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만 더 경고한다…얼마 전 SNS에서 고양이가 개위에 올라타 머리를 물고 있는 `짤방`을 본 적이 있다. 개는 꼼짝도 못하고 착 엎드려 빨리 이 순간이 지나가길 바라고, 고양이는 아무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다는 듯 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머리 가죽을 위로 치켜들고 있다. 눈꺼풀이 위로 올라간 개는 어쩐지 측은해 보인다.분명히 고양이가 개에게 뭐라고 말을 했을 것 같은데, 사진은 아쉽게도 목소리를 담아내지 못한다. 사진이 소리를 담아낼 수 없어서 다행인 점은, 소리가 없기 때문에 소리를 덧붙일 수 있다는 점이다. 인간처럼 말할 수 없는 고양이에게 인간의 목소리를 부여할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한번만 더 경고한다…. 까불지 마라!”고양이는 실제로 말을 할 수 없지만 아마 저런 내용의 말을 했을 것 같다. 그런데 저 밋밋한 글자로 약이 바짝 오른 고양이의 분노까지 다 담아내진 못한다. 사진과 마찬가지로 글자에도 목소리를 담을 수 없다. 그런데 요즘 감각적인 젊은 친구들은 글자에 목소리를 넣는 방법을 발견한 것 같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흔븐만 더 경그한드…. 까블지 므르!”사실 사진보다 더 흥미로웠던 것은 바로 이 고양이의 대사였다. 어금니를 꽉 깨물고 말을 해보면 알게 된다. `한번만`과 `흔븐만`이 어떻게 다른지…. 화가 잔뜩 난 고양이가, 이빨을 악물고 크지도 날카롭지도 않으면서, 깊고도 낮은 목소리로, 조용하고도 차분하게, 그렇지만 공포스럽고도 위협적으로, 개에게 경고를 날린다. 그런 고양이의 목소리가 금방이라도 들려올 것만 같다.사진에 글에도 소리가 없다. 없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글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훨씬 수월하게 알아차릴 수 있을 거다. 지금부터 글 속에서 들려오는 그런 소리를 듣는 방법에 대해 말하려 한다.△시의 목소리시에는 시인의 목소리가 담긴다. 어떤 시는 절절하고, 어떤 시는 달콤하고, 때로는 장난스러운 말투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이런 것을 어조라고 한다. 시의 어조를 알면 시를 이해하는 것이 훨씬 수월하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했다. 그럼 어디 한 번 그 어조라는 걸 들어볼까?싸리재 너머 /비행운이 떴다//붉은 밭고랑에서 허리를 펴며호미 든 손으로 차양을 만들며//남양댁 /소리치겠다//“저기 우리 진평이 간다”//우리나라 비행기는전부 진평이가 몬다―윤제림, `공군 소령 김진평`“저기 우리 진평이 간다”라고 외치는 남양댁의 소리가 들리는가? 저 비행기가 자신의 아들이 조정하는 비행기일 것이라는 추호의 의심도 없는 목소리, 그 믿음에서 기인하는 저 당당하고 자랑스러운 목소리가 귓전에 쩌렁쩌렁 울리는 듯하다. 남양댁의 소리를 듣는 동네 사람의 반응은 어떨까? 어휴 참 저 양반 또 저런다. 주책이야 주책, 이라고 말하겠지만, 한편으로 진평이를 잘 길러낸 남양댁이 저렇게 큰 소리 치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할 것 같다.남양댁은 밭이나 논에서 일할 때 언제나 기분이 좋을 것이다. 비행기를 탄 아들이 지나가며 자신을 내려다 볼 테니 말이다. 진평이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남양댁이 저렇게 자랑스러워하니 부디 사고 없고 탈 없이 살아가길 빌게 된다. 이 시에 대해 고증식 시인은 이렇게 쓰고 있다.“빅토르 위고는 세상이 한 사람으로 축약되고, 그 한 사람이 우주로까지 확장되는 것이 바로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하늘에서, 바다에서, 땅에서, 그런 어머니의 사랑을 가장 든든한 `빽`으로 등에 업고 살아가는 우리 자식들. 그러니 이 땅의 수많은 진평이들이여, 우리 어머니한테 좀 잘 합시다.”남양댁에게 진평이는 이 세상이고, 이 세상이 잘 되어야 진평이도 잘 살 수 있다. 