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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쏠림과 균형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간혹 고향을 찾아보면 이방인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어릴 적 노닐던 등성이나 벌판은 그대론데 집들과 마을 사람들은 낯선 듯 어렴풋함을 떨쳐버릴 수 없다. 하긴 모든 것들이 조금씩 변하는 세상이라 예전의 온전한 고향마을의 정경을 기대하기는 어렵겠지만, 갈수록 허물어지고 황폐화돼가는 모습이 안쓰럽고 서글프기만 하다. 그래도 고향 어귀에 들면 문득 어디선가 들려오는 희미한 소리, 먼 지난날이 손짓하며 부르는 정겨운 세월의 소리가 바람결에 실려옴을 느끼곤 한다.봄날 고향의 들판이나 골짜기, 시내, 언덕배기 어디를 둘러봐도 먹거리의 향연이 펼쳐지지 않는 곳이 없었다. 10여리 떨어진 초등학교엘 걸어 다니면서 배가 출출해지면 길섶과 산자락의 땅찔레와 시금치, 참꽃, 버들강아지 따위를 꺾어 먹고, 놀거나 무슨 일을 하다가 심심해지면 칡뿌리를 캐거나 감꽃을 줍고 아카시아꽃을 따서 먹기도 했었다. 약간 달거나 시큼하고 떫고 쌉싸래한 맛을 느끼며 허기진 배를 달래던 시절, 지금 생각하면 꿈결처럼 아른거리며 그 감칠맛이 입안 가득 배어 나오곤 한다.“마냥 부풀기만한/설레던 고향 길도/모진 바람 갈퀴 속에/변조되는 쓰라림/빈 가슴 쓸어내리는/가슴 아린 눈물 길//잡초더미 에워싸인/폐허 같은 고향집/마당이며 묵정밭엔/설움만 웃자라고/스산한 바람만 불며/허허롭게 저민다” -拙시조 ‘퇴색’고향을 떠난지 어언 41년, 요즘 같은 봄날이면 풀 냄새 땅 냄새가 풀풀 피어오르던 고향은 어느새 옛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퇴락해졌다. 60, 70년대부터 시작된 이촌향도(離村向都) 현상과 농촌인구의 자연감소로 빈집이 많아지고 휴경지가 늘어남에 따라 전답이 수풀되거나 길마저 사라진 곳이 수두룩해진 것이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 농어촌에는 간혹 귀농귀촌도 있긴 하지만, 적막하다 못해 인구소멸로 이어지지 않을까 심히 우려되는 현실이다.그러나 산업화, 도시화로 일자리 마련을 위해 농어촌을 떠났다지만, 도시의 상황은 어떨까? 어느 지역이든 저출산·고령화의 트렌드를 거스르기는 어렵기에 인구감소에 따른 도심 공동화와 도시기능 쇠퇴로 인해 소멸 위기에 처한 지방도시가 상당수에 이른다.통계에 따르면 30년 후엔 전국 228개 시·군·구 중 46%가 사라지고 지방자치단체 중 30%가 파산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으로 경각심을 주고 있다. 대도시로의 인구 유입과 쏠림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기 때문이다. 국토의 약 12%에 불과한 수도권에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집중해 있는 양상이다. 최근 대구·경북의 행정통합론이나 지자체마다 출산장려로 인구절벽을 줄이고 주소갖기 캠페인 등을 펼치는 것도 결국 도시소멸을 막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아닐까 싶다. 뭐든지 한쪽으로 편중되거나 쏠리는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다. 자연계에서 상생하는 인간사회에 균형과 견제, 평형과 중용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자칫 공멸의 위기에 빠질 수도 있다. 대도시와 중소도시, 도농이 적절히 어우러지듯이, 큰 세상을 이고 가는 작은 세상과 작은 세상을 품고 사는 큰 세상이 공존 공생하는 조화와 균형으로 지구촌을 이끌어 간다.

