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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미니보험

미니보험은 단기·소액인 월 1만원 이하의 저렴한 보험료로 설계사를 만나지 않고도 모바일이나 온라인 등 비대면채널을 통해 간편하게 가입할 수 있는 보험상품으로, ‘간편보험’이라고도 한다. 불필요한 보장은 줄이고 저렴한 보험료를 앞세워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따지는 2030세대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보험사 수익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지만 회사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고 장기적으로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20~30대 젊은 고객층을 유치하기 위해서 보험사들이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국내 보험 시장에 미니보험 열풍은 지난해 1월 처브라이프생명이 20세 여성 기준 월 180원으로 가입할 수 있는‘오직 유방암만 생각하는 보험’을 처음 출시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삼성생명, 한화생명 등 대형 보험사들도 월 1만원 이하의 저렴한 보험료와 간편한 온라인 가입 등을 강점으로 내세우며 미니보험 상품을 출시했다.미니보험의 유행은 인터넷 및 모바일 뱅킹 등 온라인 금융 확산으로 보험 판매 채널이 변화 하고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2000년 이전만 해도 보험 가입은 가입자와 설계사 간 만남을 통한 대면거래가 중심이었고, 전속설계사 규모가 곧 보험사의 경쟁력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최근 보험판매 채널이 설계사 중심의 대면 채널에서 비대면 채널로 바뀌어가고 있다. 특히 지난 2018년 금융위원회가 소액·단기보험사의 자본금 요건을 개편하고 온라인 전문보험사 설립시 자본금 요건도 완화하면서 온라인을 통한 간편보험 판매가 늘기 시작한 것. 실생활에 필요한 보장 중심으로만 설계돼 보험료가 싼 대신 일반 보험과 비교해 보장 기간이 짧다. 사회변화에 발맞춘 보험상품의 변화가 눈부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2-12

오스카와 블랙리스트

김규종 경북대 교수2020년 2월 10일 아주 반가운 소식이 태평양을 건너왔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제92회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과 국제장편영화상을 수상한 것이다. 온종일 한국언론은 야단법석 북새통으로 시끌벅적하여 잔칫집 분위기가 물씬 풍겨 나왔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세계가 신음하고 있던 와중에 들려온 낭보(朗報)에 한국인 모두가 마치 자기 일처럼 기뻐하는 모습은 보기에도 참 좋았다.2003년 ‘살인의 추억’으로 재능을 선보인 봉준호는 ‘괴물’(2007)과 ‘설국열차’(2013)로 관객들의 주목을 한몸에 받았다. ‘문학교수, 영화 속으로 들어가다’ 연작(連作)을 7권까지 출간한 나는 일찍부터 그의 놀라운 성실성과 꼼꼼함에 감복한 터였다. 1980년대 전두환 군부독재를 영상으로 고스란히 살려낸 ‘살인의 추억’은 정말로 살 떨리는 ‘봉테일’의 극치였다. 당대의 사건사고와 시대상황을 손에 잡힐 듯 그려내는 치밀함과 준비자세는 실로 놀라웠다.‘괴물’의 도입장면은 특히 인상적이다. 주한미군이 독극물을 한강에 무단으로 방류함으로써 괴물이 태어났음을 보여주는 기막힌 장면. 이 나라 금수강산을 무참하게 도륙하는 강대국의 정복자 이미지를 간명하게 포착하는 장인의 솜씨. 근미래 인류의 처참한 양극화와 계급투쟁을 그려낸 ‘설국열차’ 역시 호모사피엔스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짚어낸 수작(秀作)이다.오스카 4관왕 소식에 정치권도 부산하게 움직였다. 나는 자유한국당 논평이 궁금했다. 봉준호 감독을 블랙리스트에 올려 불이익을 제공한 정치인들의 집합소가 자유한국당 전신 새누리당 아닌가! 그들이 작성한 블랙리스트에 이런 문구가 나온다. “대중이 쉽게 접하고 무의식중에 좌파 메시지에 동조하게 만드는 좋은 수단인 영화를 중심으로 국민의식 좌경화 추진.”문화를 통한 국민의식 좌경화를 꾀하면서 반미와 정부의 무능을 부각한 대표적인 영화로 그들이 꼽은 영화가 ‘괴물’이었다. 당시 집권당이자 이명박-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받들어 모신 집단의 의식수준이 그 정도였다.‘기생충’을 바라보는 자유한국당 인사들의 의식 역시 다르지 않다. “체제전복의 내용을 담고 있는 전형적인 좌파영화”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그런데 2월 10일 자한당 대변인 논평은 전혀 달랐다. “봉준호 감독의 오스카 수상은 세계에 한국영화, 한국문화의 힘을 알린 기념비적인 사건이다.” 공당의 입장이 이렇게 조변석개해도 괜찮은지 궁금하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감독을 국민의식을 좌경화하는 인물로 낙인찍고 불이익을 준 장본인들이 갑자기 희희낙락하는 저의는 무엇인가.더욱이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오스카상 수상을 우한 폐렴으로 침체와 정체, 절망에 빠진 대한민국에 전해진 단비 같은 희소식”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우한 폐렴으로 절망에 빠진 나라가 우리나라인가, 중국인가, 그것을 묻고 싶다. 우한 폐렴이란 말 대신에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을 써야 한다는 것도 알려주고 싶다.

