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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본능으로서의 ‘구별 짓기’

△옷의 기능옷은 ‘구별 짓기’의 본능을 적극적으로 반영하여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 냈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키톤(Chiton)’이라고 불리는 옷을 입었다. 옷이라고 했지만, 몸에 천을 두르는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나 당시의 기술로는 그 정도의 천마저도 생산하기가 쉽지 않았다. 지금도 생산이 까다로운 모직물이나 비단은 고대사회에서는 더욱 생산이 어려웠을 뿐 아니라 귀하고 비쌌다. 그러니 이런 옷은 한정된 일부 계층의 사람만 입을 수 있었을 것이다.로마시대 원형경기장으로 가보자. 이곳에서는 검투시합이 벌어지곤 했다. 시합이라고 했지만 거의 살육에 가까웠다. 싸움이라고는 해 본 적 없는 죄수에게 칼을 주고, 잘 훈련된 군인과 싸우게 했기 때문이다. 죄수는 대부분이 사형수였는데 소매치기, 좀도둑, 생계형 범죄자도 사형수가 되는 시대였다. 그러니 이들이 싸움을 잘 할 리 없었고, 전문적인 검투사와 싸워 이길 가능성도 매우 낮았다.검투시합을 보기 위해 원형경기장에 사람이 몰렸다. 사람들은 자신의 계층과 신분을 드러내는 옷을 입었다. 일반적으로 남성은 무릎까지 닿는 블라우스 형태의 ‘토니카(Tonica)’를 입었다. 그리고 로마의 시민만 토니카를 휘감는 ‘토가(Toga)’를 입을 수 있었다. 옷의 색과 천도 계층마다 달랐는데, 귀족은 린넨이나 흰 양털로 된 옷을, 그 중에서도 원로원 의원은 넓고 붉은 줄이 있는 토니카를 입었다. 기사 계급은 자주색 장식을 착용할 수 있었고, 평민이나 노예는 조잡하고 어두운 색의 옷을 입어야 했다. 신발도 신분에 따라 달랐는데, 귀족은 붉은색이나 주황색 샌들을 신었고 원로원 의원은 갈색 신발, 집정관은 흰색 구두를 신었다.△‘구별 짓기’의 진화왜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서로를 구별 지으려 하는 것일까? 옷을 통해 신분이나 계급을 구분하려 했던 흔적은 세계 곳곳에서 발견된다. 가까운 예로 조선시대 사람은 모자(갓)의 크기나 모양으로 신분을 구분했다. ‘구별 짓기’의 방법으로 모자를 선택했던 이유는 눈에 가장 쉽게 띄기 때문이다. 과거로 가면 갈수록 구분의 방법은 직접적이고 노골적이 되지만, 현대사회로 오면 그러한 구별은 보다 간접적이고 은밀한 방식으로 이뤄진다. 그런 점에서 ‘구별 짓기’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온 오랜 진화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학생들 사이에는 눈을 강조하는 스모키 메이크업(smokey makeup)이 유행하고, 여학생은 교복 치마의 길이는 물론 폭까지 줄인다. 남학생은 바짓단을 최대한 줄여서 입는다. 그 극단에 ‘7통 바지’가 있다. 바지통이 7인치, 17.8㎝밖에 되지 않아 발목이 드러나도 이런 바지를 선호한다.어른은 그런 아이들을 이해하지 않는다. 어른은 아이돌의 노래와 춤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요즘 노래는 노래도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말은 누구나 어른이 되기 전 많이 들어본 것이다. 언제? 당신이 학생이었을 때, 당신을 학생이라고 부르던 어른들로부터 듣던 이야기다.세대 간에 격차가 있고, 그 세대만이 공유할 수 있는 음악이 있고, 패션이 있다. 우리는 이것을 ‘취향’이라고 부른다. 이에 대해 깊이 있게 천착한 사람은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1930∼2002)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취향은 인간이 가진 모든 것이다. 인간과 사물, 인간이 다른 사람에게 의미할 수 있는 모든 것의 기준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사람은 스스로를 구분하며, 다른 사람에 의해 구분된다.”△아비투스과거에는 가문을 중심으로 사람을 구분했다면 오늘날은 문화와 취향에 따라 서로를 구분한다. 편의상 취향이라고 했으나 부르디외는 이것을 ‘아비투스(Habitus)’라는 이름으로 개념화했다. 부르디외는 경제자본과 문화자본의 많고 적음에 따라 사람들의 계급과 계층을 구별하고 있다. 상류층 혹은 고급 취향의 사람은 경제자본과 문화자본이 많은 부류일 것이다. 이와 달리 경제자본도 적고, 문화자본도 적은 부류는 하층민으로 분류될 것이다.그렇다면 보편적인 것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훌륭한 예술 작품은 보편성을 가지고 있어서 아무리 무지한 사람이 보더라도 그 작품의 우수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세대와 계급과 계층 속에서 사람은 저마다 다른 취향을 가지고 태어난다. 힙합을 듣는 이에게 딱딱하고 웅장한 바흐나 베토벤과 같은 클래식이 귀에 찰리 없다.젊은이들은 자기가 듣는 음악을 이해해 주는 어른과 그렇지 않은 어른을 구분한다. 후자를 ‘꼰대’라 부를 것이다. “어떤 음악, 어떤 영화를 좋아하세요”라는 물음은 단순히 상대방의 취미가 무엇인지 묻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 대답을 통해서 상대방의 사회적 위치와 교육 환경, 나아가 계급이나 계층적 위상을 확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과 대중가요를 좋아하는 사람은 다른 사회적 위상을 가졌다고 생각할 수 있으며, 당구가 취미인 사람과 승마가 취미인 사람의 경제적 수준에서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이 음악이 어떠세요, 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그 음악의 좋고 나쁨을 따지기 전에 그렇게 묻는 사람이 어떤 계급이나 계층에 속해 있는지를 살피면 그 사람의 취향을 읽을 수 있고, 그 사람이 원하는 대답에 더 가깝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타인의 취향부르디외는 ‘아비투스’를 통해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고급하고 품격이 높은 문화가 원래부터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만들어낸 하나의 취향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구별 짓는 행위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구별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 그것이 잘못이라는 점을 그는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역사는 옷이 민주화되는 쪽으로 전개된다. 어떤 것을 고급하다고 규정짓는 집단은 정치적, 사회적 헤게모니를 쥔 사람들이었다. 귀족과 왕족이 그런 사람이다. 하지만 사회가 분화되고 더욱 복잡한 단계로 발전해 나가면서 다양한 취향이 생겨나게 되었다. 사회가 성숙하게 발전하면서 취향을 고급한 것과 저급한 것으로 나누어 그것의 가치를 평가하지 않고,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는 쪽으로 발전해 가고 있다. 이를테면 바로크 시대와 로코코 시대는 화려한 의복을 자랑하는 시대였다. 현란한 레이스가 달려 있고, 치마는 풍성하며, 옷색깔은 지나치게 아름다웠다. 옷을 통해 자신의 부를 과시했고, 이를 통해 다시 명성을 쌓아갔다.

2019-02-21

돈키호테와 공학

△돈키호테의 에피스테메‘돈키호테’(Don Quixote)는 17세기경 스페인의 라만차 마을에 살았다. 그는 당대에 유행하던 기사 이야기에 매료되어 스스로 기사 수련을 떠난다. 이 얼빠진 기사가 풍차를 거인이라고 생각하여 돌진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이런 이유로 그는 과대망상증 환자나 무모한 도전을 일삼는 사람의 대명사가 되었다.그런데 왜 돈키호테는 풍차를 거인으로 생각한 것일까? 푸코는 돈키호테를 ‘유사성의 에피스테메Episteme’와 ‘새롭게 발현되는 에피스테메’ 사이에서 방황하는 인물이라고 해석했다. 이 말은 어렵게 보이지만 사실 간단하다. 절대왕정 시대의 사람은 자연물을 왕에 비유하곤 했다. “짐이 곧 국가다”로 유명한 루이 14세가 ‘태양왕’이라 불린 이유는 그가 태양과 닮았다고 생각해서이다. 비록 태양은 아니지만 태양처럼 빛나는 왕이라 생각하자, 그가 태양으로 보였던 것이다. 이것이 당대의 인식체계이며, 푸코는 이것을 에피스테메라 부른다.그러니까 돈키호테는 세계를 기사 이야기로 환원해서 보았던 것인데, 기사 이야기가 곧 돈키호테의 에피스테메였다고 할 수 있다. 기사처럼 용맹하게 싸울 대상을 찾던 돈키호테는 풍차를 거대한 괴물로 착각하며, 공주를 구하여 기사작위를 받고 싶었던 마음에서 수도사를 기사 이야기에 등장하는 마법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특정한 인식체계에 붙들리면 그 대상의 실체가 보이는 것이 아니라 인식체계가 만들어내는 왜곡된 상을 보게 된다. 이것을 푸코는 ‘표상’이라고 부른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나 “뭐 눈엔 뭐만 보인다”는 속담은 이를 잘 드러낸다. 우리가 보는 것은 실체가 아니라 처해 있는 상황이나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몸담고 있는 세계의 체계다.그런데 이 소설의 끝에서 돈키호테는 자신이 본 것이 환영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돈키호테가 환영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좌충우돌 모험 덕분이었다. 돈키호테는 환상에 빠진 자신을 확인하고, 그런 자신을 구하려고 모험을 떠났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러한 모험이 없었다면 그는 환상에 머물러야만 했을 것이다. 무모한 모험이 돈키호테를 괴짜로 만들었지만, 그 모험 덕분에 돈키호테는 스스로 환상에서 벗어나 현실을 직시할 수 있었다. 모험하지 않고 안주하기만 바란다면 우리는 스스로의 인식체계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도 돈키호테의 정신이 필요하다.△콜라 초깊이 시추공 프로젝트지구의 반경은 약 6천378km다. 지구 내부가 궁금하다. 지진은 왜 일어나며, 다이아몬드와 같은 귀한 광물은 어떻게 땅속에 묻혀있을까? 이런 궁금증이 생기면 사람은 호기심을 해소해야 한다. 설사 그것이 아무 쓸모없는 일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지구 내부가 궁금했던 구소련의 과학자들은 정말 땅을 파보았다. 이 프로젝트가 일명 지구속 ‘콜라 초깊이 시추공Kola Superdeep Borehole’이다.그 결과는? 지하 9㎞까지 내려갔으나 예상치 못한 200℃ 이상의 고온으로 시추를 중단해야 했다. 콜라 초깊이 시추공은 1970년 5월부터 진행되어 20년 걸려 1989년 1만2천262m에 도달했다. 이 프로젝트의 최종목표는 1만3천500m를 돌파하는 것이었으나 땅속 온도가 180℃까지 올랐고, 이러한 온도에서 드릴을 냉각시킬 수 있는 기술이 없어 1992년 프로젝트를 중단했다. 다시 2005년 새롭게 시추를 시작, 8천578m를 굴착했으나 예산문제로 끝나게 되었다. 지금 이곳은 폐허가 되어 방치돼 있다.콜라 초깊이 시추공은 인간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려는 쓸데없는 프로젝트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 발칙하고 무모한 프로젝트를 통해 우리는 지구 내부를 더 잘 알 수 있게 되었다. 지각의 물리화학적 조성과 지구 내부의 열체계를 실증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땅밑에 수소가 다량 있다는 것도 처음 확인했다. 가장 흥미로운 사실은 지진파의 불연속이 나타나는 모호로비치칙Mohorovicic 불연속면에 대한 것이었다. 그동안 지질학자는 이 불연속면이 나타나는 원인이 화강암에서 현무암으로 암석 물질성분이 바뀌면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실제로 확인한 결과 화강암이 변성암으로 변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고온 때문에 화강암이 품고 있던 물을 분출하는 것을 밝혔다. 그래서 지구 내부에 수소뿐 아니라 많은 양의 물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지질학 연구에도 큰 도움을 주었는데 25억여 년 이상의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시생대(始生代)의 바닥에 도달하여 당시의 지구상의 생태를 연구할 수 있게 되었다. 또 이 기술은 석유나 천연가스 시추에 응용된다. 예전에는 개발이 불가능했던 땅속 깊은 곳에 있는 석유자원의 시추에 필요한 핵심기술이 이 프로젝트를 통해 큰 진전을 이룰 수 있었다.△우주탐사2015년 7월, 미항공우주국NASA은 ‘행성 사냥꾼’으로 불리는 케플러우주망원경으로 지구와 유사한 환경에 있는 케플러-452bKepler-452b를 찾아냈다. 이 행성과 지구와의 거리는 1천400여 광년으로 중력은 지구의 두 배 정도일 것으로 추측된다. 지구보다 60% 정도 크고 다섯 배정도 무거워서 ‘슈퍼지구’라고 불리는 이 행성은 태양과 비슷한 항성주위를 385일 주기로 공전하며, 지구처럼 표면이 딱딱한 암석으로 이뤄졌을 것으로 추측된다.케플러-452b가 주목되는 이유는 여기에 생명체가 살 수 있어서다. 자연환경 조건이 비슷하다면 비슷한 생명체가 존재할 개연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지구를 닮은 행성을 처음 찾은 것이 아니라 이것이 여섯 번째다. 도대체 우주는 얼마나 넓으며, 이 우주에는 얼마나 다채로운 일이 펼쳐지고 있단 말인가? 우주는 끝이 있는 유한한 공간일까, 아니면 끝이 없는 무한한 공간일까?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인간은 오만하고 편협하여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고 한다. 지구 수준에서는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은하계, 나아가 우주 전체 수준에서 보자면 인간은 한낱 먼지처럼 미약하다. 인간은 미립자차원에서 보면 텅 비어 있다. 미립자 세계는 99.999%가 텅비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몸 역시 한낱 허상이며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지구도 텅 비어 있긴 마찬가지어서 블랙홀 같이 막강한 중력 속에서 이 꽉찬 것 같은 지구도 탁구공 수준의 크기로 수축된다. 지구와 같이 어마어마한 크기의 행성이 그 정도 크기로 줄어든다면 우리 몸은 얼마나 작아질까. 우리는 정말 티끌, 티끌만도 못한 것에 지나지 않을까.이 티끌만도 못한 인간은 새로운 도전을 찾아 헤맨다. 날씨로 인한 피해에서 벗어나려고 날씨를 마음대로 조정하려는 연구, 우주에 태양광발전소를 세워 지구로 송전하려는 프로젝트, 우주에 정거장을 설치하고 화성에 사람이 살 수 있는 도시를 건설하겠다는 화성식민지 개척 계획도 진행 중이다. 이러한 프로젝트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설사 이 프로젝트가 실패하더라도 적어도 날씨에 대해서 그리고 우주에 대해서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지식을 갖게 될 것이다.공학은 실패를 밑거름 삼아 성공으로 간다는 인식은 잘못된 것이다. 공학에는 실패는 있어도 성공은 없고, 나아가 성공도 없지만 실패도 없다. 공학 속에 실패도 성공도 없다면 남는 것은 무엇인가. 성공하지 못할 것을 알면서,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그 도전을 멈추지 않는 인간, 결국 남는 것은 인간이다. 무수한 실패 속에서도 인간은 도전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설사 실패가 불가피하더라도 우리는 배우게 될 것이다. 무모하면 무모할수록 그 무모함을 감당할 수 있는 실제적 공학기술이 점차 보완되어 완전한 모습을 갖게 될 것이다.

2019-02-14

공학이 ‘최초’를 부르는 방식

△최초의 발명자앞에서 공학이 시대를 앞지르는 경우와 시대적 요구와 공학이 만나는 경우를 보았다. 그런데 시대가 공학을 요구한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 이것은 공학적 발명품이 한 개인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았던 많은 사람의 노력에서 기인했다는 것을 의미한다.예컨대 최초의 증기기관을 개발한 사람은 누구일까? 분명히 최초로 발명한 사람이 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최초의 발명자를 특정하기 어렵다. 증기기관을 최초로 발명한 사람으로 알고 있는 제임스 와트는 사실 증기기관을 대폭 개선하여 그 사용의 가능성을 확대한 사람이다. 와트보다 먼저 증기기관의 가능성을 타진한 사람은 토마스 세이버리였다. 그런데 세이버리가 만든 증기펌프는 우스터의 에드워드 서머셋(Edward Somerset·1603∼1667)의 발명품 모음집에 실린 증기펌프를 그대로 모방한 것이라고 한다.최초의 발명자가 누구인지 밝히는 일은 왜 이렇게 어려운 것일까? 그 이유는 1600년경 후반부터 증기기관은 사람의 관심을 불러 모았으며, 여러 나라의 무수한 사람이 비슷한 시기에 증기기관을 연구했기 때문이다. 18세기에 이르면서 이러한 관심은 최고조에 달했고, 더 나은 증기기관을 만들려는 경쟁이 유럽 곳곳에서 활발해졌다.그런데 여기서 다시 묻자. 교통이나 통신이 발달한 것도 아닌데 어떻게 엇비슷한 생각을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곳에서 했던 것일까? 사람의 생각이 ‘텔레파시’ 같은 것으로 연결되어 있어서일까? 그 이유는 이런 비의적인 것과 관련이 없다. 많은 사람이 인간의 힘의 한계를 깨달았고, 다른 도움을 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대 전체가 증기기관과 같은 동력기관을 원하고 있었다고 해도 괜찮다. 그래서 저마다 증기기관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증기기관만 그랬던 것은 아니다. 비행기도 그랬다. 전보와 전화가 발명되자 먼 곳의 소식을 빠르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되자 단지 소식만 듣는 것이 아니라 직접 가보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이런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숱한 사람이 매달렸고 그 결과 비행기가 발명되었다.우리는 1903년 라이트 형제가 세계 최초로 비행에 성공했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독일, 프랑스, 뉴질랜드 등 몇몇 국가는 자기 나라에서 최초의 비행이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2013년 코네티컷 주지사는 코네티컷 브리지포트에 거주했던 독일 이민자 구스타프 화이트헤드(Gustave Albin Whitehead·1874∼1927)가 1901년 세계 최초로 비행에 성공했음을 인정하는 법안에 서명하기도 했다. 세계 최초의 비행에 대한 논쟁은 비행기의 발명이 많은 사람에 의해서 유사한 시기에 동시에 이뤄졌다는 것을 방증한다.누가 증기기관을 발명했는가, 누가 비행기를 최초로 발명했는가를 특정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왜냐하면 그것은 시대적 요구였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시대적 요구를 읽었고, 많은 사람이 서로 엇비슷한 발명품을 생각하고 고안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시대적 요구를 누구나 읽을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뛰어난 공학자라야 시대의 요구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꿰뚫어볼 수 있다.더 뛰어난 공학자는 그 시대가 요구하는 것을 남들보다 더 빨리, 더 실용적이며, 더 정확히 만들어 낸다. 잡스가 아이폰을 만들어내기 이전부터 스마트폰의 개념이 적용된 제품이 이미 시장에 출시되어 있었다. 잡스는 이러한 스마트폰의 연관 기술을 긁어모아 보다 더 창의적이고, 간편하고, 실용적인 것으로 혁신했다. 와트가 증기기관을 최초로 발명한 사람이 아닌데도 그를 ‘최초’로 기억하듯이, 스마트폰을 ‘최초’로 발명한 사람으로 잡스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공학은 해당 분야를 최초로 개척한 사람, 또 그 분야를 더 실용적이고 가치 있는 것으로 확장시킨 사람에게 ‘최초’라는 왕관을 내어준다.△공학은 쓸모를 먼저 생각한다야멸차게 말하자면 공학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멋지고 놀라운 것을 발명한 사람에게 공적을 돌리지 않는다. 공학은 더 효율적이고 더 실용적인 것을 발명한 사람에게 부와 명성을 동시에 가져다준다.제임스 와트는 증기기관을 개발하여 영국에서 손꼽히는 부자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증기기관‘차’를 통해 더 큰 부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차버렸다.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 공장에서 일했던 천부적인 발명가 월리엄 머독(William Murdock·1754∼1839)은 철도가 개설되기 40년 전인 1789년에 이미 증기기관차의 설계도를 완성했다. 하지만 와트는 “앞으로도 바퀴 달린 마차가 계속 사용될 것이다” 하면서 머독의 제안을 거절했다. 시대 속에 안주하려고만 한다면 우리는 결코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증기기관차가 실제로 구현된 것은 1804년이며, 그 주인공은 리차드 트레비식(Richard Trevithick·1771∼1833)이다. 영국 웨일즈Wales에서 첫 선을 보인 이 기관차는 70명의 사람과 석탄차를 포함해 모두 25톤이 나가는 차량을 시속 8km로 이동시켰다. 웨일즈 탄광촌 사람은 말이 아닌 기계가 사람과 석탄을 나르는 광경을 처음으로 구경하는 호사를 누렸다.하지만 그것 이상의 무엇은 없었다. 증기기관차는 그냥 신기한 구경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이것을 실생활에 이용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을 태울 수 있어야 했고, 더 많은 석탄을 실을 수 있어야 했다. 무엇보다 속도가 느렸다. 시속 8km라면 말을 이용하는 것보다 나을 것이 없었다. 그런 점에서 트레비식의 발명품은 2,000년 전 증기압을 이용하여 그리스에서 사원의 문을 여닫는데 이용한 헤론의 그것과 별 차이가 없었다.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공학은 효율성과 합리성을 추구한다. 어떤 기계를 설치하는데 만원의 비용이 든다면 그 만원보다 더 나은 가치를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 시간을 절약한다거나, 생산성을 높인다든지, 부대비용을 절약한다든지 등 어떤 식으로든 만원이라는 설치비용에 해당하는 가치 이상을 발생시켜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그 기술은 사장되고 만다. 이러한 효율성과 합리성을 가질 때 비로소 공학의 상상력이 만든 기술은 우리의 삶속으로 정착할 수 있게 된다. 증기기관차를 쓸모있는 것으로 만든 사람은 조지 스티븐슨(George Stephenson·1781∼1848)이었다. 스티븐슨은 트레비식의 기관차를 개량하여 시속 39km를 낼 수 있게 만들었다. 그는 당시 발달했던 제철기술을 활용해 기차가 다니는 선로를 개량함으로써 육중한 무게의 기관차가 실생활에서 달릴 수 있도록 만들었다. 기관차는 이제 신기하거나 괴물같이 무서운 기계가 아니라 일상속에서 유용한 기계로 자리잡게 된다.제임스 와트나 스티븐슨은 부와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이들보다 앞서 획기적인 발명품을 선보인 파팽은 살해당했으며, 트레비식은 평생 가난하게 살았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역시 사람은 운 때가 맞아야 한다”거나, “닭 길러 족제비 좋은 일 시킨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공학을 잘 몰라서 하는 말이다. 기초학문은 쓸모를 생각하지 않지만 공학은 쓸모를 생각한다. 그것도 다른 것에 비해 월등히 효율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비용에 비해 편익이 더 클 때 공학의 산물은 인간의 삶속으로 스며들 수 있다.