2021-04-12

봄처럼 부지런히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남도의 봄을 가까이서 느끼기 위해 봄마중을 떠났다. 전남 강진읍의 옥정호에서 시작되어 임실~남원~곡성~구례~광양 배알도수변공원까지 이르는 약 160km의 섬진강 자전거길 종주 라이딩을 다녀온 것이다. 수시로 봄꽃이 피어나는가 싶더니 어느새 잎새가 돋고 싹이 틔어 연둣빛 초목이 일제히 생동의 기운으로 손짓하는 듯했다. 강진 인근지역에서는 벚꽃과 진달래가 한창이었었는데, 구례 300리 벚꽃길에선 살랑이는 바람 결에 꽃눈개비가 처연하게 흩날리고, 하류의 광양지역 둔치에는 만발한 유채꽃이 강물에 넘실거리는 봄꽃의 파노라마가 펼쳐졌다.어디 그뿐이랴! 들판에선 파릇한 보리 물결이 파도처럼 일렁이고 강둑으론 쑥을 비롯 온갖 풀들이 고개를 내밀며 생장의 활개를 치고 있었다. 그에 맞춰, 아니 이미 한참 전부터 들녘에선 사람들의 봄맞이 손길이 분주했을 터, 밭갈이를 하고 거름을 내며 논물 관리를 하는가 하면, 산자락과 둔덕에서는 봄나물을 캐고 뜯는 손길들이 많아졌다. 청명이 지나고 곡우가 다가오니 본격적인 농사철이 시작된 것이다. 그래선지 경운기나 트랙터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많아지고 들판 곳곳엔 일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부쩍 잦아진 것 같았다.‘해마다 봄이 되면/어린 시절 그 분의 말씀/항상 봄처럼 부지런해라/땅 속에서, 땅 위에서/공중에서/생명을 만드는 쉬임없는 작업/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항상 봄처럼 부지런해라’ -조병화 시 ‘해마다 봄이 되면’ 중봄날을 거닐며 산야를 둘러보면 무엇 하나 부지런하지 않은 구석이 없을 정도다. 저마다의 생김새대로 꽃이 폈다 지고 제각각의 모양새대로 싹과 잎을 드리우는 현상은, 단순한 것 같지만 창조적인 일손이 빚은 부지런함의 소산이다. 풀 한 포기, 미물의 유기체에도 꾸준히 이어지는 노력 없이는 나타나지 않는 꿋꿋한 생명력이요 활기다. 이러한 부지런함이 모이고 쌓여 자연계의 생명과 순환이 유지되고 식물은 자라나며 새로운 변화와 성장의 기틀이 형성되는 것이다.근면과 성실로 비견되는 부지런함은 개인의 성장과 발전, 도전과 성취에 많은 영향력을 미친다. 직장이나 사회생활을 똑같이 시작하고 추구하며 노력해도 결과가 다르게 나타나는 것은 부지런함의 정도와 방향성이 차이 나기 때문이다. 예컨대 농부가 땅을 일궈 씨앗을 뿌리고 가꾸는 과정에서의 땀과 정성 여하에 따라 결실과 수확이 달라지듯이-. 그러나 봄날에 모종을 심거나 가꾸지도 않고서 가을날에 결실이 없음을 후회(春不耕種秋後悔)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되는 것임을 자연은 너른 들판에서 소리없이 가르치고 있다. 길 따라 물 따라 페달을 밟는 내내 향긋한 바람이 반겨 맞고 강물은 이따금씩 말을 걸어오는 듯했다. 살다 보면 순풍으로 안도할 때도 있고 역풍으로 고난을 겪을 때도 있지만, 쉬지않고 흐르는 물(川流不息)처럼 한결 같은 부지런함으로 맞서고 슬기롭게 헤쳐 나가며 끊임없이 정진해야 함을 들려주고 있었다. 피고지는 꽃과 연초록 잎새의 나부낌, 물과 바람이 전하는 들판의 묵시 속에 봄처럼 더욱 부지런해야함을 두 바퀴에 되새긴 여정이었다.

2021-04-05

지속의 힘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봄의 잔치가 시작되는 모양새다. 전령으로 피어나던 매화, 갯버들에 이어 산수유와 진달래가 짙은 색감을 드러내더니 목련과 벚꽃이 우아하면서도 현란하게 꽃망울을 터트린다. 앞다투어 피는 것 같지만 앞서거니 뒤서거니 순서가 있고, 표연히 흩날리며 돋아나는 잎새에 미련없이 꽃자리를 양보하기도 한다. 군데군데 알록달록, 멀리 가까이 파릇 푸릇한 봄날의 산자락과 들녘은 온통 파스텔톤이다. 양광과 난풍 속에 바야흐로 환희 같은 자연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나무건 풀이건 봄날에 꽃을 피우고 움을 틔운다는 것은 생명력이 있다는 것이다. 땅 속에서 생명수를 찾아 뿌리가 쉼없이 물을 길어 올리고 자양분을 흡수하는 자생적인 일손을 멈추지 않았었기에 개화와 생동의 설레임을 맛보는 것이다. 얼핏 보면 당연하고 무덤덤한 것 같지만, 땅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뿌리에서 밑동, 줄기, 가지로 이어지는 물오름 작용이 끊이질 않았었기에 초목은 소생과 개화로 번성하는 것이다. 자연에 물이 오르고 만물에 생기가 도는 3월은 그래서 ‘물오름달’이라고도 한다.식물에 있어서의 필수적인 물오름은 생명의 원천이요 성장의 근간이다. 그러나 뿌리를 통해 스며든 물이 가지 끝으로의 이동이 줄어든다거나 공급이 중단된다면 이내 시들거나 메말라 고사하게 될 것이다.단순해 보이는 초목의 생장이 이럴진대, 하물며 인간에게는 다양하고 미묘하며 고차원적인 물오름 현상들이 얼마나 많을까 싶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각양각색의 물긷기(?)를 해가면서 자신의 삶을 채우고 새로운 나날을 맞이하는 것이리라.어떤 뜻이나 꿈을 계속적으로 지켜나가기란 정말 만만찮은 일이다. 누구나 마음먹기는 쉬워도 꾸준한 실천이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간에 회자되는 괄목할만한 일들은 대체로 수많은 반복과 지속이 만들어낸 각고의 결정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치 끊어질 듯 이어지며 거듭되는 물오름의 창조적 노력으로, 울음인 듯 웃음인 듯 신열로 복받치는 꽃망울처럼-.비단 돋보이고 주목받는 시도가 아니더라도, 무슨 일이든 한 우물을 꾸준히 파게 되면 소기의 목표에 근접하고 최소한의 가시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이를테면 걷기, 자전거 타기 등 생활 속의 운동을 꾸준히 실천한다거나 독서, 시낭송 등 자신의 취향에 맞는 취미활동의 지속으로 보람을 느끼고 기쁨을 누려가는 일들은, 자신을 새롭게 키워가는 도전이자 약속인 것이다. 실제 필자의 주위에선 1년 이상을 여명 속에 맨발로 해변을 걸으며 일출을 맞이하고, 한편으론 해양 쓰레기까지 수거하는 플로깅 활동을 지속하고 있는가 하면, 어떤 지인은 주말마다 맨발산행을 하기도 하고, 한 직장 동료는 새벽녘에 강둑을 어김없이 걸으며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반복은 기적을 낳는다고 했던가. 지속하는 습관과 반복하는 연습은 꿈의 현실화에 도움을 준다. 1만 시간의 법칙이 시사하듯, 끊임없는 연마와 꾸준한 습작, 지침없는 훈련을 통해 성취해가는 결실은 찬사와 아울러 사회적으로도 선한 영향력을 줄 것이다.

