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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혹한 고통 화사한 벚꽃으로 위로받기를

최병일기자
등록일 2025-03-31 18:14 게재일 2025-04-01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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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일 여행전문기자의
화개십리벚꽃길.  /한국관광공사 제공
화개십리벚꽃길. /한국관광공사 제공

올해는 벚꽃의 화사함을 마음껏 즐기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사상 최악의 산불로 수많은 사람들의 보금자리가 참혹하게 파괴되었습니다. 화마로 인해 아까운 목숨들이 스러져갔습니다. 벚꽃축제는 대부분 축소되거나 취소되었습니다. 사상 최악의 참사속에 한가하게 꽃놀이를 즐기는게 죄스러운 일처럼 느껴집니다. 꽃놀이를 즐기기는 면구하지만 참담한 마음이 한순간 위로하는 꽃의 위로마저 외면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벚꽃을 좋아합니다. 움이 트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꽃이 피고 또 순식간에 사라지는 찰나의 미학이 아쉬우면서도 사랑스럽습니다. 한국에도 벚꽃 명소가 많지만 특히 경남 하동군 화개에 있는 벚꽃 십리길을 좋아합니다. ‘화개 10리 벚꽃 길’은 화개장터에서 쌍계사까지 약 6㎞ 구간을 가리킵니다. 1931년 화개면 주민들이 벚나무 1200그루를 심은 것을 계기로 시작된 벚꽃 10리길은 특히 사랑하는 청춘 남녀가 손잡고 이 길을 걸으면 백년해로한다고 해 일명 ‘혼례길’로도 불리며 연인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습니다.

매년 봄이면 화개장터에서 쌍계사로 가는 국도는 어질어질합니다. 전국에서도 알아준다는 벚꽃 군락지. 가지와 가지가 맞닿은 벚나무 터널은 멀리서도 단박에 눈에 띱니다. 쌍계사를 기점으로 다시 거슬러 화개장터로 나오면 섬진강과 만납니다. 뉘엿거리며 땅거미가 주위를 조용히 에워싸기 시작합니다. 화개의 벚꽃은 필 때도 아름답지만 지는 모습을 보면 평생 잊지 못합니다. 벚꽃은 마치 비처럼 떨어져 내립니다. 그 모습이 애처롭기도 하고 화사하기도 해서 복잡한 마음이 들게 합니다. 일본말로 사쿠라인 벚꽃이 일본의 국화國花가 아니냐는 세간의 오해가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일본은 딱히 정해 놓은 국화가 없습니다. 다만 일본의 왕실(그들은 황실이라고 하지요) 문양에 벚꽃을 사용하기 때문에 생겨난 오해인 것 같습니다. 물론 일본인들은 벚꽃을 대단히 좋아합니다. 일본인들의 정서에 잘 맞나 봅니다. 일본인들은 핑크와 흰색의 꽃잎이 순결과 가련, 덧없음을 갖고 있는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을 연상시킨다고 말합니다.

혹독한 겨울 추위에 사람의 닫힌 마음을 녹이는 계절이 봄인데 절정의 봄에 벚꽃이 피기 때문에 일종의 보상심리로 좋아한다고도 합니다. 어떤 이유든 일본인들의 벚꽃 사랑은 유별납니다. 벚꽃 피는 계절이 오면 벚꽃 개화 시기가 각 지역별로 올라오고 그에 맞춰 수없이 많은 벚꽃 축제가 열립니다. 고베나 교토 오사카는 물론 벚꽃명소들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이 계절에 벚꽃 구경을 가는 것은 꽃이 아니라 사람 구경을 가는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엄청난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최근에는 한국인, 중국인들까지 합세해 그야말로 벚꽃 삼국지가 펼쳐집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벚꽃을 좋아하는 것은 아닙니다.

“꽃 피는 벚나무/삶을 퍽도 닮았구나!/꽃 피는 것을 보는 순간/어느새 지는구나/이것은 진실하지만 너무 비참한 인생관이다/이해할 수 없는 신비의 한 단면만 언급했을 뿐이다/ 한순간이 질적으로는 영원과 맞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인생관이다.” - ‘일본 중국 기행’ 중 나라 편

현대 그리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인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1907년부터 유럽과 아시아 지역을 두루 다녔고, 1938년 출간된 그의 ‘일본 중국 기행’에 나오는 글입니다. 카잔차키스는 벚꽃 자체보다 일본인의 군국주의적인 사고방식이나 찰나에 모든 것을 거는 인생관이 마음에 안 들었나 봅니다.

일본의 이국적인 모습에 매혹당했다고 하면서도 싫은 것은 싫다고 말하는 그다운 표현이기도 합니다. 원래 사쿠라는 일본에서는 꽃 이름이 아니라 ‘손님을 가장한 사람’을 뜻한다고 합니다. 우리말로 하면 바람잡이라고 해야 할까요? 야시장이나 노점에서 물건을 팔 때 손님인 척 가장해서 파는 물건이 좋다며 물건을 사는 척하거나 다른 사람들의 충동구매를 부추기는 사람을 사쿠라라고 한답니다. 옛날 에도 시대에 연극 공연 도중 배우에게 말을 걸어 연극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만들거나 박수를 치면서 다른 사람들의 호응을 이끌어 주는 사람이 사쿠라였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무대 연출자 FD(floor director)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렇듯 사쿠라라는 말이 다양하게 쓰이지만 화려하게 폈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속성은 비슷합니다. 올해는 유난히 벚꽃이 화사합니다. 어찌 보면 긴 인생도 우주의 시간으로 따진다면 벚꽃처럼 피었다가 비바람에 금세 떨어지는 찰나인지도 모릅니다. 고통의 순간도 긴 우주의 시간으로 치면 찰나입니다. 지고 또 피는 벚꽃처럼 화재민들이 고통을 이겨내기를 간곡히 기원해봅니다.

/최병일기자 skycbi@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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