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등뒤에서 서서 너를 배웅하는 일은 언제나 눈물겨워 좋다. 이럴 땐 등까지 차오르는 내 이유 없는 슬픔에도 온기가 배인다. 눈시울 가득 차오르는 눈물 너머로 너를 바라다보면 멀어지는 네 어깨의 수평선은 보폭을 따라 출렁이고 너는 멀어지는 만큼 내 안으로 걸어 들어와 불을 켠다. 모퉁이를 돌아 네가 사라진 뒤에도 나는 쉽사리 돌아서지 못하고 문득 눈을 들어 하늘을 보면 아파트 사이마다 높게 걸려 빛나는 수많은 수평선들이 보인다.떠나는 이의 뒷모습에서 시인은 출렁이는 수평선을 보고 있다. 멀어지는 만큼 더 큰 물결로, 더 큰 그리움이 가슴에 쌓여오는 것이다. 아쉬움과 그리움은 간절한 기다림이라는 시간의 타래에 엮이고 아파트 사이의 수많은 수평선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끊임없이 밀려오는 물결 같은 그리움에 젖게 되는 것이다 시인
2019-02-06
동굴 같은 방안부팅을 한다. 오늘도돌거울 같은 액정창 속에서수렵의 연대를 만난다선바위를 돌아오는피리소리, 들소를 부르는어둠의 둘레에 드러나는들소의 무리너무 오랜 그때를 재생하는내가 사랑하는들소의 눈망울나는 지금일만 이천 년을 거슬러동굴 암벽에붉은 들소를 그린다
2019-01-31
밤새 책상다리를 하고거울 앞에 앉았다밤은 길었다흐트러진 몸새로 속눈썹을 그렸다지웠다가 다시 그렸다속눈썹을 가늘게 가늘게 길게 뽑아 올렸다아침은 더디게 왔다석 달 열흘을거울 앞에 책상다리로 앉아 속눈썹을 매만졌다선홍빛 속눈썹에 새벽이 와 있었다문을 열자 아침 달이 뒷걸음치며내려다보고 있다곁눈질이다상사풀꽃맨살 가슴 풀어헤치고속눈썹 발딱아침 달을 좇는다속눈썹이 가늘게 떤다선홍빛이다시인은 상사풀꽃을 유심히 들여다보며 그 속에서 사람사는 세상을 읽어내고 있다. 석달 열흘 동안 지신을 치장해서 선홍색 고운 꽃으로 피어나는 꽃처럼 오래 시간 동안 자신을 갈고 닦으며 살아가다보면 아름다운 꽃처럼 세상에 희망과 기쁨을 줄 수 있는 가치로운 사람으로 설 수 있다는 것을 시인은 풀꽃 하나를 들어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시인
2019-01-30
자기 전에 안경을 닦는다책 속에 꿈이 있는 줄 알고책 읽을 때만 썼던 안경을총기가 빠져나간 눈에열정이 빠져나간 눈에덧눈으로 씌운다잠은 어두우니까 더 밝은 눈이 필요하지감긴 눈도 뜬눈이 되어지나쳐버리는 꿈도 놓치지 않게 되고꿈도 크고 밝은 눈을 쉽게 알아볼 것 같아자투리 낮잠을 잘 때도반드시 안경을 쓰는데꿈이 자꾸 줄어드니까새 꿈이 안 오니까꿈을 더 잘 보려고꿈한테 더 잘 보이려고멋진 새 안경을 특별히 맞췄는데새 안경이 없어졌다다리는 새 걸로 바꾸지말 걸 그랬어책 읽을 때만 쓰던 안경을 잘 때 쓴다는 시인의 말에는 상식을 전도시킴으로 얻으려고 하는 의도가 깔려있다. 책 속에서 찾던 길이 현실에서 잘 보이질 않아 더 밝은 눈으로 꿈속에서 길을 찾겠다는 시인의 목소리에는 현실의 여러 한계들과 허구성을 질타하는 매서운 회초리가 숨겨져 있음을 본다. 시인
2019-01-29
봄은 안 오고꽃만 피었네봄 아니 오고꽃만 피었네바보야웃지 말어라가슴에 차 있는 건그리움뿐이면서꽃가지휘어잡고울어라꽃가지 휘어잡고철철 울어라시인이 기다리는 봄은 꽃 피고 새 우는 화창한 봄날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시인이 갈구하는 봄은 무엇일까. 사람살만한 세상이거나 진정한 자유와 행복이 봄볕처럼 온누리에 퍼지는 화엄세상인지도 모른다. 봄을 부르고 기다리는 시인의 간절한 목소리를 듣는다. 시인
