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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두 귀로 듣기

△너나 잘하세요아주 훌륭한 대표님이 계신다. 그분은 4월 30일 기자회견을 가지시었다. “이번 정상회담 선언문의 1조 1항은 ‘민족 자주의 원칙을 확인한다’는 내용”이라며 “‘우리 민족끼리’로 표현되는 ‘민족 자주의 원칙’은 북한의 대표적인 통일전선 전략이자 한국 내 주사파들의 이념적 토대”라고 말씀하셨다. 한 기자가 “민족 자주 원칙은 1972년 7·4 남북공동 성명에도 들어가 있는 내용인데, 박정희 대통령 때도 주사파가 있었다고 보십니까?”라고 물었다. 우리 대표님은 아주 쿨하게 “다시 공부하고 질문하세요.”라고 말씀하셨다.기자의 얼굴이 카메라에 잡히지 않았지만, 아마 모르긴 몰라도 ‘친절한 금자씨’의 이영애와 같은 말투로 “너나 잘 하세요.”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어찌되었건 기자회견은 더 진행된다. 이번엔 또 다른 기자가 “트럼프, 아베 역시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환영 목소리를 냈습니다.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비판의 목소리만 내기에는 한국당에 정치적 부담감이 크지 않나요?” 대표님께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남북 대화를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북핵 폐기 없는 어떠한 회담도 우리는 찬성할 수 없습니다. 이번 회담 내용에 북핵 폐기 조항이 있습니까?”라고 되물으셨다.아, 그때 내가 있었더라면…… “예, 있습니다. ‘남과 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하였다.’라는 구절이 있고, 비핵화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말이 계속 등장합니다. 아, 대표님! 심봉사는 심청이가 있어 눈이라도 뜨게 할 수 있었는데, 대표님은 귀가 막혔으니 무슨 수로 귀를 뜨이게 할 수 있겠습니까”라며 통곡했을 텐데…·.△전조작기와 인지부조화이 기자회견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우리 대표님께서 유아기의 전조작기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것과 심각한 인지부조화를 앓고 있다는 것이다. 피아제는 두 살에서 일곱 살 사이의 아이들이 보이는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하는 시기를 ‘전조작기’라고 명명했다.이와 관련된 심리실험은 매우 흥미롭다. 엄마와 아이가 같이 방에서 놀고 있다. 엄마는 잠깐 화장실에 가기 위해 공을 바구니에 담아 놓고 방을 나간다. 그러자 아이가 바구니에서 공을 꺼내 상자에 집어넣고 밖으로 나가버린다. 엄마가 방에 들어와 공을 찾는다.이런 일련의 상황을 유치원생들에게 지켜보게 한 뒤 물었다. “엄마는 공을 어디서 찾으려고 할까요?” 너무 쉬운 질문이다. 엄마는 바구니를 찾을 거다. 자신의 아이가 공을 꺼내서 상자에 넣었다는 사실을 모르니까. 너무나 당연하지 않은가? 그런데도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이 엄마가 바구니가 아니라 상자를 열 것이라고 말한다. 내가 알면 타인도 알고 내가 모르면 타인도 모를 것이라고 아이들은 생각한다. 아니, 왜? 아이들은 세상의 중심에 자신이 있고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이 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피아제는 인간의 인지발달을 네 단계로 나누고 있다. 먼저 ①반사적 행동 위주인 ‘감각운동기’ ②직관적이고 자기중심적 사고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려는 ‘전조작기’ ③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외향적 변화와는 별개로 근본적 보존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구체적 조작기’ 그리고 ④논리적 가설과 추론이 가능한 ‘형식적 조작기’가 그것이다.그런데 피아제는 전조작기가 2~7살 사이에 일어나는 인지적 특징이라 말했다. 나는 우리 대표님의 이런 태도를 통해 피아제의 이론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전조작기란 특정한 국면에 찾아오는 현상이 아니라 인간의 전 생애에 걸쳐 따라오는 것이라고 말이다.우리 대표님이 독해나 청해 능력이 떨어져서 ‘핵 폐기’라는 말을 읽지 못했다고는 볼 수 없다. 대표님은 알면서도 듣고 싶지 않았고 알면서도 읽지 않았을 것이다. 대표님은 자아가 너무 강해서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본다. 대표님은 합리적으로 행동하시기 보다는 행동을 합리화하신다.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분명한 이유와 근거를 가지고 행동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행동을 합리화한다는 것은 행동한 뒤에 자신을 정당화하는 방식을 말한다. 사회심리학자 라온 페스팅거에 따르면 사람들은 어리석은 행동을 하고 난 후에도 어떤 식으로든 그 행동이 옳았다고 믿으려 애쓰며, 명백하게 잘못된 행동이었음에도 끝까지 잘못했다고 말하지 않으려 한다. 그는 사람들이 보이는 이러한 태도, 즉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기보다는 나는 틀리지 않았어, 라고 자신을 합리화하는 태도를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라고 불렀다.△쉬운데도 어렵다고 느껴지는 말이런 인지부조화를 대표님이 겪고 있는 이유는 아마 지금 현실이 대표님의 가치관을 흔들고, 대표님의 지지기반을 흔들고, 대표님의 존재마저 뒤흔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대표님은 저 쉬운 말들로 이루어진 선언문조차 들리지 않았고 읽히지 않았으리라.그런 점에서 ‘진짜 어려워서 들리지 않는 것’보다 ‘쉬운 말인데도 어렵게 느낄 때’ 문제가 심각해진다고 생각한다. ‘진짜 어려운 말’은 배워서 알면 되지만, ‘쉬운 말인데도 어렵게 느껴지는 말’은 그 사람의 사고방식을 바꿔야만 들리게 된다.이를테면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서로 대화를 나눈다면 그들은 서로 다른 것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탄핵을 긍정하는 사람은, 국민이 준 권리를 최순실이라는 민간인과 나눠썼다는 것, 국민이 부여한 권리를 자기 마음대로 사용함으로써 국민의 기본권을 무시했고, 그러므로 탄핵을 당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할 것이다. 탄핵을 부정하는 사람은, 박근혜 대통령은 최순실에게 이용을 당한 피해자일 뿐이라고, 국정농단을 한 최순실을 비판해야지 왜 박근혜를 비판하냐고, 박근혜 대통령을 죽이려는 ‘좌뺏들의 책략이라고 주장할 것이다.이렇게 탄핵을 진심으로 긍정하는 사람과 진심으로 부정하는 사람이 말싸움을 시작한다면 그들은 서로의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의 말만 할 것이다. 자신의 사고방식에만 갇혀 남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을 때 이 둘은 결국 같은 사람이 된다. 다시 말하자면, ‘쉬운 말인데도 어렵게 느껴지는 말’이란 전혀 어렵지 않지만, 자신의 생각이 고집처럼 자기를 휘감고 있어 다른 사람의 말은 전혀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자신이 믿고 있는 바를 바꾸지 않으려는 사람들, 이렇게 행동하는 사람을 인지부조화라고 했다. 그리고 이런 인지부조화는 자기중심적인 태도에서 비롯된다. 자신의 믿음을 버리지 못하고, 자신의 믿음에 따라 다른 사람을 재단하고 비판하는 사람을, 우리는 전문용어로 ‘꼰대’라고 부른다.▲ 공강일서울대 강사·국문학나는 ‘진짜 어려운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보다 ‘쉬운 말인데도 어렵게 느끼는 사람’이 더 문제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후자는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자기에게 익숙하고 자기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말만을 듣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세계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세계만 이해하며 평생 독방에 갇혀 홀로 삶을 영위해야만 한다. ‘쉬운데도 어렵게 느껴지는 말’을 듣는 일은, 감옥에 갇힌 줄도 모른 채 수감되어 있는 자신의 사유를 해방시키는 일과 같다. ‘쉬운데도 어렵게 느껴지는 말’을 읽지 않는 것은 내 말만, 내 생각만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나와 다른 말을 하는 사람을 무시하고, 그들의 삶까지 부정하는 일과 같다. 그러니 우리는 어렵게 느껴지는 말, 나와 생각이 다른 말까지 들어야 한다. 그 때 비로소 왜 우리에게 두 개의 귀가 있는지를, 그 때 비로소 세계가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민주주적인 사회라는 사실을 진실로 깨닫게 될 것이다.

2018-05-04

갈라진 혀로 말하기

토마스 모어(Thomas More, 1477~1535)는 어렸을 때 대주교이자 지금으로 따지면 총리 격에 해당하는 상서경인 모턴 대주교를 모시는 시동생활을 하였다. 모턴은 토머스 모어의 총명함을 알아보고 “이 아이는 언젠가 위대한 인물로서 그 진가를 발휘”하게 될 것이라고 호언할 정도였다. 이 말이 씨가 되었는지는 몰라도 토머스 모어는 법률을 공부하고, 하원의원으로 당선되었고 나중에는 모턴처럼 왕을 측근에서 보필하는 상서경이 되었다. 그러나 헨리 8세의 미움을 받아 1534년에 체포되었고 1535년에 단두대에 오르게 된다. 모어는 단두대에서 “내 목은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라는 농담을 건넸을 정도로 죽음 앞에서 초연했다고 전해진다. 토머스 모어는 ‘유토피아’라는 책을 썼다. ‘유토피아(Utopia)’란 어디에도 없는(U) 장소(topia)라는 뜻으로 모어가 직접 만든 말이라고 한다. 이 책을 평가하는 사람들의 의견은 분분하다. 정치가인 토머스 모어가 이 책을 이상적인 국가상을 제시했다고 많은 사람들은 생각했다. 이에 반해 어떤 사람들은 오히려 이상적인 국가를 말하는 사람들을 모어가 비아냥거리고 조롱하기 위해 이 글을 썼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책을 읽어보면 두 주장 모두가 옳은 것처럼 느껴진다. 어디, 그럼 작품 속으로 들어가볼까?△ ‘유토피아’에서의 삶이 작품은 라파엘 히슬로다에우스가 토머스 모어에게 자신이 여행한 ‘유토피아’라는 나라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형식을 띠고 있다. 라파엘 히슬로다에우스는 이탈리아의 항해가이자 탐험가이며, 아메리고 베스푸치와 함께 항해에 동행할 정도로 뛰어난 선원으로 여러 나라를 경험하였으며, 매우 비판적이고 냉철한 철학적인 인물로 등장한다. 그러면 히슬로다에우스의 이야기가 전하는 유토피아에 대해 들어보자.‘유토피아’에 사는 사람들은 고요한 전원생활을 향유하며 농업 생산량이 풍부하여 굶주리는 사람이 없다. 또한 사유재산이나 화폐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모두 공평하게 살아간다. 군주가 가장 아끼는 것은 돈이 아니라 그 나라의 국민이며, 사람들은 종교를 열심히 믿어야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근면하고 성실해야 천국에 간다고 믿는다. 이렇게 보자면, 유토피아는 정말, 사람들이 모두가 원하는 그런 곳인 것처럼 느껴진다.하지만 유토피아는 사유재산도 없을뿐더러 개인적 공간도 없다. 대문은 항상 열려 있어야 하며 아무나 불쑥불쑥 들어와도 상관없다. 이곳에는 농땡이를 치거나 빈둥거릴 장소가 없다. 유흥가는커녕 술집조차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타락을 하고 싶어도 그럴 기회를 얻지 못한다. 또한 정부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싶어도 비밀 집회를 열 장소가 없다.또한 이들은 관념적인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개개인을 나타내는 말은 있어도 이 개개인을 총칭하는 ‘인간’이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이라는 말도, 행복이라는 말이 없다. 그런 말이 없다는 것은 사랑이나 행복도 없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언어는 우리의 사유를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평등이라는 말이 없었다면 우리는 계급평등, 계층평등, 남녀평등, 소수자의 사회적 참여 혹은 포함과 같은 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정 언어가 없다는 것은 그와 관련된 행위가 없다는 것과 동일하다.△ 서로 다른 목소리이렇게 ‘유토피아’에는 이상적인 것과 기괴한 것들이 함께 섞여 있다. 도대체 토마스 모어는 유토피아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일까, 아니면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일까. 그의 입장을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나는 모어 스스로도 헷갈려 했을 것 같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의 입으로 두 말을 하면서, 자신이 한 주장을 정반대로 뒤집는 주장을 펼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장애인을 대하는 태도에서 잘 나타난다.“어떤 사람을 기형아 또는 불구자라고 해서 놀리는 것은 놀림을 당하는 쪽이 아니라 놀리는 쪽이 오히려 진짜 추악하고 보기 흉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자는 자기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것을 가지고 불구자를 비난하는 미련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라는 거지요.”유토피아에서는 장애가 있는 사람을 놀리는 사람을 오히려 혐오한다. 왜냐하면 장애란 스스로 선택한 것도 아니고 의지의 문제도 아니기 때문이다. 토머스 모어는 이미 오래 전 장애인에 대해 이토록 진보적이며 합리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유토피아’에서 배우자를 고르는 풍습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모어는 자신의 주장과 위배되는 주장을 펼친다. 이런 식이다.“그들은 배우자를 선택하는데, 우리 눈에는 어리석고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게 보이는 관습을 엄숙하게 진지하게 지키고 있습니다. 여자는 분별 있고 존경할 만한 부인의 의하여 알몸으로 구혼자에게 보여 집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품이 훌륭한 남자 한 분이 구혼자를 알몸으로 여자에게 선보입니다. …중략… 모든 사람들이 오직 상대방의 성품에만 주목할 정도로 그렇게 현명하지는 않거든요. 그리고 현명한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육체적 아름다움을 정신적 미덕에 부가된 천부의 기질로서 높이 평가하지요. 남자와 여자의 몸이 이제는 법적으로 갈라설 수 없게 되어 있을 때, 남자의 마음을 여자에게서 떠나게 하고도 남을 만한 중대한 신체적 결함이 언젠가는 틀림없이 옷 아래에서 노출되고 말 것입니다.”앞서 우리는 토머스 모어가 500년은 빠를 만큼 장애인에 대해 진보적인 생각을 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위의 인용문에서 모어는 전혀 엉뚱한 소리를 한다. 결혼하기 전 남녀는 알몸으로 만나 서로의 몸에 결함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한다. 누군가 육체적 결함이 있다면 그 결혼은 성립하지 못한다. 이런 유토피아에서 장애인은 결혼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육체적 결함을 정신적 미덕으로 연결시키는 이곳에서 장애인을 놀리지 않는다는 것이 가능하긴 한 걸까?토머스 모어는 장애인에 대해 한없이 상냥하고 자애로운 목소리를 내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엉뚱한 소리를 내뱉는다. 현명하고 슬기로운 히슬로다에우스는 어쩌다 이렇게 모순적인 목소리를 갖게 된 것일까! 어쩌다 뱀의 혓바닥처럼 갈라진 혀를 가지게 된 것일까? 어쩌다 한 입으로 서로 다른 말을 하는 것일까?▲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이러한 비일관성은 글이라는 속성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글을 쓰는 사람은 항상 두 명이다. 하나는 작가, 다른 하나는 글이 지닌 형식(혹은 속성)이다. 다시 말해 토머스 모어가 ‘유토피아’의 작가이기도 하지만, 소설이라는 형식 자체도 작가로 동참하고 있다. 작가는 자신의 논리를 따라가고 글은 글의 형식을 따라간다. 이 둘의 논리가 일치하지만, 때로는 달라질 때도 있다. 그래서 책 속에서는 상반된 주장이 펼쳐지곤 한다. 이것은 책만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의 문제이기도 하다. 지금 여야가 보이는 댓글, 남북문제, 개헌 등의 현안에 대해서 보이는 태도가 좋은 사례다. 상황에 집중해야 할 때도 있지만 그 상황에서 물러나 상황 전체를 조망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러므로 무엇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정치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설득을 시킬 수 있는가, 그렇지 않는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면 그런 것이다. 그러니 여론을 무시하지 말라.

2018-04-27

사실주의란 무엇인가

△사실주의 화가 일레야 레핀최근에 일레야 레핀(Ilya Yefimovich Repin)이라는 화가를 알게 되었다. 아니다. 그러고 보니 가장 사랑하는 친구가 유화를 배우기 위해 다녔던 화실, 그 화실의 선생님이 다녔던 학교가 레핀대학이었다는 말을 들은 것도 같다. 그때는 뭉툭하게만 들렸던 소리가 이제야 분명한 형체를 지닌 말로 환원되어 들을 수 있게 된다.레핀은 1844년 러시아에서 태어났다. 1860년대까지는 그림 공부를 했다. 1870년대로 접어들면서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초기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볼가 강의 배 끄는 인부들’(1870~1873)이 있다. 이때부터 대가의 반열에 오르기 시작하여 1880년대에는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1884~1888), ‘이반 뇌제와 그의 아들 이반’(1884~1885) 등의 작품을 그렸다.여기에서도 드러나지만 레핀은 한 주제의 그림을 오랫동안 그렸다. 한 작품만 그린 것이 아니라 하나의 주제를 두고 이렇게 저렇게 바꾼 것이다. 이를테면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는 문을 열고 들어온 남성이 서 있는 그림이 널리 알려졌지만, 주인공을 여성으로 바꾸어 그린 것도 있다. 또 ‘이반 뇌제와 그의 아들 이반’은 사실주의풍으로 그리기도 했지만 인상주의풍으로 그린 것도 있다.앞서 말한 것처럼 레핀은 분명 사실주의 화가다. ‘볼가 강의 배 끄는 인부들’은 레핀이 유학을 떠나기 전 볼가 강에서 직접 목격한 인부들의 모습을 그렸다. 이건 분명 사실주의 그림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는 레핀이 직접 본 것은 아니다. 유배를 떠났다가 돌아온 남자, 이런 갑작스러운 사건를 레핀이 직접 본 것이 아니라 상상을 통해 구현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이반 뇌제와 그의 아들 이반―1581년 11월 16일’은 역사화로, 부제에 붙은 연도는 이 사건이 일어났던 때다. ‘뇌제’란 네로나 걸주와 같은 폭군보다 그 정도가 더 심해서, 번개같이 무섭고 두려운 왕을 한층 더 강조하는 일본식 번역어다. 이 작품은 이반 뇌제가 화를 참지 못하고 아들을 죽인 사건을 그린 것이다. 삼백 년도 더 된 과거의 일을 레핀이 볼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하다.이렇게 보자면 자신이 직접 본 것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 이것만이 사실주의인 것은 아니다. 보진 못했지만 실제로 일어났던 일을 그리는 것도 사실주의다. 또한 자신이 직접 보지 못했고,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일어날 법한 일을 그리는 것도 사실주의다. 형식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인상주의풍으로 그려도 사실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럼 여기에서 물어야 할 것은, 도대체 사실주의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이다.△사실주의라는 태도대학 다닐 때 유일하게 열심히 읽었던 책, 루카치의 ‘우리 시대의 리얼리즘’을 떠올려본다. 루카치는 사실주의를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한다. 먼저 최대한 대상과 가깝게 표현하는 것, 즉 리얼하게 표현하는 것, 다음으로 비판적 리얼리즘, 마지막으로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그것이다.이렇게 분류하긴 했지만, ‘리얼하게 그릴 것’이라는 정의는 ‘사실주의’가 아니라 ‘사실화’에 대한 정의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일반적인 정물화의 경우 우리 눈에 보이는 대로 표현했다고 ‘여긴다’. 중요한 것은 정물화를 어디까지나 사실적인 것으로 ‘여긴다’는 것이지 정물화를 사실로 인정한다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인 정물화는 대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방식일 뿐이다. 추상화가나 입체파화가, 심지어는 초현실주의화가들 역시 자신은 대상을 있는 그대로 그렸다고 할 테니까 말이다.마네는 튈르리에서 있었던 음악회에 참여한 사람을 중심소재로 그림을 그렸고, 르누와르는 보트에서의 점심식사를 즐기는 사람들을 그렸다. 인상주의 화가들 역시 사실을 그렸지만 우리는 이들을 사실주의화가라 부르지 않는다. 사실이 무엇인가를 정의하는 것은 쉽지 않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사실로 여기는 것들, 즉 ‘사실적’인 것은 우리가 흔히 보는 정물화, 그리고 그와 같은 방식으로 대상을 표현하는 것들을 일컫는다.사실주의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이것이 ‘주의’ 즉 이데올로기라는 것이다. 사실주의는 필연적으로 정치성을 띤다. 비판적 리얼리즘과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특정한 정치적 경향성을 띤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사실주의가 말하는 ‘정치성’이란 무엇인가?보트에서의 점심식사를 르누아르처럼 표현한다고 해서 정치적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대상을 순수하게 바라보라고 하지만 그 순수라는 말 역시 정치적이다. 한때 횡행했던 말, 세월호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 이 말은 세월호를 정쟁화했을 때 타격이 큰 정치세력이 퍼뜨린 정치공세였다. 그런 점에서 세월호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는 말은 얼마나 정치적인가!그러니 정치적이라는 말을 엄밀히 사용하려면 특정한 정치성을 띤다고 말해야 한다. 이러한 사실주의적 정치성을 당파성이라고 부른다. 당파성이란 사실주의가 나아가야 할 정치적 방향을 말한다. 비판적 리얼리즘은 자본주의가 가진 모순점을 비판하고 이를 폭로한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본주의 이후 도래할 사회를 제시하고자 한다. 비판적 리얼리즘이든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든 이들은 자본주의에 모순과 문제점을 날카롭게 파헤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띠며, 이것이 사실주의의 방향성과 일치한다.여기에서 분명히 해두어야 할 것은 현실적 ‘문제’가 아니라 현실을 바라보는 ‘문제의식’이 먼저라는 것이다. 본래부터 현실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문제의식을 가지고 현실을 바라보자 문제를 발견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아무 문제가 없다는 관점으로 바라보면 아무 문제가 없다. 세월호 사건을 교통사고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교통사고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세월호를 사고가 났던 시점과 사고가 난 이후로 분리해서 바라본다면, 그래서 사고가 난 이후 정부의 대책과 대응을 세월호 유가족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문제는 곳곳에서 도출된다.▲ 공강일서울대 강사·국문학르누아르처럼 보트에서의 점심식사를 보고 그린 후 ‘보트에서의 오찬’이라고 제목을 붙일 수 있지만, ‘세금도둑들’이라는 표제를 붙일 수도 있을 것이다. 동일한 대상을 그리더라도 그 대상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대상은 달라진다. 그러므로 사실주의는 관점의 문제이며 태도의 문제인 것이다. 르누아르처럼 세상을 예쁘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문제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 이러한 태도가 곧 사실주의인 것이다. 요약하자면, 사실주의가 드러내는 사실은 엄밀히 말해 특정한 사실이다. 사실주의가 태도의 문제라고 했을 때 그것은 엄밀히 말해 특정한 태도다. 현실에 문제점이 있다는 시각에서 출발하며 그러한 문제점을 ‘사실’이라고 말하며, 이러한 사실은 잘못되었으며,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는 것, 이것이 사실주의의 ‘태도’다.사실주의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삶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이라고 부른다. 허나 사실주의의 시각 역시 하나의 시각이며, 사실주의의 태도 역시 하나의 태도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을 간과한 채 사실주의만이 ‘깊이’를 가진다고 말할 때 예술은 종교나 미신의 범주로 전락하고 만다.

