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일
천성이 명랑소녀였을 것 같던 내 어머니는
철없던 열일곱 살에 시집 온 그날부터
명랑한 일이 별로 없었나 봅니다
때 맞춰 꽃이 피고 지고, 새가 울던
그 아름다운 오랜 세월 동안을 먼산바라기로…
어느 때부터인가 머리 한 쪽이 쑤신다며
눈이 붉어지고 미간에 굵은 주름이 생기더니
마치 억지로라도 명랑하고 싶은 사람처럼
하얀 가루로 된 싸구려 두통약 ‘명랑’을
무시로 입안에 가득 털어넣곤 했습니다
한국의 여성들은 결혼하고 난 후 한 집안의 며느리로, 부인으로, 어머니로 살아가야 한다. 자신의 존재감을 잃고 살아가야 하는 그녀들은, 소녀시절 명랑하게 살 수 있었던 고향이 그리워 ‘먼산바라기로’ 우두커니 있곤 할 것이다. 시인의 어머니도 마찬가지였을 터, 그녀에게 명랑이 다시 찾아오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약을 통해서이다. 두통을 완화시키기 위해 복용하는 약 명랑. 씁쓸하고 서글픈 아이러니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