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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위생과 공학

△손톱깎이세상에 귀찮은 것이야 많겠지만 그 중에 수위로 꼽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손톱을 깎는 일이 아닐까? 세수와 양치질이 귀찮은 것의 목록에서 빠질 리 없겠지만, 매일매일 피할 수 없이 해야하므로 무뎌지기도 하고 어느 정도 포기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잊을 만하면 어느새 자라 있는 손톱. 늘 새삼스럽게 귀찮은 것은 바로 손톱을 깎는 일이다. 더군다나 그 손톱깎이란 놈은 찾을 때마다 어디론가 숨어버리지 않는가.동물들은 손이 없으므로 당연한 것이겠지만, 그들은 발톱도 깎지 않는다. 깎지 않는 것이 아니라 깎을 틈이 없다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야생의 생활환경은 발톱이 자랄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직 인간, 그리고 인간이 키우는 애완동물만이 손톱과 발톱을 인위적으로 깎게 된다. 문명은 인간에게 많은 것을 이루어주지만, 이처럼 사소하면서 귀찮은 문제들을 남겨주기도 하는 법이다.그런데 만약 손톱깎이를 찾지 못했다면, 그래서 결국 어쩔 수 없이 그대로 외출해 손톱이 부러지는 불상사라도 일어난다면, 그땐 손톱깎이를 원망해야 할지, 새삼스레 그 고마움을 떠올려야 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형태의 손톱깎이가 태어난 지 불과 100년이 채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가위를 들고 끙끙대며 손톱을 깎지도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는 고마움을 표할 수밖에 없다.손톱깎이는 간단한 도구로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인류 역사가 수천 년을 기다린 끝에 만나게 된 기계장치이다. 손톱깎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대로 ‘지렛대의 원리’인데, 손톱깎이에는 두 가지 유형의 지레가 동시에 적용된 ‘복합지레의 원리’를 적용하고 있다. 그러니까 손톱깎이의 손잡이에 힘을 가하면, 손잡이의 돌기에 의해 윗날이 내려가고, 중앙의 봉에 의해 아랫 날은 올라가는 방식인 것이다.지레의 원리는 인류의 역사에서 매우 이른 시기부터 사용되었는데, 피라미드와 같은 놀라운 건축물을 만들기 위해 필수적으로 사용되었던 것이 지렛대라고 알려져 있다. 지레의 구체적인 과학적 원리 또한 일찍부터 밝혀져 있었는데, 이를 처음으로 정리한 사람은 그 유명한 아르키메데스이다. 아르키메데스는 자신에게 긴 막대와 받침대만 주어진다면 지구도 들어 올릴 수 있다고 큰소리 친 것으로 유명하다. 이에 왕은 해변에 군함을 건조하고 이 군함 안에 병사들을 가득 태운 후 이것을 물에 띄우라고 명령하였다. 이때 아르키메데스는 지렛대를 응용한 도르레를 사용하여 이를 아주 쉽게 해결하였다고 한다.이처럼 지레의 원리가 오래되었다면, 생활에 반드시 필요한 손톱깎이를 만드는 데는 왜 이렇게 긴 세월이 걸린 것일까? 아무리 손톱깎이가 복합지레를 사용한 나름 ‘복잡한 기계 장치’라고 할지라도, 긴 세월 동안의 인류는 참으로 무심했다는 생각도 든다.생존을 위한 인간의 노력이 문명을 만들어 냈다면, 인간은 문명에게 엄청난 빚을 진 셈이다. 그럼에도 문명은 인간에게 손톱을 깎는 일과 같은 사소한 귀찮음에서부터, 쉽사리 무시할 수 없는 다양한 문제를 안겨주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단순히 우리 자신과, 우리의 문명을 비판하는 것만으로는 이러한 문제에 적절히 대처할 수 없다. 이제 와서 발톱이 길지 않도록 흙바닥에서 생활할 수는 없지 않은가?공학은 바로 그런 것들을 생각해야 한다. 공학자는 그런 것들을 고민해야 하고, 그리고 또한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공학이다. 오래된 지레의 원리를 이용하여 간편한 손톱깎이를 만들어 내는 것이야말로 공학이라면, 공학은 그 이상도 충분히 해낼 수 있다. 공학자들이 모여 온난화, 대체연료 등 다양한 문제들을 고민하고 있으며, 그것을 해결해 나가고 있다. 우리는 더 나은 세계를 꿈꾸며, 공학은 이러한 꿈을 가능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필수적인 것은 발전이기도 하지만 그러한 기술발전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 역시 고려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공학자에게는 윤리의식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완속여과지우리나라에서 콘크리트로 지어진 구조물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무엇일까? 다리, 은행, 궁궐, 외국 대사관? 아쉽지만 어느 것도 아니다. 그것은 상수도 시설인 완속여과지다. 완속여과지는 1908년 뚝도수원지에 만들어졌다. 그 구조는 매우 간단하다. 제일 아래에는 자갈을 깔고 그 위에 다시 모래를 덮고 그 위로 물을 흘려보내면 된다. 물이 매우 느리게 흐르는 동안 물속에 섞인 불순물이 가라앉게 된다. 이 완속여과지는 서울시 유형문화재 72호로 지정되어 있다.우리나라에 가장 오래된 콘크리트 건물이 겨우 상수도 시설이라니 허망한 느낌이 없지 않다. 하지만 완속여과지가 만들어진 이후 우리는 안전한 물을 마실 수 있게 되었다. 1906년까지 미국의 필라델피아시는 장티푸스로 수많은 시민이 희생되었다. 이러한 전염병을 퇴치하는데 있어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전염병 예방접종이 아니라 바로 완속여과지였다. 1906년 도입된 완속여과지는 전염병의 발병률을 급격히 감소시켰고 뒤이어 도입된 염소소독과 같은 공정이 추가되면서 인구 10만 명당 장티푸스의 발병률을 연간 500~600명에서 50명 이하로 낮출 수 있었다.미국공학한림원(National Academy of Engineering)이 ‘인류가 쌓은 최고의 업적 20가지’에 완속여과지를 넣었는데, 상하수도 시설이 인간의 평균 수명 연장에 크게 기여하였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냉장고의 역할 역시 무시할 수 없다. 20세기 중반까지 전세계적으로 가장 흔한 암이었던 위암 발병률을 급격히 낮추어 놓았기 때문이다.△행복한 삶을 위해얼마 전 정년퇴임을 앞둔 두 교수님이 시골에 사는 것과 도시에 사는 것 중 어느 쪽이 건강과 장수에 더 도움이 되는가, 라는 것을 두고 논쟁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한 분은 공기 좋고 물 맑은 시골에서 편안하게 사는 것이 훨씬 건강에 좋다는 주장을 내놓았고, 다른 분은 노년에는 의료시설과 가까운 도시에서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사는 것이 건강에 더 바람직하다는 새로운 주장이 팽팽하게 맞섰다.이러한 토론은 생산적이기 보다는 소모적이다. 둘 중 하나를 버릴 것이 아니라 그 둘을 절충하여야 한다. 도시스러운 도시, 시골스러운 시골은 우리의 관념 속에서만 존재하는 일종의 판타지다.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도시가 주는 이점과 시골이 가진 장점을 결합하는 일이다.▲ 공강일서울대 강사·국문학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수상집 ‘월든’은 환경 파괴에 기반한 현대적 삶에 경종을 울리는 고전으로 널리 읽히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버리고 소로처럼 자연 속에 들어가 자급자족하는 삶을 살아갈 수는 없다. 그러한 삶은 한 개인에게 가능할지는 몰라도 전 인류에게 적용할 수는 없다. 우리는 공학과 과학으로 대변되는 물질문명을 무조건 배척할 것이 아니라 이것을 효과적이고 합리적으로 이용하여야 한다.시골은 시골로서의 편안함과 안락함이 존재하며 도시는 도시로서의 편리함과 쾌적함이 존재한다. 편안과 편리를 동시에 추구하고, 안락과 쾌적을 동시에 추구하는 방향이야말로 우리 인류가 나아가야할 방향일 것이다.

2018-09-28

더 격렬히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아무것도 안하고 싶다. 이미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이 대사는 2015년에 등장한 한 카드회사의 광고문구였다. 그 뒤 이 대사는 수없이 많은 ‘짤방’들을 양산해내며 변질되기 시작했다. 뒹굴거리며 주말을 보내는 직장인들, 취업을 하지 못해 집에서 놀고 있는 ‘취준생’들의 속마음이 되어 인터넷 커뮤니티를 떠돌았다.‘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는 것,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더 격렬하게 더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안 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이러한 마음은 그들이 얼마나 많은 격무에 시달렸는지를 대변한다. 또 그들이 다가올 내일에 대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지금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 이유는 내일을 맞아야 한다는 공포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공포스러운 내일을 또 다시 살아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하는 전략이기도 할 것이다.내일을 살아내기 위해서는 쉬어야 한다.추석은 명절이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연휴다. 연달아 휴일이 있는 기간이다. 그 기간이 무려 4일이나 된다. 분명 이 기간을 더 격렬하게 더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부디 욕하지 말라. 오히려 그들의 힘든 삶과 그들이 받고 있는 스트레스에 공감해 달라.지난 명절즈음 나는 이런 생각으로 혼자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아무것도 안 하는 여행. 그래서 여행지를 중국의 싼야라는 곳으로 정했다. 왜냐하면 우선 가격이 합리적이었다. 닷새 동안 모든 스포츠 시설 이용과 식사가 무료였고, 심지어 음료나 술도 공짜였다. 또한 명절 한 주 전이어서 사람이 없었다. 물론 휴양지에 사람이 북적대는 맛이 있어야 하긴 하지만, 나의 궁극적인 목적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었으므로 사람이 적으면 적을수록 좋았다.나는 그곳에서, 영화에 나오는 한 장면처럼 수영장 벤치에 누워 칵테일을 마시며 하루를 보낼 생각이었다. 그 당시의 기록을 여기에 남긴다.△떠나기 전여름은 무더웠다. 일은 많았다. 많아도 많아도 지나치게 많았다. 어떻게 시간이 흐르는지 알 수 없었다. 밤 10시에 퇴근을 했고, 집 근처 카페에서 잔업을 마무리했다. 이르면 새벽 2시 늦으면 4시. 일이 끝나면 목욕탕으로 갔다. 따뜻한 물이 좋았다. 찬물도 좋았다. 집으로 돌아와 4시간을 자고 다시 아침 10시까지 출근을 했다. 이런 반복된 일상을 거의 40일 동안이나 유지했다.하여 나는 오늘 여행을 떠난다, 혼자.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아무런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닷새를 보낼 생각이다. 정말 아무것도 안할 수 있을까? 이 여행을 통해서 나는 알게 될 것이다. 나에게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나는 알게 될 것이다. 내가 그곳에서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일들, 그 모든 것들이 아무것도 아닌 일들일 것이다. 그 닷새를 경험하지 않았음에도 벌써 나는 알 수 있을 것 같다. 나에게 아무것도 아닌 일이란 결국 돈을 버는 일을 제외한 모든 일이 될 것이 틀림없다.△첫째 날 밤새벽 1시. 비행기는 미끄러지듯 공항에 착륙한다. 사람들이 내린다. 나를 리조트로 데리고 갈 사람이 있어야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 로밍을 하지 않아 전화를 할 수도 없고, 어디로 전화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다행히 밖에는 수많은 한국인 가이드들이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다. 그들은 익숙한 장면인지 나의 난감함을 눈치채고 리조트에 연락해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봐 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무사히 리조트에 도착한다.숙소를 안내받았다. 방은 내가 지냈던 어떤 호텔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넓다. 역시 대륙의 호텔답다. 발코니에는 욕조도 있다. 나는 짐도 풀기 전에 우선 욕조에 물을 받는다. 짐을 푼다. 나는 이곳에서 5일을 보낼 것이다. 침대에도 누워본다. 아무 것도 안할 것이라고 다시 다짐한다.△둘째 날9시에 일어났다. 더 잠을 자고 싶지만 아침식사가 10시까지고 10시에는 이곳에 소속된 한국인 가이드가 리조트 곳곳을 소개해주기로 했다. 여긴 정말 넓다. 그러니 알아둘 수밖에 없다. 휴양지답게 온갖 것이 다 있다. 수영장이 있고, 수영장에서 쭈욱 나아가면 해변이 있다. 수영장 바로 근처에는 공중그네라는 것을 탈 수 있다. 리조트 좌측에는 암벽등반을 할 수 있는 곳이 있고, 우측에는 헬스장이 있다. 그 외에 양궁, 자전거 투어, 요가, 태극권 등 온갖 스포츠를 할 수 있는 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그동안 운동을 못했으니 여기서라도 실컷 해야겠다고 생각한다.점심을 먹고 돌아와서 잠을 잔다. 자도 자도 계속해서 졸린다. 자전거 투어를 가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이내 잠든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태풍의 영향권 안에 있어서 카약, 윈드 서핑, 세일링과 같은 것은 할 수 없다고 한다. 늦게 일어나 수영장에서 잠깐 수영을 하다가 저녁을 먹는다. 마침 한국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그들은 모든 프로그램을 누리고 즐겨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렇지 않으면 돈이 아깝다고 한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방으로 돌아와 내일 할 계획을 짠다. 아침 7시에 일어나 밥을 먹고, 헬스를 한 뒤 9시에 있는 자전거 투어를 가야지. 점심을 먹은 후에는 수영을 하고 암벽 등반을 하고 6시에 태극권도 해야지. 이렇게 계획을 짜놓고 나니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 더욱 분명해진다. 돈이 들지 않고, 돈을 벌지 않는 일. 이것이 나에게 아무것도 아닌 일임이 분명하다.△셋째 날밤 사이 바람이 불고 비가 왔다. 40일 동안 쌓였던 피로가 이틀만에 풀릴 리 없다. 심지어 나는 출발하기 전 날에도 새벽 4시까지 야근을 했다. 그래도 본전 생각에 어제 짠 계획대로 움직여야 한다.조금 늦게 일어난 탓에 허겁지겁 밥을 먹는다. 헬스를 하고 자전거 투어를 하는 곳으로 갔지만 아무도 없다. 오늘은 비가 와서 일정이 취소되었다고 한다. 다시 헬스장으로 돌아와 운동을 하고 방으로 돌아와서 쓰러지듯 잠이 든다. 점심을 먹고 수영을 한다. 오늘은 오후 4시에 있는 자전거 투어를 꼭 가리라고 다짐한다. 2시부터 잠들었는데 일어나니 5시 30분이다. 내일 밤 12시에 떠나긴 하지만 오늘이 거의 마지막 날이지 않은가. 이곳은 밤마다 파티가 열린다. 어마어마하게 술을 마시고 취해버릴 것이다, 라고 마음먹는다. 하지만 저녁을 먹은 뒤 든 잠은 다음 날 9시까지 이어진다.▲ 공강일서울대 강사·국문학△넷째 날어영부영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벌써 떠나야한다. 오전 11시 체크 아웃은 정말 끔찍하다. 한 시간에 100위안, 1만6천천원이다. 눈물을 머금고 5시간을 연장한다. 나는 다시 잠을 청한다.길게만 느껴지던 4박 6일의 휴가가 꿈 같이 흘러내린다.아무것도 안하려고 갔지만, 정말 아무것도 안하고 잠만 자고 오게 될 줄은 몰랐다. 식사 메뉴를 고르지 않아도 되었고, 방을 청소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것 외에 내가 한 일이란 거의 자는 것 밖에 없었다. 이러려고 가긴 했지만 왠지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노는 데도 체력이 필요하다.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놀면 놀 수 있을 줄 알았다.그대여, 피곤함이 나와 같다면 어디 가지 말고 그냥 자라. 부디 이렇게 잠든 사람을 깨우지 말라. 그의 지친 육체를 이해해 달라.

2018-09-21

‘과학기술의 발전과 인류의 행복’에 대한 두 입장

△과학발전이 인류 행복 증진과학이 인류의 행복을 증진시켰다고 볼 수 있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과학기술은 그 분야 특성상 인류의 행복 증진에 기여한다. 인류의 행복이 증가해왔음을 주장하는 유엔의 2012 행복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지구에서의 삶은 평균적으로 볼 때 지난 500년 동안 폭력적이고 비참한 정도가 훨씬 감소했고 수명은 훨씬 늘어났다. 자살률의 감소와 평균수명의 증가가 이런 사실에 대한 증거이다.”이 보고서에서 행복 증가의 요인으로 가장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것은 인간의 수명연장이며, 이것은 과학기술, 구체적으로 의학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예컨대 과거 로마인의 평균 수명은 40세에 미치지 않았다. 하지만 현대인의 평균수명은 70∼80세로 이는 약 190% 증가한 수치이다. 이러한 인류의 수명이 극적으로 연장된 데에는, 과학기술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동시에 연장된 삶 속에서 과학기술은 과거 인류가 겪었던 수많은 질병으로부터 보호해주었다. 실제로 2008년 전세계 10대 사망 원인에 해당하던 결핵은 2011년 목록에서 완전히 사라졌다.비슷한 예로, 세계보건기구의 10대 사망 원인에 포함되어 있는 HIV/AIDS의 치료 역시 의약품의 개발로 급속도로 개선되어 왔다. 또한 이제는 어떤 암들은 예전처럼 사형선고가 아니라 치료 가능한 질병이 되었으며 실제로 지난 40년 동안 비호치킨성 림프종, 유방암, 대장암의 생존 기간은 극적으로 늘어났다. 긴 수명이 행복의 절대적인 요소이며, 행복에 직결되는 유일한 요소라고 믿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극적인 수명연장과 질병으로부터의 해방은 필연적으로 인류의 행복 증진에 일부분 기여해 온 것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둘째, 발전된 과학 기술은 열악한 작업환경으로부터 인류를 구제해 주었다. 폐품수거인, 지붕수리공, 원자력 발전소의 근무원과 같은 직업군들은 매년 수백명의 근로자의 목숨을 앗아갈 정도로 위험한 직업군이다. 다른 예로, 컨베이어 벨트위에서 하루에 8시간, 혹은 그 이상씩 앉아서 똑같은 단순 업무를 처리해야하는 직업으로부터는 직업적 보람을 얻기가 힘들다. 이렇듯 더럽고(dirty), 위험하고 (dangerous), 지루한(dull) 직업을 일컬어 3D 산업이라고 말한다. 3D 직업이 열악한 노동환경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3D 산업으로부터 고통 받아야 했던 이유는, 이 작업을 대체할 만한 새로운 기술이 없었기 때문이다.로봇공학은 이러한 일에서 인간을 해방시켜 더욱 의미 있으며, 고부가가치의 일에 참여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가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런 과학기술이 인류의 일자리를 빼앗아 간다고 하지만 그것은 결코 사실이 아니다. 이제 과학기술을 개발해낼, 훨씬 더 많은 인력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50년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현재에 등장한 수많은 직업군을 생각해내는 일은 어렵지 않다. 실제로 산업혁명 이후의 인류의 직업은 단 한 번도 감소한 적이 없다고 한다.이런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과학기술이 많은 의심과 회의를 마주하게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본능적으로 새롭게 나온 대상들을 두려워하는 경향 때문일 것이다. 처음 사진기가 나왔을 때 사람들은 사진을 찍으면 영혼을 빼앗긴다는 미신 때문에 사회에 받아들여지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고, 증기기관에 대한 사람들의 두려움과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아 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러다이트(Luddite) 운동과 같은 반달리즘적 행동을 보이기도 하였다.시험관 아기가 거론되었을 때 수많은 사회적 의심들과 윤리적 비난들을 생각해보라. 그러나 그러한 이유들 때문에 시험관 아기 기술이 불법화 되었더라면, 아이를 갖고 싶어했지만 신체적인 이유로 아이를 가질 수 없었던 많은 부부들은 시험관 아기 기술을 통해 아이를 얻은 지금보다 훨씬 더 불행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진기나 증기기관 역시 시험관 아기처럼 궁극적으로는 인류의 행복에 기여했다.우리는 두려움이라는 감정적 차원에서 벗어나 과학을 보다 이성적이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과학으로 인해 인류의 행복이 증진되었다는 것을 직시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과학이 이룩하고 있는 혁신을 이성적인 차원에서 바라보며, 그 과학기술을 무턱대고 비방하기보다는 이것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과학발전은 인류의 행복에 무 영향이에 반해 과학기술을 통해 인류는 결코 행복에 도달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두 가지 이유를 들고 있다. 첫째, 과학기술은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지 못한 채 늘 한 걸음 뒤처져 따라온다. 우리는 과학 기술이 고도로 발전된 미래에는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 번 착각한다. 인류는 그런 미래가 오기 전까지 스스로에게 불행을 ‘잠시’(결국 다시 잠시가 아니게 될 운명이지만) 참자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막상 그렇게 열망해왔던 과학기술이 현실이 되었을 때에, 인간의 욕망은 우리를 불만족한 상태로 이끌며, 새로운 과학기술을 요구한다. 물론 우리는 과거의 조상들에 비해 훨씬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다.그러나 한병철은 현대사회를 ‘피로사회’로 규정하며 현대인들은 만성적인 우울증과 피로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한다. 그가 열거하는 우울증,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경계성성격장애, 소진증후군과 같은 병리적 현상들이 현대인들의 피로한 삶을 대변해 준다. 우리는 이미 발전한 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는 자꾸만 앞을 내다보려고만 한다. 오로지 눈앞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허구의 (결코 부여잡을 수 없는) 행복의 기준점만 보며 달려가고 있을 뿐이다.▲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둘째, 과학기술 발전 속도만큼이나 행복의 기준 역시 복잡해진다. 과거 먼 길을 걸어 다녀야만 했던 우리 조상들은 뭔가를 타고 다닐 수 있으면 행복해지리라고 믿었다. 마차가 발명되자 당시 사람들은 자신들이 타고 다닐 수단이 좀 더 빠르다면 더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이제 1가구에 평균적으로 1. 2개의 자동차를 소유하는 21세기의 사람들은 과거의 조상들의 생각과는 달리 또 무엇인가를 갈구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봤을 때 마차를 타던 사람들도, 자동차를 타는 사람들도 행복하지 않고, 장담컨대 미래에 50가지의 기능을 탑재한 자동차가 나온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미래에 어떤 특정한 기술이 나온다면, 아니면 어떤 경우에는 그냥 막연히 시간이 흐른다면, 행복해지리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 믿었던 미래가 우리 앞에 도래하는 순간, 미래는 현재로 바뀌게 되고 동시에 새로운 미래가 나타난다. 그러면서 행복은 점점 미뤄져 간다.과학기술이 발전하는 만큼 행복의 기준도 그만큼 복잡해져서 궁극적으로 인류는 행복감을 채우기가 더 어렵게 된다. 빠르게 발전한 과학기술은 발전과 동시에 인간에게 행복해지기 위해 필요한 수많은 것들을 제시했다. 행복이라는 개념은 절대이지가 않아서 특정한 기술적 기준에 도달했을 때 쟁취해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설정하는 이 허구의 행복 기준들은 인류의 허영심과 욕심에 기반을 두고 있기에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는 인류는 행복을 위해 더 많은 것들을 바라게 된다. 결과적으로 봤을 때 이러한 기준은 나날이 복잡해 질 것이다. 그러기에 과학기술의 발전은 인류의 행복 증진에 기여하지 못할 뿐더러 오히려 행복의 기준을 필요 이상으로 복잡하게 제시함으로써, 인류가 행복이라는 상태에 더 도달하기 어렵게 만든다.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2018-09-14