2018-04-20

지금 바로 여기에서의 삶

△맹자와 양혜왕유방이 큰 뱀을 베고 나라를 세우기 전, 중국은 솥발처럼 흩어져 있었다. 온통 싸움으로 얼룩진 이 시기를 전국시대라 부른다. 전쟁은 곳곳에서 일어났고 남자들은 3인 1조가 되어 전차를 탔다. 한 사람이 말을 몰면 두 사람은 전차의 뒤에서 활을 쏘았다.4대 성인이라 불리는 공자는 키가 2m가 넘었다고 한다. 그 큰 몸으로 그는 공부를 했다. 사람들은 공자에게 덩치 값을 하지 않는다고, 전쟁에 나가지 않는다고 비아냥댔다. 공자는 고통스러웠다. 자신의 가르침은 눈에 보이지 않았으나, 전사의 싸움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일에 집착했다. 공자는 이상주의자였다. 싸움하지 않고 모두가 평화로울 수 있는 삶을 꿈꾸었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늘 무형의 것들은 유형의 것들에 밀려나고 만다.이러한 공자의 사유를 물려받은 많은 사람 중에 맹자가 있다. 공자가 인(仁)으로 세상을 다스려야 한다고 말했지만, 그의 말을 귀담아 듣는 왕은 없었다. 왕을 자처하는 자들은 전쟁을 통해 땅을 한 뼘이라도 더 가지려 했다. 백성들은 그러한 왕들의 욕심 사이로 내몰렸다. 어디에든 전쟁이 있었고, 어디에든 피와 죽음이 난무했다.그 속에서 인간다움을 말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공자도 맹자도 어떤 것이 인간다움인가를 말하려 했지만, 왕과 제후들에게 이러한 말은 먹히지 않았다. 공자나 맹자가 강조한 왕이란 백성을 먹여 살리는 어버이와 같은 그런 왕이었다. 하지만 당대의 왕들은 어떻게 백성들을 잘 구슬려서 전쟁에 참여시킬 것인가를 고민했다.자존심이 강했던 맹자는 노년에 자신의 사유를 책으로 정리했다. 그 책이 ‘맹자’며, 그 첫 장이 ‘양혜왕장’이다. 맹자는 이 때 일종의 임원면접을 보러 양혜왕을 찾아갔다. 여기에서는 왕 앞에서도 자신의 할 말을 하고야마는 맹자를 만날 수 있다. 그 당시의 상황을 현대적으로 옮겨보면 이렇다.“우와! 노인장! 노인장이 면접을 보러왔으니 우리나라에 무슨 ‘이익’이 있으려나 봅니다. 허허~”“이런, 면접 같은 경우를 보게. 왜 보자마자 ‘이익’ 드립인가요!”“아,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노인네를 보시게, 왜 ‘이익’을 말하면 안 되는데?”“왕이여, 생각을 해보세요. 당신이 이익을 말하면 당신 밑의 관리들이 이익을 말할 것이고, 더 밑에 관리들도 이익을 말할 것이고, 전부다 이익을 말할 것입니다. 결국 관리는 더 많은 이익을 위해 자신을 모시는 대부를 죽일 것이고, 그렇게 대부가 된 자는 다시 더 많은 이익을 위해 제후를 죽일 것이고, 그렇게 제후가 된 자는 다시 더 많은 이익을 위해 양혜왕 당신을 죽일 것입니다. 그래도 ‘이익’을 말할 건가요?”맹자의 말에 양혜왕은 할 말을 잃는다. 모두가 이익만을 바란다면, 사람들은 점점 더 큰 이익을 바라게 될 것이다. 이익이 적은 관리는 이익이 많은 관리의 자리를 차지하려 할 것이다. 그렇게 소급하다보면 왕의 목숨 역시 안전할 리 만무하다.△경제를 말한다는 것여기에서 우리는 경제를 살리겠다고 말한 대통령을 기억해야만 한다. 장관을 지냈던 유시민은 한 인터넷 방송에 출연해서 그 때의 상황을 이렇게 말했다.“당시 민심은 걸레인 줄 알아, 더러운 줄 알아, 그렇지만 저걸로 상 닦을 거야, 그 분위기였어요.”그랬다. 우리는 그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큰일을 하다보면 그런 실수 정도는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만 살릴 수 있다면 우리는 무엇이든 치러낼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가 대통령이 되었다. 대통령이 이익을 이야기하니 대통령의 주변 모든 사람들이 이익을 이야기했다. 그래서 측근비리가 끊이질 않았다. 유사 이래 윤리도 도덕도 없이 이토록 잔인하게 이익을 추구한 위정자는 없었다. 당시 대통령은 국가를 자신의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 그는 자신 있게 말했다. 도덕적으로 가장 깨끗한 정권이라고….당시 우리는 두 가지 정도를 간과했다. 하나는 우리나라의 경제가 세계의 경제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경제 ‘만’ 살릴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이명박 효과가 일어나 우리나라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는 공약을 우리는 믿었다. 대통령은 경제가 살아나지 않는 이유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세계 경기가 침체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니 우리나라 경기가 안 좋은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이 당연한 사실을 우리는 망각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경제는 세계 경제와 연결되어 있고, 경제는 또 정치, 산업, 기술, 사회, 문화, 예술, 철학과 같은 모든 것들과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대통령이 경제 ‘만’을 살릴 수 있다고 믿었다.△삶의 혁명 혹은 현재의 사용사람들은 누가 대통령을 하더라도 비리가 있다고 말하길 좋아한다. 노무현 대통령이나 이명박 대통령이나 다를 것이 없다고 말하길 좋아한다. 하지만 역사가 우리에게 분명히 말해주고 있는 것은 도토리 키도 재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전쟁이 나서 오십 걸음을 도망 간 놈과 백 걸음을 도망 간 놈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우리는 자꾸 도망갔다는 사실에만 집중하려 한다. 때론 양적 차이가 질적 차이를 결정할 때도 있다. 이것을 무시할 때 우리는 정치 허무주의에 빠지고 만다. 잘 나가는 논객은 “정치가 우리 스트레스의 근본 원인이다.”라고 말한다.우리는 저마다 경제적 성공을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얼마나 큰 허상인지를 알아야 한다. 이를 테면, ‘아름다운 공주가 백마 탄 왕자를 만나 행복하게 살았다’와 같은 이야기들이 그렇다. 공주의 목표는 왕자와 결혼하는 것인가, 결혼하면 공주의 인생은 끝나는가? 아니지 않은가! 결혼 후에도 삶은 이어진다. 마찬가지다. 내가 경제적으로 성공해도 삶은 이어진다. 더욱이 경제적 성공은 특정한 지점을 점유하고 있지 않다. 얼마를 벌어야 성공인가, 어느 자리까지 올라야 성공인가? 이런 망령된 생각은 끝없는 허무의 쳇바퀴를 돌게 만든다.▲ 공강일서울대 강사·국문학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경제적 성공이 아니라 이 성공의 프레임을 벗어나는 일이다. 소망을 철회하는 일이다. 그리하여 자신의 일로 돌아와야 한다. 자신의 일속에서 자신의 삶을 소비하고 낭비하라. 단언컨대 그것은 당신을 더욱 궁핍하게 만들지 모른다. 지금까지 인간의 전 역사는 부와 명예를 추구하는 삶을 종용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금 이 꼴로 살고 있다. 환경오염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며, 인간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비인간적이다. 부와 명예, 그것은 삶의 전체일 수 없다. 그러니 부와 명예를 추구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것 역시 우리 삶을 변화시키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펼쳐지는 것은 늘 삶이며, 그 삶은 규정되어 있지도 않으며, 그 삶의 전체 역시 알지 못한다. 그런데 어떻게 삶의 중심에 부와 명예 따위가 있을 수 있겠는가. 더 나은 삶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되는 것이지 돈을 저축해 놓은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바로 여기, 지금 이 순간을 후회 없이 사용하라!

2018-04-13

돌담 하나, 떨어진 동백꽃 한 송이

`제주 4·3사건 희생자 추념식`에 참여한 대통령의 연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돌담 하나, 떨어진 동백꽃 한 송이, 통곡의 세월을 간직한 제주에서, 이 땅에 봄은 있느냐?, 여러분은 70년 동안 물었습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께 제주의 봄을 알리고 싶습니다. …중략… 존경하는 제주도민 여러분, 국민 여러분, 70년 전 이곳 제주에서 무고한 양민들이 이념의 이름으로 희생당했습니다. 이념이란 것을 알지 못해도 도둑 없고, 거지 없고, 대문도 없이 함께 행복할 수 있었던 죄 없는 양들이 영문도 모른 채 학살을 당했습니다.”1948년의 제주에는 무슨 일이었을까? 여기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는 1947년 `3·1절 유혈사태` 혹은 `3·1절 발포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 사건은 착각과 오인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인다. 3·1절 행사에 참여한 군중은 가두시위에 들어갔다. 이 때 기마 경관이 탄 말에 어린아이가 차이는 소란이 발생했다.이 사실을 몰랐던 경찰 당사자가 그냥 지나치려고 하자 군중이 몰려들었다. 이를 지켜본 `응원 경찰`들은, 군중들이 경찰을 습격하는 것으로 오인하여 발포하게 된다. 결국 6명이 숨지고 6명이 중상을 입었다. 놀라운 사실은 부검 결과 희생자 1명만 빼고 나머지 모두 등 뒤에 총탄이 맞은 것으로 판명되었다는 것이다. 민심은 들불처럼 일어났다.그런데 이것을 착각과 오인에서 비롯된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사건이 벌어지기 전부터 군중과 경찰은 격앙된 태도를 보였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러한 격앙된 태도를 낳았던 것일까. 경찰은 3·1기념 대회에 참여한 3만 여명의 군중이 좌익세력에 의해 동원된 불순세력으로 보았고 그런 이유로 제주 경찰 330명과 육지에서 파견한 `응원 경찰` 100명을 배치하였던 것이다.순수한 의도로 3·1기념 대회에 참석한 군중은 무장한 경찰에게 적대감을 느꼈다. 군중을 불순분자로 바라보는 경찰과 그런 시선에 분노한 군중 간의 긴장감, 그 속에서 경찰이 탄 말이 아이를 찬 것을 단순한 우연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건 자체는 우연인지 모르나 그 사건을 일어나게 만든 상황은 이미 필연성을 내함하고 있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그런데 1년이 훌쩍 지나서까지 그 앙금은 사라지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경찰과 제주민 사이의 감정의 골은 더욱 커져만 간다. 왜냐하면 경찰은 사과를 요구하는 주민의 요구를 묵살하고 사과는커녕 발포의 정당성만을 강변해왔기 때문이다. 제주도민은 이에 항의하여 3월 10일부터 민관 총파업을 시작하였다.파업 가담자 200명이 검거되었고 여기에는 경찰도 포함되어 있었다. 파업에 참여한 경찰관 66명을 파면하였고, 그 빈자리에 서북청년회 소속 단원을 충원하였다. 3월 1일 발포사건이 파견된 `응원 경찰`에 의한 것임을 고려할 때, 서북청년회 단원을 경찰로 임명하게 되면 지역주민의 반발이 더욱 커지리라는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그러나 미군정은 이것을 용인했고, 제주주민과 서북청년회와의 대립은 심각한 상황으로 치달았다. 이것은 1947년 3월의 우도와 중문리 사건, 6월의 종달리 사건과 같은 크고 작은 충돌로 발전하였다. 그런데도 미군정은 1947년 9월 대동청년단, 서북청년회 제주 조직, 조선민족청년단 등을 발족시키면서 그 대립의 골을 더욱 키워갔다.제주도의 흉흉한 민심에 편승한 남로당 제주도당은 1948년 2월 무장투쟁을 결정하였고, 경찰과 우익 청년단체를 공격대상으로 지목하였다. 1948년 4월 3일, 300여 명의 무장 유격대가 제주도 내 24개 경찰지서 가운데 12개 지서를 일제히 급습하면서 사건은 확대되었다. 경비대의 토벌전은 4월 22일부터 시작되었고, 4월 28일 경비대와 무장대 총책 김달삼 간의 평화협상이 열렸다. 그러나 제주읍 한 마을을 방화하는 `오라리 사건`이 발생하면서 이 협상은 결렬되고 만다.이후 4·3사건을 일으킨 무장대의 총책인 김달삼은 1948년 6월말에 전조선 제정당 사회단체 연석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제주도를 빠져나갔으며, 후임 총책 이덕구는 1949년 6월에 경찰관 발포로 사살되면서 무장대는 사실상 궤멸되었다. 그러나 학살은 1953년 한국 전쟁이 끝날 때까지 계속되었고 “1954년 9월 21일 한라산의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됨으로써 발발 이후 7년 7개월 만에 막”을 내렸다.사건이 일어나자 “미군정 정보보고서는 군대, 경찰, 우익 청년단체의 토벌을 `레드 헌트`로 명명”했다. 즉 `빨갱이 사냥`이라는 작전명을 붙였다. 이 작전은 차마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벌여나갔는데, 한 시인은 이를 다음과 같이 고발하고 있다.빨갱이마을이라 하여 80여 남녀중학생들을금악벌판으로 몰고 가 집단 몰살하고 수장한 데이어정방폭포에서는 발가벗긴 빨치산의 젊은 아내와 딸들을나무기둥에 묶어 두고 표창연습으로 삼다가마침내 젖가슴을 도려내 폭포 속으로 던져 버린 그 날한 무리의 정치깡패단이 열일곱도 안 된한 여고생을 윤간한 뒤 생매장해 버린 그 가을 숲서귀포 임시감옥 속에서는 게릴라들의 손톱과 발톱 밑에 못을 박고몽키 스패너로 혓바닥까지 뽑아 버리던 그 날,바로 그 날(이산하, `한라산` 부분, `녹두서평1`, 1987.3, 16~17면.)▲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4·3사건은 2000년 `제주 4·3특별법`이 공포되면서 그 진상이 조금씩 밝혀지고 있다. 지금까지의 조사에 따르면, 제주도민의 10%에 해당하는 3만 여명이 희생되었다. 당시 무장대의 최대 숫자는 500명이라 가정할 때 이것은 일종의 살육이라 볼 수밖에 없다. 한 조사에 따르면, 전체 희생자 가운데 여성이 21.1%, 10세 이하의 어린이가 5.6%, 61세 이상 노인이 6.2%”를 차지하고 있었다고 한다.제주 4·3사건은 여수에서 시작되어 순천으로 확대해간 여순사건(1948.10.19)을 촉발시키기도 했다. 미군정은 4·3사건을 진압하기 위한 증원군을 파견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육군사령부는 여수 신월리 제14연대 중 1개 대대를 제주도로 출동시키라는 명령을 받았다. 남로당 소속의 군인 중위 김지회, 상사 지창수 등은 “우리는 동족상잔의 제주도 출동을 반대한다”는 주장을 펴며 명령을 거부하였다. 이들은 `진압군`에서 `반란군`으로 변신하여 여수, 벌교, 보성, 고흥 등을 점령하였으며, 순천으로까지 진격하였다. 정부는 22일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진압작전을 시작하였다. 22일 순천, 27일에 여수를 점령하였으며, 진압과정에서 4·3사건과 같이 무고한 민간인의 희생이 뒤따랐다. 이러한 사건 6·25전쟁이라는 거대한 파국의 징후였다.

