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사랑 이색명소… 포항 `아이언로즈`
축구 종가 `영국` 사람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축구 클럽에 대한 애착이 세계 어디를 가도 지지 않을 만큼 열정이 가득하다. 아마도 이렇게 팬들이 뜨겁게 보내는 열렬한 지지는 영국만의 축구리그가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우리 K리그에도 영국의 팬 만만치않은 뜨거운 `열정남`이 있어 화제다. 주인공은 K리그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명문구단 포항스틸러스의 30년 지기 팬, 포항시민 윤명진(40)씨.
윤씨는 오랜 시간 축구팬으로 활동하며 박물관에 버금가는 축구 관련 자료를 수집했고, 나아가 지난해 축구팬들의 공간인 카페까지 열었다. 포항운하에 자리한 그의 카페 `아이언로즈`는 포항스틸러스의 역사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현장으로 손꼽히며, 전국에서 팬들이 찾아올 정도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이에 지난 주말 지역의 새로운 이색 명소가 된 `아이언로즈`를 찾아 어렵게 윤씨를 만나봤다.
광팬 윤명진씨, 포항운하 옆서 커피향·축구열기 가득한 카페 운영유니폼·축구화·사인볼·응원문구·입장권 등 다양한 수집품 천지
□ 꼬마 축구팬이 지금은 `마니아`로
포항시민이라면 한 번쯤 가족들의 손을 잡고 축구 경기를 보러 간 기억이 있을 것이다.
윤씨와 축구의 인연도 그렇게 시작됐다. 국민학교 재학시절 아버지의 손을 잡고 당시 포항종합운동장을 찾았던 그가 이렇게 `마니아`가 될지는 몰랐다. 이후 그가 본격적으로 축구(포항스틸러스) 관련 자료를 모으기 시작한 것은 유니폼을 수집하면서부터였다. 경기를 할 때 선수들이 입고 뛰었던 유니폼만큼 팀의 역사를 잘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싶어, 한때는 2천장이 넘는 유니폼을 소장하기도 했다는 것. 이처럼 국내 레플리카(유니폼)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윤씨의 이름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그는 열성적인 수집가다. 이렇게 수십 년간 모은 유니폼들은 `아이언로즈`에 전시돼 있다. 그동안 모아온 많은 자료를 팬들과 함께 나누며 같이 보고 싶었다는 마음에 카페를 열게 됐다고 했다.
□ 생생한 축구 역사를 보여주는 유니폼 모음
많은 이들이 아이언로즈에 처음 들어서면 감탄사부터 내던진다. 카페 입구부터 걸려 있는 포항스틸러스의 유니폼과 사진, 응원문구가 축구장을 들어서는 느낌을 방불케 하기 때문.
포항스틸러스의 전설이자 현 감독인 `황새` 황선홍 선수부터, `라이언킹` 이동국 선수가 포철공고 시절 입고 뛰었던 유니폼, 어린이들의 우상이었던 보스니아 출신 외국 용병 라데까지.
이외에 허태식·홍명보 선수 등 수많은 희귀한 유니폼이 매장에 걸려 있어 국내 어디를 가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생생한 축구역사의 현장이 눈앞에 펼쳐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또한 2층에는 현재 중동에서 활약 중인 포항스틸러스 출신 이명주 선수가 직접 경기에 입고 뛰었던 유니폼도 전시됐다.
이와 함께 전시된 유니폼에 대한 놀라운 사실도 있다. 카페에 걸려 있는 유니폼 모두가 선수들이 직접 입고 뛰었던 제품이라는 것. 과연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는 열혈팬이다.
현재 그의 수많은 컬렉션 중 가장 아끼는 것은, 1층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전시된 `조긍연`선수의 유니폼이라고 했다. 21년에 달하는 윤씨의 축구용품 수집 역사에서 가장 간절했던 `꿈`이었단다. 지난 1985년에 당시 포항 아톰즈에 입단했던 조긍연 선수는 그가 축구에 빠져들던 어린 시절 가장 좋아했던 공격수다.
윤씨는 “어린시절 축구경기를 보러가면 조긍연 선수만 볼 정도로 존경하고 좋아하는 선수”라며 “20년을 넘게 구하고 싶었는데 마침내 가질 수 있게 돼 꿈만 같고 언젠가 조 선수가 카페를 찾아주면 큰 영광일 것 같다”고 말했다.