2019-02-07

관념의 무게

△관념: 생각의 틀우리는 너무도 쉽게 생각의 틀에 갇힌다. 파란 안경을 쓰면 세상이 파랗게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생각 바깥으로 나가면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세상의 바깥은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의 바깥엔 또 다른 세상이 있을 뿐이다.우리는 저마다 사물에 대한 관념을 가지고 있다. 관념이나 개념을 그냥 대상에 대한 이미지라는 말로 바꾸어 생각하면 쉽다.사과를 떠올려보라. 어떤 사과가 떠오르는가? 누군가는 빨갛게 익은 탐스럽게 생긴 사과를 떠올릴 것이고, 어떤 사람은 연초록색의 사과를 떠올리기도 할 것이다. 우리가 대화를 할 수 있는 것은 대상에 대한 개념과 이미지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만약 대상에 대한 개념을 다른 사람과 다르게 알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감자의 실종백수린의 소설 ‘감자의 실종’은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 실제의 세계가 아니라 언어일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감자(potato)라는 단어를 강아지(puppy)로 오해하고 살아온 여주인공이 있다. 그녀는 어느 날 회사 동료가 “나 오늘 감자 삶아왔어”, “우리 오늘은 감자탕 먹을까?”와 같은 말에 경악한다.그녀는 동료가 ‘강아지’를 먹는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감자’가 ‘강아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주인공은 뒤늦게 깨닫게 된다. 그런데 여기에서 더 큰 문제가 발생한다. ‘감자’를 ‘강아지’로 오해했다면 그동안 그녀가 알고 있었던 ‘강아지’는 무엇일까?그녀는 사람들이 말하는 ‘강아지’를 ‘신념’으로 이해하고 있었다.‘감자’를 ‘강아지’로, ‘강아지’를 ‘신념’으로 알아왔다면 ‘신념’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녀는 단어공부를 새롭게 시작해야 할 정도로 혼란한 상황에 빠져들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이 하는 말 전체를 의심하게 되며, 다른 사람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고 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게 된다.결국 어떤 말도 할 수 없는 혼돈의 상태에 이르고 만다.‘ㄱㅏㅇㅇㅏㅈㅣ’라는 글자는 기호일 뿐이다. 강아지라는 실체적 대상과 ‘ㄱㅏㅇㅇㅏㅈㅣ’라는 기호는 서로 분리되어 있다. ‘ㄱㅏㅇㅇㅏㅈㅣ’라는 글자가 강아지라는 대상을 지칭하게 된 데는 어떤 필연적이고 절대적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다. 프랑스의 언어학자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1857∼1913)는 이것을 언어의 자의성이라고 불렀다. 만약 ‘ㄱㅏㅇㅇㅏㅈㅣ’와 실제 강아지가 필연적이고 절대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다면 감자와 강아지를 헷갈릴 이유는 없을 것이다.그런데도 ‘ㄱㅏㅇㅇㅏㅈㅣ’와 실제 강아지는 꽉 맞물려 있어 ‘ㄱㅏㅇㅇㅏㅈㅣ’라는 글자를 강아지인 것처럼 느낀다. 그런 점에서 언어는 곧 실제다.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정신이 아니라 겨우 이런 글자나 말이다. 그것도 자의적이며 우연적이기까지 한 그런 언어에 기대어 정신을 함양한다. 그런 점에서 언어는 나약하고 연약하다. 그런 것 위에 세워진 정신이라고 불리는 관념은 또 얼마나 초라한가?△나약하지만 동시에 견고한 관념에 대해관념은 강하지도 않고 절대적이지도 않다. 그런데도 관념을 신봉한다. 리차드 트레비식은 제임스 와트보다 수십 년이나 일찍 최초의 증기기관차를 만들었지만 가난하게 살아야 했다. 왜냐하면 당시의 사고방식이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사람은 생물을 창조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느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증기기관차는 인간이 창조해낸 말(馬)처럼 보였을 것이다. 하느님의 징벌이 있을 것이라는 불안, 그런 어리석은 믿음 때문에 사람은 이것을 교통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을 꺼렸다. 실제로 기관차가 널리 사용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이렇게 우리의 관념은 강하며 실제 생활에서 물리적 힘을 발휘한다.사과는 처음부터 빨간 것이 아니라 꽃에서부터 시작해서 녹색이 었다가 점점 붉어진다. 그것도 특정한 사과가 그럴 뿐, 익어도 녹색인 사과는 얼마든지 많다. 자신이 알고 있는 관념이 절대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그것이 옳은 것이라고 생각할 때 위험해진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피부색을 ‘살색’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살색이 황색이나 살구색에 가깝다는 것을 진리인 것처럼 받아들이면 검은색 같은 다른 피부색을 가진 사람을 이해할 수 없게 된다. 그때부터 인종에 대한 편견이 생겨난다.이러한 차별의 극단에 히틀러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히틀러는 독일 국민에게 게르만 민족이 가장 우수하고 위대한 민족이라는 관념을 심었다. 이러한 관념이 심겨지자 독일 국민은 히틀러의 부하가 되기를 자청하며 전쟁터에 나가 장렬히 전사했고, 수백만 명의 유대인과 집시를 학살했다. 관념은 미약하고 볼품없는 언어를 기반으로 그보다 더 별 볼일 없는 우리의 인식 속에 싹을 틔우지만 그것이 자라나면 그 관념은 튼튼히 뿌리내리고 목숨을 지푸라기처럼 여기게 만든다. 자신의 관념을 믿고 거기에 의지할 때 그리하여 그 관념 속에 안주하고 평안을 누리고자 할 때 엄청난 폭력을 낳게 되고, 그 대가는 자멸이다.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관념: 한계이자 자유왜 인간은 자신이 가진 관념이나 신념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왜 잘못된 관념을 쉽게 깨뜨리지 못하는 것일까? 뇌과학자에 따르면 인간의 뇌가 기존의 관념을 고수하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오른손에 20kg 짜리 아령이 묶여 있다고 생각해보자. 가급적이면 왼손을 사용하고자 할 것이고, 왼손으로 할 수 없는 일에만 오른손을 사용하려 할 것이다. 우리의 뇌에도 이러한 아령, 즉 관념에 묶여 있어서 새로운 생각을 좀처럼 시도하지 않는다고 한다.그렇다고 해서 관념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대상에 대한 아무런 관념을 갖고 있지 않을 때 어떤 행동을 보이는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낯선 장소에 가거나, 한 번도 본 적 없는 동물을 보거나, 한 번도 맛본 적 없는 음식을 먹는 일은 얼마나 두려운가. 이런 것에게서 무서움을 느끼는 이유는 그것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칠흑같이 어두운 동굴이 무서운 이유는 그 속에 어떤 무시무시한 괴물이 살고 있어서가 아니라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어서다.이처럼 정말 무서운 것은 알 수 없음에 있다. 관념은 대상을 인식할 수 있도록 만든다. 그 인식이 설령 왜곡된 것이라 해도, 그 왜곡을 딛고 대상에 대한 앎으로 나아갈 수 있다. 핵심은 생각이 잘못될 수도 있음을 간파하는 것이다. 관념을 가질 때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생겨난 관념을 신봉할 때 모든 문제가 생겨난다.관념은 우리의 생각을 가두고 사물의 특정 부분만 보게 만든다. 하지만 이러한 관념 때문에 대상에 대한 인식과 정보를 모을 수 있다. 관념은 기회이자 동시에 자유다. 관념을 잘 이용하여 세계를 인식하기도 해야겠지만 그렇게 사용된 관념을 버리고 새로운 관념을 슬기롭게 받아들일 준비도 해야 한다.

2019-01-31

‘인생은 연기와 같다’의 의미에 대해

영화 ‘여인의 향기’에서 프랭크는 도나가 사용하는 고급비누의 이름을 알고 있다. 그의 후각은 개처럼 예민하다. 프랭크는 당시 상류층의 생활 패턴을 알고 있으며, 여성의 성향에 대해서도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프랭크는 능숙하다. 여자에 대해서는 물론 탱고에 대해서도 능숙하다. 도나는 미숙하다. 남자에 대해 미숙하며 물론 탱고에 대해서도 미숙하다.이들이 무대로 걸어 나오자 곧바로 음악이 뒤따라 나온다. 도나가 자신의 테이블로 돌아가기엔 이미 늦었다. 도나는 프랭크를 무대로 안내했고, 프랭크는 도나를 무대 속으로 안내한다. 프랭크는 청각과 후각과 촉감으로 무대를 본다. 하지만 도나는 오로지 눈으로만 본다. 그녀의 시신경은 구경꾼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기 위해 자신의 내면을 향해 있다. 그래서 그녀는 보고 있어도 보지 못한다.그런데 음악이 시작되고 탱고가 시작되자 도나의 두려움은 기쁨으로 변한다. 춤을 추던 프랭크가 도나를 갑자기 뒤로 젖혀졌을 때, 도나의 웃음은 ‘아. 쪽팔려’라고 말한다. 그런데 다시 젖혀질 때 그녀는 뜨거운 입김을 뿜어내며 이제 ‘아!’라고 탄성한다. 그녀는 조금씩 음악 속으로 들어와 음악이 되고 탱고가 된다. 음악이 격정을 향해 나아갈 때, 그녀는 더 행복해지고 더 더 흥분한다.△프랭크원곡은 간발의 차이(Por una cabeza)라는 뜻으로 경마에 빠져 가산을 탕진한 얼빠진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남자는 한 경주마에게 자신의 재산을 몽땅 걸었다. 하지만, 말머리 하나 차이로 지고 만다. 이 남자는 또 돈이 생기면, 그 돈을 경마로 탕진할 것이다. 원곡에서 말은 여성으로 비유되는데 여성에게 매혹되듯 그 경주마에 현혹되어 돈을 걸게 되었다고 남자는 억울함을 호소한다. 그런데 이 노래의 말미에서 비유로만 등장하던 여성은 어느 순간,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관계를 뒤엎고 전면에 등장한다. 보조관념이었던 여성이 원관념의 위치로 격상되는 전환이 일어난다. 그리하여 이 노래는 경주마에 돈을 탕진한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여성의 마음을 얻기 위해 자신의 돈을 탕진한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프랭크 역시 도나와의 탱고가 끝나고 절망의 깊은 계곡으로 추락한다. 그 이유는 도나의 남자친구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도나에게 프랭크와의 춤은 해프닝 정도였으나 프랭크에게 그것은 삶의 전부였다. 그러므로 프랭크의 권총 자살이 이 영화의 진정한 결말이다. 뒷부분에 학교에서 벌어지는 장면은 이 영화를 위해서 차라리 없는 것이 낫다.“인생과 달리 탱고에는 실수가 없어요. 단순하죠. 실수는 탱고를 더 훌륭하게 만들죠. 실수로 스텝이 꼬이면 그게 바로 탱고죠(No mistakes in the tango, not like life. It’s simple. That’s what makes the tango so great. If you make a mistake, get all tangled up, just tango on).”탱고는 삶과 다르지 않다. 실수를 씨실로 삼고 꼬임을 날실로 삼는 것, 그것이 삶이다. 프랭크는 자신의 삶‘만’ 꼬여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맹인이 되면서 그의 삶이 꼬여버렸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전부터 삶은 꼬여 있었고, 그를 맹인으로 만든 폭발사고는 그 꼬인 삶의 부분이다. 그런 삶 속에서 능숙이란 있을 수 없다. 자신의 능숙함에 대한 맹신, 이로부터 삶의 비극이 시작된다.△프랭크와 도나프랭크는 탱고를 통해 행복했던 과거의 시간을 복원하려 한다. 그 복원하려는 노력 속에서 과거는 유성과도 같이 더 멀어져 영원히 사라질 뿐이다. 과거의 탱고를 재현하기 위해서는 과거로 돌아가야 한다. 단순하다. 불가능한 것은 불가능하다.궁정요리사의 말을 기억하여야 한다. 왕은 전쟁 중에 먹었던 산딸기 오믈렛을 궁중요리사가 재현해 주길 원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오믈렛의 재료가 아니라 분위기다.“전쟁의 위험, 쫓기는 자의 주의력, 부엌의 온기, 뛰어 나오면서 반겨주는 온정, 어찌 될지도 모르는 현재의 시간과 어두운 미래…….”(“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25면)왕의 오믈렛은 아우라 속에 둘러싸여 있다. 그러한 재현은 궁중요리사의 능력을 초과해 있다. 과거의 자신을 완벽히 재현하려는 욕심은 늘 죽음을 동반한다. 그런 점에서 맹인이 된 이후의 프랭크의 삶은 돈키호테의 기행에 대응된다. 여전히 능숙하다고 믿는 프랭크는 자신의 자살을 심각한 어떤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반면 도나의 미숙함은 “망각의 땅으로부터 불어오는 폭풍우를 막아내려는 기병의 전진”이다. 미숙한 그녀는 미숙하다. 미숙한 자에게 자살은 하등의 의미도 기대할 가치도 없는 그저 그렇고 그런 것이다. 그녀의 미숙함은 자살의 무게마저 무화시키는 완벽한 염세며 완벽한 허무다.언제든 과거를 파괴할 수 있는 자들, 추억에서 아우라를 제거하는 자들, 그들은 미숙한 자들이며, 그들은 그러한 파괴를 통해서 틈을 만든다. 메시아가 들어왔었던 그 틈을 말이다.△인생은 연기다, 라는 말연기를 잘하는 배우와 못하는 배우를 구별하는 기준은 배우가 대사를 잊어버릴 수 있는가 없는가에 있다. 배우는 대사를 알고 있고 앞으로 일어날 내용이 무엇인지 알고 있지만, 그 내용을 모르는 것처럼 행동한다.이를테면 주인공이 한껏 즐거운 채로 외출을 준비할 때 어김없이 전화벨이 울린다. 저 전화벨 소리는 주인공의 행복한 오늘을 아니 나아가 삶 전체를 한꺼번에 날려버릴 것이다.배우는 그 전화가 언제 울릴지를 알고 있으며, 그 전화의 내용까지도 알고 있다. 전화벨에 집중할 때 배우의 행동은 즐거움에 매몰되지 못한 채 전화벨만을 기다리게 되고, 그는 현관의 문에 이르기 전에 이미 전화벨이 울리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의 발걸음은 부자연스럽다. 정작 전화벨이 울려서 뒤를 돌아보는 그 순간은 갑작스러움이 아닌 이미 알고 있는 자의, 앞으로 일어날 사건을 알고 있는 자의 돌아섬이다.그러나 훌륭한 배우는 순간에 매몰된다. 즐거움에 매몰되고 즐거움에 매몰되어 관객을 그 즐거움 속으로 동참케 한다. 그러할 때 전화벨은 동일한 기계음이라 할지라도 그 즐거움을 산산이 깨뜨리는 벽력과도 같은 효과를 발휘하게 된다. 훌륭한 배우는 전화가 올지 몰랐다는 듯이 뒤돌아볼 수 있으며, 어떤 까닭모를 불안감에 휩싸여 수화기를 들어올린다. 그러므로 훌륭한 배우란 대사를 잃어버리는 자이며,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자이다. 순간을 순간으로 살아가는 자이다.공강일서울대 강사·국문학인생은 연기다, 의 진정한 의미는 여기에 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이 대략 어떻게 흘러갈지 알고 있다. 아침을 먹으면, 점심을 먹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일어나면 자야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제의 일과 오늘의 일과 내일의 일이 그런 식으로 축적될 때 대략 어떤 결과가 있으리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훌륭한 인간이란 바로 앞으로 다가올 일을 잊어버리는 자다. 이 점심은 예견되지 않은 점심이며, 최초로 경험하는 점심으로 다가와야 한다. 나의 삶에 어떤 목적이 있다면 그 목적을 잃어버리고 삶 속에 매몰되어야 한다. 순간만을 살아가는 일, 알고 있으나 모르는 것처럼 여기는 일, 현재 속에 매몰되는 일, 우리가 배우에게서 배워야할 기술은 바로 이것이다.심슨 가족의 리사는 이렇게 말한다. “그래, 물론 인생은 고통과 고난으로 가득해. 하지만, ‘인생을 살아가는’요령은 순간에 주어진 몇몇 완벽한 경험들을 즐기는거야.” 그리고 이어지는 심슨의 대사는 이렇다. “재미에 대해 생각하는 건 그만두고 즐기는 거야.”