2020-02-12

교육 백신 3 - 풍선 효과 차단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농부들은 감(感)을 잃은 겨울 날씨에 올 농사 걱정이 태산이다. 병충해도 병충해이지만 나무는 물론 대지가 철을 잃지 않을지 여간 걱정이 아니다. 아직 겨울 속에서 한 해를 살 힘을 비축해야 할 꽃눈들이 가지마다 한가득 자리 잡았다. 이미 매화는 1월 중순에 남쪽에서 개화를 시작했다. 또 대지는 입춘도 오기 전에 3월 들꽃들을 쏘아 올렸다.철을 지키려는 자연의 임계점이 극에 달했다. 자연이 철을 잃으면 그 결과가 어떨지 우리는 잘 안다. 과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인류의 대재앙을 예언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경고를 들을 귀가 없다. 또 지금 다음을 볼 눈이 없다. 더 안타까운 것은 눈앞의 이익에 빠져 인류의 위기를 알면서도 행동으로 옮길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껏 하는 말은 “예방”을 잘하자는 것뿐이다. 과연 예방이 어디까지 인간을 지켜줄 수 있을까?영하 14도를 기록한 지난달 30일, 올해 들어 처음으로 맛보는 겨울 날씨가 필자를 이런저런 생각에 빠뜨렸다. 그러다 문득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초등학교 졸업을 앞둔 딸 아이였다.“아빠, 부모님들 학교 교문 안으로 못 들어온대. 알았지!” 앞뒤 없는 통보에 필자는 잠시 당황했다. 아이의 다급한 목소리가 마음에서 가시기 전에 최근 본 뉴스가 생각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제○○회 졸업식은 각 교실에서 진행됩니다. 학부모님께서는 교실 및 건물 출입이 불가합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바뀐 졸업식 풍속도이다.필자 또한 고민이 컸다. 하지만 필자는 학부모님과 전교생이 모인 졸업식을 선택했다. 학교를 믿고 3년이라는 시간을 전국에서 영천까지 보내주신 학부모님들의 정성 때문에라도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전체 졸업식을 거행했다.산자연중학교 졸업식의 메인 프로그램은 학생들이 직접 쓴 감사장을 졸업식장에서 읽고 부모님께 전해드리는 것이다. 이 시간만 되면 학생들의 자세는 완전히 달라진다. 자신이 쓴 감사장을 끝까지 읽는 학생은 거의 없다. 학생들은 첫 줄도 잘 읽지 못하고 흐느낀다. 아이와 마주 선 부모님들은 아이가 감사장을 읽기 전부터 손수건을 꺼내신다. 그렇게 3년 동안 서로 전하지 못한 이야기를 눈물로 나누고 나면 학생도, 학부모도 더 큰 희망을 얻는다.그걸 보면서 필자는 풍선 효과를 생각했다. 지금 학교 모습은 균형을 잃은 시소이다. 교육의 본질적인 면보다 비본질적인 면이 훨씬 강하다. 한쪽이 비정상적으로 거대해지면 반대편은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 교육의 경계는 무한대가 아니다. 교육을 이루는 대표 요소는 학생, 교사, 교육부(청), 학부모이다. 이 네 가지 요소가 잘 조화를 이루어야 학교는 교육의 본질을 유지하면서 조금씩 외연을 확장할 수 있다.그런데 지금 학교를 풍선이라고 생각하면, 가장 힘이 빠진 쪽은 교사이다. 그다음은 학생이다. 그 결과 공교육은 붕괴하였으며, 사교육은 날개를 달았다. 교육의 직접 대상은 교사와 학생이다. 물론 학교의 잘못도 크다. 그래도 좀 서운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교육의 재건을 위해서 학원을 믿듯이 학교와 교사, 그리고 학생들을 믿어주면 안 되는지?

