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뉴월 하루 볕이 무섭게 만물이 자란다. 고른 햇살에 때맞춰 비가 내리니 식물과 작물이 무럭무럭 자라고, 군데군데 연하거나 진하던 잎새들이 일제히 녹색으로 성큼성큼 기세를 뻗어가고 있다. 길섶의 풀이나 들꽃들은 저절로 피고 흔들리며 앙증맞게 손짓하는가 하면, 언덕배기에 뻗은 뽕나무 가지에는 검붉은 오디가 저절로 익어서 떨어지고 있다. 어디서 들려오는 뻐꾸기 소리는 한가로움을 노래하는데, 저녁답의 무논 주변에 깔리는 개구리 울음소리는 요란한 듯 정겹기만 하다.
현란한 꽃잔치가 끝나자 청산과 들판에는 초목이나 곡식들이 하루가 다를 정도로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과실이나 곡식이 자라고 익으면서 주변에는 달갑잖은 잡초도 덩달아 가세한다. 망종(芒種)을 전후해서 텃밭이나 옥답에는 농부들의 발길이 잦아든다. 보리를 수확하고 밭갈이나 모내기철의 들일이 많아서 들로 가는 발걸음이 많기도 하겠지만, 연중 낮길이가 가장 긴 하지 무렵에는 곡식이 자라는 것 못지않게 이틀이 멀다 하고 웃자라는 잡초를 뽑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논밭에 해를 끼치는 온갖 잡풀을 제초하고 농작물을 잘 건사해야 풍성한 수확을 기대할 수 있다.
어릴적 농촌에서의 여름철은 ‘잡초와의 싸움’이기도 했었다. 들마다 고랑마다 농작물의 번성에 방해가 되는 잡초를 뽑고 또 베어내도 얼마나 끈질지게 돋아나고 거세게 뻗어가는지, 비가 잦은 6월 장마철엔 몇 차례 김매기를 해도 제초한 흔적이 전혀 나지 않을 정도로 금세 무성해졌다. 심지어 일손이 모자라 한동안 김매기를 놓치기라도 하면, 담배나 고추 작물을 짓누르듯 에워싼 거침없는 잡초더미를 보며 푸념부터 하시던 어머니께선 ‘호랑이가 새끼 쳐도 모를 정도로 우거졌다’는 말씀을 입에 달곤 하셨으니, 잡초의 위력(?)이 얼마나 어마무시할까.
‘향그런 꽃 져버려 온 산 푸른데/가랑비 오는 속에 뻐꾸기 울음 울다/봄날 시름은 풀처럼 자라거늘/어느 때 낫을 얻어 마음의 뜰 베리오(芳花謝了滿山靑/細雨<970F><970F>布穀聽/春日傷悲如草長/何時得<91E4>刈心庭)-강성위 한시집 ‘하늘에 두 바퀴의 달이 있다면(1991년)’중 ‘送春’
잡초는 논밭에 있는 것만이 아니다. 생각과 마음에도 여러가지 잡념 같은 풀들이 얼마든지 생겨나고 자라날 수 있다. 이를테면 부정이나 비리, 과욕이나 무시, 편견이나 오만, 시기나 사악함 등도 어찌 보면 선량하고 진실됨을 갉아먹고 순리와 법도에 구멍을 내며 정의와 평온함에 흠집과 파문을 일으키는 악초악목(惡草惡木)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선현들은 늘 마음을 다스리며 절제와 경계의 낫으로 마음 자락에 웃자라는 잡스러움과 졸렬함의 풀잎을 베어내며 마음공부를 일삼았던 것이리라. 마음은 몸의 주인(心爲身主)이요 몸은 마음을 담는 그릇(身爲心器)이니, 주인이 바르면 그릇은 마땅히 바르게 된다(主正則器堂正)고 했다. 평소에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꾸준한 자기노력과 한결 같은 수양이 따라야 한다. 뽑고 베어내도 속속들이 비집고 드는 잡풀 같은 우환을 멀리하고 사유의 뜰을 넓히며 마음이 흐르는 대로 몸을 저절로 움직이면, 마음결 따라 배이는 지덕과 풍운이 인향만리(人香萬里)로 피어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