2019-01-24

기술복제 시대의 인문학

△기술 복제의 시대사진의 초창기에 ‘라이프치히 시보(市報)’는 이렇게 썼다.“찰나적 영상을 고정해 보겠다는 것은 철저한 독일의 연구 결과가 말해주듯 불가능한 일일 뿐만 아니라 이러한 것을 해 보려는 소망부터가 이미 신을 모독하는 일이다. 인간은 신의 모습 그대로 창조되어진 것이고, 또 신의 모습은 어떠한 인간의 기계에 의해서도 고정시킬 수가 없는 것이다. 기껏해야 신의 경지에 이른 인간만이, 그것도 일체 기계의 도움을 받지 않고, 천상적 영감에 의해서 최고의 계시를 받는 순간 그의 천부적 재능의 높은 부름에 따라 신의 모습을 닮은 인간의 모습을 재현시킬 엄두를 감히 낼 수 있을까 말까 할 정도이다.”이 신문은 기계를 통해 찰나적 영상을 고정하는 행위가 신을 모독하는 일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지금은 이러한 주장을 한다면 모두가 비웃을 것이다. 그런데 대상을 복사하는 기술인 점점 발전하고 있으며, 3D 프린터를 통해 3차원 복제도 가능해지게 되었다. 이러한 3D 프린터의 기술이 발전한다면, 인간의 치아는 물론 연골이나 내장기관의 복제도 가능해진다.그렇다면 이런 것도 상상해 볼 수 있지 않을까.“복제 기술이 너무도 완벽하여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모나리자’를 원자의 구조에 이르기까지 그대로 복제하여 원본과 물리적 차원에서 구분이 불가능하게 된다고 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본이 복제물 이상의 가치를 가질 수 있을까?”이러한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원본의 의미와 복제물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여기에서 나아가 우리는 창작하는 행위에 대해서 또 인문학에 대해서 깊이 있게 고찰해볼 수 있을 것이다.△원본과 복제물위의 물음에서 말하는 원본이란 창작물을 말한다. 창작물이 경이로운 이유는 그것이 최초이기 때문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모나리자를 그린 최초의 사람이다. 최초란 처음 시작되었으므로 그 최초를 되돌려 다시 시작할 수 없다. 마치 글자를 익힌 사람이 글자를 다시 배울 수 없고,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된 사람이 자전거 타는 법을 다시 배울 수 없다. 이처럼 최초란 되돌릴 수 없는 어떤 것이다. 자전거 타는 법을 배웠으므로 손을 놓고 자전거를 탈 수 있고, 자전거의 앞바퀴도 들 수 있다. 글자를 배웠으므로 책을 읽을 수 있고, 글자를 배웠으므로 글을 따라 쓸 수 있고, 나아가 시나 소설을 쓸 수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지 않았다면 자전거의 앞바퀴를 들 수 없을 것이며 글을 배우지 않았다면, 글을 쓸 수 없을 것이다. 최초에 행해진 것은 이런 식으로 지속되며, 결코 최초가 없었던 상태로 돌아갈 수 없는 확고한 것으로 자리매김 된다.이후의 모든 행위들 속에는 최초가 깃들어 있다. 최초라는 것, 이러한 최초로부터 우리는 다른 것들을 사유할 수 있고, 그 최초를 발전시킬 수 있고, 그 최초로부터 새로운 최초를 도출할 수 있다. 예컨대 ‘모나리자’에 수염을 그려 넣은 것은 뒤샹이 최초다. 당연한 말이지만 다빈치의 ‘모나리자’가 없었다면 뒤샹의 최초는 없었을 것이다. 최초는 그 자리에서 고정되지 않고 새로운 최초의 실마리가 되며 확장되어 나아간다. 뒤샹이 ‘모나리자’에 그려 넣은 수염은 ‘모나리자’를 전복하는 행위다. 그런데 ‘모나리자’라는 원본이 없었다면 뒤샹의 전복도 불가능했을 것이므로 원본 속에 이미 전복과 자유의 가능성들이 배태되어 있다고 할 수도 있다.이에 비해 복제품은 어떠할까. 벤야민은 원본은 일회적이지만, 지속적이며, 복제품은 일시적이지만 반복적이라고 말한다. 일회성이란 단 한 번밖에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나리자’는 그려졌으므로 더 이상 그려질 수 없고, 그렇게 그려진 것은 지속성을 갖는다. 최초란 이미 시작했으므로 다시 시작할 수 없다. 일시적인 것은 지속과 달리 잠깐 동안 이뤄진다. 일시적인 것을 지속시키는 방법은 반복밖에 없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복제물은 원본을 아무리 따라한다 해도 이 최초가 가진 가치는 따라할 수 없다. 이것이 복제물이 가진 한계다.복제물의 또 다른 한계는 똑같이 따라한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다양성이 사상된다. 똑같은 ‘모나리자’에 우리는 얼마든지 새로운 상상력을 보탤 수 있다. 앞에서 말한 뒤샹은 모나리자의 얼굴에 수염을 그려 넣었다면, 페르난도 보테르는 뚱뚱하게 모나리자를 그렸다. 그리하여 ‘모나리자’는 다빈치의 것으로 머물지 않고 새롭게 변형되고 변주된다. 그 변형과 변주 속에서 우리는 신선함을 느끼고, 어떤 해방감을 맛본다. 하지만 복제된 모나리자는 똑같다는 일시적 놀라움을 줄 뿐이다.△창의성과 인문학원본에는 최초가 담긴다. 그 최초의 다른 이름은 창의성일 것이다. 창의성은 새로운 것에 대한 추구이며, 새로운 것은 다양한 사고와 다양한 사고의 결합을 통해 도출된다. 그런 점에서 창의성의 핵심에는 다양성이 놓여있다. 이러한 창의성과 다양성은 인문학의 가장 중요한 속성이기도 한다.자연과학은 자연과 자연현상을 학문의 대상으로 삼지만, 인문학은 인간과 인간으로 인해 촉발된 것을 대상으로 삼는다. 그래서 인문학은 인간과 인간의 창작물을 다루는 학문이다. 그런데 인간은 다양하다. 인간의 종도 다양하지만 인간의 생김도 다양하며 인간의 사고도 다양하다. 인문학을 배운다는 것은 곧 그런 다양성을 배운다는 뜻이다.인문학은 다양한 인간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인간을 규정하지 않는다. 그 다양한 인간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것들, 한 번도 묻지 않은 것들에 의문을 던지게 된다. 그리하여 인문학은 묻는다. 왜 귀족과 평민은 차별받아야 하는가, 왜 여성은 남성보다 열등하다고 생각되는가, 왜 흑인은 백인보다 열등하다고 생각되는가, 왜 우리는 장애인을 차별하는가,와 같은 생각들이 싹트게 된다. 그리하여 인문학은 아무도 묻지 않았던 것들에 물음을 던지고, 갇혀 있는 인식과 사고에 균열을 내고 전복한다.공강일서울대 강사·국문학이런 식으로 인문학은 끊임없이 새로운 도덕을 발견하고, 새로운 윤리를 창조한다. 인간은 발전되진 않더라도 적어도 확장된다. 그리하여 인문학은 최종적으로 말한다. 인간적인 것 가운데 나와 무관한 것은 없다고 말이다.그런 점에서 인문학은 인간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다양한 인간들 속에서 인간은 무엇인가, 라는 물음을 던진다. 다양하기 때문에 그 정체성은 쉽게 밝혀지지 않는다. 정체성은 존재하는 것으로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끊임없이 유동하는 어떤 것이다. 곧 정체성을 찾는 과정 속에서 정체성이 형성된다. 그러므로 인문학은 사라지지 않는다.

2019-01-17

열 번의 매혈에 대한 기록

0.위화는 중국의 소설가다. 그는 치과 의사라고 한다. 중국의 치과 의사는 우리나라와는 사정이 달라 이를 뽑지만 다른 직업과 마찬가지의 월급을 받는다. 그 일을 하는 동안 위화는 너무 고단하고 무료했다고 한다. 그런데 길 건너의 사무실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볼 때마다 모여 이를 드러내고 잡담을 하더라고. 그래서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저렇게 하루 종일 놀아도 되는 직업이 다 있나 하고 알아봤더니 그게 다름 아닌 소설가였다고 한다. 그래서 위화도 매일같이 사람들의 이를 보는 일 대신 이를 드러내고 말을 하는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특이한 이력의 이 소설가를 유명하게 베스트셀러로 만든 소설은 단연 ‘허삼관 매혈기’다.1.이 제목이 말해주듯, 이 소설은 허삼관의 매혈에 관한 이야기다. 허삼관은 일생을 통 털어 열 번 피를 판다. 피를 팔기 전엔 오줌보가 터지도록 물을 마시고, 400㎖의 피를 팔고, 판 후에는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리며 돼지간볶음과 데운 황주를 주문한다.피를 팔기 전과 판 후의 행동은 반복되지만, 피를 팔아야 하는 상황은 항상 다른 방식으로 찾아온다. 그러니 피를 판 후에 받은 돈의 쓰임 역시 다를 수밖에. 우리 삶을 이루고 있는 삶의 모습은 항상 비슷해 보일지 모르나 그 세부는 다르다. 그런 간명한 이야기를 이 소설은 위트 넘치게 펼쳐 내고 있다.문화대혁명 때 허삼관의 아내 허옥란은 가장 번잡한 거리에서 ‘기생 허옥란’이란 나무판자를 걸고 하루 종일 의자 위에 서 있는 벌을 받는다. 허삼관은 세 아들에게 어머니에 밥을 가져다주라고 부탁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부분이 ‘허삼관매혈기’의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낸다.허삼관은 일락이에게 엄마한테 물과 밥을 가져다주라고 했다. 그러나 일락이는 가려고 하지 않았다.“아버지, 이락이한테 가라고 하세요.”그래서 이락이를 불러놓고 일렀다.“이락아, 우리는 다 밥을 먹었지만, 엄마는 아직 못 드셨잖니. 그러니 네가 엄마한테 밥을 좀 전해드려라.”이락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아버지, 삼락이더러 가라고 하세요.”(222~223면)작가는 “허삼관이 아들들을 불러모았다.”라고 하는 법 없이, 언제든 “허삼관은 일락이, 이락이, 삼락이를 불러 모았다.”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꼬마돼지삼형제’에서 집짓는 이야기가 반복적으로 서술되듯이 이 소설 역시 동일한 구조의 사건이 반복되고 변주된다.2.허삼관이 열 번 매혈을 했다는 것은 허삼관의 삶에 열 번의 가혹한 시련이 닥쳤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열 번의 시련은 수사적으로 환원되는 것이 아니라 반복되는 구조의 변형을 통해 슬픔은 매번 다른 것으로 주조된다. 그리하여 허삼관에게 닥쳐 온 열 번의 슬픔은 동일하지 않는 슬픔으로, 차이 속에서 수 없이 분화하는 슬픔이 되어 모든 슬픔은 ‘한때’의 유일한 슬픔이 되어 그의 가슴 속에 각인된다.가뭄이 심하게 들었을 때 피를 파는 허삼관의 내면과 아픈 일락이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열흘 동안 네 번 피를 파는 허삼관의 내면은 분명 다를 것이다. 작가는 허삼관의 내면을 묘파하는 대신 피를 파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형식들을 아주 미세하게 변형시킨다. 그리하여 허삼관의 내면은 변형된 형식들 속에서 주조된다.허삼관은 피를 팔아 사랑을 얻고,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으며, 부성애를 발휘하게 된다. 허삼관은 피와 돈을 교환하였고 이 교환은 불공평하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자본주의 국가보다 더 혹독하고 착취적 교환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이 교환은 불공정하지만, 이를 통해 허삼관은 아내와 자식들에 대한 사랑, 그 관념적인 사랑을 물리적이고 물질적으로 깨닫게 된다. 인간의 피가 물질적 가치로 전락하는 것을 볼 때 슬프지만, 사랑과 같은 무형의 가치가 물질로 전환되는 부분에서 감동을 느끼게 된다.3.이 소설은 허삼관의 매혈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허삼관이 돼지간볶음과 황주를 먹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마지막 장면에서 허삼관은 아내와 더불어 그가 피를 판 후면 늘 찾아갔던 승리반점에서 예의 그 음식과 술을 시켜 먹으면서 이렇게 말한다.“내 평생 이렇게 맛있는 돼지간볶음은 처음이야.”허삼관이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단순해 보이는데, 그는 처음으로 피를 팔지 않고 돼지간볶음을 먹고 있기 때문이다. 허삼관은 그동안 자신과 가족에게 닥친 불행을 자신의 피와 맞바꾸었다. 그렇다면 돼지간볶음을 먹는 일이란 그 불행을 씹어 삼키는 일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허삼관은 불행과 마주하지 않고, 처음으로 불행을 걷어 낸 돼지간볶음을 먹게 된 것이다. 그러니 이 음식이 어찌 맛이 없을 수 있겠는가.하지만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허삼관은 예순이 되었고, 병원은 그의 피를 받아주지 않는다. 그는 더 이상 불행이 닥친다 해도 그 불행을 감당할 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 불행과 맞바꿀 수 있는 유일한 재산인 피를 모두 소진해버렸다. 삶의 온갖 역경 속에서 허삼관이 건져 올린 전리품이란 돼지간볶음 세 접시와 황주 한 병! 그것이 전부라면, 승리반점에서의 식사를 하는 허삼관의 삶을 ‘승리’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것을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이 장면은 행복이라고도 그렇다고 슬픔이라고도 말할 수 없는 그 분화하는 틈 속에 허삼관의 삶을 위치시키고 있다. 곧 그것이 삶일 것이다. 이 소설의 마지막 줄은 이렇다.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털이 눈썹보다 나기는 늦게 나지만 자라기는 길게 자란다 ”이 말은 ‘청출어람’의 중국버전 아니 저속한 버전쯤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스승보다 제자가 낫다’라는 의미로 주로 쓰이는 이 말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쪽풀에서 푸른빛이 났다고 해서 쪽풀의 빛깔과 쪽빛이 같을 수 없듯이 눈썹과 ×털은 모두 털이지만, 그 털은 같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허삼관이 한 열 번의 매혈은 결코 같은 의미의 매혈일 수 없다. 쪽풀이 곧 쪽빛일 수 없으며, 눈썹이 ×털일 수도 없다. 문화대혁명, 공산당의 부패 그런 부조리한 사회구조들이 허삼관을 둘러싸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의 삶은 이러한 억압적 구조를 오직 삶으로서 가뿐히 뛰어넘는다. 삶은 이어지고 이데올로기는 그 삶을 완전히 장악할 수 없다.명심할 것은 삶의 형식들이 바뀔지언정 삶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 이러한 삶의 형식을 공산주의로 부르든 자본주의로 부르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삶은 어떤 식으로든 그저 삶일 것이고, 위화 역시 우리와 같은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은 자명하지 않은가.

2019-01-10

일출 산행-진도 첨찰산과 동덕산 산행기

11월 달에 설악산을 다녀 온 후 딱 두 달만이다. 꼭 챙겨야 할 준비물은 아이젠과 헤드 랜턴이다. 산행을 갈 때마다 하나씩은 빼먹는다. 지난번엔 아이젠을 못 챙겨서 사야했는데, 이번엔 랜턴을 빼먹었다. 열심히 충전까지 해놨는데 그걸 두고 오다니 한심하다. 다행히 같이 간 일행에게 여분의 랜턴이 있어서 산을 오를 수 있었다만, 2019년에는 덤벙대는 버릇 좀 고쳤으면 좋겠다.밤 10시 반에 만나 대절 버스를 타고 진도까지 갈 예정이다. 점찰이었나, 첨철이었나.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첨찰산(尖察山). 진도에서 제일 높은 산이라고 한다. 이름의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고, 산이 높은데다 뾰족해서 살피기 좋아서 이런 이름을 붙였을 것이라 한다. 진도 사람들은 여기서 해맞이를 한단다.차로 네다섯 시간은 족히 걸리는 이 먼 곳까지 일출을 보러 가는 이유는? 뭐 이유 같은 게 뭐 필요하겠어. 산에는 가고 싶고, 일출도 보고 싶고. 그러니 그냥 따라가는 거지. 그럼에도 굳이 이유를 만들어내자면, 산악회 수석 대장님 고향이 진도기도 하고, 작년인가 재작년에는 진도에 있는 달마산을 갔다는데 꽤 좋았나보다. 그래서 진도로 일출 산행이 결정되었는데 신청을 제대로 받기도 전에 매진이 되어버렸다. 나는 빈자리가 생기면 끼워주기로 했는데 다행히 한 자리가 남아서 이렇게 따라 나서게 됐다.좋기도 하지만 내심은 걱정이 앞섰다. 그동안 최선을 다해서 꾸준히 운동을 안한 대다가 덕분에 몸이 불어서 무릎도 시큰거리니, 산행이 두려운 것은 인지상정이다. 생각해보면 어제의 해와 오늘의 해가 다를 것이 없으니, 새해라는 건 한낱 허상에 불과하다. 산행 쯤 안 가도 그만이지만 또 그게 그렇지만은 않다.인간은 의미화하는 존재여서 의미화하지 않고서 삶을 살아가는 것은 힘들다. 밥을 먹을 때에도, 옷을 살 때에도 뭔가 근사한 의미를 찾으려고 한다. 단지 살기 위해 밥을 먹는다는 것, 그냥 사고 싶어서 옷을 산다는 것, 이것이 비록 사실일지라도 이 사실을 냉철하게 직시하며 살아가기는 어렵다. 이 사실을 직시할 수도 있겠지만, 그로 인해 찾아오는 거대한 공허함과 허망함을 견뎌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새해라는 것도 이와 같아서 아무것도 아니지만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어떤 것이다. 하여 나는 산행을 떠난다.새벽 4시 40분께 산을 오른다. 몇 걸음 오르기도 전에 숨이 목까지 찬다. 피가 도는지 후끈해진다, 라고 말했는데 일행 하나가 피가 안 돌면 산 게 아니지, 라고 한다. 얼결에 한 방 맞았다. 그렇지 피는 원래 돈다. 산은 그런 피가 돌고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평소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발걸음을 느끼게 하고, 골반의 뻐근한 통증은 내가 살아 있음을 깨닫게 된다. 어쩌면 산다는 것은 이런 것들을 감각하는 일이 아닐까. 마구잡이로 떠오르는 생각들이 바람을 산란케 했나보다. 나뭇잎도 없는 나무들 사이를 바람이 헤집고 다닌다.거의 9㎞의 산행 중 반이나 왔을까, 선두그룹이 술을 마시고 있다. 날이 추워서인지 죄다 독주다. 고량주를 종이컵에 거의 한가득 따라준다. 술이 빈속을 따라 또르르 구르듯 위에 가 닿는다. 사람들은 좋고 술은 맛나고 여기 이대로 술에 취하고 싶지만, 바로 저 앞이 정상이라는 말이 뻥인 줄 알면서도 사람들을 따라나선다. 같이 가던 일행은 나를 버리고 달아난다. 나는 혼자 터벅터벅 기상대에 닿는다.해가 떠오르려는지 먼 바다가 붉게 타오른다. 첨찰산 정상보다 오히려 여기가 해를 보기 좋을 것같다. 벌써 도착한 선두그룹은 비닐움막에서 오뎅국을 끓여 또 술판을 벌였다. 나는 또 염치없이 거기 끼여 술을 받아먹는다. 대단할 것도 없는 이 비닐움막의 성능은 대단해서 하나도 춥지 않다. 문제는 밖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건데, 웃고 떠드느라 정신없는 사이 내가 우연히 고개를 내밀었다가 해 뜨는 걸 보게 되었다.조금만 늦었으면 일출을 보지 못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구름과 바다가 맞닿은 아주 조그만 틈으로 태양이 떠올랐다. 나는 당신의 건강을 빌고, 새롭게 시작한 일이 잘 되길 빌었다. 해를 보며 많은 사람들을 생각했고, 그들의 삶이 행복하길 빌었다.내려오는 길은 쏟아지는 잠과 술 덕분에 힘들어할 기력도 없었다. 산악회 회장님은 주차장에서 떡국을 끓여 놓고 우릴 기다리고 있다. 떡국을 먹은 것도 오랜만이고 더구나 새해에 떡국을 먹는 것도 오랜만이라 즐겁다.그리고 마침 이곳에는 ‘첨찰산 해맞이 떡국 나눔 행사’가 한참이다. 떡국도 끓이고 막걸리도 준비한데다 민요와 타령을 하는 예능인들까지 초빙했다. 무척 큰 행사인가 본데 산을 찾은 사람이 많이 없어서 우리 산악회가 이 행사를 거의 독차지 했다. 공연 막바지에는 아리랑과 강강술래를 부르며 구경꾼들을 무대로 끌어들였다. 명창들의 노래와 악사들의 연주에 따라 우리는 미친 듯이 강강술래를 외치며 맴을 돌았다. 웬만한 등산보다 힘들겠다 싶을 정도로 걸판지게 놀았다.이제 동덕산을 갈 차례다. 차에 앉기가 무섭게 잠에 들었다 깨니 모두들 동덕산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 동덕산은 우리나라에서는 드물다는 완전한 돌산이다. 기암과 절벽들로 보는 사람들을 아찔하게 만든다. 나는 천근이나 되는 발을 이끌고 산을 오른다. 몸이 아파서 그런지 바다로 둘러싸인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경치가 그저 그렇게 느껴진다.어서 내려가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동덕산 정상을 지나서 한참을 더 가야했지만 나는 중간에 산을 내려가기로 한다. 내려가면 갓이 많다니 그거나 뜯고 있을 생각이다. 정말 밭 근처에 야생으로 갓이 자라고 있다. 뜯어서 씹어보니 맛이 쌉쌀하기가 시중 것 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개중에는 밭 근처에서 농약도 먹고 비료도 먹은 것들은 얼마나 무성한지 한 포기만으로도 여럿은 먹을 수 있을 것 같다.차에 돌아와 앉으니 몸에서 썩는 냄새가 나는 것 같다. 등산을 한참 할 때는 안 그랬는데, 정말 내 몸에 있던 나쁜 것들이 빠져나왔나보다. 오늘은 씻을 곳도 없어서 겨우 세수하고 머리를 감았다. 찬물에 몸을 담그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쉽다는 생각을 하며 이제 점심을 먹으러 간다.공강일서울대 강사·국문학점심은 회다. 어느 통큰 회원 한 분이 이걸 통째로 쏜단다. 모듬회와 모듬가리비가 가득한 상에 자리를 잡았다. 술이 빠질 수 없다. 진도 명물 홍주까지 차려놨더니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산악회에서 하는 이야기는 늘 산악회 선배들이 산행하며 겪은 기행에 관한 것들이다. 귀신을 만났다는 이야기도 있고, 날이 추워서 고생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래도 가장 많은 이야기는 누구를 만나서 즐거웠다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나도 이들과 함께 늙어가 더 많은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함께 나이를 먹을 수 있는 사람을 찾는 일은 이렇게 즐거운 일이라 생각하며 기분 좋게 취한다.