2018-04-06

책과 친해지고 싶은 당신에게

△스승들의 서가나에게는 두 분의 스승이 있다. 첫 번째 스승. 대학원에 가겠다는 결심을 하고 조언을 들으러 선생님의 연구실을 찾았다. 선생님의 방은 책으로 가득 차 있었고, 이중 책꽂이로 바꾼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여서 아직 정리 되지 않은 책들이 바닥에 즐비했다.내가 발을 내딛기도 힘든, 좁고 어수선한 연구실을 비집고 들어가 겨우 앉았을 때, 선생님은 책을 둘러보시고 말씀하셨다. “이 책들은 모두 관이다. 먼지를 둘러쓴 저 죽은 말들 속에서, 저 말의 무덤 속에 갇혀서 평생을 살고 싶으냐? 대학원에 오고 싶다면 더 신중하게 생각해봐라.” 선생님은 분명 신중하게 생각해보라고 했는데 나는 `관`이라는 말이 너무 멋지게 들려 더 대학원에 가고 싶어졌다. 그 때 더 신중했더라면, 하고 후회할 때도 있다. 그렇긴 하지만 나는 여전히 책이 좋다.두 번째 스승. 이 분은 나의 지도교수님이다. 선생님은 날카로운 인상과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계신 분이다. 그런데 선생님은 어쩐 일인지 나에게만은 매우 인자하셨다. 그래서 선생님의 방에 자주 찾아가곤 했다. 그럴 때면 선생님은 언제나 정성스럽게 끓인 특별한 커피를 타주셨다.선생님은 정수기나 커피포터 대신 버너를 사용하셨다. 물을 끓인 후 커피를 타는 것이 아니라 물에 커피를 넣어서 끓이는 터키식 커피였다. 말이 커피지, 거기에는 온갖 것이 다 들어갔다. 싱글 몰트 위스키가 들어가고, 누군가에게서 얻어온 초피(혹은 제피)가 들어갈 때도 있었고, 아주 질 좋은 천연소금과 설탕을 넣어, 커피는 달면서 짜고 짜면서 톡 쏘는 정말 특별하면서 맛있는 그런 커피였다.선생님 방은 커피 외에도 특별한 점이 있다면 그건 책이 모두 뉘어져 있다는 것이다. 선생님이 어느 날 연구실에서 책을 보는데 꼿꼿하게 선 책들이 왁자지껄하게 불만을 토해내서 그 날부로 책을 모두 뉘어 놓게 되었다고 한다. 워낙 책이 많았는데 그렇게 눕혀 놓자 더 많은 책을 넣을 수 있게 되었다며 흐뭇해 하셨다.그날은 두어 잔 마시고 커피에 취했나? 그렇게 누운 책을 보고 있자니 정말 책들이 관처럼 느껴졌고 나는 몽롱한 기분에 취해 선생님께 아주 멍청한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은 어떻게 저렇게 많은 책을 읽으셨나요, 저는 공부를 하려니 앞이 캄캄해서 어디서부터 읽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저 책을 읽어야 할 것 같고, 저 책을 읽으면 이 책을 읽어야 할 것 같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마음만 급합니다.”나는 이런 얼빠진 질문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이 말은 저 무식하죠, 라는 의미보다 더 치명적인 뜻을 담고 있다. 이 말은, 선생님 전 공부가 뭔지 도무지 몰라요, 공부라는 걸 해본적도 없어요, 라는 고백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공부를 해 본 사람은 이런 얼토당토 않는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 공부해야 될 것들이 절대 많아 보이지 않는다. 책을 읽지 않고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만 하는 사람들에게만 많아 보일 뿐이다.책은 읽어야 읽히고, 공부는 해야 비로소 공부가 된다. 이런 단순한 사실을 모른 채 나는 선생님께 질문 같지도 않은 질문을 던졌다. 제자의 우매한 질문에도 선생님은 친절히 대답해주셨다. “한 권 씩, 천천히 읽어라. 평생을 공부할 텐데 뭐가 그렇게 조급해 하느냐. 욕심만 앞세우지 말고 지금부터 천천히 시작하거라.” 그래 한 권씩 천천히. 느리지만 한 걸음씩. 평생을 공부한다는 생각으로 우직하게….△책아, 제발 친하게 지내자!그런데 책이 읽히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왜 책이 읽히지 않는 걸까? 그런 걱정은 접어두는 것이 좋다. 책은 나에게만 읽히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읽히지 않으니까. 책이 읽히지 않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러니 겁내지 말라.잘 읽힐 뿐만 아니라 흥미롭게 여겨지는 책은 나의 경험, 나의 관심사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혹은 내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기 때문에 잘 읽힌다. 읽히는 책을 읽으면 나의 생각과 나의 앎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 수 있겠지만, 단단해지는 만큼 유연해지지는 않는다.그러므로 다시 책을 읽어야 한다. 그런데 내가 잘 모르는 분야의 책을 읽으면 실제로 어렵기도 하고 또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실제로 어려운 이유는 그 분야에 대해 내가 아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공부를 하지 않으면 책이 읽히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어려운 책을 읽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그냥 무작정 여러 권의 책을 많이 읽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책에 나오는 개념어들을 찾으며 읽는 방법이 있다. 관련된 책을 무작정 많이 읽다보면, 어느 사이 정리가 되면서 예전에 읽었던 책의 내용까지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러고 나서 이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으면 그 내용을 보다 분명하고 정확하게 알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앎의 상태로 도달하기까지 너무나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러다 결국 책 읽기를 포기하고 만다.그러므로 책에 나오는 개념어나 그 내용에 관한 것을 찾아보면 읽는데 도움이 된다. 이 방법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에 떠도는 개념어에 대한 설명 중에는 잘못된 것이 많아서 개념을 잘못 이해할 수도 있다는 거다. 이렇게 개념을 잘못 이해하게 되더라도 잘못된 개념을 익히는 것은 중요하다. 잘못 이해했다면 바로잡으면 되니까 말이다. 그러니 잘못된 개념을 익힐까봐 걱정할 필요는 없다.또 다시 문제는, 이렇게 찾아가면서 읽다보면 책을 읽는 게 너무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거다. 그런▲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시간이 자꾸 늘어나면 공부를 포기하게 된다. 포기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요즘 나는 다이어트 중이다. 그래서 식사량을 줄이고,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 그런데 몇 주 턱걸이를 너무 심하게 하는 바람에 인대에 무리가 갔나보다. 숨을 크게 쉬면 실 같은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지는 느낌이다. 이런 통증이 있은 후 헬스장을 가지도 않고, 식사량 조절도 실패하여 도로 살이 찌고 있다. (이런 걸 도루묵이라고 하나?) 아시겠지만 살을 빼지 않으면 살은 빠지지 않는다. 살을 빼려는 노력을 너무 과도하게 하면 살을 빼는 일이 겁이 나게 되고 싫증이 나서 결국 포기하게 된다. 아무리 살이 느리게 빠져도 다이어트를 포기하지 않으면 살은 언젠가 빠지고 만다. 단시간에 살을 빼는 것보다 천천히 살을 빼며 나의 생활과 식습관을 바꿔나가는 것이 더 낫다.공부나 책읽기도 마찬가지다. 억지로 책을 읽기 보다는 재미를 찾아가며 책을 읽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고 자꾸 아는 것만을 읽다보면 꼰대처럼 아집과 독단과 독선만 늘어가게 될 것이다. 하여 책을 읽어야 한다. 잘 읽히는 책이 아니라 어려운 책과 어렵게 느껴지는 책을 읽어야 한다. 그래야 나의 경험을 넘어 타인을 이해하고 세계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2018-03-30

너의 목소리가 들려

△한번만 더 경고한다…얼마 전 SNS에서 고양이가 개위에 올라타 머리를 물고 있는 `짤방`을 본 적이 있다. 개는 꼼짝도 못하고 착 엎드려 빨리 이 순간이 지나가길 바라고, 고양이는 아무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다는 듯 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머리 가죽을 위로 치켜들고 있다. 눈꺼풀이 위로 올라간 개는 어쩐지 측은해 보인다.분명히 고양이가 개에게 뭐라고 말을 했을 것 같은데, 사진은 아쉽게도 목소리를 담아내지 못한다. 사진이 소리를 담아낼 수 없어서 다행인 점은, 소리가 없기 때문에 소리를 덧붙일 수 있다는 점이다. 인간처럼 말할 수 없는 고양이에게 인간의 목소리를 부여할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한번만 더 경고한다…. 까불지 마라!”고양이는 실제로 말을 할 수 없지만 아마 저런 내용의 말을 했을 것 같다. 그런데 저 밋밋한 글자로 약이 바짝 오른 고양이의 분노까지 다 담아내진 못한다. 사진과 마찬가지로 글자에도 목소리를 담을 수 없다. 그런데 요즘 감각적인 젊은 친구들은 글자에 목소리를 넣는 방법을 발견한 것 같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흔븐만 더 경그한드…. 까블지 므르!”사실 사진보다 더 흥미로웠던 것은 바로 이 고양이의 대사였다. 어금니를 꽉 깨물고 말을 해보면 알게 된다. `한번만`과 `흔븐만`이 어떻게 다른지…. 화가 잔뜩 난 고양이가, 이빨을 악물고 크지도 날카롭지도 않으면서, 깊고도 낮은 목소리로, 조용하고도 차분하게, 그렇지만 공포스럽고도 위협적으로, 개에게 경고를 날린다. 그런 고양이의 목소리가 금방이라도 들려올 것만 같다.사진에 글에도 소리가 없다. 없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글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훨씬 수월하게 알아차릴 수 있을 거다. 지금부터 글 속에서 들려오는 그런 소리를 듣는 방법에 대해 말하려 한다.△시의 목소리시에는 시인의 목소리가 담긴다. 어떤 시는 절절하고, 어떤 시는 달콤하고, 때로는 장난스러운 말투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이런 것을 어조라고 한다. 시의 어조를 알면 시를 이해하는 것이 훨씬 수월하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했다. 그럼 어디 한 번 그 어조라는 걸 들어볼까?싸리재 너머 /비행운이 떴다//붉은 밭고랑에서 허리를 펴며호미 든 손으로 차양을 만들며//남양댁 /소리치겠다//“저기 우리 진평이 간다”//우리나라 비행기는전부 진평이가 몬다―윤제림, `공군 소령 김진평`“저기 우리 진평이 간다”라고 외치는 남양댁의 소리가 들리는가? 저 비행기가 자신의 아들이 조정하는 비행기일 것이라는 추호의 의심도 없는 목소리, 그 믿음에서 기인하는 저 당당하고 자랑스러운 목소리가 귓전에 쩌렁쩌렁 울리는 듯하다. 남양댁의 소리를 듣는 동네 사람의 반응은 어떨까? 어휴 참 저 양반 또 저런다. 주책이야 주책, 이라고 말하겠지만, 한편으로 진평이를 잘 길러낸 남양댁이 저렇게 큰 소리 치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할 것 같다.남양댁은 밭이나 논에서 일할 때 언제나 기분이 좋을 것이다. 비행기를 탄 아들이 지나가며 자신을 내려다 볼 테니 말이다. 진평이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남양댁이 저렇게 자랑스러워하니 부디 사고 없고 탈 없이 살아가길 빌게 된다. 이 시에 대해 고증식 시인은 이렇게 쓰고 있다.“빅토르 위고는 세상이 한 사람으로 축약되고, 그 한 사람이 우주로까지 확장되는 것이 바로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하늘에서, 바다에서, 땅에서, 그런 어머니의 사랑을 가장 든든한 `빽`으로 등에 업고 살아가는 우리 자식들. 그러니 이 땅의 수많은 진평이들이여, 우리 어머니한테 좀 잘 합시다.”남양댁에게 진평이는 이 세상이고, 이 세상이 잘 되어야 진평이도 잘 살 수 있다. 그래서 남양댁은 진평이를 위해서라도 이 세계가 잘 굴러가길 바랄 것이다. “저기 우리 진평이 간다”라는 남양댁의 목소리를 통해 우리는 이 시를 더욱 깊고 풍부하게 읽어낼 수 있게 된다.자, 그럼 이런 시는 어떤가?어쩌랴, 하늘 가득 머리 풀어 울고 우는 빗줄기, 뜨락에 와 가득히 당도하는 저녁 나절의 저 음험한 비애(悲哀)의 어깨들 오, 어쩌랴, 나 차가운 한잔의 술로 더불어 혼자일 따름이로다 뜨락엔 작은 나무의자(椅子) 하나, 깊이 젖고 있을 따름이로다 전재산(全財産)이로다…중략… 어쩌랴, 나는 없어라 그리운 물, 설설설 끓이고 싶은 한 가마솥의 뜨거운 물, 우리네 아궁이에 지피어지던 어머니의 불, 그 잘 마른 삭정이들, 불의 살점들 하나도 없이 오, 어쩌랴, 또다시 나 차가운 한 잔의 술로 더불어 오직 혼자일 따름이로다 전재산(全財産)이로다, 비인 집이로다, 들판의 비인 집이로다 하늘 가득 머리 풀어 빗줄기만 울고 울도다(정진규, `들판의 비인 집이로다`)시를 해석한다는 것은 시어나 시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아내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해석하기 위해서는 먼저 물어야 한다. 무슨 뜻이지, 라고 말이다. 이 시의 제목인 `들판의 비인 집이로다`는 무슨 뜻일까? `빈 집`이 아니라 `비인 집`이라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 라고…. 그렇게 물을 수도 있겠지만, 이 시에는 그런 물음이 불필요하다. `나`의 목소리가 너무도 뚜렷하게 들려오기 때문이다.`어쩌랴`, `오 어쩌랴`와 같은 말들에 섞인 한탄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이로다`라는 서술어가 지닌 반복성과 그 반복성 속에 묻은 장중함을 들을 수 있다면, 이 시를 해석할 필요는 없다. 그런 `나`의 슬픔과 함께 공명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저 깊은 가슴 속에서 울려나오는 절절한 슬픔, 그 아리고 저린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이 시를 해석하는 지난한 일을 건너 뛸 수 있다.이러한 목소리를 통해 `나`의 마음이 들판에 외따로 있는 쓸쓸한 집처럼 황량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빈` 집이 아니라 `비인` 집이라고 말함으로써 텅 빈 마음속에 또아리를 튼 슬픔이 얼마나 큰지를 알게 된다. 그러니 해석을 하려고 애쓰기보다 목소리를 들으려 할 때 더 쉽게 작품에 가 닿을 수 있다.▲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목소리를 듣는 법어떻게 하면 글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간단하다. 글 속에 있는 사람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잘 보면 된다. `공군 소령 김진평`에서 남양댁은 지금 밭을 매고 있다. 허리가 휘도록 아마 호미질을 했을 테지, 아픈 허리를 펴다말고 재 너머 허연 구름을 보다가 소리를 질렀겠지, 아픔이나 고달픔보다는 지루한 일을 달래보려고, 냅다 소리를 질렀겠지. “우리 진평이 간다”하고 말이다. 남양댁의 고함소리에 저 멀리 밭을 매던 사람도 “아, 그 할마이 또 지랄났네”하며 대꾸를 하느라 그 참에 허리를 펴겠지.목소리는 성대의 떨림이다. 성대가 얼마나 빨리 떨리냐에 따라 소리의 높낮이가 만들어지고 구강, 혀, 입술을 통해 발음이 만들어진다. 이렇게 입 밖을 나온 목소리에 의해 주위의 공기가 떨린다. 이러한 공기의 진동은 도미노처럼 퍼지고 그 떨림이 나의 귀에 와 닿으면 다시 내 귀의 고막이 떨리고 이 떨림을 뇌는 분석하여 그 의미를 알려준다. 그런 점에서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는 일은 함께 떨리는 일, 즉 공명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덧붙이자면, 지금 쏟아지는 여성들의 목소리에 남성들은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선 들어야 한다. 그때 우리는 함께 살아갈 수 있다.

2018-03-23

괴물이 되는 법

△진: 귀에 걸면 귀걸이요즘 내가 만나는 친구 중에는 이름이 외자인 `진`이라는 친구가 있다. 진은 지금 고등학교 2학년이다. 진은 글쓰기와 글 읽기에 아주 특출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내가 진을 알게 된 것도 이런 능력 때문이다. 녀석이 수학을 잘했다면 아무 문제가 없겠지만, 하필이면 글쓰기여서 문제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진의 부모님은 우선 대학에 간 후에 녀석이 원하는 것을 하길 바란다.진은 지금 공부를 하고 있고, 한편으로는 공부를 하면 글쓰기 능력이 줄어들까봐 걱정이고, 또 한 편으로는 공부를 하고 있는데 자신이 원하는 만큼 성적이 오르지 않아 조바심이 나는 것 같다. 그래서 진은 공부를 더하지도 글쓰기를 열심히 하지도 않는다. 지금 진은 공부하기와 글쓰기 사이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다. 그리고 어느 것 하나도 진척시키지 못한 채 지리멸렬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이 지리멸렬한 시간은 모두 진이 자초했다. 글쓰기를 하면 공부가 불안하고, 공부를 하면 글쓰기가 불안한 상태, 둘 중 하나를 과감히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 진의 문제는 진에게 있다고 해도 좋다. 진은 모든 문제가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대신 아주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다. 모든 책임을 부모님께 전가하는 방식으로 말이다.부모님이 어떤 자유도 허락하지 않은 채 시키는 대로만 하게 만든다고 진은 말한다. 아주 화가 단단히 나서 부모님을 이제부터 미워하겠노라고 선언한다. 정말 진의 부모님이 그런 분이라면, 나와 만나 책과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도 허락되지 않았을 거다. 다른 친구들이 국영수를 공부할 때에도 성적 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미술과 관련된 방과 후 활동을 하고, 부모님은 그것을 허락한다. 이런 것들이 진의 부모님이 녀석을 얼마나 자유롭게 키우는 것인지를 대변해주지만, 부모님이 자신을 속박하고 있다는 생각을 진은 바꾸려하지 않는다.△해프닝? 해프닝!이런 진을 보고 있으니까, 문득 어릴 적 내 생각이 났다. 내 위에는 형이 있는데, 부모님은 형을 더 편애했다. 형은 장손인데다, 사람도 착실하고 무게감도 있고, 언제나 바른 행동을 했고, 시키는 일은 늘 착실하게 해냈다. 그러니 당연히 형을 더 좋아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에 반해 나는, 어머니가 늘 부뚜막에 앉혀 놓은 아이 같다고 하셨다. 부뚜막에 아이를 앉혀 놓았다면 그건 아이 잘못이 아니라 엄마 잘못이 아닌가, 나는 이런 생각을 먼저 하는 맹추였으니, 부모님이 싫어 할만도 했다.그럼에도 형에 대한 부모님의 편애를 왜곡하고 왜곡하여 결국 나를 주워왔을 것이란 결론을 내리고 말았다. 이런 망상은 오래도록 이어졌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거의 확고하게 굳어진 건 중학교 때 혈액형 유전에 관해 배우면서였다. 아버지는 O형, 어머니는 A형, 형은 A형. 그럼 나는? 나는 A형이 아니면 O형이어야 했는데…. 오 마이 갓! 글쎄, 나는 B형이었다!그때부터 계속해서 괴로웠다. 그래도 나는 내가 생각해도 조숙한데다가, 아니 정확히는 되바라진 데가 있어서 낳은 게 뭐가 중요해 키운 게 중요하지, 하면서 아무렇지 않게 넘기기 위해 애썼다. 무슨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속상한 일이 있으면, 나는 주워 온 자식이라고 생각하며 슬픔을 키웠으며, 그런 내용을 일기에 쓰기도 했다. 군대에 가게 되었을 때쯤엔 내가 우리 부모님의 자식이든 그렇지 않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는 확신을 하게 되었다.거의 상병을 달았을 때쯤, 군대에서 그럭저럭 견딜만해졌을 때였다. 주말이라 집에 전화를 했더니 어머니가 뜬금없이, “강일아! 니는 안 즉도 니를 주왔다꼬 생각하나?” 이런 말을 들으니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도대체 어머닌 내가 저런 생각을 한다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뭐야, 집에 두고 온 내 일기를 다 보신거야? 나, 참.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릴 때 어머닌 다시 추궁하듯 물으신다. “아이 참, 엄마도…. 아 갑자기 그게 무슨 말예요?”나는 시치미를 떼고 모른 척한다. 어머닌 며칠 전에 몸이 아파서 병원엘 다녀오셨단다. 어쩐지 불길한 느낌, 피도 뽑고 여기 저기 검사를 했단다. 오늘 결과가 나왔는데 특별히 문제는 없단다. 휴우 다행이다,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머니는 당신도 오늘 처음 알았단다, 당신의 혈액형이 A형이 아니라 AB형이라는 걸 말이다.뭐지, 이게? 난 저 말도 안 되는 혈액형 때문에 남들보다 두 배나 긴 사춘기를 견뎌왔는데, 그냥 단지 어머니가 잘못 알고 있었다고? 이걸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정말 웃지도 울지도 못하겠다. 난 대단히 불행한 출생의 비밀을 가진 불행한 아이지만, 그래도 잘 이겨내며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웬걸 이게 다 해프닝이라니…. 주워왔다는 생각 때문에 힘들었던 중고등학교 시절이, 마치 대단한 결심이라도 한 듯이 길러준 부모님이 더 중요하다고 내린 결론이, 나는 웃기기도 하고, 허탈하기도 하고, 원망스럽기도 하고, 다행스럽기도 했다. 나는 싱겁게 웃다가 어물쩍 전화를 끊었다.△`광인일기`: 모두들 `나`를 잡아먹으려고 해요!루쉰의 `광인일기`에는 꼭 나보다 더 심한 주인공이 등장한다. 소설 속의 `나`는 마을 사람들과 가족들, 심지어 친형조차 자신을 잡아먹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 이런 피해망상증 환자가 되었는지는 모르나 `나`가 그렇게 생각하자, 모든 것이 그렇게 해석된다. 자오궤이 영감의 눈초리도, 동네 아이들도, 자식을 때리는 여인의 눈빛도, 의사인 허 선생님도, 고기를 먹고 가죽을 잠자리로 해야 한다, 고 욕을 하는 형도, 모두들 자신을 잡아먹으려고 벼르고 있는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사람들이 너를 잡아먹는 일은 없어, 라고 아무리 설명해줘도 `나`는 그런 말 따위는 가뿐하게 무시하고, 사람들이 자신을 잡아먹을 것이라는 근거를 찾아 나선다. 그 근거는 수천 수백만 가지가 남는다. 마치 짝사랑을 하는 사람이 상대방이 나를 사랑할거야, 라고 믿기 시작하면 상대의 모든 행동을 그렇게 해석하듯이 말이다.`광인일기`의 `나`는, 다섯 살에 죽은 누이동생 역시 큰형님이 잡아먹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긴 하지만 `나`는, 누이동생이 죽었을 때 가족들이 진심으로 슬퍼했던 것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왜 슬퍼했던 걸까? 답은 누이동생이 병으로 죽었고 그렇기 때문에 가족들은 슬펐던 것이다. `나`가 생각하는 것처럼 아무도 누이를 잡아먹지 않았다. 즉 큰형님이 누이를 잡아먹은 것이 아니다, 라고 생각하면 될 일인데, `나`는 끝까지 몽니를 부린다. `나`는 큰형님이 집안일을 관리할 때 누이동생이 죽었기 때문에 밥이나 반찬속에 섞어 자신에게 몰래 먹였을 것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하고 그것을 그대로 믿어버린다.▲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이 소설은 이렇게 끝난다. “사람을 먹어 보지 않은 아이들이 혹시 아직 있을까? 아이들을 구하자….” 정말 구해야 할 사람은 자기 자신임에도 `나`는 아이들을 구해야한다고 말하고 있다. `나`는 결코 `나`를 부정하지 않으려 한다.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가 AB형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어물쩍 전화를 끊을 것이 아니라 어머니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렸어야 했다. `쎄가 빠지게` 키워 놨더니 겨우 주워온 건 아니냐고 오해를 하는 이런 아들놈을 보며 어머니는 얼마나 속을 썩였을까? 어디에 말도 못하고, 어머니는 얼마나 섭섭하셨을까? 나는 그런 것도 모른 채 끝까지 내 생각만 했다. 부모님이 나를 주워 와서 나보다 형을 더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형보다 못한 것이 많다는 것을 나는 차마 인정하기 싫었다. 왜냐하면 나는 내 위주로 생각하니까.고등학생인 진도, `광인일기` `나`도, 그리고 나도 다르지 않다. 우리는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한다. 되도록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데 나의 명백한 잘못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 우리는 기괴해진다. 그 기괴함이 심해져 딱히 무엇이라고 부를 수 없게 될 때 우리는 그것을 괴물이라고 부른다. 괴물은 먼 곳에 있는 것이 바로 지금 여기 내 마음 속에 있다.

