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한국의 슈퍼히어로 홍길동

등록일 2018-08-03 20:32 게재일 2018-08-03 17면
스크랩버튼
▲ 전라남도 장성군 홍길동 테마파크. 홍길동의 생가에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한(恨) 많은 홍길동과, 그에게 ‘호부호형’을 허락하는 홍판서의 모습이 연출되어 있다. 하고많은 에피소드 중에서 이 장면이 가장 많이 알려진 이유는 무엇일까? 차별받는 사람들의 대명사인 홍길동은 그런 차별에 대항하여 자신의 권리를 기필코 찾아내고야 마는 인물이다. 그런 홍길동의 저항과 승리가 저 장면에 압축적으로 담겨 있다. 사람들이 ‘호부호형 에피소드’를 좋아하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홍길동이 오늘날까지 사랑받고 있다는 것은 결국 여전히 우리 사회에 차별이 만연해 있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 전라남도 장성군 홍길동 테마파크. 홍길동의 생가에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한(恨) 많은 홍길동과, 그에게 ‘호부호형’을 허락하는 홍판서의 모습이 연출되어 있다. 하고많은 에피소드 중에서 이 장면이 가장 많이 알려진 이유는 무엇일까? 차별받는 사람들의 대명사인 홍길동은 그런 차별에 대항하여 자신의 권리를 기필코 찾아내고야 마는 인물이다. 그런 홍길동의 저항과 승리가 저 장면에 압축적으로 담겨 있다. 사람들이 ‘호부호형 에피소드’를 좋아하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홍길동이 오늘날까지 사랑받고 있다는 것은 결국 여전히 우리 사회에 차별이 만연해 있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홍길동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홍길동은 허균의 소설 ‘홍길동전’에 등장하는 가상의 인물이다. 양반가의 서자로 태어난 홍길동은 벼슬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불만을 품고 가출을 단행한다. 한 도인으로부터 도술을 배워 ‘활빈당’의 우두머리가 된다. 활빈당은 매관매직을 일삼는 관리와 양반들의 재산을 몰수하여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의적이다. 홍길동의 이런 행태는 조선을 흔들고 왕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된다. 왕은 홍길동을 잡으려 동분서주하지만, 그의 신출귀몰한 신통력 때문에 번번히 실패하고 만다.

보다못한 신하가 홍길동에게 병조판서 벼슬을 주고, 그것을 받으러 왔을 때 잡자는 간교한 꾀를 낸다. 홍길동은 벼슬을 받는 것이 소원이긴 했지만, 정작 벼슬을 할 생각은 없었다. 서자여서 관직에 오를 수 없는 자신의 서러움을 벼슬을 통해 씻어버리고자 했을 뿐이다. 이미 궁궐의 속셈을 훤히 눈치챈 홍길동은 벼슬만 챙긴 채 조선을 떠난다. 그 뒤 홍길동은 율도국을 정벌하고 이상국을 세운다.

‘홍길동전’은 조선사회의 모순을 비판하는 듯하더니 어느새 도적떼의 활극을 그려 통쾌함을 자아내며, 식민지 국가 건설이라는 자못 방대한 스케일을 연출하기도 한다.

홍길동은 당대의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고 오늘날까지 그 이름은 사랑받고 있다. 다양한 문서의 서식란에 쓰인 이름은 김갑돌, 이아무개보다 ‘홍길동’일 때가 월등히 많다는 것이 그 증거다. 관아와 궁궐을 풍비박산냈던 홍길동이, 오늘날 관공서의 서식란에서 출몰한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전라남도 장성군의 홍길동

때로 홍길동은 실존인물인 것처럼 착각이 들 정도다. 아닌 게 아니라 1997년 강원도 강릉시와 전라남도 장성군에서 때아닌 ‘홍길동 고향’ 논쟁이 벌어졌다. 이 때는 지역마다 축제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한창일 때여서 서로 홍길동을 선점하여 지역의 상징물로 삼고 싶어했다.

그 최종 승자는 장성군으로 낙점되었다. 왜냐하면 홍길동은 소설 속 인물이긴 하지만 실존인물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이다. 조선실록을 뒤져보니 ‘연산군일기’ 5회, ‘중종실록’에 4회, ‘선조실록’에 1회 홍길동이 등장했다. 이런 기록을 바탕으로 홍길동의 출생의 비밀을 알 수 있게 되었다.

홍길동은 1446년경 장성 황룡면 아치실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함경도 경성절제사를 역임했던 홍상직이며, 어머니는 기생노비인 옥영향이다. 아치실 암탉골에는 홍길동이 태어났다는 집터가 남아 있는데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추정된다. 장성군은 1998년부터 2011년까지 23만㎡에 515억원을 투자해 홍길동의 생가를 복원하고 테마파크를 조성하였다. 또한 매해 축제를 열어 의적 홍길동을 기리고 있다.