2019-01-28
가장 낮은 자리에선살얼음이 반짝인다빈 논바닥에마른 냇가에개밥 그릇 아래개 발자국 아래왕관보다도시보다도살얼음이 반짝인다높은 곳, 드러나 있는 곳에서 반짝이는 것보다 낮고 숨겨져있고, 보잘 것 없어 어떤 관심도 눈빛도 받지 못하는 것에서 반짝임을 찾아내어 그것이 참된 반짝임이라고 옹호하는 시인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것이 우리네 인생살이에서도 발견된다. 낮고 보잘 것 없고 소외된 삶 속에서 겸허히 반짝이며 빛을 발하는 생이 우리 주변에는 있는 것이다. 시인
2019-01-27
온통 우리고 가는 대신풍경 그 청동의 표면에서 살짝입만 맞추고 지나간 바람처럼아는가, 네가아주, 잠간, 설핏, 준 눈길에안으로 안으로 동그랗게 밀물지는 설렘의 잔물결고요히 한생을 두고 일렁이는시인은 풍경 밖의 세계가 풍경 안의 세계로 전도되는 것을 말하며 고요히 한생을 두고 일렁이게 만드는 그 파동을 간절함의 미학으로 그려내고 있다. 스치고 지나버린 듯하지만 가슴 속에 오랜 설레임으로, 그리움과 기다림으로 일렁이며 물결쳐오는 것들이 있어 우리의 한 생은 더 아름다운건지 모른다. 시인
2019-01-24
낮아지는 햇살 틈새마지막 이파리 몇 장 우리를 떠날 때저만치 늦은 가을 강을 건너는 널 보았지자욱히 억새꽃 날리어가는 언덕길바람 속 하얀 발자욱 두고온 저녁이 있었어침묵 속으로짙은 안개가 내리고바람은 속절없이 불어가슴 속 고운 무늬들을 지워갔지만찌그러진 연밥 위로 기억들은 발효되고고요히 푸른 여운이 숨 쉬고 있었어굴절된 시간의 매듭을 풀며 가만히나를 두고 떠나는 십이월차가운 강에도두고 온 억새언덕 발자욱 위에도눈이 치겠지아슴아슴 떠오르는그리운 순간들 위로도하얗게하얗게 눈은 내리겠지억새꽃 하얗게 날리는 늦가을 언덕에서 지난 날 청춘의 시간 속에 두고온 사랑을, 혹은 아름다운 추억을 떠올리고 있다. 어쩌겠는가, 붙잡을 수 없는 시간은 핑핑 지나가는데. 바람은 속절없이 불고 길고 푸른 여운을 남기며 떠나는 가을의 끝자락에 서서 곧 하얗게 눈이 내릴 걸 생각하며 상념에 들고 있음을 본다. 아득히 멀어져 가는 것들을 나직이 호명하며 그리움에 젖어듦을 본다. 시인
2019-01-23
지하철 전동차에서 날마다 만나는 낯익은 듯 낯선 이들이여, 한 시절을 흔들리며 네 앉은 자리 내 앉고 내 앉은 자리 네 앉고 또 너 서 있던 자리 내 서 있고 내 서 있던 자리 넘어서 가는, 한 세월 동안 네 날숨 내 들숨 되고 내 날숨 네 들숨 되는, 가만히 눈 들면 네 눈 속에 내 얼굴 들어 있고 내 눈 속에 네 얼굴 들어 있는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눈부처가 아니냐 생각하면, 생각하면, 생각을 하면!날마다 전동차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 앉고 서고 눈빛 마주치는 사람들이야말로 생활과 생명의 연대를 이루며 살아가는 공동체가 아닐까. 서로 순환하고 소통하면서 구슬처럼 한 줄에 꿰인 타래 같다는 생각을 하며, 서로의 모습을 투영하며 반사되는 이러한 풍경을 보며 시인은 서로가 서로에게 눈부처가 아닐까 하는 깨달음에 이르고 있다. 시인
2019-01-22
