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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스마트폰 세태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참으로 편리해진 세상이다. 스마트폰을 이용해 손가락 하나로 세상 만물과 지구 곳곳을 더듬어볼 수 있으니, 과연 문명의 총아답게 스마트폰은 생활의 이기(利器)를 넘어 삶의 필수품이 아닌가 여겨진다. 유선에서 무선전화로, 이동전화에서 스마트폰으로 진화와 발전을 거듭하는 동안 생활양식과 사회문화, 사람들의 세태는 눈부신 변모와 판이한 양상을 띠게 됐다.요즈음의 남녀노소 대부분 하루하루 휴대폰에 사로잡혀(?)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눈 뜨고 활동하다가 눈 감고 자기 전까지 항상 옆에 있거나 갖고 다니는 휴대폰. 언제 어디서나 필요한 정보를 얻고 지인들과 연락을 하고 게임이나 오락을 즐기며 드라마를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쇼핑을 할 수도 있으니, 휴대폰은 현대인의 지극한(?) 애용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인 10명 중 9명이 보유한 휴대폰을 하루에 보는 시간이 평균 3시간 이상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20대는 하루 4시간 이상이나 된다 하니 수면시간을 제외한 하루 활동시간의 1/4을 휴대폰에 얽매여있는 셈이다. 길을 걸어가면서도 문자를 주고 받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식사를 하면서까지 틈만 나면 저마다 각양각색으로 스마트폰을 즐겨 사용하고 있다.스마트폰 사용 인구가 4천만명을 넘어서고 사용 시간도 길어져서 스마트폰 없이는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러다 보니 스마트폰이 단 몇 시간만 곁에 없더라도 60% 이상이 불안을 느낀다고 한다.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스마트폰을 열어보는 것이 습관화되면서 자신도 모르게 스마트폰에 중독되거나 의존하는 정도가 심해졌기 때문이다. 필요하거나 궁금해서, 심심하거나 아무 생각 없이 수시로 휴대폰을 열어보는 횟수가 하루 평균 80여회, 직장인의 경우 150~200회까지 된다 하니, 과연 스마트폰은 시공(時空)의 감초라도 된다는 말인가.‘손 끝의 토닥거림에 별천지가 열리는/문명의 진화는/편리함의 덫이다/갈수록/메말라가는 정(情)/고립을 자처한다//말 수가 줄어들고 생각조차 얕아져/단조롭고 귀찮음/모나게 길들여져/저마다/웅얼거리며/낚는 것은 그 무엇?’ -拙시조 ‘스마트폰 세태’ 전문스마트폰과 인터넷, 첨단 디지털 기기의 등장으로 사회의 비약적인 변혁과 획기적인 기술의 진보가 이뤄졌다. 그러나 세상만사가 그렇듯이 과잉과 편리함의 이면에는 부작용과 폐해가 따르기 마련이다. 컴퓨터나 스마트폰의 과도한 사용으로 눈의 피로도가 증가하고 일상생활 속에서 효율성이 떨어지며 인간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한 자극적이고 충동적이며 대화가 줄어들면서 자신과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느리게 변화하는 현실에 무감각해질 수 있다. 결국 현대인들은 스마트폰이라는 촘촘한 그물망에 갇혀 무미건조한 쳇바퀴질을 일삼으며 고독한 군상이 돼가는지도 모른다.문자 대신 엽서나 손편지를 써보고 스마트폰 대신 책을 드는 시간을 늘려보면 어떨까? 풍경을 바라보며 걷기와 사색을 즐기고, 현재 하는 일에 몰입하기, 대화로 마음 챙기기, 주변 환경 인식하기 등의 활동으로 마음 근육을 키워나갈 때 핸드폰을 사용하고픈 충동은 현저히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2020-01-21

문패, 말과 삶의 결을 새기다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문패가 사라졌다.1970~80년대만 하여도 집집마다 철문이나 나무문의 기둥에 문패가 걸려 있었다. 지방은 어땠는지 잘 모르지만 적어도 서울의 주택가 골목골목에는 집주인의 이름과 주소가 적힌 문패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이웃하여 살았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조선 말기 우편제도가 발달하고 편지의 내왕이 빈번해짐에 따라 문패는 꼭 있어야 할 필수품이 되었고 1897년경에는 집집마다 문패를 달도록 법으로 정하기까지 하였으며 1990년대 이전까지만 하여도 가끔 문패달기를 사회계몽운동으로 벌이기도 하였다고 한다.골목길을 헤매다 지인의 이름이 적힌 문패를 찾아내었을 때, “잘 찾아 오셨네요. 나 여기 있어요.”하며 반기는 듯한 문패는 그 자체로 집주인의 대체물이었고, 찾은 이에겐 적잖은 기쁨이었다. 아주 드물게 두 개의 이름이 나란히 적힌 문패를 발견하였을 때는, 그 집 부부의 애틋한 사랑이나 혈육의 돈독한 정을 엿보는 듯하여 마음 한 켠이 반짝, 환해지기도 하였다.그런데 동네 골목에서 언제부터인가 문패가 하나둘씩 사라졌다. 그 대신 주소만 적힌 작은 양철판이 문기둥을 벗어나 대문 한 귀퉁이에 부착되었다. 그러다가 도시 농어촌을 가릴 것 없이 하늘을 찌르는 듯한 아파트가 솟아올라오면서부터는 주소를 적은 이 작은 판마저 떨어져 나갔고 여러 겹 안전장치로 무장한 아파트 현관문 밖에는 층수와 호수가 덩그마니 적힌 숫자판이 자리를 잡았다.우리는 이제 ‘이 아무개’씨라는 이름이 아닌 ‘190X호 사장님, 60X호 아기엄마’라는 호칭과 지칭으로 살아간다. 앞집, 아래윗집에 누가 사는지 몰라도 된다. 위층에 아이들 뛰노는 소리가 정겹다고? 퉁탕거림을 듣는 게 고역이다. 아랫집에 위대한 피아노 연주가가 산다는데 뿌듯하지 않냐고? 초저녁잠 방해받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 층간 소음, 담배 연기로 다툴 일이 없다면 그걸로 족하다. 문패가 사라지자 이름이 없어지고, 얼굴이 가려지고, 인정이 증발하였다.‘달골말결’이라는 이름을 새겨 이 글자리 문패를 걸었다. 어렵단다. 뭔 말인지 머리에 쏙 들어오지 않는가 보다. 한자로는 ‘월곡언문’(月谷言紋)이 된다. ‘월곡’은 내가 나가는 대학이 있는 동네 이름이다. ‘글월’과 ‘무늬’라는 뜻을 가진 文을 써서 ‘言文’으로 적을까 하다가 무늬 紋을 써서 ‘言紋’이라 하였다. 이를 풀어쓴 게 ‘달골말결’이다. 내가 가르치는 ‘독서, 글쓰기, 말하기’ 등의 교과목은 인문학의 기초이자 세상 모든 학문의 기본이 되는 것들이다. 나는 인문학을 사람의 무늬, 사람의 결을 다루는 학문으로 여긴다. 많은 이들이 인문학을 배고픈 학문, 위기의 학문이라 하지만 사람의 결을 곱게 하고 가다듬는 학문이라는 사실이 배고픔을 잊게 하고, 위기 상황을 견뎌내게 한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 생활의 무늬, 삶의 결을 그려나가고 보여준다. 내 생활의 무늬는 아름다운지, 내 삶의 결은 가지런한지, 내 말과 글을 살펴본다.내 문패를 달고 나니, 결 고운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르고 싶다. 따뜻한 그 얼굴을 보고 싶다. 집집마다 걸려있던 문패가 새삼 그립다.

2020-01-21

중장년의 졸혼관

결혼은 인간이 혼자서 살아갈 수 없음을 자각하고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제도다. 그래서 결혼만큼은 매우 성스러운 행위로 여기는 것이 동서양의 일반적 개념이다. 결혼 당사자도 심리적으로, 경제적으로 남녀가 결합하는데 동의하고 그를 실천하기 위해 공동의 노력을 벌인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될 때까지 행복하게 살라”는 백년해로(百年偕老)가 그것이다.졸혼(卒婚)은 2004년 일본의 한 작가가 “졸혼을 권함”이라는 책에서 처음 사용된 신조어다. 결혼을 졸업하다는 뜻이지만 이혼과는 조금 다르다. 혼인관계를 유지하되 서로의 삶을 간섭하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즐기자는 것이다. 혼인신고만 유지할 뿐 사실상 이혼에 가깝다. 재산과 자녀문제 등을 고려한 결혼 형태라 볼 수 있겠다.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는 37살에 부인과 해혼(解婚)을 했다. 그의 해혼 제안을 받은 부인은 고민 끝에 동의했고 해혼한 간디는 고행의 길로 갔다고 한다. 인도에서 해혼은 그렇게 낯선 문화가 아니다. 결혼의 굴레에서 풀어준다는 뜻으로 사용되며 자유의 몸이 된 사람은 다수가 숲으로 들어가 수행을 한다고 한다. 인도의 종교적 영향이 큰 것으로 본다.우리도 영화배우 백일섭씨의 졸혼 이야기가 TV에 소개되는 등 졸혼과 관련한 유명인의 사생활이 알려져 화제가 됐다. 어느 시인은 TV에 출연, “졸혼도 삶의 한 형태”라고 당당히 말하기도 한다. 대구여성가족재단이 ‘대구 신중년 결혼생활 실태분석’에 따르면 “졸혼을 해도 불편하지 않을 것”이란 물음에 28%가 긍정적 답을 했다. 남성보다는 여성의 긍정 동의가 더 높았다. 시대가 바뀌어 결혼관이 달라질 수도 있겠다 싶다. 하나 이혼, 해혼, 졸혼 등 다양한 삶의 형태가 사회규범마저 무너뜨릴까 두렵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01-21

청소년 유권자가 온다

“선거는 드러나지 않는 국민의 목소리를 분명하게 드러나게 하는 제도다.”데이비드 트루만은 말했다. 선거는 시민들이 정치의 장에서 자신의 의사를 표출하는 통로다. 이제 18세 청소년들이 선거권을 갖게 되었다. 공동체의 시민으로서 인정받는 최소한의 정치참여로서 선거권이 주어졌다. 2005년 만19세로 내려진 선거 연령이 다시 14년만에 만18세로 낮아져 21대 총선에서 53만명의 청소년들이 투표권을 갖게 된 것이다. 전체 유권자의 1.2%에 불과하지만 청소년 유권자들이 2020년 한국정치의 미래를 새롭게 여는 마중물이 되지 않을까?현재 한국사회를 위기에 빠뜨리고 있는 것은 정당정치의 부실이다. 정당이 정치의 중심이 되어야 하건만, 극한적인 여야 대립으로 투쟁 일변도의 거리정치가 일상이 되었다. 뒤베르제는 정치는 투쟁과 통합이 공존하는 야누스의 얼굴과 같다고 하였다.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경쟁하고 대립하는 이면에 구성원들이 안정을 도모하면서 사회 통합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정치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상황은 정당이 국가와 시민사이의 교량 역할을 하기는커녕 소용돌이 정치의 근원이 되고 있다. 상식을 벗어난 정당의 꼼수도 한몫하고 있다.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이 그것이다. 지난 해 말 통과된 2020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시행되기도 전에 선거 결과가 가져올 유불리를 계산하여 비례자유한국당, 비례민주당 등 총선용 정당이 거론되고 보수, 진보세력이 헤쳐모이는 형국이 반복되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유권자의 혼란으로 정치적 의사가 왜곡될 수 있다”고 유사명칭 창당을 불허했지만 들은체 만체다. 계속 거대 정당의 프리미엄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정당의 간판을 바꾸는 일은 문제가 아닌듯하다. 선거 때만 되면 당리당략에 따라 움직이는 정당과 후보자들로 정치판이 북새통이다. 공당으로서의 책임의식은 고사하고 유권자들을 기만하는 행태에 정치에 대한 혐오가 깊어지고 있다.그러나 민주주의는 국민들의 정치참여에 기반한다. 더 이상 정치를 구경거리나 사각지대에 두어서는 곤란하겠다. 유권자로서 ‘제대로’ 된 정당을 선택하는 일은 민주주의를 살리는 일이다. “일정한 기준에 따라 자격을 가진 다수의 시민들의 의지가 투표로 결집되어 그것에 따라 지배되는 정치가 민주주의”라고 했던 제임스 브라이스의 언급처럼, 민주주의를 유지시키는 힘은 유권자의 수준이다.선거권은 정치과정에 참여하는 최초의 입장권이다. 시민권의 획득이라는 점에서 올바른 투표권 행사는 중요하다. 새로운 유권자로 진입한 청소년들이 기존에 무력했던 정치의 장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길 기대한다. 이를 위해서는 민주시민으로 성장하기 위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단순한 선거교육을 넘어서 주체적으로 사회문제를 인식하도록 이끄는 비판적 사고와 토론교육이 요청된다. 민주시민의 탄생을 위한 청소년 유권자교육이 교실 안팎에서 시작되어야 할 때다.

