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온 창고 타는 걸 3일 동안 지켜봤어요. 그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이번 경북지역 산불로 도내 개인 중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의성읍 중리 김양수(46)씨는 아직도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그는 이번 산불로 일단 80여억 원 정도 피해를 봤다고 의성군에 신고했다.
김 씨가 대표로 있는 농업법인 (주)태현에 불씨가 날아든 건 3월 22일 오후 5시 30분여쯤이었다. 이날 오전 11시30여분쯤 의성에 산불이 발생했다는 건 알았지만 그의 저온창고까지 문제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날 워낙 바람에 강해 조금은 불길했어도 거리도 멀고 해서 ‘괜찮겠지’ 하고 있었다. 그러나 산불은 6시간여 만에 김 씨 저온창고에 다다랐고 이내 전체로 옮겨 붙었다. 손 쓸 틈도 없는 상태에서 불은 사흘 내내 창고를 태웠다. 그가 평생 일군 700평 및 429평 농산물저온창고 두 동은 한순간, 그렇게 허망하게 날아갔다. 700평 창고에 보관해 둔 1만5000여 상자, 시가 15억원 어치의 사과도 새까맣게 변해 숯덩이가 됐고, 아직 그대로 방치돼 있다. “플래스틱으로 만든 과일상자 1만5000여개와 빈 상자 1만여 개 등 2만5천여 개에 불이 붙으니 꺼지질 않더라구요” 이 창고 화재만으로도 50억원 피해가 났다. 그러나 이 창고는 그나마 화재보험이라도 들어있다.
바로 붙어 신축중인 옆 창고는 화재보험 미가입 상태에서 잿더미가 됐다. 3월 말 준공을 앞두고 있던 중에 직격탄을 맞았다. 30여억 원을 들인 이 시설은 단 하루도 문을 열지 못하고 사라졌다. 은행부채로 지은 창고다. 김 씨는 이 창고야말로 보험도 없고 해서 시쳇말로 공중에 붕 떠버린 상태라고 표현했다. 산불은 그의 2개 동 창고 외에 지게차 3대와 선별기, 차량, 자재 2억여원어치 등 그간 애써 모은 모든 것을 집어삼킨 후에야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 듯이 조용히 멈췄다.
“사흘에 걸쳐 저온창고가 불타는 동안 내 살점도 타는 것 같더라”고 전한 그는 충북 영동 출신이다. 의성에는 부친을 따라 마늘농사를 짓기 위해 20여년 전 내려왔다. 씩씩하게 영농을 하다가 의성 특산품인 사과 유통에 눈을 떴고 2015년에 현재의 농업법인을 설립, 본격 뛰어들었다. 젊은이답게 사업을 키웠고, 돈도 제법 벌었다. 그러나 산불 한 방으로 그의 인생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양친과 아이 두 명, 집 식구 등 여섯 명을 먹여 살렸던 창고인데, 참 난감합니다”라는 김 씨. 많은 분들이 힘내라고 격려해 주기도 하지만 솔직히 다시 일어 설 수 있을지 모르겠고, 현재로선 그럴 자신도 생기지 않는다고 되뇌었다. /이병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