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일출 산행-진도 첨찰산과 동덕산 산행기

등록일 2019-01-03 19:54 게재일 2019-01-04 17면
스크랩버튼
동덕산에서 바라본 진도.
동덕산에서 바라본 진도.

11월 달에 설악산을 다녀 온 후 딱 두 달만이다. 꼭 챙겨야 할 준비물은 아이젠과 헤드 랜턴이다. 산행을 갈 때마다 하나씩은 빼먹는다. 지난번엔 아이젠을 못 챙겨서 사야했는데, 이번엔 랜턴을 빼먹었다. 열심히 충전까지 해놨는데 그걸 두고 오다니 한심하다. 다행히 같이 간 일행에게 여분의 랜턴이 있어서 산을 오를 수 있었다만, 2019년에는 덤벙대는 버릇 좀 고쳤으면 좋겠다.

밤 10시 반에 만나 대절 버스를 타고 진도까지 갈 예정이다. 점찰이었나, 첨철이었나.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첨찰산(尖察山). 진도에서 제일 높은 산이라고 한다. 이름의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고, 산이 높은데다 뾰족해서 살피기 좋아서 이런 이름을 붙였을 것이라 한다. 진도 사람들은 여기서 해맞이를 한단다.

차로 네다섯 시간은 족히 걸리는 이 먼 곳까지 일출을 보러 가는 이유는? 뭐 이유 같은 게 뭐 필요하겠어. 산에는 가고 싶고, 일출도 보고 싶고. 그러니 그냥 따라가는 거지. 그럼에도 굳이 이유를 만들어내자면, 산악회 수석 대장님 고향이 진도기도 하고, 작년인가 재작년에는 진도에 있는 달마산을 갔다는데 꽤 좋았나보다. 그래서 진도로 일출 산행이 결정되었는데 신청을 제대로 받기도 전에 매진이 되어버렸다. 나는 빈자리가 생기면 끼워주기로 했는데 다행히 한 자리가 남아서 이렇게 따라 나서게 됐다.

좋기도 하지만 내심은 걱정이 앞섰다. 그동안 최선을 다해서 꾸준히 운동을 안한 대다가 덕분에 몸이 불어서 무릎도 시큰거리니, 산행이 두려운 것은 인지상정이다. 생각해보면 어제의 해와 오늘의 해가 다를 것이 없으니, 새해라는 건 한낱 허상에 불과하다. 산행 쯤 안 가도 그만이지만 또 그게 그렇지만은 않다.

인간은 의미화하는 존재여서 의미화하지 않고서 삶을 살아가는 것은 힘들다. 밥을 먹을 때에도, 옷을 살 때에도 뭔가 근사한 의미를 찾으려고 한다. 단지 살기 위해 밥을 먹는다는 것, 그냥 사고 싶어서 옷을 산다는 것, 이것이 비록 사실일지라도 이 사실을 냉철하게 직시하며 살아가기는 어렵다. 이 사실을 직시할 수도 있겠지만, 그로 인해 찾아오는 거대한 공허함과 허망함을 견뎌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새해라는 것도 이와 같아서 아무것도 아니지만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어떤 것이다. 하여 나는 산행을 떠난다.

새벽 4시 40분께 산을 오른다. 몇 걸음 오르기도 전에 숨이 목까지 찬다. 피가 도는지 후끈해진다, 라고 말했는데 일행 하나가 피가 안 돌면 산 게 아니지, 라고 한다. 얼결에 한 방 맞았다. 그렇지 피는 원래 돈다. 산은 그런 피가 돌고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평소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발걸음을 느끼게 하고, 골반의 뻐근한 통증은 내가 살아 있음을 깨닫게 된다. 어쩌면 산다는 것은 이런 것들을 감각하는 일이 아닐까. 마구잡이로 떠오르는 생각들이 바람을 산란케 했나보다. 나뭇잎도 없는 나무들 사이를 바람이 헤집고 다닌다.

거의 9㎞의 산행 중 반이나 왔을까, 선두그룹이 술을 마시고 있다. 날이 추워서인지 죄다 독주다. 고량주를 종이컵에 거의 한가득 따라준다. 술이 빈속을 따라 또르르 구르듯 위에 가 닿는다. 사람들은 좋고 술은 맛나고 여기 이대로 술에 취하고 싶지만, 바로 저 앞이 정상이라는 말이 뻥인 줄 알면서도 사람들을 따라나선다. 같이 가던 일행은 나를 버리고 달아난다. 나는 혼자 터벅터벅 기상대에 닿는다.

