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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연습

등록일 2021-08-16 19:50 게재일 2021-08-1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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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새벽부터 내리는 빗소리에 잠을 깼다. 열어놓은 창문을 통해 서늘한 냉기와 함께 이슬 같은 물기가 바람을 타고 스며들어 얼핏 눈을 뜬 것이다. 무더운 탓에 여름 내내 거의 거실에서 서쪽과 남쪽의 창문을 열어놓고 자게 되면서 새벽이면 지저귀는 온갖 새소리를 자명종 삼아 깨어나곤 했었는데, 오늘은 빗소리가 대신한 것이다. 후드득 새벽부터 줄기차게 내리는 빗줄기가 더위에 지치고 코로나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씻어주는 듯 아침나절까지 시원하게 내렸다.

그러한 빗줄기가 필자에게는 먼 곳에 있는 친구가 하염없이 쏟아내는 슬픔의 눈물처럼 다가왔음은 왜일까?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는 어느 시구절을 차치하고라도,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가뭄을 적시는 단비가 될 수도 시름을 더하는 홍수가 될 수도 있겠지만, 오늘 새벽부터 처연히 내리는 비는 하늘에서 보내는 친구의 말없는 전갈처럼 전해지니 착잡하기만 하다. 친했던 친구가 세상을 뜬지 꼭 1년만에 은죽(銀竹)으로 보내온 무언의 새벽 안부.

“청순한 가슴 결로/주고받던 정겨움//열리고 트인 마음/스스럼없이 나누며//언제나/의형제 같은 눅진함이 있었지//섬과 육지로 이어진 정의(情誼)에는/고난의 갈퀴도 세파의 회오리도//함부로/끊을 수 없는 철석(鐵石)이 스몄는데//불현듯 드리워진/암울의 빗장에도//담담하고 초연하게/단호히 맞섰건만//사십년/학연의 섶은/구천(九泉)에서 떠도네” -拙시조 ‘별리·Ⅰ’ 전문

울릉도가 고향인 그 친구와 고교 1년 때 옆자리에 앉게 됐다. 성격이나 취향이 비슷한데다 집이 울릉도여서 왠지 모를 청순가련함이 들어선지 금세 친해졌다. 필자와 비슷하게 힐끗 잘 웃으면서 가끔 장난도 즐기고, 학업과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며 서로 격려와 진솔함으로 다독이고 챙겨줬다. 친구 따라 강남 가듯이 육지에 나온 친구와 필자의 고향으로 가서 꼴과 나락을 베고 감을 땄는가 하면, 여름방학 때면 울릉도 태하엘 가서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며 수영과 잠수를 하고 홍합을 따서 열합밥을 함께 해먹기도 했었다. 졸업 후에도 수시로 친구와 연락하고 드나들며 우정을 쌓아 나갔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친구에게 알 수 없는 병마가 스며들어 작년 이맘 때쯤 홀연히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작년 초여름에 태하성하신당과 친구의 고향집을 손수 찾아 ‘명랑 쾌유’를 간절히 빌었건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아직은 산만큼 더 살아도 아까운 나인데, 친구와의 삶의 곡진함을 더 나눠야 하는데, 무엇이 그리 급해 기세(棄世)하듯이 떠나버렸는지 애절하고 비통한 마음 가눌 길 없다.

우리는 매일 떠나는 연습을 하며, 매순간 누군가와 무엇을 떠나보내고 있다. 죽음은 어쩌면 또 다른 세상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생자필멸(生者必滅)이기에 죽음도 삶의 일부로 여기며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준비하여 죽음과 차분하게 마주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누구에게나 오는 죽음이고 죽어서 가는 곳이 어딘지 모르기에, 세상에 처음 태어나는 무념무상(無念無想)의 그 마음으로 죽음을 담담하게 맞이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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