2020-02-12

헬렌 켈러의 실천

헬렌 켈러가 11세 소녀일 때 알고 지내던 토미는 자신과 비슷한 귀머거리이며 벙어리인 네 살이었습니다. 토미의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아버지까지 직장을 잃게 되어 누구로부터도 보살핌을 받을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헬렌은 꼭 자신을 보는 것처럼 가슴이 아파 설리번 선생님에게 말했습니다.“참 불쌍해요. 토미도 저와 같이 책을 읽고 말할 수 있게 교육을 시켜주세요.”“헬렌. 네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겠지만 네 부탁을 들어주기 어려울 것 같구나. 토미와 같은 아이를 가르치는 데는 돈이 매우 많이 든단다.”하지만, 소녀 헬렌 켈러는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날로 헬렌은 토미를 학교에 보낼 수 있게 도와 달라는 편지를 써서 많은 사람에게 보냈습니다.‘토미를 위해 내 용돈을 모두 털었어요.’라는 헬렌의 편지를 받은 사람들, 그리고 이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토미 돕기 운동’에 성금을 보내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1천600 달러를 모금한 헬렌은 토미를 보스톤에 있는 퍼킨스 농아학교 유치원에 보낼 수 있었습니다.사랑에는 공상적 사랑(Love in Dreams)과 실천적 사랑(Love in Action) 두 종류가 있습니다. 어떤 고상한 가치와 이상적 이념을 사랑한다고 우리가 종종 말하거나 믿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이런 사랑은 누구나 좋아합니다. 진심으로 그런 사랑을 내 가치관으로 받아들이고 신념처럼 확고하다 믿습니다. 하지만, 내 삶이 분주하거나 여유가 없을 경우 혹은 귀찮거나 힘든 상황이 오면 내 편의에 따라 언제든 유보하거나 멈출 수 있는 사랑입니다. 실천적 사랑은 다릅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도스토옙스키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실천적 사랑은 중노동이다. 불굴의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견뎌내는 것이다.”내 사랑이 공상적 사랑인지, 실천적 사랑인지 스스로 묻는 시간을 가져야 하겠습니다./조신영 인문고적독서포럼 대표