2020-01-20

대전족

대전족은 자녀 교육을 위해 대치동에 전세 얻어 들어온 사람들을 가리킨다.서울 강남구 대치동은 명문 학군과 각종 입시학원이 밀집한 이른바‘학세권’으로 불린다. 어느 도시보다 발달된 사교육 인프라가 집중된 대치동에는 자녀의 대학 입시를 위해 세입자가 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이 넘친다. 예를 들면 서울 은평구의 50평(약 165㎡)대 아파트에서 살던 A씨는 지난해 초 이 집을 7억원짜리 전세로 돌린 뒤 대치동의 23평(전용 78.71㎡) 아파트 전세를 약 10억원에 구했는데, 하나밖에 없는 아들(12)을 대치동의 중학교에 보내기 위해서라고 털어놨다. 집이 좁아 불편하지만 아이가 대학에 들어가기까지 7∼8년 전세살이를 감수할 생각이라고 했다. 이런 사람들을 흔히 ‘대전족’이라 부른다.분당 등 수도권 지역 고교평준화가 시작된 뒤 학부모들이‘강남8학군’으로 몰려들던 2000년대 초반부터 언론 등에 오르내리던 용어지만 20여 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대전족은 대치동 주택시장의 한 주축을 담당하고 있다. 지난 2018년 3월부터 1년 동안 이른바 교육특구로 불리는 서초2219강남2219송파구 등 ‘강남3구’로 전입한 초등학생 수는 4천693명으로 이 기간 서울로 전학 온 전체 학생 1만8천321명의 약 4분의 1에 달한다는 것만 봐도 우리나라 교육열이 빚어낸 증상을 목도할 수 있다.최근에는 대치사거리 등에 즐비한 학원을 이용하기 위해 인근 빌라나 오피스텔 원룸에 사는‘대원(대치동+원룸)족’도 적지 않다. 재수를 선택했거나 방학을 이용해 지방에서 대치동을 찾는 학생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강남부동산 불패의 뿌리는 바로 대전족 또는 대원족을 번성케 하는 교육열에서 찾을 수 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1-20

공인의 대공무사(大公無私)의 정신

강희룡 서예가공(公)이란 글자는 본래 ‘사(私)를 나눈다’는 뜻에서 비롯됐다. 그리고 사를 나눈다는 말은 바로 가난을 같이 한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개인적인 욕심을 버리고 여러 사람과 어려움을 같이하는 것이 바로 공적인 행동이라는 풀이로 해석되며 거둬들인 국민 세금으로 생활하는 모든 공무원을 공인이라 하는 것이다.여씨춘추를 비롯한 중국의 여러 고전에 인사 원칙으로 이런 기록이 실려 있다. ‘공직을 추천하는데 밖으로는 원수를 피하지 않고, 안으로는 친척을 피하지 않는다. 원수를 배제하지 않았고 아들이라고 피하지 않았으니 기황양이야말로 대공무사(大公無私)하다.’대공무사란 이와 같이 사사로운 정에 얽매이지 않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냉철하고 공평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 고사성어의 내용은 이렇다. 춘추시대 진나라 평공이 기황양에게 ‘남양에 현령 자리가 비었는데 누구를 보내는 것이 가장 좋겠는가!’라고 묻자, 기황양은 주저 없이 ‘해호’를 추천했다. 해호는 기황양과 극히 서로 미워하여 원수처럼 여기는 사이였는데 추천하자 평공이 놀라 다시 묻길 ‘해호는 그대와 원수지간이 아닌가? 어찌하여 해호를 추천하는 것인가!’이때 기황양은 ‘왕께서는 현령 자리에 누가 적임자인지를 물으셨지, 누가 신과 원수지간이냐를 물으신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라고 대답했다. 그 후 평공이 다시 조정에 법을 집행할 사람 한 명이 필요하다면 누구를 추천하느냐의 물음에 기황양은 이번에는 자기 아들을 추천하였다. 평공이 자신의 아들을 추천함을 의아해 묻자, 기황양은 일에 적임자냐고 물으셨지 그가 내 아들인지 아닌지는 묻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이 두 사람은 모든 공적인 일을 공명정대하게 처리하여 나라 사람들이 모두 잘된 임명이라고 칭송했다.전국시대 말기의 한비자는 노자의 도론(道論)을 수용하여 법치사상의 세계관은 자연원리의 보편성과 공평무사 객관성을 주장했다. 또한 법치의 궁극적 목적에 대해 백성들의 귀천과 관계없이 평등하고 보편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정치기준을 세우기 위한 것임을 밝혔다. 사람을 기용하는 용인(用人)의 기술은 국가 통치의 중요한 방면이기에 개인적 감정을 공적인 일에 개입시키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사건을 언급하면서 ‘조 전 장관이 지금까지 겪었던 고초만으로도 아주 크게 마음의 빚을 졌다면서 조 전 장관을 둘러싼 갈등을 끝내고 이제 좀 놓아주자’고 호소했다. 범법행위로 수사를 받고 있는 피의자를 사적으로 마음의 빚을 졌다고 풀어달라고 호소하는 대통령으로서의 행위는 참담하며, 불법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을 초법적이라며 국민이 준 권한을 이용하여 수사를 무력화시키고 있다. 국가 공공조직은 투명성·공정성·객관성을 기반으로 전문성과 도덕성을 갖추어야 한다. 이유는 특정 조직체를 넘어 한 사회의 가치 척도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발달한 오늘날 한비자나 우리가 그리는 법치주의 이념이 진정으로 실현된 이상세계는 아직도 달성해야 할 문제로 남아있다. 2300년 전 한비자의 고민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2020-01-20

투명 기차역

마크 트웨인은 쓸모없는 발명품에 투자했다가 돈을 몽땅 날려버린 경험이 있었습니다.그러던 어느 날 낯선 사람이 찾아와서 처음 보는 물건을 보여주며 말했습니다. “내 일생일대의 작품이오. 나는 굳이 당신에게 이 작품에 투자해 커다란 행운을 얻으라고 강요하지는 않겠소. 하지만, 당신이 5달러만 투자할 수 있다면 곧 합당한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거요.”투자에 실패한 경험이 여러 차례 있던 마크 트웨인은 깊이 생각해 보지 않고 거절했습니다. 이 발명품 역시 별로 쓸모가 없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낯선 방문객은 씁쓸한 표정을 짓고 마크 트웨인을 떠났습니다. 그는 세계 최초로 전화기를 발명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었습니다.눈에 보이지 않는 기차역을 상상해 볼 수 있을까요? 이 역에 들어오고 떠나는 기차에 실린 것 또한 보이지 않습니다. 희망, 보람, 기쁨을 맞아들인 사람은 삶에 탄력이 있습니다. 절망, 권태, 슬픔을 맞아들이는 사람도 많은데 이들에게는 주름이 나타납니다. 한 가지 중요한 점은 기쁨은 KTX지만 슬픔은 무궁화 열차라는 사실입니다.기회를 실은 열차는 예고 없이 왔다가 순식간에 떠나갑니다. 실패를 실은 열차는 늘 플랫폼에 머물러 있어 언제든 탈 수 있습니다. 이 투명 역에서는 한 번 탄 기차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내릴 수도 없습니다.이 역에서 기다리는 사람은 모두 행복과 기쁨과 성공을 원하기 때문에 이들을 실은 열차는 방심하고 있는 순간에 슬며시 왔다가 총알처럼 떠나갑니다. 어떤 순간에도 정신을 놓지 않는 사람, 꽃잠이 오는 새벽녘에도 깨어 있는 사람, 작은 이슬방울 하나에도 환희를 보는 사람. 이런 사람만이 투명 역에서 자기가 원하는 열차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이 투명 기차역은 수평선 너머나 지평선 너머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지금 당신 가슴속에 있습니다./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1-20

유아교육,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이수원계명대 교수·유아교육과유아교육이 중요함을 누구나 잘 알고 있다. 다만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유아교육의 중요성만큼이나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서 본 지면에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유아교육은 때론 조기교육이란 단어로 대체되기도 하는데 어리면 어릴수록 교육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특히 영·유아기는 마치 물을 흡수하는 스폰지와 같이 언어를 습득하는 시기이며 습득하는 어휘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시기이다. 하지만 이를 잘못 이해하여 어린 시기부터 한글 철자를 익히거나 외국어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앞서 이야기한 대로 영·유아기에는 특정 정보에 민감한 성향이 있어서 이 시기를 민감기라고 부른다. 태어나서 두 돌이 지나기 전에 모국어의 기초적인 문법을 깨우치며 식사나 놀이와 같은 일상경험 관련된 어휘를 배우기 시작한다. 물론 아저씨를 아빠라고 부르거나 ‘가’와 ‘이’와 같은 조사 사용에서 오류를 범하기도 하는데 이는 어휘와 문법을 과일반화해 생긴 오류이다. 보다 더 많은 언어 경험이 쌓이면 이 오류는 자연스럽게 해결되므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 스폰지와 같은 영·유아의 특성과 민감기는 유아교육의 중요성을 논의할 때 근거가 된다. 유아교육의 중요성과는 별개로 어떻게 유아교육을 해야 할 것인지는 늘 고민해야 하는 문제이다.최근 뇌 발달 연구 결과를 토대로 어떻게 유아교육을 할 것인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신체 운동이 뇌 구조 발달과 관련이 있으며, 많이 뛰고 신체 활동이 활발한 아이의 뇌와 신체 움직임이 적어 과체중이나 비만인 아이의 뇌는 다르다는 것이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신체 움직임이 뇌 발달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또한, 뇌 발달 연구에 의하면 방임이나 학대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은 3세 유아의 뇌 용적은 일반 동년배 유아의 뇌 용적보다 작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연구 결과를 토대로, 학업으로 인한 좌절이나 스트레스 역시 유아를 위축시켜 뇌 발달에도 영향 미치는 것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고 정서적으로도 건강한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함을 역시 유추해 볼 수 있다.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사설 외국어 교육기관은, 놀이를 통해 외국어를 가르친다고 홍보한다.하지만 필자가 생각하는 문제점은 아이들이 일상생활 언어와 사설 기관에서 배우는 학습 언어가 다르므로 외국어 동화를 듣고 외국어로 동요를 부른다고 해서 아이들이 그것을 놀이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놀이를 가장한 학습은 유아 입장에서 어른의 지시에 의해 해야 하는 일이고 따분하여 지속할 수 없어서 결국 좌절하게 되는 일이다. 놀이를 가장한 학습에서 아이들의 신체 움직임이 억압되고 스트레스가 유발될 가능성이 높다.누구를 위한 유아교육인가?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우리 어른들의 불안을 해소하거나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인가를 생각해보자.

2020-01-20

포효하는 사자처럼… 구미 문수사(文殊寺)

겨울은 문수사를 비켜가고 있었다. 햇살이 죄다 문수사에 몰려와 반짝이고 절은 무언가 밝은 기운으로 가득하다. 적막감이 감도는 여느 사찰과는 다르다. 젊은 연인이나 아이를 데리고 나들이 오듯 드나드는 가족의 모습도 이채롭다.문수사의 전신인 납석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되어 조선 고종 2년에 폐사되었다. 산 너머 의성으로 가는 열재에 산적과 도둑이 들끓어 그로 인해 폐사되었을 거라 추측한다. 그 후 혜봉 선사가 초가삼간을 짓고 수행하다 꿈에 문수보살을 본 후 그 때부터 절 이름을 문수사로 하였다.절은 크지 않지만 생동감이 넘쳐흐른다.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면 극락보전이 나타나고 오층석탑을 중심으로 문수사의 사계가 담긴 사진들이 볼거리를 제공한다. 특별한 행사가 열린 줄 알았는데 늘 손님이 많다고 어느 처사님이 귀띔해 주신다. 천년고찰도 아니고 절의 풍광이 유달리 빼어난 것도 아니기에 그 속살이 궁금하다.주지 스님 뵙기를 청했다. 불자와 차담을 나누시다 흔쾌히 시간을 내 주는 주지 월담(月潭) 스님, 첫인상이 참 좋다. 과하지 않은 미소도 아름답다. 꾸밈없고 편안한 웃음과 농담을 곁들인 화술에는 오랜 수행이나 숙련된 노력이 따랐으리라. 스님은 스승 혜향 스님에 대한 존경심부터 풀어내신다.가난하던 시절, 불자들의 시주에 의존하지 않고 손수 농사를 짓고 양봉법을 배워 동네 분들에게 전수해 주며 평생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의 신념을 지키며 절을 키우셨다고 한다. 유일한 제자인 월담 스님은 전혀 다른 길을 걷는다. 20여 년 선방을 찾아다니며 수행에만 전념하다 혜향 스님이 입적하자 어쩔 수 없이 문수사 주지를 맡게 된 것이다.“주지가 되면서 종교를 논하지 않고 누구나 쉬어갈 수 있는 도량을 만들고 싶었어요. 틀을 깨지 않으면 소통이 되질 않고 절도 살아남지 못해요. 절이나 집, 회사도 주인이 어떤 마음을 가지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깨어 있지 않으면 안 돼요.”문수사에 대한 열정과 애정이 남다르다. 편안한 가운데 눈빛은 빛나고 말씀은 흐트러짐이 없다. 할 일 많은 스님이 참 행복해 보인다. 직관적으로 기운이 맑고 성실한 분이란 게 느껴진다. 추임새를 넣듯 울어대는 풍경소리마저 경쾌하다.한때는 고색창연한 사찰의 적막한 고독을 좋아했었다. 고찰만이 풍기는 고즈넉함에 젖어들다 보면 찌든 마음이 씻겨 내려가고 심란함도 잠든다. 그 하나만의 이유로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절집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산사에 대한 애정이 깊어갈수록 그토록 좋아하던 고즈넉함은 대책없는 쓸쓸함으로 다가왔다. 불심이 떠나버린 법당의 썰렁함이나 처량한 풍경소리에 나는 때때로 슬퍼졌다.무작정 변화에 편승하는 사찰을 보면 더 심란하다. 산사 음악회나 비슷비슷한 행사에 치우치는 사찰은 오히려 정체성을 잃고 본질만 훼손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문수사의 변화가 성공적인 것은 주지 스님의 흔들림 없는 목적의식과 성실함 때문이다. 시주를 떠나 진심으로 베푸는 마음에서 존경심과 신뢰감이 묻어난다.“중은 하루에 세 번 자기 머리를 만져 보아야 한다는 말이 있어요. 결코 중의 신분을 잊지 마라는 뜻이지요. 그렇지 않으면 자꾸 게을러져서 편한 것만 찾게 되거든요. 스님도 사람이니까요.”산중 생활은 속세보다 더 나태해지기 쉽다. 어디에서든 스스로 깨어 있지 않으면 자기와의 싸움에서 지고 마는 법이다. 두어 시간은 걸어야 도착한다는 스님의 농담 한 자락을 걸치고 사자암으로 향한다. 적당한 크기의 소나무들이 자라는 솔숲 사이로 ‘솔바람길’이 친절하다. 바람은 장난치듯 소나무 사이를 빠져나가 저 아래 들판으로 달려가다 문수사를 되돌아본다. 나도 잠시 나무 벤치에 앉아 바람소리를 듣는다. 아주 작은 것들이 나를 즐겁게 해준다.드디어 커다란 암석에 기댄 반쪽자리 전각, 사후전(獅吼殿)이 보인다. 사자의 형상을 한 사자암을 중심으로 지장전과 산신각, 야외 테라스, 어디에서도 멋진 경관은 함께 한다. 사자의 울음 따위는 궁금하지 않다.조낭희 수필가셀프찻집에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빈자리가 없다. 와불 형상의 큰 암석 앞에서 책을 보는 아이들, 준비된 다과를 나누며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이곳에는 묵언을 강요하는 엄숙한 부처님은 없다. 그저 편안하고 친근한 부처님이 함께 할 뿐이다. 테이블마다 정갈한 다기들과 푸짐한 다과가 손님을 맞고, 찻값은 성의껏 지불하면 된다. 통유리창 너머로 기웃대는 햇살도 오늘은 귀중한 손님이다. 차이와 경계가 없는 곳.내 안에 차향보다 더 깊고 진한 향기가 돈다. 사후전 석가모니 부처님도 유난히 행복해 보인다. 부처님이나 예수님의 말씀보다 책임을 다하는 성직자를 만나면 감동이 배가 된다. 나는 사후전 난간에 서서 빈 몸으로도 하염없이 반짝이는 겨울 들녘을 바라보았다.“늘 깨어 있어라.”그제서야 포효하는 사자 울음이 들린다. 아주 지척에서.

