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의 대남 말 폭탄이 갈수록 험악해지고 있다. 일부 탈북인들이 북에 두고 온 부모 형제들을 깨어나게 해야 한다며 풍선에 매달아 날려 보내는 대북 전단을 문제 삼더니, 이제는 아예 전쟁 선전포고나 다름없는 비방들을 연일 쏘아대고 있다. 13일에 날아온 김여정의 폭언 미사일은 실로 오싹한 내용을 담고 있다.
김여정은 이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담화에서 “확실하게 남조선 것들과 결별할 때가 된 듯하다”며 “다음번 대적(對敵) 행동의 행사권은 우리 군대 총참모부에 넘겨주려고 한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멀지 않아 쓸모없는 북남공동연락사무소가 형체도 없이 무너지는 비참한 광경을 보게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북한의 도발과 생트집에 대해서 국방부는 물론 우리 정부 누구도 까칠하게 되받아치지 않는 진짜 이유를 모르는 사람은 이제 없을 것이다. 어엿한 대한민국 국민이 된 탈북인들이 당연히 누려야 할 ‘표현의 자유’를 김여정 한 마디에 마치 창고 안에 든 빈대 때려잡듯 온갖 부처가 다 나서서 타작 놀음을 하는 것도 일단 북한의 생떼를 달래기 위한 궁여지책이라고 치자.
그런데 아주 엉뚱한 곳에서 이와 대비되는 야릇한 공방이 벌어졌다. 바로, 재야 평론가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의 한 마디에 발끈하여 집권세력이 앞다투어 모다깃매를 가하고 있는 행태다. 정의당 당원 출신으로서 ‘진보 논객’임을 자부하는 그는 지난 조국 사태를 기점으로 집권당에 대해 예리한 비판의 메스를 가하고 있다.
그는 얼마 전 국민의당 초청 강연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을 겨냥해 “대통령에게 철학이 없다, 의전 대통령처럼 느껴진다”는 인상비평성 발언을 내놨다. 그러자 윤영찬, 하승창, 최우규 등 전·현직 청와대 참모들이 너도나도 나서서 그 발언을 융단폭격했다. 신동호 청와대 연설비서관은 기형도 시인의 시 ‘빈 꽃밭에서’를 동원해 비난 대열에 동참했고, 진중권은 곧바로 ‘빈 똥밭’이라는 패러디 시로 응수했다. 진중권은 “품격과 예의를 갖추라”는 신동근 민주당 의원의 공격에 대해서는 “대통령을 향해 ‘쥐박이’·‘귀태’라고 한 건 민주당”이라며 반격했다.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우리는 아직, 진중권의 비평 한 마디에 떼거리로 달려들어 몰매를 퍼붓는 충신(?)들이 핵 위협을 일삼는 북한의 막강한 실력자 김여정이 문 대통령을 향해 퍼붓는 악담에 일언반구라도 반박했다는 소식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말이 안 되는 이중잣대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대통령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과 우상화가 빚어낼 반민주적 통치행태다. 우리의 정치는 대통령의 제왕적 권한이 분산되고, 소수의견도 알뜰히 존중되는 다양성 충만한 선진 민주정치로 발전돼가야 한다. 김여정의 폭언에는 찍소리도 못하면서 건전한 표현의 자유는 충성경쟁을 벌이면서 무참히 깔아뭉개는 이중성은 타파돼야 한다. 진영논리가 빚어내는 어불성설(語不成說)의 도그마 앞에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휘청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