유년의 기억-싸움과 미장원

△싸움과 모방유난히 싸움을 많이 했다. 워낙 시골학교여서 반 학생이 스무 명 남짓이었는데 그 중 남자들 열 명과는 거의 돌아가면서 싸웠다. 아이들이란 원래 영악해서 공부를 잘하거나, 키가 크거나, 터무니없이 잘 생긴 애들에겐 싸움을 걸지 않는 법이다. 나는 공부도 제일 잘 했고, 키도 컸다. 그런데도 매번 싸웠다. 외모가 문제였나?여튼 거의 모든 싸움에서 이겼지만, 친구들은 매번 나한테 얻어맞고도 싸움을 걸어왔다. 내가 정말 못된 놈이긴 했나보다. 뻔히 맞을 걸 알고도 덤볐으니 말이다. 극구 부인하자면 평소에 나는 다른 친구들과 친하게 지냈고, 인기투표를 해도 그렇게 뒤쳐지지 않았으니까 어쩌면 역으로 너무 착해서 친구들이 만만하게 봤는지도 모르겠다.어찌 되었건 싸울 때는 시끌벅적했다. 싸우는 당사자는 욕을 할 틈도 없이 다급했지만, 중계를 하는 놈, 웃는 놈, 함성을 지르는 놈들. 학교에서의 싸움이라는 게 대개는 십 분 밖에 안 되는 쉬는 시간에 일어났다. 싸움을 하는 나는 심각했겠지만, 친구들은 말리기보다는 진귀한 구경거리라도 되는 양 거의 관람 수준이었다. 어떤 녀석들은 권투 경기의 해설자처럼 싸움 중계를 하곤 했다. 장풍이라고 불렀던 ‘스트리트 파이터’ 게임이 유행하고부터는 ‘에너지 바’(energy bar)를 칠판에 그려놓고 누가 이기고 있는지를 시각화하는 녀석들도 있었다.대개 수업이 시작될 즈음에 싸움이 시작되었고, 수업이 시작할라치면 구경하는 녀석들도 너나 할 것 없이 달려들어 말렸다. 선생님이 알게 되면 이래저래 골치가 아팠으니까. 그래서 내 자리로 돌아와 앉아 있을 때는 분이 풀리지 않아 씩씩거리며 수업 끝나고 어디 두고 보자며 불끈 주먹을 쥐었다. 하지만 수업은 지루했고 한줌도 안 되는 분노는 눈녹듯 사라졌다.무엇보다 싸움을 이어갈 수가 없게 만드는 친구들이 있었다. 이 녀석들은 말이 친구지, 말리지는 않고, 싸움을 하는 우리가 했던 말을 따라하여 모든 상황을 희극적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면, 상대도 나도 피식 웃어버렸는데, 웃는 순간 모든 문제는 해결되어 버리곤 했다.조금 다르긴 하지만 ‘말죽거리 잔혹사’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우식(이정진)이 학교를 그만두게 되자, 비열한 종원(이종혁)은 우식이 없어지자 우식의 반 아이들을 괴롭힌다. 우식의 반이었던 현수(권상우)와 종원이 복도에서 마주친다. 종원이 “너 지금 꼬놔 봤냐? 인상 펴라”며 비웃듯 말한다. 배알이 꼴린 현수는 종원을 노려보고 종원은 이번엔 진짜 화가 나서 “눈 내리깔어!”라고 말한다.유하 감독이 대단한 건 다음 장면인데, 종원의 ‘꼬봉’들이 둘의 신경전을 흉내 내며 장난을 치는 장면인데, 유하는 이런 아이들의 심리를 정확히 붙잡아 내고 있다. 한 녀석이 종원처럼 “야 눈깔아! 인상펴라”고 말하면서 상대의 바짓단을 펴려 하면, “너도 뒈지고 싶냐”고 장난스레 너스레를 떤다. 정작 당사자인 현수는 분노를 쌓으며 종원과의 결전을 준비하지만 아이들은 남의 사정 따윈 신경쓰지 않는다.△미장원과 미장아빔엄마를 따라 미장원에 가는 것이 좋았다. 그곳엔 항상 수다스럽지만 친절한 아줌마들이 있었다. 친절한 아줌마들은 내게 과도한 관심을 보이긴 했지만 또 수다스럽기도 해서 오래도록 나를 괴롭히지는 않았다. 그네들에겐 그네들의 수다가 있었으니까. 엄마가 머리를 하는 동안 나는 앉아서 평소에는 사주지 않는 과자를 아귀아귀 먹으며 여전히 얌전히 앉아 있으면 그만이었다. 그래야 다음에 또 엄마를 따라갈 수 있어서였겠지만, 그래도 거울! 거울 때문이었노라고 애써 변명하고 싶다.그 따위 거울쯤은 우리집에도 있었지만, 미용실의 거울은 유난히 컸고, 그리고 또 맞은편에 그만한 크기의 거울이 있었다. 거울은 서로를 반영하며 내부로 이어졌는데, 거울 속의 거울이 몇 개인지를 몇 번이고 세 보았지만, 번번히 실패하고 말았다. 내가 더 자세히 보려고 이리저리 움직이면 그 반영은 사라져버렸으니까.머리를 바글바글 볶는 동안 칭얼대지 않는 아들이 대견스러운 엄마는 안 심심했니, 라고 물어보면, 나는 아니, 라고 짧게만 말했다. 내가 무뚝뚝해서 그랬던 건만은 아닌데, 내가 뭘하고 있었는지 설명을 하려고 해도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나는 거울들의 무한한 반영을 지칭하는 언어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언어가 것과 없다는 것, 그 답답함을 나는 이때부터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는지도 모른다.거울과 거울을 마주보게 할 때 무한히 서로를 반영하는 이 이미지를 미장아빔(mise en abyme)이라고 부른다.미장아빔은 표면들의 반영에 지나지 않지만 그 반영된 모습에는 어떤 깊이가 생긴다. 깊이도, 내면도, 심연도 없지만 이 단순한 표면이 그런 것들이 실제로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이러한 심연 없음, 이것이 우리의 삶인지도 모르겠다.‘달콤한 인생’에서 서로에게 상처받은 선우(이병헌)와 강 사장(김영철)은 서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그런 거 말고 진짜 이유를 말해봐.” ‘진짜 이유’는 심연에 상응할 것인데, ‘진짜 이유’라니….‘진짜 이유’ 따윈 없다는 것을 모르고, 모르고 그들은 자꾸 ‘진짜 이유’를 알려고 한다. 그들의 삶이 모래 위 누각이라는 것을 모르고 그들은 끝없이 ‘진짜 이유’를 찾아 길을 떠난다. 그런 길 떠남이, 미용실에서 반영되는 거울의 횟수를 세는 일곱 살 나의 행동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것을 모르고, 모르고 그들은 ‘진짜 이유’를 찾으러 갔다가 진짜 파탄만 안고 끝내는 돌아오지 못한다.심연은 하나의 가상이자, 물신이며, 심연에의 추구는 파국에 이르는 가장 무서운 질병이다. 이것이 소위 느와르라 불리는 영화의 특성이기도 하다. 미장아빔이 만들어내는 이 무한한 반영 속에서 심연을 쫓거나 좇는 일은 허망하며, 위험하다. 그러니 심연이라는 하나의 가상을 찾기 위해 애쓰기보다는 미장아빔을 정지시키는 방법을 찾는 것이 현명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공강일서울대 강사·국문학이러한 표면 작용을 정지시키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우선 반영되는 거울 사이에 정면으로 마주서면 된다. 말이 쉽지 거울의 정면을 보는 일은 얼마나 부담스러운가. 표면의 무한한 반영은 자동적인 방식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파국은 의지적이라기보다는 자동적이다. 그러니 거울에 맞서는 일보다 자동적으로 이뤄지는 ‘파국’에 이르는 것이 더 쉽다.또 다른 방법은 마주 선 두 개의 거울 중 하나를 제거하는 것이다. 거울이 세계라면 그것을 어떻게 깨뜨릴 수 있겠는가. 하지만 세계는 사건들 속에서 언제든 파괴될 위험에 직면해 있다.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의 세계가 다르듯이 말이다. 그렇게 큰 것도 사건이지만, 우리에게 일어나는 아주 사소한 것 역시 사건이 될 수 있다. 벽에 걸어놓은 거울이 어느 날 갑자기 떨어질 수도 있는 법, 세계의 붕괴는 그런 작은 일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2018-09-07

영화 ‘우리 선희’에게 부쳐

2011년 개봉한 ‘북촌방향’에서 중원(김의성)은 영호(김상중)와 예전(김보경)과 술을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 그들은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중원 : 내가 말예요, 내가 관상에 대해서는 진짜 아무 것도 모르거든요. 완전 엉터리예요. 근데 사람들한테 그 뭐라 그럴까, 그 양쪽 극단을 딱 집어주잖아요. 그럼 사람들이 다 넘어와요. 예를 들어서 내가 여자들한테 그러거든, ‘당신은 그 겉으로 보기엔 아주 외향적인 아주 밝은 성격 같지만, 그 마음 깊은 곳에는 아주 우울하고 슬픈 그런 걸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에요.’ 이렇게 말하면, 어떻게 아셨어요. 그게 바로 나예요. 어머 어머머 정말 맞다. 이런 식으로 나오거든 그러니까 극단을 짚어주면 믿게 돼 있어.영호 : 사람이 원래 안(내면)에 극단이 있는 거지. 그런데 넘어가는 게 그래서 그런 거야.중원 : 그렇 테니까….예전 : 그면은 전 어때요? 전 어떤 사람 같아요?중원 : 아, 글쎄 제가 관상을 잘 볼 줄은 모르지만겉보기에는 아주 깔끔하고 실용적인 그런 사람 같지만 속 깊은 데는 지나치게 감상적인 면이 있는 사람 아닌가? 뭐 그런 것 같은데, 아닌가?나 진짜 그런데, 어머 소름끼쳐. 아, 저 정말 그래요. 정말 이거 이상하다.중원은 관상이 지닌 메커니즘을 말하고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양극단을 가지고 있고, 그 극단을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그것이 바로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중원의 개똥철학이면서 여성을 낚는 방법이다. 예전은 이 이야기의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 채 자신의 관상을 봐 달라고 이야기한다. 중원은 다시 그 극단을 말한다. 중원의 말에 예전은 자신이 딱 그런 사람이라며 박수까지 치며 신기해한다.2013년에 개봉한 ‘우리 선희’는 중원이 말한 관상의 메커니즘을 재인용하면서 이를 확장하고 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문수(이선균), 최교수(김상중), 재학(정재영)은 한 여자를 좋아한다. 그 여자가 선희(정유미)다. 선희를 좋아하는 이유는 ‘순수하고 내성적이지만, 용감한 면이 있으면서 조금 또라이 같지만, 착하고 안목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순수와 내성적임의 극단에 용감과 또라이가 있고, 다시 용감과 또라이의 극단에 착함과 뛰어난 안목이 놓여 있다. 즉 이들이 좋아하는 선희는 내성적이고 착하지만 용감하다 못해 또라이 같은 기질 역시 가지고 있다. ‘북촌방향’에서 중원과 영호는 ‘사람은 누구나 내면에 양극단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말을 신뢰한다면, 이들이 좋아하는 선희는 꼭 선희가 아니어도 무방하다. 왜? 모든 사람은 양극단을 가지고 있으니까.선희는 미국으로 유학을 가려고 한다. 유학을 가려는 이유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기 위해서다. “만약 외국 가게 되면 맘 먹고 깊이 파보려구요.” 그런데 무엇을 깊이 파겠다는 말일까? 선희는 그것이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는다. 다만 그렇게 파는 이유 혹은 목적은 분명하다. “깊이 깊이 파다보면 제가 누군지 알 수 있을 것 같아요.”그러니까 선희가 유학을 가려는 이유는 자신을 알기 위해서다. 그러하다면 꼭 유학을 가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유학은 핑계일 뿐이다. 선희는 그냥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싶었던 것. 그래서 세 명의 남자를 찾아간다. 모두 자신이 다니는 대학의 영화과에서 인정받는 남자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심지어 서로 친하다. 아니 친하다고 믿고 있는 남자들이다.남자1은 대학원에 다니면서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문수, 남자2는 영화과의 교수이자 이 세 명의 남자들 중 나이가 가장 많은 최교수, 마지막으로 남자3은 한 때 총망 받던 영화감독 재학이다. 하지만 이 세 남자들은 선희를 이렇게 생각한다.순수하고 내성적이지만, 용감한 면이 있으면서 조금 또라이 같지만, 착하고 안목이 뛰어난 안목을 가진 사람선희는 ‘북촌방향’의 예전과는 달리 이 말의 의미를 너무도 분명히 알고 있다. 저 말을 믿었다면 선희는 예전처럼 세 남자 중 누군가에게 마음을 주었을 것이다. 선희는 오히려 방황한다. 그렇다면 그 방황의 방식은? 이 영화에 삽입된 장면들을 통해서 이를 짐작할 수 있다.장면 1이 영화의 첫 장면은 상우(이민우)를 만나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여기에서 선희의 방황을 어렴풋이 알 수 있다. 상우는 선희에게 최교수가 외국 출장을 갔다고 말하면서 선희와 데이트를 하기를 원한다. 선희는 그런 상우의 요청을 바쁘다는 이유로 거절한다. 그렇다면 선희는 왜 바쁜 것일까? ‘어디’에 갈 때가 있어서다. 그 ‘어디’는 구체성을 띠지 않은 채 ‘어디’로만 존재한다. 그렇게 선희는 우연히 학교 교정에서 최교수를 만나, 유학 갈 학교에 제출할 추천서를 부탁하게 된다.장면 2그렇게 최교수와 헤어진 선희는 다시 ‘어디’를 간다. 그곳은 ‘어디’였을 뿐이었고, 선희는 그 ‘어디’를 치킨집으로 정했다. 그리고 거기에서 ‘누구’를 만난다. 그 ‘누구’는 전 남자친구였던 문수였다. 만약 그 횡단보도로 상우가 먼저 건너왔다면 선희는 상우를 만났을 지도 모른다.장면 3선희와 헤어진 후 문수는 재학을 만나기 위해 찾아간다. 재학은 전화조차 꺼놓았다. 문수는 재학의 오피스텔 앞에서 재학의 이름을 목청껏 부른다. 재학은 어쩔 수없이 창문을 열고 문수를 바라본다. 재학의 방에서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지만 문수는 거절한다. 왜? 왜냐하면 재학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냥 ‘무엇’일 뿐, 그 무엇도 아니다. 재학이 최교수에게 전화를 했을 때, 그리고 문수가 선희에게 전화를 했을 때, 최교수는 선희를 만나고 있었다. 하지만 최교수는 재학에게, 선희는 문수에게, 답한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다고……그렇다면 선희의 방황의 형식은 분명해진다. 선희는 ‘어디’를 가게 될 것이고,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어디’, ‘누구’, ‘무엇’의 실체는 끝끝내 드러나지 않는다. 선희를 비롯한 세 명의 남자 역시 삶의 방향도 목적도 의미도 없다. 우리도 이와 그렇게 다르지 않는다. 문수와 술을 먹던 재학이 했던 대사는 우리도 곧잘 하는 말이 아닌가.▲ 공강일서울대 강사·국문학“끝까지 파봐야…. 끝까지 이렇게 파봐야 가는 거고, 끝까지 파봐야 가는 거고, 끝까지 파고 가고, 끝까지 파고 가야 나를 아는 거잖아요? 그리고 파고 끝까지 가고, 그래서……, 끝까지 파고 가고….”그들이 파려고 하는 ‘무엇’은 그들의 내면이며, 그들이 가고자 하는 ‘어디’는 그 내면의 끝이며, 그들이 만나고자 하는 ‘누구’는 자기 자신이다. 하지만 재학의 대사는 여기에서 끝나지 ‘그리고’ 다시 파고 ‘그래서’ 가야한다. 이제 다시 ‘무엇’을 파는지, ‘어디’로 가는지 ‘누구’를 만나야 하는지…. 그 무엇과 어디와 누구가 정해져 있지 않은 삶, 이것은 홍상수 영화에 국한된 저 비루한 남자들만의 삶이 아닐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삶일 것이며, 비루한 이 시대의 삶일 것이다. 그리하여 홍상수의 영화는 이 시대의 비극이다.