2020-01-20

서양미술사 한 눈에 들여다보기

미술이 순수하게 창작자의 미학적 관념을 담고 있다는 생각은 아주 현대적인 발상이다. 미술가의 자율성이라는 것도 역시나 마찬가지이다. ‘중세’의 천년을 두고 보자면 미술의 역할은 보이지 않는 신의 세계를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형태와 색을 통해 드러내 주는 것이었다. ‘르네상스 시대’가 도래하고 미술의 기능도 달라진다. 이제 미술은 믿고 있는 것을 그리기보다 보고 경험한 것을 묘사하기 시작한다. ‘바로크 시대’의 미술은 권력과 권위를 찬양하는 수단으로 적극 이용되었다. 바로크의 색채가 그토록 화려하고, 바로크의 형태가 그토록 왜곡되어 현란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바로크 시대에 접어들어 정부가 통제하는 미술학교가 생겨났다. 루이 14세의 명에 의해 왕립미술원(1648)이 설립되었다. 프랑스 왕립미술원은 국가의 통제 하에 국가를 위한 예술가를 길러내기 위한 최초의 제도적 교육기관이었다. 프랑스를 모범으로 스페인에 왕립미술원(1744)이 세워졌고, 얼마 후 영국 역시 왕립미술원(1768)을 설립해 미술가들을 길러냈다.미술이 권력의 통제를 받으면서 자율성 보다는 통제하는 주체의 목적에 적합한 이론적 장치들이 규정과 규칙이 되어 이른바 미술의 ‘모범’이 생겨났다. 주어진 규범과 틀을 벗어나서는 미술가로서 성공할 가능성이 지극히 낮았다. 아이러니 한 것은 가장 경직된 틀로 미술가들의 상상력을 제한했던 시대가 ‘신고전주의’였다는 것이다. 신고전주의는 혁명기 프랑스를 중심으로 전 유럽에 유행했던 양식이다. 절대왕정, 귀족문화, 계급주의를 대변하는 바로크와 로코코 시대를 지나 시민사회로의 대변혁이 일어났음에도 신고전주의가 만개한 것은 아주 기이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신고전주의 미술은 영웅들의 위대한 이야기를 거대한 화면에 서사적으로 담아낸다. 작품의 주제가 충분히 드러나도록 웅장해야 하지만, 표현에 있어서 절제와 논리성이 흐트러져서는 안 된다. 신고전주의 영웅들은 아무리 고통스럽고 슬픈 일을 당하더라도 개인의 감정을 직접 드러내지 않는다. J.J.빙켈만이 고대 ‘라오콘 군상’에서 발견했듯 ‘고귀한 단순함’과 ‘고요한 위대함’을 지니도록 신고전주의의 영웅들은 그려야 했다.인간의 감정을 발견한 시대는 ‘낭만주의’이다. 낭만주의 시대에 접어들자 개인의 개성을 드러내며 자유분방한 미적 세계를 탐구한 미술가들이 등장했다. 대체로 역사가 그렇듯 미술의 역사 또한 권력의 자기 증언과 큰 맥을 함께 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현대미술에 가까워질수록 미술사의 변혁은 주류가 아니라 비주류, 중심이 아니라 변방에서 이루어진다. 고전주의자들이 안정적이고 균형 잡힌 구도와 색채를 사용했다면 급진적 낭만주의자들은 자유롭고 속도감 있게 붓을 움직였다. 작품의 주제도 그렇다. 잘 알려진 신화보다는 잊힌 북방의 신화들을 다시 불러내거나 신비로운 오리엔트의 이국적 여인들을 작품에 담아낸다. 또 어떤 낭만주의 미술가들은 숭고한 자연 앞에서 보잘 것 없는 인간의 내면을 성찰하게 한다.낭만주의가 발견한 인간의 감정은 미술이 그 자체만으로 미적 탐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자각을 불러 일으켰다. 이것이 본다는 것과 그린다는 것에 대한 다양한 미학적 실험으로 이어지면서 현대미술의 문을 열어 주었다. 이제 그 누구도 미술에게 권력에 충성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이제 그 누구도 미술은 이래야 하는 것이라며 절대적 가치와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다. 그렇다면 지금 미술은 과연 어디쯤 와 있는 것일까?/김석모 포항시립미술관 학예실장

2020-01-20

중진국 함정

중진국에 들어 선 국가가 선진국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저소득 국가로 퇴보하는 현상을 ‘중진국 함정’이라 한다. 세계은행이 2006년 아시아경제 발전보고서를 작성하면서 처음 제기한 용어다. 아르헨티나, 칠레 등 포퓰리즘에 심취한 중남미 나라가 대표적 사례다. 중진국 함정의 원인으로는 짧은 기간 안에 경제성장을 주도한 압축성장 국가의 경제관료의 생각이 경직된 데 가장 큰 원인이 있다고 한다. 고비용 저효율의 경제구조로 바뀌면서 시장 경제 도입을 소홀히한 것도 원인이라 한다.14억 인구의 중국이 지난해 1인당 GDP가 1만 달러를 넘었다. 등샤오핑의 선부론을 필두로 1978년 중국이 개혁개방을 시작한지 40년만이다. 당시 중국의 1인당 GDP는 381 달러,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가난한 나라였다. 중국의 GDP 1만 달러 돌파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뜻하는 중국몽(中國夢)을 외쳤던 시진핑 주석에게는 지지기반을 다지는데 큰 도움이 되는 결과다. 실제로 중국의 GDP 규모는 미국에 이어 세계 두 번째다. 지금의 환율로 계산하면 3위인 일본보다 2.8배나 높다.하지만 중국 내에서는 평균이 주는 착시에 빠져 환호하지 말고 심각한 빈부격차 해소와 국민 실질구매력 확대에 정진하라는 비판적 목소리도 있다. 1인당 GDP 1만 달러 돌파로 중국 내 심각한 빈부격차가 시 주석에게 새로운 부담이 될지도 모른다는 분석이 나온 것이다. 세계은행은 1인당 GDP 1만2천375 달러 이상인 국가를 고소득국가로 분류한다.중국이 GDP 1만 달러 돌파 후 고소득국가로 진입할 것인지는 또다른 관심사다. 일부학자는 사회주의 체제가 있는 한 선진국 진입은 어렵다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지켜볼 일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1-19

‘참붕어’ 죽이기

안재휘 논설위원4·15총선을 저만큼 앞두고 여야 정치권이 본격적인 레이스에 돌입했다. ‘1호 공약’이네, ‘인재영입’이네 하고 터져 나오는 뉴스가 선거철에 다다랐음을 한결 실감 나게 하고 있다. 총선 시장은 조만간, 나라 곳간 사정은 염두에 두지 않은 온갖 선심 공약들로 폭포를 이룰 것이다. ‘진보’의 기치를 걸고 있는 여당이 먼저 치고 나갈 것이고, ‘보수’ 야당 또한 울며 겨자 먹기로 따라 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 될 공산이 크다.안철수가 돌아왔다. 정계 복귀를 선언한 그는 앞서 지난 6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미지 조작에만 능하고 민생 문제 해결보다는 국민 세금으로 자기편 먹여 살리기에만 관심이 있다”는 말로 현 집권세력을 비판하는 촌철살인의 어법을 구사한 바 있다. 정치권 포퓰리즘의 시발점은 대중은 대의(大義)보다는 소리(小利)를 좇는다는 확신이다. ‘소금 먹은 놈이 물 켠다’는 속설은 그들의 굳건한 신앙이다.이미 이 나라의 청년들은 그냥 청년이라는 사실만 같고도 정부로부터 공돈을 받는다. 말하자면, 지지세력이 될 확률이 높은 유권자에게 ‘복지’ 내지는 ‘수당’이라는 나랏돈 봉투를 만들어 퍼주고, 국민은 그 보은으로 부지불식 간에 해당 정치세력에게 권력을 몰아주는 악순환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 메커니즘에서 나라의 미래, 후세들이 짊어져야 할 과도한 조세 부담 따위는 고려요소가 되지 못한다.더불어민주당은 교통사고로 장애를 갖게 된 사회복지 전문가·전직 소방관·출산과 육아로 경력이 단절된 스타트업 기업대표 등을 차례로 영입했다. 자유한국당은 목발 짚고 탈북했거나 체육계에서 미투 선언을 했던 인사들을 영입 인재로 발표했다. 선거 때마다 나타나는 단골 패션쇼인 만큼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기자들 앞에서 당 대표와 사진 찍어가며 온갖 찬사를 늘어놓는다. 그리고는 끝이다. 1회용 광고모델 콘테스트보다도 못한 쇼 정치다.공천 시즌이 지나면서 몇몇은 ‘전략공천’이라는 이름으로 지역구 선거에 나가거나 전국구 순번을 타게 될 것이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렇게 정치권으로 시끌벅적 영입된 인재들이 이 나라 정치발전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는 감동적인 증거는 없다. 십중팔구 유권자들의 표심을 현혹하는 데 써먹는 선전용 포장지로 효용을 다하는 존재들이다.정당들은 그런 ’영입 쇼’ 행위를 ‘물갈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그건 ‘물갈이’가 아니다. 진정 ‘물갈이’를 할 의지가 있다면, 참신한 인재들 데려다가 분 발라 앉히고는 그 지명도와 명성만 발라먹은 뒤 거수기 놀음이나 시키는 행위는 중단돼야 한다. 차고 넘치는 국가적 난제를 해결할 의제(議題)와 대안을 공모하는 방식으로 정책을 중무장해 도대체 뭘 하려고 하는지, 어떻게 할 수 있는지 비전을 밝히는 일부터 먼저 하는 게 맞다. 그래서 유권자들이 추잡한 가짜정치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이끌어주는 게 백번 옳다. 비극적 ‘참붕어’ 죽이기 레이스가 안타깝다.

