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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복덕방, 제관

등록일 2021-02-09 18:57 게재일 2021-02-1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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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식포항 하울교회담임목사
강영식포항 하울교회담임목사

우리 조상들은 설이 되면 세배를 하고, 그림을 주고받고, 새해에 복 많이 받으라는 덕담을 나누었다. 설날에 주고 받은 그림을 ‘세화’라고 하는데 복을 기원하고, 잡귀를 쫓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설날이 되면 이런 그림들을 출입문에 붙여 놓았다.

또 우리 조상들은 유달리 제사를 많이 지냈다. 개별적으로 제사를 지내기도 하지만 부락 단위로 제사를 지내는 일도 많았다. 일제강점기에 간행된 ‘부락제’라는 책에 의하면 전국의 부락제가 522개가 있었다. 그 중에 가장 많은 부락제가 마을의 안녕과 복을 비는 당제였는데 설날에 이 당제를 빼놓지 않았다. 특히 설날에는 떡과 술을 빚어 온 마을 사람들이 나누어 먹었다. 그때 나누어 먹었던 음식을 ‘복덕’이라 했고, 복덕을 나누던 집을 ‘복덕방’이라 했다.

이 제사의 특이한 점은 제관을 뽑는 일이었다. 보통 가정 제사의 제관은 가장 높으신 어른이 맡아서 했다. 그리고 풍어제나 기후제와 같은 제사는 무속인들이 담당했다. 그런데 마을의 안녕과 복을 비는 제사의 제관은 무속인도 아니고, 마을 이장도 아니고, 마을의 가장 덕망이 높은 어른도 아니었다. 한 해 동안 마을에서 가장 죄 짓지 않고, 부정한 짓을 하지 않고, 가장 선한 일을 많이 한 사람을 뽑아서 제관으로 삼았다. 복을 기원하는 당제의 제관은 반드시 복을 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우리 조상들의 마음속에는 복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마을에서 가장 죄 없는 사람, 가장 선한 사람, 가장 부정한 짓을 하지 않은 사람이 복을 나누어 줄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 생각 했다. 그런 사람을 뽑아서 제관으로 삼고, 제사를 주관하게 하고, 제사가 끝나면 복덕을 나누는 일을 하게 했다. 그래야만 그 마을에 한 해 동안 복이 있는 마을이 된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결국 복을 받느냐 못 받느냐는 것은 그 마을에 죄 없는 제관이 있으냐 없느냐에 달려 있었다.

성경 시편1편에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않는 사람, 죄인의 길에 서지 않는 사람,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이라 했다. 우리로 치면 당제의 제관이다. 설날에 가장 자주 듣고 자주 하는 말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 덕담을 하기에 약간 쑥스럽다. 왜냐면 이 말은 원래 복덕방에서 복덕을 나누어 주면서 제관이 하던 말인데 나는 그런 제관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한 번의 설을 맞이 하면서 내년 설날에는 당제의 제관이 되어 복덕방에서 복덕을 나누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덕담을 쑥스럽지 않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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