2020-02-12

‘한국적’ 보수와 우리의 과거

요즘 보수 통합신당을 추진하는 움직임이 다가오는 총선에 대비하여 활발히 진행되고 있고 더불어 그 주요 정치적 기반인 영남지역 전체도 술렁이고 있다. 과연 새로운 보수, 보수의 혁신은 준비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총선에서의 승리를 위한 수사일뿐인가? 정치세력으로서의 생존을 위해 불가피한 부분이 있겠지만 유승민 의원 등에 의해 진행되어온 바른 정당계열의 흐름이 독자적인 가치와 지지세력을 이끌어내지 못한 채 다시 전통적 보수에 해당하는 자유한국당과의 통합을 시도하는 것은 필자 개인으로서는 매우 실망스러운 일이었다.어쩌면 한국 정치에서는 권력의 탈환과 유지 외에 다른 실질적인 가치나 이념, 정책 상의 진전이나 쇄신을 기대하는 것은 아직도 무리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은 넓게 보면 오래전부터 진행되어왔고 현재에 이르러 참으로 심각한 수준에 도달한 한국사회의 정치적 양극화(polarization)의 결과이기도 하다. 다른 말로 이는 새로운 보수, 보수의 혁신이 이루어지려면 우리의 정치가, 그리고 그 이전에 우리 일상의 사회문화가 양극화의 논리와 인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오늘은 이 양극화의 두 ‘극’ 중 보수가 밟아온 궤적을 살펴 볼까 한다. 과연 한국에서 정치적으로 ‘보수(保守)’라 함은 거창한 도덕이나 이념까지는 아닐지라도 구체적으로 어떤 가치와 선택, 행위방식을 지칭하는 것일까?한국 보수, 정치적 보수의 역사는 색다른 면이 많이 있다. 전통적 친일 지주세력들의 정당으로 시작된 한민당을 진보정당이라고 부를 수는 없지만, 한국 보수정치의 역사는 이승만 대통령에게 버림받은 이들보다는 제1공화국 하의 자유당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한국 정치의 역사는 경쟁의 외관을 갖고 있긴 하지만 실상 일당지배의 역사, 즉 최소한 정권 교체가 거의 기대되지 않는 그런 정치지형이 오랫동안 유지되었고 이는 일본의 자민당의 장기집권 양상과 유사한 모습이다.이런 배경에서 우리가 보수라고 부르는 일련의 정치세력의 원류는 특별히 자신을 보수라고 부를 필요조차 없었다. ‘진보’가 실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곳에 보수라는 말은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6·25전쟁과 미국과의 강한 동맹관계 때문에 좌파의 이념과 가치가 정치공간에 들어올 가능성은 애초에 제거되었고, 그나마 자유주의, 반공주의를 일반적으로 주창하는 이들 속에서 그 중 좀 더 진보적이고 개혁적 색채를 가진 이들의 실제 수권 가능성은 대단히 미약했다. 그 이름을 나중에야 비로소 받게 되는 이 한국의 보수는 그저 지배세력, ‘사회지도층’으로 스스로를 구별하여 인식하면 족했고, 이들은 1960년대부터 경제개발과 근대화를 위한 국가와 재벌기업의 공고한 동맹과 이에 협력하는 여타 사회제도들 내의 엘리트들로 구성되어 한국 사회를 불과 2∼30년만에 ‘혁명적으로’ 변화시켰다.여기서 이 ‘혁명적’이라는 말이 한국 보수의 색다름을 잘 보여주는 부분이다. 일반적으로, 최소한 선진 유럽, 북미, 호주 등지의 나라에서 어떤 집단이나 세력을 ‘보수(conservative)’라는 말로 지칭할 때에 그것은 큰 무리 없이 이들이 전통과 안정, 도덕성, 민족 등을 중심가치로 키워드로 간직한 이들임을 추론할 수 있게 한다. 물론 보수정치세력은 어느 사회든 경제적으로 지배적인 세력을 대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개발과 기업활동의 자유를 옹호하는 것이 잦기는 하지만, 보수라는 말이 그것이 단지 현 상태, 기득권의 옹호라는 의미 이상이려면, 즉 독자적인 정치사상과 사회적 가치라는 중심을 갖고 있음을 주장할 수 있으려면 위의 가치들을 부분적으로라도 대변할 수밖에 없다.