2021-03-29

불편해도 이제는…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봄이 오는 길목에 인근의 산을 찾았다. 개나리꽃이 샛노란 인사를 건네고 참꽃이 발그스레 상기된 얼굴로 반긴다. 가녀린 풀잎들이 땅을 밟고 일어서며 소생의 몸짓을 보이는가 하면, 나뭇가지엔 부푼 망울들이 앙증스레 연둣빛 손짓을 하는 듯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의 난맥상에 미세먼지와 황사가 가세해도 주저없이 봄날은 오고 만물은 일제히 생동의 기지개를 켜고 있다. 움직이고 마중하는 손길, 발길에서 봄은 더 빨리 오고 가까이서 느낄 수 있으리라.봄이 다가와선지 최근 산행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난 것 같다.더구나 포스트 코로나의 비대면 시기라서 나 홀로 산행하는 ‘혼산’이 눈에 띄게 많아짐을 볼 수 있다. 젊은 학생이나 직장인 사이에서 나 홀로 산행과 캠핑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SNS에 ‘혼산’ ‘혼캠핑’을 인증하는 게시물도 늘어나고 있다.실제 최근 전국적으로 입산자 수가 전년 대비 40~50% 정도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누구나 산을 찾으면 자연과 동화되는 느낌을 받는다. 상쾌한 공기를 마시고 깨끗한 계곡물에서 한결 신선함과 산뜻함을 맛볼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때때로 산행을 하며 일상의 갑갑함을 털어내고 시원한 계류에 번잡한 마음을 씻어내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산을 오르고 계곡을 찾는 사람들이 마음의 때를 벗기면서 자신의 양심마저 벗겨서야 되겠는가? 전국의 산과 계곡이 쓰레기로 몸살을 앓은지 한참이나 됐다. 등산로나 산책로, 쉼터, 전망대 주변에는 일회용품, 비닐봉지, 폐캔, 플라스틱병 등이 곳곳에 널브러진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쓰레기와 함께 슬그머니 도덕심마저 버린 것이다.등산객이 많아지니 쓰레기도 늘어나서 국, 도립공원관리소에서는 쓰레기 수거 처리에 전담 인력을 투입하고, 불법 투기를 막기 위해 감시카메라를 설치하는 등의 비용까지 들여 국가적인 낭비가 아닐 수 없다. 산이나 계곡에서 발생되는 온갖 쓰레기의 대부분은 음식물 용기로, 그 중 일회용품이나 플라스틱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한다. 언제부터 편리함에 익숙해져 일회용품을 자주 쓰고 포장용기를 가까이하게 됐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쓰면 쓸수록 환경이 신음하고 국토가 멍들어 감을 왜 모르는 것일까? 무분별하게 버리는 쓰레기로 인해 환경이 오염되고 생태계가 파괴된다면 그 폐해는 고스란히 인간에게 돌아올 것이 자명하다.더 늦기 전에 이제는, 다소 불편해도 집에서 쓰던 물병과 찬통, 컵 등을 산에서도 사용하여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에 동참하는 노력과 자세가 필요하다. 쓰레기를 줍거나 버리기 이전에 쓰레기가 발생치 않도록 리필용기나 에코 백, 텀블러 등을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보다 슬기롭고 효과적인 환경 지킴이가 아닐까?폭포수가 봄의 선율처럼 쏟아지는 바위틈에서 소풍 채비하듯 싸온 도시락을 다 비우고 나니 버릴 것이 거의 없었다. 환경을 생각하는 자연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로 등산 에코 매너를 지키는 산객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2021-03-22

