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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훈의 ‘광장’ 다시 읽기

등록일 2018-07-27 20:34 게재일 2018-07-27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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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준의 삶과 ‘고독’에 대해
▲ ‘올드보이’의 미도는 이렇게 말한다. “그렇죠. 고독, 하면 무조건 개미죠. 개미 환각을 겪어 본 사람들은 진짜 외로운 사람이거든요. 내가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까, 개미는 항상 떼루 댕기잖아요. 그래서 진짜 외로운 사람들은 개미 생각을 자꾸 하게 되나 봐…. 물론 나는 한 번도 느껴 본 적이 없지만….”
▲ ‘올드보이’의 미도는 이렇게 말한다. “그렇죠. 고독, 하면 무조건 개미죠. 개미 환각을 겪어 본 사람들은 진짜 외로운 사람이거든요. 내가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까, 개미는 항상 떼루 댕기잖아요. 그래서 진짜 외로운 사람들은 개미 생각을 자꾸 하게 되나 봐…. 물론 나는 한 번도 느껴 본 적이 없지만….”

지난 23일 최인훈이 타계했다. 그는 1936년 회령에서 출생하여 6·25전쟁이 발발하자 월남했고, 1952년에 서울대 법대에 입학한다. 1955년에 등단한 후 이듬해 대학을 중퇴한다. 1957년 군대에서 통역장교로 복무하였으며 1963년 제대하였다. “광장”은 군생활을 하던 중인 1960년 11월에 출간에 되었다.

최인훈은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광복을 맞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쟁을 겪었다. 이러한 사람의 삶은 지금 세대와는 거리가 멀다. 거리가 멀다는 것은 그 사람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말과 같다. 그가 쓴 소설 역시 그러한데 어렵기로 정평난 작품으로는 ‘회색인’, ‘총독의 소리’, ‘화두’ 등이 있다.

최인훈의 부고를 알리는 신문은 일제히 “‘광장’ 최인훈 작가”라는 수식을 붙였다. ‘광장’은 최인훈의 다른 소설과 달리 그다지 어렵지 않다. 이 소설은 이명준을 통해 금기시되었던 남북문제를 다루고 있다. 나아가 최인훈은 냉전주의 시대, 각 체제가 가지고 있는 모순을 깊이 파헤쳤다. 4·19혁명 이후의 시대적 분위기가 이런 소설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명준의 연대기

이러한 ‘광장’을 이명준의 연대기를 통해 다시 읽어 보려한다. 이명준의 삶의 궤적을 살피는 것이 이 소설을 이해하는 가장 빠른 길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참조한 책은 ‘광장/구운몽(문학과지성사, 2012)이다.

-1945년 이전. 이명준은 산징, 하얼빈, 연길 등 중국의 도시에서 소년 시절을 보낸다(75면).

-1945년. 해방이 되자 부랴부랴 서울로 나왔으며, 이명준의 어머니는 서울로 돌아와서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다(75면). 아버지 이형준은 해방과 함께 홀로 월북한다(72면).

이명준의 아버지 이형준에 관해 부언할 필요가 있다. 이형준은 중국의 도시를 전전했으며, 몇 개월에 한 번씩 집에 들렀고, 박헌영 밑에서 남로당으로 활동하다가 월북했다. 박헌영은 김일성과 다툴 정도로 유능한 공산주의자였다. 박헌영을 따라 월북한 이형준이 북한에서 승승장구하면 할수록 남한에 홀로 남은 이명준에게 드리운 먹구름은 먹빛으로 물들어갔다.

-1947년. 아버지의 월북과 어머니의 죽음으로 고아가 되다시피한 이명준은 아버지의 친구인 변 선생의 집에서 기거한다(84, 85면). ‘대학신문’에 시가 실리고 영미의 친구 강윤애를 만나 호감을 갖게 된다(57면). 고고학자이자 여행가인 정 선생과 대화하며 남한의 정치를 노골적으로 비판한다(59-68면).

-1948년. 아버지가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에서 대남 방송을 하게 되면서 이명준은 경찰서에 두 번 소환되어 모진 심문을 당한다(74-86).

-1948년 7월. 인천 윤애의 집에 기거하며 사랑을 나누지만 결국 월북한다(128면).

이명준은 남한사회를 비판하면서 광장과 밀실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명준이 진단한 한국 정치란 추악한 밤의 광장이자 탐욕과 배신과 살인의 광장이다. 경제의 광장에는 사기와 협박과 허영이 풍선처럼 떠돌며, 문화의 광장에는 헛소리와 아편과 부정한 돈이 뿌려진다. 남한 현실에 대한 이명준의 비관적 인식은 경찰서에 가면서 극에 달하고 그는 결국 월북하게 된다.