2018-08-31

자작나무를 타다

1. 군 입대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리를 다치고 통합병원에 입원을 하고 있을 때였다. 할 수 있는 일은 휠체어를 타고 밖에 나와 담배를 피우거나, 책을 읽는 일이었다. 아마 그 때가 고등학교 이후 가장 많이 책을 읽었던 때인 것 같다. 석달 정도 병원에 머물면서 60권 정도의 책을 봤으니, 그 무료함이란 말할 나위 없었다. 그 때 보았던 책이 김연의 ‘나도 한때는 자작나무를 탔다’였다. 그 내용은 자세히 기억나지 않으나 공지영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와 비슷한 유의 소설이었던 것 같았다는 느낌이 전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은 것은 제목 때문이었는데 ‘자작나무’라는 말 때문이 아니었을까 한다. 자작나무…. 발음하면 할수록 주문이 걸린 듯 자꾸 발음하게 된다. 그럴싸한 제목의 책이 그렇듯 자작나무 배경이 들어가는 장소는 나오지 않는다. 나는 꽤나 오랫동안 궁금하였다. 자작나무가 어떻게 생겼을까를 막연히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병원에 있을때 여름 태풍이 왔다. 내가 있던 병실은 병원의 뒷산이 보이는 전망 좋은 곳이었다. 병실에 누워 바람에 내몰리는 나무들을 보며 내 삶과 내 이상을 되새김질하였다. ‘나도 한때는 자작나무를 탔다’의 책 표지에 실린 나무의 실루엣을 미루어 볼 때 자작나무와 미루나무는 많이 닮았다. 그래서였을까. 그 많던 나무들 중 가장 내 눈길을 끌었던 것은 미루나무였다. 미루나무는 연록의 연약한 잎을 흔들었는데, 미루나무의 나뭇잎은 뒷면에 흰 가루 같은 것이 묻어있어서 잎을 흔들 때마다 반짝이며 말을 거는 듯했다. 그렇게 건네는 말을 하나도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말은 반짝였다. 그 반짝임이 잊혀지지 않아 바람이 몹시 부는 날은 미루나무를 자연스레 떠올리곤 했다.나는 미루나무를 오랫동안 보았는데 프로스트는 자작나무를 오랫동안 보았나 보다. ‘자작나무’라는 시는 자작나무만큼이나 길다. 그 부분은 이렇다.“나무들은 얼음 무게에 못 이겨 / 말라붙은 고사리에 끝이 닿도록 휘어지지만부러지지는 않을 것 같다. /…중략…얼음 사태가 나무를 휘게 했다는 사실로 / 나는 진실을 말하려고 했지만그래도 나는 소를 데리러 나왔던 아이가/ 나무들을 휘어 놓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다.시골구석에 살기 때문에 야구도 못 배우고 / 스스로 만들어낸 장난을 할 뿐이며여름이나 겨울이나 혼자 노는 어떤 소년 / 아버지가 키우는 나무들 하나씩 타고 오르며가지가 다 휠 때까지 / 나무들이 모두 축 늘어질 때까지되풀이 오르내리며 정복하는 소년 / 그리하여 그는 나무에 성급히 기어오르지 않는 법을그래서 나무를 뿌리째 뽑지 않는 법을 배웠을 것이다 / 그는 언제나 나무 꼭대기로 기어오를 자세를 취하고우리가 잔을 찰찰 넘치게 채울 때 그렇듯 / 조심스럽게 기어오른다.그리고는 몸을 날려, 발이 먼저 닿도록 하면서 / 휙 하고 바람을 가르며 땅으로 뛰어 내린다나도 한때는 그렇게 자작나무를 휘어잡던 소년이었다.그래서 나는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 걱정이 많아지고 / 인생이 정말 길 없는 숲 같아서얼굴이 거미줄에 걸려 얼얼하고 근지러울 때 / 그리고 작은 가지가 눈을 때려한 쪽 눈에서 눈물이 날 때면 / 더욱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진다.”그래서 겨울날 자작나무가 얼음을 털어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나 보다. 프로스트는 자작나무를 사랑해서 구부러진 자작나무를 보며, 한 번도 만난적 없는 소년을 떠올리고,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소년의 놀이를 상상할 수 있었나 보다. 그리고 자신이 어렸을 적하고 놀았던 그 자작나무 타기를 떠올렸으리라.프로스트뿐만 아니라 많이 사람들이 하고 놀았을 자작나무 타기는 이제 올곧이 프로스트의 놀이로 귀결되고 자작나무는 올곧이 프로스트의 나무가 되어버렸다. 우리가 진달래를 볼 때면 김소월을 떠올리고 메밀꽃을 볼 때면 이효석을 떠올리듯 자작나무를 볼 때 우리는 프로스트를 생각하게 된다.2. 1964년 12월에 태어난 김광석의 노래 중 내가 좋아하는 노래는 ‘그대 웃음소리’다. 이 노래는 그가 고등학교 때 지은 노래라고 한다. 그런데 김광석은 서른 세 해를 살아 스스로 죽었다. 내 생각에 그가 스스로를 죽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반복이 갖는 고통 때문이지 않았을까. 고등학교 때 만든 노래와 그 이후 만든 노래의 스타일에 변화가 없다. 하나의 스타일로 절정에 오른 그는 더 이상 이룰 것이 없었고, 그래서 죽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닐까. 이상이 요절하고, 김소월이 죽고, 모차르트가 죽고, 고흐가 죽고 그 모든 것들도 이런 것과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삶은 절정을 향해 달려가고 그 절정에 인간은 누구든 머무른다.그 절정을 누구는 빨리 갖고 누구는 늦게 갖는다. 그래서 사람은 빨리 죽기도 하며 늦게 죽기도 한다. 절정에 이르고 난 후 새로운 시작의 출발점을 찾지 못하면 그것에서 끝난다는 것은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예술, 좁게는 문학을 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전 삶을 통해 하나의 형식을 창조하는 듯 하다. 이상의 시와 소설은 하나의 형식을 견지했고, 몰리에르가, 체홉이, 카프카가, 고골리가, 보르헤스가 그러했다. 하나의 형식을 발견한다는 것, 그것이 예술가의 절정일 것이다. 그 형식을 발견했을 때 예술가는 가장 행복할 것이나, 그 형식에서 벗어날 수 없을 때, 그 형식은 도리어 목을 죄여올 것이다. 이 얼마나 우울한 무서운 일인가. 프로스트는 이렇게 말한다.이 세상을 잠시 떠났다가 I‘d like to get away from earth awhile다시 와서 새 출발을 하고 싶어진다. And then come back to it and being over▲ 공강일서울대 강사·국문학당찬 프로스트는 절정에 이르렀다가 되돌아오길 바란다. 나 역시 삶의 절정에 이르렀을 때 다시 시작하고 싶다. 예순에 사랑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한 김광석은 죽어버렸고, 아직 아무 것도 이룬 것이 없는 나지만, 절정에 이르렀을 때 또 다시 시작할 수 있길 바란다. 다른 사람의 삶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몇 개의 유사점 혹은 몇 개의 공식이 있다. 그것은 운명 같은 것일 수도 있으며 법칙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내 삶이 올곧이 내 것이길 갈망한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2018-08-24

‘지금 여기’에서의 혁명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는 삶‘카모메 식당’이라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는 사치에가 핀란드에 도착하여 카모메 식당을 열고, 이곳에서 각자의 사연을 가진 미도리, 마사코를 만나 그들과 함께 식당을 운영해 간다는 소박한 이야기다. 영화는 이들이 왜 일본을 떠났는가에 크게 주목하지 않는 것처럼 왜 하필 핀란드를 선택했는가 역시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다. 그렇지만 딱 한 번 그 이유에 대해 묻는 장면이 나온다.이 식당을 처음 방문한 마사코가 커피를 마시며 던진 질문이 그것이다. 마사코는 식당을 휙 둘러본 후, 사치에와 미도리에게 “당신들은 여기서 어떻게 식당을 하실 생각을 하셨어요?” 라고 묻는다. 미도리는 자신이 주인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다는 식으로, 사치에는 멋진 남자를 만나기 위해서라는 반농담으로 질문을 회피한다.마사코는 그들에게 웃음을 지어보이며 “원하는 일을 한다는 것이 정말 부럽군요.”라고 지나가듯 말을 던진다. 그러자 사치에는 마사코의 말을 얼른 받아 정정한다. “아뇨, 그저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뿐이죠.” 그 말을 들은 마사코는 순간 날카로운 표정을 짓는다. 바로 이 장면, 사치에와 마사코가 주고받는 대화가 이 영화의 가장 난해한 부분인 동시에 영화 전체의 메시지를 포함하고 있는 부분일 것이다.‘원하는 일을 하는 삶’과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는 삶’은 동의어처럼 들린다. 그러나 그 말의 방향은 같지 않다. ‘원하는 일을 하는 삶’이란 삶에 어떤 목적이나 목표를 가지는 삶을 말한다. 그러한 목적과 목표에 자신의 삶을 맞춰 나갈 때 비로소 원하는 삶이 될 수 있다.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싫어하는 것을 해야 한다. 따라서 ‘원하는 일을 하는 삶’이란 싫은 것을 무릅쓰는 삶이며, 그 목적에 맞춰 자신의 삶을 희생하는 삶이다.이와 반대로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는 삶’은 그러한 목적이나 목표를 염두에 두지 않는 삶일 것이다. 삶의 목적이 사라진다고 해서 이것이 곧 절망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목적 때문에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기 때문에 살아간다. 사치에가 말하는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는’ 삶이란 목적이나 목표가 중심이 아닌 삶이다. 삶 그대로에 열중하는 하는 삶이며, 목적이라는 것에 함몰되지 않는 자신의 삶 자체를 살아가는 삶이다. 그러할 때 피조물인 우리는 삶 그 자체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삶의 형식 속에서 납짝해지는 삶이 아니라 삶이 곧 형식이 되는 그러한 삶, 삶이 올곧이 자신의 삶이 가능해진다. 그로부터 등질적이고 균질한 삶에서 벗어나 유일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추상노동과 유용노동문제는 이러한 반란이 왜 여기가 아닌 저기에서, 일본이 아닌 핀란드에서야 가능한 것처럼 그려지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카모메 식당’만의 문제는 아니다. 소로(Henry David Thoreau) 역시 월든(Walden)의 호숫가에서야 자본주의적 제도의 문제를 깊이 있게 통찰할 수 있었다(‘월든’). 김씨는 밤섬에 표류해서야 자본주의와 단절한 삶을 살 수 있게 되며(‘김씨 표류기’), 최해갑 역시 남쪽의 섬에 정착한 후에야 국가체제와 공권력에 맞서 본격적으로 저항하게 된다(‘남쪽으로 튀어’).왜 여기가 아니고 저기인가.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는 이러한 변혁이, 반란이, 혁명이 가능할 수 있을까? ‘크랙 캐피털리즘’의 저자 존 할러웨이(John Holloway)는 분배된 균일한 시간을 거부하는 일은 자본의 논리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엄’을 실현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살인하기를 거부하는 병사의 저항과 같으며, 오늘 일을 쉬고 공원으로 책을 읽는 소녀의 일상적 행위와도 같다. 이들의 행동은 자본과 국가가 강요하는 ‘추상노동’이 아닌 ‘유용노동’(‘행위’)이다.‘추상노동’이란 ‘유용노동’이 추상된 일정한 노동량으로 단지 양적으로 전이됨으로써 생겨난다. 할러웨이는 ‘추상노동’과 ‘유동노동’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나는 케이크를 굽는다. 나는 케이크를 굽는 것을 즐긴다. 나는 그것을 먹기를 즐긴다. 나는 내 친구들과 그것을 나누는 것을 즐긴다. 나는 내가 만든 케이크를 자랑한다. 그러고 나서 나는 케이크를 구우면서 살겠노라고 결심한다. 나는 케이크를 굽고 그것들을 시장에 내다 판다. 점차 케이크는 내가 살기에 충분한 소득을 얻는 수단이 된다. 내가 그것을 팔기에 충분히 낮은 가격을 유지할 수 있기 위해, 나는 일정한 속도와 일정한 방식으로 케이크를 생산해야 한다. 즐김은 더 이상 그 과정의 일부가 아니다. 얼마 후에 나는 내가 충분한 돈을 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나는 케이크 만들기가 어쨌든 하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고 충분한 돈을 벌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이상, 더 잘 팔릴 다른 뭔가를 만들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나의 행위는 그 내용과는 완전히 무관하게 되었다. 그것은 구체적 특징으로부터의 완전한 추상이었다. 내가 생산하는 대상은 이제 나로부터 완전히 소외되어서 나는 이제 그것이 팔리는 한에서는 그것이 케이크인지 쥐약인지 상관하지 않는다”(146~147면).케이크를 굽고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이것을 함께 나눠 먹을 때까지, 그리고 이것을 팔아서 수익을 얻을 때까지도 이 노동에는 목적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목적과 수단에 구분이 없었다. 여기까지가 ‘유용노동’(‘행위’)이라 불릴 만한 것이다.하지만 케이크를 굽는 것이 삶에 충분한 소득을 얻는 수단으로 변해 버릴 때, 그러니까 더 많은 잉여가치를 만들어 내려할 때, 케이크를 굽고 즐겼던 그 수단과 목적의 행복한 조화는 파괴 되고 만다. 케이크를 굽는 행위와 그 행위의 내용과는 무관한 화폐가 목적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이것이 ‘추상노동’이며, 자본주의하에서 우리의 삶의 방식이다.‘카모메 식당’의 사치에는 돈을 벌기 위해 일하지 않는다. 그들은 돈보다는 식당에서 일하는 것을 즐긴다. 이들의 삶은 ‘행위’이며 동시에 ‘반란’이라 할 수 있다. ‘추상노동’에 기반한 “자본주의는 우리에게서 기획과 수행의 통일성을, 목적과 행위의 통일성을 빼앗는다. 그러므로 그것은 우리에게서 우리의 고유한 인간성을 빼앗는다.”(‘크랙 캐피탈리즘’, 147면)사치에, 소로, 김씨, 최해갑은 ‘추상노동’을 거부한다. 그리고 자신의 존엄을 찾기 위해 나아간다. 그런 점에서 이들의 행동은 ‘행위’이며 ‘반란’이자 ‘혁명’이다. 문제는 이러한 혁명이 나에게서 끝나지 않고 흘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혁명의 규모를 평가해서는 안 되며, 그 흐름을 인위적으로 만드는 제도를 구축해서도 안 된다.▲ 공강일서울대 강사·국문학△균열시키고 거부하고 창조하라현실은 늘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다. 현실은 우리의 인식의 범주를 늘 벗어나 존재한다. 한국의 프로게이머는 프로그래머가 생각지 못한 방식으로 길을 뚫는다. 이를 테면, 프로게이머는 ‘드론 비비기’를 통해 프로그래머가 막아 놓은 길을 교묘하게 조작하여 그 막힌 부분을 투과해버린다. ‘영의 이중 슬릿 실험’(Young’s double-slit experiment)에서처럼 파동의 성질을 보이던 전자는, 관찰자라는 매개 변수가 끼어들면 입자의 성질을 보인다. 이러한 자연 혹은 사건들은 우리의 인식의 범위를 초과한 형태로 존재한다.우리의 혁명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의 ‘존엄’은, 우리의 ‘행위’는 ‘추상노동’ 위로 흘러넘친다. 그러한 흘러넘침은 정식화될 수 없다. 혁명은 이 세계의 강렬도와 관계 맺는 방식에 따라 규정할 수 없는 형태로 분출한다. 그러니 이것을 어떻게 제도화하고 정식화할 수 있겠는가! 혁명을 제도화는 일은 사랑의 시간을 결혼의 시간으로 전이시키는 일과 같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고 해야만 하는 일은 균열시키고 거부하고 창조하는 일이다.

2018-08-17

바람이 그림자를 흔들다

귀유광(1506∼1571)은 명나라 때 사람이다. 과거에 무려 여덟 번이나 떨어졌고 예순에 비로소 진사가 되어 벼슬길에 나갈 수 있었다고 한다. 그전까지 사숙을 열어 시와 도를 논하였는데, 학생만도 1천여 명이 되었다고 한다. 유명한 글로는 ‘선비사략’과 ‘사자정기’ 등이 있다. 과거를 회상하거나 가까웠던 사람들을 애도하는 산문을 많이 남겼는데, 그의 글들은 사실성을 바탕으로 풍부한 감정을 드러낸다.‘항척헌지’는 귀유광이 기거했던 ‘항척헌’이라는 자신의 쪽방을 소재로 하고 있다. 그 쪽방의 경치, 어머니, 할머니, 그리고 그의 아내에 대한 추억들로 가득한데, 그 추억은 애정과 눈물들과 더불어 켜켜이 쌓여 있다. 먼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 그의 예민한 감수성을 알 수 있을 것이다.“집에는 늙은 할멈이 있었는데, 일찍이 여기에서 살았다. 할멈은 돌아가신 할머니의 시녀였다. 두 대에 걸쳐 유모를 하고 있었기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그녀를 각별히 대우하였다. 집 서쪽은 여자들이 기거하는 규방으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할멈은 어머니가 머물렀던 곳을 일일이 가리키며 이렇게 말하였다.“도련님의 어머니가 바로 여기에 서 계셨지요.”할멈은 또,“도련님의 누이가 제게 안기어 앙앙 울면 도련님 어머니가 문을 두드리며 ‘아가, 추우냐? 배가 고프냐?’ 하셨답니다. 그러면 제가 문 뒤에서 답을 올렸지요.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내가 울면, 할멈이 따라 울었다.”귀유광은 어머니를 일찍 여위었나 보다. ‘할멈’이 들려주는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기실 아무것도 아니다. 어머니가 잠깐 들러 ‘아가 추우냐, 배가 고프냐?’라고 물은 것이 다. 그럼에도 귀유광은 서럽게 울었을 것이다. 감성이 풍부한 귀유광은 이 단순한 대사 속에서 어머니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금세 알았던 것이리라. 어머니를 일찍 여윈 귀유광은, 어머니 이야기만 나오면 슬펐을 것이고, 그런 그를 내 마음 역시도 짠하게 저려 온다.이것은 아내와의 추억에 관한 것이다.“(내가 뜻을 품고 항척헌에서 지낸 지) 다섯 해 뒤에 내 아내가 시집왔다. 때로 방안으로 와 내게 옛 일을 묻거나 혹 책상에 기대어 글을 읽었다. 내 아내가 친정으로 가면 여러 여동생들이 ‘듣자니 언니 집에는 문간방이 있다고 하던데, 또 문간방은 뭐예요?’라고 물었던 것을 얘기해 주었다. 그 후 6년이 지나 내 아내는 죽고, 집은 무너졌지만 수리하지 않았다.”이 짧은 이야기 속에 그가 아내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 수 있다. 아내가 비스듬히 누워 애교 섞인 목소리로 옛일을 물으면 귀유광은 추억 속에 잠기어 느릿느릿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것이다. 그렇게 사랑했던 아내가 죽었을 때 그는 얼마나 슬펐을까. 왜 그가 사랑했던 여자들은 그토록 일찍 죽어야 했던 것일까.이렇게 보자면 항척헌은 자신보다 먼저 죽은 어머니, 할머니, 아내에 대한 애도인지도 모른다. 또한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자신에 대한 조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 슬픔은 수백 년이 지나도 소진되지 않고 지금 우리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다.그런데 이 글에서 귀유광이 추억하는 것은, 잊을 수 없을 만큼 충격적이거나 대단한 것이 아니다. 매우 사소하고 평범한 것들, 언제든 잊어버려도 그만인 것들이다. 여기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다. 언제든 잊어버려도 그만인 사소한 것들을 기억한다면, 역설적으로 그는 이 항척헌과 관련된 혹은 그의 어머니, 할머니, 아내와 관련된 얼마나 더 많은 기억들까지도 잊지 않고 있단 말인가. 보잘 것 없는 것을 드러냄으로써 그리고 그 보잘 것 없어 보이는 것까지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면, 그 너머에는 더 많은 추억들이 아로 새겨 있을 것이다.2.내가 이 글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 문장과 관계되어 있다.“깊은 밤중에 밝은 달이 담장에 반쯤 걸리면 계수나무가 알록달록 그림자를 만든다. 바람이 그 그림자를 옮겨놓을 때 살랑거리는 소리가 좋았다(三五之夜, 明月半牆, 桂影斑駁, 風移影動, 珊珊可愛。).”여기에서 특히 좋아하는 부분은 ‘바람이 그림자를 흔들다(風移影動)’이다. 그림자는 움직일 수 있는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빛이 투과하지 못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림자는 물질임에도 비물질에 가까워서 우리가 잡으려고 애써도 잡을 수 없다. 바람이 그림자를 움직일 수는 없다. 사실 이 말은 바람이 불어 나뭇잎을 흔들었고, 그러자 그림자가 움직였다는 말이다. ‘풍이영동’이라는 말은 나뭇잎이라는 매개를 지워버림으로써 인과법칙을 내파하여 바람은 그림자로 직결시킴으로써 우리의 인식 너머로 솟구친다.바로 여기에 문학적 표현이 있고, 문학의 정수가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문학은 우리의 이성과 논리가 닿을 수 없는 곳까지 나아갈 수 있다. 문학은 우리의 이성 너머로 더 너머로 무수히 도약한다. 하여 문학은 멈추지 않는다. 우리는 늘 인식 너머를 지향하니까.▲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3.바람이 그림자를 흔들다, 라는 말을 수학공식처럼 사용하여 ‘항척헌지’ 전체를 해석해볼 수 있다. 우선 바람의 자리에 항척헌을 대입한다. 그런 후 그림자에 해당하는 것을 찾으면 된다. 이것을 이렇게 바꾸어 말할 수 있다. ‘바람 : 그림자=항척헌 : X’항척헌을 추억함으로써 떠올린 것은 그 공간보다는 어머니, 아내, 할머니 등등 주로 사람들이었다. 그렇다면 항척헌을 통해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들을 떠올렸다, 라고 한다면 바람이 나뭇잎을 흔들었다, 의 수준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그림자까지를 흔드는 건너뜀의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항척헌을 통해 떠올린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 항척헌을 둘러싼 사람들,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들, 그런 것들을 상실한 귀유광일 것이다.이 글의 마지막은 다음과 같다.“그러나 이후로 내가 밖에 많이 있어서 항상 거처하지 못했다. 지금 뜰에는 내 아내가 죽던 해에 손수 심은 비파나무가 자라고 있을 것이다. 지금 무성하게 우뚝서서 그곳을 덮고 있으리라.”귀유광은 자신의 외로움과 쓸쓸함의 깊이를 저 비파나무로, 그 외로움과 쓸쓸함의 두께를 비파나무 잎의 무성함으로 옮겨 놓고 있다.아, 어찌 그의 글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2018-08-10