2018-03-16

존재는 정보에서 기인(it from bit)

태양은 저기에 실제로 존재하고 있나요? 정말로 그런가요? 고전역학은 태양은 실재한다고 말해요. 이와 달리 양자역학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어요. 도대체 고전역학과 양자역학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오늘은 저들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해요. (이 글을 쓰기 위해 참고한 것은 김상욱 교수의 `우주는 `매트릭스`인가: 현대 과학이 발견한 실재성`이라는 유튜브 강의입니다.) 1. 고전역학, 그러니까 뉴턴이 탐구한 것은 시간, 속도, 위치의 관계에 관한 것이었어요. 이것이 왜 중요하냐면 앞으로의 우주를 예측할 수 있기 때문예요. 생각해보세요. 지금 지구가 어디 있는지(위치)를 알고, 또 지구가 얼마나 빨리 이동하는지(속도)를 알면 한 시간 뒤의 지구의 상태를 알 수 있어요. 시간, 속도, 위치를 알면 과거의 상태를 추론할 수 있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어요.2.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수학은, 우주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는 기초지식을 가르치기 위함입니다. 우주는 미분으로 쓰여 있고, 그것을 적분하는 과정을 통해 우주의 정보를 얻을 수 있어요. 어렵다구요? 그래요 이런 건 몰라도 돼요. 어찌 되었건 현재는 미분된 상태로 존재하고 이 현재를 이으면 미래가 됩니다. 미분된 현재를 서로 잇는 것 이것을 적분이라고 하지요. 이러한 미분과 적분을 배우기 위해 1차 함수, 2차 함수, sincos함수, 지수함수, 로그함수를 배웁니다. 결코 학생들을 괴롭히기 위해서 수학을 배우는 것이 아니예요. 다시 말하지만, 우주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수학을 배웁니다.3. 그러나 양자역학 이후 시간, 속도, 위치를 통해 우주를 예측할 수 있다는 믿음은 깨지게 됩니다. 실험을 해봤더니, (이것이 이중슬릿 실험입니다.) 두 개의 문이 나란히 있다면 사람은 둘 중 하나의 문만 통과할 수 있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전자는 두 개의 문을 동시에 통과하더란 거예요. 정말 이상하지 않나요. 하나의 전자가 두 개의 문을 동시에 통과하다니.고전역학은 시간과 속도를 알면 물체가 어디에 있을지를 추측할 수 있다고 말했어요. 그런데 전자는 전혀 그렇지 않아요. 시간과 속도를 알아도 전자는 여기에 있을 수도 있고 저기에 있을 수도 있고, 심지어 여기와 저기에 동시에 존재할 수도 있는 거죠. 양자역학은 전자의 속도를 안다고 해서 그 위치를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전자의 위치를 안다고 해서 전자의 속도를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말합니다.4. 자, 그럼 여기서 이런 반론이 가능하겠군요. “전자는 아주 작은 미시세계고, 인간이 사는 세계는 거시세계야. 미시세계의 원리를 거시세계에 적용하려는 건 잘못된 생각이야.” 그래요. 그럴 수 있죠. 거시경제학과 미시경제학이 일치하긴 어렵듯이, 개인은 선할 수 있어도 그런 선한 개인이 모인 사회는 선하지 않을 수 있듯이, 그리고 전체는 늘 부분의 총합보다 크듯이 말예요.5. 물리학자들은 아주 집요해요. 이런 반박을 재반박하기 위해서 실험의 규모를 키웠어요. 그러니까 두 개의 문이 나란히 있는 곳에 전자만 통과시킨 것이 아니라 전자보다 더 큰 것들을 통과시켜 보았어요. 전자에서 원자핵으로, 원자핵에서 원자로, 다시 원자에서 분자로. 그럼 다시 묻죠. 이렇게 실험 대상의 크기를 키워 두 개의 문을 통과시켰더니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두둥!!! 이렇게 큰 규모의 분자 역시 두 개의 문을 동시에 통과하더라는 거죠. 하나의 분자가 두 개의 문을 동시에 말입니다.(원자와 분자는 크기는 매우 작으니까 여전히 미시세계라구요? 어차피 미시세계에서 일어나는 그니까 거시세계와는 관계없다구요? 정말 완전 우기기 대마왕이시군요. 그렇다면, 원자와 분자의 크기 차이를 설명해드리죠. 우선 원자는 전자와 원자핵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그런데 이 원자핵을 축구공만 하게 키운다면 전자의 크기는 어느 정도일까요? 아마 사과씨보다 더 작을 겁니다. 그리고 이런 식이라면 원자의 크기는 서울만합니다. 생각해보세요. 서울 한가운데 원자핵이 놓여 있고, 그 주변을 전자가 돌고 있어요. 그럼 나머지 공간엔 뭐가 있을까요? 당연히 아무것도 없죠. 전자는 그렇게 외롭고 그렇게 작습니다. 원자가 서울만하다면 분자는 지구가 아니라 태양보다도 크다고 할 수 있어요. 이제 아시겠죠. 원자에 비해 분자는 결코 미시세계라고 부를 수 없다는 걸 말예요.)6. 그런데 이렇게 실험 대상의 크기를 키우면 키울수록 두 개의 문을 통과하는 조건이 아주 까다롭다고 하는군요. 분자가 두 개의 문을 통과할 때 어떤 간섭도 받지 않아야 한다고 해요. 지구만한 물체가 두 개의 문을 통과하는 중인데, 어쩌다가 축구공만한 크기의 수소나 산소 원자와 땡하고 부딪치면 지구는 하나의 문만을 통과한다는군요. 그래서 분자의 크기가 크면 클수록 진공도를 더 높여야 한다는군요.7. 크앗!!! 그런데 정말 대단하군요.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전자든 분자든 문을 통과하려 할 때 어떤 식으로든 간섭이 일어나면 다른 행동을 보인다는 것 말예요.8. 사실 이것을 설명하는 방법은 간단해요.우리가 가지고 있는 고전역학적인 생각을 버리면 됩니다. 고전역학은 전자가 실재로 존재한다고 말해요. 전자 대신, 인간, 그것도 아니면 지구나 달, 태양, 우주 무엇으로 바꾸어도 상관없어요. 여하튼 고전역학은 이런 대상이 실재로 존재한다고 말합니다.자, 다시! 고전역학은 달이 실재로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달이 존재한다는 것은 달의 고유한 본질이 있다는 것을 뜻해요. 달의 본질이란 다름이 아니라 달이 고유하게 가지고 있는 속도와 위치예요. 당연해요. 달은 지구를 공전할 때 고유한 속도와 위치를 가지거든요. 달은 1초에 1km정도를 움직이며 지구를 돌고 있어요. 그래서 30일이면 지구를 한 바퀴 돌아버립니다. 달이라는 사물에는 이런 고유한 본질이 존재합니다.9. 그런데 현대물리학 혹은 양자역학은 이런 달이 실재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건 진짜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관찰된 것일 뿐이야, 라고 말해요. 저 달은 진짜가 아니라 하나의 사건이라고, 달이 저기 있다는 것은 하나의 정보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10. 앵? 정말 말도 안 되는 주장이군요!! 그럼에도 이들은 더 크게 외칩니다. 사물이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찰, 사건, 정보! 이것이 전부다. 무슨 말이냐구요? 저 달이 존재하는 것은 하나의 가능성이며 확률이라는 뜻입니다.▲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달은 제가 쳐다보지 않을 때 존재할 수도 있고,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달은 수많은 것들과 관계 맺고 있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을 확률보다 존재할 확률이 훨씬 높습니다. 하지만 다른 대상과 관계 맺음이 훨씬 훨씬 적은 전자는 지금 이 자리에 있다가 갑자기 사라질 수도 있고, 이 자리와 저 자리에 동시에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 11. 1989년 존 휠러는 `존재는 정보에서 기인`(it from bit)한다, 라고까지 밀어붙입니다.12. 그런데 물리학에서 이런 생각이 미처 발아하기도 전에 철학에서 이런 생각은 만개했던 적이 있어요. 그 주인공이 바로 비트겐슈타인예요. 이 불세출의 철학자는 “세계는 사물의 총체가 아니라 사실의 총체다”(The world is the totality of facts, not of things)라고 말합니다.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달은 저기에 실재하는 걸까요, 아니면 그건 그냥 사건에 지나지 않는 걸까요? 이제 여러분이 답할 차례입니다.

2018-03-09

`바람의 경치`에 대해

△`바람의 경치`의 내력시를 가르쳤던 선생님은 창문을 열어놓는 걸 좋아했다. 강의실로는 언제나 바람이 불어왔었다. 복사를 해오는 법이 없는 선생님은 학생을 불러내어 설명할 시를 칠판에 쓰게 했다. 우리가 판서되고 있는 시를 노트에 옮기는 동안 선생님은 바람을 맞으며 담배를 피웠다. 지금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그땐 그랬다.필기를 하다말고 라이터를 켜는 소리에 고개를 들면 선생님은 담배 연기를 내뿜고는 “왜 이상한가요?”라고 물었다. 우리는 그냥 웃었는데, 그 말이 재밌었던 건지, 말투가 그랬던 건지, 담배를 피우는 모습 때문이었는지 알 수가 없다. 한참 말이 없다가 선생님은 문뜩 “저 바람은 어느 우주를 헤매고 이제 여기에 온 걸까요?” 질문도 아니고 혼잣말도 아닌 말을 던지고 또 다시 침묵 속에 빠져들었다. 바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건 아마 그날부터였던 것 같다.바람은 그냥 부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저 바람도 어떤 사연을 갖고 있으리란 생각, 어떤 사연 속을 떠돌았을 거란 생각, 그런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물론 우주에는 바람도 없고, 바람은 지구의 대기현상에 불과하다는 걸 알지만, 그런 바람이 지나온 여정을 생각하면 마음이 술렁였다. 바깥의 모습을 나타내는 말 중엔 경치, 풍광, 풍경, 풍물, 경물, 산수…. 따위의 말들이 있다. 이 말들은 다 비슷한데 특히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말은 경치나 풍경이다.사전에서 `풍경`을 찾으면 그냥 밋밋하게 `[같은 말] 경치`라고 되어 있다. 풍경은 한자어를 풀면 그냥 경치가 아니다. 풍경의 풍은 바람이고, 경은 경치라는 뜻이니까, `바람의 경치`여야 한다. 바람이 지나가지 않은 경치는 있을 수 없다. 바람은 대기이므로 대기 없는 경치는 있을 수 없다. 그렇게 보면 경치란 말보단 풍경이라는 말이 더 정확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이런 이유 때문에 풍경을 좋아하긴 하지만 내가 풍경이라는 말을 더 좋아하는 진짜 이유는 풍경 속엔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경치는 바람 없이 존재할 수 있지만, 풍경은 바람 없인 존재할 수 없다. 물론 바람 없는 경치는 없다. 하지만 경치는 바람이 있다는 걸 느끼는 누군가 없이도 스스로 존재할 수 있다. 풍경은 바람 없인 존재할 수 없고, 또 그런 바람이 있다는 걸 느끼는 누군가 없이도 존재할 수 없다. 바람이 없다면 바람을 느낄 수 없겠지만, 바람을 느낄 수 있는 인간이 없다면 그 역시 바람을 느낄 수 없는 법이니까….경치 속을 다시 흐르는 바람이 있고, 또 그것을 느끼는 인간이 있는 풍경이라는 말이 그래서 좋다.△“좀머 씨 이야기”와 바람바람하면 떠오르는 글, `좀머 씨 이야기`. 흐릿하게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이 책을 오늘 다시 펼쳐든다.“오래 전, 수년, 수십 년 전의 아주 오랜 옛날, 아직 나무타기를 좋아하던 시절에 내 키는 겨우 1미터를 빠듯이 넘겼고, 내 신발은 28호였으며, 나는 훨훨 날아다닐 수 있을 만큼 몸이 가벼웠다. 거짓말이 아니었다. 나는 그 무렵 정말로 날 수 있었다. 적어도 거의 그렇게까지 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아니 좀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 당시 내가 진짜로 그럴 각오를 하고 제대로 실행에만 옮겼더라면 실제로 날 수 있는 능력이 내게 있었던 것처럼 생각되었다. (...중략...) 그때 내가 바람을 뒤로 맞으며 학교 앞 동산의 초원을 가로질러 뛰어내려 왔을 때, 발을 조금만 힘차게 구르고, 팔을 양쪽으로 쭉 뻗기만 했더라도 내 몸은 바람을 타고 훨훨 날 수 있었을 것이다. 전혀 힘도 들이지 않고 2,3미터 높이로, 10 또는 12미터나 되도록 멀리 뛸 수 있었으니 말이다. 어쩌면 그렇게까지 멀리도 아니었고, 그렇게까지 높지 않았을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것이 무슨 큰 문제란 말인가! 어쨌든 나는 그때 날 수 있었고, 내가 만약 외투의 단추를 풀고 그것의 양끝을 양손으로 잡아 주기만 했더라면, 바람을 타고 둥둥 떠다닐 수 있어서 학교 앞 동산에서 언덕 아래에 있던 숲 위로 거침없이 훨훨 날아다니다가, 숲을 지나 우리 집이 있던 호숫가로 날아가서, 우리 집 정원 위에서 멋지게 한바퀴 선회하면, 날아다니기에는 이미 몸이 너무 무거운 우리 아버지, 어머니, 누나, 형들이 깜짝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모습을 볼 수도 있었을 테고, 다시 호수의 반대편 제방까지 날아가 점심 식사시간에 늦지 않게 집에 도착하기 위해서 마침내 우아한 몸짓으로 착륙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좀머 씨 이야기`, 5~6면)조금 길게 인용했나보다. 이 소설의 `나`의 “나는 그 무렵 정말로 날 수 있었다.”라는 저 말도 안 되는 주장이 좋다. 나는 저 주장에 거의 설득될 정도다. 그래 그럴 수 있지. 외투의 양끝을 잡아주면 옷이 날개처럼 펼쳐질 테고, 땅에서 발을 세게 굴려 날아오르기만 하면 그 다음부터 바람에 몸만 맡기면 될 것이다. 그렇게 `나`는 숲과 호수와 집과 정원을 마음껏 날아서 또 나중에는 우아한 몸짓으로 착륙도 가능할 것이다.이런 상상은 늘 하고 있었는데 파트리크 쥐스킨트가 이런 글을 쓰지 않았더라만 내가 이런 글을 썼을 것이다. 그래서 아쉽다. 사실은 고맙다. 누구나 막연히 떠올렸을 법한 생각을 그가 이렇게 멋지게 써주어서 고맙다. 막연한 생각을 이토록 구체적으로 만들어 주어서, 그래서 언제든 그의 책을 펼치고 이 부분을 다시 읽을 수 있게 만들어 주어서, 바람에 날아가는 `나`를 떠올릴 수 있어서 정말 정말 고맙다.△물 위에 바람이 흐르듯이벌써 3년이 되었다. 나는 2015년 그 해 아주 특별한 연하장을 받았다. 여든하고도 몇이 더 되는 남정 선생님께서 친히 연하장을 보내주셨다. 거기에 쓴 시의 한 구절은 `물 위에 바람이/흐르듯이//내 가슴에 넘치는/차고 흰 구름`이었다. `청록집`49면에 실린 이 시의 제목은 `피리를 불면`이다. 왜 하필 이 구절인지 몰랐다. 그런데 이 연하장이 다섯 명에게 준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남정 선생님은 10연으로 된 이 시를 다섯 명에게 두 연씩 적어보냈다. 이 시는 센티멘탈한 정도를 넘어서고 있다. 연하장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가라앉은 이 시를 연로하신 선생님을 떠올리며 읽는 일은 버거웠다.“다락에 올라서 /피리를 불면// 만리 구름길에 / 학이 운다.이슬에 함초롬 / 젖은 풀잎//달빛도 푸른 채로 / 산을 넘는데물 위에 바람이 / 흐르듯이// 내 가슴에 넘치는 / 차고 흰 구름.다락에 기대어 / 피리를 불면//꽃비 꽃바람이 / 눈물에 어리어바라 뵈는 자하산 / 열두 봉우리//싸리나무 새순 뜯는 / 사슴도 운다.”▲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조지훈은 이 시를 통해 시우(詩友)였던 박목월, 박두진의 시들을 차용하여, 박두진을 학에, 박목월을 사슴에 비유하고 있다. 마흔 여덟에 타계한 조지훈은 스물 여덟에 이미 자기가 먼저 죽이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그는 학이 울고, 사슴이 우는 상황, 어쩌면 자신의 죽음을 미리 보았는지도 모르겠다. 남정 선생님은 한참이나 어렸던 우리를 친구처럼 생각하시며 이 시를 보냈던 것 같다. 이 연하장을 보내고 선생님은 이듬해 돌아가셨다. 선생님은 벌써 당신의 죽음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물 위에 바람이 흐르`면 거기엔 흔적이 남지 않는다. 늘 새로운 흔적이 생길 뿐이다. 남정 선생님은 바람이긴 하셨으나 우리의 마음 속에 잔잔하고 단단한 여운을 남기시고 떠났다. 오늘 다시 바람이 불고 물 위에는 바람이 흐른다.