-1948년. 북한에 도착한 이명준은 노동신문 본사 편집부에서 근무하며 ‘볼셰비키 당사’를 읽어낸다(129면). 이곳에서의 삶 역시 잿빛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아버지와 논쟁을 벌인다(131-135면).

-1949년 이른 봄, 이명준은 야외극장 의용 봉사원으로 자원하여 일을 하다 지붕에서 떨어져 허벅지를 다친다. 국립극장 소속 발레리나의 위문을 받고 거기에서 은혜를 만난다(136-138). 남만주에서 쌀 증산 운동하는 모습을 취재하고 돌아와 자아비판을 하게 된다(140-148면).

-1949년 겨울. 원산 해수욕장 노동자 휴양소에서 겨울을 보낸다(160면).

-1950년 3월. 은혜가 모스크바로 떠난다(165-166면).

아버지와의 논쟁은 정 선생과의 논쟁에 상응한다. 이명준의 강변을 듣는 아버지도 정 선생도 말이 없긴 마찬가지다. 아버지와 정 선생의 침묵은 이명준의 말을 수긍한다는 뜻이면서 동시에 자신들의 삶을 긍정할 수 있는 논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 소설이 때로 관념적이라는 비판을 갖는 이유는 이와 관련이 깊다. 작가는 오직 이명준에게만 살과 피를 부여하고 그 외의 인물은 아무런 개성도 주지 않았다. 아버지와 정 선생의 침묵은 이러한 작가의 불철저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소설 작법이 불철저할지 모르지만 세계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날카로우면서도 적확하다. 이명준의 노골적 비판을 통해서 이를 알 수 있다. 북한사회는 혁명을 풍문으로만 들었기에 그 흥분만을 과장되게 연출할 뿐이다. 광장에는 플래카드와 구호가 난무하지만 피 묻은 셔츠도 울부짖는 외침도 없다. 실천될 수도 실천할 수도 없는 말이 넘쳐나지만, 행동은 부재한 곳, 그것이 작가가 통찰한 북한이다. 남한의 광장이 부도덕과 폐악으로 넘쳐나는 아비규환의 공간이라면, 북한의 광장은 이데올로기와 구호에 따라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들로 가득한 위선적 공간이다.

-1950년 전쟁 이후. 낙동강 전선에서 이명준과 은혜는 재회하고 동굴에서 밀회를 즐긴다(170-176면). 낙동강 전선이 밀리면서 은혜는 죽고 이명준은 포로가 된다(176면). 이명준은 포로정책에 따라 중립국을 선택한다. 캘커타로 가는 배에서 이명준은 바다로 뛰어든다.

이명준은 남한과 북한의 현실에 좌절하고 또 그의 유일한 도피처였던 은혜마저 잃고 중립국을 선택한다. 그는 “아무도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땅. 하루 종일 거리를 싸다닌대도 어깨 한번 치는 사람이 없는 거리. 내가 어떤 사람이었던지도 모를뿐더러 알려고 하는 사람”도 없는 곳으로 가고 싶어했다(192면).

그런데 중립국행을 택한 이명준이 돌연 자살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소설에서 그 이유는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건 아마 고독 때문이지 않을까. 이국의 밀실에서도 광장에서도 들이닥칠 고독, 이 고독을 이명준은 견딜 자신이 없었던 것이 아닐까.

△고독의 동의어들

고독이라는 단어는 소설의 첫머리에서부터 등장한다. 명준이 권투선수의 셰도우 복싱을 바라보며 “그 노릇도 수월치 않는 모양이지.”라고 말하자, 친구인 태식은 “고독해서 저러는 거야.”라고 되받는다(53면). 이 때부터 이들은 경쟁이라도 하듯 ‘고독’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 든다. 그렇게 남발되던 고독이란 단어는 뚝 끊어지고, 소설의 말미에서 다시 등장한다. 이렇게 말이다.

“왜 이런 전쟁을 시작했을까요”

“고독해서 그랬겠지.”

“누가?”

“김일성 동무지.”(171면)

▲ 공강일서울대 강사·국문학
▲ 공강일서울대 강사·국문학

여기에서 ‘고독’은 외로움이라는 본래의 뜻이 아니라 ‘이해할 수 없음’이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권투선수도 이해할 수 없고 전쟁도 이해할 수 없다. 삶은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다.

삶의 어느 것도 이해할 수 없고, 삶의 어느 것도 이해받을 수 없다면, 그 삶은 고독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런 점에서 ‘이해할 수 없음’과 ‘외로움’은 동의어다. 고독은 그렇게 영혼을 잠식한다. 이때 인간은 고독, 그 자체가 된다. 하여 고독의 또 다른 이름은 죽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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