 씨만이 아니었다.
현재 안동시의 과수 피해는 전체 농작물 1090여ha 중 1080여ha가 화마를 피하지 못했다. 불길이 안동의 최대 사과 주산지인 길안면과 임하면 등을 지나가면서 피해를 더 키웠다. 특히 이번 산불로 피해를 입은 의성 점곡면과 옥산면, 안동 길안면, 청송군 등은 경북 사과 최대의 주산지여서 올 사과 공급에도 비상이 걸리게 됐다.
산불이 과수원과 밭 등에 있는 나무, 모종 등도 광범위하게 휩쓴 탓에 특산물 재배도 직격탄을 맞았다. 이 중 일부 특산물은 법적으로 공식적인 재난피해 지원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탓에 피해를 본 주민들은 발을 동동 굴리고 있다.
안동에 사는 남 모(60)씨는 “산불이 지나간 길안면 백자리 한 야산에서 송이를 채취해 1년을 먹고 살았다. 내 산이 아니라 5년 단위로 임대를 했는데 올해 새롭게 5년을 계약했다. 그런데 하루 아침에 산불로 모든 것이 폐허가 됐다”고 허탈해 했다. 그는 “소나무가 많은 산이라 더 빨리 더 많이 탔다고 한다. 임대할 때 은행 대출을 받았는데 갚을 길이 없다”고 울먹였다.
실제 송이는 현행 법률상 재난지원금 대상에서 제외돼 피해를 본 임야 산주들이 보상을 받을 방법이 쉽지 않다. 정부는 송이가 산에서 자생적으로 자라는데다 생산량 변동이 크고 피해규모 산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피해 지원을 어떻게 할지가 관심사다.
자연산 송이 경우 경북 영덕, 청송,영양이 주산지이나 이번에 이 일대를 산불이 휩쓸고 가면서 송이산은 사실상 쑥대밭이 됐다. 산주들은 "그동안 송이산 하나만 보고 살아왔다. 검게 타버린 산에서 송인가 생산된다는 건 붕가능하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그저 가슴이 답답하다"며 하소연을 이어가고 있다.
/피현진기자 phj@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