이에 비해 한국사회의 전통적 지배세력, ‘영원한 여당’이었던 한국의 보수는 현대화, 개발과 성장, 실효성(혹은 실리성), 그리고 미국, 일본과의 ‘혈맹적’ 결속을 불변의 교리로 간직해 왔다. 다시 말해 북한, 중국, 소련에 대항한 어느 정도 종속적이지만 미국, 일본과의 정치, 경제적 동맹의 우산 아래서, 양적 성장을 위해 밤낮으로 줄달음치고, 정-관-재계의 부정한 결탁도 서슴치 않으며 사회안정과 질서, 무엇보다 생산증대를 위해 강제적으로 사회질서를 부과하고 노동기본권을 포함한 인권 침해를 서슴치 않는 것이 보수를 구성하는 엘리트들과 국가의 모습이었다.여기서 보듯, 자유와 평등은 차치하고라도 본래 보수의 가치인 ‘전통’과 ‘민족’은 아무리 공식 연설과 주장에서 강조될지라도 생산과 성장, 현대화, 그리고 국가(민족과는 구별되는)에 의해 실제로는 대부분 묵살되는 항목이었다. 의아하게 들리겠지만 그것은 서양적 의미로 본다면 ‘진보’ 쪽에 더 가까운 가치를 대변하는 것이었다. 또한 현재 보수세력의 가장 목소리 크고 전투적인 부분인 태극기 집회에 꼭 미국의 성조기가 같이 휘날리는 것이나, 징용배상문제에서 촉발된 일본정부의 경제보복에 대항한 한국정부의 조치에 대해 아베에게 사과해야 한다는 주장이 이들에게서 공공연한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이다. 이는 한국의 보수가, 민족문제의 가장 예민한 부분인 ‘친일파’라는 비판조차도 무릅 쓰게 하는 다른 전통적인 목표, 애착의 대상이 있음을 보여준다.이런 모습들을 가치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의문스러운 점이 없지 않지만, 한국 보수의 이러한 모습은 동시에 우리가 살아온 모습이기도 하다. 근대화를 향해 줄달음치는 국가와 지배엘리트, 기업의 독촉과 강압 속에서 우리는 국가와 회사가 하라는 대로 따라가고 열심히 일하며 그 속에서 경쟁하고 자신과 가족의 출세와 영달을 도모하며 살아왔다. 또한 돈이 되는 일이라면 어떤 기회도 마다하지 않고 산도 허물고 강도 메우며 부귀영화와 권력을 위해서라면 친인척은 물론 온갖 인맥을 다 동원하는 것도 당연시했고 이 모두는 근대화와 국가, 경제성장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었다. 다시 말해 우리가 1970, 80년대를 살아왔고 추구해온 삶의 지배적인 부분은 바로 이런 보수의 모습이었던 것이다.이런 한국사회의 정치적, 이념적 지형에 새로운 요소가 대두한 것은 1970년대부터였다. 박정희 정부 하에서 사회적 정의와 민족적 민주적 민중적 정통성, 평등이라는 기치로 수렴되었지만 내내 만년 재야에 머물렀던 이 흐름이 1980년대에 본격적으로 정치세력화하고 87년 민주화를 거쳐 1997년에 와서 이들에 의한 독자적인 정권교체가 시작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앞서 보았듯 한국의 보수는 정교화되고 고매한 정치사상적 이념까지는 아닐지 모르지만, 사회문화적으로 지배적인 양태, 즉 우리가 살아오고 우리 사회가 작동해온 방식의 어떤 지배적인 모습을 대변하며 이것은 쉽게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 정도만큼 보수가 주창하는 혁신도 그에의 필요성과 압박은 별반 중요하지 않게 된다.이렇게 본다면 한국의 보수가 놓인 질곡은 곧바로 우리 사회가 벗어나지 못하는 질곡으로 그 핵심에는 바로 경쟁과 개발, 출세라는 한국 보수, 아니 현대 한국인의 중심적 가치가 놓여 있다. 한국적 진보의 유별남과 그 문제적인 측면을 보기 전에 먼저 이렇듯 우리의 과거의 모습을 요약하는 한국 보수의 가치가 특히 대구경북지역에 어떤 고유한 정치적 문제와 사회적 질곡을 낳았는지를 다음 마당에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구자혁 경북대 강사(사회학)

