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 화제는 단연 `지진`<bR>`비상시엔 머니가 중요`…현금 가장 먼저 챙겨<bR>아이있는 주부 `피난 배낭` 매고 설거지하기도
추석을 불과 사흘 앞두고 발생한 역대 최강 지진 피해의 여파로 진앙지 부근인 포항과 경주 등에서 올해 명절 연휴 기간 중 인기 화제는 단연 `지진`이었다.
이번 추석을 맞아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인 가족과 친지들은 지진 발생 당시의 경험담과 전해 들은 얘기들을 서로 나누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 가운데 북구 두호동 영일대해수욕장 인근의 한 미용실에서는 머리를 깎던 한 40대 여성이 지진이 발생하자 마무리도 채 마치지 않은 상태로 황급히 귀가했다가 1시간쯤 뒤 돌아와 남은 머리를 마저 깎았다는 에피소드도 전해졌다.
야간 자율학습 중이던 포항의 여자고등학교 곳곳에서는 학생들이 부모와 통화를 시도하다 연결이 되지 않자 울음을 터뜨려 교사들이 서둘러 귀가시키느라 애를 먹었다.
위급한 상황에서 귀중품 챙기기 백태도 흥미를 끌었다. 특히 명절 용돈을 위해 각 가정마다 미리 찾아 놓은 현금을 가장 먼저 챙겼다는 얘기가 많았다.
지진 당시의 충격으로 인해 미취학 아동을 둔 가정주부의 경우 다음날인 13일 오전에도 `피난 배낭`을 맨 채 설거지 등 가사일을 했다는 경우도 있었다. 아파트촌에서는 친한 주부들끼리 서로의 안부를 물은 뒤 우황청심환을 주고 받으며 정을 나누기도 했다.
사고 소식에 해외 교민인 지인으로부터 안부전화를 받으며 지진경험담을 전해들었다는 얘기도 있었다.
회사원 김모(49·북구 우창동)씨에 따르면 오후 8시32분께 본진이 발생한 뒤 미국 L.A에 사는 지인이 전화를 걸어와 `태평양 동부 연안인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지진을 자주 경험한다. 보통 전진(前震)과 본진(本震), 두번에 걸쳐 지진이 이어지는데 이때 큰 피해가 없으면 이후 여진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 너무 불안해 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실제로 이후의 상황은 통화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12일 오후 9시께 포항의 주요 간선도로인 7번 국도의 상행선에 극심한 정체가 이어졌던 상황에서 운전자들의 침착한 대응도 화제가 됐다.
당시 이 일대는 귀가를 서두르는 차량들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장사진이 이어져 평소 퇴근시간이나 주말처럼 끼어들기나 꼬리물기, 경적 소음이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특히 경찰조차 교통통제에 나서지 않아 일대 혼란이 예상됐지만 교차로마다 서로 길을 양보하는 등 이날은 달랐다는 것이다. 난생 처음 겪는 지진의 공포에 휩싸여 국가와 지자체의 통제 조차 실종된 상황에서 시민의식이 발휘되는 현장을 목격했다는 얘기들은 폭우까지 닥친 이번 명절을 다소나마 훈훈하게 했다.
/박동혁기자 phil@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