□ 유니폼보다 더 다양한 축구용품 수집
그의 수집욕은 유니폼에서만 그치지 않았다. 카페 한쪽 벽면에 걸려 있는 액자에는 그동안 포항스틸러스가 치렀던 경기의 입장권을 모아 전시해 뒀다. 1988년 한국프로축구대회 입장권부터, 1995년 경기 입장권, 지난 2009년 일본 도쿄에서 포항이 우승했던 AFC 챔피언스리그와 최근의 경기까지, 수십 년의 역사가 액자 속에서 향수를 자극하고 있는 모습이다. 더 놀라운 건 액자가 두 개나 걸려 있는데도 현재 액자를 만들지 않아 전시하지 못하는 입장권이 더 있다고 했다. 소장 중인 것만 100경기 이상이니 그의 축구경기에 대한 애착이 잘 드러나는 셈이다. 이외에도 선수들의 축구화, 축구공, 선수들의 싸인 등 다양한 수집품이 넘친다.
아울러 미처 전시하지 못한 K리그 가이드북, 팬북 등 수많은 자료도 소장하고 있어 축구팬들에게 윤씨는 선망의 대상이며 아이언로즈는 천국이 따로 없는 곳이라 볼 수 있다.
□ 전국 축구팬에게 `성지`가 된 카페
사실 아이언로즈는 지역민보다 전국의 K리그 팬들에게 더 유명세를 타고 있는 낌새다. 오래전부터 축구를 컨셉으로 펍, 카페 등이 많았지만 대부분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사라진 곳이 상당수인데다 아이언로즈만큼 한 클럽에 대해 많은 것을 보여주는 곳이 없기 때문. 이에 수원삼성블루윙즈, FC서울, 부산아이파크 등 타팀팬의 부러움도 샀다. 원정경기가 있는 날에 포항을 찾았다가 일부러 수소문해 카페까지 찾아오는 팬들도 상당수다.
또한 유니폼을 제외하고 포항스틸러스의 오래전 사진, 축구화, 축구공 등 다양한 축구 관련 아이템을 볼 수 있어 SNS를 통해 많은 어린이도 부모님과 함께 이곳을 찾고, 경기가 있으면 함께 관람을 하고 있다.
윤 씨는 “특히 가까운 부산과 팬 수가 많은 서울에서 축구팬들이 자주 찾아오며 연고팀의 자료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이 부럽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더라”며 “초등학생들도 인터넷을 보고 부모님을 졸라서 카페를 찾아와 신기해한다”고 말했다.
□ 무모한 도전? 열정을 어찌 꺾으리
사실 윤씨는 카페를 열기 전 포항에서 잘 나가던 유명 보험회사의 지점장이었다. 억대에 가까운 연봉을 포기하고, 뜬금없이 카페를 차리겠다고 나선 그를 응원하기엔 무모한 도전이라는 생각에 가족들의 우려도 컸다.
하지만 커피도 좋아하고 축구도 좋아하는 `강철`같은 그의 굳은 팬심을 어찌 꺾을 수 있으랴. 지금은 한술 더 떠 축구와 관련된 또 다른 사업까지 준비하고 있다며 몰래 자백(?)하기도 했다.
그는 아이언로즈가 포항의 주요 관광지인 포항운하 옆에 위치하고 있어 언젠가는 포항을 찾는 사람들이 반드시 가봐야 할 지역의 명물이 되지 않을까 꿈꾸고 있다. 카페 이름인 `아이언로즈(Iron Rose)`가 포항의 시화(市花)인 장미, 포항의 상징인 철을 합친 명칭인걸 감안하면 이러한 포부를 잘 담고 있다는 느낌이다.
윤씨는 가끔 포항운하를 지나다 들른 시민들이 놀라며 옛 추억에 잠기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뿌듯하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지역에 포항스틸러스처럼 위대한 역사를 가진 클럽이 연고를 두었다는 것에 정말 자랑스러우며, 아울러 포항스틸러스에게도 감사한 마음이 든다”고 밝혔다.
/고세리기자 manutd20@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