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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줄 아는 드물고도 큰, 영양의 장계향

등록일 2023-08-07 18:55 게재일 2023-08-08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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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 석보면 두들마을.

“인생이 70을 사는 것은 옛부터 드문 일이라 했는데/70에 3살을 더했으니 드문 가운데 더욱 드문 일/드문 가운데 아들 많으니 더욱 드문 일/드문 가운데 드문 일이 겹쳐 드문 경사가 나에게 있구나”( ‘희우시(稀又時)’, 장계향 73세)

장계향(張桂香·1598~1680)은 조선 후기 남성 중심의 성리학적 위계질서 안에서 여성으로서는 드문 삶의 기록을 남긴 사람이다. 애민과 선행으로 ‘여중군자(女中君子)’라 불리며 칭송받았으며, 효녀이자 위대한 어머니로 알려졌다.

본인의 시서화가 뛰어남을 물론이고, 최초의 한글 요리서를 적을 정도로 요리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현대인 만큼이나 장수(83세)했고, 소설 ‘선택’(1997, 이문열)의 주인공으로서 다시 태어나기도 했다. 장계향이 시대를 초월하여 이렇게 드문 발자취를 남긴 것은 그녀의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실천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이 아닐까.

장계향의 어질고도 큰 성품은 남겨진 12편의 한시에 잘 드러난다.

‘학발시’에는 병들고 늙은 모가 아들을 그리워하는 마음과 가난 그리고 시적 화자의 안타까움이 3연에 걸쳐 길게 적혀있고, ‘성인음’에서는 군자에 대한 인식이, ‘경신음’에서는 몸을 함부로 하지 않는 효에 대한 마음이 적혀있다. 말년에 손자 신급과 성급에게 각각 성인의 마음과 학문을 익히는 자세가 기특하다는 투의 시를 보내기도 했다. 그녀의 적벽부체(赤壁賦體)는 당대 서예가 정윤목에게 호방하고 강하여 중국인의 필체로 착각할 정도라는 칭찬도 들었고, 그림 솜씨도 뛰어나 ‘맹호도’를 남겼다. 인두로 그린 호랑이는 금방이라도 그림을 박차고 뛰어나올 듯 포효한다.

장계향은 알아주는 효녀이자 위대한 어머니이기도 하다.

19세 결혼 후 시부모 봉양은 물론 해마다 친정아버지를 찾아뵈었을 정도로 지극한 효심을 지녔다. 당시 영덕에서 안동까지는 꽤 먼 거리였음에도 빠지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5리나 떨어져 있는 의병장 남경훈의 서당까지 전부인 아들을 매일 업어다 주었을 정도로 차별을 두지 않고 아이들 교육에 힘썼다. “너희들이 비록 글을 잘 짓는다는 명성은 있지마는 나는 귀중하게 여기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 선행이 있다는 말을 듣는다면 나는 문득 기뻐하면서 잊지 않을 것이다.”라는 그녀의 교육철학만 봐도 ‘여중군자’라 불릴만하다.

장계향은 남편과 함께 애민과 선행을 실천하며 ‘군자’로서 평생을 살았다. 물려받은 어마한 재산을 형제들에게 양보하며 미련을 두지 않았고, 마을에 기근이 들면 집 앞에 솥을 걸고 도토리죽을 나눠주었다. 지금도 그녀의 유허비 옆에는 당시의 선행을 기억하는 300년 수령의 도토리 나무가 있다. 노비가 아플 때는 손수 병간호도 했다고 하니 본래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성품을 타고나지 않았을까.

그녀의 큰 성품과 행적은 현재 영양의 두들마을에서 가장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태어난 안동·시부모를 모신 영덕·분가한 영양 가운데, 영양 석보면 한 언덕의 두들마을은 장계향·이시명 부부의 신념이 후손들에 의해 오랫동안 이어진 특별한 장소이기도 하다.

작가 이문열의 고향으로도 알려진 이곳에는 그의 문학이 숨 쉬는 광산문학연구소(2022년 화재)가 있고, 애국 열정만으로 항일과 독립운동을 했던 의인들의 자취가 있다.

장계향·이시명 부부가 살았던 석계고택이 있고, 그의 넷째 아들 이숭일이 대를 이어 강학하던 석천서당이 있다. 그리고 부모의 유학적 가르침을 새긴 낙기대(樂饑臺)와 세심대(洗心臺)도 있다. 세심은 치심수행(治心修行)을 뜻하며, 낙기는 안빈수도(安貧守道)를 뜻한다.

또한 ‘음식디미방’체험관이 있어 옛 요리를 만들어볼 수 있다. 책에는 일반양반가의 접빈용 요리 146개가 구체적인 조리법에 따라 분류되어 적혀있다.

당시 요리들은 각종 조미료에 단련된 현대인의 입맛에는 매우 담백한 편이나 현대에 활용되지 않는 재료가 있어 유용한 자료로도 가치가 있다. 면류와 만두류가 특히 많은데, 꿩·생선의 껍데기·곰도 요리의 재료가 되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그녀의 유적비와 예절관, 한옥체험관 등 장계향의 발자취를 살필 수 있는 장소가 있다.

장계향은 조선 후기 여성으로서는 꽤 드물게도 이름을 남긴 여인이다. 남성조차 유학을 배웠다하여 군자의 길을 걷는 이가 드물고, 지속적인 애민과 선행을 실천하는 자도 드물고, 재물에 욕심을 내지 않는 사람도 드물던 시대였다. 장계향의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성품이 있었기에 사람들은 그녀의 삶을 기억하고 회자한다.

과거에도 현대에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사랑할 줄 아는 커다란 마음인 듯하다.

 

◇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

/최정화 스토리텔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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