2020-02-12

양치기소년과 양두구육(羊頭狗肉)

강희룡 서예가양두구육은 양 머리에 개고기라는 뜻이다, 겉과 속이 다른 속임수를 꼬집는 말이다. 이 고사성어의 배경은 춘추시대 제나라 영공이 궁인들 가운데 잘생긴 여자들을 뽑아 남장을 시키고서 그 모습을 바라보며 즐거워하는 괴상한 취미에서 비롯되었다. 궁궐의 소문이 널리 퍼지자 백성들 가운데 예쁘다는 여자들도 모두 남장을 했다. 그러자 영공은 대궐 밖 여인들에게는 남장을 금한다고 포고령을 내렸다. 그래도 금령이 잘 지켜지지 않자 재상인 안영을 불러 그 까닭을 물었다. 안영이‘왕께서는 지금 궐내의 여인들에게는 남장을 시키시면서 궐 밖의 여인들에게는 남장은 금하고 계십니다. 이는 마치 밖에 양 머리를 걸어 놓고 안에서는 개고기를 파는 것과 같은 속임수입니다’ 라고 대답하자 곧 깨달은 영공은 궁중에서도 남장을 하면 안 된다는 명을 내렸다.다산 선생의 목민심서 호전육조(戶典六條) 제3조 곡부(穀簿), 곡식장부에 ‘윗물이 이미 흐리니 아랫물이 맑기 어렵다’라는 기록이 있다. 춘향전에 신관사또에게서 모진 매를 맞고 옥에 갇힌 춘향이의 심정을 노래한 12잡가 중 형장가에 ‘국곡투식(國穀偸食)하였느냐’라는 대목이 나온다. 국곡투식은 나라곡식을 훔쳐 먹는다는 뜻이다. 이런 기록들은 모두 나라를 이롭게 해야 할 위치에 있는 관리들이 그들의 영욕으로 되레 나라를 병들게 한다는 것이다.추미애 법무장관이 1월 9일 검찰고위직 인사파동을 야당이 비판하자 ‘검찰총장이 제 명을 거역한 것’이라고 했다. 그 후 2월 3일 신임검사 임관식에서는 윤석열 총장이 후배 검사들에게 강조했던 ‘검사동일체 원칙’을 비판하면서 검찰조직에 뿌리 깊은 상명하복의 문화가 있다며 검사들은 하찮은 존재가 아니라면서 상명하복 문화를 박차고 나가서 정의감과 사명감이 있는 존재가 돼 달라고 당부했다. 청와대와 연관된 고위층 비리를 수사하던 검찰수사라인을 개혁으로 포장해 장관의 인사권을 이용해 공중분해 시킨 것은 이 사건을 덮으려는 인상이 깊다. 또한 상명하복을 강조하며 검찰조직에는 이런 문화를 없애라고 한 것은 이율배반적인 행위이며 그가 말한 정의감과 사명감의 개념은 국민의 상식과 상반되는 느낌이 든다.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에 관한 공소장 미공개에 대한 비판에 앞뒤가 맞지 않는 변명은 신뢰감만 떨어진다.진실과 거짓게임에서 승자는 결국 진실 편에 있다. 거짓말은 곧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며 바로 척결대상이다. 거짓을 진실로 포장하려는 헛된 생각은 추악한 범죄이며, 이를 용인하는 사회는 병든 사회이다.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하고 진실을 왜곡하기 위해서 공직자로서 저지르는 비도덕적인 행위를 바로 ‘양두구육’이라 일컫는다. 강렬한 메시지를 담은 고대 그리스 이솝의 ‘양치기 소년’ 우화는 거짓말은 매우 나쁜 것으로 그 결과는 참혹한 불행을 자초한다는 교훈을 강조하고 있다. 거짓으로 국민의 눈과 귀를 속이고자 한다면 이는 이른바 양치기 소년의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스스로의 몸이 반듯하면 단속하지 않아도 모두가 따르지만, 바르지 못하면 아무리 단속해도 따라주지 않는다는 ‘논어’의 구절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2020-02-11