한밤, 시내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다가집 가까운 곳보다 두어 정류장 먼 곳에 내려하늘의 밝은 별 한 번 바라보고별처럼 빛나는 나의 집을 향해 걸으며누군가에게 했던 말을 떠올립니다‘남들과 다르게 살아가려고 노력했죠’사십이 되도록 운전면허도 없었고대학원 갈 돈으로 계림과 서안콜로세움과 타지마할도 다녀왔고이웃들이 갖고 있지 않은 시집도300여 권 갖고 있고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또발 옮길 때마다 그리고를 덧붙이다가낙원아파트 앞에 도착하였습니다나를 기다리고 있을 한 명의 처와세 명의 자식들이 있는5층 아파트 계단을 밟으며 오르다그리고 그리고 무엇인가 더 찾다가휑하니 열린 꼭대기 옥상까지 올라또 하늘을 보았습니다걸어오며 올려다 본 별하늘이 그곳에 있고걸어왔던 길로 누군가 걷고 있었습니다남들과 같게 살으라고 노력하는지상의 사람들이시인이 말하는 별처럼 빛나는 나의 집은 어디일까.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참된 행복과 안식이 있는 힐링의 공간이 아닐까. 거기에는 아버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고 그들과 함께 사랑으로 지어가는 행복이라는 집이 있다. 시인이 말하는 낙원아파트는 비록 화려하지 않고 넉넉하지 않지만 따스한 인간애가 얽혀있고 밤마다 반짝이는 별이 내려와 함께하는 정겹고 사랑이 넘치는 공간인 것이다. 시인
2019-01-21
삶을 괴롭히던 또 다른 왕국(王國)이며해수(海水)에 목이 잠긴 그 고운 신앙(信仰)이며가서는 오지 않았던살아있는 천국(天國)이여큰 그리움 만나려면 더 멀리 가야 한다더 큰 그리움은 몇 날 며칠 지세운다생과 사 이어도 사나 님 생각은물길로 간다난파되어 못 오며는 다음 배에 오리니배 무거워 못 오며는 이어도에 사는줄을살아서 보고 싶어라목숨이 물결로 오네입이 없던 사람은 피리 되어 갔으리아직도 철썩이는 꿈 건져야 할 깃발 푸른긴 역사(歷史) 돌아와 있네그리운 섬 이어도이어도는 실존하는 섬이 아니다. 시인에게 이어도는 현실과 꿈 사이에 놓인 또 다른 공간이다. 실체가 확인되지 않지만 시인이 추구하는 희망과 인식의 공간인 것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가슴 속 하나씩의 이어도가 있는 건 아닐까. 영원한 그리움 속에 떠 있는 그리운 섬이 바로 이어도가 아닐까. 시인
2019-01-20
잎인 듯 꽃을 피웁니다꽃인 듯 한잎 두잎 답니다잎이라도 반겨줄 이가 있고꽃이라도 사랑해줄 이가 있겠지요웃고 지내는 날은 별이 뜰 것이고울며 지내는 날은 별이 질 터이니잎인 듯 꽃처럼 싱그럽게 웃기도 하고꽃인 듯 잎처럼 활짝 웃기도 합니다산등성이 어디선가 들려오는 새소리계곡 아래로 흘러가는 물소리알고보면 나의 다른 이름이지요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산 비탈 구석진 곳에 피어난 산국화를 보며 시인은 우주를 떠올리고 있다. 잎인 듯 꽃으로, 꽃인 듯 잎으로 피어난 산국화. 고운 빛깔과 향기를 발산하며 피었다가 소리없이 시들어버리는 야생의 국화는 그 누구도 인식해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자체가 우주 삼라만상의 주인공이며 소중한 존재라는 시인의 인식이 녹아있는 시다. 시인
