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존 상태 양호·역사적 희소가치 인정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대부분 철거되고 사라졌지만, 예천 용궁 척화비는 몇 차례 자리를 옮기면서도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역사적으로 희소가치를 인정받아 문화재로 지정됐다.
이 비는 1866년(고종3) 병인양요와 1871년(고종8) 신미양요를 거치면서 전국의 주요 도로 등지에 세워진 척화비 가운데 하나로, 비석 전면에는 `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 戒我萬年子孫 丙寅作 辛未立`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이는 `서양 오랑캐가 침입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해를 하는 것이니, 화해를 주장하면 나라를 파는 것이 된다. 우리의 만대 자손에게 경고하노라. 병인년에 짓고 신미년에 세우다`를 뜻한다.
흥선대원군의 정책에 따라 설립된 척화비는 국내적으로는 국정쇄신을 통한 왕권 강화, 대외적으로는 서구 열강의 침탈을 막기 위해 전국에 세워진 것으로 역사 교육 자료로써 활용가치가 높다.
비신은 귀접이 형태로 크기는 폭 45.5㎝, 높이 76㎝, 두께 15.5㎝이다. 원래 민가에 있던 것을 용궁중학교에서 찾아 용궁초등학교 동편 비석들이 있는 곳에 옮겼다가 1988년 만파루를 재건하면서 다른 비석들과 함께 그 옆으로 옮겨 놓은 것이다.
예천군은 척화비를 포함한 국가 및 시·도 지정문화재가 86건 895점으로 전국 시군구 중 25번째로 많은 문화재를 보유한 자치단체가 됐고, 향후 명봉사 조선왕조 태실, 윤탕신 호신부, 용문사 중수비 등의 문화재들도 지정되면 역사·문화도시의 입지를 더욱 확고히 할 전망이다.
문화재로 지정된 예천 척화비는 척화비의 보존·관리뿐만 아니라 주위의 만파루를 비롯한 역사적 자료 또한 일반인들에게 알려져 현장교육과 관광 자원으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정안진기자 ajjung@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