△시뮬라크르(simulacre)와 시뮬라시옹(simulation)

‘홍길동전’이 없었더라면 실제 홍길동에 대한 관심은 지금보다는 덜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홍길동이라는 소설 속 가상의 이미지는 실제를 압도하여 실제보다 더 실제처럼 작동한다. 그런 점에서 홍길동은 시뮬라크르의 전형이다.

시뮬라크르란 장 보드리야르가 1982년에 체계화시킨 철학용어다. 사전적 의미는 ‘원본으로부터 복제되어 나온 또 다른 원본’이다. 원본은 유일하고 단일하다. 원본을 복제하면 복제품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어떻게 복제물이 원본의 자격을 띨 수 있을까? 그 작동 방식은 이렇다.

먼저 원본에 대한 모방이 이뤄진다. 그 다음에는 원본과의 연결성을 끊어내고 스스로 생명력을 갖춘 독립된 지위를 지닌 원본으로 군림하게 된다. 이것은 홍길동에게 그대로 적용된다. 이렇게 복제품이 원본을 뛰어넘는 과정을 ‘시뮬라시옹’이라고 부르고 이렇게 만들어진 새로운 원본을 ‘시뮬라크르’라 부른다.

△슈퍼히어로 홍길동

이러한 홍길동의 시뮬라크르는 외국에서도 인기다. 그 곳은 다름 아닌 미국이다. 오브라이언이 쓴 ‘홍길동의 전설(The Legend of Hong Gil Dong)’ 아동용 그래픽 노블이 미국에서 인기를 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픽 노블이란 이야기와 그림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채색된 만화를 뜻한다.) 그런데 오브라이언은 어떻게 홍길동을 알았을까?

오브라이언은 의료선교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1960년 한국에 왔다. 서울과 거제도, 대구 등에서 13년을 산 그녀는 많은 한국인들과 교류하며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배웠다. 이 곳에서 그녀는 다양한 한국의 전설과 이야기를 체득하였고 그것을 만화로 그렸다. 2007년 9월 출간한 ‘홍길동의 전설’은 ‘2007 올해의 최우수 아동도서’와 ‘최우수아동그래픽소설 10선’에 선정되었으며, 아시아태평양아메리칸 도서관사서협회에서 수여하는 ‘아태문학상’을 받았다.

오브라이언이 그린 ‘홍길동의 전설’은 한복을 입고 서얼차별로 고통을 받는 조선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한국도 낯설 텐데, 그보다 생소한 조선에 살았던 홍길동이 인기를 끌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슈퍼히어로라는 공통 분모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대개 슈퍼히어로들은 악당을 물리치고 사회 정의를 지켜나간다. 홍길동 역시 신분차별에 저항하며, 가난한 자들을 돕는다. 오르페자는 슈퍼히어로들의 중요한 특징으로 상실을 들고 있다(B.J. Oropeza, The Gospel According To Superhereoes, 6~7면). 슈퍼맨은 고향을, 스파이더맨은 사랑하는 아저씨를, 배트맨은 부모를, 스폰은 자신의 삶을 잃어버린다. 그들은 이러한 상실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을 돕고 악과 맞서서 싸운다.

엑스맨과 슈퍼맨이 천성적인 힘을 가졌다면, 스파이더맨이나 헐크는 외부적 요인에 의해 특수한 능력을 얻게 된다. 그러나 홍길동은 평범하기보다는 미천한 신분으로 태어났지만, 자신의 나아가야 할 방향을 스스로 선택하고 이를 위해 노력한다. 이러한 홍길동의 모습은 스스로의 힘으로 영웅이 되는 배트맨과 닮아 있다.

▲ 공강일서울대 강사·국문학
▲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

배트맨과 다른 점은 자신의 힘만으로 세계를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홍길동은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혼자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활빈당이라는 산적을 규합하였다. 그는 이 평범한 사람들과 함께 세계를 변혁시키고자 하였다. 그런 점에서 홍길동은 미국의 다른 슈퍼히어로들과는 차별점을 갖는다. 개인의 능력이 아닌 사람과 연대하고 그런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홍길동은 민중의 영웅이 될 자질을 가지고 있다.

슈퍼히어로는 변화하는 시대에 맞게 변화해 왔다. 한국 최초의 슈퍼히어로 ‘라이파이’, 커다란 오른쪽 주먹으로 악당을 무찌르는 ‘주먹대장’, 태권도 남매 ‘아루치 마루치’, 우주 괴물과 싸우는 ‘우뢰매’가 있다. 사람들은 슈퍼히어로에게 자신을 투영하여 그들이 가진 능력과 꿈을 공유하고자 한다. 무수한 히어로의 등장과 퇴장하는 과정 속에서도 홍길동이 인기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가진 특수한 능력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조금 더 나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홍길동의 용기 때문이리라.

공강일의 바람의 경치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