2019-01-17
협곡이다너무 깊고 높고 복병까지 숨어 있어건너기 힘든 골짜기다 지금껏 달려온시간들한순간에 멈추게 하는 낭떠러지가여기, 있다쉰에 아버진 날 낳았고엄마는 쉰에 남편을 잃었다늦게 본 자식 탓에 살맛난 아버지일곱 남매 독차지한 덕에살 목표가 생긴 엄마그것도 희망이라고 평생 놓지 않았다쉰에는 온가지 풍파가 도사린다끝끝내 출산을 거부한 나는회개하듯백이십 그램 자궁을 들어내고서야가볍게 쉰을 맞는다새록새록 떠오르는 기억들은희망보다 숙명에 가까워서넘기 힘든 언덕처럼 아주 힘겹게 오지만쉰은,나이만큼 울창한 고뇌의 숲을 만든다50년 이라는 인생의 시간을 온갖 풍파 속을 헤쳐나온 시인은 50년 전 꼭 같은 생의 터널을 지나온 어머니를 떠올리고 있다. 쉰에 아버지를 잃고 자식을 위해 죽도록 헌신해온 어머니와는 달리 시인은 출산을 거부해왔다고 고백하면서 어머니와 자기자신에 걸쳐져 있었던 질긴 질곡의 굴레를 돌아보고 있는 것이다. 시인
2019-01-16
목수건 한 장목장갑 한 켤레팔십 넘은 노인네들이비가 긋는 산 한쪽에 옹기종기모여섰다나직이 무어라 무어라 말들을 한다생은 저물어 예까지 와서비를 맞는다돼지고기를 설컹설컹 씹으며장난스러운 도깨비들처럼 웃는다끝이 보이는 화아한그렇게 화아한산역(山役)에 나선 80대 노인들의 모습 속에서 시인은 생의 소멸과 끝을 보고 있다. 목수건 한 장 목장갑 한 켤레에서 단촐한 소유를 느끼고 돼지고기를 씹으며 웃는 모습들에서 천진함과 단순한 그들의 생을 엿보고 있는 것이다. 세속적인 부귀영화를 버리고 힘겨운 노동을 하면서도 그들은 행복을 누리고 있음을 시인의 눈은 따라잡고 있는 것이다. 시인
2019-01-15
봉지 속에한 사내가 있다꽃 떨어지자마자 봉지 속에 유폐된 사내얼마의 내공을 쌓았기에독방에 갇혀서도부처님은 몸빛보다도 더 찬란할까봉지를 벗기자눈부신 가을 햇살이황금빛에 튕겨 깨진다몸 안 가득 채운단물은사내의 땀방울이다 그리움이다세상에 단 한 번도 내보이지 않고 고인눈물이다눈물이 매달린 배 나뭇가지 사이에서사내가잘 익은 자기 얼굴을웃으며 따고 있다봉지 속에 감싸인 배는 봉지 안에 갇힌 채 마지막 성숙의 과정을 혹독하게 치른다. 햇빛과 바람과 공기마저도 차단된 채, 속으로 단물을 채워나간 후 고운 빛깔과 맛있는 결정체가 된다. 시인은 배를 한 사내에 비유하면서 혹독한 시련 속에서 땀방울과 눈물과 그리움을 쌓아가며 원숙한 결실에 이른다는 인생의 보편적 진리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
2019-01-14
미꾸라지는 구름처럼 흐르고 싶었을까함지박에서 요동치는 몸놀림이곧 구름 사이로 들어갈 것 같다부풀어 오르는 상상으로 삶의 경계를 넘어무한의 허공으로 스며들 기세다상처투성이 될지라도 기어코 오르고말겠다고 함지박을 기어오르는저 몸부림!외로운 투지는 바닥을 드러낼지언정이 상황을 변환시키겠다고 발버둥이다흘러가는 시간이 훌훌이 가지는 않을 것이다붉은 꽃보다 더 붉은 피를 흘리며시간은 자신의 족적을 남길 것이다미꾸라지를 파는 사내는미꾸라지처럼 파닥거리는자신을 본다함지박 속에서 끝없이 탈출을 위해 몸부림치는 미꾸라지를 보며 시인은 자유와 투지를 읽어내고 있다. 시인은 미꾸라지와 미꾸라지 파는 사내 얘기를 하지만 실은 그 너머를 상상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 가지 굴레에 구속되고 통제되는 현대인들의 서글픈 초상과 자유를 향한 강한 투지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