한국의 슈퍼히어로 홍길동

△한국인이 사랑하는 홍길동우리가 잘 알고 있는 홍길동은 허균의 소설 ‘홍길동전’에 등장하는 가상의 인물이다. 양반가의 서자로 태어난 홍길동은 벼슬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불만을 품고 가출을 단행한다. 한 도인으로부터 도술을 배워 ‘활빈당’의 우두머리가 된다. 활빈당은 매관매직을 일삼는 관리와 양반들의 재산을 몰수하여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의적이다. 홍길동의 이런 행태는 조선을 흔들고 왕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된다. 왕은 홍길동을 잡으려 동분서주하지만, 그의 신출귀몰한 신통력 때문에 번번히 실패하고 만다.보다못한 신하가 홍길동에게 병조판서 벼슬을 주고, 그것을 받으러 왔을 때 잡자는 간교한 꾀를 낸다. 홍길동은 벼슬을 받는 것이 소원이긴 했지만, 정작 벼슬을 할 생각은 없었다. 서자여서 관직에 오를 수 없는 자신의 서러움을 벼슬을 통해 씻어버리고자 했을 뿐이다. 이미 궁궐의 속셈을 훤히 눈치챈 홍길동은 벼슬만 챙긴 채 조선을 떠난다. 그 뒤 홍길동은 율도국을 정벌하고 이상국을 세운다.‘홍길동전’은 조선사회의 모순을 비판하는 듯하더니 어느새 도적떼의 활극을 그려 통쾌함을 자아내며, 식민지 국가 건설이라는 자못 방대한 스케일을 연출하기도 한다.홍길동은 당대의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고 오늘날까지 그 이름은 사랑받고 있다. 다양한 문서의 서식란에 쓰인 이름은 김갑돌, 이아무개보다 ‘홍길동’일 때가 월등히 많다는 것이 그 증거다. 관아와 궁궐을 풍비박산냈던 홍길동이, 오늘날 관공서의 서식란에서 출몰한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전라남도 장성군의 홍길동때로 홍길동은 실존인물인 것처럼 착각이 들 정도다. 아닌 게 아니라 1997년 강원도 강릉시와 전라남도 장성군에서 때아닌 ‘홍길동 고향’ 논쟁이 벌어졌다. 이 때는 지역마다 축제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한창일 때여서 서로 홍길동을 선점하여 지역의 상징물로 삼고 싶어했다.그 최종 승자는 장성군으로 낙점되었다. 왜냐하면 홍길동은 소설 속 인물이긴 하지만 실존인물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이다. 조선실록을 뒤져보니 ‘연산군일기’ 5회, ‘중종실록’에 4회, ‘선조실록’에 1회 홍길동이 등장했다. 이런 기록을 바탕으로 홍길동의 출생의 비밀을 알 수 있게 되었다.홍길동은 1446년경 장성 황룡면 아치실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함경도 경성절제사를 역임했던 홍상직이며, 어머니는 기생노비인 옥영향이다. 아치실 암탉골에는 홍길동이 태어났다는 집터가 남아 있는데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추정된다. 장성군은 1998년부터 2011년까지 23만㎡에 515억원을 투자해 홍길동의 생가를 복원하고 테마파크를 조성하였다. 또한 매해 축제를 열어 의적 홍길동을 기리고 있다.△시뮬라크르(simulacre)와 시뮬라시옹(simulation)‘홍길동전’이 없었더라면 실제 홍길동에 대한 관심은 지금보다는 덜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홍길동이라는 소설 속 가상의 이미지는 실제를 압도하여 실제보다 더 실제처럼 작동한다. 그런 점에서 홍길동은 시뮬라크르의 전형이다.시뮬라크르란 장 보드리야르가 1982년에 체계화시킨 철학용어다. 사전적 의미는 ‘원본으로부터 복제되어 나온 또 다른 원본’이다. 원본은 유일하고 단일하다. 원본을 복제하면 복제품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어떻게 복제물이 원본의 자격을 띨 수 있을까? 그 작동 방식은 이렇다.먼저 원본에 대한 모방이 이뤄진다. 그 다음에는 원본과의 연결성을 끊어내고 스스로 생명력을 갖춘 독립된 지위를 지닌 원본으로 군림하게 된다. 이것은 홍길동에게 그대로 적용된다. 이렇게 복제품이 원본을 뛰어넘는 과정을 ‘시뮬라시옹’이라고 부르고 이렇게 만들어진 새로운 원본을 ‘시뮬라크르’라 부른다.△슈퍼히어로 홍길동이러한 홍길동의 시뮬라크르는 외국에서도 인기다. 그 곳은 다름 아닌 미국이다. 오브라이언이 쓴 ‘홍길동의 전설(The Legend of Hong Gil Dong)’ 아동용 그래픽 노블이 미국에서 인기를 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픽 노블이란 이야기와 그림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채색된 만화를 뜻한다.) 그런데 오브라이언은 어떻게 홍길동을 알았을까?오브라이언은 의료선교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1960년 한국에 왔다. 서울과 거제도, 대구 등에서 13년을 산 그녀는 많은 한국인들과 교류하며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배웠다. 이 곳에서 그녀는 다양한 한국의 전설과 이야기를 체득하였고 그것을 만화로 그렸다. 2007년 9월 출간한 ‘홍길동의 전설’은 ‘2007 올해의 최우수 아동도서’와 ‘최우수아동그래픽소설 10선’에 선정되었으며, 아시아태평양아메리칸 도서관사서협회에서 수여하는 ‘아태문학상’을 받았다.오브라이언이 그린 ‘홍길동의 전설’은 한복을 입고 서얼차별로 고통을 받는 조선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한국도 낯설 텐데, 그보다 생소한 조선에 살았던 홍길동이 인기를 끌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슈퍼히어로라는 공통 분모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대개 슈퍼히어로들은 악당을 물리치고 사회 정의를 지켜나간다. 홍길동 역시 신분차별에 저항하며, 가난한 자들을 돕는다. 오르페자는 슈퍼히어로들의 중요한 특징으로 상실을 들고 있다(B.J. Oropeza, The Gospel According To Superhereoes, 6~7면). 슈퍼맨은 고향을, 스파이더맨은 사랑하는 아저씨를, 배트맨은 부모를, 스폰은 자신의 삶을 잃어버린다. 그들은 이러한 상실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을 돕고 악과 맞서서 싸운다.엑스맨과 슈퍼맨이 천성적인 힘을 가졌다면, 스파이더맨이나 헐크는 외부적 요인에 의해 특수한 능력을 얻게 된다. 그러나 홍길동은 평범하기보다는 미천한 신분으로 태어났지만, 자신의 나아가야 할 방향을 스스로 선택하고 이를 위해 노력한다. 이러한 홍길동의 모습은 스스로의 힘으로 영웅이 되는 배트맨과 닮아 있다.▲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배트맨과 다른 점은 자신의 힘만으로 세계를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홍길동은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혼자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활빈당이라는 산적을 규합하였다. 그는 이 평범한 사람들과 함께 세계를 변혁시키고자 하였다. 그런 점에서 홍길동은 미국의 다른 슈퍼히어로들과는 차별점을 갖는다. 개인의 능력이 아닌 사람과 연대하고 그런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홍길동은 민중의 영웅이 될 자질을 가지고 있다.슈퍼히어로는 변화하는 시대에 맞게 변화해 왔다. 한국 최초의 슈퍼히어로 ‘라이파이’, 커다란 오른쪽 주먹으로 악당을 무찌르는 ‘주먹대장’, 태권도 남매 ‘아루치 마루치’, 우주 괴물과 싸우는 ‘우뢰매’가 있다. 사람들은 슈퍼히어로에게 자신을 투영하여 그들이 가진 능력과 꿈을 공유하고자 한다. 무수한 히어로의 등장과 퇴장하는 과정 속에서도 홍길동이 인기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가진 특수한 능력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조금 더 나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홍길동의 용기 때문이리라.

2018-08-03

최인훈의 ‘광장’ 다시 읽기

지난 23일 최인훈이 타계했다. 그는 1936년 회령에서 출생하여 6·25전쟁이 발발하자 월남했고, 1952년에 서울대 법대에 입학한다. 1955년에 등단한 후 이듬해 대학을 중퇴한다. 1957년 군대에서 통역장교로 복무하였으며 1963년 제대하였다. “광장”은 군생활을 하던 중인 1960년 11월에 출간에 되었다. 최인훈은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광복을 맞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쟁을 겪었다. 이러한 사람의 삶은 지금 세대와는 거리가 멀다. 거리가 멀다는 것은 그 사람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말과 같다. 그가 쓴 소설 역시 그러한데 어렵기로 정평난 작품으로는 ‘회색인’, ‘총독의 소리’, ‘화두’ 등이 있다.최인훈의 부고를 알리는 신문은 일제히 “‘광장’ 최인훈 작가”라는 수식을 붙였다. ‘광장’은 최인훈의 다른 소설과 달리 그다지 어렵지 않다. 이 소설은 이명준을 통해 금기시되었던 남북문제를 다루고 있다. 나아가 최인훈은 냉전주의 시대, 각 체제가 가지고 있는 모순을 깊이 파헤쳤다. 4·19혁명 이후의 시대적 분위기가 이런 소설을 가능하게 만들었다.△이명준의 연대기이러한 ‘광장’을 이명준의 연대기를 통해 다시 읽어 보려한다. 이명준의 삶의 궤적을 살피는 것이 이 소설을 이해하는 가장 빠른 길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참조한 책은 ‘광장/구운몽(문학과지성사, 2012)이다.-1945년 이전. 이명준은 산징, 하얼빈, 연길 등 중국의 도시에서 소년 시절을 보낸다(75면).-1945년. 해방이 되자 부랴부랴 서울로 나왔으며, 이명준의 어머니는 서울로 돌아와서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다(75면). 아버지 이형준은 해방과 함께 홀로 월북한다(72면).이명준의 아버지 이형준에 관해 부언할 필요가 있다. 이형준은 중국의 도시를 전전했으며, 몇 개월에 한 번씩 집에 들렀고, 박헌영 밑에서 남로당으로 활동하다가 월북했다. 박헌영은 김일성과 다툴 정도로 유능한 공산주의자였다. 박헌영을 따라 월북한 이형준이 북한에서 승승장구하면 할수록 남한에 홀로 남은 이명준에게 드리운 먹구름은 먹빛으로 물들어갔다.-1947년. 아버지의 월북과 어머니의 죽음으로 고아가 되다시피한 이명준은 아버지의 친구인 변 선생의 집에서 기거한다(84, 85면). ‘대학신문’에 시가 실리고 영미의 친구 강윤애를 만나 호감을 갖게 된다(57면). 고고학자이자 여행가인 정 선생과 대화하며 남한의 정치를 노골적으로 비판한다(59-68면).-1948년. 아버지가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에서 대남 방송을 하게 되면서 이명준은 경찰서에 두 번 소환되어 모진 심문을 당한다(74-86).-1948년 7월. 인천 윤애의 집에 기거하며 사랑을 나누지만 결국 월북한다(128면).이명준은 남한사회를 비판하면서 광장과 밀실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명준이 진단한 한국 정치란 추악한 밤의 광장이자 탐욕과 배신과 살인의 광장이다. 경제의 광장에는 사기와 협박과 허영이 풍선처럼 떠돌며, 문화의 광장에는 헛소리와 아편과 부정한 돈이 뿌려진다. 남한 현실에 대한 이명준의 비관적 인식은 경찰서에 가면서 극에 달하고 그는 결국 월북하게 된다.-1948년. 북한에 도착한 이명준은 노동신문 본사 편집부에서 근무하며 ‘볼셰비키 당사’를 읽어낸다(129면). 이곳에서의 삶 역시 잿빛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아버지와 논쟁을 벌인다(131-135면).-1949년 이른 봄, 이명준은 야외극장 의용 봉사원으로 자원하여 일을 하다 지붕에서 떨어져 허벅지를 다친다. 국립극장 소속 발레리나의 위문을 받고 거기에서 은혜를 만난다(136-138). 남만주에서 쌀 증산 운동하는 모습을 취재하고 돌아와 자아비판을 하게 된다(140-148면).-1949년 겨울. 원산 해수욕장 노동자 휴양소에서 겨울을 보낸다(160면).-1950년 3월. 은혜가 모스크바로 떠난다(165-166면).아버지와의 논쟁은 정 선생과의 논쟁에 상응한다. 이명준의 강변을 듣는 아버지도 정 선생도 말이 없긴 마찬가지다. 아버지와 정 선생의 침묵은 이명준의 말을 수긍한다는 뜻이면서 동시에 자신들의 삶을 긍정할 수 있는 논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 소설이 때로 관념적이라는 비판을 갖는 이유는 이와 관련이 깊다. 작가는 오직 이명준에게만 살과 피를 부여하고 그 외의 인물은 아무런 개성도 주지 않았다. 아버지와 정 선생의 침묵은 이러한 작가의 불철저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소설 작법이 불철저할지 모르지만 세계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날카로우면서도 적확하다. 이명준의 노골적 비판을 통해서 이를 알 수 있다. 북한사회는 혁명을 풍문으로만 들었기에 그 흥분만을 과장되게 연출할 뿐이다. 광장에는 플래카드와 구호가 난무하지만 피 묻은 셔츠도 울부짖는 외침도 없다. 실천될 수도 실천할 수도 없는 말이 넘쳐나지만, 행동은 부재한 곳, 그것이 작가가 통찰한 북한이다. 남한의 광장이 부도덕과 폐악으로 넘쳐나는 아비규환의 공간이라면, 북한의 광장은 이데올로기와 구호에 따라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들로 가득한 위선적 공간이다.-1950년 전쟁 이후. 낙동강 전선에서 이명준과 은혜는 재회하고 동굴에서 밀회를 즐긴다(170-176면). 낙동강 전선이 밀리면서 은혜는 죽고 이명준은 포로가 된다(176면). 이명준은 포로정책에 따라 중립국을 선택한다. 캘커타로 가는 배에서 이명준은 바다로 뛰어든다.이명준은 남한과 북한의 현실에 좌절하고 또 그의 유일한 도피처였던 은혜마저 잃고 중립국을 선택한다. 그는 “아무도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땅. 하루 종일 거리를 싸다닌대도 어깨 한번 치는 사람이 없는 거리. 내가 어떤 사람이었던지도 모를뿐더러 알려고 하는 사람”도 없는 곳으로 가고 싶어했다(192면).그런데 중립국행을 택한 이명준이 돌연 자살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소설에서 그 이유는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건 아마 고독 때문이지 않을까. 이국의 밀실에서도 광장에서도 들이닥칠 고독, 이 고독을 이명준은 견딜 자신이 없었던 것이 아닐까.△고독의 동의어들고독이라는 단어는 소설의 첫머리에서부터 등장한다. 명준이 권투선수의 셰도우 복싱을 바라보며 “그 노릇도 수월치 않는 모양이지.”라고 말하자, 친구인 태식은 “고독해서 저러는 거야.”라고 되받는다(53면). 이 때부터 이들은 경쟁이라도 하듯 ‘고독’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 든다. 그렇게 남발되던 고독이란 단어는 뚝 끊어지고, 소설의 말미에서 다시 등장한다. 이렇게 말이다.“왜 이런 전쟁을 시작했을까요”“고독해서 그랬겠지.”“누가?”“김일성 동무지.”(171면)▲ 공강일서울대 강사·국문학여기에서 ‘고독’은 외로움이라는 본래의 뜻이 아니라 ‘이해할 수 없음’이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권투선수도 이해할 수 없고 전쟁도 이해할 수 없다. 삶은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다. 삶의 어느 것도 이해할 수 없고, 삶의 어느 것도 이해받을 수 없다면, 그 삶은 고독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런 점에서 ‘이해할 수 없음’과 ‘외로움’은 동의어다. 고독은 그렇게 영혼을 잠식한다. 이때 인간은 고독, 그 자체가 된다. 하여 고독의 또 다른 이름은 죽음이다.

