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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제철 사택·효자역 화물·여객 후광 업고 1970년대 전성기

한상갑기자
등록일 2024-09-05 18:18 게재일 2024-09-06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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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의 전통시장을 찾아서-효자시장
1970년대 효자시장은 어깨가 부딪칠 정도로 손님들이 넘쳤고, 하루 종일 리어카 소리, 짐자전거 경적소리로 소란스러웠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인구 감소, 온라인 쇼핑몰, 대형마트의 등장, 소비 행태의 변화 등으로 시장은 급격히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사진은 효자시장에서 쇼핑을 하는 시민들.

물류의 집산(集散), 유동인구, 특정 작물 대량 재배, 장인(匠人) 집단 활동 여부, 교통의 요지….

전통시대 시장의 성립 요인은 다양하다. 열거한 요인 중 한두 가지만 중복돼도 쉽게 시장은 형성되고, 더 많은 요인이 겹치면 대형 상권이 조성되기도 한다.

이번에 소개할 효자시장의 형성 과정을 들여다보는 것도 재미있다. 효자시장은 앞서 언급한 시장 성립 요인 중 교통, 그 중에 철도역과 관련이 깊다. 잘 알려져 있듯 포항에는 경동선(1927년 개통), 동해선 (1945년 개통), 괴동선이 운행됐다. 이 중 효자시장과 직접 관련이 있는 곳은 괴동선(槐東線)이다. 1971년 개통된 이 철도는 부조(지금의 부조장터)와 효자-괴동-제철(포항제철역)을 잇는 10.6km 노선을 말한다. 짧은 노선이지만 이 철길로 철강 공단의 화물, 제품, 원자재들이 수송되었고 포스코 근로자들을 위한 국내 최초 통근열차가 운행되기도 했다. 화물의 집산과 근로자, 인구의 유입은 필연적으로 시장을 필요로 했고, 효자시장은 그 ‘수요’에 대한 대안이었다.

 

동해안 시장 중 하나인 부조장 계승

1968년 포항제철 들어서며 장터 형성

1970년대 골목마다 노점·장꾼 북적

포철 출퇴근 시간 맞춰 점포도 가동

온라인 쇼핑몰 성업·대형마트 등장

2000년대 이후 전통시장 상권 급락

괴동선 열차 멈춘 후 골목엔 정적만

◆지역 3대 시장 중 하나인 부조장 전통 계승

효자동 일대는 조선시대 연일현 북면에 속했었다. 1896년 13도제가 실시되면서 흥해, 영일, 청하, 장기 4개군으로 개편될 때 영일군 북면에 귀속됐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4개군이 영일군으로 개편될 때 연일면에 편입됐고 효자동과 지곡동을 통합해 효곡동이 됐다.

효곡, 효자동은 포항의 서쪽 관문에 위치해 옛날부터 신라, 경주 세력들의 관문 역할을 했다. 고대에는 형산강 줄기를 따라 신라나 내륙의 문물이 동해로 진출했고, 현대에 이르러서는 육로를 따라 동해의 문물이 양동-경주를 경유에 영천-경산으로 드나들었다.

효자동의 서쪽 형산강 변에는 지역 3대 시장 중 하나였던 부조장터가 있는데 효자시장은 바로 이 부조장의 전통과 역사를 계승하고 있다. 부조장이 형산강을 배경으로 포항의 청어, 소금 등 해산물을 전국으로 유통시킨 물류의 중심이었다면, 효자시장은 효자역 철도, 포항제철 유동인구를 배경으로 지역의 전통시장을 일으킨 골목상권의 디딤돌이었다.

효자시장의 태동은 포항제철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1968년 포철이 들어서면서 효자동 일대에는 포철 직원들을 위한 대규모 사택 단지가 조성됐다. 갑작스럽게 주택단지가 들어서면서 인근에 상가, 학교, 관공서들이 따라서 들어왔다. 이때 설립된 학교, 연구소가 포항제철초-중-고교와 포스텍, 포항테크노파크, 방사광가속기연구소였다.

효자역 인근엔 포항제철 직원들과 인근 공장 인부들, 학생들을 위한 식당, 생필품점, 노점상인들이 대거 들어섰고 이런 수요를 바탕으로 1971년 효자 시장이 정식으로 개설됐다.

포항제철 직원 전용열차 개통식 모습.
포항제철 직원 전용열차 개통식 모습.

◆1970년대 밀려드는 손님으로 골목 북적

“당시 1970년대 주말에는 시장에 어깨가 부딪칠 정도로 손님들이 넘쳤습니다. 하루 종일 리어카 소리, 짐자전거 소리로 늘 소란스러웠죠. 장사도 얼마나 잘 됐는지 배추를 트럭 채 가게 앞에 부려 놓으면 반나절도 안 돼 한 차씩 다 팔아 치우곤 했죠. 그땐 다들 정직해서 분에 넘치는 이윤은 생각도 못했어요. 그냥 손만 바쁘고 계산하느라 정신만 없었지, 살림은 늘 그대로였어요.”

한 야채가게 어르신의 증언처럼 1970~90년대 전국의 전통시장은 전성기를 누렸다. 아직 백화점, 대형마트, 인터넷 쇼핑몰이 등장하기 전이었고 유통체계는 생산자-도매업자-소매로 연결되는 단선(單線) 라인이 주류를 이룰 때였다.

무엇보다 풍부한 ‘인구’는 시장을 견인하는 가장 든든한 원군(援軍)이었다. 당시엔 가구당 4~7자녀가 당연시 되던 시절이었고, 인구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생필품은 대부분 전통시장에서 조달됐다.