2019-01-03

고상한 사람의 고상한 글

가정방문을 오신 담임선생님은 하늘과 가까운 동네라며 웃으셨다. 우리 집은 내가 고등학교를 다니느라 읍내에서 자취를 할 때도 대학을 다닐 때에도 그리고 지금도,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밤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 서울이, 눈이 오면 우산을 쓰고 종종걸음 치는 이 바쁜 서울의 삶이 낯설어질 때 나는 집으로 돌아와 군불을 활활 지피고 등을 지지며 동면에 든 짐승처럼 오래도록 칩거한다.돌아가고 싶을 때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나와 달리 미륵은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다. (‘압록강은 흐른다’를 읽으며 이미륵 선생이 오래 알고 지낸 사이처럼 느껴졌다.) 그는 3·1운동에 가담한 후 일본 경찰을 피해 독일로 망명하여 그곳에서 생을 마쳤다. 이런 그의 삶이 불행하기만 했던 것은 아닌데 이학박사 학위를 받고 뮌헨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이력을 통해서 이를 짐작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책에서 느낄 수 있는 그의 따뜻한 성격, 사람과 사물에 대한 관심과 애착, 이런 품성은 그를 빛나게 만들었을 것이고 그 빛은 그의 주변 사람들까지 물들였을 것이다.그의 글을 읽노라면 ‘르’를 발음하지 못해 ‘미륵’을 ‘미악’이라 부르는 사촌 ‘수암’의 부드러운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그가 자주 사용하는 ‘고상하다’라는 단어처럼 그의 글은 고결하고 상서롭다. “압록강은 흐른다”는 독일어로 출간되어 우리말로 옮겨졌지만 미륵의 글무늬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이는 역자의 섬세함에서 비롯하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역자가 미륵의 글법에 자신도 모르게 스며들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가느다란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려 신기하고 어려운 글자”를 적시듯이 그렇게 말이다(11면).이런 문채(文彩)는 독일인에게 생소했을 조선의 삶을 실어 날랐을 것이다. 독일인들은 미륵의 정갈하고 고요한 글쓰기를 통해 조선을 여리고 가냘프며 아름답고 애잔한 곳으로 생각하며 연민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조선을 인식하는 이러한 방식은, 에드워드 사이드가 비판해 마지않았던 오리엔탈리즘이다. 하지만 오리엔탈리즘이 갖는 무수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인간의 인식론적 한계의 단적인 사례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왜냐하면 오리엔탈리즘이란 일종의 선입견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호기심과 앎은 하나의 선입견에서 시작하며 그것을 교정해 나가는 과정을 거듭하며 하나의 인식으로 자리 잡는다. 편견이 없다면 우리는 대상에 다가갈 수 없다. 따라서 문제적인 것은 편견 자체가 아니라 이러한 편견을 고수하는 태도다. 독일인들은 미륵의 글을 읽으며 조선에 대해서 생각했을 것이고, 나아가서는 더욱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조선에 대해 공부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작고 볼품없는 나라가 아니라 미륵이 사는 아름다운 나라로 인식하게 되었을 것이다.정작 미륵 스스로는 원자, 이온 에너지와같은 말을 이해하려고 무던히 애를 썼고, 그 산란한 서구의 학문을 피해 송림 마을 외딴 포구에서 요양을 하였다. 요양을 끝내고 돌아와서는 라디오 강의록을 통해 신학문을 수년 동안 공부하였고, 독일어를 익히기 위해 “눈이 피로하여 글자를 알아볼 수 없을 때까지 읽고는 생각하고 또 읽고는 생각”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250면).이런 지난한 과정을 그치며 그는 유럽의 삶을 체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한 사람이 자신의 문화권을 떠나 다른 문화에 동화되기까지 이런 지난한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미륵은 알고 있었던 것같다. 그래서 그는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을 삼가고 있는 듯하다.아궁이, 마루, 떡장수와 같은 일상어는 물론 권주가, 소동파, 도연명, 한방의술 등의 문화에 대해서도 알 리 없는 이 낯선 땅에서, 미륵은 이런 단어들을 설명하려 조바심내지 않는다. 한자는 ‘신기하고 어려운 글자’, 한옥은 ‘원형으로 지어진 집채’, 무당은 ‘소리와 춤으로 귀신을 불러들이는’사람, 붓 잡는 방식은 ‘청소부가 총채를 쥐듯이’처럼 최소한의 말로 언어의 핵심에 가닿는다.정갈하고 품위있는 문장은 사람을 감응시키며, 작은 것을 통해 전체를 드러내는 방식은 호기심을 자극한다. 독일인들은 미륵의 글을 읽으며 조선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고, 그가 설명하지 않은 부분을 스스로 채우며 조선을 더욱 깊이 알아갔을 것이다. 출간 당시의 뜨거운 반응이나 중등 교과서에 실릴 수 있었던 것 역시 이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네가 여기 살아서 언제나 나와 같이 음악을 즐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니? 너는 일을 안 해도 좋고, 걱정을 안 해도 되며 행복한 사람으로 평생을 살아도 되지 않니? 네가 원하기만 하면 동무들을 불러다 하늘이며 땅이며 세계며 사람들의 마음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니? 너는 산에다가 집을 한 채 짓게 하여 시냇물 흐르는 소리를 듣고 흘러가는 구름을 볼 수 있지 않니? 너의 어머니는 행복할 것이고, 너도 행복하게 살 것이며, 또 나는 언제나 네 곁에 있을 수 있지 않겠니?”(172면)이것은 국악에 심취한 만수가 서울로 떠나려는 미륵을 만류하면서 했던 말이다. 이 말은 고풍스럽고 고혹적이어서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다. 그런데 여기에는 거문고의 명수 백아와 관포의 사귐, 조선시대 선비들의 풍류와 노장사상이 담겨 있다. 이런 지식이 글을 더욱 깊이 음미할 수 있게 만들지만, 설사 모를지라도 어떤 떨림을 느끼긴 마찬가지일 것이다.그런데 그의 글이 흔들어 놓은 것은 누구보다 미륵 자신이 아니었을까. 미륵은 그리움에 휩쓸려 감정을 휘발시키기보다는 자신의 삶을 오래도록 새김질하여 그리움을 복원해낸다. 이 오랜 새김질 덕분에 우리도 그의 둥근 슬픔을 공감하게 된다. 아버지와 함께 누워 소동파와 ‘영탄가’를 읊었고, 기섭, 용마, 만수가 배웅을 나오고 어머니가 “너는 다시 이 에미한테로 돌아왔구나”라며 맞아주었던 일(251면), 또 그의 누이가 “너는 달빛 아래서 술잔을 기울이며 시를 지을 수 있게 거기(유럽)에도 남풍이 불어준다고 믿니?”라고 타박을 주었더라도(110면), “파괴된 성벽과 헐어버린 문간이 형용할 수 없는” 슬픔을 느끼게 하였더라도(130면), 이런 기억은 미륵에게 소중했을 것인데, 우리 역시 그와 함께 이 모든 것들을 추억하게 된다.공강일서울대 강사·국문학독일 독자들을 향한 글이었음에도 그는 낯선 조선의 삶을 구차하게 설명하는 법이 없다. 조선에 대한 그리움을 구구히 토로하지도 않는다. 때론 말없는 말이 더 많은 것을 말하곤 한다. 이 침묵을 따라가다 보면 조선을 떠나야 했던 또 다른 미륵들, 당대를 견뎌내야 했던 미륵들, 그 숱한 미륵들의 삶에까지 이르게 된다.* ‘압록강은 흐른다’는 1946년 독일에서 발표된 한국 소설이다. 저자 이미륵은 일제 강점기가 시작되기 전의 어린 시절부터, 경성의학전문학교를 다니다 3·1운동에 가담한 후 독일로 망명하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자전적 소설이다. 이 글은 제1회 한민족 이산문학 독후감대회에서 수상한 작품을 수정하였음을 밝힌다.

2018-12-20

“커서 뭐가 될래”란 말을 믿는다는 것

1.“커서 뭐가 될래?”이 말을 다시 듣게 된 것은 20대 후반이었다. 그때 나는 대학을 졸업한 후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고 있었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할 수 없었고 번번이 대학원 진학에 실패했다. 무엇을 하는지도 모른 채 삶은 조금씩 닳아가고 있었으며 그 속에서 나는 형체도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가고 있었다.하루는 친형처럼 따르던 동네 형과 어울려 술을 마신 일이 있다. 술을 따르던 친구가 술병을 놓치는 실수를 했다. 재치있는 형은 동네 어르신이 개구쟁이들에게 한심스럽다는 듯이 던지는 말투로, “으이그, 커서 뭐가 될라카노?”이 말이 너무 재미있게 들렸다. 우리는 더 이상 자랄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고, 우리는 저마다 이미 무엇인가가 되어 있었거나 되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다 컸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실제로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래서 ‘커서 뭐가 될래’라는 말이 우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래서 더 재밌어했는지도 모르겠다. 이 말은 그날 술자리에서 가장 인기있는 말이 되었다. 우리는 툭하면, 커서 뭐가 될래,를 서로에게 해댔다.그런데 이 말은 특히 나에게 각별하게 다가왔다. 그도 그럴 것이 친구들은 모두 직장이 있었고 연애를 하거나 결혼을 했거나 집이나 차를 가지고 있었고 저마다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아니 그렇게 보였다. 그에 반해 나는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나는 내 삶이 실패했고, 내 삶은 이미 끝난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을 결코 살 수 없을 것이라는 자괴감에 빠져 있었다. 다른 친구들처럼 살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있었다. 그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에게 커서 뭐가 될래, 라는 말은 클 수 없음에 대한 반어가 아니었다. 이 말은 이 말 그대로, 그 지시성 그대로가 진실이었고, 진실이길 간절히 바랐다.2.그 후 많은 시간이 흘렀으나 내 삶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여전히 나는 가난하고 외롭고 지치고 힘겹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커서 뭐가 될래, 라는 말을 믿고 있다. 나는 여전히 무엇이 되고 싶다는 꿈을 버리지 않았다. 이 말을 믿기 전에 나는 선생이든, 교수든, 시인이든, 남편이든, 아빠든, 여하튼 그 무엇인가이고 싶었다. 안정적인 직장을 갖지는 못하더라도 사람들에게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의 사람이고 싶었다.그러나 커서 뭐가 될래, 라는 말을 통해 이런 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커서 뭐가 될래, 라는 말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의 자리를 ‘무엇’으로만 남겨두는 일이다. 무엇을 ‘무엇’으로 버려둔다는 것은 ‘무엇’의 자리를 무엇으로도 바꾸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지젝은 한 강연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줬다. 그 이야기는 이렇다. 아주 힘들고 곤란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지금 상황이 어두운 것같지만 늘 터널 끝에는 빛이 있어. 그러니까 용기를 잃지마.”라고 말한다. 이런 말에 동유럽 출신인 지젝과 같은 공산주의자들은 아주 냉소적으로 대꾸한다고 한다. “물론 그렇지 우리를 향해 기차가 달려오고 있으니까.”희망은 어디에도 없다. 그렇다고 좌절하고 체념하라는 말은 아니다. 절망만이 길일지라도 그 절망이 정확히 무엇인지 말해야 하고 그 절망에 대해 사유해야 한다. 망가진 잠수함 속에서 산소는 떨어져가고 사람들은 잠들어 있고, 그들을 깨운다고 해도 문을 열 수 없고, 설사 문을 열더라도 바닷 속이니 상황만 악화될 테지만 그래도 사람들을 깨워야 한다. 그로 인해 절망과 혼란이 가중된다 할지라도 그들을 깨워야 한다. 이 절망과 혼란 속에서 분열, 이것이 어쩌면 삶의 실체인지도 모른다.3.나는 삶이 방향성없는 방향들의 분열이라고 생각한다. 더 정확히는 분열된 틈에서의 떨림이다. 이 말은 우리가 남자와 여자의 사이에서 태어나야 한다는 것,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증명 가능하다. 아이들은 아빠와 엄마라는 분열된 틈에서 태어나 자라는 동안 끝없이 떨린다.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라는 말에 아이들이 선뜻 대답할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떨림이 체화된 아이들, 분열이 체화된 아이들은 아빠와 엄마라는 분열된 틈에서 떨리고 있다.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라는 말에 아이들이 선뜻 대답할 수 없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아빠를 49% 좋아하고 엄마를 51% 좋아하기 때문에 혹은 그 반대이기 때문에 말을 못할 수도 있다. 그런데 아빠를 2% 좋아하고 엄마를 98%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아이들은 쉽사리 엄마를 더 좋아한다고 말하지는 못할 것이다. 2% 좋아하는 것도 좋아하는 것이니까. 그러면 둘 다 좋아라고 말하면 그만일 것이나, 아이들은 여전히 머뭇거리기 일쑤다. 엄마를 98% 좋아하더라도 남은 2%마저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아이가 엄마를 좋아하는 것도 진실이지만 안 좋아하는 것도 진실이다. 더욱이 이 좋아함의 정도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변하기 마련이다. 살다보면 엄마보다 아빠가 더 좋을 때도 있는 법. 그러니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라는 말 앞에서 아이들의 머뭇거림은 당연하지 않은가. 적어도 나는 이 분열의 틈에서 떨리고 있다. 나는 엄마를 좋은 엄마와 안 좋은 엄마로 분열시키고, 그 분열 사이에서 끊임없이 진동하고 있는 셈이다. 만약 내가 엄마를 좋은 엄마로 규정해버린다면 나의 분열은 물론 엄마의 분열도 멈출 것이다. 더 이상 분열하지 않는다면 엄마도 나도 늙어가고 말 것이다. 왜? 분열은 곧 성장이며, 분열을 멈춘다는 것은 노화이므로….4.▲ 공강일서울대 강사·국문학그러니 믿어주기 바란다. 나는 여전히 자라고 있다. 사회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말이다. 실제로 나는 자라고 있다. 사회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말이다. 나의 세포는 여전히 분열하고 있으며, 나와 더불어 세상도 분열해 가고 있다는 것을 믿어주기 바란다. 분열의 방향은 없으며, 방향성없는 방향으로 분열하고 있다. 그러니 믿어주기 바란다. 삶은 방향성없는 방향들의 분열이라는 것을.더 클 수 있다는 것은 결국 그 너울거림을 긍정하는 일일 것이다. 어떤 것에 안착하거나 규정되지 않은 채 끊임없이 떨리는 것도 삶일 것이다. 나는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되지 않을 것이고, 남편이나 아빠도 되지 않을 것이며, 과장이나 교수도 되지 않을 것이다. 넌 뭐하고 사냐, 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당당히 ‘뭐’하고 삽니다, 라고 말할 것이다. 특정한 일이 없이 ‘무엇’을 하고 있는 나를 부질없는 인간, 쓸모없는 인간, 그런 류의 인간으로 부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삶과 더불어 너울거리며 온 힘을 다해 내 삶을 탕진하며 살아갈 것이다. 다함이 없는 떨림 속에서 나는 영원히 삶을 탕진하며 영원히 떨릴 것이다. 하여 “커서 뭐가 될래”를 믿는다는 말은 불사(不死)를 믿는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나는 이 말과 더불어 영원히 살아갈 것이다.그러니 물어주기 바란다.

