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년 만의 기록적인 폭우로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이 물난리를 겪는다. 옷가지며 가재도구가 물에 잠겨 쓸 수 없게 되었고 반지하에 세 들어 살던 일가족 3명이 계단으로 흘러든 물에 탈출하지 못하고 숨졌다. 백 년이 넘어서 한 번 오는 피해라고 하지만 결과가 너무 비참하다. 햇빛조차 사치가 되는 반지하에 살던 이들의 고통이 이번이 마지막이기를 빈다.
소방관들이 소방차로 반지하 방 가득 찬 물을 퍼낸다. 물이 빠진 집에서 군인들이 젖어 쓰지 못하는 가재도구를 밖으로 끌어낸다. 공무원도 일손을 거든다. 모두가 온몸 가득 땀을 흘리며 집을 치우느라 바쁘다. 살아내야만 하는 주인도 비지땀을 흘린다.
반지하는 냉전과 근대화가 낳은 이 시대의 아픔이다. 전쟁이 발발하면 대피시설로 쓰기 위해 만든 지하실이 근대화를 맞아 수도권으로 몰려든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 터전이 되었다. 그 후 큰물이 날 때마다 수해를 입어야 하는 서민들의 아픔은 이어진다.
영화 ‘기생충’에서 반지하와 고급 주택지는 극명한 빈부 격차를 보여준다. 장마가 오면 어김없이 물에 잠기는 반지하는 큰비가 내리면 일상이 된다. 반지하에서 계단을 오르는 장면은 가난한 자가 일반 사회에 진입할 유일한 기회로 묘사된다. 실제 일거리를 찾아 부잣집에 모여든 일가족이 주인의 휴가를 맞아 펼치는 부자 행각은 주인의 갑작스러운 귀가로 비극을 맞는다. 옛날 유럽에서는 창문의 개수로 세금을 매겼다. 서민들은 세금을 적게 내기 위해 창문을 벽으로 만들어 세금을 줄였다. 어둡게 살더라도 삶을 옥죄는 세금을 적게 내고 싶었다. 반지하는 현대판 창문 개수 줄이기다. 스스로 햇빛을 줄이더라도 주거 비용을 줄여야만 살 수 있는 가난한 사람들의 대명사다.
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말은 이제는 불가능한 일이 된 지 오래다. 맞벌이해도 감당하기 힘든 사교육비는 가난한 사람이 사회로 나아가는 계단이 사라지는 일이다. 착실히 고등학교 교육을 받고 사회로 나아가면 살 수 있는 여건이 되어야 하는데 시간이 갈수록 부의 격차는 더 벌어지기만 한다.
부모의 사회적 지위가 높으면 자녀가 사회로 진출하는 기회도 더 쉽고 많이 주어지는 사회는 불평등한 사회다.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누구나 당당한 역군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너무 많은 돈을 사회로 나가기 위한 요건을 갖추는 데 쏟아붓는다. 가난의 대물림이 지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높아진 물가에 수십억 원이 넘는 집값은 일반 서민이 집을 사는 것을 포기하게 한다. 시간이 갈수록 수도권 집중은 심해지고 집 없는 서민은 늘어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서울로 몰려가고 반지하의 삶은 다른 누군가에 의해 이어진다. 서민들이 양지의 야생화처럼 마음껏 햇빛을 받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일이 언제쯤 가능할까. 귀농, 귀촌, 귀어는 은퇴자나 삶에 지친 사람들만의 선택지는 아니다. 농촌이나 어촌도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일자리를 나누는 반지하 사람들을 위한 계단 만들기가 필요하다. 누구나 햇빛을 볼 수 있도록 정부와 지자체의 손길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