예술의 일상화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모든 생물체의 움직임은 자극과 반응으로 이뤄진다. 무엇을 보거나 듣거나 맡거나 먹거나 하는 등으로 주변의 변화를 알아차리고 대상을 느끼며 외부를 인지하는 것들은 모두, 생물체 고유의 감각기관의 작용에 의해서 나타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사람이나 동물의 몸에서 외계의 현상을 받아들여 뇌에 전달하는 시각, 후각, 청각, 미각, 촉각 등의 감각기관은, 외부 자극에 변화하고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끊임없이 내부적으로 신호를 보내고 반응하며 동작이나 행위를 하게 된다. 이를테면 기쁨과 노여움, 슬픔과 즐거움(喜怒哀樂) 등을 느끼는 것들은 순전히 대상물이나 주변 상황에 따른 신체반응의 결과물인 셈이다. 인간은 감정적 또는 이성적인 동물이기에 외부 자극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의식적이나 무의식적으로 움직이고 표현하게 된다. 외부 현상에 의해 다양하게 표출되는 인간의 무수한 감정은 개인의 인격이나 행동, 가정과 사회생활 전반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좋은 감정은 뇌활동을 활성화시키고 건강에 도움을 주며 긍정과 발전의 방향으로 꾸준히 이끌어 주기도 한다.어쩌면 그래서 예술이 탄생했는지도 모른다. 멋진 경치나 아름다운 모습을 보면 누구나 감탄하거나 호감을 가지게 된다. 미적(美的) 가치를 형성하는 인간의 창조활동인 예술은, 세상을 밝고 새롭고 향기롭게 하며 아름다움으로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이 본질이다. 오묘하고 무진한 예술은 보이지 않은 세계를 열어주고 복잡다단한 현실을 정화시켜 주기도 한다. 사람들은 예술품과 예술세계를 통한 감정이입으로 대리만족이나 생각을 새롭게 하고 깨우침과 발돋음의 계기로 삼으며 마음을 다듬고 넓히기도 한다.창작의 예술품을 거리에서 만나고 생활 속에 스미게 하면 어떻게 될까? 예컨대 가로등이나 간판의 스타일을 이채롭게 하고 벤치나 건축물의 외형을 예술적으로 디자인해서 적용한다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한결 새로움을 더하고 흥미와 감각을 부추길 것이다. 정형화, 획일화돼가는 도시에 신선한 문화의 바람이 일고 색다른 볼거리가 늘어날 것이다.예술과 접목되는 일상은 이미 오래 전부터 추구해왔고 현재도 계속 진행되는 테마가 아닐까 싶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같은 이색 건축물이나 로테르담의 초대형 예술품 같은 마켓홀 이색 시장, 통영의 동피랑 벽화마을 등을 비롯하여 하프현 같은 다리, 상징성이 가미된 벤치, 조형미가 곁들여진 간판 등은 마음을 한결 넉넉하게 하거나 재미난 스토리를 엮어내게 만든다. 평범하고 사소한 부분에서 오브제 같은 작품이 출현한다면 다채로움과 경이로움을 더해줄 것이다.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전시되는 예술작품도 나름 가치가 있겠지만, 실용성이 어우러지고 대중성을 더해가는 예술이야 말로 더욱 친숙하고 가까이서 향수하게 될 것이다. 일상에서 예술을 만나고 예술이 일상화 되듯이, 자연미와 더불어 예술미가 묻어나는 작품들이 도처에 즐비하다면 코로나로 지쳐가는 심신이 조금이나마 위무되고 힐링되지 않을까?