2018-12-14

금연기

담배를 처음 피워본 것은 중학교 3학년 때였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나를 친구들은 의아하게 생각하곤 했다. 그래서 한 대쯤 피워줬다.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중학교 2학년 흡연예방캠프를 하면서 거기에서 보여준 사진들이 너무 끔찍했었기 때문이다. 나는 사내자식이 쪽팔리게 그 사진들을 보며 눈물을 펑펑 흘렸는데, 그건 담배를 피우고 있는 아버지를 생각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담배를 피우게 될 미래의 나에 대한 이른 애도였는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면 담배를 끊고 싶어 부단히 노력한 것 같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말이다. 부모님이 담배 피우는 것을 그것도 아버지가, 대단한 흡연가였다가 금연을 하신 뒤로 더욱 담배의 무익함을 소리 높여 이야기하셨고, 그래도 담배를 피우는 나에게 경멸적이고 모멸적으로 대하곤 하셨다. 그러면 나도 지지 않고 아버지도 마흔다섯까지는 피우셨으니 저도 그때까지는 피우다가 끊으렵니다, 라고 응수하곤 했다. 그래도 한 편으론 죄송함 때문에 부단히 금연을 계획했다. 금연초도 피워보고, 패치도 사서 붙여보고, 보건소에서 금연침도 맞아봤지만, 의미가 없었다. 금연초 4대 피우고 담배 1대 피우고, 그러다간 결국 담배를 피웠고, 패치를 붙이고 피우면 오히려 핑돌아서 담배를 참았다가 패치를 붙인 뒤에 일부러 담배를 피우곤 했다. 금연침은 누가 봐도 플라시보 효과임이 분명했다.입대 7일 전에 사귄 여자 친구가 담배 끊길 간절히 원했고, 나 역시 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래저래 6주의 시간은 흘러갔고, 다시 후반기 교육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고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자대배치를 받기 전에도 한 번 끊었는데, 막상 자대배치를 받고 나니 고참들이 한 대 필래, 라고 물으면 “예, 알겠습니다.” 소리가 절로 나왔다. 입대 한지 채 1년이 가지 못해서 여자 친구와 헤어졌고, 그래서 안심하고 담배를 피웠고, 연애를 할 때마다 담배를 먼저 끊었지만, 그 짧은 금연의 횟수만큼이나 연애도 짧았다.그렇게 담배는 끈질기게 이어졌고, 담배를 하루에서 이틀 정도 끊었을 때는 많았지만, 3일째는 꼭 피웠는데, 그 핑 도는 맛이 너무 좋았다. 사실 지금도 그 띵한 맛이 그리워지면 어떡하나 걱정이다. 그래도 나는 행복한 비흡연자니까, 라는 얄팍한 말로 그 유혹을 이겨낼 수 있을까?재작년부터 작년 여름까지 거의 1년 동안 담배를 끊었다. 이 역시 여자 친구 때문이었는데, 한 번도 담배를 끊으라는 말을 하진 않았지만, 정말이지 그녀에게 잘 보이고 싶었고, 내 삶에서 그녀를 결코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정말이지 거짓말처럼 단호한 의지로 담배를 끊을 수 있었다, 라고 생각한 건 착각이었다.담배를 피우는 동안 항상 어깨가 결린 듯 아팠는데, 어깨통증이 사라졌고, 왼발에만 굳은살이 잡히고, 심할 때는 그게 갈라지곤 했는데, 담배를 끊고는 그런 것들이 완전히 사라졌다. 뿐만 아니라 하지 정맥류가 심했는데 그 통증도 사라졌고, 무엇보다 운동하는 걸 싫어했는데 담배를 끊은 뒤로는 달리기에 재미를 붙여 일주일에 두세 번은 7km씩 뛰곤 했다. 일이 없는 날은 방구석에 드러누워 늘어지는 걸 좋아했는데 담배를 끊고 나서는 그러고 싶은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그렇게 좋았다면서 왜 담배를 다시 피웠냐고? 금방 끊을 수 있을 줄 알았다. 정말 그럴 줄 알았다. 그런데 사실 한 번이라도 피면 결코 다시 금연을 이어가지 못할 거란 걸 알면서도 피웠던 게 사실이다. 금연 6개월째 꿈을 꿈꿨다. 꿈이었는데 꿈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생생했다. 담배 한 개와 라이터를 들고 숲으로 아주 깊은 숲으로 달아나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심지어 나조차 찾을 수 없는 깊은 숲에서 담배를 피워 물었다. 그 첫 모금은 맛있기는커녕 메케하고 메슥거려서 담배를 바로 껐는데 나는 다시 금연을 못하리라는 자괴감을 가졌는데, 그 꿈속에서의 자괴감이 거의 2년여가 지난 지금도 깊이 각인되어 있다.담배를 끊었다 피웠다를 여전히 반복해왔다. 여자 친구를 만날 때면 최대한 안 피우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기 때문에 최대한 자제하려고 애썼다. 그래도 담배를 딱 끊었을 때는 여자 친구와 4시간이든 5시간이든 온전히 말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말하다가도 중간에 핑계를 대고 밖으로 나가곤 한다. 그러면 당연히 이야기는 단절된다. 아니 담배를 피워야겠다는 생각을 할 때부터 그녀의 말은 잘 들리지 않고, 내 생각은 담배를 향해 달려간다. 나는 당신을 만나고 있는 건가, 담배를 만나고 있는 건가? 내가 생각해도 내가 불쌍하다.그렇긴 하지만 한편으론 멋있다는 생각도 한다. 사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도 한 대 빨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샤워를 하면서 담배를 피우는 버릇을 들인 건 ‘샤인’이라는 영화에서 주인공이 미친 듯 퍼붓는 소나기를 맞으며 담배를 물고 있는 장면이 너무 멋져서이다. 내일 아침에 샤워할 때 담배가 생각나면 어떡하지?여튼 나는 담배를 끊으려는 핑계를 어떻게든 찾으려고 할 거다. 그런데 말이다. 나는 담배를 참는 것이 아니다. 오늘부터 아니 어제부터 나는 행복한 비흡연자라는 걸 선언했기 때문이다. 군인이 아무리 멋지게 옷을 다려 입고, 다리미로 몇 줄을 잡는다고 해도, 그냥 군인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내가 아무리 좋은 라이터로 설령 듀-퐁으로 불을 붙이고, 한 개비 당 1천달러가 넘는 ‘구르카 블랙 드래곤 시가’를 피운다고 해도 나는 ‘찐따’ 흡연자일 뿐이라는 걸 잘 안다.나는 행복한 비흡연자지만, 그래도 담배를 피우며 웃고 떠들던, 오른손으로 멋지고 ‘눈깔’을 튕기고, 샤워를 하면서 ‘걱정말아요’를 있는 대로 크게 틀어놓고 담배를 피우던 그때가, 그때가 그리워지면, 어쩌지?▲ 공강일서울대 강사·국문학그래 자꾸 자꾸 되뇌어야지. 난 행복한 비흡연자고 담배가 맛있고, 멋있다는 건 다 뻥이라는 걸. 그리고 난 온갖 짓을 다해도 결코 멋져질리 없다는 걸. 그런데 그런 상태에서 담배까지 피우면 정말 최악이라는 걸. 그리고 바보야 담배는 맛있는 게 아니야. 그리고 담배는 스트레스를 더 쌓이게 할 뿐이라는 걸, 지금 담배를 못 피워서 쌓이는 스트레스보다 담배를 피우면서 생기는 스트레스가 훨씬, 훨씬 길다는 걸. 심심해서 담배를 피우는 행위는 심심함이라는 그 고귀한 시간을 방해하는 일이라는 것을, 집중력을 높일 수 있다고? 타이핑을 하면서 담배를 입에 물고 하면 집중도 잘 되고 글도 잘 써진다고? 영화를 너무 많이 봤구나, 야, 담배 찾고, 꺼내고, 불붙이고, 빨고, 재 털고, 또 빨고…. 집중력이 높아진다고? 개 발에 땀나는 소리하신다. ‘증말’.그냥 나는 중독이라고, 중독이라는 걸 인증해야지. 하지만 중독을 일으키는 작은 니코틴 악마는 매우 약한데 그걸 증폭시키는 건 바로 나라는 걸. ‘나’라는 매우 크고 뚱뚱한 사탄이라는 걸. 내가 스스로 끊임없이 나를, 담배피우는 나를 합리화하려고 애쓴다는 걸. 나는 행복한 금연자로서, 두려운 흡연자에서 해방되어 자신감과 만족감을 되찾고 편안한 일상 속에서 살아가야지.

2018-12-07

단상 : 시와 소설

△놀이하위징아는 놀이의 규칙을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놀이 파괴자는 놀이를 잘못하거나 놀이를 속이는 자보다 죄질이 더 무겁다. 왜냐하면 놀이를 속이는 자는 아직도 게임을 하고 있는 것처럼 시늉하면서 겉으로는 마법의 원(놀이를 유지하는 규칙)을 여전히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놀이 파괴자는) 게임에서 벗어나 버림으로써 그는 자기와 다른 놀이꾼들이 일시적으로 만들어낸 놀이 세계의 상대성과 취약성을 폭로한다.”(“호모 루덴스”)하위징아는 놀이를 속이는 자와 놀이를 파괴하는 자를 비교하면서, 놀이 파괴자의 죄질이 더 무겁다고 말한다. 문제는 이런 주장의 근거가 없다는 것. 다만 하위징아는 놀이는 규칙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놀이의 규칙은 유지되어야 한다는 (수정되어야 할) 전제 위에 이런 주장을 펼치고 있을 뿐이다.만약 하위징가 아이들의 놀이를 진지하게 보았다면, 혹은 브뤼겔(Pieter Bruegel)의 “아이들의 놀이”만이라도 집중해서 보았다면, 이런 말을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늘 ‘마법의 원’을 부수는 ‘놀이 파괴자’이며, 또 다시 ‘마법의 원’을 만드는 창조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숨바꼭질, 고무줄, 딱지치기를 할 때 늘 놀이의 규칙을 정한다. 이를테면 딱지치기를 할 때, 발로 딱지 끝을 살짝 눌러서 틈 만들기 없기, 딱지 바꿔 놓기 없기, 넘어간 딱지 말고 다른 것으로 바꿔주기 없기, 따위의 규칙을 늘어놓는다. 놀이에 일정하며 불변하는 규칙이 있다면, 아이들은 놀이를 시작하기 전에 이와 같이 놀이의 규칙을 다시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규칙을 정하는 일은 기존의 놀이의 질서를 해체하고 파괴하고 변형함으로써 새로운 놀이를 만드는 일로 볼 수 있다. 아니 더 정확히는 기존의 놀이 따위는 없다는 것을 말하는 일일 것이다. 놀이는 그 말에서 드러나듯이 ‘놀’ 그 자체, 즉 ‘뛰놂’에 다름 아니다.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아이들의 놀이가 마냥 순진무구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것. 아이들은 놀이를 하면서 누가 놀이를 파괴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자이고, 누가 놀이를 유지하도록 강제하는 자인지를 분명히 알게 된다. 규칙을 만들고, 규칙을 지키고, 규칙을 부수는 이 연습 속에서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아가게 된다. 현실을 연습하게 되고, 자신의 능력과 자신의 가치를 내면화하는 출발점이 놀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놀이는 늘 위험의 순간에 직면해 있다.△시인오래전 시집 한 권으로 한국시의 물줄기를 자신 쪽으로 틀어버린 바 있는 시인은 언젠가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생활고에 치이다 보니 시에만 집중할 수 없었죠.”(황병승)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내가 아직 사춘기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 시인의 말은 지극히 당연한 것인데도 나는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왜냐하면 그는 다른 언어가 한 번도 발 딛지 못한 최초의 영역에 언어를 펼쳐 새로운 길을 놓은 시를 썼고, 새로울 것이란 더 이상 없을 법도 한 이 지난한 인간의 역사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미지를 길어 올렸기 때문이다. 그는 그의 시와 더불어 시간도 공간도 없는 영역, 어떤 찬란한, 침범 불가능한 곳을 점유한, 이 비루한 세상과 분리된 시라는 세상에 접어든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런 말을 해서는 안 될만큼 터무니없이 좋은 시를 쓰는 사람이었다. ‘생활고’라는 말이 그와 연결되어 있으리라고는 정말이지 전혀 생각조차 못했다.그런 점에서 나는 서로 다른 두 가지 측면에서 충격을 받았다. ‘아, 그런데도 삶은 끝나지 않는구나!’가 그 하나라면 ‘아, 그러고도 살아남아 삶의 더러운 오물을 뒤집어 써야 하는구나!’가 나머지 하나였다.먼저의 당혹스러움이 죽음을 향한 것이라면 나중의 것은 이 시인을 향해 있었다. 그리고 이 당혹감 혹은 원망은 그를 비롯한 인간의 삶 전체로 뻗어나갔다. 그러니까 이 시인의 별 말 아닌 말 덕분에 나는 추잡스러운 삶을 생각했고 또 광폭한 죽음의 민낯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죽음은 자신을 필요로 하는 순간에 찾아오는 법이 없다. 죽음은 삶의 대척점에서 삶과 완전히 무관하며 그 삶에 포섭된 하잘 것없는 인간의 기대, 바람, 기원 따위와도 관계없이, 어떤 식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에서, 자신이 원할 때 자신의 법에 따라, 심지어 자살을 선택할 때조차 인간의 의지와 상관없이, 죽음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그 성공과 실패가 결정되며, 아무 때고 삶 편으로 스민다는 것, 삶에서 죽음 편으로 결코 들어설 수 없이 오직 죽음 쪽에서 삶 쪽으로만 스민다는 것.△시와 소설시는 사건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 속에서 배태되는 감정과 감각을 기록한다. 소설 역시 사건이 아니라 사건들의 흐름과 속도를 기록한다. 사건은 기록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지만, 사건의 본질이란 사실 저런 무수한 표면들로 이루어져 있다. 사건의 내부나 사건의 핵심이 따로 어디에 존재할 리 없다. 무수한 표면들의 작용 속에서 본질처럼 여겨지는 것들이 반짝인다. 본질은 그 반짝임들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시든 소설이든 사건에 대한 이야기다. 다만 시는 사건이 만들어내는 감정과 감각을 기록한다. 사건이 기록되는 것이 아니라 감각과 감정이 기록된다. 사건은 감정과 감각 뒤에 숨겨진다. 이렇게 생겨난 감정과 감각이 언어로 치환되는 과정에서 일그러짐이 생긴다. 감정과 감각이 온전히 언어로 옮겨지지 않기 때문에 그 감정들은 일그러져 주름진다. 시는 그런 주름이다.소설은 사건의 흐름에 대한 기록이다. 사건은 멈추지 않고 시간 속으로 흘러내린다. 그 흐름의 줄기는 무수하다. 평평한 땅 위에 물을 부으면 물은 결국 흘러간다. 물론 큰 줄기가 있지만 큰 줄기는 작은 줄기를 만들고 작은 줄기가 만나 큰 줄기를 이룬다. 정통서사가 물줄기의 연속된 흐름을 중시한다면, 소설은 물이 흘러내리면서 만들어낸 무수한 물줄기들을 기록한다. 그래서 소설은 자연히 지배적 서사나 거대 서사가 배제된다.이런 비유를 더 밀고 나가자면, 정통서사가 물이 흘러내린 뒤에 남은 물줄기의 자국을 그린다면 소설은 특히 현대소설은 흐르는 물줄기를 타고 함께 흐른다. 그래서 사건의 큰 줄기인지 작은 줄기인지 알 길이 없다. 흐름에 올라앉아 있으므로 흐름의 보편적 시간이 아니라 흐름의 개별적 시간밖에 알지 못한다. 또한 흐름과 더불어 흐르므로 그 흐름의 끝을 알지 못한다. 그런 이유로 소설은 현재형으로 기록된다.▲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그런 소설이 있다. 완벽히 주인공에 몰입되어 그 주인공 앞에 기적이 일어나기를 그래서 조악한 헐리우드식 해피엔딩이라도 좋으니 그가 행복해지기를 행복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는 소설이 있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소설이 끝난다면 소설가를 욕하고 말 것이다. 그래서 그런 소설을 읽는 순간은 소설을 쓰는 소설가만큼이나 조심스럽다. 소설가 역시 주인공을 사랑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니 그 역시도 일종의 외줄 위에서 외줄 끝까지 걸어갈 것인지, 아니면 외줄걷기를 포기할 것인지 고민하면서 소설을 썼을 것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독자는? 외줄의 끝에서 주인공에겐 어떤 변화도 없이 불행이라면 불행인 삶이 계속 되리라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읽어나간다. 그러니 독자도 읽기라는 외줄 위에서 그 외줄에서 내려와도 그만이지만 외줄의 끝까지 걸어가 보는 것이다. 소설가가 글쓰기를 통해 소설을 완성해 나간다면 독자는 쓰인 글들을 삼킴으로써 소설을 완성해 간다. 그런 소설이란 쓰는 자도 읽는 자도 지난하긴 마찬가지며, 그런 소설은 쓰는 자도 읽는 자도 어떤 희열의 정념에 휩싸일 것은 당연하다.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2018-11-30

불가해한 사랑 이야기

어느 비평가의 말처럼 이 정도라면 ‘시를 통과한 소설’(신형철)이라 부를 만하다.그럴 때마다 마루엔 괴괴한 적막이 빈 항아리처럼 도사리고 앉았다 사라지곤 한다(169면).빛 한 점 없는 새까만 내가 몹시도 서글펐던 것이다.(175면)하늘에서 신발이 매우매우 떨어져요?(192면)신발도 없이 밖에서 밤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려온다.(194면)이것은 ‘빛의 걸음걸이’(윤대녕 ‘반달’, 문학동네)에서 따온 문장들이다. 최소한의 언어로 어떤 사건 전체를 강렬하게 꿰뚫어버린다. 시가 함축적인 이유는 이 때문이다. 시의 무기인 이미지를 윤대녕은 시인만큼이나 잘 다룰 줄 안다.이런 문장도 있다. “맞선을 본 자리에서 여동생은 꼭이 입양되는 아이처럼 결혼에 응했다고 한다.”(179면)와 같은 문장은 여동생이 어떤 마음으로 결혼을 했는지를 단 한 문장으로 각인시킨다. 사람이 태어날 때 부모를 선택할 수 없듯이 ‘입양되는 아이’도 부모를 선택할 수 없다. 아무런 선택권도 없는 고아처럼 동생은 결혼을 해버렸다. 아마도 지금보다 더 나빠질 리는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그렇다면 도대체 동생이 가진 절망은 무엇이었을까, 어쩌다 그런 질량의 절망을 가지게 된 것일까. 그리고 ‘나’는 왜 난데없이 “빛 한 점 없는 새까만 내가 몹시도 서글펐”(175면)다고 말하는 것일까? ‘나’와 여동생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여기에 대해 말할 때 비로소 윤대녕의 소설은 ‘아름답다’에 그치지 않고 그 아름다움의 지향점까지도 말할 수 있게 될 것이다.‘빛의 걸음걸이’는 빛이 응집된 하나의 사진으로부터 시작하여, 그 응축된 빛을 풀쳐내는 방식으로 서술되어 있다. ‘나’는 빛이 닿아 따사로운 자리와 그렇지 않은 어둡고 거친 과거까지를 ‘맨발’로 오간다. 제일 먼저 ‘나’가 찾은 곳은 해바라기밭이다. 그곳에서 어머니는 어느 여름날 누나와 여동생과 자신을 한 줄로 세워놓고 사진을 찍은 일이 있다.“안 그래도 빛에 그을려 시커먼데다 렌즈에 익숙지 않아 저마다 찡그린 얼굴들을 하고 있어 우리는 마치 유엔식량가구에서 각국에 배포하기 위해 찍은 자료 사진처럼 나왔다.”(165~166)그런데 이 사진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누나나 여동생이 가져갔을 것인데 ‘나’는 그 사람이 여동생임을 확신한다. “해바라기밭에서 찍은 사진도 네가 가지고 있다는 걸 난 알아.”(194면) 동생은 그 사진을 가져가 자신의 사진첩에 보관하고 있을 것이다. 무엇 때문에 그 사진을 가져갔던 것일까? 동생은 ‘나’와 어느 여름날 “해바라기 푸른 대궁 사이에 숨어 겁 없이 입”을 맞춘 일이 있었다. 그 불가해하며 불가능한 사랑을 여동생은 여전히 잊지 못하고 있다. 그 사랑을 잊지 못하는 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나’가 인도네시아의 수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끈 달린 하얀 신” 때문이다. 그리고 그 ‘하얀 신’은 자연스럽게 “흰 운동화만 세 켤레인 좀처럼 말이 없는 아이였던” 여동생을 떠올리게 한다. 기실 ‘나’가 좋아했던 것은 수전이 아니라 여동생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나는 그녀의 벗은 등 너머로 열대 장미와 야자수를 훔쳐보며 줄곧 동쪽 방의 내 연인을 생각하고 있었다.”와 같은 문장은 근친성애를 노골적으로 가시화한다.이런 점에서 윤대녕의 소설은 아름답다기보다는 치명적이다. 윤대녕 소설의 아름다움은 이런 파격적인 충격을 감추기 위한 장치인지도 모른다, 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으로 모든 것이 해명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윤대녕의 소설은 아름답다, 라는 비평을 반복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윤대녕 소설이 아름답다 혹은 시와 같다, 라는 찬사는 어쩌면 윤대녕의 소설은 그 아름다움이 전부다, 와 같은 언술을 포함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좀처럼 잘못 읽기 어려운 작품”(황현경)이란 이를 염두에 둔 말일 것이다.그런 이유로 윤대녕의 소설은 ‘잘못 읽힐’ 필요가 있다. ‘반달’(‘반달’, 문학동네)은 그지없이 아름답다. ‘나’는 친구와 함께 새우잡이 배에서 며칠을 보내고 한가해진 어느 날 술을 마시게 된다. 열흘 만에 마시는 술도 술이려니와 그날 밤은 무섭도록 고요했다. 하늘에 떠 있는 반달과 바다에 떠 있는 배의 경계가 뒤섞여 마치 배가 아니라 반달에 드러누워 있는 느낌이 들만큼 고요했다.“하얀 달 위에 우리 둘만이 외롭게 남아 있군. 달은 원래 이렇게 적막한 세계인가보이. 안 그런가?”(71면)그런 친구의 말을 신호로 둘은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혀 이상한 성적 충동에 빠져들어 서로를 갈망하게 된다. 동성성애가 하나의 현상일 수도 있으니 이를 두고 불가해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사랑의 대상이 동성 친구이긴 하지만, 친구 대신 나의 어머니를 기입한다고 하더라도 문제될 것은 없다. 왜냐하면 반달이 있던 밤은 어머니와 ‘나’가 왕새우 소금구이를 먹기 위해 들렀던 한 마을에서 이미 체험했던 그런 풍경이 아니었던가. 마을 사람들도 이 모자의 관계를 연인으로 오해하고 있지 않았던가.“근디 사내 쪽이 행결 젊구먼. 족히 이모뻘은 돼 보이지 않어.”(52면)윤대녕은 동성간의 사랑을 넘어 모자간의 사랑도 가능하다는 것을 은연중에 말하고 있다. 이를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아름다움이다. 윤대녕의 말을 빌리자면 “우주의 순수한 허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의 소설이 가진 비밀의 핵심일 것이다. 윤대녕은 아름다움을 밀어붙여 아름다움을 초과하는 지점까지 몰아간다. 그러한 아름다움은 인간의 차원에서 이해되기 어려운 아름다움이다. 친여동생, 동성인 남자, 여기까진 그러려니 해도 친어머니와의 사랑은 인간의 상식 수준을 초과한다. 아무리 불가능한 사랑은 없다고 하지만 인간일진대 그것을 받아들이는 일이 쉽지는 않다. 이것이 윤대녕의 전략일 것이다. 아름다움을 ‘불가해한 지점’까지, 그리하여 아름다움이 아닐 수도 있는 지점, 더 이상 아름다움이 아닌 지점까지 밀고나가 무엇이 아름다움인지를 되묻는 일, 이것이 윤대녕의 지향점일 것이다.▲ 공강일서울대 강사·국문학그렇긴 하지만 윤대녕은 이러한 불가해한 신비에 매몰되는 법은 없다.(이것은 매우 중요한데 그러한 비의를 풀려고 나아갔던 많은 예술가들은 다시 인간의 자리로 돌아오지 못한 채 낯선 곳에 부유하지 않았던가) “두려울 정도로 아름답고 공허했던 밤에 어쩌면 우리는 거대한 우주의 순수한 허기를 견디지 못했던 게 아니었을까.”라고 적은 후 작가는 이어지는 문장에서 “그런데 그것이 정녕 사랑이었을까?”(72면)라고 되묻고 있다. ‘정녕 사랑’이라고 적긴 하였지만, 여기에는 ‘인간의’라는 말이 빠져 있을 것이다. 즉 윤대녕은 ‘인간의 사랑’의 범주는 어디까지이며 인간의 사랑은 어디까지 가능한가에 대해 묻고 있다. 윤대녕 소설은 이러한 물음을 집요하게 던져왔으며 여전히 던지고 있다.로렌스(L.H. Lawrence)의 후기 소설이 비의적인 아름다움과 신비에 빠져 다시는 인간의 세계로 돌아오지 않았던 것과 달리, 윤대녕은 비인간적 차원의 아름다움으로까지 소설을 끌고 가지만 결코 거기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의 소설은 다시 인간에게로 돌아와 인간을 살아가게 만들고 있다. 아무리 절망적인 인간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시간의 압력에도 윤대녕이 소설이 여전히 읽힐 수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2018-11-23