2020-01-19

달빛열차엔 제동장치도 없다

김형렬 전 대구 수성구청장대한민국의 운명을 실은 달빛열차가 철로가 끊긴 줄도 모르고 미친 듯이 달린다. 주저하지도 않는다. 적폐청산, 개혁의 미명아래 자갈을 물리고 혼을 뺀 언론, 검찰, 경찰, 사법부, 입법권력과 전교조, 민노총 등 홍위병들과 문빠들을 1등석에 태우고 2등석엔 달빛열차를 믿고 탄 국민들을 태우고 달리고 있는 것이다.열차의 고장난 제동장치를 고치려던 사람들을 강제 하차시키고 마냥 앞으로만 달린다. 열차를 움직이는 자들은 거침없이 달릴 수 있다고 좋아하지만 진작 그들은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한 채 탈선할 것이라는 앞날을 못보고 있다.처음 달빛열차를 믿고 탄 소상공인, 자영업자와 종업원들은 이제 열차에서 뛰어내리고 있다. 수많은 저소득근로자들은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부푼 꿈을 안고 달빛열차를 탔으나 최저임금 인상으로 고용주들이 경영악화를 이유로 노동시간을 줄여 오히려 소득이 감소하였으며, 자영업자들은 소비가 늘어 소득도 늘 것이라는 장담과는 달리 오히려 저소득층으로 전락했다. 폐업도 속출한다.열차를 타려했던 중산층들은 안전한 다른 나라 열차표로 바꾸려 한다고 한다.아무리 지켜봐도 기관사나 열차운행자들이 정상인 정신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눈치채기 시작했고, 열차 푯값이 날이 갈수록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치솟기 때문이다. 달빛열차가 미친 열차인지 아는 사람들은 차라리 걷는 게 낫다고 열차에 타려 하지 않는다.공정역, 평등역, 정의역, 소득주도성장역 등 애초 내건 달빛열차의 정착지엔 서지도 못하고 승객들은 난폭 주행 열차에 실려 있다. 내려야 할 역에서 내리지 못한 승객들은 달리는 열차에서 뛰어 내려 아까운 목숨을 잃거나 부상자가 속출한다.그런데도 달빛열차의 기관사는 신년기자회견에서 달빛열차는 잘 달린다고 뿌~하고 기적소리까지 내고 있다. 2여년 전 달빛열차 운전대를 잡은 기관사는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 5천2백만 승객 앞에서 호언장담했다. 그러나 기회는 불평등했고 과정은 불공정했으며 결과는 정의롭지 못하다는 게 세상만사에 알려졌다. ‘가족사기단 영화인 기생충’을 연상시키는데 일등공신이 된 조국 부기관사의 민낯이 드러나자 그는 ‘조로남불’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키기도 하는 뻔뻔함을 보여줬다. 달빛열차가 중대한 문제를 안고 미친 듯 달리는 데도 기관사는 부기관사의 공로가 컸다고 떠들고 있다.그 다음 임명받은 안전담당 부기관사는 부임하자마자 차량을 손볼 철도원들을 쳐 내는데 첫걸음을 내디뎠다. 열차 점검원들은 낡고 망가진 부품을 제때 교체해야 열차사고가 일어나지 않고 정상 운행할 수 있다고 진언하나, 묵살하거나 아예 망가진 부품을 볼 수 없도록 손발을 묶어버렸다. 몇몇 용기 있는 철도원의 부당함을 호소하는 목소리는 허공에 맴돌기만 한다.안전을 책임져야할 철도원들까지 하나 둘 열차에서 뛰어내리고 있다. 볼트가 빠져도, 녹이 슬어도, 객차 연결고리가 풀어져도 관심이 없다. 열차를 세우기 위해 바리케이드라도 쳐야 할까? 열차충돌시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장치라도 있어야 하는데 불행히도 그럴만한 장비도, 장치도 없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달리는 열차를 보며 열차가 가고 있는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국민의 고함소리에 기관사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마이동풍(馬耳東風) 그 자체이다. 국민들을 개, 돼지로 보는지 짖어라 열차는 간다는 식이다. 이대로라면 탈선, 전복은 불보는 듯 훤하다.달빛열차가 탈선, 전복되지 않으려면 열차를 세워야 한다. 힘으로라도 열차를 세워야 하는데 무슨 힘으로 어떻게 세울 수 있을까?과연 방법은 없을까? 있다. 그것은 바로 달빛열차를 움직이는 동력을 차단하고 새로운 연료로 동력을 교체하는 것이다. 달빛열차는 이제 4+1이라는 살아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유해한 합성연료로 달린다. 4+1이라는 검증 안 된 합성연료를 태워 달리다보니 온갖 유해물질들이 쏟아져 나온다. 제동장치 등 주요 부분에 대한 철저한 사전검사와 보수가 이루어지고 승객들을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모실 수 있으려면 열차가 탈선, 전복되기 전 반드시 세워야하고 그럴려면 달빛열차의 동력원을 4+1이라는 유해한 합성원료 대신 친국민연료로 바꾸어야 한다.미친 듯 달리는 달빛열차의 동력 전원을 끊자! 바로 4월 15일, 제20대 총선이 그 동력을 끊는 날이다.

2020-01-19

정중동(靜中動) TK 민심… 갈 길이 바쁘다

우정구 논설위원19일 정종섭 의원(대구 동구갑)이 불출마를 선언함으로써 TK 현역의원에서도 불출마 선언자가 최초로 나왔다. 그동안 TK 현역의원들은 보수 세력의 거듭된 불출마 선언 요구에도 그냥 묵묵부답으로 일관해 왔다. 그러나 정 의원의 불출마 선언으로 당장 면피는 한 셈이 됐다.그러면 그동안 왜 그들은 버텼을까. 그 이유를 두 가지 측면에서 짐작해 볼 수 있다.첫째는 대구경북에서 공천만 받으면 당선이 확실시되는 분위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실정과 지역에 대한 푸대접이 가져 온 지역 정치인의 반사이익 부분이다. TK 정치권은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안다. 또 하나는 핑계로 보일 수도 있으나 자신의 지역구를 이을 예비후보가 모두 약체라는 판단이다. 경선을 붙어도 질 이유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당장 유권자의 눈총은 받지만 조금만 버티면 공천을 거머지고 당선도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나보다 모두 못하다는 일종의 오만한 생각일 수도 있다.공교롭게도 대구 출마가 예상됐던 홍준표 전 대표와 김병준 전 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과 같은 거물급 인사의 등장이 대구에는 없었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호재였던 셈이다. 이와 연관지어 지역에 출마한 예비후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참신성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대개 전직 국회의원 출신이거나 행정관료 출신 혹은 지방의원 출신이며 그 중에 고령자의 얼굴도 간간이 눈에 띈다.어쨌거나 TK 현역의원에 대한 보수 세력의 불출마 요구는 당선 가능성이나 예비후보와의 경쟁관계를 두고 하는 말은 아니다. 한국당의 쇄신책의 일환으로 국민의 지지도를 회복하는 해법의 하나로 요구한 것이다. 이미 한국당에서 용퇴를 결정한 다수 의원들은 당의 쇄신에 도움을 주기 위한 용단이라 말하고 있다.한국당이 죽느냐 사느냐를 심판받는 막중한 선택지의 하나인 것이다. 특히 TK 정치권에 요구하는 용퇴론은 20대 총선에서 잘못된 공천을 받은 수혜자로서 불출마를 통해 당의 쇄신에 기여하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김병준 전 한국당 비대위원장은 지난주 대구의 한 포럼 행사에 참석, “서울과 부산, 경남에서 다 그만두겠다는 사람이 있는데 잘못된 공천의 수혜자가 많은 대구경북에서 왜 한 명도 나오지 않고 있느냐”며 “이 분들이 정리되지 않는 한 문재인 정부의 폭정을 막을 수가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또 대구경북민의 자존심을 구기게 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같은 날 이언주 의원도 “한국당 등 기성 보수 세력이 성찰과 반성을 할 줄 모르는 것이 문제”라고 TK 의원에 대한 비판에 가세했다.범보수 세력은 한국당의 변신은 물과 물고기, 물통까지 다 바꿔야 산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대구경북 현역의원의 분위기는 “나는 아니다”는 생각인듯한 모습이다. 다만 향후 공천 작업이 개시되면 불출마 선언자가 뒤늦게라도 나올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버티다 당이 정한 쇄신기준에 의해 공천에 탈락하게 되면 모양새는 구겨질 것이 뻔하다. 현재 한국당은 물갈이 폭을 50%로 보고 있다. 이 기준대로라면 대구는 5명, 경북은 6명의 현역의원이 공천에서 탈락하게 된다. 경우에 따라 당이 대구경북에다 쇄신에 무게를 더 두게 되면 더 많은 물갈이가 가능할 수도 있다.대구경북 현역의원들이 버티는 모양새의 배경에는 ‘공천=당선’이라는 등식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앞서 설명했다. 이 말을 잘 새겨들으면 대구와 경북의 민심이 전례 없이 한국당에 많이 쏠려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설적이지만 문 대통령의 거듭된 실정은 대구경북의 민심을 더 똘똘 뭉치게 한 원인이 됐다는 분석도 가능하다.그렇다고 대구경북의 민심이 무턱대고 한국당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와는 다르다. 문 정권 집권 후 진보세력이 보인 일방적이고 독주적인 통치스타일을 통해 많은 학습을 한 후 나타난 변화다. 대표적인 것이 한국당은 지지한다. 하지만 사람은 바꾸라는 요구다. 한국당이 얼마나 지역 민심을 만족시킬지는 알 수 없으나 앞으로 대응하는 과정은 지켜볼만 한 일이다.정치는 생물이라는 말처럼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대구경북의 민심은 지금 한국당에 일방적이다. 문 정부의 견제를 위해 과거보다 더 결집력이 좋아질 수도 있다. 지역의 한 인사는 TK 민심에 대해 “어떤 측면에서 더 뭉친 측면도 있다. 한국당이 이에 부응하지 않는다면 그 힘이 새 방향을 모색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새 방향이 민주당은 아니라 본다고 했다.TK의 민심은 지금은 정중동(靜中動)의 분위기다. 보수통합의 결과에 따라 본격적인 움직임도 예측해 볼 수 있다. 과거보다 결집된 TK 민심이 어떻게 표심에 작용할지 판단하는 것은 아직은 성급하다.선거는 민주주의의 핵심 개념의 하나다. 유권자가 정치 과정에 자신의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정치 참여수단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짧은 민주화 과정을 거쳤지만 학습 효과는 늘 높았다. 유권자가 더 똑똑해졌다. TK 표심도 그 범주를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2020-01-19

보수와 진보의 진영 편견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이념 갈등이 우리처럼 심각한 나라는 드문 것 같다. 보수와 진보의 진영논리는 서로 상대를 적으로 간주한다. 촛불과 태극기 집회 이후 그 갈등은 더욱 증폭되었다. 대의 민주주의의 불신에서 비롯된 광장 민주주의가 초래한 비극일지 모른다. 보수와 진보 진영은 서로를 부정하고 거부하고 심지어 저주까지 한다. 자기편은 항상 선이고 상대는 악이다. 자신은 정의이고 상대는 불의이다. 이러한 풍토에서는 국정에 대한 올바른 비판도 경쟁도 있을 수 없다. 네 편 내편이라는 감정의 골만 깊어져 정치판이 어지러워진다.보수진영의 일반적 편견부터 살펴보자. 보수진영은 항상 자신들만이 진정한 ‘애국자’라고 생각한다. 분단 상황에서 철저한 반공만이 나라를 지킬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보수 우익만이 자유 민주주의적 가치를 지킬 수 있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현대 정치사에서 부패한 보수 권력이 몰락한 모습을 수없이 보았다. 이승만 보수 정권의 부정 선거, 박정희 정권의 유신 독재는 정권의 종말로 끝나 버렸다. 개혁하지 못한 보수는 결국 부패로 망한다는 교훈이다.진보진영의 편견도 이에 못지않다. 진보진영에서는 보수를 개혁을 거부하는 방해 세력으로만 간주한다. 보수는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세력이며 역사를 후퇴시키는 부패세력으로 치부한다. 진보 진영은 보수를 ‘수구반동’ ‘수구 꼴통’으로 매도하기도 한다. 이 역시 보수의 참 가치를 모르는 편견이다. 진보는 자신들만이 자주성이 강하고 보수는 외세 의존적이라는 독단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사는 급진적 개혁이 떼르미도르의 반동으로 몰락했음을 보여주었다. 지구상에는 개혁과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좌익독재가 무수히 인권을 탄압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한국사회의 보수와 진보의 편견은 어디에서 유래할까. 무엇보다도 한국 정치의 보수와 진보라는 고질적 적대관계가 이를 증폭시켰다. 우리 정치의 여야의 부정적인 네거티브 게임은 편견을 증폭시켰다. 선거의 승자는 정의가 되고 패자는 모든 것을 상실한 결과이다. 이 모순된 정치가 시민사회를 양분시켜 버렸다. 이런 진영싸움에서 중도 온건층은 설 자리를 잃어 버렸다. 이러한 보수와 진보 진영의 편견에는 이 나라 언론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정치를 비판하고 견제해야할 언론마저 진영논리에 편입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의 적대적 구도가 시민 사회를 분열시키고 언론이 이를 확대 재생산하는 구도가 되어 버렸다.이러한 보수와 진영 간의 편향적 시각은 무척 극복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를 방치하고 국민 화합이나 통합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정당간의 정권 교체도 두 번이나 경험하였지만 정치 문화는 여전히 후진적이다. 우리의 보수와 진보는 하루 빨리 진영논리를 극복하여야 한다. 보수와 진보 정당은 체질부터 개혁하여야 한다. 개방사회의 모든 정당은 이념보다는 실용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극단적 보수와 진보의 논리는 결국 정치적 허무주의로 연결된다.이 나라 정당은 언제쯤 보수와 진보라는 이데올로기적 허위에서 탈피할 수 있을까.