2021-03-15

봄의 속삭임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언제 봄이 올까 했는데 어느새 성큼 다가선 듯하다. 한결 포근해진 날씨에 봄바람이 살랑거리더니 매화, 산수유 꽃이 속닥이 피어나고 양지 바른 곳에선 가녀린 풀잎들이 손을 흔들며 봄을 부르고 있다. 가만히 살펴보면 황량한 대지의 여기저기서 싹이 돋고 움이 트며 물이 오르고 꽃이 피어나는 모습이 나긋나긋 보이고 자박자박 들리는 것 같다. 차디찬 땅 속에서도 내밀한 생명력을 키우고 창조적 일손을 멈추지 않으며 저마다 수많은 믿음의 교감으로 약속처럼 새봄으로 솟아나는 것이다.많이 보라고 봄이라 했던가? 관찰하고 눈여겨보면 정말 보이는 것들이 많고, 신기할 정도로 일어나는 만물의 변화를 가까이 다가감으로써 봄의 느낌을 잘 전달받을 수 있기에 봄이라 했는지도 모른다. 또는 ‘씨앗’ ‘태양’ 등을 뜻하는 ‘볻’에서 유래돼 만물이 소생하고 씨앗을 뿌리는 때로 햇빛이 따스해지는 시기라는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봄을 한자로 풀이하면 춘(春) 즉, 해(日)의 기운을 받아 풀(8279)이 돋아나는 모양이고, 영어로는 스프링(Spring)으로 싹이 트고 꽃이 피는 모습에서 가볍게 튀어 오르는 형상을 담고 있기도 하다.‘긴 겨울 잠을 깨고 봄이 일면/나른한 언덕 위에 花香 흐르다/스치는 바람 결에 버들잎 흩어져도/빨래터 아가씨는 고갤 숙이고(春破冬眠起 花開處處幽 吹風楊柳散 漂女暗低頭)’ -강성위 한시집 ‘하늘에 두 바퀴의 달이 있다면(1991)’ 중 ‘春’봄을 품은 겨울은 혹독하기 마련이다. 마치 누구에게나 삶의 고난과 시련이 냉혹한 것처럼…. 그러나 역경을 이기고 난관을 극복한 인내의 결실이 값지듯이, 혹한 끝에 피어난 꽃이 더욱 향기로운 것이리라. 도처에 돋아나고 피어나는 화초와 수목은 무덤덤하게 손짓하는 것 같지만, 기실 얼마나 매운 인동의 시간 속에 생동과 개화의 꿈을 끈덕지게 키워왔을까? 그렇기에 풀 한 포기, 꽃망울 하나에도 숙연하고 예사롭지 않음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냇둑의 수양버들이 긴 머리를 풀어헤치고 개울 가로 미나리 싹이 파릇하게 돋아는 곳에 동네 빨래터가 있었다. 아직은 시릴 정도의 찬 물에 손을 담가 빨래를 하며 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에 간간이 빨랫방망이를 두드려 장단을 맞추는 모습은 그림 같은 풍경이었다. 수시로 명지바람이 불어와 긴 치맛자락 같은 실버들이 하늘거리면 괜스레 빨래하던 아녀자의 얼굴이 붉어짐은 무슨 연유였을까? 40~50년 전의 아슴한 고향 정경이 엷은 감미로움으로 피어나는 듯하다.자연의 속삭임 같은 봄날이 사뿐사뿐 다가오고 있다. 무채색 대지의 화폭에 입김 같은 양광(陽光)의 붓질로 살며시 채색하며 연초록 싹을 보듬고 꽃과 잎을 그려내고 있다. 거기에 향기까지 스미게 해 벌과 나비를 부르고 인향까지 어우러지게 하니 춘삼월 호시절이 멀지 않을 듯 싶다. 분분한 코로나 난국에도 봄이 오는 걸까? 한 줄기 희망 같은 백신의 효능이 봄햇살처럼 펴지고, 방역의 체질화, 거리두기의 일상화로 모두가 바라는 진정한 봄날이 어서 오기를 기대해본다.

2021-03-08

다시, 새로운 시작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떠오르는 해를 보면 늘 가슴이 벅차다. 바다나 산에서 맞이하는 해돋이는 탁 트인 시야와 여명의 파노라마가 펼쳐지기에 느낌과 감동이 더 크다. 강변이나 들녘, 도심에서 보는 일출도 또 다른 감흥이 생기기는 마찬가지다.해맞이 장소 어딜지라도 솟아 오르는 해를 보면 누구나 마음이 차분하고 경건해지며 시나브로 밝아지는 장관 앞에서 형언할 수 없는 마음의 파문이 여울짐을 느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새해 첫날의 해맞이를 위해 등고산망사해(登高山望四海)로 의미를 되새기는지도 모른다.아침에 떠오르는 해가 장엄하다면 저녁에 지는 해는 안온하다. 찬란한 아침해가 뜸으로써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고 은은한 저녁해가 짐으로써 하루를 갈무리하게 된다. 누구나 여명과 부신 햇살 속에서 하루를 시작해 저마다의 위치와 환경에서 움직이고 활동하다가, 서녘에 어리는 노을빛 속에 그 날의 일정을 마무리하게 된다. 그렇게 해와 달, 별들의 운행에 따라 우리는 어제를 보내고 오늘을 살아가며 내일을 맞이하게 된다.춘분이 다가와선지 낮시간이 점차 길어지고 있다. 필자는 거의 매일 자전거로 출퇴근하면서 요즘은 철강공단 위로 떠오르는 해와 형산 너머로 지는 해를 보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수 일째 그렇게 강변을 달리며 먼동이 틀 무렵과 노을피는 하늘빛을 보면서 불현듯 아침과 저녁은 시작과 끝이 따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을 저녁의 여유로움으로 얼마든지 넉넉하게 시작할 수 있고, 저녁에도 아침 같은 신선함으로 충분히 산뜻하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처음으로 땅을 밟고 일어서는 새싹처럼/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저녁 무렵에도/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다시 새날을 시작하고 있다’ - 신영복의 언약 ‘처음처럼’ 중.아침은 시작의 다른 말이며 저녁은 마감의 또다른 이름이다. 아침과 저녁은 상이하면서도 상통한다. 아침은 밝음과 움직임의 현상을 낮이라는 얼개로 보여주고, 저녁은 어둠과 침잠의 적요를 밤이라는 휘장으로 두른다. 아침은 저녁으로 이어지고 낮은 밤을 기약하기에 아침이 곧 저녁이고 저녁은 새로운 아침을 품으며 물러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루를 마무리하는 저녁 무렵에도 새로운 아침을 준비하는 것이 아닐까?코로나 바이러스가 그지없이 요동쳐도 만물엔 물이 오르고 삶의 욕구 꿈틀거리는 새봄이 시작됐다. 흐르는 시간 속에는 시작과 끝이 없고 소소히 반복되는 일상과 생이 있을 뿐이다. 산다는 것은 어쩌면 무수한 처음을 만들어 가는 끊임없는 시작인지도 모른다. 경계와 구분 상 시작과 끝이라 하지만, 기실 끝은 또다른 처음으로 이어지고 시작은 미지의 종착을 향한 새 출발이니, 시작이 좋으면 끝이 좋고 피날레가 잘 돼야 처음이 아름다워지는 법이다. 그래서 새로운 시작은 늘 설레고 기대되며 도전과 열정은 삶과 꿈을 춤추게 하는 것이다. 3월의 시작 새로운 출발! 꿈나무들의 입학과 진학, 입사와 사업의 시작에 희망 가득한 봄햇살이 비춰서 꿈과 뜻이 뭉근하게 싹과 꽃으로 피어나길 염원해본다.