2018-07-27

언어를 산다는 것

△장난감과 놀이보들레르는 언젠가 아이들이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모습을 세밀하게 관찰한 적이 있다. 그가 보기에 아이들은 모두 연출가며, 연기자이자 동시에 마술사다. 아이들은 단순한 무대장치로 셰익스피어에 버금가는 연극을 펼친다. 이를테면 집에 있는 평범한 의자가 마차가 되기도 하고, 때론 말이 되고 그런가 하면 승객이 될 수도 있다. 병정인형이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인다는 건 그럴 수 있지만, 병정인형이 아닌 병마개, 체스 말, 공깃돌도 훌륭한 군인이 될 수 있다.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이런 놀라움과 궁금증은 보들레르만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아이들 스스로도 수긍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놀이가 끝나면 인형을 분해해버린다. 어떤 아이는 장난감이 들어오자마자 바로 부셔버리는 아이들도 있다. 이런 아이들의 파괴적인 행동은 또 어디에서 비롯하는 것일까? 보들레르는 궁금한 것 투성이다.보들레르의 궁금증이 시작되는 지점은 장난감이다. 그가 보기에 장난감은 무척 신기하다. 장난감은 살아있는 것처럼 행동하며, 말을 할 수도 있다. 장난감이 아닌 것도 장난감이 될 수 있고, 무엇으로든 변신할 수 있으며 동시에 두 가지 이상의 형태를 지닐 수도 있다.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보들레르는 아이들이 장난감을 부수는 모습을 모며 “장난감의 영혼이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보들레르의 수첩-장난감의 모랄”, 51쪽, 문학과 지성사)라고 묻는다. 이것은 질문이 아니라 답에 가깝다. 장난감의 영혼을 찾는다는 것은 장난감 안에 영혼이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보들레르는 장난감의 영혼이 이런 일을 가능케 한다고 믿었다.△놀이와 언어보들레르는 장난감이 가진 놀라운 힘, 그 힘의 근원을 궁금해했다. 하지만 장난감에 초점을 맞춤으로서 장난감에 영혼이 있다는 다소 엉뚱한 결론에 이르고 있다. 보들레르의 결론은 그의 한계이기보다는 당시 사회의 한계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보들레르가 장난감이 아니라 아이들의 놀이에 초점을 맞추었더라면 더 나은 결론에 이를 수도 있었을 것이다.장난감의 변신술은 장난감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장난감을 사용하는 아이들에게서 나오는 것도 아니다.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행위, 이 놀이라는 행위가 장난감에게 마술적인 힘을 부여한다. 놀이를 하지 않을 때도 의자를 마차라고 생각하는 아이가 있다면 그건 정말 이상한 아이다! 놀이의 마술적 힘은 놀이라는 형식 속에 있다.그리고 놀이를 할 때 아이들은 꼭 대상에게 이름붙이는 것을 빼먹지 않는다. 하느님이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생겼던 것’처럼 의자를 마차라고 명명할 때 의자는 더 이상 의자가 아닌 마차가 된다. 즉 대상에게 놀이에 걸맞은 이름을 붙일 때 대상은 본래의 용도에서 벗어나 놀이에 걸맞은 용도로 변화한다. 이렇게 이름을 붙이는 행위 자체가 놀이가 될 수도 있다.또 명명 행위와 놀이는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름을 붙이는 행위가 놀이라는 영역을 벗어나면 그 효력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놀이를 하지 않을 때에도 의자에게 마차라고 이름붙이는 아이가 있다면, 그 또한 정말 이상한 아이다! 따라서 명명 행위 없는 놀이는 불가능하며, 놀이를 벗어난 명명 행위 역시 불가능하다. 언어가 부여될 때 대상은 원래의 성질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것으로 변화할 수 있게 된다.△언어와 가상아이들의 놀이에서 언어는 가상적 힘을 만들어낸다. 의자를 마차라고 여길 때 거기에는 마차라는 개념이 따라온다. 마차에 대한 나름의 개념이 없다면 놀이는 불가능해진다. 언어가 만들어내는 가상이란 결국 개념에서 비롯한다.그런데 이런 것이 놀이에 국한되는 것만은 아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종이에 지나지 않는 것을 ‘돈’이라고 명명할 때 그것은 한낱 종이쪼가리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압도적인 힘을 행사하게 된다. 포도주가 ‘보혈’이 되고, 과자가 ‘성체’가 될 수 있는 것도 또한 이와 같다.그렇게 보자면 우리의 삶 역시 일종의 거대한 놀이다. 어떤 사람에 대한 감정이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그 단어에 어울리는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사랑을 깨닫는다고 했으나, 사랑은 그저 명명될 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명명된 것이 서로에 의해 승인되면 그때부터 사랑이 시작된다. 사랑은 지금부터 시작되고 그와 동시에 사랑이라는 가상이 덧씌워진다.사랑이라고 명명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사랑에 대한 어떤 관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사랑은 이렇게 하는 거야?’라고 묻는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데이트를 하고 손을 잡고 키스를 한다. 사랑에 대한 개념이 없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겠는가! 어떤 감정이 사랑으로 명명될 때 가상의 작동이 가속화되고, 사람들은 사랑을 하기 보다는 사랑이라고 여겨지는 어떤 행동들을 흉내낸다.사랑이라는 개념이나 관념을 모두 사용했을 때, 사랑이라는 개념이 계속해서 가지를 뻗지 못할 때 사랑은 식는다. 자신이 상정한 사랑의 가상으로부터 사랑이 멀어질 때 사랑이라는 감정을 바로 알게 된다. 그 사랑이라 불렸던 것들이 사실은 무수한 감정들 중의 하나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랑은 그렇게 식는다.△언어와 삶우리가 사는 것은 삶이 아니라 삶이라는 단어다. 삶이라는 단어를 산다고 해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삶이라는 개념이 없다면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정말 문제는, 우리의 삶이 삶이라는 단어에 국한될 때 발생한다. 자신이 알고 있는 삶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기만 할 때가 된다. 자기 스스로 삶에 대한 개념을 새롭게 만들어내지 못하면 그때부터 삶은 끝이 난다. 그건 죽지 않아도 죽은 삶이다.놀이와 언어가 불리될 수 없듯이 삶과 언어가 분리될 수 없다. 언어와 가상 또한 분리될 수 없다. 언어는 텅 빈 껍질이자 내용이다. 과육을 포함하지 않은 사과껍질이 있을 수 없듯이 언어는 결코 언어만으로 존재할 수 없다. 장난감을 해체하여 그 속에서 영혼을 발견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행위 속에 영혼이 있는 것이지 어느 특정한 대상에 영혼이 몰려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공강일서울대 강사·국문학삶은 삶이라는 언어 안에 있지만, 그 언어는 결코 고정되어 있지 않다. 사랑 역시 이와 같아서 사랑이라는 단어를 살지 않고는 사랑할 수 없다. 사랑을 연극하지 않고서는 사랑을 느낄 수 없다. 다시 말해 사랑하지 않고는 사랑할 수 없다. 인생은 연극이긴 하지만 다른 것이 있다면 연극은 끝이 있지만 인생은 끝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죽음조차 삶이라는 연극의 일부이기 때문이다.우리는 삶이 아니라 삶이라는 언어를 산다. 언어가 곧 삶이어서 그 언어를 살지 않을 수는 없다.단어를 사는 것이 곧 삶을 사는 것이다. 핵심은 단어의 개념에 매몰될 것인가 아니면 그 단어를 선점할 것인가에 있다. 단어를 사용만 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보일 것인가, 이것을 결정해야 한다. 놀랍게도 삶은 자신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스스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보인다. 하여 모든 삶은 예술이다.

2018-07-20

‘피하지 못하면 즐겨라’에 관한 몇 개의 주석

1. 이 말을 처음 들었었던 건 훈련소에서였다. 각개전투, 유격, 화생방 이런 힘든 훈련 앞에 조교들은 이 말을 붙이길 좋아했다. 이 말은 맞는 말이긴 하지만 음험하다. 이 말은 즐기라는 것을 강조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강요하는 말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렇다.피할 수 없다니? 무얼 말인가? 군대를 말이다. 군대에 들어온 이상 군대의 명령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러니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 는 협박에 다름 아니다. 이 말은 반항을 쓸데 없고 쓸모 없는 것으로 규정 지어 저항의 싹을 잘라버리고 체념할 것을 종용한다. 이제 ‘까라면 까’야 한다. 이 말은, 나치가 유대인에게 저지른 만행들, 그렇게 멀리 갈 것도 없이 광주민주화운동에서 공수부대원들이 보였던 행동마저 가능하도록 만든다. 하여 이 말은 참을 수 있는 것도 참고, 참을 수 없는 것마저도 참아 내게 만드는 불길한 주문이다.2.사실 우리는 피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피하려 하지 않는다. 왜? 우리는 한낱 사람이니까. 피하지 못하는 상황들은 얼마든지 많다. 아이들은 12년 동안 학교에서 사육된다. 시험을 보고 그 점수에 따라 미래를 결정당한다. 이런 시험을 거부하고 학교를 뛰쳐 나올 수는 있다. 하지만 그뒤 사회에 편입하려면 그 벽은 높다. 말이 좋아 저항이지 저항이 그리 쉽지 만은 않다. 회사가 싫으면 그만두면 그만이다. 그런데, 그 다음은 어쩔 건가? 비빌 언덕도 없는 저항은 처자식을 굶기기 알맞다. 그러니 조금 비겁하더라도 보다 현실적인 말을 하기로 하자. 우리는 언제 즐길 수 있는가?3.경제민주화의 핵심은 부의 평등에 있는 것이 아니다. 잘 살아야 한다는 환상을 깨뜨리는데 목적이 있다. 꼭 잘 살지 않더라도 내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다면 굳이 잘 살려고 아둥바둥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복지를 하자는 거다. 잘 살고 싶은 사람은 잘 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되, 번 만큼 세금을 내라는 거다. 못 사는 사람은 복지혜택을 받으면서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자아를 실현해 나가자는 얘기다. 다양하고 다채로운 사회는 이런 상황 속에서 가능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풍요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민주주의에 더 가깝지 않은가. 적어도 즐기려면 어느 정도의 여건은 갖추어져야 하지 않겠는가.4.즐기기 위해서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 그럴려면 잘 해야 한다. 완전히 능숙해질 때 비로소 잘 할 수 있고, 그 때 비로소 진짜 잘 할 수 있다. 언젠가 ‘히든싱어’(2014년 1월)에 휘성을 흉내내는 김진호가 등장한 적이 있었다. 김진호는 완벽하게 휘성을 소화해냈고 그에게서 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다른 모창자들이 틀리지 않기 위해 조바심칠 때, 휘성하고 똑같이 소리를 내려고 애쓸 때, 김진호는 노래에 심취했다. 이 정도 능력이면 즐길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모창이라는 제약 속에 갇혀 있고 거기를 벗어나면 탈락하지만, 김진호는 그 제약을 벗어나지 않고서도 그 제약을 벗어나는 이상한 장면을 연출했다. 중학교 때부터 휘성 모창을 했다고 하니 그럴 만도 하다. 그의 몸에는 휘성이 체화되어 있다. 모창이라는 형식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충족시키면서도 그는 그 상황을 즐겼던 것. 따라서 즐기길 원한다면 여유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여유란 상황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을 만큼 능숙해질 때 가능하다.5.당연히 연습을 하면 능숙해질 수 있다. 사격은 연습하면 할수록 명중률이 높아진다. 연습의 속성은 그렇다. 하지만 능숙해 질 수 없는 것도 있다. 화생방 훈련을 화생방 연습이라고 부르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연습이라는 성질과는 다른 것이기 때문에 그러하다.연습은 축적되지만 훈련은 축적되지 않는다. 최루탄 가스에 능숙해질 수는 없다. “매에 장사 없다”는 말 역시 그것이 연습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영화 “본 아이덴티티”의 제임스 본은 훈련을 통해 훈련 불가능한 것까지 경험화한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어떤 약물이 투입되어 감각신경을 마비시켰기 때문이다.이 시대는 축적이 불가능한 훈련을 통해서 능숙해지라고 강요한다. 즉 이 시대는 감각신경을 마비시키라고 명령하고 있다. 감각을 마비시키면 우리는 잔인해질 수 있고, 사람을 짓밟고 올라갈 수 있다. 하여 측은지심, 수오지심 따위의 기본적인 윤리적 감각조차 없는 사람들이 높은 자리에 많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한때 죽어라 연습하면 되는 시대가 있었다. 그렇게 하면 대가 소리를 듣거나 일가를 이룰 수 있는 시대가 있었다. 과거에 말이다. 그런 시대에는 경험이 많은 사람이 우대를 받았다. 노인은 공경의 대상이었다. 지금은 죽어라 연습하는 사이 세상이 변한다.하나의 직장에서 평생 밥을 벌어먹을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평균적으로 한 사람이 세 번 정도는 직업을 바꿔내야만 ‘자연사’할 수 있는 세상이다. 이러한 시대에 자신의 경험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는 듯 말하는 사람을 전문용어로 ‘꼰대’라 부른다. 그러니 당신의 잘난 경험에 기대고 있는 조언이니, 자기계발이니, 힐링이니, 상담이니 하는 말들은 개에게나 줘버려라.6.맹자는 활 쏘기에 대해서 말하면서 활쏘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활 시위를 당기는 일이라 했다. 활이 과녁에 맞고 안 맞고, 활로 출세를 하고 안 하고는 활쏘기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목적에서 벗어나면 우리는 즐길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목적에 구애받지 않는 방법, 그것은 오로지 과정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것이 곧 지금-여기를 사는 일이기도 하다.▲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7.조지 오웰은 ‘1984’에서 “‘무산계급’은 의식을 가질 때까지 절대로 반란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며, 반란을 일으키게 될 때까지는 의식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민음사, 100면).”라고 썼다. 의식을 가지기 위해서는 혁명이 필요하며 혁명을 이루기 위해서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 의식이 없다면 혁명이 없고, 혁명이 없다면 의식이 없다. 이 무한한 악순환의 고리 속에 놓여있다. 즉 우리는 현재의 상황을 더 낫게 만들 수 없다. 그러니 즐길 수 없다.그런데 즐길 수도 있다. ‘피하지 못하면 즐겨라’는 말은 지금의 상황보다 더 나아질 수 것이라는 환상을 버리기만 하면 가능해진다. 거듭 말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여기가 지옥이다. 사실 이 세계가 한 번도 지옥 아니었던 때는 없었다. 그러니 이 지옥을 벗어나는 방법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러니 이제 즐겨라.더 나아지리라는 희망이 없다면 우리는 지금-여기에서 즐길 수 있다. 나아지리라는 부담을 던져버리고 오직 즐기기 위해서 즐겨라. 이 세계를 벗어나려고 아둥바둥 살아내려 애쓰지 말고 이 지옥을 즐겨라. 적극적 허무, 긍정적 허무는 지옥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순간부터 가능해진다. 이 희망 없음 속에서 역설적으로 우리는 즐길 수 있다.

2018-07-13

잡학의 쓸모

△지대넓얕과 알쓸신잡의 공통점‘지대넓얕’(2014, 한빛비즈)과 ‘알쓸신잡’(2017.6, tvN). 이 둘의 공통점은? 앞에 것은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을 줄인 말이고, 뒤에 것은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이다. 하나는 책이지만 다른 하나는 TV프로다. 둘의 공통점은 네 자로 된 줄임말이다, 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아주 확실한 눈썰미만 가졌군요.이런 것들이 유행하는 현상을 두고 한 비평가는 인문학적 재미가 위안을 주고, 이런 위안은 ‘쇼’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정지우, ‘인문학적 교양과 예능의 결합, ‘쇼양’의 문제’). 아하, 그렇다면 당신은 이 둘의 공통점이 인문학으로 장사를 한다는 것이군요? 세상에, 자본주의 시대에 돈으로 환원되지 않는 것이 어디있단 말인가요? 그런데 인문학을 상품화했다고 비판하다니, 이 분도 보통 ‘꼰대’는 넘는다.공통점도 조금 초점이 빗나갔다. ‘지대넓얕’이 숨긴 말이 ‘잡학’이라면, ‘알쓸신잡’이 감춘 말은 ‘대화’다. 둘은 ‘대화를 위한 잡학적 지식’을 전달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대화가 ‘쇼통’이라면 그건 맞겠지만, 이들은 인문학이 아니라 잡학을 다룬다. ‘지대넓얕’은 역사, 경제, 윤리, 과학, 신비 등을 다루며, ‘알쓸신잡’에는 유희열(작곡가), 유시민(경제학자), 황교익(음식전문가), 장동선(뇌과학자) 등이 출연한다. 이 정도면 인문학이기보다는 잡학이라고 불러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시죠?△잡학의 시대‘잡학’이란 잡스러우며 잡다한 지식을 말한다. 하나에 집중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흩어져 있는 ‘수다한 지식들’. 한때 이런 잡식을 많이 아는 사람을 ‘다식’한 사람, ‘박학’한 사람이라 불렀다. 하여 ‘박학다식’! 이것이 초기 자본주의 사대의 인재 유형이었다. 싸움, 추리, 연애에도 능수능란한 셜록홈즈 같은.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하나를 깊이 아는 전문가형 인재가 인기였다. 화학과 물리학에 능통한 맥가이버 같은.잡학의 시대가 다시 도래하고 있다. ‘지대넓얕’과 ‘알쓸신잡’이 유행이 그 방증이라 할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 복사기는 복사는 기본이고 프린터, 스캐닝, 네트워크까지 가능하며, 스마트폰은 전화기이면서 MP3이면서 사진기이면서 간단한 문서작업까지 할 수 있다. 다만 과거의 잡학이 사실의 나열처럼 백과사전적 지식에 그쳤다면, 오늘날의 잡학은 사실을 해석하고 그 원인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잡학은 깊이 있는 박학이다.특이하게도 “지대넓얕”과 “알쓸신잡”은 ‘잡학’을 스스로 부정하는 듯한 태도를 취한다. ‘얕다’거나 ‘쓸데없다’고 스스로 명시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것이 본심은 아닐 것 같다. “우리도 ‘잡학’이 쓸데없다는 것쯤 알아요, 그러니 우리가 다루는 소재에 대한 공격은 그만! 우리는 재미를 추구한답니다” 스스로 자신들을 평가절하함으로써 비판을 무마하려는 고도의 심리전을 펼치고 있다.이들이 ‘잡학’에 대해 겸손한 태도를 취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득은 분명하다. 잡학을 개의치 않고 즐길 수 있도록 만든다는 것. 그동안 우리는 지식을 습득하여 이것을 어딘가에 사용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짓눌려 왔다. 우리가 배우고 익힌 것들이 시험에 도움을 준다면 더 없이 좋겠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적어도 ‘스펙’으로는 작용해야 했다. 그렇지 않은 지식은 무용한 것이었다.‘지대넓얕’과 ‘알쓸신잡’은 무용하다는 것을 스스로 말하면서 재밌으면 그만 아니냐고 말하고 있다. 여가와 놀이의 영역 속에 ‘지식’이 들어서고 있다. 사람을 사회적 인간으로 거듭나게 만들어주었던 지식, 그래서 ‘교양’이라고 불렸던 것들이 소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니! 김복남씨가 살아돌아 온다면 “아, 정말 판타스틱하고 어메이징 한 일이에요”라고 말했겠다.△쓸모 없음의 쓸모지식, 교양, 인문학 같은 것들까지 자본화시킬 수 있다는 것은 익히 알았지만, 이런 것들이 놀이의 한 종류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놀랍다. ‘잡학’이 쓸모없는 놀이라면 또 어떻다는 말인가. 인문학이 행동을 실질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믿음은 얼마나 구태며, 교양이 좋은 인간을 만들 수 있다는 말은 얼마나 구차한가.이런 말들은 지식과 놀이를 구분 짓고, 지식과 행동을 경계 짓는다. 모든 것들은 모든 것들과 연결되어 있다. 아이들에게 배움은 모두 놀이다. 말을 하는 것도 옷을 입고, 젓가락질을 하는 것까지 아이들은 모두 놀이로 생각한다. 아이들은 어떻게 하면 친구가 싫어하는지, 어떻게 하면 좋아하는지와 같은 사회적 규칙을 놀이를 통해 배운다. 배움과 놀이 사이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있을까?우리는 때로 직관적으로 행동한다. 직관적이라는 것은 선험적으로 가진 비의적인 능력이 아니다. 직관은 “인간 지성의 엄청난 능력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것을 다 계산해 정확히 판단할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동원해야 했던 인간 지성의 약점”에 가깝다(감동근, ‘바둑으로 읽는 인공지능’). 직관이란 결국 경험으로 축적된 지식이다. 행동을 통해 지식은 축적되고, 축적된 지식은 행동을 더욱 세련되게 만든다.그런데 ‘쓸모없다’는 것이 가능하긴 한 것일까? ‘쓸모없음’이라는 단어는 이미 ‘쓸모’라는 말을 품고 있다. 즉 ‘쓸모’를 먼저 떠올리지 않고 ‘쓸모없음’을 사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쓸모없음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에게 쓸모가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장자 식으로 말하자면 잡학은 쓸모없음이라는 쓸모를 가지고 있다.▲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모든 것은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다잡학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잡학에 포함된 수다한 학문들이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 준다는 사실이다. 학문의 공통점은 당연한 것들, 너무도 자명해 보이는 것들에 의문을 던진다.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는 것들, 스스로 그러해서 그러하다고 여겼던 것들 속에서 이유를 발견하고야 만다.역사는 사라진 것들의 파편을 주워모아 사라진 것들을 복원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으며, 물리학은 현실과 달리 예측불가능한 양자의 움직임을 이해하려 애쓴다. 시인은 모든 인간이 이미 한 번씩은 사용했을 것 같은 이 넓은 언어의 지평에서 새로운 언어의 배열을 기어코 길어 올리며, 공학자는 그런 것은 있을 수도 없고, 만들 수도 없을 것이라는 비관적 분위기 속에서 기필코 새로운 기술을 발견해 내고야 만다.실록에서 지워진 광해군의 15일을 추적하고, 힉스 입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해 내고, 이상이나 말라르메와 같은 시인은 시를 쓰고, 잡스나 엘론 머스크와 같은 공학자가 기술 전체를 더 높은 차원으로 도약시킨다. 인문학자든 과학자든 공학자든, 이들은 공통적으로 당연해 보이는 것들 앞에 질문을 던질 줄 알며, 탈출구가 없어 보이는 미로 속을 헤매다 수없이 막다른 골목에 이르지만 탈출의 꿈을 멈추지 않는다.이들은 모두 ‘불가능’이라는 상황 앞에서 무릎 꿇지 않는다. 불가능함을 알지만 그 불가능에 맞서 온몸으로 저항하는 사람에게 불가능은 무의미해진다. 불가능을 그냥 버려두면 영원히 불가능한 것으로 남는다. 하지만 그 불가능에 끝없이 부딪칠 때 그것은 불가능하기도 하지만 가능하기도 한 것으로, 즉 (불)가능한 것으로 바뀐다.잡학을 안다는 것은 서로 다른 것으로 여겨지는 것들이 사실은 그렇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아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잡학의 쓸모란 어떤 것도 동떨어져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일, 결국 모든 것들은 모든 것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아는 일이라 할 수 있다.