2018-03-02

우주, 무한보다 큰 유한

△고향:깊고 그윽한설날이라 고향집에 왔다. 그러고 보니 집에 온 지가 2년이 지났다. 백수가 과로사한다고, 쓸데 없이 바쁜 척을 하고 살았다. 형 식구들과 함께 저녁께 도착했다. 아들이 온다고 부모님은 소고기를 사놓아 저녁엔 술도 한 잔 마셨다. 아침에는 일찍 일어났다. 아침을 먹고 빈둥거리다 뒷산을 올랐다.뒷산이 백두대간의 한 자락이다. 집엔 눈의 흔적도 없었는데 능선에는 발이 푹푹 빠진다. 다섯 시간쯤 걸었나보다. 어렸을 때 같이 자란 한 살 터울의 동네 형과 열두 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산에 다녀왔더니 벌써 세 시다. 마침 배터리가 없어 전화도 못했다. 집에 도착해서 부리나케 전화를 했다.지홍 형은 기다리다가 화가 났나보다. 차마 동생 앞에서 화난 내색은 못하고 갈 수 없다는 핑계를 멀리에서부터 에둘러 끌어오고 있다. 참 좋아하는 형인데 섭섭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저녁을 먹고 산책을 나왔는데 전화가 왔다. 지금 오란다. 맥주도 마시고 소주도 먹고, 그것도 모자라 양주도, 고량주도 털어넣고 왕창 취했다.그렇게 취해 밖에 나왔더니 뒤따라 나온 지홍 형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강일아 별이 저래 많타, 한다. 나도 따라 올려다보며, 참 좋네요. 아까 낮부터 봤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한다. 오랜만에 집에 오니 좋다. 형이 담배를 피우는 사이 나는 오래도록 하늘을 올려다보며 하늘과 어둠과 별과 우주를 생각한다.△거대한 느림:우리 은하의 자전저기 별이 띠처럼 흩어진 것이 은하수다. 저 은하의 이름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은하라고 해서 `우리 은하`라고 부른다. 우리 은하 중에서 우리는 태양계에 속해 있다. 태양계는 8개의 행성, 그리고 언제부턴가 행성의 지위를 잃어버린 명왕성과 같은 왜행성이 5개 정도 있다. 또 지구에는 1개, 화성엔 2개 밖에 없지만, 목성이나 토성에는 지금까지 발견된 것만도 60개가 넘는 위성이 있다. 그 외에도 숱한 혜성과 유성체 등으로 우리 은하는 이루어져 있다.이렇게 보면 태양계는 엄청 거대해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1977년에 쏘아 올린 보이저 1호가 단 하루도 쉬지 않고, 한 시간에 6만7천km의 속력으로 날아 36년이 지난 2013년에 겨우 태양계를 돌파했으니, 태양계만 해도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다. 우주는 그렇게 호락호락 한 수준이 아니다. 우주 전체에는 대략 1천억 개 정도의 은하수가 있고, 또 그러한 은하에는 저마다 1천억 개 정도의 별이 있다.지구는 태양이 전부 인양 태양을 공전하지만, 태양은 우리 은하를 중심으로 공전한다. 태양이 공전한다는 것은 우리 은하 전체가 자전한다는 말과도 같다. 우리 은하는 나선 모양으로 생겼는데 그 길이는 10만 광년이라고 한다. 우리 은하는 그 긴팔을 펼치고 아주 천천히 한 바퀴를 돈다.도대체 얼마나 크길래 겨우 한 바퀴를 도는데 2억5천만 년이 걸린다는 것일까. 만약 인간이 한 바퀴를 도는 수준의 속도로 우리 은하가 공전한다면, 우리는 5초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한 바퀴를 돌 수 있는데, 그런 작은 몸을 지닌 우리로서는, 우리 은하의 규모를 도무지 상상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지금 지나가고 있는 이 시간은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돌면 그 자리로 되돌아 올 것이라는 것은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지구가 지나간 그 자리로 돌아오려면 2억5천만 년이 걸린다. 물론 그 사이 우주는 또 변화돼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 시간이 지나가면, 이 시간은 결코 되돌아오지 않는다. 이 시간 좋은 사람과 술을 마실 수 있어 참 좋다는 생각을 한다.△뉴턴의 고집: 우주는 정적이며 유한하다우리는 우리 은하에 속해 있어 우리가 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이렇게 작은 지구가 돈다는 것도 못 느끼는데, 저렇게 큰 천체의 회전에 무감각한 것은 당연하다. 우주는 매우 정적인 것처럼 느껴지며, 이 고요한 우주에는 골고루 별이 흩어져 있다. 그래서 우주는 정적이며, 또 동시에 균질하다, 고 뉴턴은 생각했다.균질적이며 정적인 우주라는 생각은 역설적이게도 뉴턴 자신이 발견해낸 중력에 의해 무장해제되고 만다. 왜냐하면 중력은 서로를 끌어당기기 때문인데 지구의 경우 왼쪽이나 오른쪽에서 당기는 힘이 더 크다면 지구는 한쪽으로 끌려가 버릴 것이고, 지구가 끌려간 쪽은 중력이 더 커지고 그렇게 되면 또 다른 행성 역시 끌려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주는 한데 뭉쳐지면서 처참한 종말을 맞이하고 말 것이다.이러한 문제는, 뉴턴을 일약 스타덤에 올려 놓은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Principia)`(1697)가 발간되기 전인 1692년 리처드 벤틀리라는 성직자에 의해 제기되었다. 뉴턴은 이러한 모순을 피하고도 싶었고, 그러면서도 우주가 정적이며, 균질하다는 생각을 계속 주장하고도 싶었다. 그래서 그는 `우주는 무한하다`는 가정을 덧대어야 했다. 이렇게 되면 우주공간에 떠 있는 지구라는 별이 무한히 많은 별들에 의해 전후좌우상하로 당겨지지만 그 힘은 상쇄되어 힘의 평형을 이룰 수 있게 된다.문제는 별 하나가 조금만 요동쳐도 주변의 균형이 연쇄적으로 붕괴되어 우주는 하나의 중심으로 모아지고 말 것이다.△밤의 반짝임▲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뉴턴과 같은 대가도 자신의 주장을 유지하기 위해 고집을 부렸다. 그는 우주는 정적이며 균질적이라는 생각을 관철시키기 위해, 우주는 무한하다는 무리한 생각을 덧붙여야 했고, 무모하게도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 “신의 전능한 힘”까지 끌어들였다. 이런 뉴턴의 고집 덕분에 사람들은 우주는 정적이며, 균질적이고, 무한하다는 생각에 갇혀 수백 년을 흘러보냈다. 아인슈타인과 허블이 나타날 때까지 말이다. 아인슈타인과 허블은, 우주는 유한하며, 역동적으로 팽창하고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우리 눈에는 고요하고 정적으로 보이는 우주는 사실 울퉁불퉁하게 공간이 왜곡되어 있으며, 그런 비포장도로 같은 길을 운행하는 도중에 행성은 행로를 벗어나 접촉사고를 일으키기도 한다. 그런 접촉사고는 행성 하나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끝나기도 하지만 때로는 끝없이 증폭하여 하나의 `계` 하나의 `은하` 전체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그런 엄청난 사고를 겪지만 우주는 눈하나 깜빡하지 않는다. 우주는 유한하지만 인간이 가진 무한하다는 개념보다 훨씬 큰 유한함을 가지고 있어 감히 그 규모에 범접할 수 없다.오랜만에 온 고향의 밤은 반짝였다. 지홍 형과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웃었다. 나는 그 웃음은 서로 교차하며 공명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 공명이 만든 파동은 얼마 나아가지 못하고 산산히 흩어질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나는 이 웃음이 저 우주까지 퍼져 나가길 바랐다. 그리하여 우리의 웃음이 우리 은하와 더불어 2억5천 년까지 함께 자전하길 바랐다.

2018-02-23

추워서 맑은 날, 소백산 산행

△소리단단하게 다져진 눈 위에 스틱이 박힌다. 눈과 눈이 스틱이 들어설 자리를 만든다고 삐이익, 끼이익 앓는 소리를 낸다. 내가 비로봉에서 비명을 질렀을 때야 눈이 내는 소리가 비명에 가깝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한 철학자의 말처럼 `시간은 늘 늦었음에 멈춰 있다.`산악회 집행부는 갈팡질팡했다. 산행 전날, 최종 점검하면서 날씨가 추워질 것을 대비하여 회장님과 수석대장님은 산행코스를, 어의곡에서 올라 비로봉을 찍고 국망봉, 상월봉을 지나 다시 어의곡으로 되돌아오는 코스로 급 변경하였다. 그러나 막상 산행 날이 되자, 날씨는 호전되었다. 원래의 코스가 다시 고려 대상이 되었다. 원래의 코스란 죽령에서 연화봉을 타고 비로봉을 너머 어의곡으로 내려오는 코스였다. 원래의 연화봉 코스와 변경된 국망봉 코스의 거리차는 얼마되지 않았지만, 국망봉 코스가 바람을 맞서는 시간이 훨씬 적었다.집행부는 회원들을 생각하여 국망봉 코스로 진행하고 싶어했고, 회원들은 연화봉 코스로 가고 싶어했다. 나도 내심 연화봉 코스를 바랐다. 이유는 단순했다. 출발한 곳으로 되돌아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 또 추우면 얼마나 춥다고 그러는 거지, 나는 산을 알지 못하므로,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연화봉 코스로 정해지길 바랐다.회원들의 바람대로 연화봉 코스로 정해졌다. 죽령탐방소의 직원은 산행을 막지는 않았지만, 아이젠 착용이 필수라고 말했다. 임도는 넓었고, 이 길은 제2연화봉에서 연화봉까지 오래도록 이어졌다.지난 번 황장산에서 바라본 연화봉은 까마득했는데, 막상 연화봉을 오르고 있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눈으로만 본 산을 며칠이 지나 다시 걷는 일, 그것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고, 시각적 이미지를 체험으로 바꾸어 놓는다. 대간을 따라 이어서 이어서 걷는 일. 그것이 어떤 느낌인지, 어떤 의미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바람제2연화봉은 연화봉으로, 연화봉은 다시 제2연화봉으로 이어진다. 바람은 왼쪽에서 사납게 몰아쳤다. 귀가 떨어져 나갈듯이 아렸다. 코는 얼어 얼얼했다. 사람들의 눈썹에도 속눈썹에도 눈이 맺혔다. 나도 다르지 않았겠으나 나는 나를 볼 수 없어, 얼굴에 눈꽃 틔운 사람들을 보며 웃었다.소백산 천문대를 지나면서 웃음은 사라졌다. 한 시간을 훌쩍 넘게 걸었는데 몸은 데워지지 않았다. 다른 산 같으면 바람막이를 벌써 벗었을 텐데 벗을 수가 없었다. 장갑을 낀 손은 얼어 스틱을 쥘 수가 없었다. 스틱을 배낭에 대충 끼우고 손을 주머니에 넣었지만 언 손은 녹질 않았다.길은 산의 능선을 따라 이어졌지만, 때론 왼쪽으로 때론 오른쪽으로 번갈아가며 치우쳐져 이어졌다. 두 개의 길은 확연히 달랐다. 오른쪽으로 뻗은 길은 봄처럼 따뜻했으나, 그 길이 다시 왼쪽으로 치우치면 추위는 뼈에 닿았다. 왼쪽 발이 시려오기 시작하자 겁이 덜컥 났다. 얼어죽는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제1연화봉을 지났나 지나지 않았나, 산 하나를 앞에 두고 볕이 자글자글 쏟아진 양달을 만나 우리는 소주와 밥을 선 채로 마시고 먹었다. 도수 높은 소주는 외려 달았고, 서로가 싸온 밥과 술을 서로에게 먹이며 몸과 마음이 녹았다.허나 비로봉은 많은 의미에서 절정이었다. 왼쪽에서 불어온 바람은 사람들을 자꾸 오른쪽으로 오른쪽으로 밀어세워 내려오는 사람도 오르는 사람도 우측 통행을 했다. 비로봉 정상에서 바라본 세상은 절경이었다. 그 절경을 오래 볼 수 없었다. 추위는 절망적이었고, 어의곡 삼거리까지 북쪽을 향해 곧게 뻗은 길에서 절망은 절정을 이루었다. 북서풍을 맞으며, 게처럼 400m밖에 되지 않는 길을, 끝나지 않을 것처럼 걸었다.△쏜살같이어의곡 삼거리에서 어의곡까지, 도상 거리 4.2km 실제 거리 5.3km. 나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이화 님`이 내리막길을 보자 달리기 시작했다. 아니 날았다. 그녀는 쏘아 놓은 화살과도 같았다. 후예가 떠올랐다. 후예는 활을 잘 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요임금 때 변이 생겨 하늘에 태양이 열 개나 나타나 가뭄과 더위로 곡식과 초목이 말라죽었고 더불어 사람 역시 굶주렸다. 요임금이 후예를 시켜 해를 떨어뜨리게 했다. 이화 님은 후예의 화살처럼 곧게 날아갔다.맹자는 후예의 활쏘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후예가 사람들에게 활쏘기를 가르칠 때 그 뜻을 당기는 것에 두었다.” 후예는 활이 과녁에 맞고 안 맞고가 아니라 활을 당기는 것에 집중하라고 가르쳤다. 활을 과녁에 맞추어야 한다는 생각은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활을 당기는 손을 흔들고 종국에는 과녁마저 흔들어 놓는다. 화살에 과녁에 꽂히는 것은 당겼던 활을 놓은 후에 일어난다. 그러므로 활을 쏘는 사람은 활을 놓기보다 당기는 일에 더 집중해야 한다.이 간단한 교훈을 너무도 간단히 잊어버린다. 나는 어떻게든 그녀를 따라잡으려 뛰었지만, 발목과 무릎에 무리가 갔다. 내가 할 일은 내려오는 것이지 누군가를 따라잡는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발목과 무릎이 아픈 것은 내 몸에 덕지덕지 붙은 살 때문인데, 이 살과 결별하지 않는다면 나의 달리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활을 쏘는 사람이 활을 당기는 것에 집중하려면, 활을 당기는 힘을 길러야 하듯, 산을 타려면 나는 살을 빼야 한다. 이화 님은 쏜살같이 내려갔고, 나는 나의 살과 함께 더디게 더디게 산을 내렸다.△알탕왜 이름을 이렇게 불렀는지는 모르겠다. 알몸으로 몸을 씻는다고 해서 `알탕`이라 부르겠거니 생각하지만, 이 말에서 느껴지는 음흉함을 지울 수 없다. 영하 14도. 시냇물은 얼어 있었고, 얼음의 두께는 층층이 쌓여 오늘 알탕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허나 다리 아래 양지바른 곳은 제법 웅덩이가 될 만큼 얼음이 녹아 있었다. 참 성실하게 알탕할 곳을 찾아놓은 회장님이 원망스러워 웃었다.▲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옷을 벗고 차마 물에는 들어갈 수 없어 바가지로 물을 떠 세수를 하고 가슴에 물을 바르고 머리를 감고는 연거푸 세 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세 번, 더 이상은 도저히 불가능했다. 물을 퍼부으며 왼손으로 오른쪽 가슴을 문지르자 살갗이 알알이 깨졌다. 오후 3시. 점심도 저녁도 아닌 밥을 먹었다. 짜장밥은 맛있었고, 소주는 여전히 달았다. 혼자 국망봉까지 다녀온 `디오 님`은 우리가 밥을 먹는 사이 부지런히 내려왔다. 원래의 계획대로 오후 4시에 출발할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단양팔경 중 하나인 도담삼봉과 석문을 볼 수 있었다.추웠다. 추운데도 날씨는 맑아 먼 하늘이 새파랗게 다가왔다. 다시 말하지만 추웠다. 추웠으나 좋았다. 그 추위까지도 좋았다.