2021-03-01

지식과 지혜 사이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물이 흘러 강이 되고 사람이 다녀 길이 된다. 높은 데서 낮은 데로 막히면 돌아가고 패인 곳을 채운 뒤에 흘러가는 물은, 기꺼이 낮은 곳이나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머물다가 가득 차면 넘쳐 흐른다. 작은 하천의 물이나 큰 강물은 모두 바다로 모이면서(百川歸海) 만물을 이롭게 한다. 가리지도 다투지도 않고 자연스럽게 물(水)이 흘러(去) 법(法)이 되었듯이 물은 순리이고 이치이며 공평이고 포용이다.길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걷고 다니며 바퀴가 굴러서 만들어진 길은 고래(古來)로 문명의 발상을 일으켰고 문화의 요람을 닦았다. 사람과 사람을 잇고 마을과 도시를 연결시켜 발전과 변화를 거듭해온 길은 현재를 살아가는 양상이자 미래와 희망을 제시하는 안내이고 지침이다. 어떤 길을 걸음으로써 비로소 일이 시작되고 어디론가 떠날 수 있으며 새로운 발돋음을 할 수 있기에 길은 소통이고 시도이고 역사이기도 하다.이처럼 물과 길은 자연현상과 인간생활에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조건이자 요소이다. 예로부터 치산치수(治山治水)는 나라 통치의 근본으로 작용했듯이, 물길을 트고 도로를 내는 것은 존속과 번영의 관건이었다. 그래서 요즘도 계속 진행되고 있지만, 필요와 여건에 따라 산을 만나면 길을 열고(逢山開道) 물을 만나면 다리를 놓는(遇水架橋) 것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난제를 타개하며 진보와 변혁의 방향으로 필요충분조건을 갖춰나가는 것이라고나 할까? 이렇듯이 물과 길은 함부로 막을 수도 저버릴 수도 없는 자연과 인간의 동반이며 도리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물길이 틀어지고 다니던 길이 막혀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하루 아침에 세상이 바뀐 것도 아닌데 설사 그러한 일들이 좀체 일어나기는 어렵겠지만, 실제 그러한 조짐이 보이는 것 같아서 의아스럽고 안타깝기만 하다. 어느 지역 모 기업체에서 소위 작업장 내의 이동통로인 도로에서 사고가 빈발하다 보니 자전거를 포함한 이륜차의 통행을 전면 금지한다는 조치가 내려진 것이다. 그것도 일방적인 통보 내지는 제지(?)였다가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올려가는 반발이나 여론의 추이에 따라 유예나 보류를 하고 있다 하니 웃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모름지기 불경일사 부장일지(不經一事 不長一智·한 가지 일을 경험하지 않으면 한 가지의 지혜가 자라지 않는다)라 했다. 과연 길을 막고 출입을 통제하는 것만이 능사일까? 얼마든지 적절한 대책을 강구하고 매듭을 풀 수 있는 일들을 긁어 부스럼 만들 듯이 비화시키고 있다. 50년 이상 한결같이 회사가 터 준 길을 드나들며 생계를 유지해가는 일부 근로자들로서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천 가지의 지식은 한 가지의 지혜 보다 못하다고 한다. 지식은 학습을 통해 얻지만 지혜는 경험으로 자란다. 누구나 지식을 습득하기는 쉬워도 지혜를 터득하기는 만만치 않다. 능률과 효율이 중시되는 사회에 과연 지식과 지혜 사이의 효능적인 지능과 현명한 사고(思考)를 기대할 수는 없는 걸까?