2018-07-06

악의 평범성과 ‘권위에 대한 복종실험’

사회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은 괴짜였다. 그는 자신이 쓴 편지를 뉴욕의 거리에 일부러 떨어뜨리고 어떤 사람이 답장을 쓰는지를 관찰했다. 일부러 긴 줄에 새치기를 하고서는 뒷사람의 반응을 기록하기도 했다. 날씨가 맑은 날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군중들이 얼마나 많이 모이는지를 실험하기도 했다. 로렌 슬레이트는 이러한 밀그램을 다음과 같이 평한다. “그는 영리하고, 파괴적이고, 부조리했다. 하지만 그가 사르트르나 베케트와 달랐던 점은 부조리를 측정했다는 점이다.”(‘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66면) 스탠퍼드 대학의 리 로스는 “밀그램 교수는 부조리를 병 속에 담아 저장”했다고 평가한다.스탠리 밀그램은 ‘권위에 대한 복종실험’으로 유명하다. 이 실험은 나치 독일의 잔혹한 홀로코스트와 ‘미라이 학살 사건’과 같은 비인간적인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었는지를 설명해주는 실마리가 된다. 베트남의 킬링필드라 불리는 ‘미라이 학살 사건’은 미군이 마을을 약탈하고 강간을 한 뒤 504명의 비무장 민간인을 무자비하게 살해한 사건이다. 홀로코스트는 폴란드 아우슈비츠 포로소용소에 자행되었는데, 600만명의 유대인이 인종 청소라는 미명하에 학살당한 사건을 말한다.밀그램은 자신이 하는 실험의 의도를 들키지 않기 위해 ‘시간 당 4달러, 기억에 관한 연구에 참여할 사람 구함’이라는 광고를 냈다. 여기에 참여한 사람은 40명이었다. 참여자 둘 중 한 명은 문제를 출제하는 선생 역할을, 또 다른 한 명은 문제를 푸는 학생 역할을 한다. 제비뽑기로 결정되고 선생은 학생을 건너편 방으로 데리고 가서 의자에 묶는다. 그 의자는 전기가 통한다. 선생은 학생이 문제를 틀릴 때마다 15V에서 450V까지로 서른 개의 버튼을 차례대로 올린다.450V까지 되는 버튼을 몇 명이나 올릴까? 밀그램을 비롯한 실험진은 0.1%에 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전기의 강도가 높아지면 학생은 소리를 지르며 여기에서 꺼내달라고 소리친다. 300V가 넘어가자 학생은 대답조차 없다. 선생 역할을 하는 사람이 더 이상 못하겠다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그러면 의사 복장을 한 연구자는 “실험은 계속 되어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선생 역할을 한 사람이 다시 반문한다. “저러다 죽으면 어떡하죠?” 연구자는 “절대 죽지 않습니다. 그리고 만약 무슨 일이 생긴다면 모든 것은 제가 책임집니다”라는 대답을 매우 사무적이고 건조하면서도 단호한 목소리로 말한다. 선생 역할을 맡은 피시험자는 결국 450V까지 버튼을 모두 올린다. 그렇게 버튼을 올린 사람이 40명 중 무려 26명이나 되었다.물론 학생은 안전하다. 그리고 학생은 연구진이 고용한 전문 연기자다. 제비뽑기도 연출된 것이고, 전기는 겨우 간지러운 수준에 불과했다. 하지만 선생 역할을 한 피시험자는 450V까지 전기가 진짜라고 알고 있었다. 이 정도 수준의 전기가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피시험자는 전기버튼을 올린 것이다.밀그램은 이를 통해 홀로코스트를 자행하는 사람은 악마가 아니라 바로 우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한나 아렌트가 말하는 악의 평범성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아렌트는 이렇게 말한다. “악이란 뿔 달린 악마처럼 별스럽고 괴이한 존재가 아니라 사랑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우리 가운데 있다.”이 실험은 사람이 상황에 얼마나 쉽게 지배받는지를, 권위 앞에서 인간의 도덕과 양심이 얼마나 손쉽게 허물어지는가를 보여준다. 만약 15V가 아니라 처음부터 200V에서 시작했다면 어땠을까? 아마 버튼을 올리는 데 더 신중했을 것이다. 아주 낮은 전압에서 점점 전압이 높아질수록 피시험자는 자신도 모르게 도덕과 양심이라는 허들을 뛰어넘어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변해갔을 것이다. 무엇이든 처음이 어렵다. 한 번 마음의 허들을 넘고 나면 나머지는 거의 자동적으로 이뤄진다. 그렇게 자신이 지켜야 할 윤리의식은 폐기된다.또 하나 중요한 사실은 윤리라는 것이 원래 정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윤리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성립한다. 어떤 사람들과 있느냐에 따라서 윤리는 다른 것으로 바뀐다. 윤리는 가변적이다. 상황에 맞게 윤리를 바꾼다. 우리의 윤리는 그렇게 허약하다. 악마는 외부에서 틈입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내부에서 솟구친다.이 실험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실험 이후 밀그램이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사람들은 별로 관심이 없다. 밀그램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 실험은 세기의 실험이었지만, 밀그램은 많은 것을 잃었다. 가장 잔혹한 실험이라는 비난을 받아야 했고, 학계에서 따돌림을 받다시피 했다. 예일대 조교수였지만 종신재직권을 거부당했고, 하버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밀그램은 서른 한 살에 뉴욕의 시티 칼리지에서 전임 교수로 채용되었다. 나이를 생각하면 나쁜 조건이 아니었지만 그가 느꼈을 상실감은 컸을 것이다.이런 밀그램의 삶 역시 ‘권위에 대한 복종실험’의 연장선처럼 느껴진다. 사람들은 밀그램의 실험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 했다. 하버드대의 교수였던 조나 골드하겐은 “밀그램의 실험은 유대인 대학살과 관련된 지금까지의 발표 중에서 가장 잘못된 가정을 내리고 있습니다. 그의 복종 이론은 적용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신뢰할 만한 권위에 저항을 합니다”라고 비판했다.지금과 달리 당시 사람들은 인간성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인간이 얼마나 가변적일 수 있는지, 인간이 얼마나 비겁할 수 있는지, 인간이 인간에게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를 사람들은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리 역시 유대인을 학살하는 나치처럼 행동할 수도 있다는 것, 나치의 만행이 사악한 사람들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바로 자신일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그래서 사람들은 밀그램을 비판하는 쪽을 선택했다.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보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보다, 그런 주장을 하는 밀그램을 매장하는 것이 더 쉬웠을 것이다. 이것 역시 악이다. 이것 역시 인간에 대한 신뢰라는 권위 뒤에 숨어 한 인간을 파멸시키는 일과 다르지 않다. 밀그램을 비난하는 사람들 역시 그들이 악을 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알면서도 모르려고 했을 것이다. 그들은 인간은 선하다는 자신들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 어떤 희생도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공강일서울대 강사·국문학밀그램과 그의 실험은 그런 식으로 평가절하되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실험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이와 관련된 많은 사건들과 유사한 실험을 통해 우리는 인간의 윤리, 도덕, 신념이 얼마나 연약한 것인지를 알게 되었고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사회적 구조 속에 매몰되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악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일은 중요하다. 선한 행동을 하는 사람과 악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상황이 사람을 그렇게 바꾼다는 것을 아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이것을 안다면, 우리는 특수한 상황에서 자신의 행동을 돌아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자신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권위 앞에서 상황 앞에서 보다 더 신중하게 행동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2018-06-29

여기에 패배는 없다

△성삼재에서 화개재까지 : 마음으로 몸을 세울 수는 없다새벽 4시, 성삼재에서 노고단을 오른다. 며칠 전부터 떠돌던 감기 기운을 약으로 눌렀지만 그 기운은 눌리지 않았다. 기침은 나지 않았지만 몇 걸음 걷기도 전에 땀이 흐른다. 이틀치 음식과 옷과 자질구레한 것들로 배낭은 무거웠다. 다행히 길은 어두워 일행은 내 상태를 알지 못했다. 아픈 중에도 처음 해보는 야간 산행에 들뜨고 열에 달떴다.노고단까지 올라 이제 능선만 따라가면 그만이라는 대장님의 말에 안심했으나 산에 대한 산꾼들의 모든 말은 거짓말임에 분명했다. 길은 꼬리를 물고 산을 넘나들며 나를 혹사했다. 평소 같으면 뛰듯이 달렸을 산길에서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산에서 달린 적이 있던가, 그런 것이 가능하기나 했나? 마음먹은 대로 된다고들 하지만, 몸에 마음이 깃든 것이므로 마음으로 몸을 세울 수는 없었다.거의 500~700m 마다 표기된 이정표를 지나칠 때마다 부아가 치솟았다. 1km를 가는 데 거의 30분이 걸렸다. 간신이 임걸령에 도착해서 일행을 기다렸다. 동창으로 보이는 한 무리의 아주머니들이 사진을 부탁했다. 채 20m도 되지 않는 샘으로 내려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곧 뒤따라온 대장님이 젊어지는 샘이라며 먹고 오란다. 대장님 죽을 것 같아요, 라는 말을 물로 눅여내고 다시 걷는다. 이제 날이 밝아 내 상태를 알게 된 대장님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애써 웃어 보인다.△지리산 역종주의 추억 : 두려울 것 없는 푸른 깊은 밤지리산 종주는 이번이 두 번째라고는 하지만 벌써 15년 전이니 아무것도 기억에 나지 않는다. 그때는 같이 갔던 사람이 아홉이었나, 열이었나,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등산학교를 따로 다닐 만큼 산을 좋아하던 선배의 꼬드김에 넘어가 선배가 대장을, 내가 후미를 맡았다. 나보다 세 살, 많게는 여섯 살 아래의 후배들이 가운데를 채웠다.온전한 여름이었고 천지도 모르고 산엘 갔었다. 우리는 역종주를, 그러니까 치밭목으로 치고 올라 뱀사골로 내릴 것이었다. 치밭목에서 잠을 자고 써레처럼 생겼다는 써리봉에서 운해를 보고 천왕봉을 넘었다. 그때는 예약을 하지 않아도 여자들은 무조건 대피소 안에 재워 줬다. 남자라고 해봐야 달랑 넷인 우리는 소주를 마시고 벽소령에서 비박을 했다. 고요한 산 가득히 어둠과 별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리는 밤, 잠은 이제 겨우 천왕봉을 넘어 느리게 느리게 다가왔다. 아침 이슬에 깨어 밥을 지었다.힘들어하는 후배들을 위해 위문공연을 한답시고 “고향땅이 여기서 얼마나 되나 …중략…고향에도 지금쯤 뻐~욱꾹새 울겠네” 같은 노래를 째지는 목소리로 불렀다. 맞은편에 우리와 비슷한 조합의 일행을 만났는데, 거기에도 꼭 나같이 실없는 사람이 있어서 서로들 데리고 가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산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친구처럼 반가웠다.화개재에서 뱀사골로 내리며, 이제 다왔다는 말로 후배들을 위로했다. 허나 끝은 보이지 않았고 기어이 한 후배가 울음을 터트렸다. 그랬거나 말았거나 기운이 남아도는 되바라진 후배는 “야, 공강일 나랑 달리기 할래”라고 했다. 끝없이 내려뻗은 계단을 구르듯 달렸지만, 앞서가는 그 한발을 따라갈 수 없었다.하산해서는 민박을 잡고 고기를 구워 술을 마셨다. 술이 거나해져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밖으로 나와 달리기를 했다. 아까는 졌지만, 이번에는 꼭 이길 생각이었는데, 가볍고 날렵한 이 후배는, 운동화를 손바닥에 신고, 아스팔트를 칼 루이스처럼 아니 약물 복용한 벤 존슨처럼 달렸다. 하늘이 뱅글뱅글 돌아 별은 자꾸만 늘어났다. 나는 내친 김에 계곡에 뛰어들었다. 아무것도 두려울 것 없는 푸른 깊은 밤이었다.△천왕봉에서 대원사까지 : 어둠을 캐는 어린 광부들그때는 하나도 힘들지 않았는데, 스틱도, 배낭도, 등산화도 없이, 그래도 힘든 줄도 몰랐는데, 이번 산행은 왜 이렇게 힘든 거야! 연하천 대피소에서 다시 잠들었다, 깨어나면 이젠 정말 감기가 떨어졌나보다, 라는 생각이 들 때 달렸다. 형제봉에서 1.5km 남았다는 벽소령 대피소에서 잠깐 쉬었다가 6.3km 남은 세석 대피소를 향해 출발.얼마 안 가서 선비샘. 천대와 멸시를 받던 노인이 죽어서라도 존중을 받고 싶어 이 샘에다가 묻어달라고 했더란다. 이곳에서 물을 마시는 사람은 물을 마실 때마다 허리를 굽혀 절 아닌 절을 하게 되었다고, 유래가 적혀 있다. 참 유난스런 노인네라고 생각하면서, 인사만 잘하면 선빈가, 괜히 툴툴거리며 덕평봉엘 올랐다. 여기서부터 지리산이 한 눈에 들어왔다. 오른편으로 새롭게 생겨나는 능선을 보며 송수권의 시를 떠올렸다.여러 산봉우리에 여러 마리의 뻐꾸기가울음 울어석 석 삼년도 몸을 더 넘겨서야나는 길뜬 설움에 맛이 들고그것이 실상은 한 마리의 뻐꾹새임을알아냈다.지리산 下한 봉우리에 숨은 실제의 뻐꾹새가한 울음을 토해 내면뒷산 봉우리 받아 넘기고또 뒷산 봉우리 받아 넘기고그래서 여러 마리의 뻐꾹새로 울음 우는 것을 알았다.…하략… (송수권, ‘지리산 뻐꾹새’)여러 마리의 뻐꾹새가 우는 줄 알았지만, 실상 알고 보니 한 마리 새였다고, 한 울음을 토해 내면 뒷산 봉우리들이 받아 넘겨 커지는, 그리하여 종국에는 세석평전을 가득 메운 철쭉꽃밭을 붉게 물들인다고 시인은 울음을 삼키듯 노래했다.오후 네 시께 세석대피소에 도착해 이른 저녁을 먹었다. 세석에서 장터목까지 다시 3.4km. 촛대봉을 지나며 발을 삔 중학생을 만났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대장님의 말만 믿고, 학생에게 스틱을 빌려주었다. 대장님은 백두대간만 열여섯 번이나 오간 베테랑 중에 베테랑이다. 발에 채는 돌도 알아보겠다고 했는데, 장터목은 한 없이 멀었다. 나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능선들, 저 아름다운 능선들 앞에서 수없이 혼절했다.기듯이 장터목에 도착해 오후 일곱 시부터 누웠다. 몸이 불덩이처럼 끓었다. 감기약이 없어 두통약을 먹고 앓았다. 내일 아침, 눈앞에 보이는 천왕봉은커녕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이 지긋지긋한 지리산을 내려갈 참이었다. 매 시간마다 목이 말라 잠에서 깼다. 그럴 때마다 열이 내려 새벽 1시엔 입고 있던 웃옷이며 바지를 벗고 거의 벌거벗은 채 잠이 들었다. 새벽에는 원하지도 않았는데, 거뜬해졌다, 아쉽게도.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내가 나아 일행들 역시 아쉬웠다고들 한다.▲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나는 아무런 의지도 없었는데, 내 몸이 자기 마음대로 나를 천왕봉으로 밀어 올렸다. 해돋이를 보러온 중학생들이 헤드랜턴을 끄는 것도 잊은 채 양 옆으로 기진해 길을 밝혀 주었다. 그들은 어둠을 캐는 어린 광부들 같았다. 천왕봉에서 우리는 정상주를 마시며 구름에 가린 해돋이를 심안으로만 바라보았다. 천왕봉에서 다시 중봉으로 중봉에서 써리봉으로 정신없이 내달았다. 치밭목에서 남은 쌀을 긁어모아 밥을 짓고, 남은 음식들을 모두 넣어 ‘라면국’을 끓였다. 치밭목에서 유평마을까지 한달음에 내달았다. 하산하자마자, 한질도 넘는 계곡에서 멱을 감았다. 괴로웠던 산행의 흔적은 씻기지 않은 채 몸속에 새겨지고 있었다. 소설 한 대목이 떠올랐다. “패배는 내 안에서 온다. 여기에 패배는 없다.”(김연수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거짓말처럼 굵은 빗방울이 물위로 떨어져 파문을 지었다. 몸속 깊은 곳에서 올라온 웃음이 파문을 따라 번져나가고 있었다. 이 산을 그리워하게 되리란 것을 미리 알 수 있었다.