앞서 언급한 대로 ‘효자시장의 8할은 포항제철과 연결되어 있다’고 할 정도로 둘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수천 세대에 이르는 포철 직원, 주민들의 생필품 공급처이자, 수천 명에 이르는 포철재단 학생들의 간식, 군것질거리, 학용품 조달지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만난 야채 가게 어르신은 “1970년대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고 사택, 학교들이 들어서면서 기존 시장 규모로는 수요를 감당할 수 없었다”며 “당시 효자역 부근 논밭을 따라 노점상들의 비닐하우스, 가건물들이 들어서며 시장이 급속히 확장됐다”고 증언했다.

제복을 입은 포철 직원들이 출근을 하는 모습.
제복을 입은 포철 직원들이 출근을 하는 모습.

◆포철 라이프 스타일에 맞춰 시장도 가동

재미있는 것은 효자시장의 모든 운영이 포철 직원들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춰져 있다는 사실. 1970년대 보통 효자시장은 4시 무렵이면 문을 열었다. 당시 효자역 포철 통근기차 첫차가 5시57분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효자시장엔 미처 아침을 챙기지 못한 직원들이 국수, 국밥, 간식을 먹느라 식당마다 북적거렸고, 아침 일찍 찬거리를 사기 위해 나온 주부들로 혼잡을 이뤘다.

당시 포철 출퇴근 열차가 하루 열 번 정도 운행되었는데 매 시간 마다 시장은 북새통을 이뤘다. 상인회 김병근 회장은 “당시 안전화에 제복을 입은 포철 직원들이 수백 명씩 여명을 뚫고 효자역으로 출근하는 모습은 자체로 감동이었고 풍경이었다”고 말한다. 이미 반세기 전의 일이고 당시 근로자들은 대부분 노년기에 접어들었지만 이런 노력과 희생들이 쌓여 오늘날 포항 경제를 이룬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통근열차가 가고 나면 이제 학생들이 통학 행렬이 시장을 쓸고 지나갔다. 포항의 다른 지역 아이들보다 살림이 나았던 아이 학생들은 시장에서 떡볶이, 어묵, 라면, 튀김 등 간식거리를 소비하고, 학교준비물과 학용품을 준비해 갔다. 당시 포철초교 학생들은 노랑 모자에 노랑 교복을 입고 다녔는데 등하교 하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 상인들이 ‘병아리들’이라고 부르며 반겼다고 한다.

◆효자역 사라진 시장, 급격히 쇠락의 길로

2000년대 이후 전통시장은 급격히 쇠락의 길로 접어든다. 인구의 감소, 온라인 쇼핑몰, 대형마트의 등장, 소비 행태의 변화 등이 주 원인이었다.

효자시장이 있는 효자, 지곡동에도 큰 변화가 찾아왔다. 1970년대 건축됐던 포항제철 사택들이 민간에 분양되고, 상당수는 효자동을 떠났다. ‘제철(製鐵) 빌리지’를 이뤘던 효자, 지곡동 사원 아파트에는 이제 소수의 직원들만 남아 당시를 추억할 뿐이다.

포철과 효자시장을 끈끈하게 이어주던 효자역의 위상도 예전 같지 않다. 30년 동안 657만 명을 실어 나르던 괴동선은 이제 통근버스나 시내버스, 자가용으로 대체돼 효자시장의 유동인구에 큰 타격을 입혔다.

포항제철과 효자역과 반세기를 함께해온 효자시장. 이제 괴동선엔 하루 30여 차례 화물열차만 운행된다. 2015년 4월 마지막 여객열차가 멈춰선 이후 효자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제 효자역 플랫폼엔 안전화 소리도 사라지고, CDC 기관차의 거친 엔진음도 더 이상 들리지 않습니다. 기적소리라도 한번 울려 퍼지면 거친 음파(音波)를 따라 옛 추억이라고 소환해 보고 싶지만 그 시절이 다시 돌아올까요?”

한 시장 어르신의 넋두리를 배웅 삼아 시장 골목을 빠져 나온다.

포철 통근열차는 30년 동안 운영 되었으며 하루에 총 10회, 약 109만km를 운행했다고 한다. 포항제철 직원들 출퇴근 모습.
포철 통근열차는 30년 동안 운영 되었으며 하루에 총 10회, 약 109만km를 운행했다고 한다. 포항제철 직원들 출퇴근 모습.

◆괴동선은?

30년 동안 포항제철 직원들 

657만 명 출퇴근길 실어날라

포항시 효자역과 괴동역을 연결하는 철도로 포항과 부산진역을 이어주던 동해남부선의 지선(支線)이다. 제철선 또는 포항제철선으로 불렸다.

1968년 4월 25일에 착공하여 같은 해에 효자역-괴동역 구간이 완공됐으며, 총공사비는 2억3313만원이었다.

1970년 10월에 괴동역에 포항제철전용선이 부설돼 1975년부터 포항제철 직원 전용 통근열차로 기능했다.

포철 통근열차는 30년 동안 운영 되며 하루에 총 10회, 약 109만km를 운행했다. 총 이용 승객은 약 657만명. 30년 동안 운행하면서 사고는 단 한 번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한다.

2008년 화물수송량은 263만2172t으로, 무연탄 103만1847t, 잡화 159만901t을 처리했다.

1975년 7월 1일 운행을 시작할 당시 운임은 일반 이용객은 40원. 제철 근로자는 할인 혜택이 주어져 28원만 냈다. 2005년 폐선 당시 운임은 353원.

새벽 교대근무자를 위해 첫차가 오전 5시 57분에 출발했으며, 야간 근무자를 위해 막차는 밤 11시 30분에 들어왔다.

한국철도공사와 포스코 간의 운행 협상이 결렬되면서 2006년부터 운행이 중단됐다. 현재 괴동선은 화물전용으로 운행되고 있으며, 여객수송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글·사진/한상갑기자 arira6@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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