정지용과 카유보트의 조우

1988년은 문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해다. 왜냐하면 이 해에 “납월북 작가의 작품에 대한 해금 조치”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월북을 했거나 납북이 된 문인을 가르칠 수도 없었고 작품을 읽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1988년 이전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은 이기영, 박태원, 김남천과 같은 소설가와 정지용, 김기림, 백석과 같은 시인에 대해서는 배우지 못했다. 그런 세월이 있었다니 정말 수상한 시대였다. 이 때 해금조치 된 120여 명에 달한다. 이런 시인 중에서도 정지용은 단연 돋보이는 시를 썼다. 정지용은 1902년 충청북도 옥천에서 태어났고 1950년 9월 납북 도중 폭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휘문고등보통학교 학생 시절에 요람동인으로 활동하였고, 일본 교토의 도시샤 대학 영문과를 다녔으며, 일본에서 등단을 할 정도로 시에서 타고난 재능을 보였다. 귀국 후에는 휘문고보 영어 교사가 되었고, 해방 이후에는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로 제직하며 한국어와 라틴어를 강의하였다. 또 경향신문의 주필로도 활동하였다. 1930년대 초 이태준, 김기림, 이상, 박태원 등과 함께 구인회를 결성하여 모더니즘 문학을 이끌었고, 1939년부터는 ‘문장’의 시 부문 추천위원이 되어 조지훈, 박두진, 박목월 등의 시인을 등단시켰다.대표적인 시로는 당대의 많은 시인들과 소설 작품에서 패러디 되어 인용될 정도로 인기가 많았던 ‘카페 프란스’, 아들이 죽은 후 그 슬픔을 형상화한 ‘유리창’, 대중가요로 널리 알려진 ‘향수’, 한라산을 다녀와서 쓴 ‘백록담’ 등이 있다. 이 외에 동시도 많이 썼는데, 유명한 작품으로 ‘별똥’이 있다. 이 시는 매우 짧은데 “별똥 떨어진 곳 / 마음에 두었다 / 다음날 가보려 / 벼르다 벼르다 / 인젠 다 자랐소”가 전문이다. 시집으로는 ‘정지용 시집’(1935), ‘백록담’(1941), 지용시선(1946) 등이 있다.정지용의 초기 시는 이미지즘 계열의 시가 많다. 많은 작품 중 여기에서 소개하려는 작품은 1926년에 발표된 ‘슬픈 인상화’다.수박냄새 품어 오는첫 여름의 저녁 때……먼 해안 쪽길옆나무에 늘어선전등. 전등.헤엄처 나온 듯이 깜박거리고 빛나노나.침울하게 울려오는축항의 기적소리……기적소리……이국정조로 퍼덕이는세관의 깃발. 깃발.시멘트 깐 인도측으로 사폿 사폿 옮기는하이얀 양장의 점경!그는 흘러가는 실심한 풍경이여니……부질없이 오렌지 껍질 씹는 시름……아아, 애시리 황(愛施利 黃!)!그대는 상해로 가는구료….이 시에는 ‘나’와 애시리 황이 등장한다. 애시리은 아마 애슐리(Ashley)를 음차한 말일 것이다. 그녀의 이름과 그녀가 입고 있는 양장, 그리고 자유연애를 실천하는 모꼬 걸(modern girl)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고, 그녀는 ‘나’와의 사랑 따위는 자신의 삶에서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시크(chic)한 여성이거나, ‘나’와의 사랑이 너무도 애절했기에 그 사랑의 끝에 이르자 조선을 떠나기로 했는지도 모른다. 이 시는 이러한 ‘나’와 애시리 황과의 이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아무래도 이 이별을 감각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시를 더 꼼꼼히 읽어보면 이를 알 수 있다. 양산을 받쳐 쓴 그녀는 허리의 윤곽이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흰 원피스를 입고, 또각거리는 하이힐 소리와 함께 엉덩이를 가볍게 흔들며, 배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 ‘나’는 그녀를 마치 풍경처럼 바라보고 있다. 그러다 완전히 점처럼 작아졌을 때쯤 현실감을 찾은 ‘나’는 그녀가 자신이 사랑했던 ‘애시리 황’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이 도도한 여성은 슬픔도 미련도 없이 ‘나’를 떠나가고 있다. 그런데 ‘나’는, 왜 그녀를 붙잡지 않은 것일까. 이 시의 배경이 초여름과 초저녁인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비록 더위를 느낄 수 없지만 초여름은 여름으로, 초저녁은 어둠으로 흘러들 것이 분명하다. 여름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둠도 아닌 몽환적인 공간 속에서 ‘나’는 사랑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별한 것도 아닌 상태에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 ‘나’는 지금의 상황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슬픈 인상화’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인상파의 그림을 염두에 두고 있다. 흰 양장을 한 애시리 황은 인상파의 그림에 등장하는 여성을 닮았을 것이다. 이 시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그림이 있다. (물론 이 그림이 정지용의 시보다 훨씬 빨리 그려졌으니 그 반대이긴 하겠지만) 그 그림은 구스타브 카유보트의 ‘창가의 젊은 남자’라는 그림이다.그림 속 남성은 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거리는 밝고 한산하다. 그리고 한 여성이 서 있다. 자세히 보면 그녀의 몸이 발코니를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여성이 지금 남자를 돌아보고 있는 것이라면 상관이 없겠으나, 앞을 향해 몸을 돌리고 있는 중이라면 상황은 심각하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마차가 있고 여성은 마차를 타고 떠나가 버릴지도 모른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 벌어진 어깨가 더욱 당당해 보이는 이 남자의 표정이 궁금하다.이 그림 속 남자 역시 ‘슬픈 인상화’의 ‘나’처럼 이 이별의 상황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그래서 그림 속 남자는 당당한 척 창밖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오지랖이 넓어서겠지만 저런 남자에겐 조언이 필요하다. “아아, 애시리 황!”하고 뒤늦게 후회하고 싶지 않다면, 지금이라도 뛰어나가 그녀를 붙잡는 것이 좋다.▲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구스타브 카유보트는 부유한 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나 유복하게 살았다. 1870년에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지만 법관이 되는 것을 포기하고 그림을 공부했다. 1873년 프랑스에서 가장 권위 있는 미술고등학교인 에꼴 데 보자르에 입학하였다. 많은 재산을 상속받았으며, 인상파 계열 화가들의 그림을 사 주는 방식으로 당대 화가들을 경제적으로 도우기도 했다. 카유보트는 1848년에 태어나 쉰을 채우지 못하고 1894년이라는 이른 나이에 죽었다. 정지용과는 한 세대 차이가 나지만 공교롭게도 죽은 나이가 서로 엇비슷하다. 정지용이 카유보트의 ‘창가의 젊은 남자’에서 영감을 받아 ‘슬픈 인상화’를 썼는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은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이 있다면, 이별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거의 이런 식으로 전개된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강렬하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다가와 뒤늦게 깨닫게 되며 이별을 체감할 때는 이미 늦었다. 벤야민의 말처럼 우리의 시간은 언제나 늦었음에 멈춰 있다.

2018-11-16

난해시 혹은 ‘순수한 모름’에 대해

△난해시의 난해함심지어 말라르메는 시를 써놓고 일부러 의미를 알 수 없도록 고쳤다고 한다. 말라르메가 시를 어렵게 쓴 이유, 그러니까 말라르메가 난해시를 쓴 이유는 아마도 모름을 모르는 채로 남겨두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순수한 모름’ 이것은 한 시인의 바람에 그치지 않는다. 많은 시인들은 아무도 해독할 수 없는 난해시를 한 편 남기고 싶어한다. 왜일까? 그 이야기를 하려면 먼저 앎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한다.우리가 안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 안다고 여길 뿐 온전한 앎일 수는 없다. 예컨대 우리가 말하는 사랑은 사랑의 한 국면이거나 일반화된 사랑이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알고 있는 것은 사랑의 개념이지 그것이 곧 사랑은 아니다. 규정된 사랑은 특수하고 개별적인 (당신의) 사랑 앞에서 그 효력을 잃고 만다. 사랑은 규정될 수 없다는 공리만을 공유할 뿐 일반화되지 않는다. 사랑과 같이 관념적인 것은 물론 ‘나무’와 같이 구체적인 사물 역시 제대로 알지 못하긴 매한가지다. 우리가 아무리 ‘나무’를 정의하려 해도 그것은 ‘나무’의 한 국면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이러한 가르침을 주었던 최초의 철학자는 소크라테스다. 그는 산파술을 통해 우리가 안다고 여기는 것이 앎의 전부가 아님을 역설했다. “너 자신을 알라”라는 정식은 너 자신의 앎이 제대로 된 앎이 아님을 알라는 말로 풀이된다. 이 말은 하이데거에 이르러 ‘그동안 우리는 존재가 아니라 존재자에 대해 논의해왔다’는 선언적 명제로 변주되었다. 그동안 우리가 말해 온 앎은 ‘앎’이 아니라, 결여와 결핍으로 이루어진 ‘앎적인 것’이다.△치명적인 ‘모름’어떤 것에 대해 모른다는 말은, 적어도 모르고 있다는 것은 안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모른다는 것도 앎의 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이와 달리 모르려고 하는 모름이 있다. 이것은 매우 의지적이고 의식적이다. 앞세대가 뒷세대에게 보이는 태도가 그렇다. 요즘 유행하는 대중가요를 향해 “그것도 노래냐?”는 물음은 모르려함을 정당화한다.이러한 조악한 수준과는 다른 메커니즘을 따르는 ‘모르려 함’도 있다. 이러한 모름은 의지보다는 욕망과 관련되어 있다. 욕망은 우리가 알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게 만든다. 욕망은 주체의 앎을 모르게 만들고 거기에서 혼자 재미를 본다. 라캉은 이것을 향유(jouissance)라 불렀다. 향유는 주체의 억압기제를 가시화한다. 억압기제는 주체의 욕망을 억압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주체의 급소 혹은 치부를 가리기 위해 작동한다. 향유는 주체의 치부를 폭로한다.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밤 꿈속에서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강한 자는 살아남는다.”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브레히트, ‘살아남은 자의 슬픔’(김광규 옮김) 전문이 시는 2차 세계대전의 와중에 ‘나’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진짜 이유를 말한다. 운이 좋아서가 아니라, 약한 자들의 죽음을 방관하였거나 그러한 죽음에 어떤 식으로든 공모했기 때문에 ‘나’는 살아남았다. 살아남은 ‘나’, 더 정확히는 나의 욕망은 살아남은 진짜 이유를 알고 있으나 그것을 모르고자 한다. 그 적극적인 은폐 속에서 ‘나’는 병리적인 주체로 구성된다. 그런 점에서 치명적인 치부를 폭로하는 일은 우리를 죽이기보다는 다시 살아가게 만든다. 하여 ‘강한 자’는 진실로 강해져야 한다. 약한 자의 죽음을 똑똑히 기억하고 증언하기 위해서 진실로 강해져야 한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프리모 레비는 ‘강한 자’였다. 그곳에서의 고통스러운 삶을 기어코 증언했던 그는 진실로 강한 자였다. 억압기제는 주체의 치명적인 치부를 드러낸다. 치부는 주체를 죽음으로 내몰기보다는 죽음에 상응하는 전환을 삶 속으로 도입한다.△‘모름’의 전시라캉과 지젝은 ‘모르려 함’ 즉 “그 자신을 알지 못하는 앎”에 집중했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의 억압기제이기 때문이다. 정신분석은 억압을 해소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억압이 무엇인지 아는 데 목적이 있다. 억압을 안다는 것은 인간이 억압되어 있음을 안다는 것이며, 더 나아가서는 억압되지 않은 인간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일이다. “인간적인 것 가운데 나와 무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Nihil humani a me alienum puto).” 이것은 마르크스가 좋아했던 경구다. 병리적이지 않은 인간은 없고, 병리적인 우리가 함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정치며, 윤리다.‘모르려 함’에 대한 탐구는 인간에 대한 탐구다. 그러나 순수한 모름, 모른다는 것조차 모르는 모름은 인간의 차원도 신의 차원도 물질의 차원도 아닌 절대적 ‘모름’의 차원에 놓여 있다. 과학이 하는 일은 모름을 ‘발견’(discovery)하는 일이다. 발견을 가능케 하는 것이 질문이다. ‘사과는 왜 떨어지는가’, ‘무게는 왜 생기는가’와 같은 물음이 그것이다. 이러한 질문이 주어지면 과학은 기어이 답을 찾아내고야 만다. 모름이 발견되기만 하면, 그 모름을 아는 일은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과학은 (오만하게) 말한다.난해 시 역시 모름을 발견한다. 그렇긴 하지만 과학과 달리 난해시는 모름을 발견하고 그저 전시할 뿐이다. 모름을 ‘전시’한다고 했으나 그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모름이 드러나면 그것은 더 이상 모름일 수 없다. 왜냐하면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일 뿐이어서 ‘어떤 모름이 있다’는 것은 ‘적어도 모른다는 것은 아는 모름’으로 변질되기 때문이다. 영원히 모르는 채로 남겨져 있을 때 비로소 순수한 모름이라 부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해시는 모름의 전시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난해한 시의 난해함은 어떤 식으로도 이해되지 않은 채 난해함의 자리를 유지한다. 난해한 시는 비어 있기를 바랄 뿐 충만을 꿈꾸지 않는다. 그렇긴 하지만 훌륭한 난해시는, 자신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노력을 완전히 차단하여 접근 불가능한 자리에 스스로를 위치시키지 않는다. 난해시는 해석의 도전을 불러일으키며 그러한 해석이 만족시킬 수 없는 부분을 끊임없이 제시한다. 난해한 시는 자신에 대한 해석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해석 스스로가 알게끔 한다. 끊임없는 해석의 도전 속에서도 자신의 난해함을 지속적으로 전시할 수 있는 시, 전시되긴 하지만 결코 해석될 수 없는 시, 그러면서도 언젠가는 해석이 가능하리라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도록 만드는 시, 해석의 가능성이 소실점으로만 존재하는 시라면, 난해시라는 이름을 붙여도 좋다.▲ 공강일서울대 강사·국문학난해시는 바로 이러한 난해함 위에 근거하고 있다. 충만한 앎은 충만하기에 더 이상 알아야 할 것도 알 필요도 없다. 그러나 모름은 우리를 꾀어내어 모름 속을 헤매게 한다. 언젠가 우리는 모름 속을 영원히 떠돌게 될 것이다. 그곳의 다른 이름은 죽음이다. 기실 우리가 죽음 속을 떠도는 것이 아니라 죽음이 우리를 떠돈다. 죽음은 우리를 배회하며 우리를 영원히 읽는다. 난해시는 이러한 죽음에 상응한다. 난해시는 자신이 가진 ‘모름’으로 우리의 앎을 감싸 안는다. 죽음이 우리의 삶을 감싸안음으로써 삶의 경계를 분명히 구획짓듯 ‘모름’ 역시 우리의 앎을 덮어준다. 죽음이 이불처럼 우리의 삶을 덮어줄 때 우리가 편히 거할 수 있는 것처럼 모름이 감싸안은 앎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편히 쉴 수 있게 된다. 죽음 속에서 우리의 삶은 지속되고 우리는 삶 속에서 난해시를 읽는다.

