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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팡질팡, 나의 논문 쓰기

등록일 2018-10-26 20:21 게재일 2018-10-26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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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북이여! 느릿느릿 추억을 싣고 가거라 슬픔으로 통하는 모든 노선이 너의 등에는 지도처럼 펼쳐 있다” -오장환‘The Last Train’부분
▲ “거북이여! 느릿느릿 추억을 싣고 가거라 슬픔으로 통하는 모든 노선이 너의 등에는 지도처럼 펼쳐 있다” -오장환‘The Last Train’부분

중학교 땐 그랬다. 영어나 한문 문제를 풀 때는 특히 더 그랬다. “야, ‘미래’가 어떻게 ‘완료’되냐?”(김애란, ‘도도한 생활’, 31면)는 그나마 양반이었다. 어떨 때 ‘have’를 쓰고 또 어떨 때 ‘has’를 써야 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문제집을 들여다 봤자 몽롱했다. 해도 꿈은 씩씩했다.

헌데 이런 몽롱함을 십 수 년이 지나 다시 느끼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우여곡절 끝에 대학원엘 들어갔을 때는 이미 서른이었다. 남들보다 조급했다. 2년 안에 석사를 마치고 박사과정에 진학하는 것, 그런 생각이 제멋대로 자라나 목표가 되어버리더니, 어느 틈에 물리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당장 지구가 끝장이라도 될 것 같은 강박에 시달렸다. 하지만 논문이라는 놈은 여간 성가신 것이 아니었다. 이것 때문에 꽃 같은 서른(?)을 탕진하고, 보송보송한 청춘을 더럽혀야 했다. 가장 큰 문제는 논문을 쓰고는 있었지만, 그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아, 이 부조리! 절망은 도처에서 넘쳐 났다.

이 부분은 버리고 이 부분은 더 써보라고 조언해주는 선배도 있었지만, 그들은 ‘왜 때문인지’ 말해주지 않았다. 석사논문 그까짓 것 누가 보냐며 대충 쓰라는 선배들은 거개가 잘난 인간들이었다. 대충 쓰라니? 그들은 대충 쓰는 것이 어떤 것인지 대충이라도 알려주는 법이 없었다. 지도교수님은 논문의 목차만을 훑고는 다시 고쳐 오라고 했다. 어딜 어떻게 말입니까, 라는 표정으로 눈을 껌뻑이고 있으면, 눈에 잘 안 들어온다나 뭐라나…. 이 목차는 무려 15포인트입니다, 이게 눈에 안 들어오다니요, 선생님! 벌써 노안이 오신 겝니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선생님은 어서 가서 쓰라며 무슨 큰 선심이라도 베풀듯 말했다. 선생님에게 돋보기를 사다드려야 하는 게 아닐까, 그 와중에 그런 것을 고민하게 만드는 교수님이 진짜 교수님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개중에는 좋은 선배인 척 논문을 봐주는 ‘닝겐’들도 있었는데 이것들은 하나같이 나의 쿨하고 섹시한 문장이나, 기발하고 창의적이고, 그리하여 아름다운 내용에 대해서는 일언방구도 없었다. 하나 같이 논문이 재미가 없네, 서사가 약하네, 따위를 주억거렸다. 나, 참! 논문이 만화책이 아닐진대 웬 재미 타령이냐고, 이건 소설이 아니고 논문인데 어디서 서사를 들이미냐, 고 말하고 싶었지만….

나는 그때까지 얼마나 가열차게 공부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논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알게 된 것들을 주절주절 늘어놓으면 그게 논문이 되는 줄 알았다. 선행 연구의 잘못된 점을 지적질하는 게 논문인 줄 알았다. 그런 게 논문이 될 리 없다는 걸 논문을 쓰고 나서야 알았다. 나의 가장 큰 문제는 너무 늦게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늘 늦었음에 멈춰 있으며, 따라서 현재는 결코 현재로 완성될 수 없다는 것. 역시 인생은 부조리! 다.