해가 떠오르려는지 먼 바다가 붉게 타오른다. 첨찰산 정상보다 오히려 여기가 해를 보기 좋을 것같다. 벌써 도착한 선두그룹은 비닐움막에서 오뎅국을 끓여 또 술판을 벌였다. 나는 또 염치없이 거기 끼여 술을 받아먹는다. 대단할 것도 없는 이 비닐움막의 성능은 대단해서 하나도 춥지 않다. 문제는 밖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건데, 웃고 떠드느라 정신없는 사이 내가 우연히 고개를 내밀었다가 해 뜨는 걸 보게 되었다.

조금만 늦었으면 일출을 보지 못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구름과 바다가 맞닿은 아주 조그만 틈으로 태양이 떠올랐다. 나는 당신의 건강을 빌고, 새롭게 시작한 일이 잘 되길 빌었다. 해를 보며 많은 사람들을 생각했고, 그들의 삶이 행복하길 빌었다.

내려오는 길은 쏟아지는 잠과 술 덕분에 힘들어할 기력도 없었다. 산악회 회장님은 주차장에서 떡국을 끓여 놓고 우릴 기다리고 있다. 떡국을 먹은 것도 오랜만이고 더구나 새해에 떡국을 먹는 것도 오랜만이라 즐겁다.

그리고 마침 이곳에는 ‘첨찰산 해맞이 떡국 나눔 행사’가 한참이다. 떡국도 끓이고 막걸리도 준비한데다 민요와 타령을 하는 예능인들까지 초빙했다. 무척 큰 행사인가 본데 산을 찾은 사람이 많이 없어서 우리 산악회가 이 행사를 거의 독차지 했다. 공연 막바지에는 아리랑과 강강술래를 부르며 구경꾼들을 무대로 끌어들였다. 명창들의 노래와 악사들의 연주에 따라 우리는 미친 듯이 강강술래를 외치며 맴을 돌았다. 웬만한 등산보다 힘들겠다 싶을 정도로 걸판지게 놀았다.

이제 동덕산을 갈 차례다. 차에 앉기가 무섭게 잠에 들었다 깨니 모두들 동덕산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 동덕산은 우리나라에서는 드물다는 완전한 돌산이다. 기암과 절벽들로 보는 사람들을 아찔하게 만든다. 나는 천근이나 되는 발을 이끌고 산을 오른다. 몸이 아파서 그런지 바다로 둘러싸인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경치가 그저 그렇게 느껴진다.

어서 내려가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동덕산 정상을 지나서 한참을 더 가야했지만 나는 중간에 산을 내려가기로 한다. 내려가면 갓이 많다니 그거나 뜯고 있을 생각이다. 정말 밭 근처에 야생으로 갓이 자라고 있다. 뜯어서 씹어보니 맛이 쌉쌀하기가 시중 것 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개중에는 밭 근처에서 농약도 먹고 비료도 먹은 것들은 얼마나 무성한지 한 포기만으로도 여럿은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차에 돌아와 앉으니 몸에서 썩는 냄새가 나는 것 같다. 등산을 한참 할 때는 안 그랬는데, 정말 내 몸에 있던 나쁜 것들이 빠져나왔나보다. 오늘은 씻을 곳도 없어서 겨우 세수하고 머리를 감았다. 찬물에 몸을 담그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쉽다는 생각을 하며 이제 점심을 먹으러 간다.

공강일<br>​​​​​​​서울대 강사·국문학
공강일서울대 강사·국문학

점심은 회다. 어느 통큰 회원 한 분이 이걸 통째로 쏜단다. 모듬회와 모듬가리비가 가득한 상에 자리를 잡았다. 술이 빠질 수 없다. 진도 명물 홍주까지 차려놨더니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산악회에서 하는 이야기는 늘 산악회 선배들이 산행하며 겪은 기행에 관한 것들이다. 귀신을 만났다는 이야기도 있고, 날이 추워서 고생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래도 가장 많은 이야기는 누구를 만나서 즐거웠다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나도 이들과 함께 늙어가 더 많은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함께 나이를 먹을 수 있는 사람을 찾는 일은 이렇게 즐거운 일이라 생각하며 기분 좋게 취한다.

공강일의 바람의 경치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