2020-01-19

시간을 훔쳤습니다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에서 자작시를 낭송했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미국인들 사이에 ‘국민시인’이라고 불릴 정도로 인기가 대단했습니다. 한번은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강연을 해달라는 요청을 해왔습니다. 프로스트가 그 청을 수락하고 연단에 서자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시간을 어떻게 활용해서 시인이 되셨습니까?”그 자리에 모인 사람 중 대부분은 글을 쓸 시간이 없어서 시인이나 작가가 되지 못했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프로스트는 질문을 던진 사람들을 찬찬히 둘러보았습니다. 수백 명의 사람이 강의실을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비밀을 지켜줄 수 있습니까? 그러면 저만의 방법을 알려 드리지요.”사람들은 무조건 비밀을 지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프로스트는 정말 큰 비밀이라도 고백하듯 소곤소곤 말했습니다. “나는 도둑놈처럼 시간을 좀 훔쳤습니다. 식사 시간도 훔쳐 오고, 잠자는 시간도 좀 훔쳐 오고, 사람들과 잡담하는 시간도 훔쳤습니다. 그리고 훔쳐 온 시간을 용감하게 휘어잡고 시를 썼습니다.”사람들이 할 말을 잊고 무어라 대꾸를 못하자 프로스트는 다시 말을 이었습니다. “늘 바쁘다고 생각하지만 필요한 시간이란 언제라도 만들어 낼 수 있는 겁니다.”1860년, 안톤 루빈슈타인이 지도하는 제1기 음악교실에 행색은 초라하나 눈빛이 살아 있는 20대 청년이 들어왔습니다. 광산에서 일하는 가난한 광부의 차남인 이 청년은 누구보다 시간을 아까워하며 음악공부에 전념했습니다. 그는 무의미하게 허비하는 시간을 가장 싫어했던 인물로 종종 나태해지려는 자신을 채찍질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서두르자. 시간이 없다. 내 영혼에 있는 이 아름다운 선율을 그대로 놔둔 채 죽을 수는 결코 없다.” 이 청년의 이름은 표도르 차이코프스키, 러시아의 보배입니다./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1-19

모두 행복한 것 같아, 나만 빼고

김현욱 시인영화 비트는 1997년 5월 3일에 개봉했다. 당시 나는 대학교 2학년이었고, 대구 동성로의 한 극장에서 영화 비트를 봤다. 1997년은 정초부터 국내 굴지의 기업들이 부도, 도산하며 한국 외환 위기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해였다. 12월 3일, 한국은 결국 국제통화기금(IMF)의 혹독한 관리에 놓이게 된다. 경제 관료와 재벌, 정치인, 언론, 기득권층의 도덕적 해이와 위선으로 수많은 서민이 영문도 모른 채 해고와 실업으로 뼈를 깎는 고통을 겪었다. 그러니까, 1997년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무가 큰 도끼에 찍혀 휘청거리던 해였다. 크고 작은 벌레들은 배를 불렸지만, 가냘픈 나무초리와 이파리들만 우수수 나락으로 떨어진 것이다.하지만, 한국 영화계는 1997년을 기점으로 명작들을 쏟아낸다. 비트, 초록물고기, 접속, 8월의 크리스마스, 쉬리,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박하사탕, 공동경비구역 JSA, 동감, 파이란, 번지점프를 하다, 봄날은 간다, 친구 등이 그것이다. 영화 제목만 보고도 그때 그 당시의 장소와 상대를 추억으로 소환하는 이가 많을 것이다. 특히, 영화 속 명대사는 오랫동안 가슴에 남는다. 접속의 “만나야 할 사람은 언젠가 꼭 만나게 된다고 들었어요.”, 8월의 크리스마스의 “내 기억 속에 무수한 사진처럼 사랑도 언젠가는 추억으로 그친다는 걸 난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신만은 추억이 되질 않았습니다.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날 수 있게 해준 당신께 고맙단 말을 남깁니다.”, 봄날은 간다의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버스하고 여자는 떠나면 잡는 게 아니란다.”는 수십 년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명대사다.최근에 영화 비트를 다시 보다가, 로미(고소영)의 대사가 귀에 쏙 들어왔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이 먼저야.”와 “사람들이 행복해 보여, 나만 빼고.”였다. 97년 당시에는 감각적인 영상에 휘둘려 대사를 음미할 여유가 없었는데 이십여 년이 흘러 다시 보니 곱씹어 볼 만한 명대사, 명장면이 많았다. 입시지옥에서 친구를 잃은 우등생 로미는 요양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큰 정신적 충격을 받는다. 돈을 벌겠다는 목표로 분식점을 차린 환규(임창정)는 사기를 당하고 인부를 칼로 찌른다. 감옥에서 나와 환규가 다시 한 일도 역시나 포장마차를 여는 것이다. 폭력 조직에서 중간 보스로 승승장구하던 태수(유오성)도 배신을 당하고 끝내 죽음을 맞는다. 태수를 구하러 갔던 민(정우성)도 만신창이가 된다.그 누구도 행복한 사람이 없는 영화다. 1997년의 청춘과 2020년의 청춘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명문대에 진학하려는 이유도, 돈을 벌려는 이유도, 조직에서 승진하려는 이유도 모두 행복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명문대에 진학하면, 돈을 많이 벌면, 승진하면 행복할까? 그때도 “모두 행복한 것 같아, 나만 빼고.”라고 아니 말할까? 지인의 SNS를 훔쳐보면서 부러움과 열등감을 극복하는 방법은 그들보다 더 자랑거리가 많아지는 것일까? 우리가 ‘행복’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정말, ‘행복’일까?

2020-01-19

‘다꾸’를 시작했습니다

이미하 영어 강사요즘 ‘다꾸’하는 재미에 빠져 있다. 예쁜 신상 ‘마테’랑 스티커 사느라 두부 20모쯤 되는 돈을 쏟아 부었나 보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는 분이 대부분 아닐까 짐작한다. ‘다꾸’는 다이어리 꾸미기를 뜻하고 ‘마테’는 알록달록하게 디자인한 예쁜 마스킹 테이프를 줄인 말이다. ‘다꾸’에 열성을 보이는 10대 청소년이나 20대 여대생들이 흔히 쓰는 표현이다. 학원을 운영하며 학생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쓰는 언어에 익숙해진다. 왠지 이런 표현을 쓰면 마음까지 살짝 젊어지는 기분이다. 나만의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작년까지는 흔히 볼 수 있는 푸른색 커버에 2019 숫자가 음각으로 찍힌 다이어리를 구입해 업무를 중심으로 스케줄 관리를 위해 사용했다. 1년이 지난 후 다시 펼쳐본 낡은 다이어리는 흉측했다. 검은색 볼펜으로 찍찍 아무렇게나 휘갈겨 쓴 메모들, 바빴던 스케줄 중심의 건조한 기록들로 가득한 다이어리는 그냥 버린다고 해도 미련을 둘만한 아무런 미적, 정서적 가치도 없었다. 올해는 나만의 가치를 담은 색다르고 예쁜 다이어리를 만들고 싶었다. 일 년 동안 내 삶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아낼 예쁜 다이어리를 꾸미기에 의미를 부여하자 부질없는 시간 낭비로 보였던 장난 같은 ‘다꾸’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다이어리부터 바꾸었다. 작년까지 사용했던 푸른색 커버 대신 투명 비닐 커버의 노트처럼 생긴 캐주얼한 다이어리이다. 올해 받은 탁상 달력 속 노란색 뽀글 머리에 큰 눈을 가진 소녀 캐릭터가 사랑스러웠다. 달력을 포기하고 오려내 다이어리 앞. 뒤 표지에 붙인 후 꽃 스티커로 장식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다이어리가 탄생했다. 표지 장식을 끝낸 후 거금을 투자한 스티커를 이용해 월간 계획을 꾸미기 시작했다. 매달 컨셉을 잡아 어울리는 스티커로 전체를 장식하고 기억해야 할 중요한 날은 특별히 눈에 잘 뜨이는 스티커를 붙였다.1월은 상큼한 출발을 다짐하며 레몬에 다양한 표정을 담은 스티커로 꾸몄다. 개나리색 형광펜으로 ‘좋은 일만 가득해라’ 소망도 써 두었다. 음력 내 생일과 양력 아들 생일이 겹치는 신기한 일이 있어 삼단 케이크 스티커와 빨간 하트 풍선을 쥐고 달리는 소녀 스티커로 꾸몄다.2월 월간 계획표는 한 편의 추상화다. 단순한 모양에 예쁜 파스텔 톤의 꽃과 나무 스티커를 곳곳에 배치하니 세련된 멋이 넘친다. 화요일 오전의 독서 모임 외에는 특별한 일정이 없어 허전해 보이는 2월, 어떤 내용으로 빈칸을 채워갈지 기대 가득하다.새 생명이 약동하는 3월의 다이어리에는 온통 사슴들이 뛰어논다. 모진 추위를 견디고 생명이 움트는 계절, 사슴처럼 순수하고 맑은 눈으로 아름다운 세상을 보고 싶은 마음이 드러난 모양이다. 3월에 있는 아버지 생신을 잊지 말자고 파란 별 스티커를 붙였다. 계절의 여왕 5월에는 다이어리에도 꽃의 향연이 펼쳐진다. 정성껏 꾸민 분홍, 보랏빛 예쁜 꽃 스티커에서 향기가 진동하는 느낌이다. 5월 8일 어버이날 칸에 빨간 하트 스티커를 붙이고 사인펜으로 진하게 눌러쓴다. 사랑해요! 감사해요!7월 다이어리는 온통 푸른색이다. 화요 독서모임 회원 중 문구점을 운영하는 분이 내가 ‘다꾸’하는 걸 알고 스티커를 여러 장 선물했다. 그중에서 조개, 불가사리, 고동, 유리병 스티커로 시원한 여름 바닷가의 모습을 연출해 본다. 즐거운 여름 휴가가 기다리는 7월, 올여름 휴가는 어디로 갈까? 동남아? 중국? 벌써 마음이 설렌다. 휴가지를 결정하면 그곳 풍물이 가득한 스티커를 사서 꾸미려 한다.재미삼아 시작했던 다이어리 꾸미기는 점점 의미 있는 일로 변했다. 매달 그달의 컨셉을 잡고 꾸미는 일은 한 달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희망이며 약속을 시각화해 자연스럽게 그날을 의미 있게 보내려는 다짐을 자연스럽게 하게 만들었다. 소중한 날들을 미리 예쁘게 꾸며 놓았기 때문에 마음 든든하다. 아직 꾸미지 않은 빈칸이 많이 남아 있다. 바라기는 더욱 다채로운 스티커들과 아기자기한 이야기로 2020 나의 다이어리가 꽉꽉 채워져 소중한 삶의 기록으로 오래 남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2020-01-19

에티오피아에 칠곡군 마을이 있다?

백선기 칠곡군수올해는 민족상잔의 비극인 6·25전쟁이 발발한 지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한국군 13만 8천여 명과 유엔군 3만 7천여 명이 대한민국을 지키고자 북한군에 맞서 싸우다 전장의 이슬로 사라졌다.국방부는 2000년부터 무려 20여 년 동안 6·25전쟁 전사자 유해를 발굴해 왔고, 지난해 칠곡군에서만 30위의 유해가 수습될 정도로 전쟁은 참혹했다.우리 국민은 미국, 영국 등의 전통적인 우방국의 참전은 알고 있어도 커피의 나라로 알려진 에티오피아가 아프리카 유일의 전투병을 파병한 참전국이란 사실은 대부분 모르고 있다.1950년 전쟁이 발발하자 에티오피아 셀라시에 황제는 “이길 때까지 싸워라. 이기지 못하면 죽을 때까지 싸워라”라는 명령과 함께 자국의 장병을 파병했다. 3주간의 긴 항해 끝에 지구 반대편 낯선 나라의 전투에 참여한 6천여 명의 에티오피아 장병들은 120여 명이 전사하고 50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하지만 황제의 명령처럼 이기든 죽든 하나만 선택했기에 참전국 중 유일하게 단 한 명의 포로도 없었다. 253전 전승이라는 무패신화를 쓰며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는 데 앞장선 에티오피아 전설의 부대, 그래서 그들은 ‘초전박살’이란 뜻의 ‘각뉴부대’라고 불린다.그런 형제의 나라 에티오피아가 1970년대 공산화되면서 각뉴부대 영웅들은 반역자로 전락했다. 6·25전쟁에 참전했다는 이유로 재산이 몰수되거나 손가락질을 받으며 갖은 고초를 겪어야 했다. 필자도 2014년이 되어서야 에티오피아 참전용사의 혁혁한 전과를 자세히 알게 됐다.이러한 사실을 지역민에게 전파하자 호국과 보훈을 도시의 정체성으로 삼고 있는 칠곡 군민은 보훈에는 국경이 없다는 신념으로 에티오피아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 ‘낙동강세계평화 문화대축전’에 평화의 동전밭을 마련했다. 동전밭을 통해 에티오피아 참전용사의 고귀한 희생이 지역사회에 널리 알려지자 2015년부터 에티오피아 지원에 주민들의 본격적인 동참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지역 유치원과 초등학생 5천여 명은 용돈을 모아 에티오피아 돕기에 나섰다. 생활에 여유가 있는 군민은 물론, 기초 수급자와 장애인 등 도움이 필요한 주민도 참여해 매월 1천200여 만 원을 모으기 시작했다.이러한 군민의 자발적인 정성을 모아 에티오피아 디겔루나 티조 지역을 칠곡평화마을이라 부르고 7년 동안 교육과 식수 사업 등을 펼쳐왔다. 현지 실태를 정확하게 파악해 지원의 효과를 높이고자 2015년과 2017년에는 칠곡군 방문단을 구성하고 직접 티조 지역을 방문했다. 이를 통해 칠곡평화마을 제막식과 초등학교 준공식을 가지고 식수시설을 탐방했다. 또 과거 한국이 가난을 극복할 수 있었던 새마을 운동을 전파할 수 있었다.이뿐만 아니라 에티오피아 6·25전쟁 참전용사에 대한 예우에도 소홀함이 없었다. 우리 군은 2016년, 2018년 두 차례에 걸쳐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를 초청해 그들의 무훈을 널리 알렸다.지역 독지가는 에티오피아 영웅들이 칠곡을 방문한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사비를 털어 생필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참전 용사임을 알아본 상인들은 제품을 원가로 판매하거나 각종 생필품을 선물했다. 이밖에도 낙동강세계평화문화 대축전에 에티오피아 홍보 부스를 마련해 지역 사회에 그들의 전통 문화와 참전용사의 희생과 헌신을 전파하고 주한 에티오피아 대사관과 ‘문화·관광·보훈 분야 MOU’를 체결해 외교적 차원의 지원 방안도 모색하기 시작했다.칠곡군민의 위대한 발걸음은 올해에도 멈추지 않는다. 오는 2월 24일부터 28일까지 세 번째로 에티오피아를 방문할 예정이다. 이번 방문에서 6·25전쟁 70주년을 맞이해 한국전 참전용사를 만나 다시 한 번 그들에게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또 한국전 참전용사 마을을 방문해 의약품, 장난감, 축구공 등을 전달한다. 특히 지난 7년간의 군민의 성원으로 꿈과 희망을 되찾은 티조 칠곡평화 마을의 자립을 선포하고 짐마게네티를 방문해 또 하나의 칠곡평화마을을 조성할 계획이다.군수로서 한 것이라고는 군민을 대표해 에티오피아를 방문하고 진심 어린 마음을 전달한 것뿐이다. 지난 7년간 호국과 보훈의 가치를 올곧게 세우며 이역만리에 칠곡평화마을의 현판을 내건 우리 군민이 너무나 자랑스럽다. 칠곡군민에게 아낌없는 박수가 필요하다.

