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하면 원안에 사람 얼굴이 새겨진 수막새를 쉽게 떠올린다. 둥글고 커다란 코에 비대칭인 양쪽 눈과 광대뼈, 끌어올려진 입꼬리가 왠지 어색하지 않다. 기와 장인이 일일이 손으로 눌러 형태를 잡았기에 자연스러운 얼굴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왠지 옆집에 사는 사람도 수막새의 미소처럼 웃을 것만 같다.
대개 사람들은 수막새의 미소를 ‘신라의 미소’라 부르며, 백제 불상의 미소와 비견하여 얘기한다. 하지만 부처님의 미소처럼 후덕하기만 한 미소로 보기에는 기와 속 오른쪽과 왼쪽 표정이 너무 다르다. 오른쪽은 완전히 웃는 형상으로 광대뼈도 올라가고 눈도 부드러우며 입꼬리도 올라가 있다. 코 옆 팔자주름도 음영이 명확하게 보인다. 반면에 왼쪽은 말 그대로 밋밋하다. 두툼한 눈두덩이를 반쯤 뜬 채 쳐다보는 듯도 하다. 두드러지지 않은 광대뼈와 흔적도 없는 팔자 주름만 봐도 웃는 형상으로 보기에 애매하다. 입꼬리는 깨어져서 알 수 없지만 과연 속없이 웃기만 했을까. 안동의 하회탈도 얼굴 형상이 비대칭이라 탈을 보는 방향에 따라 웃는 얼굴로도 비웃는 얼굴로도 보인다. 얼굴무늬 수막새도 ‘요사스런 귀신을 쫓아낸다’는 수막새인데 액운에게 미소만 건네지는 않을 법하다.
수막새는 기왓골을 메워 보호하는 실질적인 역할과 건축물을 돋보이게 하는 조형적 역할과 재앙은 피하고 복을 바라는 주술적 역할을 담아 장식하던 기와의 일종이다. 고구려·백제·신라 모두 연꽃·도깨비 문양 등이 두루 사용되었다. 시기나 지역별로 연꽃잎이 뾰족하거나 넓고, 문양이 깊거나 얕고, 기와와 직각 또는 둔각으로 만들어졌기에 문화재의 시기를 알아보는데 중요한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신라는 ‘삼국사기’에 의하면 2~3세기께 궁에서 기와가 사용되었고, 528년 불교가 공인된 후에는 사찰에서도 연꽃무늬가 장식된 수막새를 장식하였다. 6세기 후반에는 고구려나 백제의 영향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연꽃 모양을 만들거나 얼굴 무늬, 도깨비 무늬 등도 제작되었으나 전체적으로 투박한 편에 속한다. 그러나 통일신라에 이르면 다양하고 복잡하고 화려한 무늬가 나타난다. ‘삼국유사’에서는 ‘헌강왕 때에는 초가집이 없고…. 풍류소리가 밤낮이 없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안압지나 여러 절터의 출토된 막새를 보면 지붕조차 사치스럽게 장식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연꽃·봉황·기린·사자·도깨비·용·구름 등 다양한 무늬가 사용되었다.
얼굴무늬 수막새는 1934년 조선총독부 신문 ‘조선’ 229호에 기사와 사진이 실리면서 알려졌다. “이 와당의 출현은 신라예술 연구상 귀중한 자료의 하나”라 소개되었다. 경주에서 의사로 활동하던 다나카 도시노부가 골동품상에서 100엔에 구입했다고 하는데, 1930년 당시 기와집 한 채가 1000원에 거래되었다고 하니 깨진 기와 하나에 집 한 채 가격을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수막새는 경주 영묘사터에서 출토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영묘사는 선덕여왕이 창건한 절로서‘삼국유사’에 따르면 “여러 가지 기예에 통달한 양지(스님)는 영묘사의 장육삼존상과 천왕상, 벽돌탑의 기와 그리고 사천왕사 탑 밑의 팔부신장 등을 제작했다”고 나온다. 얼굴무늬 수막새는 제작자가 새겨져 있지는 않지만 그가 만들었을 수도 있다고 여겨진다. 1940년 다나카가 일본에 돌아가면서 반출되었다가 1972년 극적으로 국내에 반환된다. 다나카는 “보는 이의 마음 깊이 감명을 주는 기와를 작업한 와공의 절절한 정성을 생각할 때 느끼는 바가 있어 신라의 국토에 안주의 땅을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기증 이유를 밝힌다. 우리 땅에서 문화재를 모으고 반출했으며, 태평양전쟁 당시 군의관으로 근무했고, 우리 문화재를 일본 박물관에 다수 기증한 인물의 국내 기증이 고맙지만 애매한 것은 역사에 남은 일본의 잔재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이 수막새는 대기업의 로고로도 재탄생되었다. LG는 ‘Lucky’와 ‘Goldstar’를 합친 단어로 구인회 회장이 락히(樂喜) 화학공업사와 금성사의 이름을 합쳐 ‘럭키금성’으로 명명했다가 변경한 명칭이다. 1995년 LG로고는 얼굴무늬 수막새에서 영감을 얻어 글로벌 기업의 이미지를 담아 제작되었다. 신라 얼굴무늬 수막새라는 ‘과거의 얼굴’이 1천400년이 지나 LG의 ‘미래의 얼굴’로 다시 미소 짓는다.
신라를 대표한다고 알려진 미소, 얼굴무늬 수막새는 옛 신라의 영묘사에서 액운을 경계하는 주술적 의미로 만들어졌다. 무섭지도 않은 웃음으로 무엇인들 막을 수 있을까 싶지만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 법이고, ‘따뜻함이 겉옷을 벗기는’ 법이다. 내 이웃 같은 미소를 수막새로 만들며 그 안에 담았을 염원을 상상해본다.
◇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
/최정화 스토리텔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