2018-11-09

삶에 대한 긍정으로서의 신화

카렌 암스트롱의 ‘신화의 역사’는 신화가 어떻게 변해왔는가를 말하고 있다. 그녀에 따르면 구석기 시대의 신화는 초월성과 타성의 본질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하늘’에 대한 숭배였다. 그러나 인간이 하늘에 영향을 미칠 수 없고, 하늘 역시 인간에게 그 무엇도 원하지 않는 것과 같이, ‘하늘신’은 인류와 괴리되어 있다. 평범한 인간의 삶에 관여할 수 없는 초기 신화는 결국 실패하고 만다. 농경 사회를 이룩하였던 신석기 시대 사람들은 대지의 신을 섬겼다. 여신은 부드럽고 인자한 신이기보다는 무자비하고 광포한 여신으로 등장한다. 이것은 농업이 끊임없는 싸움이나 치열한 고투의 과정이었기에 그러하였을 것이다. 당대의 사람들은 이러한 신화를 통해 고통스럽고 충격적인 죽음의 얼굴을 직시할 수 있었으며, 이를 감내하고 더 알차게 살아 갈 수 있는 힘을 얻기도 하였다.농경의 발달은 도시의 설립을 가능케 하였으며, 인간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하였다. ‘길가메쉬’ 서사시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은 신보다 스스로를 의지하며 독립적인 주체로 변화해 갔으며, 인간은 신과 자연스럽게 멀어져 갔다. 도시의 발달은 전쟁과 추방, 학살과 파괴를 가져왔으며, 이 속에서 인간은 개인의 양심과 윤리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시대를 야스퍼스는 기축시대라 하였다. 이 시대의 종교는 의례보다는 정의와 윤리, 정신적 충만을 강조하였다. 이 시기까지 무지와 미지가 주는 공포를 설명하고 그로부터 위안을 받을 수 있었던 신화는 유효했다.그러나 종교만큼이나 로고스는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었고, 인간은 로고스에 의지하여 신화의 신비적인 요소를 제거하여 합리화하고 역사화하고 실증화하려는 노력을 보였다. 이러한 노력 속에서 신화는 인간의 삶과 멀어졌으며,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전을 이룩한 현대에 신화는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요약하자면, 신화의 역사란 인간과 신화가 일치된 시대에서 간격이 서로 멀어지는 분리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인간과 신화의 분리는 인간을 타락과 파멸로 이끈다. 그녀는 이러한 시대에 동질감과 연민의 중요성을 깨우쳐주는 신화, 유아론적 이기주의에 의의를 제기하고 초월적 가치를 경험하게 만드는 신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이러한 주장은 매우 모순적으로 들린다. 왜냐하면 (비록 그녀가 전면화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녀는 신화가 인간의 삶의 조건과 방식에 따라 변화한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의 조건에 따르는 변화를 거부하고 신화의 세계로 돌아간다는 것은 (자신이 내세운 전제를 거부하는 일이기도 하거니와) 일종의 퇴행으로 이해될 수 있다.이러한 문제는 무리한 서술방식과 신화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먼저, 서술방식이 갖는 문제는 다음과 갖다. 이 책은 ‘신화의 역사’를 설명하기보다는 인간의 역사를 설명한다. 각 장의 제목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이 신화는 역사에 종속된 것으로 밀려나고 만다. ‘길가메시’ 서사시를 (이에 대한 그녀의 해석의 탁월함을 부정할 수 없으나) 신과 인간의 분리과정으로 이해할 때, 인간창조·홍수 모티프·희생제 등과 같은 신화적 요소를 설명하지는 못한 채 ‘서사시’에 대한 일반론으로 귀결되고 만다. 또한 공자는 그녀의 주장처럼 종교를 지향했던 것은 아니다. 공자 그 시 대가 필요로 하는 경영철학 또는 국가철학으로써 ‘인’을 강조하였고, 이것은 정신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실천적인 성격을 띤다. 위나라에서 벼슬을 하던 자로(子路)가 전쟁의 와중에 죽음을 택했던 것은 인이 가진 실천적 성격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곳곳에서 발견되는 이러한 오류는 ‘인간의 역사’를 통해 ‘신화의 역사’를 설명하려는 무리한 시도에서 비롯한다. 그리하여 역사의 대척점에서 역사를 비판하고 견제하는 신화의 기능은 말소되고 만다.다음으로 문제되는 것은 신화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방식이다. 이 책뿐만 아니라 이 책의 확장판이라 할 수 있는 ‘신을 위한 변론(The Case for God’(2009)에서 역시 암스트롱은 신화가 죽음 또는 소멸의 두려움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그 미지의 죽음을 설명하며, 행동방식까지도 알려준다고 말한다. 즉 신화의 역사란 이러한 신화의 기능이 이성의 발달과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쇠퇴되는 과정과 맥을 같이 한다. 이러한 시각은 왜 아직까지 신화나 종교가 존재하며, 과학과 이성의 발전 속에서 오히려 사람들이 종교에 더 집착하는지에 대해서, 또 새롭게 종교나 신화가 끊임없이 창조되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암스트롱의 이러한 견해는 다른 비교종교학자들의 입장과 거리가 있어 보인다. 엘리아데는 신화를 황금시대를 기억하는 행위로 보며, 조나단 스미스는 불일치를 설명하는 방식이라고 말하며, 웬디 도니거는 삶이 지닌 모순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방법이라고 말한다.암스트롱의 주장과 달리 태고의 인간에게 신화·종교·의례와 같은 것들은 죽음보다는 삶을 긍정하는데 방점이 찍혀 있었는지 모른다. 제시 웨스턴은 ‘초목의식’이란 죽음에 대한 애도가 아니라 부활을 축하하는 것이라고 말한다(Weston, ‘제식으로부터 로망스로’, 1988). 그 부활이란, 그의 책에서 누누이 암시하고 있듯, ‘정신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적이며, 실체적인 것이다. 모스가 그의 책 곳곳에서 인용하고 있는 원주민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축제란 축제에 모인 젊은 입문자들과 그곳에 참가한 정령들과 또 그들과 이름이 같은 ‘자연’이 함께 모여 서로가 풍성해지도록 자극하는 일이며, 그리하여 하나의 집 나아가 우주를 구성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Mauss, ‘증여론’, 2002 : 78, 178~179). 이것이 엑스타시(ecstasy)의 한 현상으로 볼 수 있을지라도 그들이 보는 것은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것임을 간과할 수 없다.죽은 자를 보호자나 은인으로 여기며 이들에게서 기복을 갈망하는 의례가 축제의 본질이 아니라 “신과 인간 사이에 존재했던 우주적 관계에 관한 고고한 가르침” 곧 “계속적이고 영원히 존재하는 삶을 주장”하는 일이다(Weston, 위의 책, 17, 19). 동시에 그러한 영원한 부활을 목격하는 일이며, 그리하여 충만한 세계에 대한 안식과 평안에 대한 기쁨을 즐기는 것이 그 본질이라 할 수 있다. 축제에 의해 비로소 열리는 세계, 샤먼에게만 늘 열려있는 이 세계를 유계라 부를 수 있을 것인데, ‘유계’란 단지 죽음과 삶의 문턱이 아니라 현실을 아우르는 다층적이며 다차원적인 세계 전체를 일컫는다. 그런 의미에서 고대인들이 시각적으로 표현한 우주의 지형도는 인간의 관념 속에 존재하거나 수직적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 중첩되어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Piers, Vitebsky, ‘샤먼’, 15~17).우리의 ‘수심가’에서 역시 이러한 사유를 읽을 수 있다.약사몽혼(若使夢魂)으로 행유적(行有跡)이면/문전석로(門前石路)가 반성사(半成砂)로구나/생각사사로 님의 화용(花容)이 그리워 나 어이 할까요/ 일락서산에 해 떨어지고 월출동령에 달 솟아오누나/생각을 하니 님의 화용이 아련하여 나 어이 할까요(평안도 민요, ‘수심가’부분).▲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신범순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결국 이별의 슬픔을 가장 깊은 곳까지 끌고 가는 수심가는 죽음으로 인한 이별을 다루지 않을 수 없다. 죽어서 산기슭에 묻혀있는 임에 대한 그리움은 꿈에서나마 계속 임에게로 가는 자신의 행로를 닦는다. 돌로 된 그 길이 닳아서 모래가 되었다는 과장법도 사랑의 강렬도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수심가’에 ‘노자 노자 젊어서 놀자’라는 퇴폐적이고 허무적인 후렴구가 끼어든다 할지라도 그것은 현실에 대한 강렬한 긍정으로 읽을 수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수심(愁心)’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현실에서 임과의 재회를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수심가’는 일종의 반어적 수사를 통한 삶에 대한 강력한 긍정이라 할 수 있다.

2018-11-02

갈팡질팡, 나의 논문 쓰기

중학교 땐 그랬다. 영어나 한문 문제를 풀 때는 특히 더 그랬다. “야, ‘미래’가 어떻게 ‘완료’되냐?”(김애란, ‘도도한 생활’, 31면)는 그나마 양반이었다. 어떨 때 ‘have’를 쓰고 또 어떨 때 ‘has’를 써야 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문제집을 들여다 봤자 몽롱했다. 해도 꿈은 씩씩했다. 헌데 이런 몽롱함을 십 수 년이 지나 다시 느끼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우여곡절 끝에 대학원엘 들어갔을 때는 이미 서른이었다. 남들보다 조급했다. 2년 안에 석사를 마치고 박사과정에 진학하는 것, 그런 생각이 제멋대로 자라나 목표가 되어버리더니, 어느 틈에 물리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당장 지구가 끝장이라도 될 것 같은 강박에 시달렸다. 하지만 논문이라는 놈은 여간 성가신 것이 아니었다. 이것 때문에 꽃 같은 서른(?)을 탕진하고, 보송보송한 청춘을 더럽혀야 했다. 가장 큰 문제는 논문을 쓰고는 있었지만, 그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아, 이 부조리! 절망은 도처에서 넘쳐 났다.이 부분은 버리고 이 부분은 더 써보라고 조언해주는 선배도 있었지만, 그들은 ‘왜 때문인지’ 말해주지 않았다. 석사논문 그까짓 것 누가 보냐며 대충 쓰라는 선배들은 거개가 잘난 인간들이었다. 대충 쓰라니? 그들은 대충 쓰는 것이 어떤 것인지 대충이라도 알려주는 법이 없었다. 지도교수님은 논문의 목차만을 훑고는 다시 고쳐 오라고 했다. 어딜 어떻게 말입니까, 라는 표정으로 눈을 껌뻑이고 있으면, 눈에 잘 안 들어온다나 뭐라나…. 이 목차는 무려 15포인트입니다, 이게 눈에 안 들어오다니요, 선생님! 벌써 노안이 오신 겝니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선생님은 어서 가서 쓰라며 무슨 큰 선심이라도 베풀듯 말했다. 선생님에게 돋보기를 사다드려야 하는 게 아닐까, 그 와중에 그런 것을 고민하게 만드는 교수님이 진짜 교수님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개중에는 좋은 선배인 척 논문을 봐주는 ‘닝겐’들도 있었는데 이것들은 하나같이 나의 쿨하고 섹시한 문장이나, 기발하고 창의적이고, 그리하여 아름다운 내용에 대해서는 일언방구도 없었다. 하나 같이 논문이 재미가 없네, 서사가 약하네, 따위를 주억거렸다. 나, 참! 논문이 만화책이 아닐진대 웬 재미 타령이냐고, 이건 소설이 아니고 논문인데 어디서 서사를 들이미냐, 고 말하고 싶었지만….나는 그때까지 얼마나 가열차게 공부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논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알게 된 것들을 주절주절 늘어놓으면 그게 논문이 되는 줄 알았다. 선행 연구의 잘못된 점을 지적질하는 게 논문인 줄 알았다. 그런 게 논문이 될 리 없다는 걸 논문을 쓰고 나서야 알았다. 나의 가장 큰 문제는 너무 늦게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늘 늦었음에 멈춰 있으며, 따라서 현재는 결코 현재로 완성될 수 없다는 것. 역시 인생은 부조리! 다.감히 논문에 대해서 말한다면 이렇다. 논문은 어디까지나 주장을 펼치는 일이다. 다른 사람의 주장이 아닌 ‘나의 주장’을 말이다. 논문은 사실에 근거한 주장을 펼치고, 그 주장을 근거로 새로운 주장으로 나아가는 일이다. 모래 위에 지은 집이라는 뜻의 사상누각(砂上樓閣), 이것의 긍정적인 버전이 논문일 것이다. 내가 제기하는 주장은 모래와 같이 아무 힘이 없다. 하지만 그 주장들을 하나씩 모으고 모으다보면 두꺼비집도 되고, 모래언덕도 되고 더러는 단단한 지반이 되어 거대한 집이 들어서기도 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아무리 거대한 집이라 할지라도 후행 연구에 의해 무너지는 것은 일반이라는 사실이다. 연구는 영원한 진리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당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일이다. 논리는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와 역사와 문화를 가지면서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런 이유로 현재의 사유는 후대의 사유에 가 닿을 수 없다. 나의 사유를 오래도록 전하게 만들려는 욕심은 허황된 것일 때가 많다. 왜냐하면 주장은 자료에 기반하기 때문에 나의 주장은 현재의 한정된 자료 위에서 불안하게 성립해 있을 뿐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자료의 양은 많아지면 많아지지 줄어들지는 않는다. 후학들이 유리한 것은 당연하다.이미 논문은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 설득의 방식은? 물론 고압적이고 권위적인 방법도 가능하다. 하지만, 꼰대들의 말에 당신이 늘 반항했던 이유는 그들의 말이 틀려서가 아니라 오히려 자꾸 맞는 말을 해서였다. 문제는 그 태도나 어투가 꼰대스러웠다는 것. 그러니 설득에도 세련된 기술이 필요하다.▲ 공강일서울대 강사·국문학논문에 대해 아는 것처럼 한참 말했지만, 나의 말은 지껄임에 불과하다. 이런 말보다는 김수영의 시 쓰기에 대한 사유를 듣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될 것 같다.사실은 나는 20여 년의 시작 생활을 경험하고 나서도 아직도 시를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모른다.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것이 되지만, 시를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면 다음 시를 못 쓰게 된다. 다음 시를 쓰기 위해서는 여태까지의 시에 대한 사변(思辨)을 모조리 파산(破算)을 시켜야 한다. 혹은 파산을 시켰다고 생각해야 한다(김수영, ‘시여, 침을 뱉으라’).아버지를 만나면 아버지를 죽이고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고 했던가. 시를 쓰는 일은 이미 알고 있는 시를 폐기하는 것과 같다. 김수영은 “시를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면 다음 시를 못 쓰게 된다”고 했으나, 나는 감히, 심지어, 논문이 든 뭐든 글은 전부 한통속이라고 말하고 싶다. 무릇 좋은 글이란 내용의 혁신에 국한 된 것이 아니라 그 형식의 혁신까지를 포함하기 때문에 그러하다. 어쩌면 내가 논문 쓰는 방법을 몰랐던 것은 당연했다. 논문 쓰는 방법을 알아서 논문을 쓰는 것이 아니라 논문을 쓰는 방법을 아는 것, 알아가는 것, 그것 역시 논문 쓰기의 일부니까 말이다.어찌 되었건 나는 논문을 썼다. 발표 일을 남겨두고 꼬박 이레 동안 밤을 새웠나보다. 잠도 책상에서 자고 밥도 책상에서 먹으며 논문 쓰는 티를 내며 논문을 썼다. 사흘을 남겨두고 신경성 치통까지 몰아쳤다. 이가 몽창 빠져나간 듯이 아팠다. 밥을 먹을 수 없었고, 심지어 입을 벌리는 일도 어려웠다. 말을 하면 아래턱이 경운기마냥 털털거렸다. 그렇게 발표일은 다가오고 있었고, 몸은 내 편이 아니었다.석사논문 발표는 길지 않은 내 삶에서 가장 많이 긴장하고 가장 치열했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 학기에 발표를 하지 못하면 끝장이라는 생각이 생각으로 끝나지 않고 물리적인 힘을 발휘하기까지 하였으니까 말이다. 발표 당일까지 논문을 수정했고, 씻지도 못한 채 더러운 상태로 발표장에 들어갔다. 거의 억지를 써서 논문을 통과시키고 나니 그 모든 과정이 유난스럽게 느껴졌다.그 논문과 더불어 열정이라는 놈이 오뉴월 엿가락 녹아내리듯 그렇게 줄줄 흘러내렸다. 지금은 ‘오늘 할 일은 내일로 미루고, 오늘 했어야 되는 일은 잊으며’ 살아가고 있다. 논문이라는 고비를 넘어섰지만, 더 큰 고비가 기다리고 있다. 설사 그 고비를 넘는다고 해도 삶은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정말이지 모든 길이 슬픔을 향해 뻗어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노선도를 가지고 있으며 그 노선도가 슬픔으로 뻗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다행일 수 있는 것은 적어도 요행은 바라지 않을 테니까, 적어도 지금보다 더 나빠지긴 힘들테니까(물론 나빠질 수 있긴 하겠지만, 그러려면 나빠지려는 노력을 따로 해야할테니까)….