2020-01-19

정치권 인재 영입

인재 영입과 관련한 고사(故事)는 삼국지에 등장하는 삼고초려(三顧草廬)가 유명하다. 뛰어난 지략가며 불세출의 영웅 제갈량을 모시기 위해 유비는 자신보다 스물 살이나 어린 제갈량의 집을 세 번이나 찾아가 그를 감복시킨다. 훌륭한 인재를 맞는다는 것은 그만큼의 정성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삼국지 영웅 조조도 인재를 중시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수하에 수많은 인재가 운집한 것이 이를 입증한다. 그는 “오직 재능만이 추천의 기준(唯才是擧)”이라 했다. 능력만 있으면 남에게 욕을 먹거나 말거나 주저 없이 발탁하는 것이 그의 특별한 인재관이다.일본의 전기회사 파나소닉을 세운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일본에서 경영의 신으로 통한다. 그는 “사업은 사람이 전부다” 라고 말했다. 동서고금을 둘러봐도 인재 등용의 중요성을 틀렸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 모든 일의 중심에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최근 기업이 인재를 얻기 위해 인재가 근무하는 기업 자체를 인수하는 새로운 경영 방식이 도입되고 있다 한다. 주로 기술인력 스카우트가 치열한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세계는 바야흐로 인재확보 전쟁에 불꽃을 튕기고 있다.4.15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인재 영입바람이 한창이다. 여야는 좋은 인재 확보를 위해 물밑 경쟁도 마다 않는 모양이다. 그러나 그들이 발표한 영입 인재에 대한 평가는 노력에 비해 별로다. 장애인, 권익운동가, 극지탐험가, 경력단절 워킹맘 등 그럴 듯한 이름으로 포장을 했지만 국민 눈높이를 채우지 못한 탓이다. 구태 정치인은 그대로 두고 인재만 영입해봤자 포장만 바꾼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이다. “일회용, 추잉껌” 등의 악평도 나왔다. 눈가림보다 내부혁신이 먼저라는 뜻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01-16

서로 다른 경제지표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지난 14일 청와대에서 있었던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은 무척 실망스러웠다. 고민정 전 청와대 대변인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기자회견은 문 대통령이 직접 질문자를 지명하고, 답을 하는 방식이었다. 특히 회견이 끝난 뒤 참석한 기자들 상당수는 왠지 현 정부에 우호적이거나 온건한 성향의 기자들이 많이 지명된 것 같다는 의구심을 털어놨다. 또 질문자로 지명된 기자들이 거의 대부분 회견장 앞 첫째 줄과 둘째 줄에 포진해 있었던 사실 또한 우연한 일이었을까 의심스러웠다. 기자회견 시작하기 약 1시간 전에 영빈관에 입장해보니 이미 회견장 앞 둘째줄까지 꽉 차 있었던 점도 이상했다. 당시에는 “무척 부지런한 기자들이 많구나” 하고 지나갔지만 돌이켜보면 청와대측의 고육지책은 아니었을까. ‘기자들의 날카로운 질문과 살아있는 답변을 통해서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국민께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대통령의 질문자 지명 이벤트는 지난 해에 이어 재연했지만 청와대측은 지난 해 생방송된 신년 기자회견에서 벌어진 악몽을 되풀이할 수 있다고 우려했을 수 있다. 지난 해 신년 기자회견에서는 한 지역 방송기자가 문 대통령에게 “나라 살림살이가 어려운 데 무슨 자신감으로 경제기조를 바꾸지 않겠다는 것이냐”는 공격적인 질문으로 논란이 된 바 있다.더구나 문 대통령은 신년사에 이어 이날도 우리 경제지표 개선을 이유로 ‘많이 좋아졌다’고 평가했다. 문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지난해 신규 취업자가 28만명 증가해 역대 최고 고용률을 기록했고, 청년 고용률도 13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평가했다. 수출과 관련해서도 “지난해 우리는 미·중 무역 갈등과 세계 경기 하강 속에서도 수출 세계 7위를 지켰고, 3년 연속 무역 1조달러, 11년 연속 무역 흑자를 기록했다”고 말했다.그러나 취업자가 크게 늘어난 것은 세금으로 늘린 노인 공공 일자리가 크게 반영됐고, 40대 이하 일자리는 지속적으로 줄고, 초단시간 취업자가 급증하는 등 일자리 질은 오히려 급속히 나빠졌다. 수출상황도 마찬가지다. 순위나 수출액은 맞지만 지난 해 우리나라의 수출은 10.3% 감소해 세계 금융 위기 때인 2009년 이후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고, 무역 흑자는 372억달러로 전년에 비하면 반 토막이 됐다. 이런 부정적인 지표는 언급하지 않은 것이다.문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신년사에서) 긍정적인 지표를 많이 말하고, 부정적인 지표를 말하지 않았을 수는 있지만 적어도 말한 내용은 전부 사실”이라고 했다. 신년사 이후 언론의 따가운 비판이 잇따랐던 걸 의식한 발언으로 보인다. 대통령이 객관적인 경제지표에 대해 의도적인 거짓말을 했으리라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나 경제가 어려우면 어렵다고 인정해야 새로운 개선책이 나올 것 아닌가. 영세자영업자들을 포함한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갈수록 쪼그라들고 있는 데, 대통령과 정부가 경제지표가 나아지고 있다는 식의 안이한 인식을 보이는 현실은 국민들에게 절망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2020-01-16

어머니

설이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설이라고 해도 어렸을 때 같지는 않아서 나이가 들수록 즐거움보다는 의무감이 앞선다.가만 있자, 내 나이가 얼마나 되었더라? 하고 생각하니 실로 어마어마하다. 수십년전 대학원에 들어가 무서운 선생님 연세가 얼마나 되셨나? 했을때 바로 그 분이 지금 내 나이셨다.그러니 내 아버지, 어머니는 지금 얼마나 연세가 드셨을까. 아버지 서른두살, 어머니 스물일곱살에 결혼해서 이듬해에 내가 세상에 나왔다. 나오기는 부모님 덕분에 나왔는데, 그후로 부모님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어렸을 때는 물론이고 나이 들어서도 내 좋은 것만 찾아다녔지 부모님 생각에 밤을 지샌 적은 없다.여름 지나서 어머니가 허리가 아프다고 하셨다. 키에 비해서 체중이 좀 되시기 때문에 허리에 부담이 되시는 것이려니 했다. 또 허리 아픈 데는 내가 왠만한 선수쯤은 우습게 보는 처지인지라 아프시면 얼마나 아프시랴 했다.그 사이에 학교 일이 무척이나 힘들고 바빴다. 민족에 관한 국문학 쪽의 논의를 둘러싸고 어떤 절박한 생각이 떠올라 그 일에 쫒기기도 했다. 유월부터 나도 얼마나 몸이 힘든 지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고 지낸 것도 같다.십이월이 되자 겨우 정신이 나는 것 같았다. 그러는 사이에 어머니의 허리 상태는 앉지도 서지도 못 할 지경에 이르렀다. 사람이 아플 때 구해줄 수 있는 의사 만큼 귀하고 고마운 존재는 없다. 결국 어머니는 동생 병원에 계시다는 명의로부터 수술을 받으시게 되었다. 어머니가 의사며 수술을 그렇게 무서워 하시는 줄 이제서야 알았다. 기왕 하기로 한 것 마음 놓으시라고 몇번이나 안심시켜 드렸지만 다가올 큰 일이 내내 걱정이신 모양이었다.그동안 내가 해도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이라도 잘해야겠다고 대전, 서울을 매일같이 왔다갔다 하는 사이에 수술 날이 닥쳤다.아침 일곱시 반에 어머니는 수술실로 들어가셨다. 아홉시 반까지 수술 준비를 하셨다. 열시 반이 되어서야 나는 아버지와 막내 동생이 기다리는 수술실에 도착 할 수 있었다. 기차 안에서 잠이 든 나는 대전을 지나 동대구 역까지 갔다 되돌아 온 것이었다.열한시반, 열두시반, 한시반, 그리고 두시가 되어서야 어머니의 수술은 끝이났다. 전광판에 어머니의 이름 옆에 회복실이라고 써 있었다. 드디어 수술실 밖으로 참을 수 없는 통증을 호소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나타났다.허리 수술 만큼 아픈게 없다는데.나는 참 못나고도 나쁜 놈이었다. 지금부터라도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는다면 나는 정말 구제불능, 천하의 불상놈 밖에는 안 될 것이었다. 사람의 사랑 가운데 어머니 사랑만큼 지극한 것이 없다. 나는 그 사랑을 받은 자식인 것이었다.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20-01-16

상식이 통하는 나라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요즘 많은 이들이 여야로 나뉘어 “한번도 경험 못한 나라”를 경험하고 있다고들 말한다.여당 지지자들은 과거 보수정권의 독재적 통치와 비교하여 대통령을 자유롭게 비판하는 현재의 상황을 한번도 경험못한 나라의 한 축으로 여긴다. 반면 야당 지지자들은 장관 임명의 일방적인 결정과 검찰의 수사팀 교체, 원전해체, 자사고 폐쇄 등 일방적인 독재가 더 심하다고 주장한다.얼마 전 한국의 특성화 과학기술대학교 중에 하나인 유니스트 졸업식에만 대통령이 참석한다는 소식을 듣고 과학기술계는 매우 놀란 적이 있다.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의 수사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야당은 선거개입이라고 하고 여당은 일상적 대통령의 선택적 통치의 일환이라고 한다. 속단하긴 어렵지만 수사는 공정히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은 여야가 모두 같은 생각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수사하는 검찰의 모습은 국민의 성원을 받기에 충분했다. 사실상 정의를 추구하는 정부는 그러한 정의로운 수사에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수사가 진행되기 힘들 정도로 최근 검찰의 수사팀이 급속히 해체되고 있는 모습이 상식과는 배치되지만 과거 검찰이 검사출신 범법자에 대한 관용으로 국민들로부터 검찰의 불신을 불러온 것도 사실이다. 검찰개혁도 기본적으로 필요한 정책일 수 있다. 그러나 검찰개혁을 찬성하는 국민들도 수사팀 해체는 찬성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검찰 개혁 등 권력기관 개혁은 권력의 견제와 정치적 독립성 보장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방향으로 슬기롭게 전개되어야 한다. 검찰도 일부 제식구 감싸기라는 상식적이지 않은 수사에서 벗어나 정의로운 검찰의 모습을 보이는 반성이 필요하다.교육자로서 현재의 이념 편향적 교육의 기조도 문제이다. 대부분의 학부모와 국민들이 이념편향 교육의 심각성을 느끼고 있고, 자사고·특목고 등의 폐쇄로 상징되는 획일적 사회주의적 교육정책 방향은 전교조 이념교육을 오히려 강화하고 자유민주주의적 원칙에 반하고 있다. 일부 자사고, 특목고들이 입시위주의 교육을 시켜온 것도 일부 사실이라면 그러한 점만 수정하도록 하고 차별화된 영재교육이나 특성화 교육은 계속 되어야 한다.외교 국방도 현재의 상황은 위중하다. 우리가 외쳐대던 한반도 운전자·중재자 외교는 북한의 조롱으로 되돌아 왔고, 대한민국의 대외적 외교적 입지는 크게 약화되고 있다는 평이다. 북한 핵 위협은 오히려 심화되고 있으며 한국은 북한에 철저히 무시당하고 있는데도 한국의 북한에 대한 짝사랑이 계속되고 있는 것은 문제가 있다. 우리의 외교 버팀목인 한·미·일 삼각동맹을 강화하여 중국과 북한에 의연히 대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선거전략, 자기당 이익만을 정치적 목적의 통치가 아닌 상식이 통하는 사회, 국가가 그립다. 답답한 마음이다. 여야로 나뉘어 서로 나름대로 해석하며 “한번도 경험 못한 나라”라고 자화자찬과 비판할 것이 아니라, 국민들은 “상식이 통하는 한번도 경험 못한 나라”를 진정 원하고 있다.

