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 피해 집밖으로 나온 시민들 “전기요금도 걱정… 밖이 더 시원” 반려견과 산책·운동·거리공연 등 낮보다 밤에 더 활기… 피로 해소
“집에 에어컨이 있긴 한데, 계속 틀자니 전기요금도 걱정되고… 답답해서 그냥 나왔어요”
낮 동안 35~36도까지 치솟았던 기온은 밤이 되자 겨우 28도로 떨어졌다. 바람 한 점 없는 포항의 도심은 여전히 후끈한 열기로 가득했다. 에어컨을 틀어도 식지 않는 방 안, 눅눅한 공기에 지친 시민들은 삼삼오오 밖으로 나왔다.
지난 5일 밤 10시 30분쯤 찾은 영일대 해수욕장은 지난달 29일부터 이어진 때 이른 열대야를 피해 나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백사장엔 돗자리를 깔고 앉은 가족들이 컵라면을 나눠 먹고 있었고, 연인들은 서로 어깨를 기대 바다를 바라봤다. 손전등을 들고 모래를 파헤치며 장난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파도 소리에 실려 퍼졌다. 더위에 내몰린 시민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여름밤을 쉬어가고 있었다.
두 아이의 손을 잡고 나온 이모씨(39)는 “낮엔 정말 어딜 못 나가요. 뜨겁다 못해 숨이 턱턱 막히잖아요. 이렇게라도 나와야 애들도 스트레스 좀 풀리죠”라며 아이들이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노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반려견을 데리고 산책을 나온 이들도 눈에 띄었다.
최모씨(42)는 “낮에는 얘가 발바닥 델까 봐 아예 산책도 못 해요. 햇빛 식고 나면 이렇게라도 바람 좀 쐬러 나와야죠. 사람도 개도 다 답답하니까요”라며 반려견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해변 산책로에는 땀에 젖은 운동복 차림의 러너들이 간간이 지나가기도 했다.
젖은 티셔츠를 손에 들고 선 채 숨을 고르던 정모씨(35)는 “요즘은 해 뜨기 전이나 해 지고 나서만 뛰어요. 이 시간에는 바닷바람이라도 있으니까 땀은 나도 덜 답답하죠”라고 말했다.
밤 11시를 넘겨 영일대에서 송도해수욕장으로 발길을 옮기자 분위기는 조금 달라졌다.
거리 공연이 펼쳐지는 무대 근처는 발걸음을 멈춘 시민들로 둘러싸였고, 상점가엔 여전히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테라스가 있는 음식점에서는 치킨과 맥주를 나눠 먹는 가족과 연인, 친구 단위 손님들이 줄을 이었다.
송도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박모씨(51)는 “요즘은 밤 9시부터 본격적으로 장사가 시작돼요”라며 “낮에는 가게 열어놔도 손님이 없어요. 다들 너무 더우니까 밖에 안 나오는 거죠. 지금은 오히려 밤이 골든타임이에요. 문 닫는 시간도 자꾸 늦춰지고 있어요”라며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이날 자정을 넘어 밤 1시까지도 해변은 한산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는 모래 위에 드러누워 밤하늘을 올려다봤고 누군가는 신발을 벗고 조용히 파도 가까이 걸어 들어갔다. 해는 졌지만, 여름은 끝나지 않았고 도심의 밤은 식을 줄 몰랐다.
/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