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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아름다운, 칠곡 가실성당(佳室聖堂)

등록일 2023-06-26 20:04 게재일 2023-06-27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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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실성당의 종탑과 첨탑.

잘 정돈된 성당길에 들어서면 연한 꽃망울을 머금은 배롱나무가 먼저 눈에 띈다. 7월 중순이 되면 꽃을 피우는 배롱꽃은 나무 백일홍으로도 불리는데 번갈아 피고 지면서 붉은 자태를 잃지 않는다. 마치 128년을 쌓아온 가실성당의 시간과 신념을 지키고자 노력했던 많은 이들처럼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키는 것만 같다.

가실성당(가실본당)은 1895년 조선에서는 11번째로, 대구·경북에서는 2번째로 지어진 성당이다.

성당이 자리한 왜관 가실은 예로부터 낙동강을 이용할 수 있는 나루터가 여럿 가까이 있어 물류의 흐름이 빨랐다. 천주교도 일찍이 전파되어 조선말에는 한티와 신나무골에 교우촌을 형성하였고 여러 박해로 인해 순교자가 나기도 했다. 현재 한티는 이름 모를 순교자의 무덤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으로, 신나무골은 영남 천주교의 요람으로 알려져 있다. 순례길은 1967년 ‘한티가는 길’ 순례가 시작된 이래 피정의 집(1991), 영성관(2000), 순례자성당(2004)이 순차적으로 마련되어 지금은 5구간으로 나눠 운영되고 있다. 첩첩산중에 박해를 피해 숨어다니던 길(45.6㎞)이 오늘날 ‘돌아보는 길, 비우는 길, 뉘우치는 길, 용서의 길, 사랑의 길’이란 부제로 순례자를 이끄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지금의 가실성당 자리는 천주교도 성순교의 기와집이 있던 곳이다. 1894년에 파이야스(Pailhasse) 신부는 성순교의 기와집 한 채를 매입하여 성당으로 삼았다. 당시만 해도 영남에는 성당과 신부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했기에 경상도 북서부 일대, 충청도 황간, 전라도 무주 등지의 지역에 공소를 마련하여 말·도보·나루터를 이용하여 순회하였다고 한다. 1911년 서울교구에서 대구교구가 분리되면서 이듬해 투르뇌(Tourneux) 신부가 부임하였다. 그는 일제 강점기 대부분을 가실에서 보내며, 사제관과 지금의 성당(1923)을 건축한 인물이기도 하다. 현장에서 구워진 벽돌을 하나하나 망치로 두드려보고 잘 구워진 것만 외벽에 사용하였다고 하니 가실성당은 그의 정성으로 지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실성당은 동저서고의 언덕을 그대로 활용하여 단층 장방형(직사각형) 구조로 만들어진 로마네스크식 벽돌조 건물이다. 외벽은 가로줄과 세로줄을 번갈아 쌓는 영(국)식 벽돌쌓기 기법을 활용했으며, 창문·출입문·축기둥·띠 등에만 회색 벽돌로 장식하고 나머지는 붉은 벽돌을 사용하였다. 성당으로 들어가는 출입구는 의장적 의미에서 높게 지었으며 현관 위에 종탑을, 그 위에 8각의 높은 첨탑을 두어 타워 형태를 갖추었다. 신자들이 모이는 공간의 천장은 목재원형틀로 3개의 반원을 만들어 회반죽으로 마무리했다. 3개의 반원형 천장은 기둥을 두 줄로 늘어놓아 중앙의 신도석과 양옆의 통로로 구분하였다.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총 10개의 반원형 아치창을 만들었으며, 특이하게도 바닥은 온돌마루로 되어 있다.

성당 내부는 유난히 아름다운 볼거리가 많다. 교단의 대형 나무십자가는 1964년 성안나상을 대신하여 중앙에 세워졌다. 이전에는 1924년 프랑스에서 석고로 제작되었고, 본당의 역사와 함께한 국내 유일의 성안나상이 귀히 모셔졌다. 안나는 다윗왕의 후손이자 마리아의 어머니로서 한때 추앙받았던 인물이다. 그러나 지금은 구석진 자리에 서서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이 쏜 총탄에 왼쪽 어깨를 맞은 자국을 고스란히 드러낸 채 어린 마리아에게 책을 읽어주고 있다. 내실에는 성체등과 감실도 있는데, 성체등은 감실에 성체가 있음을 상징하는 불로써 한국전쟁때에도 꺼뜨린 적이 없다고 한다. 감실 정면에 있는 작품은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를 주제로 삼았다. 내부 벽에는 동양화가 손숙희가 그린 ‘십자가의 길’ 14처 액자들이 걸려 있고, 창문은 색유리창(stained glass)으로 삼왕의 경배, 호숫가의 예수 등 총 40가지 이야기가 그려져 있다. 출입구 위의 반원형창에는 착한 목자, 잃었던 아들, 씨뿌리는 사람 등의 비유를 통한 예수의 가르침이 형상화되어 있다. 색유리창은 독일 작가 에기노 바이에르트(Egino Weinert)가 2002년에 가실성당 100주년을 기념하여 설치한 것이다. 또한 종탑에는 안나의 종이 있는데 라틴어로 “나의 이름은 안나…. 많은 분들이 내 소리를 듣기를 바란다. 사막에 피는 아름다운 꽃처럼 싹이 틀 것이다” 라는 구절이 새겨져 있다. 마지막으로 구사제관은 현재 두 개의 방이 전시실로 활용되고 있으며 역대 본당 신부들의 사진, 창설 당시의 교인들 교적, 1960년대 교육용 환등기, 잉크로 그린 성서 그림 등이 전시되어 있다.

영남에 천주교가 전파되고 박해가 있던 시기 그리고 성당이 건축되던 초기, 일제강점기까지 성장하던 교세는 해방 이후 한국전쟁과 농촌 인구의 도시 이주 등으로 80년대 이후 작은 교적을 유지하고 있다. 교세는 작아졌어도 예나 지금이나 자신을 돌아보고 비우고 뉘우치며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메시지는 사람을 감응시킨다. 7월 붉은 배롱꽃이 활짝 피면 오랫동안 아름다운 가실성당 언덕길을 걸어보고 싶다.

 

◇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

 

/최정화 스토리텔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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