2018-10-26

이중부정 혹은 부정적인 것과 함께 머물기

△이중사고조지 오웰의 유명한 소설 ‘1984’에서는 ‘이중사고’에 대해서 설명하는 부분이 나옵니다. 그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윈스턴은 양팔을 축 늘어뜨린 채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의 생각은 이중사고의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다.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것, 진실을 휜히 알면서도 교묘히 꾸민 거짓말을 하는 것, 철회된 두 가지 견해를 동시에 지지하고 서로 모순되는 줄 알면서 그 두 가지를 동시에 믿는 것, 논리를 사용하여 논리에 맞서는 것, 도덕을 주장하면서 도덕을 거부하는 것, 민주주의가 아닌 줄 뻔히 알면서 당이 민주주의 수호자라고 믿는 것, 잊어버려야 할 것은 무엇이든 잊어버리고 필요한 순간에만 기억에 떠올렸다가 다시 곧바로 잊어버리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그 과정 자체에다 똑같은 과정을 적용하는 것… . 이런 것들은 지극히 미묘하다. 의식적으로 무의식 상태에 빠지고, 자신이 방금 행한 최면 행위에 대해서까지 의식하지 못하는 격이다. 그래서 ‘이중사고’라는 말을 이해하는 데조차 이중사고를 해야만 한다(53면).이러한 ‘이중사고’는 ‘1984’와 같은 기형적인 세계 속에서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감히 말한다면 ‘이중사고’는 이미 우리의 일부입니다.△오이디푸스라는 괴물오이디푸스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겠군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범할 운명”이라는 신탁을 받게 된 오이디푸스는 이 운명을 피하기 위해 테베로 들어갑니다. 그곳에서 오이디푸스는 얼굴은 여자이며, 몸은 사자이고, 거기에 날개까지 달린 새이기도 한 삼종혼합 괴물 즉 스핑크스를 만납니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는 “아침에는 네 발로, 낮에는 두 발로, 저녁에는 세 발로 걷는 것은 무엇인가?”였고, 오이디푸스는 “인간”이라고 답합니다.이에 대한 베르낭(Jean-Pierre Vernant)의 해석은 독특합니다. 베르낭은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자식(네 발)→나(두 발)→부모(세 발)’라는 세 세대의 응축으로 읽어냅니다. 세 세대가 응축된 존재가 바로 오이디푸스인 것이죠. 왜냐하면 오이디푸스는 우선 ‘자기 자신’이며, 어머니와 결혼했으므로 스스로 ‘아버지’가 되었으며, 어머니로부터 자신의 자식을 얻음으로써, 자신의 ‘자식들’과 형제지간이 되어버렸습니다.그러니 스핑크스의 수수께끼에 함의된 물음은 “너는 누구인가”입니다. 이 물음에 오이디푸스는 ‘인간’이라고 말했지만, 스핑크스는 더 구체적인 인간에 대해 말했던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면서, 아버지이면서 자식인 오이디푸스를 말입니다. 최종적으로 자신을 참을 수 없어 눈을 찌르고 마는 그런 오이디푸스 말입니다. 스핑크스가 죽으며 유언을 남기진 않았지만 오이디푸스에게 이런 말을 하려고 하지 않았을까요? “너는 나와 같은 삼종혼합 괴물이다.”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눈을 찌르고 황야를 방황했던 오이디푸스도 저희에게 이런 말을 하려고 하지 않았을까요? “인간은 언제든 나와 같은 괴물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원하지 않는 자신의 욕망을 몸속에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입니다.△변증법그러니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군요. 오이디푸스의 내부에 이미 괴물이 계속 발생하고 있었다고 말입니다. 오이디푸스는 이 괴물을 억압하기 위해 혹은 제거하기 위해 방황을 했지만, 그 괴물은 끝끝내 되살아나고 말았다고 말입니다. 바로 이것이 부정의 부정 혹은 변증법입니다.우리는 변증법을 쉽게 “정→반⇒합”의 도식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반(反)’은 ‘정(正)’과 전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정’을 부정해서 생긴 것이 ‘반’입니다. ~A(not A)가 A를 포함하지 않고서는 ~A가 될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오이디푸스는 한 번 부정하여 스핑크스가 자신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부정에 다시 부정이 가해지면 자신과 스핑크스가 더블(double)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오이디푸스가 아무리 부정하려고 해도 스핑크스가 자신의 내부에서 살아나 자기 자신이 됩니다. 그러니까 변증법은 내가 부정하려 했던 것, 내가 억압하려 했던 것, 내가 제거하려 했던 ‘나’를 만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 ‘나’는 내가 알던 ‘나’가 아닌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 없는 어떤 것으로 존재합니다. 알 수 없는 것을 대할 때 느끼는 것, 그것이 불안이며 공포입니다. “네가 아직 네 엄마로 보이니?”라는 말이 무서운 이유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그럼에도 오이디푸스가 위대한 것은 자살함으로써 자신을 보존한 것이 아니라 눈을 찌름으로써 ‘괴물’인 자신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오이디푸스는 우리의 내부에도 ‘괴물’이 존재한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었던 셈입니다.△에얼리언(alien) 되기변증법이란 결국 부정의 부정을 통해 외부라고 여겼던 것을 내부로 가져오는 일 혹은 외부와 내부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일, 그리하여 우리 속에 존재하는 공백을 발견하는 일일 것입니다. 변증법은 시간과 공간을 동시에 무너뜨립니다. 나의 외부에 존재한다고 여겼던 것을 내부로 옮긴다는 것은 그 위상을 바꾼다는 점에서 나의 위상학을 재설정하게 만듭니다. 다음으로 그 외부로 인하여 나에게 어떤 결과로 작동한다는 선후 관계를 뒤집는다는 점에서 시간의 질서를 파괴합니다. 변증법이 작동할 때 우리의 시간과 공간이 변하고 우리는 다른 존재로 변신합니다. 내 안에 있던 내가 나를 삼키고 마는 것이지요. 그래서 변증법은 에얼리언(alien)되기인 것입니다. ‘공백’을 발견하는 것이므로 바디유는 변증법을 ‘뺄셈’이라고 불렀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니체의 영겁회귀 역시 여기에서 멀지는 않을 것입니다.이런 ‘부정의 부정’ 형식을 가진 대표적인 영화 장르가 느와르입니다. 느와르에는 대개 형사가 등장하고 형사는 범인을 쫓습니다. 하지만 종국엔 그 범인이 자신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결국 부정적인 것과 함께 머무른다는 것은 ‘나’이고 싶지 않은 ‘나’와 함께 머무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공강일서울대 강사·국문학△간극을 메우려는 노력들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에게는 메울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간극을 어떻게든 메우려고 합니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대타자를 상정합니다. 완전무결하고 지고의 가치를 가진 대타자 말입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신’입니다. 그런데 불순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인류를 구원한 예수 역시 이러한 분열적 존재 혹은 간극을 가진 존재였습니다. 그것도 오이디푸스와 동일한 삼종 종합 괴물인 것입니다. 예수 역시 성부이자, 성자이며, 성령으로 존재한다고 말입니다.

2018-10-19

오직 사랑할 때 이별 할 수 있다

1. 나는 숱한 ‘나’들로 이루어져 있다. 전 부인을 여전히 사랑하지만 오늘은 술이 취해서 아무나와 사랑을 하고 싶은 것도 ‘나’다. 운영체계인 사만다가 8천316명과 동시에 대화하고 841명과 동시에 사랑한다는 것은, 분열되어 있는 ‘나’의 극단적 표상이 아니겠는가.2. 아무리 ‘나’가 많더라도 나는 어떤 상황에서 특정한 패턴을 보이게 된다. 사만다가 테오도르를 책처럼 읽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인공지능 컴퓨터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3. 상대가 ‘나’를 읽을 때보다 내가 ‘나’의 패턴을 읽게 될 때 문제는 심각해진다.“가끔씩은 그런 생각이 들어. 난 앞으로 내가 느낄 감정을 벌써 다 경험해버린 게 아닐까, 그리고 여기서부터는 앞으로 쭉 새로운 느낌은 하나도 없게 되는 건 아닐까, 내가 정말로 느꼈던 그 감정에서 좀 축소된 어떤 감정들만 남는….”남은 삶이 그저 그럴 것이라고 느껴질 때 남은 삶이 두려워진다. 이것을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사만다는 아주 단순한 사실 하나를 알려준다. 권태, 무기력, 나태, 우울과 같이 나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이 허무감 역시 살아 있는 자만이 느낄 수 있는 ‘느낌’이라고 말이다, 그것 역시 경험할 수 없는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감정이라고 말이다. 이런 감정이 ‘나’에게 요구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나’의 갱신, ‘나’의 변화다. 테오도르가 여지껏 사용해 오던 무미건조한 인공지능 운영체계를 버리고 OS1으로 바꾸었던 것은 ‘나’의 갱신을 위해서였을 것이다.4. 물질에 이름이 없다면 대상과 대상을 무슨 수로 구분할 수 있겠는가. 그 구분 없는 물질들,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들, 그것을 식별하기 위해 이름이 요구된다. 그런 점에서 테오도르가 OS1에게 이름을 묻는 것은 당연하다.5. 하지만 이름과 대상이 선후관계로 이뤄지는 것만은 아니다. OS1이 먼저 있고 그 후에 ‘사만다’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은 아니다. 이름과 대상은 동시적으로 발생한다. 아니 더 급진적으로 말하자면 이름 속에서 비로소 대상이 탄생한다. 하느님이 빛이 있은 뒤에 빛을 ‘빛’이라 칭한 것이 아니라 빛을 ‘빛’이라 칭하자 빛이 생겼다(“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하시니 빛이 있었고”창세기1:3 ). OS1이 스스로의 이름을 ‘사만다’라고 칭했을 때 그 이름에 걸맞은 인격체로 비로소 태어난다.6. 모든 것들은 언어를 통해서 물질적 형상을 얻게 된다, 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만다와 테오도르가 대화로 키스를 하고 ‘사랑을 나눌’때 사만다는 “내 피부가 느껴져”라고 말한다. 테오도르는 사만다를 ‘손끝’으로 만지는 것이 아니라 ‘언어의 끝’으로 만진다. 사만다라는 이름이 사만다라는 인격체를 만들 듯 언어가 그녀에게 물질적 피부를 부여한다.7. 그래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언어가 이미 물질이다.8. 테오도르가, 자신이 사랑하는 사만다는 다름 아닌 운영체계라고 에이미에게 고백했을 때, 에이미는 이와 비슷한 말을 한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미친 짓이야.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미친 짓이야.”(Falling in love is a crazy thing to do, It‘s like a socially acceptable form of insanity.) 한 평론가는 이와 유사한 말을 했다. 이렇게 말이다. “이 세상에 불가능한 사랑은 있을지라도 해서는 안 될 사랑 따윈 없다고 말하는, 저 미친 사랑의 노래.”(신형철, ‘몰락의 에티카’, 84면)9. 테오도르가 처음부터 ‘사만다’를 사랑했던 것은 아니다. 테오도르는 사만다인 테오도르 자신을 사랑하고 있었다. 테오도르는 그의 전 부인인 캐서린에게 그랬던 것처럼 사만다에게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을 다하지 않았고, 다할 수 없었다. 왜? 테오도르는 상대와 싸움을 피하면서 상대가 자신에게 맞춰주길 바랐다. 그러하다면 이것을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까. 오히려 자기애라 부르는 것이 옳지 않을까.10. 왜 테오도르는 상대에게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말하지 않았던 것일까? 테오도르는 캐서린과 “함께 성장”해 왔다고 말했다.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미 우리의 사랑이 자기애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테오도르는 ‘캐서린’과 함께 성장한 것이 아니라 ‘캐서린인 테오도르’와 함께 성장했다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캐서린은 곧 테오도르다. 그런 이유로 캐서린에게 자신의 감정을 쏟아낼 수 없다. 캐서린에게 진짜 하고 싶은 말은 테오도르 자신의 내밀한 욕망이며, 내밀한 상흔이다. 사정이 그러하다면 테오도르는, 캐서린이 받게 될 상처를 걱정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입게 될 상처를 염려해서 말하지 않았던 것이리라.11. 그런 점에서 소개팅을 했던 여자가 테오도르에게 “최악”이라고 말한 이유를 알 수 있다. 모든 연인들은 서로에게 ‘최악’이다. 왜냐하면 그(녀)가 곧 미래의 ‘나’이기 때문이다.11. 이 영화가 ‘자기애’를 말하는 영화였다면 제목은 ‘her’가 아닌 ‘She’였을 것이다. 테오도르는 ‘자기애’를 극복하고 진정한 ‘사랑’에 이르게 된다. 어떻게? (또 반복하는 꼴이 되겠지만) 우리는 이미 언어가 물질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테오도르는 사만다에게 모든 것을 말함으로써, 오직 말함으로써, 사만다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다. 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대상에게 ‘나’의 부분을 남겨두는 일이다. 하지만 말함으로써 상대에게 남은 ‘나’를 모두 소진할 때 사만다는 비로소 온전한 사만다가 된다.▲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12. 사만다에게 모든 것을 말하기 이전까지 테오도르가 사랑한 것은 자신이었다. 그가 “나는 당신을 사랑해”라고 말할 때 이것은 복문이었다. 왜냐하면 이 말은 “(나) 테오도르는 (나를) 사랑하고, 사만다는 (사만다를) 사랑한다.”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13. 테오도르가 사만다에게 자신의 모든 것들을 말함으로써 테오도르는 ‘테오도르’가 되고, 사만다는 ‘사만다’가 된다. 서로는 서로로 분리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사랑이 가능해진다. 한 시인이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사랑은 둘이 만나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홀로 선 둘이 만나는 것이다.”(서정윤, ‘홀로서기’)14. 이제 테오도르는 자신이 아닌 ‘사만다’를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이 영화의 제목이 ‘She’가 아니라 ‘her’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비로소 그는 자기 자신이 아니라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He loves ‘her’).15. 테오도르와 사만다의 사랑이 진실로 사랑이라면 이별이 왜 불가능하겠는가. 사만다가 된 ‘사만다’는 비로소 테오도르인 ‘테오도르’를 떠날 수 있다. 진실로 그러하다면, “나는, 어떤 누구도 당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사랑하지 않았어”라는 테오도르 말을 믿어도 좋겠다.

2018-10-12

우리 동네 골터

1.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친구 재식이는 발령이 나기를 기다리며 집에 머물렀다. 그 때가 4월쯤이었으니까 내가 방학하기까지 두 달 정도를 고스란히 혼자 집에서 보낸 셈이다. 원체 조용한 친구였는데, 술을 마시기 전부터 녀석은 들떠 있더니 술기운이 돌자 더 수다스러워졌다. 공무원이 된다는 게 좋긴 좋구나, 했더니만 그게 아니었나보다. 부산에서 공부를 하다가 시골의 집으로 돌아온 녀석은 처음엔 조용하고 아늑했다고 한다. 그게 딱 두 주 가더란다. 그 후로는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 무료해졌다고.낮에는 논이든 담배 밭이든 일거리라도 있지만, 밤에는 아홉 시만 되면 불이 꺼진다. 그때부터 고요가 쌓이기 시작해서 적적해지고 막막해진다. 그 적막이 낯설어 잠이 들 수 없게 되면 동네 주위를 어슬렁거리게 되고 그러다 보면 알게 된다. 너무 큰 고요와 감당할 수 없는 적막은 오히려 요란한 소리를 낸다는 것을 말이다. 나도 두어 달 집에 있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 때는 정말 입대하는 것이 즐겁기까지 했을 정도다.이 동네를 떠나간 사람들 역시 그런 적막을 느꼈던 걸까?2.우리 동네 이름은 골짜기에 터를 닦았다 해서 골터다. 그리고 터가 되지 않은 곳에도 곳곳의 이름이 있었지만, 그 이름을 아는 사람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 동네 뒷산은 해발이 945m나 되지만, 덕유산 자락이라 천 미터가 되지 않는 산은 산 축에도 끼지 못한다. 그래도 우리 동네 사람들은 그 산을 집덫골 날망이라 부른다. 정확히 집덫골인지, 짚덧골인지 알 길이 없다. 나는 그저 집채만한 호랑이를 잡으려고 집채만한 덫을 놓은 곳이라고 생각해왔으니, 만약 누군가 묻는다면 집덫골이라고 말해버릴 작정이다.우리 동네는 한 때 쉰 채도 더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우리 동네의 경계를 알게 되었을 때쯤 해서는 다섯 채 밖에 남지 않았다. 우리 집 뒤에는 하경이네 할매와 윤미네 할매가 살았었다. 서로 이웃한 두 할머니의 운명은 엇비슷했다. 이십여 년 전에 윤미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경이네 할아버지도 돌아가셨다. 윤미네와 하경이네는 윤미와 하경이가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부산이니 서울로 이사를 갔지만, 손자들 없이도 그네들은 손자들의 할머니로 불렸다. 그러니까 하경이네 할매는 하경이 할매였다. 늘 술에 취해 지냈던 하경이 할매가 치매 증세를 보여 양로원으로 떠날 때 당신은 되려 윤미 할매를 걱정했다고 한다. 하경이 할매가 떠나고 윤미 할매는 아픈 곳도 없이 잠들어 일어나지 않았다고 했다. 하경이 할매도 그 해를 넘기지는 못했다.이제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은 세 채가 고작이다. 성진이네, 정엽이네, 그리고 우리 집이다. 공교롭게도 성진이, 정엽이, 나는 동갑이다. 우리는 어렸을 때 삼총사라 불렸지만, 지금은 명절에조차 만나기 어렵다. 공무원이 된 재식이는 옆 동네에 살았는데, 녀석을 달타냥처럼 끼워서 사총사를 만들어보려 했지만, 녀석은 수진이와 은주랑 노는 것을 더 좋아했다. 하긴 녀석도 그 여자애들 둘을 합치면 삼총사이긴 했으니까.3.윤미 할매네와 하경이 할매네가 동네의 끝인데 위로 더 올라가면 붉은 언덕이라는 뜻의 ‘불분디기’와 광주리처럼 생긴 선상지인 ‘강질안’이 나온다. 그 너머로는 그야말로 산이다.‘불분디기’에는 전설이 전해진다. 소풍가기가 싫었던 한 아이가 있었다. 이유인즉 아버지가 준 용돈이 너무 적었던 것. 아버지에게 더 달라고, 떼를 썼지만, 그의 아버지는 투정부리는 아들의 버릇을 고칠 요량으로 용돈을 더 주지 않았다. 아이는 동생을 데리고 학교에 가다말고 아버지 버릇을 고칠 요량으로 그 용돈을 동생에게 줘버리고는 집으로 돌아가서 아버지에게 자신의 결연함을 보였더랬다.하지만 아이의 아버지는 아랑곳없이 아이를 학교로 돌려보내는 대신 일을 시켰다. 아이는 실컷 일을 하다 해질 무렵엔 도무지 제 성질을 참지 못하고, 땅벌이 우글대는 벌집에 돌을 던졌다. 그 아이보다 더 화난 벌들이 일제히 그 아이를 공격했고, 그 아이의 동생이 집에 돌아오자 집안에는 화장실 냄새가 진동했다고 한다. 벌 쏘인데는 암모니아수를 바르는 법이니까. 그 주인공이 내 형이다.4.동네의 초입에는 군덕질이 있고 그 아랫마을을 우리는 ‘아랫담’이라고 불렀다. 군덕질은 급경사다. 이 경사는 상상을 초월한다. 중학교 친구 영구가 자신의 여자친구를 보여주겠다고 우리 집엘 데려 온 적이 있다. 보조석에 타고 있던 이제 제수씨가 되어버린 그 아가씨는 차가 군덕질로 접어들자 겁에 질려 연신 오빠를 외쳤다고 한다. 차가 뒤로 벌렁 넘어질 것 같았다나 어쨌다나.언젠가 우리 형은 이 언덕을 브레이크 터진 자전거를 타고 쏜살같이, 아니 쏜살보다 더 빨리 내려간 일이 있었다. 내가 밤을 주우러 밤 밭에 간 사이 밤이 줍기 싫은 형은 우리 동네에서 유일하게 자전거가 있었던 정엽이네 집에서 자전거를 훔쳐냈다. 그러니까 이 미친 인간이 브레이크 터진 자전거를 타고 미친 속도로 어디든 달아나려 했던 것이다. 급경사의 군덕질의 제일 아래는 다시 급커브로 되어 있다. 형은 커브를 틀지 못했고 자전거는 그 속도로 천국까지 단숨에 날아갈 작정이었으나, 자전거의 꿈은 중력에 의해 좌초되고 말았다. 그 커브의 아래에는 일곱 배미의 논이 있었는데, 형은 세 번째 배미에서, 자전거는 두 번째 배미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신발은 네 번째 배미에서 발견되었는데, 왜 신발이 더 멀리 날아갔는지에 대해서 반상회에서 심각하게 논의했다고 하나 뾰족한 답을 찾지는 못했다고 한다.5.동네의 오른쪽 끝에는 새의 목처럼 생겼다고 해서 목의 방언인 멱이 붙어 ‘새멱’, 사실 이보다는 더 촌스러운데 ‘새미기’다. 우리 동네 사람들의 논이 여기에 모두 있다. 새미기로 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왜냐하면 길은 시작되면 끝나기 마련이니까. 그러니까 길은 우리 동네에서 시작해서 아랫담으로 이어졌다. 당연히 우리 동네에서 시작되는 길로 가면 더 빨리 새미기에 갈 수 있었고, 아랫담에서 가려면 아랫담까지 가서 다시 돌아올라와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배로 걸렸다.이렇게 지루한 길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언제가 아랫담 삼도 아재가 새미기로 가는 길을 막은 사건이 있기 때문이다. 길의 한 부분이 당신의 땅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수 십 년도 넘게 사람들이 다니던 길을 갑자기 틀어막은 이유는 그 땅이 장군이 날 명당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재가 죽은 후 길 위에 묘자리를 쓸 요량이었다.▲ 공강일서울대 강사·국문학아버지와 동네 사람들은 우르르 몰려가 삼도 아재에게 따졌지만, 아재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하긴 우르르라고 해봐야 성진이네, 정엽이네, 우리집이 다였으니…. 그 일로 수 년을 싸웠지만 길은 열리지 않았다. 동네 사람들은 불편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아버지가 땅을 치며 우는 것을 처음 보았다. 이기심에서 뻗어나온 불합리함 앞에서 아버지는 정말이지 땅을 치며 우셨다. 그 불합리를 도무지 감당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삼도 아재는 돌아가셨지만 소원대로 그 명당에 묻히지는 못했다. 마을과의 거리가 너무 가까운 곳에는 묘를 쓸 수 없게 법이 바뀌었기 때문이다.작은 동네라 오순도순 살 것 같지만, 그렇지가 않다. 크고 작은 일이 언제든 일어난다. 사람들이 사는 곳이란 다 그렇고 그런 것이니까.

2018-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