감히 논문에 대해서 말한다면 이렇다. 논문은 어디까지나 주장을 펼치는 일이다. 다른 사람의 주장이 아닌 ‘나의 주장’을 말이다. 논문은 사실에 근거한 주장을 펼치고, 그 주장을 근거로 새로운 주장으로 나아가는 일이다. 모래 위에 지은 집이라는 뜻의 사상누각(砂上樓閣), 이것의 긍정적인 버전이 논문일 것이다. 내가 제기하는 주장은 모래와 같이 아무 힘이 없다. 하지만 그 주장들을 하나씩 모으고 모으다보면 두꺼비집도 되고, 모래언덕도 되고 더러는 단단한 지반이 되어 거대한 집이 들어서기도 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아무리 거대한 집이라 할지라도 후행 연구에 의해 무너지는 것은 일반이라는 사실이다. 연구는 영원한 진리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당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일이다. 논리는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와 역사와 문화를 가지면서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런 이유로 현재의 사유는 후대의 사유에 가 닿을 수 없다. 나의 사유를 오래도록 전하게 만들려는 욕심은 허황된 것일 때가 많다. 왜냐하면 주장은 자료에 기반하기 때문에 나의 주장은 현재의 한정된 자료 위에서 불안하게 성립해 있을 뿐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자료의 양은 많아지면 많아지지 줄어들지는 않는다. 후학들이 유리한 것은 당연하다.

이미 논문은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 설득의 방식은? 물론 고압적이고 권위적인 방법도 가능하다. 하지만, 꼰대들의 말에 당신이 늘 반항했던 이유는 그들의 말이 틀려서가 아니라 오히려 자꾸 맞는 말을 해서였다. 문제는 그 태도나 어투가 꼰대스러웠다는 것. 그러니 설득에도 세련된 기술이 필요하다.

▲ 공강일서울대 강사·국문학
▲ 공강일서울대 강사·국문학

논문에 대해 아는 것처럼 한참 말했지만, 나의 말은 지껄임에 불과하다. 이런 말보다는 김수영의 시 쓰기에 대한 사유를 듣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될 것 같다.

사실은 나는 20여 년의 시작 생활을 경험하고 나서도 아직도 시를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모른다.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것이 되지만, 시를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면 다음 시를 못 쓰게 된다. 다음 시를 쓰기 위해서는 여태까지의 시에 대한 사변(思辨)을 모조리 파산(破算)을 시켜야 한다. 혹은 파산을 시켰다고 생각해야 한다(김수영, ‘시여, 침을 뱉으라’).

아버지를 만나면 아버지를 죽이고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고 했던가. 시를 쓰는 일은 이미 알고 있는 시를 폐기하는 것과 같다. 김수영은 “시를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면 다음 시를 못 쓰게 된다”고 했으나, 나는 감히, 심지어, 논문이 든 뭐든 글은 전부 한통속이라고 말하고 싶다. 무릇 좋은 글이란 내용의 혁신에 국한 된 것이 아니라 그 형식의 혁신까지를 포함하기 때문에 그러하다. 어쩌면 내가 논문 쓰는 방법을 몰랐던 것은 당연했다. 논문 쓰는 방법을 알아서 논문을 쓰는 것이 아니라 논문을 쓰는 방법을 아는 것, 알아가는 것, 그것 역시 논문 쓰기의 일부니까 말이다.

어찌 되었건 나는 논문을 썼다. 발표 일을 남겨두고 꼬박 이레 동안 밤을 새웠나보다. 잠도 책상에서 자고 밥도 책상에서 먹으며 논문 쓰는 티를 내며 논문을 썼다. 사흘을 남겨두고 신경성 치통까지 몰아쳤다. 이가 몽창 빠져나간 듯이 아팠다. 밥을 먹을 수 없었고, 심지어 입을 벌리는 일도 어려웠다. 말을 하면 아래턱이 경운기마냥 털털거렸다. 그렇게 발표일은 다가오고 있었고, 몸은 내 편이 아니었다.

석사논문 발표는 길지 않은 내 삶에서 가장 많이 긴장하고 가장 치열했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 학기에 발표를 하지 못하면 끝장이라는 생각이 생각으로 끝나지 않고 물리적인 힘을 발휘하기까지 하였으니까 말이다. 발표 당일까지 논문을 수정했고, 씻지도 못한 채 더러운 상태로 발표장에 들어갔다. 거의 억지를 써서 논문을 통과시키고 나니 그 모든 과정이 유난스럽게 느껴졌다.

그 논문과 더불어 열정이라는 놈이 오뉴월 엿가락 녹아내리듯 그렇게 줄줄 흘러내렸다. 지금은 ‘오늘 할 일은 내일로 미루고, 오늘 했어야 되는 일은 잊으며’ 살아가고 있다. 논문이라는 고비를 넘어섰지만, 더 큰 고비가 기다리고 있다. 설사 그 고비를 넘는다고 해도 삶은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정말이지 모든 길이 슬픔을 향해 뻗어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노선도를 가지고 있으며 그 노선도가 슬픔으로 뻗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다행일 수 있는 것은 적어도 요행은 바라지 않을 테니까, 적어도 지금보다 더 나빠지긴 힘들테니까(물론 나빠질 수 있긴 하겠지만, 그러려면 나빠지려는 노력을 따로 해야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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