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객이 길 멈추고 노도 소리 듣고선/ 왜구들 죽이는 장군을 대하는 듯/칼자욱은 어제일 같이 반석에 남아있고/장한 업적은 천추에 빛나리//당시의 공열은 세상을 진동했고/그 충정 천년토록 늠름도 하네/지금까지 장군의 이 전하고 있어/단오 때의 여원무는 영원히 빛나리”
경북 경산 자인면에서는 지역을 수호하는 신으로 ‘한 장군’을 모시고 제의를 지내고 있다. 자인면 서부리의 진충묘에서는 ‘한장군대제’, 마곡리·현내리·광석리 3개 마을에서는 ‘한묘제사’, 자인면 원당리·용성면 대종리와 가척리 등에서는 ‘한당제사’로 불리는데, 모두 한 장군과 그의 누이를 기리는 유서 깊은 행사이다.
9세기 전후 신라 때 자인의 도천산에는 왜구들이 성을 쌓고 기거하면서 주민들을 괴롭혔다. 한 장군은 그의 누이와 함께 버들못가에서 꽃관을 쓰고 여원무와 배우잡희의 놀이판을 벌이고, 못에 배를 띄워 호사스러운 광경을 연출했다. 성의 왜구들은 신비한 놀이판에 유인되어 칡으로 만든 그물과 한 장군의 칼에 섬멸되었다. 지금도 버들못가에는 왜구의 목을 자를 때 남은 칼자국이 돌에 남겨져 있는데, 이를 검흔석 혹은 참왜석이라 부른다. 한 장군이 죽은 후 자인면에서는 여러 사당을 세워 수호신으로 모셨으며, 여원무를 통해 한 장군 남매를 기리고, 죽은 왜구를 위무하는 제의를 이어갔다. 진충묘는 주민들이 도천산의 서쪽 기슭에 한 장군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고 전해지는 신당이다. 그러나 일제 당시 철거당하고 그 자리에 일본 신사가 세워졌다. 광복 이후 북서리에 있던 한당을 이건하여 진충묘로 삼았다.
현재 자인계정숲의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북서리에서 이건된 진충묘와 자인중고등학교에서 발굴 후 만들어진 한 장군 묘소를 자연스럽게 둘러볼 수 있다. 1968년 8월 자인면에서는 제법 큰 규모의 석실묘가 발견되었다. 두개골이 포함된 유해와 은으로 장식한 갑옷·투구·녹슨 철제창·많은 토기류가 발굴되었는데, 한 장군의 묘소로 알려지게 되었다. 주민들은 이듬해 자인계정숲 내에 유해를 모시고, 유물은 박물관에 보관하였다.
매해 음력 5월 5일이 되면 자인계정숲을 중심으로 한 장군과 관련된 제의-한묘대제·여원무·호장굿·자인팔광대·큰굿-가 치러진다. 한묘대제는 한 장군의 묘소와 그의 사당에서 유교식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여원무는 한 장군 남매를 기리고, 죽은 왜구를 위무하는 춤으로 커다란 화관으로 유명하다. 호장굿은 호장을 앞세워 한 장군과 관련된 장소를 돌아다니는 가장행렬이다. 자인팔광대는 8명의 광대가 3막을 구성하는 자인만의 전통 탈춤이다. 양반의 이중적인 모습을 해학적으로 풀어내는 다른 지역의 탈춤과 달리 양반의 권위와 조강지처에 대한 가부장적 사상이 드러난다. 큰굿은 무속인들이 시중당 앞에 모여 부정굿·산신맞이굿·천왕맞이굿·칠성맞이굿·조상축원굿·장군맞이굿·사자풀이굿을 지내는 것이다.
여원무는 한 장군이 여장을 하고 누이와 함께 춤을 추어 왜구를 섬멸했던 춤이다. 제의적 의미에서 자인면에서는 오랫동안 이어온 기록이 남아있으며, 현재는 1969년 무보를 마련하면서 복원된 것이다. 여원무은 악사들의 풍악에 맞춰 10척(3m)이나 되는 화관을 한 장군과 누이가 들고 중앙으로 나오면서 시작된다. 남매는 중앙에서 덧배기가락에 맞춰 춤을 추다 화관 속에 숨는다. 뒤를 이어 여장한 무동 두 명과 무부들이 화관 주위를 돌며 굿거리장단에 맞춰 원을 그린다. 무동은 한 손에 꽃가지를, 다른 손에는 박을 들었다. 무동춤이 이어지다가 다시 화관에 숨어 있던 한 장군 남매가 나와 도드리장단에 맞춰 화관무를 춘다. 한 장군은 오른쪽에서 누이는 왼쪽에서 양손으로 화관을 잡고 회전하면서, 화관의 끝이 땅에 닿을 정도로 동작을 크게 하며 춤을 춘다. 회전을 반복하는 춤을 춘 후 다시 화관에 숨는다. 이어 다른 무부들이 등장하여 굿거리장단에 맞춰 다른 원을 만든다. 마지막으로 전체 등장인물이 춤을 추며 원무를 그린다.
대개 여원무는 3개의 동심원을 그리는데 그 크기가 18미터에 이른다고 한다. 이때 쓰이는 2개의 화관 무게는 30~40kg 정도이며, 5종의 꽃으로 8개의 가지를 부채꼴로 만들어 500여 개의 종이꽃을 달아 크고 화려하게 만든다. 덕분에 한 장군과 누이는 여원무에서 화관에 가려지고, 사람보다는 꽃이 저절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제의 전 화관은 신성하게 여겨 접근이 금지되어 있지만 제의가 끝이 나면 남녀노소가 풍년·제액·치병을 위해 꽃을 따다 집안에 두었다고 한다.
자인면의 수호신 한 장군은 신라와 고려 사이의 인물로 보인다. 그가 왜구를 물리친 이후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 온 제의는 경산 자인의 특색을 알리는 문화행사로 자리 잡았다. 화려하고 커다란 꽃관이 커다란 원무를 그리는 무부들 사이에서 두드러진다. 꽃이 저절로 움직이는 듯한 여원무가 지역을 대표하는 춤이 되어 영원히 빛나는 듯하다. /최정화 스토리텔러
◇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