2020-01-16

겨울 유희(遊戲)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꽝꽝한 빙판을 보면 지치고 싶어진다/ 팍팍한 세상살이 껄끄러운 마찰을 잊고/ 유착도 고착도 없이 미끄러지고 싶어진다// 숫눈의 들판을 보면 밟으며 걷고 싶다/ 낡고 찌든 세상을 덮은 순백의 전인미답/ 신생의 벅찬 설렘으로 마냥 걷고 싶어진다// 바싹 마른 풀숲에는 불 지르고 싶어진다/ 조바심으로 서걱이는 마른 풀에 불을 댕겨/ 이 세상 한 귀퉁이를 방화하고 싶어진다// 산과 들 쏘다니며 나이도 무엇도 잊고/ 걷다가 지치다가 논두렁에 불도 놓으며/ 한 마리 산짐승처럼 참 생생한 하루였다’- 졸시 ‘겨울 유희’골목에 아이들이 없다. 시골 동네에는 아이가 사는 집이 거의 없다. 간혹 아이들이 있어도 골목에 나와 놀지 않는다. 골목마다 아이들이 바글바글하던 시절에 비한다면 금석지감을 금할 수 없다. 집집마다 네댓은 보통이고 일곱이나 여덟인 집도 적지 않아서 방학이면 하루 종일 골목이 시끌벅적했다. 오죽하면 “시끄럽다, 딴 데 가서 놀아라!”라는 꾸중을 듣곤 했을까.아이들이 많다 보니 놀이도 참 다양했다. 술래잡기, 구슬치기, 팽이치기, 제기차기, 연날리기, 썰매타기, 비석치기, 자치기, 땅따먹기, 딱지치기, 공놀이, 고무줄놀이, 공깃돌놀이, 원수놀이, 전쟁놀이, 눈싸움…. 아침부터 저녁까지 지칠 줄 모르고 놀아도 놀 거리가 달리지는 않았다. 놀이에 소용되는 도구도 거의가 스스로 만들었다. 돈을 주고 사는 것은 구슬이나 고무공 정도였고, 초등학교 상급반이면 팽이를 깎고 연이나 제기, 썰매를 만들 줄 알았다.지나고 보니 그 때 그 놀이를 통해 많은 것을 얻고 배웠던 것 같다. 우선은 마음껏 뛰고 구르고 노는 일이 자유롭고 즐거웠다. 방학숙제 따위 까맣게 잊고 노는 일에만 열중해도 누가 뭐라는 사람이 없었다. 비록 먹고 입는 것이 열악해도 그것 때문에 슬프거나 괴로울 겨를이 없었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단벌옷으로 겨울을 나도 방구석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앉아 있지는 않았다. 놀이를 통해 우정을 쌓고 협동과 단결을 배우고 도구를 만드는 손기술을 익히기도 했다. 그 아이들이 그때 배운 기술과 지혜를 바탕으로 국민소득 백 불 미만의 최빈국을 세계 십위 권 경제대국으로 밀어 올리는 기틀을 마련했다.겨울방학 동안만이라도 아이들을 마음껏 뛰어놀게 하자. 과외니 학원이니 하는 족쇄를 풀어주고 텔레비전, 컴퓨터, 휴대전화기도 던져놓고 동무들과 어울려 술래잡기도 하고 팽이치기, 연날리기도 할 수 있게 하자. 시골의 학교를 이용해서 방학동안 놀이교실이라도 열 것을 제안한다. 일주일이나 2주일쯤 도시의 아이들이 합숙을 하면서 마음껏 놀 수 있게 놀이를 가르치고 놀이기구를 손수 만드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를 바란다. 제 손으로 만든 연과 썰매, 제기, 팽이를 가지고 놀이를 한다면 그보다 좋은 체험학습이 없을 것이다. 저절로 몸과 마음이 튼튼해지고 정서도 넉넉해져서, 행복지수 OECD 꼴찌에다 5명 중 1명꼴로 자살충동을 경험했다는 우리나라 아이들이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고 기쁨과 활력을 회복하기 바란다. 아이들은 잘 놀아야 건강해진다.

2020-01-16

그들이 기다린 이유는

미국의 어느 부둣가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정기 여객선이 도착해 사람들이 배에서 내리는 도중 배가 출렁이는 바람에 한 여자 승객이 발을 헛디뎌 바다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를 목격한 주위 사람들이 모두 고함을 치면서 발을 동동 굴렀으나 선원들은 이것을 보고도 가만히 있기만 했습니다.그러자 사람들은 이런 무책임한 선원들이 어디 있느냐며 거세게 비난하기 시작했지요. 선원들은 여자가 두 번이나 물속에 떠올랐다 잠겼는데도 여전히 요지부동이었습니다.그런데 잠시 후 여자의 힘이 완전히 소진된 것을 알고서야 한 선원이 비호같이 다이빙해서 축 늘어진 그 여자를 구해서 올라왔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왜 처음부터 빨리 구해주지 않았느냐고 그 선원을 나무랐습니다. 선원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대답합니다. “모르시는 말씀들 하지 마십시오. 사람이 물에 빠져 자기 힘으로 살아보겠다고 안간힘을 쓸 때는 어느 장사가 구하러 들어간다고 해도 빠진 사람의 힘에 눌려 같이 빠져 죽게 됩니다. 그래서 이 여인이 힘이 다 빠질 때까지 기다린 것입니다.”‘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표현이 한때 유행했습니다. 특별한 재능이 있는 사람이 전문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도 누구나 1만 시간을 투자해 노력하면 어떤 분야에서든 전문가 수준에 오를 수 있다는 말콤글래드웰의 이론입니다.최근 안데리스에릭슨은 ‘1만 시간의 재발견’이라는 책에서 이 이론의 문제점을 밝힙니다. 그 분야의 마스터 코치 없이 무조건 1만 시간을 채우는 행위는 큰 변화를 일으키기 어렵다는 겁니다. 여인을 구한 선원의 지혜처럼, 매사 그 분야에 가장 뛰어난 전문가의 조언과 피드백을 받으며 1만 시간을 채울 때 가장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발견이었습니다.모두가 희망으로 시작한 2020년. 우리 곁에 날카롭고 지혜로운 멘토가 등장하기를 기대합니다./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1-16

게으름에 대하여

김규종 경북대 교수더러 억장으로 취하는 때가 있다. 나이 먹고 몸이 부실한 것도 원인이겠으나, 강골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술에 장사 없다는 말을 실감하곤 한다. 주독으로 고단해진 육신을 추스르다 보면 성찰의 시간이 찾아온다. 구토와 오심으로 괴로워한 적도 있으나, 요새는 그런 일이 없다. 그것도 음주 행각으로 얻어낸 작은 지혜이거나 깨달음이려니 생각한다.나른해진 몸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지난 일을 회억하거나 흐뭇한 추억에 잠기는 날도 있다. 아마 그것이 음주 다음 날의 유쾌한 선물일 것이다. 온종일 빈둥거리면서 몸과 마음을 분망한 일상과 격절(隔絶)하는 한가한 하루! 술을 싫어하거나 홀짝거리는 정도의 애주가는 빈둥거림의 미학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사람마다 세상과 대면하고 이해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자크 러클레르크의 ‘게으름의 찬양’(1936)을 선물받았다. 버트란드 러셀의 ‘게으름에 대한 찬양’(1935)을 인상 깊게 읽었기로, 같은 부류의 서책이려니 짐작했다. 러셀은 모든 지구 거주자가 하루 4시간 노동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견해를 주장한다. 문제는 누군가는 전혀 노동하지 않으면서 부를 축적하고, 어떤 이들은 장시간 노동으로 혹사당하는 것이다.세상에는 온종일, 매달, 매년, 종신토록 놀고먹는 자들이 있다. 그것도 적잖은 자들이 그런 놀라운 행운을 가지고 세상에 태어난다. 아무리 일해도 하루 세끼 배불리 먹지 못하는 인간도 아주 많다.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조국과 부모 때문에 이런 편차가 생겨난다.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하는 말은 괜히 생겨난 것이 아니다.그런 까닭에 우리는 흙수저와 금수저를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시대를 살아간다. 그것이 운명이나 되는 것처럼.러클레르크 신부가 게으름을 찬양하는 까닭은 근본적으로 ‘속도’에 있다. 너무 신속하게 변해가는 세상과 거기 편승해서 ‘더 빨리’를 외쳐대는 20세기 초반 유럽의 풍경을 그려낸다. 2차 대전으로 느림이 찾아왔다는 그의 생각은 무척 새로운 것이었다. 수많은 인명살상을 가져온 전쟁의 참화가 아니라, 속도경쟁에서 빠져나오도록 인도한 전쟁의 긍정적인 면을 부각하는 혜안과 통찰! 하지만 2차 대전 직후 인간은 우주로 날아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달에 도달한다. 옥토끼가 절구질한다는 항아의 달에 사람이 꿈처럼 발자취를 남긴 것이 벌써 50년 전 일 아닌가?! 결국 그것은 지구 자전속도를 능가하는 속도에서 비롯된 일 아닌가! 오늘날 우리는 300킬로미터의 시속으로 전국을 오가고, 시속 1000킬로미터 내외로 지구를 왔다 갔다 한다. 그야말로 속도에 빠져서 살아가는 인생살이가 현대인의 특징처럼 각인된 시대다.느림은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생각하게 해준다고 러클레르크는 말한다. “우리의 삶이 제대로 인간적이려면 거기에는 느림이 있어야 합니다.” 아주 큰 울림을 주는 구절이다. 올해에는 나도 어느 정도 빠름에서 놓여났으면 좋겠다. 그것이 궁금한 빈들거리는 하오가 느릿하게 지나간다. 여러분의 하루는 어떤가, 궁금하다!

2020-01-15

졸업이 무서운 아이들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아, 망했다!” 2020년에 대한 느낌을 묻는 말에 초등학교 6학년 아이의 반응이다. “왜? 중학생이 되잖아!” “중학교 왜 있어요? 꼭 가야 해요?”필자는 초등학교 입학을 학수고대하며 입학식 전날까지 가방을 안고 자던 아이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 모습이 엊그제 같은데, 그런 아이가 벌써 중학생이 된다는 세월의 빠르기에 숨이 막혔다. 비록 초등학교 입학 전의 기대가 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원망으로 바뀌었지만, 뭐든지 긍정적인 아이가 시작도 하기 전부터 절망에 가까운 부정적인 마음을 갖는 것은 처음이라 몹시 놀랐다.필자의 놀람은 금방 걱정으로 변했다. “중학교 가면 서열이 있대요. 인기 있는 애들은 선배들이 처음부터 챙겨주고, 혼자 다니거나 인기 없는 애들은 학교에서 찐따처럼 지내야 한대요. 또 선배나 친구들에게 한 번 찍히면 끝이래요! 1학년 때는 자유 학년제라 시험을 안 쳐서 다들 학교에서는 놀고, 학원 가서 공부한다는데 왜 중학교 1학년이 있어요?”서열, 찐따, 자유 학년제, 학원 등 필자가 들어도 마음이 무거운 단어들인데, 중학교 입학도 전에 이런 단어들에 노출된 아이의 마음은 오죽할까 싶었다. 그리고 지금의 심상치 않은 중학교 분위기가 상상되어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3년 내내 또 의미도 없는 졸업장을 따기 위해 극도의 긴장 속에서 살아야 할 아이를 생각하니 부모로서 아이의 중학교 입학이 망설여졌다. 그리고 아이를 위해 해외로 나가는 부모들이 이해갔다. 할 수만 있다면 아이와 같이 그들을 따라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있는 형편이 못 되기에 아이에게 미안했다.지난주 산자연중학교에서는 2020학년도 입학과 전학을 위한 예비학교가 2박3일 동안 열렸다. 올해도 제주도에서부터 서울, 대전 등 전국에서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이 왔다. 비록 학년은 다르지만,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뭔가에 잔뜩 주눅든 모습이었다. 무엇이, 또 누가 저 아이들을 저토록 주눅들게 했는지 필자는 따져 묻고 싶었다. 그런데 이에 대해 책임질 사람은 청와대에도, 정부에도, 그 어디에도 없다.글 오염에 가까운 사회지도자라고 하는 사람들의 영혼 없는 신년사가 남발되는 요즘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2020 경자년 희망찬 새해”라고 말한다. 과연 그들은 희망(希望)이라는 말의 뜻을 알기나 하는지 궁금했다. 아무리 뻔뻔해도 최소한 이 나라 돌아가는 모습을 본다면 새해 앞에 “희망찬”이라는 수식어는 절대 붙이지 못할 것이다.절망만 가득한 이 나라와 이 나라 교육에 제일 필요한 단어는 희망이다. 그런데 대변혁이 일어나지 않고는 2020년도도 2019년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희망이 부재한 이 나라 교육계는 신입생을 받을 준비가 되었을까? 필자가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아이는 믿지 않는다.혹시 대통령께서 “이 나라 중학교에는 왕따, 학교폭력 같은 것은 전혀 없습니다. 모든 학생이 즐겁고 행복하게 열심히 공부할 수 있는 곳이 대한민국 중학교입니다”라고 말하면 아이가 믿을까? 그런데 슬프게도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대통령이 이 나라에는 없다.