2018-02-09

어떤 고백

“나에게 유일한 빚이 있다면 그날 아버지의 눈을 보지 못했다는 것, 그것이리라.” 그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벌써 20년도 전, 그날이 12월 26일이었나? 그의 친구가 최고의 `꼬장`을 보여 달라고 한 날이 아마 그날이었을 것이다. 그날은 그 친구의 생일이기도 했고 또 마침 친구의 부탁도 있었으니까, 술을 얼마나 먹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만큼 술도 먹었겠다. 친구의 집이라 미안하긴 했지만, 주정을 보여줄 준비는 충분했으니까.“그런데 말이다, 이상하게 아버지와 어머니가 눈에 밟혔지 않겠나.” 그는 그 새벽에 전화를 했다고 한다. 다짜고짜 죄송하다는 고맙다는 말을 부모님께 횡설수설 늘어놓았다고 한다. 그러고 나니 온통 정신이 맑아져 단호히 부엌으로 걸어갈 수 있었고, 드문드문 칼날이 빠진 부엌칼을 들고 손목을 그을 수 있었다고 했다. 그건 어디까지나 꼬장이었고 쇼였으니까.이 빠진 부엌칼이 손목을 지나갈 때 서걱댔고 서걱일 때마다 방바닥에서 붉은 꽃이 피어올랐다. 한 번에 날카롭게 그어지지 않아 살은 쓸렸고, 또 썰렸다. 거긴 동맥이 있었으니까. 닿았을까, 여전히 술을 마시고 있는 친구들 앞에 그의 팔을 들이밀었고, 친구들이 우왕좌왕할 때 버짐처럼 번지는 꽃잎을 보며 그는 홀로 황홀히 혼절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쇼였고, 꼬장이었으니까.그의 친구들이 119에 전화를 했더니 이런 자해는 접수가 안 된다, 112에 신고를 해야 한다, 그 곡절 끝에 난생처음 경찰차를 타고 병원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그때 미리 알아야 했다. 그의 쇼와 꼬장은 오로지 그의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국가적 통제 속에서 관리를 받아야 할 차원의 엄청난 쇼라는 것을.그는 꼬장이라고 했으나 그러지 않고는 살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의 어머니는 아버지와 싸우기만 하면 “내가 죽어야지, 와 살아서 이 고상이고”라는 말을 버릇처럼 뇌셨다. 그건 모두 돈 때문이었다. 그 지긋지긋한 가난 때문이었다. 그는 어머니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머니는 말만 할 뿐 왜 죽지 않는 것일까, 단지 살아있어서 살아야 하는 삶을 왜 내려놓지 않았던 것일까. 그는 죽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것이 그의 유년에 대한 대가였고, 내가 갚아야 할 빚이었다. 그러니까 그는 당신의 삶 앞에 죽음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줄 의무가 있었다.그리고 그의 아버지는 집의 가난 대신 나라의 가난을 걱정했고, 집안에는 소위 불온선전물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가득했다. 그 선전물 사이에서 그는 검게 그을린 박종철의 죽음을 대면했다. 이토록 자명한 죽음 앞에서 정치적 말들이 안개처럼 흩어져 죽음은 보이지 않았다. `안개` 같다고 했으나 그것은 그냥 `개` 같은 말들이었다. 이것이 이 세계의 추악한 몰골이었고, 문드러진 진실의 얼굴이었다. 그러니까 그는 이 세상에 아무런 미련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했다. 역사라고 불리는 것들은 사실 켜켜이 쌓이는 허무의 먼지였고, 그의 부모의 삶 역시 다를 바가 없었다.벤야민은 자살에 관해 가장 파격적인 말을 한 사람이기도 하다. “파괴적 성격은 삶이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느낌으로가 아니라 자살이 그에 수반되는 수고를 감당할 만한 가치가 없다는 느낌으로 산다.”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벤야민은 1940년 9월 26일, 자살이라는 수고를 감당해야 했다. 벤야민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죽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목숨을 꼬장의 일부로 전락시킬 수 있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는 미련 없는 세상에서 자살이 꼬장처럼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었다. 그러니까 그는 벤야민보다 더 철저히 삶의 무의미를 드러낼 수 있었다.경찰들은 그를 병원으로만 옮긴 것이 아니라 부모님께도 연락을 했을 것이다. 전화를 받고 그의 아버지는 그 전화를 끊자마자 서울로 올라왔을 것이다. 버스를 타고 김천으로, 기차를 타고 서울역으로, 서울역에서 다시 병원으로, 그 때가 8시는 되었을까. 아무리 빨라도 차로만 4시간은 족히 걸리는 서울까지, 병원에 누운 비겁한 아들을 만나기 위해 아버지는 조금의 지체도 없이 버스와 기차를 번갈아 타고 그렇게 서울까지 오셨으리라.그때 그의 집은 젖소를 키우고 있었다. 그 영세한 그래서 조악한 생업은 아침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젖을 짜는 것으로 하여, 하루에도 몇 번씩 당신의 발목을 부여잡고 있었는데, 아버지는 집을 나서야 했을 것이다. 그날도 그의 어머니는 분명 혼자서 젖을 짜야 했을 것이다. 당신의 배로 낳은 자식이 당신의 허락도 없이 죽으려고 손목을 그은 그날도 그의 어머니는 눈물을 삼키며 젖을 짰을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그 수고로움을 어머니에게 미루고 병원에 드러누운 비루한 자식을 만나기 위해 담배 한 대 태울 여가도 없이, 머뭇거림도 없이, 그를 보아야겠다는 확고한 의지 하나만을 가지고 서울로 향했던 것이리라.그는 벽을 향해 돌아누운 채 아버지에게 단 한 번의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는 서울역에서 택시를 타고 병원까지 오는 동안의 이야기를 했다. 당신의 남루한 꼴을 보고 택시운전수가 얼마나 오래 서울을 헤매다 이곳까지 왔는지, 터무니없는 택시비 앞에서 아버지가 말없이 택시 운전수의 이름과 면허 번호를 적을 때 택시 운전수가 그냥 가셔도 됩니다, 라고 말했노라는 말들을 늘어놓았다.그는 벽을 향해 돌아 누었으나, 또한 술이 채 깨지도 않았으나, 아버지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울음과 더불어 삼키고 있었다. 그리고 말하고 싶었다. 죽으려고 작정한 자식에게 그건 아무런 위안도 소용도 될 수 없는 말이라고 말이다. 아버지는 그의 등과 이야기를 했고, 가난한 아비의 말을 하나도 놓치지 않았으나, 그 말 중 어떤 말도 그에게 닿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는 채 한 시간도 머물지 않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런 날도 젖소는 저녁에 젖을 내놓을 것이 분명했으니까. 돌아가는 기차에서도 그의 아버지는 꼿꼿할 수 있었을까.그의 등 뒤에서 울리던 말들이 수십 년을 걸어 그의 정면으로 돌아왔던 것일까. 오랜 시간이 흘러 그는 어렴풋이 그 말을 부여잡을 수 있었다고 했다. 그의 아버지는 그것이 삶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마음대로 죽으려는 아들을 보기 위해 택시를 타야 했던 상황에서조차도 삶은 조금의 친절이나 배려도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삶은 여전히 삶으로 흐르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삶은 이토록 견고하다는 것을, 이 견고한 삶 앞에서 자살 따위로는 아무런 파문도 만들지 못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그리하여 삶에의 최대의 복수는 그래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밖에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그것이 그의 어머니의 삶이기도 했으리라. 그렇게 그의 어머니는 삶을 부여잡고 있었던 것이리라. 하여 돌아가는 기차에서도 그의 아버지는 꼿꼿했을 것이고 꿋꿋했을 것이고, 그래도 눈물은 움켜 쥔 주먹 위로 떨어졌을 것이다.▲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그에게 부채가 있다면 그때 아버지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는 것. 그의 아버지의 말들은 지구 반대편으로 수십 년을 걸어 결국에는 그의 정면으로 돌아왔겠으나, 돌아누운 그의 눈빛은 아버지에게 닿을 수 없었을 것이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더라도 그 눈빛은 당신에게 닿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닿을 수 없는 눈빛의 공백만큼 아버지의 한 구석은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기실 위안은 그보다 아버지에게 필요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어떤 식으로든 갚을 수 없는 빚임에 틀림없다.빚은 빚으로 떠넘겨질 것이고 그 빚과 더불어 삶은 그저 한낱 삶으로 이어질 것이다. 가만히 있어도 삶은 그렇게 흘러가버리고 말 것이다. 그렇게 그는 멀리까지 흘러 여기까지 올 수 있었고, 그는 앞으로도 더 멀리까지도 흘러가게 될 것이다. 이 빚과 함께. 삶은 한낱 삶이지만 그래도 삶이니까, 삶은 삶으로 살아내야 한다는 것을 그는 이제 안다.

2018-02-02

백록담 맑음

△새치기지난 주말엔 한라산을 다녀왔어요. 토요일 새벽같이 비행기를 탄 덕에 아침부터 산행을 시작할 수 있었어요. 백록담을 오를 수 있는 산행로는 지금은 네 가지밖에 없나봐요. 먼저 성판악에서 출발해서 관음사쪽으로 내려오는 방법이 있어요. 물론 반대로 관음사에서 올라서 성판악으로 내려와도 상관은 없어요. 그러니 성판악-관음사 코스라고 부르면 되겠군요. 또 다른 방법은 영실-어리목, 세 번째는 돈내코-영실, 마지막으로 돈내코-어리목 코스가 있어요.저는 토요일에는 성판악에서 올라 관음사쪽으로 내려왔고, 일요일에는 영실에서 출발해서 어리목으로 내려왔어요. 성판악-관음사 코스는 도상 거리가 18.9km예요. 실제 거리는 거의 20km쯤 되는 것 같았어요.성판악에서 백록담 아래 진달래 대피소까지는 평균적으로 3시간 정도가 걸리나봐요. 그런데 진달래밭 대피소를 낮 12시까지 통과하지 못하면 백록담으로 올라갈 수가 없어요. 저희가 성판악에 도착한 시간이 오전 9시였으니까 딱 3시간이 남았어요. 시간이 빠듯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제가 따라온 이곳 송백산악회 회원분들은 워낙 산을 잘 타는 분들이라 크게 걱정이 되지 않았어요. 아니나 다를까 스무 명이나 되는 회원들이 진달래밭 대피소에 도착해서 밥을 먹어도 될 만큼 시간이 남았어요.문제는 진달래 대피소에서 백록담까지 1시30분까지 도착해야 하는 것이었어요. 평균적으로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고 하니 크게 걱정할 건 없었어요. 그런데 주말인데다가 겨울이라 사람들이 엄청 많았어요. 한라산은 겨울산이 예뻐서 많이 찾는다고 하는군요. 정말 그 말이 헛말이 아니었어요. 전부 한라산인지 알았는데 전부 사람이더라구요. 사람은 많고 길은 가파르고 게다가 내려오는 사람들까지 많아서 빨리 오르고 싶어도 오를 수가 없었어요.백록담은 보고 싶고, 어쩔 수 있나요. 사람들을 헤치고 오르는 수밖에 없었어요. 줄을 서서 더디게 오르는 사람들이 앞서 가는 저희를 보고 앞다투어 한 마디씩을 했어요. 차례차례 올라가야지 이게 무슨 짓이냐고, 새치기나 다름없다고, 저런 사람들이 꼭 자기 애들한테 질서를 지켜야 한다고 가르친다고…. 정말 온갖 말을 다 들었어요.한 두 사람도 아니고 앞질러 갈때마다 매번 그런 소리를 들으니까 견디기 힘들더라구요. 결국 저는 참질 못하고 “언제부터 산에 줄서서 다녔냐”고 버럭 소리를 질렀어요. 생각해보면 죄송하긴 해요. 왜 그분들인데 빨리 안 가고 싶겠어요. 또 힘들기까지 한데 뒷사람이 빨리 오르겠다고 자신을 밀치면 얼마나 짜증나겠어요. 그날 같이 산행을 하신 분들이 계셨다면 죄송합니다. 너그럽게 이해해 주세요.△정지용의 `백록담`과 수지청즉무어(水至淸則無魚)산을 오를 땐 반신반의하게 돼요. 뭐 대단한 게 있겠어 하고요. 산이 다 그렇지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정상에 서면 입이 딱 벌어져요. 왜냐면 정상은 늘 제 상상을 초과한 수준의 풍광을 펼쳐보이거든요. 제 생각으로 도무지 따라잡을 수 없는 저 놀라운 자연의 창조력 앞에 엄숙해지지 않을 수 없어요.재작년 리기산을 오른 뒤 “저 거대한 자연 앞에서 인간이든 인공지능이든 혹은 알 수 없는 미래든 무엇이든 그 경이로움 앞에서 망연자실해지고 말 것이라는 낭만적인 생각을 했다”라고 썼어요. 백록담에서도 그런 비슷한 생각이 들었어요. 새로운 것들이 마구 쏟아지는 이 시대에 과학과 기술이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이 자연일 것이란 생각 말예요.백록담을 오르며 내내 뇌리를 맴돌았던 건 정지용 시인이 쓴 `백록담`이라는 시예요. 정지용은 가곡으로도 유명한 `향수`라는 시를 쓴 시인예요. 왜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하는 그 시 아시죠. 또 뭐 `호수`, `별똥별` 이런 시도 있어요. 1938년에 발표된 `백록담`은 `한라산 소묘`라는 부제가 달려 있어요. 이 시는 우리나라 최초의 산행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죠. 매 연마다 번호가 붙어 있는 연시로 총 9수로 이뤄져 있어요. 시가 길어 전문을 실긴 어렵겠군요. 우선 첫 수를 한 번 보시죠.“절정에 가까울수록 뻐꾹채 꽃키가 점점 소모된다. 한마루 오르면 허리가 스러지고 다시 한마루 위에서 모가지가 없고 나중에는 얼굴만 갸웃 내다본다. 화문처럼 판 박힌다. 바람이 차기가 함경도 끝과 맞서는 데서 뻐꾹채 키는 아주 없어지고도 팔월 한철엔 흩어진 성신처럼 난만하다. 산그림자 어둑어둑하면 그렇지 않아도 뻐꾹채 꽃밭에는 별들이 켜 든다. 제자리에서 별이 옮긴다. 나는 여기서 기진했다”(`백록담` 중 1수).뻐꾹채는 엉겅퀴와 닮긴 했지만 조금 다르다고 하는군요. 한 마루 오를 때마다 뻐꾹채의 꽃키가 줄어들어 나중에는 아주 땅바닥에 붙은 것처럼 짧아진다고 했어요. 생각해보세요. 산은 자꾸 높아지는데 반대로 식물의 키는 줄어들어요. 이 반비례 관계를 시인은 잘 포착하고 있어요. 그런가하면 나중에 이 뻐꾹채는 `성신(星辰)처럼 난만(爛漫)하다` 즉 `별처럼 빛난다`라는 뜻이죠. 뻐꾹채의 키가 자꾸 커져서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키가 줄어들어 별처럼 땅에 박혀 있다니, 정말 절묘합니다. 정지용은 백록담이 너무도 높아 하늘에 오른 것처럼 느꼈나봅니다. 그러니 뻐꾹채가 별과 같다고 말하는 것이겠지요.이렇게 이 시는 닮지 않은 것들을 연결시켜 서로를 연결시키고 있어요. 1수의 `뻐꾹채와 별`을 연결시켰다면, 3수에서는 `백화와 시인 자신`을, 6수에서는 `어미를 잃은 송아지와 일제강점기를 살아가는 우리 민족`을 등치시키고 있어요. 이렇게 말이죠.“백화(白樺) 옆에서 백화가 촉루가 되기까지 산다. 내가 죽어 백화처럼 흴 것이 숭없지 않다”(`백록담` 중 3수).“첫새끼를 낳노라고 암소가 몹시 혼이 났다. 얼결에 산길 백 리를 돌아 서귀포로 달아났다. 물도 마르기 전에 어미를 여윈 송아지는 움매― 움매― 울었다. 말을 보고도 등산객을 보고도 마구 매어달렸다. 우리 새끼들도 모색(毛色)이 다른 어미한테 맡길 것을 나는 울었다”(“백록담” 중 6수).▲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그런데 1수에서 말을 하지 않고 건너뛴 것이 있어요. 바로 `바람의 차기가 함경도 끝과 맞[선다]`라는 시구예요. 시인은 한라산 백록담을 함경도 끝 즉 백두산 천지를 겹쳐 놓았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백록담`이라는 시는 하늘과 땅, 한반도라는 공간 전체, 또 일제에 주권을 빼앗긴 강점기의 전체 시간, 그리고 이 공간과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 민족, 이런 것들을 축소하고 압축시켜 백록담 속에 담아내고 있는 그런 시라 할 수 있어요. 이 시의 마지막인 9수에서 시인은 “가재도 기지 않는 백록담 푸른 물”이라고 말했어요. `수지청즉무어`라고 했던가요. 가재가 사는 물이 가장 맑은 물이라고 하더군요. 그런 가재조차 살 수 없는 백록담은 또 얼마나 맑은 것일까요. 정지용은 자신이 살아갔던 그 시대, 그 시대의 한반도라는 공간, 그곳에서 살아가는 우리 민족의 삶이 저 백록담의 물처럼 깨끗하길, 아니 깨끗해지길 바랐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2018-01-26

인문학은 여전히 유효한가?

오늘날 과학과 공학기술의 발전 속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엘빈 토플러가 제1의 물결이라고 불렀던 신석기 농업혁명은 거의 1만 년 전에 일어났다. 제2의 물결이라 불리는 산업혁명은 17세기 말부터 일어났다. 농업혁명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기까지 1만 년이 걸렸다. 그런데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채 400년이 지나지 않은 지금 많은 학자들은 새로운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기술이 생겨난다는 말을 실감할 정도다. 처음 아이폰이 출시된 것은 2007년이다. 그 후 10년 사이, SNS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스마트폰 앱은 은행, 숙박, 운송 등의 일을 손 안에서 할 수 있게 만들었다. 에어비앤비(airbb), 우버 택시 등 공유경제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였다.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4:1로 꺾자 호사가들은 인공지능이 인류를 멸망시킬 것이라고 수선을 떨기도 한다.이 시대에도 여전히 인문학은 유효한가? 이 물음은 오히려 지금 더 필요한 물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물음은 지금보다 새 천년이 시작되었던 2000년대 초에 많이 언급되었지만 다시 언급되고 있지는 않다. 당시 한 대학에서는 신입생들을 받을 때 면접문제로 다음과 같은 물음을 던졌다.“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그림`모나리자`를 그 세부적인 원자의 구조에 이르기까지 복제하였다고 하자. 이 복제물은 원본과 물리적으로 전혀 구분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복제물에 불과하지 원본이 될 수는 없다. 원본에는 복제물 이상의 가치가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원본에 고유한 가치가 무엇인가? 인간의 정신과 역사를 탐구하는 인문학의 의의와 관련하여 설명하여 보라.”(2002년 서울대학교 구술고사 문제)이 물음에 답함으로써 `인문학은 여전히 유효한가`라는 물음에 답하고자 한다.이 문제는 세 가지를 묻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먼저 완전히 동일한 복제물이 존재한다고 가정할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제물이 원본을 따라갈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지를 묻고 있다. 둘째 원본의 가치는 무엇인가를 묻고 있다. 마지막으로 인간의 정신과 역사를 탐구하는 인문학의 의의를 묻고 있다. 그런데 첫 번째 물음인 복제물이 원본을 따라갈 수 없는 이유를 말하기 위해서는 원본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말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첫 번째 물음과 두 번째 물음은 동일한 물음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원본의 가치가 무엇인가에 대해 말하면 자연스럽게 첫 번째 물음에 답할 수 있다.원본이란 창작물이다. 창작이 경이로운 이유는 그것이 최초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레오나르드 다빈치는 `모나리자`를 그린 최초의 사람이다. 최초란 처음 시작되었으므로 그 최초를 되돌려 다시 시작할 수 없다. 마치 글자를 익힌 사람이 글자를 다시 배울 수 없고,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된 사람이 자전거 타는 법을 다시 배울 수 없는 것처럼 최초란 되돌릴 수 없다. 당연한 말이지만 글을 배우지 않았다면, 글을 쓸 수 없을 것이다.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지 않았다면 자전거의 앞바퀴를 들 수 없을 것이다. 최초에 행해진 것은 그런 식으로 지속된다.이후의 모든 행위들 속에는 최초가 깃들어 있다. 최초라는 것, 그러한 최초로부터 우리는 다른 것들을 사유할 수 있고, 그 최초를 발전시킬 수 있고, 그 최초로부터 새로운 최초를 도출할 수 있다. 예컨대 모나리자에 수염을 그려 넣은 것은 뒤샹이 최초다. 당연한 말이지만 다빈치의 `모나리자`가 없었다면 뒤샹의 최초는 없었을 것이다. 최초는 인식을 확장시키고, 우리의 인식을 뒤흔든다. 원본에는 그런 전복과 자유의 가능성들이 담겨 있다. 하지만 복제품에는 그런 것들이 담길 수 없다.벤야민은 원본은 일회적이지만, 지속적이며, 복제품은 일시적이지만 반복적라고 말한다. 일회성이란 단 한 번밖에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나리자는 그려졌으므로 더 이상 그려질 수 없고, 그렇게 그려진 것은 지속성을 갖는다. 최초란 이미 시작했으므로 다시 시작할 수 없다. 일시적인 것은 지속과 달리 잠깐 동안 이뤄진다. 일시적인 것을 지속시키는 방법은 반복밖에 없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복제물은 원본을 아무리 따라한다 해도 이 최초가 가진 가치는 따라할 수 없다.복제물의 또 다른 한계는 똑같이 따라한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다양성이 사상된다. 똑같은 모나리자를 보더라도 우리는 얼마든지 다르게 그릴 수 있다. 앞에서 말한 뒤샹은 모나리자의 얼굴에 수염을 그리고, 페르난도 보테르는 뚱뚱하게 모나리자를 그린다. 그리하여 모나리자를 새롭게 변형하고 변주한다. 그 변형과 변주 속에서 우리는 신선함을 느끼고, 어떤 해방감을 맛본다. 하지만 복제된 모나리자는 똑같다는 일시적 놀람뿐이다.원본에는 최초가 담긴다. 그 최초의 다른 이름은 창의성일 것이다. 창의성은 새로운 것에 대한 추구이며, 새로운 것은 다양한 사고와 다양한 사고의 결합을 통해 도출된다. 그런 점에서 창의성의 핵심에는 다양성이 놓여있다. 이러한 창의성과 다양성은 인문학의 가장 중요한 속성이기도 한다.자연과학은 자연과 자연현상을 학문의 대상으로 삼지만, 인문학은 인간과 인간으로 인해 촉발된 것을 대상으로 삼는다. 그래서 인문학은 인간과 인간의 창작물을 다루는 학문이다. 그런데 인간은 다양하다. 인간의 종도 다양하지만 인간의 생김도 다양하며 인간의 사고도 다양하다. 인문학을 배운다는 것은 곧 그런 다양성을 배운다는 뜻이다.인문학은 다양한 인간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인간을 규정하지 않는다. 그 다양한 인간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것들, 한 번도 묻지 않은 것들에 의문을 던지게 된다. 지금은 이미 일상적이 된 것이지만, 왜 귀족과 평민은 구분되어야 하는가, 왜 여성은 남성보다 못하다고 생각되는가, 왜 흑인은 백인보다 열등하다고 생각되는가, 왜 우리는 장애인을 차별하는가와 같은 생각들이 싹트게 된다. 그리하여 인문학은 아무도 묻지 않았던 것들에 물음을 던지고, 갇혀 있는 인식과 사고에 균열을 내고 전복한다. 인문학은 끊임없이 새로운 도덕을 발견하고, 새로운 윤리를 창조한다. 인간은 발전되진 않더라도 적어도 확장된다. 그리하여 인문학은 최종적으로 말한다. 인간적인 것 가운데 나와 무관한 것은 없다고 말이다.▲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그런 점에서 인문학은 인간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다양한 인간들 속에서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다양하기 때문에 그 정체성은 쉽게 밝혀지지 않는다. 정체성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끊임없이 유동하는 어떤 것이다. 곧 정체성을 찾는 과정 속에서 정체성은 형성의 과정 속에서만 존재한다. 그러므로 인문학은 사라지지 않는다.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우리가 인간의 내부를 속속들이 알고 그리하여 인간 정체성을 파악하게 된다고 할지라도 인간의 정체성 탐구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정신이 그러하듯 정체성 역시 과정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정체성이라고 불려지는 것 위에서 다시 자신의 정체성을 쌓아갈 것이다. 인공지능 로봇이 등장하여 인간보다 더 창의적인 것을 만든다 할지라도 인문학 아니 적어도 인문학의 정신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로봇 역시 그들의 정체성을 찾는 노력, 그 소실점으로만 존재하는 무엇, 그러기에 멈출 수 없는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2018-01-19

