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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화 휩쓸고 갔나… 잿더미에 뒤덮인 보금자리

최승희기자
등록일 2013-03-11 00:03 게재일 2013-03-11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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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흥동 `우미골` 화재현장<br>100여 가구 중 28채 불타 최대 피해마을<Br>멀리서 타는 집 바라볼 때 가슴 미어져<Br>난민촌이나 다름없는 곳 재개발 나서야
▲ 지난 9일 오후 포항 시가지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로 가장 심각한 피해를 당한 북구 용흥동 우미골의 주민들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잿더미로 변해버린 집안을 살펴보고 있다. /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

10일 오전 11시30분 포항시 북구 용흥동 현대아파트 뒤편의 속칭 `우미골`.

전날 오후 인근 탑산에서 발생한 불이 강풍을 타고 순식간에 옮겨 붙으면서 이 마을에서는 주택 전체 100여 가구 중 30%인 28채가 불에 탔다. 마을 단위로는 피해가 가장 컸다.

특히 탑산과 수도산의 중간지대에 움푹 꺼진 지대에 자리해 이날 주민들은 옴짝달싹 못하고 화마에 갇혔다.

19시간이 지난 현장은 마치 참혹한 전쟁터를 연상케 했다.

형체 하나 남기지 않고 모조리 무너져 내리거나 시커먼 뼈대만 남은 집, 매캐한 냄새, 화재 20시간이 지난 뒤에도 곳곳에서 허옇게 피어오르는 연기가 당시 화마의 위력을 짐작하게 했다.

피해 주택 대부분이 야산과 경계를 이루는 집들이었다. 그중에서도 불행 중 다행으로 집 바로 뒤에 나무가 없는 집들은 화를 면했다. 담장을 사이에 둔 집은 전소되는가 하면 어느 집은 마당의 잡초 하나 불에 타지 않은 이유였다.

▲ 산불로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고 학산사회복지관 경로당에 대피한 김영제(82·오른쪽) 할아버지가 지병으로 몸이 불편한 부인 공영자(73·가운데)씨를 대피시키며 화상을 입었던 당시의 아찔했던 순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용선기자

마을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박춘화씨의 경우 60여평 집이 모조리 탔다.

박씨는 “남편도 나도 일을 하는 날이라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이 둘만 집에 있었다. 이웃에 있는 친정어머니 전화를 받고 급하게 달려갔더니 불은 이미 집 뒤쪽으로 번졌더라. 옷가지 하나 제대로 못 챙기고 급하게 아이들만 데리고 나왔다. 진화가 늦어져 멀리서 집이 타는 과정을 고스란히 지켜보는데 가슴이 미어지더라”며 밤새 울어 퉁퉁 부은 눈에서 굵고 뜨거운 물줄기가 또 한 번 흘러내렸다.

소식을 듣고 지방에서 한 걸음에 달려왔다는 박씨의 올케는 “작년에 큰 돈 들여 도배도 하고 리모델링까지 했는데 하루 아침에 이런 일을 당해 막막할 뿐이다. 같은 산밑이어도 옆집은 깨끗한데….”라며 긴 한숨을 쉬었다.

피해 주민 대부분이 고령으로 친척집 또는 대피소로 이동하는 바람에 인적조차 드물었다.

다행히 화를 면한 아랫마을 주민들만 곳곳에 삼삼오오 모여 전날 위급했던 상황을 회상했다.

▲ 하루 아침에 알거지가 되어버린 북구 용흥도 우미골의 한 주민이 잿더미 속에서 쓸만한 물건을 찾고 있다. /이용선기자

A씨는 “대피고 뭐고 불이 마을 쪽으로 번지기 시작하자마자 본능적으로 지붕이고 담벼락이고 할 것 없이 정신없이 물을 뿌려댔다”고 말했다.

B씨는 “독거노인이나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저소득층이 대부분인데 이런 일까지 일어나 허탈하다”면서 “포항에서 몇 안 되는 난민촌이나 마찬가지이고 이번 화재로 전소된 집이 한두 곳이 아닌 만큼 이참에 포항시도 마을의 재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고 지적했다.

/최승희기자 shchoi@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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