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벌레 울음소리가 한결 맑고 또렷해졌다. 처서 지난 하늘은 조금씩 높아져가고 아침저녁의 공기가 서늘해지니, 새벽녘이나 해거름에 새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온갖 벌레들의 합창이 청아하기만 하다. 특히 비가 오고 난 뒤나 습도가 높은 날에 많이 울어대는 지렁이 소리는 어찌나 크고 선명한지, 귀를 의심할 정도로 요란하지만 결코 시끄럽거나 어수선하게 들리지는 않는다.
여름날의 문서를 벽장 속에 넣어둔다고 하는 처서(處暑)는 더위를 마감하고 선선해지는 때라 할 수 있다. 요즘처럼 수일째 가을장마가 계속되기도 하지만, 맑은 날에는 노염(老炎)이 만만찮게 꼬리를 물기도 한다. 계절이 바뀌게 되는 현상은 달력의 숫자보다도 먼저 미세한 자연의 변화나 울림에서 느낄 수 있다. 그 대표적인 것들이 여름날을 노래하는 매미나 가을날을 부르는 풀벌레들의 거침없는 울림이다.
“소나기 멎자/매미소리//젖은 뜰을/다시 적신다//비오다/멎고//매미소리/그쳤다 다시 일고//또 한여름/이렇게 지나가는가//소나기 소리/매미소리에//아직은 성한 귀/기울이며//또 한여름/이렇게 지나보내는가” -김종길 시 ‘또 한여름’ 전문
최근 들어 장마 같은 비가 수시로 내리다 보니 소나기도 잦아졌다. 무더위와 코로나에 시달리는 후줄근한 일상의 쉼표 같은 빗줄기가 시원하게 쏟아지고 나면, 때에 따라서는 하늘에서 고운 무지개가 피어나며 잠시나마 행운의 몸짓을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소나기 그치기가 무섭게 매미들은 약속처럼(?) 일제히 선율을 토해낸다. 마치 퍼붓는 소낙비 마냥 온 사방에서 열창(熱唱)을 쏟아내며 여름날을 노래한다. 하긴 7년을 땅 속에서 살았으니 한달 남은 일생을 옹골차게 마무리하기 위해서라도 혼신을 다해 뜨겁고 벅차게 여름날의 세레나데를 구가하는지도 모른다.
아직은 한낮의 매미소리가 쟁쟁한데, 어느새 귀뚜리며 여치 따위의 풀벌레와 지렁이까지 합세하여 자연의 시계소리 같은 가을의 시작음(始作音)을 연주하는 듯하다. 하찮은 미물도 이렇게 때가 되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며 온 힘으로 외치거나 울고 노래하면서 계절의 화음을 이어간다. 피고지는 꽃처럼 자연의 변화는 이처럼 울림이나 색채 등으로 아무런 거리낌이나 막힘없이 이치에 순응하며 넘겨주고 이어져서 조화로움을 더해가고 있다.
과연 인간사회에서는 이 같은 자연의 편안한 어울림을 기대하기란 어려운 것일까? 물러나고 나설 때를 알고 목소리를 내고 침묵할 때를 알며, 타인을 높이고 자신을 낮추는 배려와 존중의 지혜는 그토록 까다롭고 체득하기가 어려운 것일까? 사람에게는 말과 글로 의사를 표시하는 것 이상으로 때와 장소에 따라 낄끼빠빠하며 신뢰와 융통성있게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알량한 학식과 경박한 언행은 빈번한 엇박자로 자신과 주변을 찡그리게 하는 불협화음으로 치달아, 종국에는 자승자박의 그물에 갇히게 되는 꼴이 될런지도 모른다.
물소리와 바람소리, 새소리와 풀벌레소리 등은 결코 아무렇게나 울리고 들리는 것이 아니라, 동화와 상생으로 공명하고 조율되며 변주하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