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홉’ 재배 기술자 김진동 에이홉 대표 전량 수입 의존하던 맥주원료 홉 고향 포항서 시험포 만들어 생산 ‘포항수제맥주’ 완전 국산화 이뤄 “생동감이 있는 ‘향’으로 차별화 좋은 맥주는 결국 지역서 탄생”
푸드트럭으로 전국을 떠돌며 맥주를 팔았다. 맥주의 향과 맛에 푹 빠져서다. 아예 맥줏집을 차려서 더 깊은 맥주의 세계로 향했다. 어느 날 한 손님이 “맥주에서 나는 향기의 정체가 무엇이냐”고 물었는데, 선뜻 답을 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 ‘홉[(Hob)이 맥주 향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번에는 홉의 세계로 나갔다. 28일 포항시 북구 흥해읍 대련리의 한 밭에서 만난 에이홉 대표 김진동씨(40)는 “홉은 단순한 농작물이 아니라 기술의 결정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국내 수제 맥주 시장에서 ‘홉’은 전량 수입에 의존한다. 미국·독일·호주 등에서 들여오는 홉은 운송비와 냉장 보관비가 비싸고 물류 과정에 따라 품질 편차도 크다. 이런 현실이 답답했던 김 대표는 직접 홉을 재배해 보겠다고 마음먹었다. 주변에서는 맥주 팔던 사람이 맥주 원료 재배에 나선다는 김 대표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싸늘한 반응에 굴하지 않은 김 대표는 고향인 포항의 바람과 햇살을 믿었다.
전국의 재배지를 직접 찾아다니며 발품을 판 김 대표는 해풍이 세고 일조량이 많은 덕분에 홉 성장의 최적지인 포항 흥해읍 대련리에 터를 잡았다. 2022년 작은 시험포도 만들었다. 그는 “첫해엔 정말 엉망이었다. 철선을 잘못 걸어 줄기가 쓰러지고, 바람에 날리고, 해충까지 들끓었다”면서 웃었다.
그는 실패를 그냥 넘기지 않았고, 원인을 전부 기록했다. 김 대표의 실험 노트에는 토양 상태, 온도, 바람, 일조량까지 꼼꼼히 적혀 있었다.
홉을 단순히 농작물로 보지 않는다는 김 대표는 “홉은 씨를 뿌리고 물을 준다고 자라는 식물이 아니라 재배부터 건조, 저장, 추출까지 모든 과정이 연결된다“면서 ”향을 얼마나 보존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포항의 기후 데이터와 토양 분석, 일조량 변화를 꾸준히 기록하며 품종을 조정하고 있다. 아로마 향이 강한 ‘캐스케이드’를 심었다가도 쓴맛 중심의 ‘센테니얼’을 시험하기도 한다.
현재 국내에서 상업적으로 홉을 재배하는 지역은 강원 홍천·경북 의성·전북 부안, 그리고 포항까지 네 곳 뿐이다. 포항은 해풍과 일조량이 풍부해 ‘시트러스 계열’ 홉 품종 재배에 특히 유리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 대표의 목표는 단순히 홉을 재배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는 포항의 수제 맥주 브랜드 ‘포항수제맥주’를 운영하는 이광근 대표와 손잡고 “좋은 맥주는 결국 지역에서 태어난다”는 신념을 실현하고 있다. 이광근 대표는 이미 맥주의 90%를 포항산 재료로 만들어왔다. 쌀과 과일, 물까지 모두 포항에서 나왔다. 하지만 맥주의 향을 결정짓는 핵심 재료인 홉만은 수입산이었다.
포항수제맥주의 마지막 한 칸인 홉을 포항산으로 채운 김 대표는 “직접 재배한 포항산 홉이 맥주 양조에 쓰이자 변화는 금세 느껴졌다”라면서 “비율은 아직 높지 않지만, 향의 차이는 확실했다. 수입산보다 거칠지만 그 안에는 분명한 생동감이 있다”고 강조했다.
“포항의 땅이 ‘우리 함께 만들어가 나가자’라고 말을 건다”며 웃음 짓는 김 대표는 ‘농부이자 실험가’의 모습 그대로였다.
글·사진 /이시라기자 sira115@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