2018-06-15

기술혁명 시대의 예술

한 권의 책이 있다. 이 책은 1996년 10월에 출판되었고 두 달 후 음란물로 지정되어 폐기처분 된다. 이 책을 쓴 저자는 1997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구속되었다. 이 일련의 사태를 보며 나는 흥분했고 이 책을 어떻게든 구해서 읽었다, 아니 읽어야 했다. 무라카미 류가 변태와 일탈을 직설적으로 묘사한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로 20년 전에 아쿠타가와 상을 받았는데, 그 아류쯤에 지나지 않는 이 소설을 금서로 지정하는 이 나라에 분노했다. 어찌되었던 그는 당시 신화였고 혁명 그 자체였다. 그랬던 그는, 처음엔 전시가 거부되었다가 미술관의 중요 소장품이 된 뒤샹의 변기처럼 권좌에 올라, 자신의 이름을 걸고 칼럼을 쓰고, 저자의 이름을 부르는 대신 ‘혹자’라 칭하고, 그 책의 단 한 부분을 읽고 예술을 통한 혁명은 ‘신화’라고 단언한다. J.G. 프레이저에 대한 그의 날카로운 통찰처럼, 그는 아버지를 죽이고 다시 아버지가 되어 이제 자식을 살해한다. 이쯤 되면 그가 누군지 알겠지만 그래도 그가 장정일이라는 것을, 또 ‘혹자’가 이지영이며 그 책이 ‘BTS 예술혁명’이라는 것을 굳이 밝힌다.(이 글에서 문제 삼는 장정일의 글은 ‘장정일 칼럼: 증류된 순수성의 이면’이다.)장정일의 자식 잡는 칼춤에 일일이 반론할 필요를 느끼지는 않는다. 이 책이 신화라는 그의 조롱을 되돌려 드리는 것으로 충분하다. 다만 책을 오독한 부분은 바로잡는다. 장정일은 이 책이 대중음악이 세상을 변혁한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읽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이 말하는 것은 음악에 그치지 않는다. 음악과 그 메시지를 재생산하는, 모바일 네트워크를 통한 ‘BTS-아미’(방탄소년단과 그 팬클럽)의 수평적 소통과 상호작용에 방점이 찍혀있다. 기존의 영화 이미지 너머 ‘네트워크 이미지’를 통해 예술을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시키고 있다는 것은 이 책의 또 다른 핵심이다.방탄소년단은 뮤직비디오를 생산하고 아미들은 그 사이의 빈 곳을 채우는 콘텐츠를 생산하며 이를 확산시키기 위해 유동적으로 움직인다. 이제 예술은 예술가와 관람자, 생산자와 수용자의 위계를 무너뜨리고 기성 권력을 뒤흔들며 풀뿌리처럼 비중심화된 체계로 나아간다. 이는 ‘방탄현상’의 특징으로, BTS 예술이 세상의 변혁을 징후적으로 표현한다고 보는 이유이기도 하다.장정일로 대변되는 기성세대들이 방탄소년단을 철학적으로 분석한 책을 비판하는 이유는 그것을 대중문화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급변하는 기술발전과 그 궤를 같이 하는 세대들이 창출하는 문화를 저속한 것으로 매도하는 그릇된 인식에서 비롯한다. 즉 이들은 문학이나 영화는 말할 가치가 있지만, 방탄소년단의 뮤직비디오나 ‘배틀그라운드’와 같은 게임은 분석대상이 될 수 없다는 ‘꼰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지금 세대의 가장 큰 특징은 ‘정신분산(Zerstreuung)’일 것이며, ‘꼰대’들은 이것을 도무지 용납하지 않는다. 벤야민이 ‘기술복제 시대 예술’의 특징으로 보았던 ‘정신분산(Zerstreuung)’은 아마도 보들레르가 번역한 ‘군중 속의 남자’(애드가 앨런 포)에서 힌트를 얻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소설에서 ‘나’는 ‘D 커피하우스’의 커다란 유리창에 앉아 런던의 거리를 바라보고 있다. 그러다 우연히 쇠약한 노인에게 관심을 갖게 되고 그를 뒤쫓게 된다. 이 남자는 교차로, 시장, 극장, 더러운 골목, 호텔 등 사람들이 붐비는 곳을 찾아 밤부터 다음 날까지 지치지 않고 군중 속을 헤매고 다닌다.‘군중 속의 남자’는 정신을 분산시켜 사람, 상품, 건물 등을 시각에 의존하지 않고 온몸으로 감각한다. 벤야민 식의 ‘정신분산’이 현대에서는 가만히 앉은 자리에서 이뤄진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만약 그런 것이 있다면) ‘제4차 혁명’의 (클라우스 슈밥이 주저리주저리 늘어놓고 있긴 하지만) 핵심인 인터넷, 유비쿼터스, 모바일에서 기인한다. ‘웹툰’을 보다가 ‘카톡’을 보내고, 찍은 사진을 순식간에 편집하여 ‘페북’에 올리고, 다시 ‘웹툰’을 보다가 음악을 바꾸고, ‘좋아요’ 개수를 확인하는 일이 지하철 좌석에서 채 한 정거장을 이동하기도 전에 일어난다.한병철은 이런 ‘정신분산’을 ‘멀티태스킹’이라 부르면서 동물의 생존 방식과 동일한 것으로 보았다. 멀티태스킹은 동물이 먹이를 먹으면서 천적을 경계하고, 짝짓기 상대를 물색하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동물들이 삶의 질이 아닌 생존 자체에 신경을 쓰는 것처럼 오늘날 인간의 삶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는 이상한 결론에 이르고 있다.이것이 이상한 결론인 이유는 우리가 생존을 위해서 멀티태스킹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은 멀티태스킹이 가능한 조건이 주어졌으므로 멀티태스킹을 한다. 이러한 물리적 토대 위에서 수용자는 동시에 생산자의 위치를 점할 수 있다. 이러한 예술혁명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왔다.“미래의 문맹자는 문자를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사진을 모르는 사람이 될 것이다.” 이것은 모홀리 나기의 말이지만 벤야민이 인용함으로써 더욱 유명해진 말이다. 저 예견은 이미 이루어지고 있다.내가 아는 어린 친구가 여자 친구에게 선물을 하겠다고 백을 추천해달라는 글을 페이스 북에 올렸다. 그랬더니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는데, 그들은 말 보다는 사진으로 보여주었고, 순식간에 이상하게 생긴 핸드백 전시장이 되었다. 훌라후프처럼 생긴 아주 큰 핸드백이 등장하기도 했고, 새끼손가락처럼 작은 가방을 올리는 아이도 있었다. 이 친구는 참다못해 “말을 말자”라는 의미로 김 위에다가 말(馬)을 김밥말이로 마는 이미지를 올렸다. 장난기가 발동한 다른 녀석이 흰색 비닐봉지를 가방처럼 메고 다니는 사진을 추가했다. . 친구들의 장난에 완전히 넋을 잃은 친구는 시바신상에 담배와 담배연기를 합성한 아주 불경스러운 사진을 가지고 와 “시바(Siva), 할 말이 없다”라고 썼다.요즘 10대나 20대는 유치하게 문자로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지로 말한다. 그리고 그들의 이미지 활용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런 아이들 앞에서 왜 책을 읽지 않냐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생각한 것을 말로 표현한다. 말은 음성언어다. 생각을 음성언어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문자언어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음성언어와 문자언어는 떨어질 수 없는 짝패라고 생각하고 있다.그런데 과연 그럴까? (이론의 여지가 많지만) 우리는 생각을 언어가 아닌 이미지로 한다. 우리는 이런 이미지를 말이나 문자로 번역한다. 그런데 생각이라는 이미지를 말로 하는 것은 쉽지만 문자로 번역하는 건 번거로울 뿐만 아니라 전달도 어렵다. 그렇다면 이미지로 된 생각을 사진과 같은 시각적 이미지로 번역하는 것이 훨씬 쉽지 않을까?미디어의 발전 속에서 문자언어는 가장 가독성이 떨어지는 ‘이미지’의 한 종류에 지나지 않는다. 영화, 웹툰과 그래픽 노블, 게임 산업 등은 모두 이미지에 기반하고 있다. ‘국제시장’과 같이 대중의 인지도만 높은 영화가 많듯이 ‘GTA’와 같은 질이 좋지 않은 게임도 있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의 ‘괴물’과 같이 흥행성과 작품성을 겸비한 영화가 있는 것처럼 그와 비슷한 수준의 ‘라스트 오브 어스’와 같은 게임도 있다. ‘토리노의 말’과 같은 예술영화가 있듯이 그에 상응하는 ‘아빠와 나’, ‘순례자의 길’ 같은 게임도 있다.▲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요즘 아이들은 ‘삼국지’보다는 웹툰인 ‘미생’을 보며 처세술을 배운다.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 ‘깊은 방’과 같이 노동문자와 사회문제를 다룬 소설이 있다면, 최규석의 웹툰 ‘송곳’은 그 어떤 소설보다 심도 깊게 노동문제와 노동운동의 지난함을 묘파해내고 있고, 강풀의 ‘26년’은 그 어떤 영화나 소설보다 5.18문제를 설득력 있게 다루고 있다. 과연 기존의 예술이 새로운 미디어 매체들이 생산하는 문화를 따라올 수 있을까? 기술과학의 발전 앞에서 “요즘 애들은 문제야! 책을 안 읽어.”라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 그렇게 말하는 우리는 왜 요즘 아이들이 하는 게임을 하지 않고, 웹툰을 보지 않나?혁명은 이미 시작되었고 이 혁명은 기존의 예술을 폐기하고 있다. 다만 칼을 든 자는 결코 말하지 않는,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을 믿는 자들에 의해 가로막혀 있을 뿐이다. 그러나 걱정하지 말 것. 저들은 죽이지 않아도 스스로 죽을 것이므로.

2018-06-08

철 지난 코미디 읽기

요즘 코미디프로가 재미가 없다. 더 말초적이고 더 자극적이다. 여전히 외모를 비하하고 여성과 남성을 비교하여 성을 차별하고 모독한다. 이런 프로를 보고 있자니 과거의 코미디 프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오늘은 보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었던, 숨은 의미를 읽어내야만 했던 대단한 개그 프로 두 편을 소개하려 한다. △ ‘아메리카노’ : 코미디의 정치성2011년 11월, 정규방송도 아닌 케이블TV에 한 소녀가 등장했다. 그녀는 자신의 몸보다 훨씬 큰 다운파카를 입고, 웃옷과 대조적으로 딱 달라붙는 원색의 붉은 바지를 입은 채, ‘할리라예’를 외치며 무대로 뛰쳐나왔다. 그녀의 등장은 코미디계의 지층을 흔들어 놓았으며, 그 흔들림은 우리의 삶으로 스몄다. 딱히 욕이라고도 할 수 없는 ‘간디작살’이라는 이상한 신조어의 때 아닌 열기가 그해 겨울을 휩쓸었다.이 프로에서 ‘간디작살’은 두 가지 의미로 쓰이고 있다. 하나, 일본어인 ‘간지’가 방송용어로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이를 우회하기 위해 ‘간디’를 끌어오고 있다는 것. 네이버의 오픈 국어사전에 따르면, 일본어의 ‘かんじ’(느낌)에서 온 말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폼 나다’, ‘멋지다’라는 뜻으로 전유되고 있다. ‘간디작살’은 “매력이 작살날 정도로 멋지다.”의 의미, 그러니까 “졸라 멋지다”는 의미일 것이다.이때 간디는 일본어 ‘간지’를 숨기기 위한 수단으로 작동한다. 다른 외국어가 지적 산물일 수 있지만, 유독 일본어만은 거부되고 또 저속한 어떤 것으로 이해되는 우리를 건들고 우리의 기만을 폭로된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 는 언명이 그러하듯, 말할 수 없는 것은 늘 더 많은 것을 말하기 마련이다.둘, ‘간디작살’은 단순히 “간디라는 사람이 정말 (작살날 정도로) 멋지다”라는 정도의 의미일 것이다. 알고 있는 바와 같이, 간디(1869~1948)는 비폭력·비협력을 주장했고, 반서구주의 속에서 동양의 정신적 가치의 위대함을 설파했으며, 흰 도티(허리에 두르는 면포)로 상징되는 반근대주의와 반자본주의의 첨병이자, 앎과 행동이 일치했던 몇 안 되는 성인이다.이런 간디가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일제강점기 아래에서 벌어진 자치운동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가 본격적으로 대중화되기 시작한 것은 1989년 ‘간디’라는 영화 개봉과 함께 일 것이며, ‘간디와 물레’(김종철, 1999)의 한 부분이 2004년 고등국어에 실리면서부터다. 이제 간디는 고딩이 알아야만 하는 그런 인물, 세계사 책에서는 단골 주관식이었던 스와라지·스와데시와 함께 짝을 지어 등장하는 입시용 인물로 변신한다.교과과정에서 늘 위대했으며, 그래서 꼭 알아야만 했던, 무엇보다 시험문제를 동반했던, 이 인물은 그래서 정말 알기 싫은 인물이 되어버렸다. 누군가를 싫어하게 만드는 가장 빠른 방법은 아마도 교과서에 그 이름을 기입하는 일일 것이다. 그 반작용으로 ‘간디작살’이 있다. 7통(7inch-17.78cm)의 바지를 입는 김꽃두레에게 간디는 오로지 말랐다는 이유로, 그래서 흰 팬티(도티) 한 장을 입어도 옷맵시가 나는, 매력이 철철 넘치는 이상적 인물로 변신한다.안영미가 흉내 내려했던 것이 중·고딩 양아치인지 아니면, 본드나 가스와 같은 불법약물에 중독된 20대 초반의 청소년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김꽃두레는 우리가 한 번쯤은 본 것 같은 그런 소녀라는 것이며, 이들은 우리 사회에 분명히 존재해왔고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며, 그럼에도 우리가 너무도 오랫동안 방치해왔던 그런 소녀라는 것이다.안영미는 이 코미디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어떤 식으로든 증명하고 있었던 이 아이들, 그럼에도 언제나 우리가 배제하려 했던 그런 존재를 우리 앞에 데려왔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들이 내뿜는 악취와 그들의 고성과 그들의 패악질과 그들의 무례함을 비로소 발견하게 되었다. 안영미의 위대함은 그들을 고발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며, 그들을 ‘그들’이라고 구획하는 ‘우리’의 위선을 깨닫게 해주었다는 데 있는 것도 아니다. 안영미는 우리와 그들을 만나게 해 주었으며, 그들 역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그들 역시 ‘우리’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안영미는 그렇게 우리의 감각을 확장시켜 주었고 우리의 삶의 범위를 넓혀 주었다. 그런 점에서 안영미의 코미디는 ‘정치적’이다.△‘10년 후’: 추락한 소망이미지‘츤데레’는 일본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인물의 한 유형을 일컫는 말이다. 새침하고 퉁명스럽지만(つんつん[츤츤]), 알고 보면 매우 부끄러움이 많은 성격(でれでれ[데레데레]), 무신경한 사람인 듯하지만 그 속은 다정다감한 사람이다. 아내에게 퉁명스럽게 대답했지만 기어이 설렁탕 국물을 사들고 들어가는 ‘운수 좋은 날’(현진건)의 김첨지, 둘리에게 매일 나가라고 구박하지만 도너를 비롯한 그의 친구들까지 자기 집에 기거하게 만드는 고길동! 알고 보면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가 그들이다.2015년 반영된 ‘10년 후’의 조직 폭력배(권재관)가 딱 이 츤데레다. 빌린 돈을 전문적으로 받는 조폭이, 몇 달째 수금이 되지 않는 가게에 찾아 간다. 그 가게 주인은 유치원에 다니는 아들을 둔 ‘싱글맘’(허안나)이다. 조폭은 가게 주인의 처지 따위는 아랑곳 않고 가게를 뒤엎고 손님을 쫓아내며 돈을 줄 때까지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반전은 이제부터다. 10년이 지났지만, 이 조폭은 여전히 돈을 받지 못했고, 여전히 이 가게에 와서 행패를 부린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댔나? 변한 것은 조폭과 싱글맘의 관계다. 조폭의 횡포가 일상이 되어버린 이 가게에서, 주인은 물론 손님마저 돈 내놔라, 라는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조폭 스스로도 이 말을 입버릇처럼 되뇔 따름으로 돈 받을 생각은 없다. 허안나와 호흡을 맞춰가며 장사하기 바쁘다.유치원생이었던 아들은 어느덧 자라 더러 사고도 치고 필요한 것도 많은 고등학생이 되었다. 컴퓨터를 산다, 수학여행을 간다, 뭐 그런 식으로 돈을 달라고 (엄마에게가 아니라 어느 틈에) 이 츤데레 조폭 아저씨를 조르면, 조폭은 못 이긴 척 부탁을 들어주고, 이를 지켜보는 엄마는 감동한다. 이 코너는 그렇게 로맨스를 키워가다 조폭이 싱글맘에게 얼렁뚱땅 청혼을 하는 식으로 끝난다.이 코너는 ‘츤데레 조폭’과 싱글맘의 러브스토리를 다루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과연 그럴까? 싱글맘의 자리에 우리의 삶을 대입한다면, 그 함의는 분명해진다. 이 코너의 ‘츤데레 조폭’은 백마 탄 왕자의 현대식 버전으로 읽힐 수 있다. 싱글맘의 지난한 삶을 구제하는 구원자는 멋있고 유능한 왕자의 형상이 아니다. 다른 사람에게 위협과 협박을 가하지만 ‘나’에게만은 친절한 그런 조폭의 형상으로 싱글맘을 찾아온다. 백마 탄 왕자의 출현은 결코 실현 불가능한 환타지로 존재한다. 물론 ‘츤데레 조폭’ 역시 백마 탄 왕자만큼이나 비현실적인 것은 마찬가지다. 싱글맘의 구원은 그 삶만큼이나 지난하다.이 코너의 조폭은 백마 탄 왕자와 달리 너무 늦게 도착한다. 왕자는, 공주가 가장 꽃다운 나이일 때, 공주가 자신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고, 미래가 공주를 향해서 활짝 열려 있어 자신의 소망을 펼칠 수 있는 그런 나이에 때맞춰 등장한다. 하지만 조폭은 밀가루를 뿌려 하얗게 머리가 세고 늙을 대로 늙고, 지칠 대로 지친, 그럼에도 좀처럼 나아질 것 없는 중년의 나이에 이르러서야 조폭은 찾아온다. 한때 ‘백마▲ 공강일서울대 강사·국문학탄 왕자’를 꿈꿨던 우리는 ‘츤데레 조폭’의 늦은 구원 앞에서 감지덕지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독해가 가능하다면 우리의 기대나 소망이 얼마나 저급한 수준으로 떨어졌는지, 혹은 (아직 추락할 것이 남았다고 믿는다면) 우리의 소망이 앞으로 어디까지 멸락할 수 있는지를 이 프로는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추락한 우리의 꿈의 우의도상이다.‘10년 후’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가장 절망적인 진실은 10년이 지났지만 경제적 조건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강산도 변할 수 있고 사람도 변할 수 있지만, 싱글맘은 10년 전에 진 빚을 갚을 수 없다.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해 사채 빚을 빌려 쓰더라도 그 빚을 갚을 수는 없다는 것, 오늘 벌어 어제를 막고, 내일 벌 돈으로 오늘을 막는 부채의 삶, 자본의 축적은 결코 가능하지 않다는 것,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이라는 것을 이 코너는 은연중에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2018-06-01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

로맹 가리는 프랑스의 유명한 소설가이자 외교관이다. 잘 알려진 소설로는 ‘하늘의 뿌리’(1956)와 ‘자기 앞의 생’(1975)이 있다. ‘하늘의 뿌리’는 프랑스에서 가장 권위 있다는 공쿠르상을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공쿠르상은 기수상자에게 다시 상을 주지 않지 않지만 로맹 가리는 ‘자기 앞의 생’으로 이 상을 한 번 더 받았다. 왜냐하면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아무도 에밀 아자르가 로맹 가리라는 것을 몰랐다가 그가 자살을 한 후에서야 이 사실이 밝혀져 프랑스 문학계를 두 번의 충격에 빠뜨렸다. 소설가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무언가를 쓰지 않고는 멈출 수 없는 사람들, 자신이 아닌 서술자로 불리는 무언가가 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그들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로맹 가리는 자신의 내밀한 유년을 자전적 소설 형식으로 썼다. ‘새벽의 약속’(1960)은 그런 책이다.이 작품의 중심인물은 로맹 가리이기보다는 자신의 어머니다. 어머니와의 일화는 낯부끄러운 일들로 가득한데도 로맹 가리는 그 치부들을 한겹 한겹 벗겨내고 있다. 이런 일은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프로메테우스보다 더 끔찍한 일인지도 모른다. 끝까지 가야 하는 이야기, 자신을 발가벗겨야 하는 일이 소설가의 일이라면 로맹 가리는 누구보다 훌륭히 그 일을 해내고 있다.어머니와 관계된 수많은 에피소드 중 로맹 가리는 한 일화를 소개하며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얼굴이 달아오른다”라고 쓰고 있다. 왜냐하면 로맹 가리의 어머니는 이웃들에게 모욕을 받았다고 생각되면 그들을 층계참으로 불러내고선 “높고도 자랑스러운 선언”을 하였기 때문이다. 그 선언의 내용은 이런 식이다.“더럽고 냄새나는 속물들아! 감히 너희들이 누구와 이야기하고 있는 줄이나 아는 게야? 내 아들은 프랑스 대사가 될 사람이야.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을 것이고, 위대한 극작가가 될 거란 말이야. 입센 가브리엘레 단눈치오가 될 거라구! 내 아들은…(중략.). 내 아들은 런던식으로 차려입고 살 거야!”(50면)“런던식으로 차려입고” 산다니, 그걸 사람들 앞에서 소리치다니, 이 글을 읽는 나도 얼굴이 빨개질 정도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 매번 반복된다면 얼마나 쪽팔릴까? (이럴 때는 ‘부끄럽다’는 말로 충분하지 않다. 비속어이긴 하지만 ‘쪽팔리다’는 말이 제격이다. ‘쓰레빠’와 ‘슬리퍼’가 결코 같을 수 없듯이 말은 표준어로 담을 수 없는 것들이 있다.감당할 수 없는 수치심을 느끼며 로맹 가리는 자살을 꿈꿨다고 한다. 이층 높이만큼 장작을 쌓아둔 곳으로 가서 장작을 하나씩 빼내어 통로를 만들고, 아무도 찾을 수 없고 들어올 수 없다는 느낌을 느낄 만한 곳에 이르러 오래도록 머물며 오래오래 울었다고 한다. 그의 나이 여덟 살의 일이다. 그리고 어느 날은 “모든 것을 끝장내기 위하여, 죽은 나무로 된 나의 성채가 내 위로 단숨에 무너져 나를 인생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하여 장작을 뽑아낼 작정을 하였다고 한다. 그는 그 부분을 이렇게 쓰고 있다.“나는 ‘장작을 밀어낼’ 자세를 취했다.그러자 호주머니 안에 오늘 아침 빵집 골방에서 훔친 양귀비 과자 조각이 들어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그 빵집은 우리 집과 한 건물에 있었는데, 그 집 주인은 손님이 있을 때면 골방을 비운 채 비워두곤하였다. 나는 그 과자를 먹었다. 그런 다음 다시 나는 자세를 취하였고, 큰 숨을 내쉬며 밀 준비를 했다.고양이 한 마리가 나를 구했다.갑자기 그놈의 콧마루가 장작 사이에서 내 앞에 나타났던 것이다. …중략…그놈은 뚫어져라 나를 바라보더니, 조금치도 망설이지 않고 내 뺨을 핥기 시작하였다. 나는 그 갑작스런 애정의 동기에 대해 전혀 환상을 품지 않았다. 아직 내 뺨과 턱에 눈물에 젖어붙은 양귀비 과자 부스러기들이 붙어 있었던 것이다. 그 애무는 매우 타산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상관없었다. 내 뺨을 핥는 깔깔하고도 따뜻한 혀의 감촉은 나로 하여금 황홀해서 미소 짓게 하였다. 나는 눈을 감고 내버려두었다. 그 후, 지금껏 살아오는 동안도 그랬지만, 그때에도 나는 내게 보이는 애정의 표시 뒤에 정확히 무슨 일이 개입하고 있는지 알려고 애쓰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여기 다정함과 동정의 모든 외양을 갖추고 내 얼굴 위를 이리저리 열심히 핥고 있는 따뜻한 혀의 다정스런 콧잔등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행복해지기 위해 내게 그 이상의 것은 필요치 않다.고양이가 핥기를 끝냈을 때 나는 훨씬 나아진 것 같았다. 세상은 아직도 가능성들을, 결코 하찮게 여길 수 없는 우정들을 제공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고양이는 옹알거리며 내 얼굴을 비비고 있었다. 나는 그놈의 옹알거림을 흉내내려 애썼고, 우리는 서로 다투어 옹알거려가며 썩 행복한 한때를 보냈다. 나는 호주머니에서 과자부스러기를 긁어 모아 녀석에게 주었다. 녀석은 흥미를 보이더니, 꼬리를 빳빳이 세우고 내 코에 몸을 기댔다. 놈이 내 귀를 물었다. 간단히 말해, 인생은 다시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되었던 것이다. 오 분쯤 뒤에, 나는 나무로 된 내 성 밖으로 기어나와 집을 향해 갔다. 손은 호주머니에 찌르고 휘파람을 불며, 꽁무니엔 고양이란 놈을 달고서.그 후 난 언제나 생각해왔다. 사는 동안, 만일 진정 순수하게 사랑 받고 싶거든 얼마간의 과자 부스러기를 지고 있는 것이 좋다고”(51~52면).죽기를 결심했던 로맹 가리는 고양이가 자신의 얼굴을 핥았다는 사실 때문에 죽기를 멈춘다. 어떤 거룩한 의미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단순히 얼굴에 묻은 과자 부스러기를 먹기 위한 고양이의 행동에 불과했는데도 말이다. 사람을 살리는 것은 대단한 계시나 기적이 아니라 아주 사소한 일에 지날지도 모른다. 사람을 죽일 만큼 힘들게 만드는 일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인간이 죽고 사는 일은 허약한 기반 위에 아주 간신히 머물고 있다.이렇게 말해버리면 삶이 너무 허무하고 공허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이에 대한 로맹 가리의 처방은 간단하다. 어떤 행위 뒤에 내재한 정확한 의미를 찾으려고 애쓰기 보다는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고 있는 그 행위에 집중하라는 것. 비록 고양이가 양귀비 과자 부스러기를 먹기 위해 자신을 핥았지만, 그러한 논리적 인과보다는 표면적으로 느껴지는 “다정함과 동정”을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는 일이라고 로맹 가리는 말하고 있다.▲ 공강일서울대 강사·국문학우리가 생각하는 논리적 이유라는 것은 인간의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사건은 늘 그런 인간의 수준을 뛰어넘어 끝 간데 없이 진행된다. 그런데도 인간은 사건의 일부만을 발췌하여 그것이 사건의 시작이자 끝인 것처럼 생각하고, 그리하여 그 사건에 쉽게 패배한다. 인간은 결코 패배하지 않지만, 패배가 가능하다면 그것은 인간 수준의 논리일 뿐 인간은 아니다.고양이의 “깔깔하고도 따뜻한 혀의 감촉”에서 살아갈 희망을 찾았던 로맹 가리는 1980년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그의 죽음은 진 세버그와 밀접한 관련 있는 듯하다. 로맹 가리는 24살 연하의 진 세버그와 1963년에 결혼하여 1968년 이혼하지만 둘의 관계는 계속이어진다. 로맹 가리는 진 세버그와의 관계에 대해서 “도울 수도 변화 시킬수도, 결별할 수도 없는 여자를 사랑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우린 이혼이 갈라 놓기에는 너무 가깝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진 세버그가 자살로 발견된 뒤 로맹 가리는 삶의 의욕을 잃은 듯하다. 그가 ‘자기 앞의 생’에서 했던 이런 말처럼.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2018-05-25