그래서 남양댁은 진평이를 위해서라도 이 세계가 잘 굴러가길 바랄 것이다. “저기 우리 진평이 간다”라는 남양댁의 목소리를 통해 우리는 이 시를 더욱 깊고 풍부하게 읽어낼 수 있게 된다.자, 그럼 이런 시는 어떤가?어쩌랴, 하늘 가득 머리 풀어 울고 우는 빗줄기, 뜨락에 와 가득히 당도하는 저녁 나절의 저 음험한 비애(悲哀)의 어깨들 오, 어쩌랴, 나 차가운 한잔의 술로 더불어 혼자일 따름이로다 뜨락엔 작은 나무의자(椅子) 하나, 깊이 젖고 있을 따름이로다 전재산(全財産)이로다…중략… 어쩌랴, 나는 없어라 그리운 물, 설설설 끓이고 싶은 한 가마솥의 뜨거운 물, 우리네 아궁이에 지피어지던 어머니의 불, 그 잘 마른 삭정이들, 불의 살점들 하나도 없이 오, 어쩌랴, 또다시 나 차가운 한 잔의 술로 더불어 오직 혼자일 따름이로다 전재산(全財産)이로다, 비인 집이로다, 들판의 비인 집이로다 하늘 가득 머리 풀어 빗줄기만 울고 울도다(정진규, `들판의 비인 집이로다`)시를 해석한다는 것은 시어나 시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아내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해석하기 위해서는 먼저 물어야 한다. 무슨 뜻이지, 라고 말이다. 이 시의 제목인 `들판의 비인 집이로다`는 무슨 뜻일까? `빈 집`이 아니라 `비인 집`이라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 라고…. 그렇게 물을 수도 있겠지만, 이 시에는 그런 물음이 불필요하다. `나`의 목소리가 너무도 뚜렷하게 들려오기 때문이다.`어쩌랴`, `오 어쩌랴`와 같은 말들에 섞인 한탄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이로다`라는 서술어가 지닌 반복성과 그 반복성 속에 묻은 장중함을 들을 수 있다면, 이 시를 해석할 필요는 없다. 그런 `나`의 슬픔과 함께 공명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저 깊은 가슴 속에서 울려나오는 절절한 슬픔, 그 아리고 저린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이 시를 해석하는 지난한 일을 건너 뛸 수 있다.이러한 목소리를 통해 `나`의 마음이 들판에 외따로 있는 쓸쓸한 집처럼 황량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빈` 집이 아니라 `비인` 집이라고 말함으로써 텅 빈 마음속에 또아리를 튼 슬픔이 얼마나 큰지를 알게 된다. 그러니 해석을 하려고 애쓰기보다 목소리를 들으려 할 때 더 쉽게 작품에 가 닿을 수 있다.▲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목소리를 듣는 법어떻게 하면 글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간단하다. 글 속에 있는 사람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잘 보면 된다. `공군 소령 김진평`에서 남양댁은 지금 밭을 매고 있다. 허리가 휘도록 아마 호미질을 했을 테지, 아픈 허리를 펴다말고 재 너머 허연 구름을 보다가 소리를 질렀겠지, 아픔이나 고달픔보다는 지루한 일을 달래보려고, 냅다 소리를 질렀겠지. “우리 진평이 간다”하고 말이다. 남양댁의 고함소리에 저 멀리 밭을 매던 사람도 “아, 그 할마이 또 지랄났네”하며 대꾸를 하느라 그 참에 허리를 펴겠지.목소리는 성대의 떨림이다. 성대가 얼마나 빨리 떨리냐에 따라 소리의 높낮이가 만들어지고 구강, 혀, 입술을 통해 발음이 만들어진다. 이렇게 입 밖을 나온 목소리에 의해 주위의 공기가 떨린다. 이러한 공기의 진동은 도미노처럼 퍼지고 그 떨림이 나의 귀에 와 닿으면 다시 내 귀의 고막이 떨리고 이 떨림을 뇌는 분석하여 그 의미를 알려준다. 그런 점에서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는 일은 함께 떨리는 일, 즉 공명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덧붙이자면, 지금 쏟아지는 여성들의 목소리에 남성들은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선 들어야 한다. 그때 우리는 함께 살아갈 수 있다.
2018-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