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들의 서가
나에게는 두 분의 스승이 있다. 첫 번째 스승. 대학원에 가겠다는 결심을 하고 조언을 들으러 선생님의 연구실을 찾았다. 선생님의 방은 책으로 가득 차 있었고, 이중 책꽂이로 바꾼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여서 아직 정리 되지 않은 책들이 바닥에 즐비했다.
내가 발을 내딛기도 힘든, 좁고 어수선한 연구실을 비집고 들어가 겨우 앉았을 때, 선생님은 책을 둘러보시고 말씀하셨다. “이 책들은 모두 관이다. 먼지를 둘러쓴 저 죽은 말들 속에서, 저 말의 무덤 속에 갇혀서 평생을 살고 싶으냐? 대학원에 오고 싶다면 더 신중하게 생각해봐라.” 선생님은 분명 신중하게 생각해보라고 했는데 나는 `관`이라는 말이 너무 멋지게 들려 더 대학원에 가고 싶어졌다. 그 때 더 신중했더라면, 하고 후회할 때도 있다. 그렇긴 하지만 나는 여전히 책이 좋다.
두 번째 스승. 이 분은 나의 지도교수님이다. 선생님은 날카로운 인상과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계신 분이다. 그런데 선생님은 어쩐 일인지 나에게만은 매우 인자하셨다. 그래서 선생님의 방에 자주 찾아가곤 했다. 그럴 때면 선생님은 언제나 정성스럽게 끓인 특별한 커피를 타주셨다.
선생님은 정수기나 커피포터 대신 버너를 사용하셨다. 물을 끓인 후 커피를 타는 것이 아니라 물에 커피를 넣어서 끓이는 터키식 커피였다. 말이 커피지, 거기에는 온갖 것이 다 들어갔다. 싱글 몰트 위스키가 들어가고, 누군가에게서 얻어온 초피(혹은 제피)가 들어갈 때도 있었고, 아주 질 좋은 천연소금과 설탕을 넣어, 커피는 달면서 짜고 짜면서 톡 쏘는 정말 특별하면서 맛있는 그런 커피였다.
선생님 방은 커피 외에도 특별한 점이 있다면 그건 책이 모두 뉘어져 있다는 것이다. 선생님이 어느 날 연구실에서 책을 보는데 꼿꼿하게 선 책들이 왁자지껄하게 불만을 토해내서 그 날부로 책을 모두 뉘어 놓게 되었다고 한다. 워낙 책이 많았는데 그렇게 눕혀 놓자 더 많은 책을 넣을 수 있게 되었다며 흐뭇해 하셨다.
그날은 두어 잔 마시고 커피에 취했나? 그렇게 누운 책을 보고 있자니 정말 책들이 관처럼 느껴졌고 나는 몽롱한 기분에 취해 선생님께 아주 멍청한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은 어떻게 저렇게 많은 책을 읽으셨나요, 저는 공부를 하려니 앞이 캄캄해서 어디서부터 읽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저 책을 읽어야 할 것 같고, 저 책을 읽으면 이 책을 읽어야 할 것 같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마음만 급합니다.”
나는 이런 얼빠진 질문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이 말은 저 무식하죠, 라는 의미보다 더 치명적인 뜻을 담고 있다. 이 말은, 선생님 전 공부가 뭔지 도무지 몰라요, 공부라는 걸 해본적도 없어요, 라는 고백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공부를 해 본 사람은 이런 얼토당토 않는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 공부해야 될 것들이 절대 많아 보이지 않는다. 책을 읽지 않고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만 하는 사람들에게만 많아 보일 뿐이다.
책은 읽어야 읽히고, 공부는 해야 비로소 공부가 된다. 이런 단순한 사실을 모른 채 나는 선생님께 질문 같지도 않은 질문을 던졌다. 제자의 우매한 질문에도 선생님은 친절히 대답해주셨다. “한 권 씩, 천천히 읽어라. 평생을 공부할 텐데 뭐가 그렇게 조급해 하느냐. 욕심만 앞세우지 말고 지금부터 천천히 시작하거라.” 그래 한 권씩 천천히. 느리지만 한 걸음씩. 평생을 공부한다는 생각으로 우직하게….
△책아, 제발 친하게 지내자!
그런데 책이 읽히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왜 책이 읽히지 않는 걸까? 그런 걱정은 접어두는 것이 좋다. 책은 나에게만 읽히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읽히지 않으니까. 책이 읽히지 않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러니 겁내지 말라.
잘 읽힐 뿐만 아니라 흥미롭게 여겨지는 책은 나의 경험, 나의 관심사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혹은 내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기 때문에 잘 읽힌다. 읽히는 책을 읽으면 나의 생각과 나의 앎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 수 있겠지만, 단단해지는 만큼 유연해지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다시 책을 읽어야 한다. 그런데 내가 잘 모르는 분야의 책을 읽으면 실제로 어렵기도 하고 또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실제로 어려운 이유는 그 분야에 대해 내가 아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공부를 하지 않으면 책이 읽히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어려운 책을 읽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그냥 무작정 여러 권의 책을 많이 읽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책에 나오는 개념어들을 찾으며 읽는 방법이 있다. 관련된 책을 무작정 많이 읽다보면, 어느 사이 정리가 되면서 예전에 읽었던 책의 내용까지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러고 나서 이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으면 그 내용을 보다 분명하고 정확하게 알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앎의 상태로 도달하기까지 너무나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러다 결국 책 읽기를 포기하고 만다.
그러므로 책에 나오는 개념어나 그 내용에 관한 것을 찾아보면 읽는데 도움이 된다. 이 방법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에 떠도는 개념어에 대한 설명 중에는 잘못된 것이 많아서 개념을 잘못 이해할 수도 있다는 거다. 이렇게 개념을 잘못 이해하게 되더라도 잘못된 개념을 익히는 것은 중요하다. 잘못 이해했다면 바로잡으면 되니까 말이다. 그러니 잘못된 개념을 익힐까봐 걱정할 필요는 없다.
또 다시 문제는, 이렇게 찾아가면서 읽다보면 책을 읽는 게 너무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거다. 그런
시간이 자꾸 늘어나면 공부를 포기하게 된다. 포기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요즘 나는 다이어트 중이다. 그래서 식사량을 줄이고,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 그런데 몇 주 턱걸이를 너무 심하게 하는 바람에 인대에 무리가 갔나보다. 숨을 크게 쉬면 실 같은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지는 느낌이다. 이런 통증이 있은 후 헬스장을 가지도 않고, 식사량 조절도 실패하여 도로 살이 찌고 있다. (이런 걸 도루묵이라고 하나?)
아시겠지만 살을 빼지 않으면 살은 빠지지 않는다. 살을 빼려는 노력을 너무 과도하게 하면 살을 빼는 일이 겁이 나게 되고 싫증이 나서 결국 포기하게 된다. 아무리 살이 느리게 빠져도 다이어트를 포기하지 않으면 살은 언젠가 빠지고 만다. 단시간에 살을 빼는 것보다 천천히 살을 빼며 나의 생활과 식습관을 바꿔나가는 것이 더 낫다.
공부나 책읽기도 마찬가지다. 억지로 책을 읽기 보다는 재미를 찾아가며 책을 읽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고 자꾸 아는 것만을 읽다보면 꼰대처럼 아집과 독단과 독선만 늘어가게 될 것이다. 하여 책을 읽어야 한다. 잘 읽히는 책이 아니라 어려운 책과 어렵게 느껴지는 책을 읽어야 한다. 그래야 나의 경험을 넘어 타인을 이해하고 세계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