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경남 김해에서 여중생을 집단 폭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중학교 재학생과 졸업생들인 가해자가 2주 넘는 기간 폭행했다. 담뱃불로 지지거나 오물을 먹이는 행위로 사회의 우려를 자아냈다. 범죄 연령은 낮아지고 폭행 장면이나 신체를 촬영하여 유포하는 등 죄질마저 나쁘다.
50대의 사회인이 허위 예약하여 음식점에 해를 끼치는 일도 발생했다. 붙잡힌 후에 단순히 골탕을 먹이고 싶어서 했다는 변명이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다른 여성은 음식을 엉터리 주소로 배달시키고 배달되지 않는다고 항의 전화까지 한다. 모두가 힘든 시기에 장사하는 사람의 아픔은 보이지도 않는지.
사는 게 힘들다고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라면 하나 산다고 무시하는 것 같아서, 감옥에 가고 싶어서, 아무 이유 없이 남에게 해를 가하거나 사람을 죽였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너무나 쉽게 일어난다.
60대 남성이 60대 여성을 살해한 사건도 뚜렷한 이유도 없다. 어쩌면 우리의 일이 아니라고 방치하는 사이 폭력은 걷잡을 수 없이 번진다. 비슷한 여건에 처한 사람들이 따라 하는 듯한 느낌마저 지울 수가 없다. 나라가 경제적으로 더 부유해지는 건 맞는데 우리 사회는 왜 이렇게 삭막해지는 걸까.
사회는 급속도로 발전한다. 인공지능의 발달은 사람들의 생활방식을 바꾸어 놓는다. 많은 사람이 하던 일을 인공지능이 대신한다. 같이 모여서 일하거나 회사에 출근하기보다 재택근무 하는 사례가 늘어난다. 직장인이 사회의 구성원임을 느끼기보다는 개인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난다.
어디 일만 그런가. 밥을 먹는 일도 노는 것도 혼자 하는 것을 사회는 부추긴다. 회사는 끊임없이 1인용 식사 거리를 제공하고 게임 업체는 집에 틀어박혀서 혼자 노는 상품을 수도 없이 개발한다. 가게에서 물건을 사는 일도 식사하는 일도 택배회사는 상품으로 만들어 개인의 삶을 돈으로 바꾼다. 시장에서 사람을 만나고 에누리를 하고 다양한 삶을 만나는 기쁨을 우리 사회는 상품화하기에 바쁘다.
살아가는 데 과정은 없고 결과만 남는 일상이 계속된다. 사람을 네모난 공간에 가두어 사람 사이의 정이 사라지는 시대다. 이런 과정에서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번은 겪는 힘든 시기에 사람을 붙잡아 주는 안전장치는 우리 사회에 이미 없다. 따뜻한 이야기를 들려주던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도 어머니의 젖꼭지를 빨며 인간의 정을 느끼는 시간도 사라졌다.
그런 가운데 우리는 스스로 괴물이 되어간다. 정녕 방법이 없는 것일까. 사람이 사람의 따스한 손을 잡고 희망을 이야기할 수는 없는가. 지금도 찾아보면 세상은 따뜻하고 착한 일을 하는 사람도 많은데 말이다. 왜 따스한 이야기는 자꾸 사라지는 것일까. 사람의 삶마저 자극적인 뉴스로 돈을 벌려는 사람들 때문은 아닐까.
정치인들이 국민의 삶은 모른다고 자기네들만의 다툼을 벌이더라도 우리는 달라야 한다. 우리는 사람 사는 냄새를 풍기고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기회를 자주 만들고 손에서 손으로 따스함을 전할 수도 있지 않은가. 지금이라도 우리를 위한 무엇이라도 해야만 한다. 인간의 체온을 느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