2019-01-13
여러 날 따지 못했다때를 놓쳤다우리 부부는 싸웠고참외는 개미가 먹었다포식을 했다줄줄 흘러내린 과즙을까마중이 먹었다물관과 체관을 지나고흰 꽃을 지났다아까 날아오른 두엇은씨앗 도둑이다내장으로 가서곧 항문을 지날 것이다내 참외를 천지가 먹었다도둑놈!때를 놓치고 따지 못한 참외를 개미와 까마중, 새가 먹었고 새는 씨앗을 널리 퍼뜨린다는 연쇄적이고 순환적인 논리를 펴면서 천지간의 모든 자연물들이 생명의 순환구조를 가졌다는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내 것이라는 생각을 비워내고 마음이 열릴 때 자연과 인간이 진정한 소통의 회로를 이어가며 일체감을 획득한다라는 시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시인
2019-01-10
원격 투시하는 천안통 빅 브라더께서는?그러나 그이야 관심이 있을까내곡동의 비에 대해내뿜는 담배연기에 대해우수 어린 내곡동 바바리코트에 대해신경질적인 가래침에 대해하느님은 아실까그러나 그걸 알 사람도 또한 국정원뿐그러나 내곡동엔다만 비가 내릴 뿐시인이 말하는 ‘빅 브라더’는 무엇일까? 내곡동 혹은 국정원이라 지칭되는 ‘정보’라는 느낌이 든다. 민주화 이후 분열화, 파편화된 한국사회는 더 이상 권력이 빅브라더가 아니다. 엄청난 양과 속도로 치고드는 정보야말로 진보니 보수라는 경계마저 무색케 만드는 우리 시대의 빅브라더이고 최고의 권력이 아닐까. 시인
2019-01-09
벗은 흙 잔등으로 풀꽃 터뜨리고새파랗게 털갈이 하고 있는 곳여기가 무속도로로구나나는 울타리를 넘어자연의 잔등 위로 침범한다저 느린 시간을 향해 걸어 들어가며한없이 느려터진 말들과 일가(一家)를 이루며벗은 흙 잔등으로 풀꽃을 터뜨리고 털갈이 하는 느린 시간 속 자연의 시간을 무속도로로 지칭하며 시인은 비정하고 냉혹한 문명의 무서운 속도를 야유하고 있다.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는 고속도로 곁 자연 속에는 시인이 말하는 자연스럽고 질서와 여유가 있는 무속도로가 있는 것이다. 시인
2019-01-08
‘아버지’란 이름으로 나는 밀린 잠을 못자고 일찍 일어나야 한다. 앞집 마로니에 잎의 아침을 좁은 식탁에 초대해 놓고 쌀을 씻어야 한다. 밖으로 나가 토끼집의 안부를 묻고 들어오면서 현관의 신발들을 가지런히 통솔해야 한다. 그러곤 아내의 출근을 돕는다.(…)그러나 매일매일 상도동 7-4번지 대문을 여는 순간! 우리 집에는 아버지만 있고 어머니가 없다. 가사를 대충 돌보는 푸줏간 뚱뚱보 아줌마만 있고, 아이들 어머니가 없다. 세상 걱정 없이 잠을 즐기는 김 회장 사모님만 있고 나의 여자가 없다. 아! 꿈꾸는 나의 집이 없다. 나의 파랑새도 나의 실존주의도 죄다 날아가고 없다시인이 엮어가는 시의 얘기를 따라가다보면 웃음도 나오고 박진감을 느낄 수 있다. 자신을 객관화하여 이름과 역할만 있고 진정한 자기 자신의 존재감은 없는 냉혹한 상황을 토로하는 시인의 목소리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자신을 한번쯤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시인
2019-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