2020-01-15

소나무의 가르침

소나무 씨앗 두 개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바위틈에 떨어지고 다른 하나는 흙 속에 묻혔습니다. 흙 속에 떨어진 소나무 씨앗은 곧장 싹을 내고 쑥쑥 자랐습니다. 그러나 바위틈에 떨어진 씨는 조금씩밖에 자라나지 못했습니다. 흙 속에서 자라나는 소나무가 말했습니다. “이것 봐, 나는 이렇게 크게 자라는데 너는 왜 그렇게 조금밖에 못 자라니?” 바위틈 소나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깊이깊이 뿌리만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비바람이 몰아쳤습니다. 태풍이었습니다. 산 위에 서 있는 나무들이 뽑히고 꺾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때 바위틈에서 자라나는 소나무는 꿋꿋이 서 있는데 흙 속에 있는 나무는 뽑혀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바위틈에 서 있던 소나무가 말했습니다. “내가 왜 그토록 모질고 아프게 살았는지 이제 알겠지? 뿌리가 튼튼해지려면 아픔과 시련을 이겨내야 하는 거야.”러시아 과학자들이 동물을 대상으로 오랫동안 재미있는 실험을 했습니다. 첫 번째 그룹에게는 이상적인 생활환경을 제공했지요. 풍성한 음식과 상쾌한 공기와 안락한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동물들을 괴롭히는 것은 없었습니다. 동물들은 초원을 뛰놀다가 지치면 그대로 나뒹굴었다. 몇 개월 후부터 동물들의 털에서는 윤기가 흐르기 시작했습니다.두 번째 그룹에게는 걱정과 기쁨이 공존하는 공간을 제공합니다. 동물들은 초원에서 한가롭게 놀다가 가끔 맹수의 습격을 받습니다. 먹이를 얻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이 필요했고 항상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습니다.러시아의 과학자들은 두 집단의 연구결과를 이렇게 발표했습니다. “안락한 환경에서 살던 동물들이 훨씬 먼저 병들어 죽어갔다. 약간의 긴장과 노력이 건강과 장수를 보장한다.”우리에게 시시각각 멈추지도 않고 다가오는 어려움과 장애는 거침 돌이 아니라 디딤돌이라는 점을 마음에 새겨보는 새벽입니다./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1-15

우리 안의 불안과 경쟁: 수우족과 유록족의 이야기(1)

교육 특구를 자처하는 대구 수성구의 범어동 거리에는 학부모와 학생들의 눈으로만 알 수 있는 표식들이 있다. 평범한 건물의 소박한 간판 뒤에 월급쟁이 부모들은 엄두도 낼 수 없는 고액의 개인 과외와 소그룹 과외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늦은 밤, 삼삼오오 모여 다니는 아이들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최근 발표된 정시 확대 결정은 수능 준비를 위해 학교를 그만 두려는 아이들까지 속출시키면서, 학원으로 향하는 아이들의 발걸음은 마냥 무겁게 보인다. 종일 무기력하게 교실에 엎드려 있다가 해질녘 학원가를 향할 아이들의 모습에 어느 원주민 부족 아이의 물음이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수업에서 달리기 경쟁을 시키자, 아이는 ‘누가 이길지 아는데, 왜 달리라는 거죠?’라고 반문하였다. 그 아이에게 학교에서의 경쟁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왜 달리라고 하는 것인지, 그리고 왜 또 달리라고 하는지 말이다. 아이의 답변에서 우리는 경쟁이라는 현상이 인류의 보편적 현상이 아닐 수도 있다는 실마리를 얻게 된다. 경쟁에 익숙해진 우리의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에릭 에릭슨(E. H. Erikson)의 유년기와 사회에 기술된 수우(Sioux)족과 유록(Yurok)족의 아이들을 차례대로 만나보도록 하자.수우족은 미국 사우스다코타 지역의 초원을 지배하던 버팔로 사냥꾼이자 용맹함으로 이름을 떨치던 전사였다. 넓은 초원은 그들 삶의 원천이었고, 버팔로의 고기, 가죽, 뼈, 내장, 배설물은 모든 삶의 수단을 제공해주었다. ‘관대함’은 이들의 주요한 미덕이었고, 이는 버팔로를 사냥하며 유랑하는 삶에서 최소한의 생계 도구 외의 소유나 저장은 불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식량은 바닥날 때까지 공평하게 나누어졌고, 식량이 떨어지면 그들은 팀을 꾸려 사냥에 나서거나 식량을 나눠 받기 위해 친척을 찾아갔다. 그러했기에 보호구역의 근대식 학교를 다니던 한 아이는 그의 부모가 은행을 이용한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받기도 하였다.소유에 대한 개념만큼이나 수우족의 양육방식은 독특하였다. 그들은 놀라울 만큼 아이들의 양육에 관대했는데, 수유기간이 평균 3년에 이르렀다. 어머니의 초유는 짜서 바로 버려졌고, 어머니의 젖이 충분히 나올 때까지 이웃의 어머니들이 아이에게 공동으로 넉넉히 젖을 물렸다. 에릭슨은 이를 다음과 같이 추론했다. 갓 태어나 굶주린 아이가 안간힘을 다해 얻은 것이 찔끔 나온 젖 한 모금이라면, 과연 그 아이가 세상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이다. 또한, 아이들의 배뇨와 배변훈련은 매우 느슨하였는데, 보호구역의 백인 교사들은 ‘수우족의 부모들은 아이들을 방치한다’며 분노하였다. 그러나 수우족의 아이들은 그들의 배설물이 초원의 태양과 바람 아래 잘 마르게끔 배설하도록 양육되었고, 수우족의 시각에서 본 서구식 화장실은 햇볕과 바람을 막으면서도 정작 파리 떼는 막지 못하는 신통찮은 것이었다. 에릭슨은 긴 수유기간과 너그러운 양육방식이 수우족의 미덕인 관대함의 바탕이 되었다고 추론했다. 그리고 이렇게 성장한 수우족 아이가 근대식 학교와 교실 내의 경쟁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당연했다.반면, 캘리포니아 지역에 거주하던 유록족은 대서양와 만나는 클래머스강을 중심으로 거주하던 연어잡이 부족이었다. 대서양에서 헤엄쳐 온 연어는 강의 급류를 거슬러가 상류에 이르러 알을 낳은 후 생애를 마무리한다. 그리고 산란한 치어들은 강을 내려와 다시금 대서양으로 향한다. 연어의 삶은 유록족의 삶에 깊이 녹아 있었는데, 이들에게 주요한 미덕은 ‘정결함‘이었다. 유록족은 인색하고 의심이 많으며 강박적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가령 강 상류에 사는 유록족은 다른 호전적인 부족이 강 하류의 유록족을 공격하러 가는 것을 보고도 못 본 척 할 만큼 주위에 무관심했다. 이들은 사적 소유와 조가비 화폐에 익숙했고, 강을 둘러싼 수많은 강박과 금기를 가지고 있었다. 가령 사냥한 동물의 피나 사람의 분비물은 강에 섞여 들어갈 수 없었다. 또한 성관계를 갖거나 이성과 같은 집에서 잠을 잤다면, 그들은 다음날 아침 한증막에서의 정결 의식을 통과한 후 클래머스강을 헤엄치는 것으로 정화를 마무리해야 했다.유록족은 양육방식 또한 수우족과 판이하게 달랐다. 신생아에게는 열흘간 젖 대신 견과즙이 주어졌다. 수유는 6개월이 되는 어느 날 갑자기 끊겼는데, 유록족은 이를 ‘어머니 잊기’라고 불렀다. 이후 양육은 매우 엄격하였고, 아이들은 음식에 먼저 손댈 수 없었으며 더 달라고 조를 수도 없었다. 식사 자리는 위아래가 정해져 있었고, 아이들은 숟가락에 음식을 조금만 올려놓고 숟가락을 입에 가져갈 때에는 손을 천천히 움직여야 하며, 씹는 동안에는 숟가락을 내려놓아야 했다. 그리고 아이들은 이 과정 내내 돈과 연어를 생각하며 침묵하도록 교육받았다. 이는 유록족의 절제된 현실과 내면화된 환상 간의 간극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유록족의 내면에서 클래머스강 어귀는 연어가 밀려오는 수평선을 향해 기다림의 형태로 열려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연어 떼가 밀려와 그들에게 믿기 어려운 풍요로움을 선사하는 그 환각은 한편으로는 그들의 정결하고 절제된 일상을 유지시켜주는 환상이자, 현실에서의 예기된 보상이기도 하였다. 1년에 한 번 연어가 찾아오면 유록족은 강 양쪽 기슭에서부터 댐을 축조하기 시작하였는데, 댐이 완성되면 마침내 연어잡이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열흘간의 축제가 시작되었는데, 그들은 축제 기간 동안 금기를 깨고 이교도의 의식에서나 볼 수 있는 방탕하고 난잡한 해방의 시간을 가졌다.수우족의 불안이 ‘무력해지고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는 것’, 즉 이동하며 생활하는 무리로부터 낙오되는 두려움이었다면, 유록족의 불안은 ‘연어 떼가 돌아오지 않는 것’, 즉 양식이 없이 남겨지는 것이었다. 수우족이 관대함과 확대가족을 통한 긴장의 분산으로 그들의 불안을 이완시켰다면, 유록족은 연어 떼의 도래를 수동적으로 기다려야 하는 긴장과 불안을 자신의 몸 안에 체화시켰다. 유록족의 쪼그라든 일상의 이면에는 거대한 환상, 즉 클래머스강 어귀에 도래한 연어 떼의 환각이 열망처럼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거리두기를 마치고 우리의 일상으로 돌아와 본다. 겨울 방학에도 학원가에 늘어선 아이들의 행렬은 끊이지 않는다. 수우족과 유록족의 사례는 각각의 맥락 내에서만 이해가능하며, 그들의 미덕인 관대함이나 정결함을 우리 사회의 미덕에 견주어 해석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그러나 어떤 것은 우리에게 여전히 유의미한 질문과 단서를 던져준다. 우리 안의 불안이 대체 무엇이기에 혹은 우리의 환상이 무엇이기에, 우리의 일상은 어느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는 경쟁으로 숨 막히게 짜여진 것일까? 우리에게 연어는 무엇일까? 자연으로부터 너무도 동떨어져 버린 우리 삶의 방식과 주기가 이제 자연을 닮지 않은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안에 내재하는 불안과 열망을 질문하는 작업은 우리로 하여금 일상을 넘어선 진화를 가능케 할지도 모른다. 이어지는 수우족과 유록족의 두 번째 이야기는 이러한 탐색을 계속해갈 것이다. /김은영 교수김은영 미국 텍사스AM대학에서 교육학 석사, 조지워싱턴대학에서 임상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북대 교육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20-01-15

휴대폰 해킹 방지법

최근 주진모 씨를 비롯한 유명 배우와 아이돌 가수 등 연예인 10여 명의 휴대 전화 해킹으로 아주 사적인 SNS 대화들이 유출되는 사건이 있었다. 주씨는 휴대폰을 분실하거나 수리를 맡긴 적도 없고, 쓰던 폰을 판 적도 없다고 했는데 어떻게 카톡 대화가 털린걸까? 전문가들은 휴대폰에 있는 전화번호부 목록이나 캘린더 일정, 문자메시지 내용 등을 클라우드에 자동으로 백업되도록 해 놓았다가 백업해 둔 정보가 유출된 것으로 보고 있다. 클라우드 백업은 스마트폰을 분실할 경우 데이터를 카피해서 복구할 수 있기에 대부분의 사용자들이 활용하고 있다. 다만 이 경우 클라우드 서비스가 해킹된 게 아니라 아이디, 패스워드를 도용당했을 가능성이 더 높다. 통상 해킹당한 사례를 조사해보면 진짜로 해킹당한 게 아니라 여러 사이트에서 같은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쓰는 것을 해커가 알아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A라는 연예인이 영세한 쇼핑몰에서 쓰던 아이디와 비번을 클라우드와 카톡, 그리고 다른 사이트에도 공통으로 쓸 경우 보안이 허술한 사이트에서 아이디와 비번을 알아내 다른 계정을 털수 있게 된다. 따라서 휴대폰 해킹 방지를 위해서는 첫째 사이트가 달라지면 비밀번호는 바꿔 쓰고, 둘째 비밀번호 외에 생체 인식이라든가 SMS 문자 확인 등 별도의 인증 수단을 추가하는 이중인증을 켜둔다. 셋째로 스마트폰 OS나 앱을 항상 최신 버전으로 바로바로 업데이트하는 게 중요하다. 업데이트 공지가 뜨면 해커가 보고 스마트폰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를 알아내 하루이틀 안에 공격 코드를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첨단IT기술의 발달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개개인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