개, 고양이, 꿈 그리고 나

△깐돌이‘골짜기 골짜기 말은 많이 들어도 이런 골짜기는 처음이야’라는 말을 듣곤 했던 물안실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랐다. 어릴 때는 고양이나 강아지와 함께 살았다. 개를 메어놓긴 했지만 목줄을 풀고 달아날 때가 많았다. 다섯 살 때까지 키운 진돗개는 그렇게 달아나 동네를 어슬렁거리다 쥐약을 먹고 죽었다.가장 오래 함께 지냈던 개는, 그때는 개의 종에 대해서도 몰랐는데 돌이켜 보면, 아마도 코기 계열이었던 것 같다. 이 강아지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이삿짐센터를 운영하시던 작은아버지가 데리고 오셨다. 어떤 집에 이사를 하러 갔는데 마당 넓은 집에 살던 주인이 아파트로 이사를 가면서 이 강아지를 버리려 했다고 한다. 그 때만 해도 ‘반려동물’은커녕 ‘애완동물’이라는 개념도 없이, 개는 그냥 짐승이었고, 더 심하게는 식용이었을 때니까. 작은아버지는 불쌍한 생각이 들어 덥썩 받아가지고 오셨다.명절에 작은아버지가 이 강아지를 데려다 놓았다. 이 녀석은 암컷이었는데, 어머니는 그런 것 따윈 무시하고 하도 까불까불한다고 해서 ‘깐돌이’라고 불렀다. 깐돌이는 총명해서 일을 하러 갈 때도 따라왔고 지겨우면 혼자 집으로 갔다. 신통하게도 멀리 동네 밖 아버지 경운기를 귀신 같이 알아맞췄다. 깐돌이가 마당에서 짖으면 형과 나는 텔레비전을 끄고 공부하는 척을 했다. 깐돌이는 우리 집에서 거의 10년을 함께 살다 자연사했다.시골의 고양이는 거의 대부분이 길고양이가 낳은 새끼를 데리고 오는 것에서 시작한다. 고양이가 새끼를 낳으면 그 새끼를 키우며 대물림해서 내려간다. 강아지는 풀어두어도 집을 벗어나는 일이 없는데 고양이는 늘 사라지게 마련이었다. 아무리 잘해줘도 1년이 채 되지 않아 집을 나가버렸고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그런 개나 고양이가 싫었다. 자기들 마음대로 떠나가 버렸고 자기들 마음대로 죽어버렸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은 이런 식인 것 같아서, 늘 버림받는 것은 나인 것 같아서,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데도 괜히 냄새가 난다며 동물을 멀리했다.△루미작년 10월 초에 길고양이 한 마리를 데리고 왔다. 옆집 암고양이를 좋아하는 이 숫고양이는 문을 열어놓으면 아주머니의 집안으로 들어오곤 했다. 아주머니가 고양이를 키우고 싶으면 그 고양이를 붙잡아 주신다고 했다. 그렇게 루미는 나와 함께 살게 되었다. 우리 집에 온 후 루미는 바깥에 나가려고 안간힘을 썼다. 수의사에게 중성화 수술에 대해 물었더니 일단 어느 정도 친해진 뒤에 데리고 오라고 했다.고양이 사료, 간식, 화장실, 모래, 장난감 이런 것들을 샀다. 또 고양이를 안정시키는데 좋다고 하는 캣닢 스프레이도 선물받았다. 루미는 한 동안 잘 지냈다. 내 침대를 좋아해서 방문을 열어놓으면 이불에 실례를 하곤 했지만, 그런 것 빼고는 다 좋았다. 한창 바쁠 때도 루미와 놀아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아침마다 녀석이 흩뜨려 놓은 모래를 치웠다. 그걸 하려고 비싸기로 유명한 진공청소기도 구입했다.루미는 두 달 동안 두 번 탈출을 했다. 한 번은 화장실 방충망을 발톱으로 뚫고 집을 나가버렸다. 다행히 옆집 암고양이를 만나고 있어서 쉽게 데려올 수 있었다. 마지막 탈출은 심각했다. 화장실 방충망을 고치기 전이어서 일전에 달아났던 그 구멍으로 나갈 수도 있었을 텐데, 루미는 방충망을 갈갈이 찢어놓고 사라졌다. 마치 일부러 자신의 분노를 드러내기라도 하듯이 내 마음도 갈기갈기 찢어졌다.그랬던 루미는 겨울 어느 날, 암고양이와 새끼 두 마리를 데리고 나타나 우리 집 옆 허름한 창고에 기거했다. 나는 이 녀석에게 줄 사료와 간식을 새로 구입했다. 그렇게 서너 달을 지냈을까, 녀석은 새끼들을 데리고 다시 휑하니 사라졌다. 가슴이 미어졌다.그랬던 루미가 지난 주 비오는 날, 다시 나타났다. 새벽 두 시, 루미가 나를 보고 울었다. 나도 반가워 눈물이 났다. 사료를 챙기러 집에 들어간 사이 현관문까지 따라왔다. 녀석은 집으로 들어오지는 않고 나와 눈이 마주치자 쏜살같이 튀었다. 배가 고파 나를 찾아왔지만, 다시 잡히는 것은 싫었던 것 같다. 다시 가슴이 아렸다.예전에 꿨던 꿈이 생각난 것은 순전히 루미 때문이다.△고양이의 자살아무것도 되지 않을 때였다. 취업도 대학원 진학도 실패했다. 친구집과 이모집을 전전하였고, 그 고달픈 삶 앞에서 전전긍긍할 때였다. 그러다 자살을 했고 자살한 사람들만 모이는 지옥에 갔다. 사람들은 줄을 지어 어느 곳으로 가고 있었는데 그 줄이 끝나는 곳에는 민둥산이 있었다. 어렴풋한 그 산 꼭대기에 염라대왕이 높은 의자에 앉아 사람들에게 왜 자살했는가를 물어보고 있었다. 사람들의 말을 듣고 타당하면 천국으로 그렇지 않으면 지옥으로 보내는 듯했다.줄은 길었고 줄의 길이만큼 사람들의 사연은 구구절절했다. 끝나지도 않을 것 같은 줄의 끝에 서서 나는 이것이 꿈이라는 것을 분명히 깨달을 수 있었다. 지루하기도 해서 그만 꿈에서 깰까 말까 망설이는 사이 내 앞에서 서너 번째에 서 있는 고양이를 보게 되었다. 고양이가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무엇보다 고양이가 왜 죽으려고 했는지가 궁금해서 이 지루한 꿈을 이어가기로 했다. 드디어 고양이의 차례가 되었다.“저는 원래는 집고양이었습니다. 가족들은 저를 사랑했고 저 역시 가족들을 사랑했습니다. 조금씩 자라며 제 발 안 속에 깊숙이 감춰진 발톱이 있다는 것을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 발톱을 저는 어떻게든 감추고 싶었지만, 이 발톱은 제가 억제할 수 없는 욕망처럼 제 의지와 상관없이 튀어나왔습니다. 감출 수 없다는 것, 제 안에 자라고 있는 이 야성을 숨길 수 없다는 것,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저는 집을 나왔습니다.”천국으로 가던 사람도 지옥으로 가던 사람도 멈춰 고양이에게 관심을 보였다. 고양이를 보려는 사람들 때문에 줄은 자연스럽게 ‘ㄴ’자 모양으로 휘어졌다.“집을 나와서 저는 한동안 자유를 만끽했습니다. 도시의 어두운 밤을 기웃거렸고 담장이든 지붕이든 마음대로 뛰어오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즐거움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이 야성을 사용할 곳이 없었습니다. 도시에는 쥐도 없었고, 쥐가 있다하더라도 사냥하는 방법을 배운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쓰레기통을 뒤져야 했고, 사람들이 버린 음식물 봉투를 찢는 일에 제 발톱을 사용하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고양이의 말은 유장하면서도 논리정연했다.“이럴 바엔 제가 나온 집으로 다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저에게 주어진 자유에 도취되어 어디까지 온지 알 수 없었습니다. 설사 간신히 집을 찾을 수 있었다 하더라도 제 야성을 억누르며 사람들과 함께 살 엄두를 내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태생이 집고양인 저는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무서움을 느꼈고 그런 이유로 도시를 떠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길고양이로는 제 야성을 충족시킬 수 없었고, 그 방법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공강일서울대 강사·국문학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사람들은 조용했다. 번번히 말을 끊기 좋아하던 염라대왕도 고양이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제 발은 작고 털로 보숭보숭하지만 거기에 감춰진 날카로운 발톱을 숨길 수 없는 저는 집에서도 밖에서도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승의 어디에도 머무를 수 없다는 것, 그것이 제가 내린 결론이었습니다.”나는 이 꿈이 끝나기 전, 이 고양이가 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루미를 볼 때마다 아린 것은, 내가 두고온 스무 살 무렵의 막막하기만 했던 그 때의 나이기 때문인지도….

2018-05-18

‘효녀’ 심청 혹은 ‘현자’ 심청

△심청의 죽음어버이날.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인당수에 빠졌다는 심청을 떠올린다. 심청은 스스로 선택하여 공양미 삼백 석에 몸을 판다. 이런 심청의 선택은 자발적인 것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자발적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조금 시야를 확장해 보면 이러한 심청의 자발적 선택 역시 사회에서 습득되고 사회가 설득한 것으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그건 어쩌면 당대의 사회가 자식에게 요구하는 ‘효(孝)’라는 사회적 압력이 작동했고, 이것에 굴복한 꽃다운 심청은 반강제적으로 행동한 것인지도 모른다.그런데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인당수에 빠지는 행위, 이것이 심청의 운명이었다고 말이다. 그녀의 이름이 이를 증거한다. 심청의 이름인 한자어 ‘沈淸’에서 ‘啞은 성씨로 쓰일 때는 ‘심’이라 읽지만, ‘잠기다’라는 뜻으로도 쓰이며 ‘침’으로 읽힌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이라는 시집에 나오는 그 ‘침묵’에도 이 한자를 쓴다. 침묵은 말 없음에 잠긴다는 뜻이다.)그런 점에서 ‘심청’은 두 가지 뜻을 지니고 있는 셈이다. 심청은 이름이기도 하겠지만, 동시에 “맑은 물에 잠기다”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즉 “심청이 인당수에 빠지다”라는 말은 동어반복 밖이라 할 수 있다. “맑은 물에 빠질 소녀(심청)는 맑은 물(인당수)에 빠졌다(침청).” 심청은 이름 속에 자신의 운명이 이미 정해져 있었던 셈이다.심청은 운명에 굴복했다. 오늘날 관점에서 보자면 그녀는 수동적이고 패배주의에 찌든 나약한 여성이다. 아버지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려서는 안 된다. 여기서 아버지는 단순히 아버지가 아니라 남성, 국가, 사회, 권력 등과 같이 심청을 억압하는 것들을 상징한다. 여성은 이런 대명사 ‘아버지’에 맞서 싸워야 한다. 이제 심청은 시대착오적인 존재로 추락한다.△운명과 자유의 문제그런데 운명을 따라가는 삶은 꼭 비자발적이고 수동적인 삶의 방식일까? 이것이 스토아학파가 처한 문제였다. 이들은 개인의 자유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면서도 운명이라는 것을 굳건히 믿었다. 그들이 보기에 운명은 “이겨낼 수 없고, 제지할 수 없고, 방향을 돌릴 수 없는 원인”이다.이런 운명이라는 거대한 원리에 맞추어 가는 삶을 긍정하는 사람을 스토아학파는 현자라고 보았다. 얼핏 보기에 현자의 삶은 운명의 굴레에 갇힌 비주체적이며 수동적인 삶처럼 느껴진다. 스토아학파의 가치의 실행자인 ‘현자’에게 자유가 주어질 것 같지는 않다. 운명과 자유, 라는 이 모순적 관계를 스토아학파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을까?스토아학파는 자유를 새롭게 해석해 낸다. 그들은 자유를 필연성이라고 보았다. 스토아학파는, 어리석은 사람만이 꼭 있지 않으면 안 될 것을, 그것과는 다른 것으로 만들려고 한다고 주장했다. 즉 어리석은 사람은 운명을 거부하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으려고 한다. 그러나 현자는 사건의 법칙(성)을 자기 자신의 법칙(성)이라고 본다. 현자는 다른 것을 조금도 기대하지 않는다. 그들은 운명을 긍정한다.어리석은 사람은 자의(恣意)를 중시하며 이 자의는 정욕과 무질서의 격정으로 넘쳐흐른다. 이 자의 혹은 욕정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은 자유롭지가 못하며, 자기 충동의 노예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병든 사람이다.그러나 스토아철학을 바탕으로 이런 ‘자의’를 지배하게 되어 건강해진 현자는, 운명의 필연성에 짓눌려 괴로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키케로의 말처럼 철학은 영혼의 의약이다. 철학자가 자기의 육체적인 성장과 성숙을 당연하고 자연적인 것이라고 보는 것처럼, 현자는 운명이 정해준 것을 당연한 것이라고 받아들이며 이 운명을 거부하지 않고 스스로 선택한다.△자유 : 운명을 발견하는 일스토아학파는 운명을 말하면서 어떻게 자유를 말할 수 있는가, 라는 물음에 대해 나름의 답을 내린 힐스베르그의 결론은 이렇다. 모든 운명을 긍정하며 운명을 받아들일 줄 아는 것이 자유며, 이 자유를 괴로워하지 않는 자가 현자라는 것.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스토아학파의 윤리의 핵심 개념은 오이케이시스(Oikeiosis)에 대해 말해야 한다.오이케이시스는 윤리적인 규범을 외부에서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자아의 내면에서 끌어내어 ‘전용(자기 것으로 삼음, Zueigung)’하는 일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플라톤의 오이케이온(Oikeion=선)도 아니며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평균적 또는 보편적으로 이상화된 ‘인간의 본성’도 아니다.“오이케이오시스란 ‘자기 것으로 삼음(Zueigung)’이다. …중략…스토아학파가 말하고 있는 인간의 본성은 플라톤의 윤리학이 말하는 그런 오이케이온(Oikeion=아카톤 선)도 아니고, 또 똑같이 이상화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간의 본성도 아니며 감각적인 자기지각에서 충동적으로 생긴 오이케이오시스임이 분명하다(‘서양철학사’, 1992, 318면).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는 외부에서 왔거나, 인간의 평균적인 것이기 때문에 윤리적 규범의 목록이 존재한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는 규범이 있기 때문에 그 규범을 지키면 윤리적이다. 이에 반해 스토아학파에게는 규범이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외부로부터 오는 윤리적 규범을 부정한다. 그들에게 윤리적 규범이 있다면 그것은 개인의 내면에 있다.스토아학파에게 윤리가 내면에 있다면, 운명도 이와 같다. 외부에서 운명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내면에 운명이 새겨져 있고, 스토아학파는 수행을 통해 이 운명을 스스로 발견하여야 한다. 비록 운명이 주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그 운명을 찾는 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몫인 것이다.인간은 운명을 알지 못하며 개인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 자신의 운명을 찾으려는 노력 그 속에서 절대적 자유가 생성된다. 이 자유는 윤리나 도덕에 지배받는 자유가 아니라 그러한 모든 것을 뚫고 날아오르는 자유다. 새로운 윤리와 도덕을 창조하는 자유다.▲ 공강일서울대 강사·국문학다시 말해 운명은 주어져 있지만 인간은 운명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운명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하여야 한다. 운명은 ‘나’의 내부에 각인되어 있다. ‘나’를 끝까지 밀고 나갈 때 비로소 운명은 발견된다. 그렇다면 어디까지 ‘나’를 밀고 나가야 하는 것일까? 그것을 알 수 없다. 그 알 수 없는 곳까지 밀고나가는 일, 이것이 자유며, 스토아학파의 윤리다. 다시 ‘심청전’으로 돌아와 보자. 심청은 자신의 이름이 ‘맑은 물에 빠지다’라는 뜻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녀가 치마로 자기 얼굴을 감싸고 인당수에 들어갔던 그 때 비로소 심청은 이것이 자신의 운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녀는 연꽃으로 부활한다. 심청이 인당수에 빠진 것은 자신의 운명을 발견하기 위한 노력의 일부였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의 운명을 찾아내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전용했다고 볼 수 있는데, 그런 점에서 보자면 심청은 ‘효녀’이기 이전에 ‘현자’인 셈이다.

2018-0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