우담바라의 작은 역사

△상상의 꽃 `우담바라`해마다 신문에 등장하는 수상한 꽃이 있다. `우담바라`라는 꽃인데 혹시 들어보셨는지? 이런 식이다. “`전설의 꽃` 우담바라, 전주서 발견?”, “3천년에 한 번 피는 꽃”, “대둔산 암자 동굴서 피어난 전설의 꽃 우담바라”, “전설의 꽃 `우담바라` 부산 성봉사에 나투다” 등등.우담바라는 우담화로도 불린다. `금강경`에 따르면 3천년에 한 번 핀다고 한다. 또 `법화의 소`에는 “인도에 그 나무는 있지만 꽃이 없고 전륜성왕이 나타날 때면 이 꽃이 핀다”고 기록하고 있다. 전륜성왕이란 인도신화에서 통치의 수레바퀴를 굴려, 세계를 통일시키고, 지배하는 이상적인 제왕을 일컫는 말이다. `일체경음의`에서는 “상서로운 구름과 같이 하늘에 피는 꽃이며, 세간에 이 꽃은 없다”고 말하고 있다.사람들은 `일체경음의`보다는 `금강경`이나 `법화의 소`를 따라 인간세계에 이 꽃이 있고, 훌륭한 통치자가 나타나면 이 꽃이 필 것이라고 믿는다. 꽃이 없는 식물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포자로 번식하는 고사리와 같은 선태식물은 민꽃식물 혹은 은화식물로 불린다. 이런 것은 꽃이 없지 않냐고 말하고 싶겠지만, 포자 역시 꽃의 일종으로 보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꽃이 없는 식물은 없다. 우담바라는 꽃이 없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경우에 꽃이 피는 매우 특이한 식물이다. 전륜성왕의 출현으로 세상에 복덕이 널리 퍼지고 삶이 혁명적으로 전환될 때 이 꽃은 비로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우담바라가 나타난다는 것은 인간의 삶이 혁신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그 혁신적 변화가 어느 정도인지를 말하기 위한 상징이 우담바라인 것이다. 즉 우담바라는 실체가 없는 상상의 꽃일 뿐이다. 불교 경전에는 꽃을 자세하게 묘사하지도 않았고, 그림으로 남겨 놓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우담바라가 핀다는 보도가 줄을 잇는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사람들은 특정한 것을 우담바라라고 믿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걸까? 우담바라가 우담바라로 불리게 된 과정을 한 번 따라가 봤다.△자비와 구도의 상징, 우담바라우담바라가 대중들 사이에서 널리 퍼지기 시작한 것은 1987년 남지심의 장편소설 `우담바라`가 출간되면서부터다. 고려원에서 출간된 이 책은 “젊은 여승이 남자에게 몸을 허락한 것! 그것은 아름다운 자비인가, 파계인가!”라는 자극적인 홍보문구와 함께 주요 일간지에 광고로 실리게 된다. 1988년에는 “비구니 그녀의 몸은 연꽃인가 불구덩이이인가! 구도, 그 뜨겁게 타오르는 애욕의 불꽃과의 싸움!”같이 더욱 자극적인 광고문구로 바뀌었다. 이 소설은 1990년대 초까지 꾸준히 광고되었고, 이 소설을 영화한 동명의 영화가 1989년 개봉되면서 우담바라는 대중의 단어가 되었다.문헌에 기록된 내용을 토대로 보자면 우담바라는 석가나 훌륭한 통치자의 등장으로 인간의 삶이 혁신적으로 변화할 때 피는 꽃이다. 그런데 `우담바라`라는 소설과 영화가 유행하면서 사람들은 이 꽃을 `구도와 자비`의 상징으로 이해하게 된다. 1999년 5월 22일, 한국방송공사 1라디오에서는 부처님 오신 날을 맞는 특집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우담바라가 피기까지`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리고 “고행수도를 통해 성불을 이룬다는 우담바라의 의미를 찾는 프로그램”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와 같이 `우담바라`는 대중들에게 구도와 자비를 상징하는 꽃이라는 의미로 유통되고 소비된다.△우담바라의 등장이때까지만 해도 우담바라는 상징적인 꽃에 불과했다. 그러던 것이 1997년에 들어서면서 실체를 갖기 시작한다. 그 해 7월 경기도 광주군 도척면 우리절에 금동여래 불상 우편 가슴에서 우담바라 스물 네 송이가 폈다고 각종 언론에 보도되었다. 이것은 우담바라라고 말할 어떤 문헌학적 근거가 없다. 심지어 `법화의 소`에서는 이 꽃이 나무에 핀다고 말하고 있는데도 단지 불상에서 피어났다고 우담바라로 부르기 시작했다.이런 우담바라는 2000년부터 봇물 터지듯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아마 새로운 세기로 접어드는 때여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그해 7월 충남 계룡산 대전 광수사, 10월 경기도 의왕시 청계산 청계사, 비슷한 시기 서울 관악산 용주사 연주암 등에서 우담바라가 피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이때부터 사람들은 우담바라를 자비나 구도의 상징이 아닌 길조나 행운을 상징하는 꽃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그래서 우담바라가 피었다는 소문이 나면 많은 사람들이 해당 절에 몰려들었다. 실제로 경기도 의왕시 천계사에는 우담바라가 폈다는 말을 듣고 하루에 5천명이 넘는 사람이 몰렸다고 한다.△우담바라의 실체 혹은 우리의 믿음이후 불상에 피어난 우담바라의 사진이 대중적으로 확산된다. 그래서 아주 가는 대궁이에 밥풀 같이 생긴 흰 꽃을 사람들은 우담바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런 우담바라가 비단 절에만 피는 것이 아니라 냉장고에도 피고, 심지어 아파트 방충망에도 피었다는 것이 보도되기 시작한다. 이것은 화장실, 은행, 소나무, 자동차, 편의점, 주유소, 학교 등 도처에서 우후죽순 발견하게 된다. 뭔가 수상하지 않은가?▲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우담바라가 처음 피었다는 말을 듣고 식물학자들이 이 꽃을 조사해보려 하였으나, 스님들은 신선한 꽃이라 하여 이 꽃의 샘플 채취를 막았다. 그런데 많은 곳에서 이런 우담바라가 발견되니 그 실체는 금방 드러나고 만다. 그것은 다름 아닌 풀잠자리 알! 이러한 내용이 TV에 방영되면서 사람들은 우담바라가 풀잠자리 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후부터 “우담바라? 풀잠자리알?” 또는 “우담바라야? 풀잠자리 알이야?”와 같은 제목으로 신문에 실린다.사람들은 우담바라로 불리는 것이 사실 풀잠자리 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잘못을 수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은 풀잠자리 알의 다른 이름이 우담바라로 생각하며, 풀잠자리 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이 행운을 가져 올 것이라고 믿는다.사람들의 믿음은 어찌나 강한지 우담바라는 아직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처음 우담바라가 등장했을 때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가 축소되었다는 정도. 그러니까 처음 이 꽃이 등장했을 때 국가 전체에 상스러운 일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면, 이제 이것이 거의 모든 곳에 발견되면서 그 꽃이 핀 절, 학교, 회사, 집으로 한정되어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우담바라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과학적인 것보다는 신비롭게 여겨지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다. 여전히 과학으로 밝혀낼 수 없는 신비스러운 것이 있다고 믿는 것 같다. 무엇보다 우리는 웬만해서는 처음에 했던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 생각을 바꾸기보다는 오히려 사실을 왜곡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합리적으로 행동하기보다는 합리화하려고 애쓴다. 우리의 믿음은 이런 식으로 작동한다.

2018-01-12

새해 소망

△공손추의 물음공손추(公孫丑)는 맹자의 수제자로 만장(萬章)과 더불어 가장 뛰어난 제자라 한다. 맹자가 각 나라를 찾아 인의(仁義)를 호소하며 유세(遊說)를 펼쳤으나 그의 말이 어디에서도 쓰임을 받지 못하자 물러나 경전편찬과 저술 작업에 몰두한다. 이때 맹자의 최측근에 있었던 제자가 공손추다. 그렇기 때문에 `맹자`에서 만장과 공손추의 문답이 가장 많을 수밖에 없다고 학자들은 말한다.공손추는 맹자에게 관중과 안영의 업적에 대해 물었으며, 수준 높은 질문을 통해 부동심(不動心)과 호연지기(浩然之氣) 등과 같은 중요한 사상을 이끌어낸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나는 이 말을 믿기 어렵다. 왜냐하면 공손추의 질문은 수준이 높기는커녕 `초딩`이나 `중2병` 같은 수준이기 때문이다.공손추가 맹자에게 던진 첫 질문은 겨우 “스승님께서 만일 제나라에서 요직을 담당하신다면 관중과 안자의 공적을 다시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였다. 이것은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하고 바다거북이하고 둘이서 헤엄치기 시합하몬 누가 이길 것 같노?”(영화 `친구` 중 중호의 대사)와 같은 수준이다. 이런 공손추가 고평되는 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맹자의 속마음어찌되었든 공손추의 이런 유치한 물음에도 맹자는 찰떡같이 대답을 한다. 참 좋은 스승이 아닐 수 없다. 관중은 자신이 모시는 군주를 패자로 만들었고, 안자는 자신의 군주 이름을 세상에 크게 떨쳤지만, 맹자는 그들보다 자신의 능력이 훨씬 뛰어나다고 말한다.도대체 맹자의 능력은 어느 정도란 말인가. 맹자는 이 질문을 피하고 싶었고 최대한 자신을 낮추려고 했지만, 공손추의 집요한 질문공세와 교묘한 아첨 앞에서 실언을 하고야 만다. 자신은 마음을 동요하지 않고(不動心),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찬 크고 넓은 기운(浩然之氣)을 잘 키우며, 말에 대해 잘 안다(知言)는 등 스스로를 한껏 추켜세웠다.이런 맹자의 자찬에 공손추는 `아싸 걸려 들었어`하는 마음이었을까, 이렇게 되묻는다. “재아, 자공은 말하기를 잘하였고, 염우, 민자, 안연은 덕행을 잘하였는데, 공자께서는 이것을 겸하셨으되 말씀하기시를, `나는 말하기(辭令)에 있어서는 능하지 않다`라고 하셨으니 그렇다면 스승님께서는 이미 성인이시겠습니다.”말하는 것과 덕행이 뛰어나다면 공자보다 더 나은 것이 아니냐는 공손추의 되물음은 존경에서 비롯하는 것이 아니라 비꼬는 말처럼 느껴진다. 그제서야 맹자는 화들짝 놀라 “성인은 공자께서도 자처하지 않았는데 이게 웬 말인가?”라며 얼버무린다. 이렇게 버린 몸, 이제 맹자는 자신의 속마음을 노골적으로 그려 내기 시작한다.△이윤과 백이맹자는 성인이 가져야 할 덕목을 부분적으로 갖추었던 자공, 자유, 자장이나 성인된 덕목을 미약하게 가지고 있었던 염우, 민자, 안연 등과 같은 공자의 제자들 따위와 자신을 비교하지 말라고 선을 긋는다. 맹자는 자신과 최종적인 비교의 대상으로 이윤(伊尹), 백이(伯夷), 공자를 지목하고 있다.중국의 고대사는 하(夏), 상(商), 주(周)로 이어지는데 이윤은 하나라 말기의 사람이며 백이는 이윤보다 500년 이상 늦은 상나라 말기의 사람이다. 백이는 유교에서 말하는 청렴지사의 표본이며, 이윤은 명재상으로 이름을 널리 알렸다. 이윤과 백이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자.이윤은 상나라의 개국공신이다. 사기에 따르면 그는 솥과 도마를 짊어지고 탕왕을 찾아와 나라 다스리는 일을 요리하는 것에 비교하여 능력을 인정받았다고 되어 있다. 맹자는 이런 말은 결코 믿지 않는다(만장장구 9장). 맹자에 따르면 이윤은 오히려 탕왕이 먼저 찾아 삼고초려(三顧草廬)하여 벼슬길로 나아갔으며, 하나라의 폭군 걸(桀)을 쳐서 백성을 구해야 한다는 주장을 관철시켰다.백이는 (우리가 익히 잘 아는) 수양산에서 고사리를 캐먹다가 굶어죽은 백이숙제(伯夷叔齊)의 그 백이다. 백이는 형이고 숙제는 동생인데, 이들은 왜 굶어 죽은 걸까? 이들은 원래 고죽국(孤竹國)의 왕자였는데, 형은 동생을 위해서 동생은 형을 위해서 왕위를 사양하다 결국 둘 다 나라를 떠났다. 참 우애 깊고 청렴한 형제다. 이들이 살던 때는 상나라의 마지막 왕인 주(紂)가 폭정을 행해 나라가 도탄에 빠져 있을 때다. 참다못한 무왕은 주왕을 멸하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게 된다. 이를 지켜본 백이숙제는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왕을 죽일 수가 있냐며 수양산으로 들어가 아사했던 것이다.이런 백이와 이윤에 대한 맹자의 평가는 좀 모질다. 백이는 섬길만한 군주가 아니면 섬기지 않으며 부릴 만한 백성이 아니면 부리지 않았고, 이윤은 나라가 잘 다스려질 때도 또 나라가 혼란스러울 때도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려고 애썼다. 그런 점에서 백이는 속이 좁은 사람이며, 이윤은 나대기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맹자는 평한다.△장그래: 자연스럽게공자에 대한 맹자의 평가는 어땠을까? 맹자가 보기에 공자는 “벼슬할 만하면 벼슬하고, 그만둘 만하면 그만두고 머무를 만하면 머무르고, 떠날 만하면 떠나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 사람이 만들어진 이래로 공자와 같이 훌륭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므로 맹자는 오직 공자를 닮고자 할 뿐이다. 맹자가 공자의 훌륭한 제자, 뛰어난 재상, 청렴지사로도 만족할 수 없었던 이유를 알 것 같다. 맹자는 공자와 같기를 바랐다.그런데 이상하다. “벼슬할 만하면 벼슬하고…. 떠날 만하면 떠나는 사람” 도대체 이런 공자가 뭐 그렇게 대단하다는 말인가. 어떻게 보면 공자는 그저 자기하고 싶은 대로 하는 사람에 불과해 보인다.과연 그럴까? 어떤 행동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옳고 그름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공자는 그 상황과 전례를 살피고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해야 옳은지를 스스로 결정하고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곧 그의 행동이 예법이며 인륜이며 인간의 최종적인 본보기였다. 이런 경지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앎을 습득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이를 체화하여 실천하여야 한다. 그러할 때 마음가는대로 행하여도 어긋나지 않는다(從心所欲不踰矩).이러한 공자의 현실적 버전이 `미생`의 장그래가 아닐까? 오상식 과장은 장그래를 다음과 같이 평한다. “애는 쓰는데 자연스럽고, 열정적인데 무리가 없어.” 이 말은 짧으면서도 무척 강렬하며, 많은 의미를 품고 있다. 장그래는 큰일을 하면서도 야단스럽게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노력하는 척하는 사람이 아니라 진짜 노력을 할 줄 아는 사람이다. 진짜 노력이란 어떤 일을 무조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장그래는 억지를 부리거나 무리를 하지 않는다. 그는 일이 지닌 속성과 성격을 정확히 파악할 줄 알며, 이를 토대로 일이 흘러가는 방향과 자신의 바람을 조율할 줄 안다.올해는 유난히 하고 싶은 것이 많다. 내 이름을 걸고 많은 일을 하고 싶은데 그 중 하나가 논문과 책을 쓰는 일이다. 이렇게 욕심이 많을 때일수록 욕심을 내세우면 안 된다. 나는 올해 장그래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2018-01-05