2021-02-22

나이듦에 대하여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설날 아침에 떡국을 먹었다. 새해 차례상이나 밥상에 올리는 여러가지 음식 중 빠지지 않는 것이 떡국이다. 새해가 밝은지 두 달째지만, 세시음식인 떡국을 먹음으로써 진정 한 살 더 나이가 든다고 한다. 첨세병(添歲餠)이라고도 하는 떡국은 단순히 나이만 더하는 것이 아니라, 가래떡처럼 재산이 길게 늘어나고 엽전모양으로 동그랗게 써는 떡은 돈이 많아지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한 떡국을 온 가족이 둘러앉아 먹으면서 새해 덕담도 나누고 일년 신수가 훤해지기를 바라기도 한다.해마다 대하는 떡국이지만 올해는 그저 단출하기만 하다. 여전히 계속되는 코로나19 감염증의 방역지침에 따라 이동과 모임을 자제하거나 최소화해서 설 명절 가족 간의 따스한 만남이 두드러지게 성글어진 것이다. 한 살 더 먹는 것도 서러운데(?) 가족이나 친지를 대할 수 없는 상황이라니, 씁쓸히 먹는 병탕(餠湯) 속에는 만두뿐만 아니라 여타의 생각이 섞이게 됨은 필자만의 과민일까?떡국을 먹지 않더라도 나이는 먹게 되고 시간은 나그네처럼 끊임없이(光陰百代之過客) 지나간다. 그러한 세월에 버물려 과세(過歲)를 하고 이제 또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된다. 언제부턴가 시간이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는 길어도 일년이 짧다고 여겨짐은 세월에 대한 조바심일까? 호기심 많던 시절에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었는데, 젊음과 늙음의 중간지대쯤에서는 삶의 수레가 천천히 굴러가기를 바라고 있다. 인생은 두루마리 화장지 같아서 풀어낼수록 더 빨리 돌아간다는 말이 실감나는 요즘이다.나이가 든다는 것은 그만큼 무게감이 덧대어진다는 뜻이다. 나이듦은 가정이나 사회, 문화적으로 많은 역할과 기여를 하며 경험과 지혜를 알려주고 이치와 순리를 밝혀주는 연륜이 깊어 간다는 것이다. 사람의 나이를 값으로 매기기는 모호하지만, 나이를 존중하고 적어도 나이값을 하며 살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산술적인 나이의 숫자만 보태는 것이 아니라 원숙함을 더해가고 농밀하게 익어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누구나 곱고 건강하게 나이듦을 바랄 것이다. 나이를 먹다 보면 결국 무채색 같은 노년기에 접어들게 되지만, 노화는 모든 생명체가 겪는 자연스러운 변화다. 나이듦이 달갑지 않고, 늙어감에 거부감이 드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늙었다는 실감이 들 때는 암울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처럼 노년기의 풍부함과 가능성으로 얼마든지 유년기나 성년기의 다양성을 누릴 수 있다.꼰대 기질 같은 아집을 버리고 젊은 생각과 가치를 존중하며 눈높이와 공감의 소통으로 움직이고 어울릴 때 생체나이를 얼마든지 낮출 수 있을 것이다. 같은 나이라도 젊고 건강해 보이는 사람이 있는 반면 늙고 병약해 보이는 사람도 있다.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몸과 마음을 가꾸고 다루기에 따라 외양은 눈에 띄게 달라질 수 있다. 꿈꾸는 삶과 노력하는 집념은 늙지 않는다고 한다. 자신만의 독특하고 지속적인 건강비법과 생활습관으로 젊게 나이 드는 것이 축복이 되는 연년익수(延年益壽)를 추구해보자.

2021-02-15

맛과 정성의 밥상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사람은 살기 위해서 먹을까, 먹기 위해서 살까? 이에 대한 논쟁은 수도 없이 해왔고 계속되고 있지만, 각자 나름의 취향이나 주관에 따라 받아들이고 추구해 나가면 편하지 않을까 싶다. 사람을 비롯한 온갖 유기체는 생리구조 상 음식물을 섭취하고 배설하는 신진대사 작용이 있어야만 최소한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그렇기에 사람은 적어도 먹어야 살 수 있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먹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먹음으로써 움직일 수 있고 기력이 있어야 제반 활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이처럼 먹는 것은 인간생활의 중요한 요소이며, 의식주와 함께 인류역사학적으로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고도 볼 수 있다.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 먹는다지만 그것을 통칭하면 먹거리이고 달리 보면 음식문화나 정서적인 산물인 것이다. 그만큼 음식을 만들고 준비하고 먹고 마시는 과정에는 많은 생각과 사연과 풍습이 스며들어 있다. 그래서 음식에는 지역적인 특색과 삶의 양식이 더해져서 독특한 맛과 향으로 눈요기를 자극하는지도 모른다.음식은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근간이자 정과 얼이 버무려진 고마운 양식(糧食)이다. 잘 먹어야 잘 산다는 말처럼, 우리는 음식을 먹고 자라며 음식을 통해 인심과 밥상머리 교육을 받아왔다. 단순히 배만 채우는 밥이 아니라 밥상을 통해 알게 모르게 인성과 예절을 배우고 터득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 어머니께서 차려 주신 두레밥상을 대하며 우리는 슬기를 발라내고 뚝심을 길러내며 가족을 위해 험난한 세상의 밥상을 온전하게 차려 나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평소 음식에 대해 많은 관심과 미식가를 자처하는(?) 필자로서는 일전에 방영한 ‘한국인의 밥상’ 특집 프로그램을 흥미롭게 시청했다. 지난 10년간 전국의 방방곡곡을 돌며 80천여 가지의 향토음식을 소개한 대장정은, 기억마다 계절마다 사람을 만나고 음식에 얽힌 많은 얘기와 추억이 서린 아름다운 여정이었다. 그렇게 보듬고 장만한 음식에는 각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녹아 있었고 정성을 더하고 아픔을 달래며 위로와 감사를 나누는 진정한 사랑의 손맛이었다. 건강과 장수에 직결되는 음식을 잘 먹어야 무병과 노화지연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과일, 채소, 생선, 견과류, 통밀, 올리브유가 풍부하고 건강과 장수에 이로운 식단으로 정평이 나 있는 ‘지중해식단’을 한국형 장수식단으로 특성화시키려는 움직임도 있다고 한다. 먹는 것에 대한 연구와 건강식, 균형 잡힌 식단, 식이요법 등으로 젊고 건강하게 사는 것은 인류의 희망사항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산다는 것은 어쩌면 밥을 먹는 것인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밥 한끼에 얽힌 그리운 추억과 잊지못할 기억이 있을 것이다. 가난했던 시절의 음식에는 큰 지혜가 배어 있고 추억의 맛과 향이 진하게 우러난다. 애틋해서 고마운 밥상, 힘들 때는 힘찬 응원가였으며 어려울 땐 가슴 찡한 위로로 다가오는 소중한 추억 나눔의 음식은 함께 했던 시간의 행복한 기억이 아닐까?