블랙 코미디

블랙코미디는 고통, 잔혹, 가난, 죽음 등 비극적 소재로부터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희극의 한 장르다. 비극은 극이 다루는 개인적 고통의 과정이나 의미를 잘 전달하지만 관객을 웃게 하는 일은 없다.그러나 블랙코미디는 보는 이로 하여금 익살스러움에 웃음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것이 비극과 다르다. 익살스럽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지극히 현실적이고 현실에 존재할 수 있는 가혹한 내용이 있음을 깨닫게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갖게 하는 것이 특징이다.정치인을 풍자한 유머에서 블랙코미디를 접할 기회가 종종 있다. 여기서 하나의 사례를 들어보자. 제목은 ‘모두가 개’.어느 부패 정치인 세 명이 이름난 보신탕 집을 찾았다. 세 명이 모두 자리에 앉자 종업원이 다가와서 그들에게 물었다. “모두가 개요?” 정치인들이 답했다. “네”.부패하고 무능한 정치인에 대한 국민적 불만을 그려낸 블랙코미디의 한 부분이다. 이런 풍자를 통해 국민은 정신을 순화하는 일종의 카타르시스적 효과를 얻어낸다. 정신분석학적으로 말하면 마음의 상처를 털어내는 정신요법이라고도 할 수 있다.대구출신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한국 최초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이 영화는 한국사회를 풍자적으로 비판한 블랙코미디 스타일이다. 반지하에 사는 가족과 고급저택에 사는 두 가족의 우연한 만남을 소재로 현대사회의 계급과 계층의 문제를 통렬하게 비판한 작품이다.빈부격차와 양극화로 단절된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코믹한 터치로 그려 관객도 부담 없이 즐겼던 영화다.이제 삼류인 우리의 정치만 바뀌면 대한민국은 세계 1등 국가라는 말이 나온다. 블랙코미디의 소재가 될 만한 우리 정치인의 행동, 각성해야 할 때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02-11

고난 속에서 꽃이 피다

허버트 웰스는 아버지가 운영하던 도자기점이 망해 버리자 포목점의 종업원으로 일했습니다. 그는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가게를 청소하고, 난로에 불을 지피고, 쉴 틈 없이 일하면서 하루 14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이렇게 착하고 성실한 허버트 웰스가 어느 날 한 아이를 구하려다 그만 사고를 당해 한쪽 다리가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몇 개월 동안 발에 추를 매달고 침대에서 고생했으나 뼈가 잘 붙지 않아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1년을 꼼짝하지 못한 채 누워 있는 바람에 허버트 웰스는 책을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했습니다.다리가 완치된 후에도 허버트 웰스는 축구 시합을 하다가 넘어져서 신장과 오른쪽 폐가 파열되고 피를 많이 흘려 위험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의사는 생명이 위험하다고 했으나 그는 생사의 갈림길을 넘나들며 무려 12년을 투병했습니다.그러나 허버트 웰스는 12년 투병 기간에 수많은 생각을 했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재능을 키웠습니다. 결국에 그는 건강을 회복하여 ‘타임머신’ ‘우주전쟁’ ‘세계 문화사 대계’ 등 평생에 걸쳐 100권 이상의 책을 썼고 그것은 모두 전 세계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는 위대한 작품의 반열에 오릅니다.“生於憂患(생어우환)이요 死於安樂(사어안락)”‘맹자(孟子)’에 나오는 말로 지금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 결국 나를 살리는 계기가 될 것이고, 지금 편안하고 안락한 상황이 나를 죽음으로 내몰 것이라는 뜻입니다.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향료는 꽃이나 열매에서 추출한 것이 아니라 병든 고래의 기름에서 나오는 물질이 가장 향기롭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울림이 깊은 소리를 내는 바이올린은 수목 한계선에서 비바람을 맞으며 수십 년을 웅크리고 있던 단단한 나무로 만든다고 하지요. 우리에게 수시로 다가오는 고난은 어쩌면 우리 삶을 꽃피게 하는 진정한 벗인지도 모릅니다.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2-11