2017년, 마지막 산행

△한 해를 돌아보며올해는 특히 많은 일이 있었어요. 가장 이상한 일을 꼽으라면 자전거와 관계된 일이예요. 처음으로 자전거를 샀고, 자전거를 타다가 늑골이 두 대나 부러졌는데, 그 자전거를 또 누가 훔쳐 가버렸지 뭐예요. 참 이런 일이 다 있네요. 늑골이 부러진 덕에 한두 달 운동을 못했어요. 운동을 안 하면 무조건 살이 찌는 체질이라 엄청 살이 쪘네요. 아버지는 살과 게으름을 동일시하셔서 늘 모진 말씀을 하시는데 집에 갈 일이 두렵네요.가장 후회하는 일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한 일예요. 저를 필요로 하는 곳이 세 곳이 있었는데 여기가 더 나을 것 같아서 갔다가 또 저기가 나을 것 같아서 저기도 한 번 갔다가…. 그렇게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에게 실망만 안긴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내년에는 꼭 중심을 잡고 살려고 해요.그래도 올해는 안 좋은 일보다 좋았던 일이 더 많았어요. 어르신을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 수업을 진행하게 되었거든요. 제가 가진 인문학 지식을 바탕으로 정말 필요한 곳에서 필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어떻게 보면 인문학은 돈도 안 되고, 쓸모도 없고, 가치도 없는 일처럼 느껴져요. 그래서 저 스스로 회의가 들 때가 많았는데 이 강의를 통해서 확신을 가지게 되었어요. 인문학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 말예요.또 하나는 지금 여기에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일입니다. 좋은 지면을 주신 `경북매일`에 이렇게나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물론 매주 글을 쓰는 일이 쉬운 일은 아녜요. 몇 번이고 그만두겠다는 말을 하고 싶지만 꾹 참아내고 있어요. 여러분께 좋은 글로 찾아뵙질 못하는 것 같아서 죄송해요. 어쩌면 그래서 못 그만두는지도 모르겠군요. 정말 좋은 글로 여러분들께 다가가고 싶다는 욕심이 있거든요.이 칼럼을 쓰면서 좋았던 건 거의 매주 여행을 간다는 겁니다. 매주 갈 때도 있지만, 한 주에 두 번씩 갈 때도 있어요. 그런데 여행이라는 게 참 오묘해서 어떤 여행은 금방 쓸거리가 있어서 글이 쏟아지는데 어떤 여행은 아무리 오래 두어도 못 쓰게 되는 것들도 있어요. 더군다나 정말 좋았는데도 쓸 말이 없는 그런 여행도 있어요. 도대체 왜 그런 걸까요?어찌 되었던 이 칼럼 덕에 생전 처음 낚시도 해봤고요, 경상북도 구석구석을 다녀봤고요, 전국 곳곳의 축제도 다녔어요. 무엇보다 이 칼럼 덕택에 등산이라는 걸 처음하게 되었다는 거예요. 이 칼럼이 없었다면 아마 제가 산을 타는 일은 없었을 테고, 그랬다면 아마 제가 산을 이렇게 좋아하고 있었다는 것도 몰랐을 거예요.글 때문에 등산을 하게 되었고, 등산 덕분에 운동이 이렇게 좋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글은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삶의 표면에서 삶의 심연으로, 다시 삶의 심연에서 표면으로 저를 옮겨 놓아요. 그래서 여지껏 운동이라는 걸 모르고 살다가 지금은 온갖 운동을 다 하고 있어요.무엇보다 이런 경험을 하면서 지나치는 느낌들, 생각들…. 글쓰기는 이런 것들을 더욱 단단히 부여잡게 해주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느끼는 육체적 힘듦이 어느 정도인지를 분명히 인식할 수 있게 되고, 제 머릿속을 떠도는 사유의 정체 역시도 알 수 있게 되어요. 글은 어둠 속의 빛과 같아서 사물에 형상을 주고, 색을 주어 사물이나 대상을 보다 분명하고 선명하게 만들어주거든요.△겨울비 속 겨울안개어찌되었건 전 이 칼럼을 위해 오랜만에 산행을 나서게 되었어요. 마지막 산행이 9월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7월 26일 마이산 이후 처음이더군요. 거의 반 년 만에 산에 온 셈이네요.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겨울비, 아니 겨울폭우처럼 쏟아졌어요. 저 비를 맞고 산을 오를 생각을 하니 앞이 깜깜했어요. 시작하는 초입은 수직에 가까울 정도로 가팔랐어요. 준비가 늦어 제일 늦게 출발한데다가 간만에 오르는 산이라 좀체 앞으로 나갈 수가 없었어요. 후미대장님은 묵묵히 저를 기다려주셨지만, 왜 이렇게 늦냐, 그만 포기하고 내려가라, 이런 말을 할 것 같아 겁이 났어요.이를 악물고 걷긴 했지만, 벌써부터 장딴지며 허벅지며, 곳곳의 근육가 인대가 느껴졌고, 그 느낌들은 모두 통각이었어요. 이럴 때 어김없이 하게 되는 생각, 왜 왔지? 대둔산은 정말 아름다운 산으로 알고 있는데 겨울비와 함께 몰려온 겨울안개는 어떤 전망도 허락하지 않았어요. 장갑과 바지는 이미 축축했고, 등산화도 젖어가고 있었어요. 이럴 때 어김없이 찾아드는 생각, 왜 왔지? 밥을 먹을 곳이 없어서 서서 먹어야 했고, 아이젠을 신었더니 발은 더 아파 죽을 맛이었어요. 이럴 때 어김없이 찾아드는 생각, 왜 왔지?비 맞은 중처럼 군시렁거리는 동안 벌써 하산길로 접어들었더군요. 서각봉(826m)에서 암릉으로 내려갈 즈음 앞서가는 일행의 감탄사가 터져 나왔어요. 무슨 일일까? 산을 온통 휘감고 있던 비와 안개가 산을 내어주고 있었어요. 운무는 복병을 만난 군대처럼 일시에 퇴각하고 있었고, 우리의 시계는 저 멀리 수락저수지까지 가 닿았어요. 저 구름이며 안개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요. 이렇게 오늘 비는 끝이 나는가 싶었는데, 어딘가에서 피어오른 산안개 사이로 겨울비가 스몄어요. 도대체 산은 얼마나 많은 변화를 가지고 있는 걸까요. 감당할 수 없는 의문들을 안고 산을 내려왔어요.이날 산행은 10km밖에 되지 않아 일찍 끝났어요. 시간도 이르고 또 연말이고 해서 뒷풀이를 가게 되었죠. 소주는 평소에 먹지도 않는데 이상하게 산에만 다녀오면 소주가 당겨요. 몇 잔을 마셔도 취하지 않고, 술자리 내내 즐거울 수 있어요. 왜 그런 걸까요? 다른 대답일 수도 있지만 도시와 멀리 떨어진 산일수록, 산이 가파르고 험할수록, 산행하는 사람들을 지나칠 때 반갑게 인사하는 이치와 같은 것 같아요. 이 산을 함께 올랐고 함께 고생하고 있다는 동질감. 일종의 전우애 같은 걸 느끼기 때문에 낯선 사람들에게도 “즐거운 산행되세요.”하고 크게 인사를 하게 되는….▲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함께 산을 오르고 내려온 같은 산악회 사람이라면 그 동질감은 더 크겠죠. 그러니 함께 한 사람들이 좋을 수밖에 없고, 땀을 뺀 뒤라 술은 달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이렇게 보자면 인간은 그렇게 복잡하지도 않고 거룩하지도 않나 봐요. 겨우 산을 한 번 같이 올랐을 뿐인데도 이렇게 친밀감을 느낀다는 것, 이것이 인간이 얼마나 단순한지를 증명해주고 있어요. 이 아무것도 아닌 산행, 그로부터 파생된 친밀감과 동질감은 우리를 연대하고 공존하게 만들어요. 이러한 감각을 확장시킬 수는 없을까요. 지구에 발 딛고 살아가는 인간 전체로 말이죠.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인간은 정말 서로를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어차피 우리는 누구에게든 닥칠 죽음이라는 병을 함께 앓고 있으니까요. 어쩌면 공존과 연대와 평화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 있는지도 모르겠군요.

2017-12-29

음식과 인문학

“인문학자와 쉐프가 함께 만드는 음식 이야기.” 이것은 요즘 제가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좌의 제목이예요. 오전에는 시, 소설, 그림, 영화 등에 나오는 음식에 대해 배우고, 오후에는 요리사를 초빙해서 음식을 만들어요. 지난주엔 백석의 시에 나오는 음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어요. 어르신들은 처음에 시를 보시고는 이게 무슨 시냐고 하셨는데 시를 몇 번 읽고 나서는 참 좋은 시라고 말씀해주셔서 저도 덩달아 좋았어요.백석의 시에는 음식과 놀이가 많이 나와요. 그래서 어르신들께 어렸을 때 했던 놀이에 대해서 여쭸더니 공기놀이, 땅따먹기, 오자미, 고무줄, 집짓기, 구슬치기, 떼기, 비석치기, 수건돌리기…. 저도 했던 그런 놀이였어요. 그런데 한 어르신이 당신은 어렸을 때 사촌들과 목침을 던지며 놀았다고 해서 깜짝 놀랐어요. 참 과격하게도 놀았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명절에 올리는 특이한 음식에 대해서도 물었는데, 다들 신식이 되어놔서 제사 음식에 대해서는 잘 모르시더라고요. 그 중에 한 분이 경상북도에서는 돔베고기(상어고기를 두툼하게 썬 것)를 올린다고 하더군요. 그 참 신기하죠.하이라이트는 어렸을 때 먹은 음식들에 관한 이야기였어요. 한 할아버지는 장마철에 동네 개울에서 호박이 떠 내려와 이것을 집으로 가져갔다는군요. 어머니가 호박에 멥쌀가루, 팥, 넝쿨콩, 찹쌀, 새알심을 넣은 호박범벅을 해주셨다고 해요. 그 호박범벅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찐쌀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씀해주신 할머니도 계셨어요. 봄에 덜 여문 벼를 쪄서 말린 후 찧은 쌀이라고 해요. 아마 보릿고개를 넘기고 처음 먹는 쌀이라 특히 기억에 남았나 봐요. 또 다른 분은 쑥범벅(?)이 기억에 남는다고 하시더군요. 부드러운 겨와 새쑥과 콩고물을 섞은 떡이라고 하는데 개떡도 아니고 뭐 여튼 정체를 알 수 없는 음식이라 재미있었어요.△삼겹살과 찜닭의 기원점심을 먹고 나서는 요리사를 초빙해서 로즈마리 제육볶음, 간장유자찜닭을 만들었어요. 저희는 요리를 만들기 전에 닭, 돼지고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어요. 마치 찜닭이 우리나라에 대대로 내려오는 음식 같지만 실은 알고 보면 1970년대 안동에서 갑자기 툭 튀어나온 음식이라고 해요. 실제로 안동에 사셨던 할머니가 이를 증언해주셨어요. 삼겹살 역시 그리 멀지 않아요. 치킨이야 말할 것도 없겠지요.삼겹살, 찜닭, 불고기 이런 것들을 전통음식이라고 생각하는데 생각해보면 너무 분명해요. 이런 것을 음식으로 사용하려면 그만큼 많은 돼지, 닭, 소를 키워야 해요. 과거에 우리나라에서는 각 가정마다 소규모로 가축을 길렀어요. 그래서 잔치, 제사, 결혼 이런 특별한 일이 있을 때나 육류를 먹을 수 있었어요.음식은 물질이어서 물질적 기반이 없으면 만들 수 없어요. 김치만 해도 배추의 원산지는 중국인데다가 배추만큼이나 주원료라 할 수 있는 고추는 남아메리카가 원산이고 기록에 따르면 1천800년대에나 우리나라에 들어왔다고 하는군요. 그러니 우리가 알고 있는 고유의 음식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과연 고유한 것인가라는 건 재론의 여지가 있어요. 전통은 말 그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변화를 겪으며 바뀌었어요. 문화란 그렇게 섞이고 변화하는 것에 핵심이 있어요. 그러니 고유한 우리 것을 찾고, 거기에 우리나라의 우수성을 덧붙이려면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것 같아요.드디어 요리시간이 되었어요. 로즈마리, 정향, 월계수, 바질 같은 다양한 향신료에 대해서도 배웠어요. 그 중에서도 정향은 못처럼 생긴 향신료였는데 양파나 고기에 꽂아서 사용하는데 신기하더군요. 이런 향초다발을 부케가르니(bouquet garni)라고 한다더군요.저희가 만든 제육볶음은 뻘건 게 아니라 간장으로 조미를 해서 자극적이지 않았어요. 어르신들은 손주들이 좋아할 것 같다며 손주들보다 더 좋아하시더군요. 그런데 저희가 만든 음식은 단맛과 짠맛이 따로 놀았는데 쉐프가 만든 건 맛이 정돈된 느낌이었어요. 왜 우리는 그런 맛이 안 나냐고 쉐프에게 불퉁거렸더니 저희보다 먼저 고기를 재어놓아서 그런가보다고 아주 겸손하게 말해주었어요. 간장유자찜닭은 유자향과 어울려 정말 좋더군요. 그런데 여기에 올리브유를 넣었더니 우와 맛이 완전 달라졌어요. 정말 재밌었어요. 어르신들을 위해 마련한 강의인데 제가 더 즐기고 있으니 큰일 났네요.△어르신들이 `아점`을 먹는 이유이 강의를 기획할 땐 두 가지 생각을 했어요. 하나는 어르신들에게 오히려 배우자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어르신들에게 음식을 문화의 측면에서 접근하도록 만들고 싶었어요. 어르신들은 식사를 즐기지도 않고, 그저 한 끼를 때우는 것쯤으로 생각하시리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던 거죠. 그래서 “음식에 대한 인문학적 접근을 통해 음식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고, 어르신들의 식문화를 개선하여 삶의 질을 향상”시키니 어쩌니 하는 어처구니없는 계획서를 작성했어요.그런데 막상 어르신들을 만나보니 당신들에게 한 끼는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현실적인 것이었어요. 우선 어르신들은 잘 살거나 못 살거나 돈을 자신한테 쓰는 것을 극도로 아끼고, 불필요한 소비를 최소화하세요. 노인회관에서 1천 원 하는 점심을 먹는데 되도록 많이 먹는다고 해요. 집으로 돌아와 되도록 늦게 저녁을 먹어야 하거든요. 그렇게 잠을 들인 후 아침엔 다시 노인회관에 와서는 오전 11시 30분에 주는 `아점`을 먹는 거죠.강의를 계획할 때만해도 어르신들은 모두 점잖을 줄 알았어요. 하지만 어르신들은 제가 생각하는 것과는 정말 딴 판이었어요. 프린터물에 글씨가 작다고 야단을 치시고, 그런 숙제를 언제 내줬냐고 역정을 내시고, 어려워서 못 알아먹겠다고 버럭 소리를 지르시고, 시 좀 읽어보라고 했더니 또 글씨가 작아서 못 읽겠다고 호통을 치시고, 자신이 다음 주에 약속이 있으니 시간을 좀 늦춰 달라고 하시고. 저에게 그런 건 상관없지만 서로가 서로를 싫어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어요.▲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그래서 요리를 할 때는 정말 걱정을 많이 했어요. 오히려 요리사를 가르치려 들까봐, 그렇게 하면 맛 버린다고 역정을 내실까봐, 설거지를 아무도 안 하고 바쁘다며 휘휘 가버릴까, 무엇보다 서로 요리를 하다가 싸울까봐. 그런데 웬걸! 수십 년씩 밥을 해오셨을 할머니들도 쉐프의 말에 경청했고, 할아버지들은 더 열성적으로 강의를 들었어요. 설거지도 제가 하려고 하니까 선생님은 쉬시라며 다들 앞장서서 서로 도와가며 뒷정리까지 깔끔하게 해 주셨어요. 이제 겨우 두 주 수업을 했는데 벌써 한참 친해진 느낌이예요. 다음 주엔 좀 날이 따뜻해야 할텐데. 그래야 어르신들이 많이 오실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다음 수업을 준비하고 있어요.이런 게 뭔 인문학이냐고 하실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인문이란 생각은 들어요. 저는 어르신에 대해 잘 모르고 어르신들도 요즘 사람들에 대해서 잘 몰라요. 그 사이를 연결하여 서로 존재를 확인하는 인문 활동을 통해 그런 자료들을 토대로 새로운 인문`학`이 만들어지지 않을까요.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2017-12-22

이카루스는 `지금` 죽고 있다

이카루스의 추락을 그린 그림들, 만추올리, 사라체니, 샤갈. 특히 샤갈의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이카루스의 추락에 화답이라도 하듯 두 손을 치켜들고 있다. 갑작스러운 사건에 놀라는 사람이기보다는 환호하는 사람의 몸짓에 가깝다. 만추올리와 사라체니의 그림에도 무슨 불구경하듯 이카루스의 추락을 쳐다보는 사람들이 있다. 브뤼헤의 그림에는 이러한 구경꾼들이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그림 속 등장인물들은 아랑곳없이 자기 일을 할 뿐이다. 왜 `이카루스의 추락이 있는 풍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이카루스의 추락에 무관심한 것일까? 이에 대한 기존의 평자들의 논의는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하나는 이 그림이 이카루스의 오만과 경솔함에 대한 풍자로 보는 견해다. 이카루스는 아버지인 다이달로스의 말을 거역하고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그는 절제할 줄 몰랐다. 난다는 기쁨을 만끽하고 싶어했고, 자신이 난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어했다. 그렇기 때문에 농사꾼도 목동도 낚시꾼도 이 사태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이카루스의 추락은 오만과 경솔에서 비롯된 당연한 귀결이다. 그 당연한 일에 놀라워할 까닭은 없다.다른 하나는 “사람이 죽었다고 쟁기질을 멈추지 않는다”라는 속담과 관련되어 있다. 이카루스의 죽음은 세상을 중단시킬 만큼 놀랄 만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죽음일 뿐 세계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이 속담과 관련지어 그림을 보면 다시 두 개의 방향으로 해석할 수 있다.먼저 이카루스가 추락를 했든지 어쨌든지 세계는 여전히 저토록 아름답다는 것, 그러니 너의 좌절을 확대하지 말 것, 너의 좌절을 확대하지 말고 빨리 일어나 여전히 아름다운 세계 속으로 다시 기어들어가라는 교훈을 담고 있다. 또 다른 해석은 타인의 불행에 관계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기적 모습에 대한 풍자라는 것이다. 이 그림 속의 농부, 양치기, 낚시하는 사람들은 모두 자기 일에만 몰두하는 이기적인 사람들이다. 그래서 누가 죽건 말건 신경쓸 여력도 없다. 그런 점에서 당대의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세태에 대한 풍자로도 읽을 수 있다.△구경의 속성, 사건의 속성이러한 해석의 공통점은 그림 속의 등장인물들이 이카루스의 죽음을 의식적으로 무시한다는 것이다. 즉 이카루스가 죽기도 전에 죽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샤갈, 맞추올리, 사라체니와 같은 화가들은 이카루스를 다룬 그림에서 구경꾼들을 등장시키고 있다. 왜냐하면 그림 속 사람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이카루스의 추락을 모두 동시에 쳐다보며 감탄스럽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놀람이나 경악이 아닌, “우와, 저렇게 떨어지는구나!”고 말하는 듯이 쳐다보고 있다.그런 점에서 보자면 구경이란 어디까지나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는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와 달리 사건은 오로지 사후적으로만 인식된다. 왜냐하면 사건이란 순식간에 휙하고 일어나는 어떤 것, 무엇이라고 규정하기도 전에 끝나버리는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났는지를 알게 될 때는 이미 사건이 모두 정리되고 난 이후다. 아마 이카루스의 죽음이라는 사건은 그의 떨어지는 속도와도 맞물려 정말 휙하고 지나갔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하다면 어디에 구경꾼이 끼어들 자리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그런 점에서 샤갈을 위시한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구경꾼이며, 이카루스가 추락하기를 고대하고 기다려온 사람들이다. 이카루스가 떨어지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 사건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 이와 달리 브뤼헤는 이카루스가 떨어지는 그 사건을 기록한 것이 아닐까. 이 그림에 등장하는 목동, 농부, 낚시꾼들은 이카루스의 죽음에 무관심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죽음에 무지한 것이 아닐까. 만약 그러하다면 이 그림은 다시 해석될 필요가 있다.△유일한 추락 혹은 추락의 유일성처음부터 다시 물어야 한다. 왜 브뤼헤의 그림에는 이런 구경꾼들이 없는 것일까. (반복하자면) 왜 브뤼헤의 그림의 등장인물들은 이카루스의 죽음에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는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저들은 `구경꾼`이 아니다. 저들은 이카루스의 죽음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이다.브뤼헤가 그리고자 한 것은 풍자나 교훈이 아닌 “현재적 사건”이었다. 이 글의 핵심은 바로 이 지점이다. 우리는 이 세계가 어떻게 끝나리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더 좁게는 우리 자신의 끝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 이카루스 역시 자신의 끝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추락은, 그의 죽음은 예고되지 않은 돌연한 죽음이었다. 이 돌연한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은 나무 아래에서 토끼가 지나가길 바라는 오나라 사람과 다를 바 없다. 이카루스의 죽음은 현재적인 것이었다. 현재적인 것은 늘 그러하듯 그것을 인식할 틈을 주지 않는다. 현재적인 사건은 인식의 구멍, 혹은 인식의 공백이다. 이 텅빈 곳 어디에도 구경꾼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이카루스가 죽기 전에 사람들은 이카루스라는 이름을 들어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더구나 그가 비행을 한다는 것도, 그리하여 태양 가까이로 올라갔다는 것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추락하리라는 것을 다이달로스는 물론 이카루스 스스로도 몰랐을 것이다. 이카루스의 죽음은 예견된 바 없는 유일무이한 현재적 죽음이었다. 그러니 그림 속의 등장인물들이 그의 죽음을 모르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낚시꾼이 하늘을 볼 이유는 없다. 그는 찌의 움직임을 살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바쁘다. 저 한가로운 목동은 우연히 하늘을 바라보고 있지만, 그는 이카루스가 떨어지는 쪽이 아니라 그 반대쪽을 바라보고 있다. 이카루스는 우연으로도 사람의 눈에 띄지 않은 채 그렇게 추락하고 있다. “도둑같이 오리라”는 그리스도의 말이야말로 사건의 현재적 속성을 가장 잘 함축하는 말일 것이다. 사건은 그렇게 아무도 모르는 때, 아무도 모르게 `도둑`처럼 다가온다. 브뤼헤 역시 이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이미 정해진 질서 혹은 운명적이며 숙명적인 신화적 세계에서 벗어나, 그 방향도 시작도 끝도 없는 그런 현재를 그리고자 했던 것이리라. 이미 알고 있는 사건, 이미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재적 사건을 브루겔이 그렸다는 것. 이것이 이 글의 결론이다. 브뤼헤가 그린 것은 이카루스의 추락, 더 정확히는 이카루스의 최초이자 최후의 추락, 유일한 이카루스의 추락을 그렸던 것이리라. 그리하여 사건의 현재적 속성을 보여주고자 했으리라. 그런 점에서 브뤼헤는 가장 선구적인 모더니스트이며, 리얼리스트다.

2017-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