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 대피소 의성체육관 ‘한숨’<br/> 불길이 바람을 타고 넘어 다녀<br/> 소중한 농작물 다 타버려 허탈<br/> 동네 사람들과 위로하며 버텨
평소 텅 비어 있던 의성체육관은 24일 산불로 임시 대피한 주민들로 붐볐다.
<관련기사 2·7면>
이 의성체육관에는 현재 의성읍민과 요양병원 환자 등 166명이 머물고 있다. 망연자실한 주민들은 자원봉사자들이 내미는 도움의 손길에 그늘진 표정으로 어색한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주민들이 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주변에서는 매케한 연기냄새에다 헬기 소음이 끊이지 않았다.
TV뉴스에서는 산불이 인근 지역까지 확산하고 있다는 소식만 전해졌다. 텐트 앞에 힘없이 앉은 권금순(74·철파리)씨는 “금방 불이 꺼져 집으로 돌아갈 줄 알았다. 그런데 벌써 삼 일째 여기에 있다”며 힘들어 했다. 그는 “동네 사람 중 일부는 집으로 돌아가기도 했으나 불이 인근 지역으로 연일 번지고 있어 무서운 마음에 여길 떠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자원봉사자들과 공무원들이 정말 열심히 도와주긴 하지만 대피소 생활이라는게 내 집 같지 않다”며 “하루라도 조속히 집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마음 뿐이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단촌면 상화리 주민 마창운씨는 “현재도 집주변의 산불이 바람을 타고 산을 넘어 다니고 있어 상당히 불안하다”면서 “바람에 재만 날려도 불이 난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빨리 끝나기만 기도한다”고 간절하게 말했다.
점곡면 윤암리 주민 이인제(71)씨는 “30년 전 대구에서 사업을 정리하고 고향 땅에 내려와 6만 평의 산에 모든 것을 바쳤는데 이번에 산불로 모든 것이 타버렸다”며 울먹였다. 그는 “올해 수확할 수 있는 송이, 호두·밤나무 1500그루가 이번 화마로 피해를 입었다"면서 "아내와 난 나이가 들어 다시 시작하기도 어려운 형편이라 앞날이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의성읍 업리에서 고물상을 운영하는 김하진씨의 얼굴에도 근심이 가득했다. 김씨는 “작년부터 모아온 고물과 폐지는 이번 산불에 대부분 소실됐다”며 “폐지, 깡통 같은 폐자원이 가격 하락으로 팔지 못하고 보관 중이었는데 진작 처리할 걸 후회된다"며 땅을 쳤다. 그는 "지금 상황에선 다시 고물 수집을 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막막한 현실을 한탄했다.
의성군 점곡면에서 태양광발전 시설을 운영하는 60대 김모씨는 당장 수입이 끊기는 상황에 놓였다고 하소연했다. 산불이 태양광발전 시설을 덮치며 하루아침에 작동을 멈춰 버린 것.
그는 “해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봄부터가 성수기여서 본격적인 전기 생산을 앞두고 시설 정비도 마쳤는데 하루 아침에 다 잃었다”며 “산불이 나던 날 급하게 시설을 보러 왔더니 이미 도로는 통제 중이었다. 멀리 보이는 화선에 태양광 시설이 포함돼 있었고, 그래서 ‘아이쿠 끝났구나’ 생각했는데 실제 그렇게 됐다”며 이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저었다.
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둔 부모들의 걱정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둔 김지민(42) 씨는 “주말 동안 산불이 꺼지지 않고 오히려 더 크게 확산한다는 소식에 애들이 학교도 못 갈까 봐 걱정한다”면서 “그나마 학교는 정상적으로 문을 열어 서 다행이다”고 털어놨다.
의성군 산불은 이날 오전 65%의 진화율을 보였으나 강한 바람이 계속되면서 여전히 진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창훈·이병길·피현진·단정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