2021-02-08

입춘별곡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내일이 새해의 첫 절기인 입춘이다. 여전히 매서운 추위와 성가신 코로나19 감염증의 재확산으로 요원할 것 같은 봄날이 이날부터 서막을 알리게 된다. 동안거에 들었던 풀과 나무들이 움을 준비하고 세상이 동토의 잠에서 서서히 깨어나는 때, 남녘에선 벌써 때이른 홍매화 개화 소식도 있지만 진정한 마음의 봄은 어느 날에나 오려는지 몹시도 기다려진다. 입춘이 되면 농경의례와 기복적(祈福的)인 의미로 입춘방(立春榜)을 대문이나 문설주 등에 붙인다. 춘축(春祝)·입춘서·입춘첩이라고도 하는 입춘방은 한 해의 행운과 건강을 기원하며 봄을 송축하는 글귀다. 주로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등의 한문을 세로형태의 화선지에 붓으로 쓰지만, 요즘은 순 우리말로 ‘들봄 한볕, 기쁨 가득’ 등의 문구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캘리그래피 서체에 색채를 가미하거나 삽화를 곁들여 다양하게 쓰고 그리기도 한다.필자는 매년 입춘에 즈음해 입춘첩을 붓으로 써서 이웃과 지인들에게 나눠주고 현관문 입구에 붙이곤 한다. 설날이 다가오면 연하장도 정성껏 써서 함께 전해주곤 했는데, 외곬스러울지 몰라도 그렇게 해온 지 벌써 이십 수년이나 됐다. 그래서 어떤 친구는 해마다 당연한듯이(?) 연하장이나 입춘첩을 기다리기도 하고, 어떤 지인은 연례적으로 받은 연하장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가지런히 간직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오기도 한다. 크게 대수로운 일도 아닌데 주위의 기다림과 소중한 챙김을 생각하고 자락(自樂)으로 삼으며, 지금까지 거르지 않고 쓰고 보내고 나눠왔는지도 모른다.그러한 습성으로 올해도 어김없이 연하장을 쓰고 입춘첩을 나눴다. 어서 빨리 악질의 코로나 바이러스가 물러가고(疫病消滅), 나라가 태평하고 국민이 편안하며(國泰民安), 만복이 구름처럼 흥해지기를(萬福雲興) 바라는 마음을 차곡차곡 담아 열성을 다해 썼다. 입춘첩은 특히 입춘이 드는 절입시간에 붙여야 적실(適實)하다기에 최소한 입춘 1~2일 전에 전달해줘야 하는 시의성이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연하장이나 입춘방을 쓰는 것도 그렇지만 나눠주고 보내주는 것도 만만찮은 일이다. 그러나 친분과 받는 이의 표정을 떠올리면 주저없이 연락을 하거나 우편물로 보내게 된다. 비대면으로 소원해진 때지만 미미한 소통이나마 반가움과 미더움으로 피어날 수 있지 않을까?입춘이라지만 바로 봄이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계절의 변화는 기운의 변화이다. 겨울의 찬 기운이 가시지 않았다 하더라도 땅 속에서는 새 생명이 움트고 있으니 봄의 기운이 서서히 온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몇 차례의 꽃샘추위와 잎샘추위가 지나가야 비로소 봄이 오는 것이다. 멀지 않아 오게 될 봄날을 기다리는 것도 새로운 희망의 기운과 다시 시작하는 설레임이 있기 때문이다. 혹독한 추위와 시련의 고통을 이겨낸 뒤에 맞이하는 봄날이 한결 환해지지 않을까 싶다.봄은 많이 보라고 봄이라 했던가. 이곳저곳 주변을 자세히 바라보면 정말 어느새 조금씩 달라지고 눈에 띄게 보이는 것들이 많다. 풀과 싹이 흙을 간지럽히고 홍매화 등걸에 망울이 맺히듯 차츰 봄날이 부스스 실눈을 뜨며 입춘별곡을 노래하는 듯하다.

2021-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