마스크 단상

박화진전 경북지방경찰청장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지구촌이 신음하고 있다. 뚜렷한 백신이 없어 개인위생과 접촉차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개인위생 유지와 접촉차단에 효과적인 방법이 마스크착용이라고 한다. 급작스런 마스크 수요 폭증으로 일부에서 사재기 조짐까지 일고 있어 공동체 의식도 더욱 절실할 때다. 거리에 많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다니는 것이 보인다. 활기찬 거리 모습이 사라진 것 같다. ‘눈 먼 자들의 도시’ 같은 영화 속 음산한 도시의 모습을 연상케 된다. 함께 걸어가는 사람과 대화를 하는 모습도 잘 보이지 않는다. 침묵의 도시로 변하는 게 아닐까하는 괜한 걱정까지 해본다. 마스크가 입을 막고 있으니 전염병재난을 넘어 소통재난까지 몰고 온 것 같다.따져보니 그동안 세상이 너무 시끄러웠다. 참다못한 조물주가 무분별하게 말들을 내뱉는 인간의 입을 잠시 봉하려고 특단의 조치(?)를 내린 것 같다는 엉뚱한 상상이 문득 들었다. 참이든 가짜든 말들이 범람하고 있다. 말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적 가치다. ‘그 입 다물라’고 제지했다가는 민주주의 공적으로 몰릴 것이다. 그러나 말에도 절제와 책임이 따르게 된다. 특히 가짜 말을 하고도 ‘아니면 말고’식의 무책임한 말들이 난무하는 것은 심각한 일이다. ‘웅변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말의 성찬 세상이 되었다. 넘쳐나는 정보와 빠른 지식습득으로 사람들이 똑똑해진 탓이다. 말은 하는 것보다 듣는 것이 제 맛이다. 사람 몸에 입은 하나요, 귀가 두 개인 것도 듣는 것을 많이 하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남의 말은 잘 들어주지 않은 채 자신의 말만 늘어놓게 되면 불통의 싹이 튼다. 좋은 토론회 여부는 상대의 말을 잘 듣는지 살펴보면 된다. 상대의 말은 건성으로 듣고 머릿속으로는 자신이 할 말을 생각하고 있으면 겉도는 토론이다. 시끄러운 말 싸움터로 변질될 수 있다. 회의진행 모습을 보면 그 조직의 발전가능성이 보인다고 한다. 상사나 의사결정권자의 발언시간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면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어떤 조직이든 현실적으로는 자유로운 의견개진이나 토론이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회의가 윗사람의 일방적인 지시사항 전달에 불과한 상사만의 말경연장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청득심(以聽得心)’을 지휘방침으로 내건 경찰지휘관이 있었다. 군이나 경찰조직과 같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하는 조직일수록 부하는 마스크를 착용한 것과 같은 상태가 되는 경우가 많다. 부하직원의 말을 경청하겠다는 의지의 피력이었던 것 같다. 남의 말을 듣는 일은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하다. 잘 듣지도 않고 내 말이 나오는 그때부터 그들의 목소리는 커지고 말은 많아지며 세상은 시끄럽게 된다.선거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 같다. 내 생각과 의지를 들어달라는 선량후보자들의 말과 확성기 소리들이 곳곳에 나부낄 것 같다. 그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여 제대로 된 말을 듣고 선택해야겠다. 물론 침 튀기며 코로나 바이러스 같은 말을 하는 것은 피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우주의 기운(?)을 모아 이 말은 꼭 해야 할 것 같다.“조물주님! 말조심하겠으니 마스크 빨리 벗게 해주십시오.”

2020-02-11

스마트기술의 새로운 용처

곽지영 포스텍 산학협력교수·산업경영공학과얼마 전 방송된 모녀의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을 울렸다. 7살의 어린 나이에 혈액 암으로 세상을 떠나버린 딸 나연이와 엄마가 가상현실(VR)기술의 도움으로 만나게 되는 내용이었다.한 줄짜리 프로그램 요약과 짤막한 예고편 만으로도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목이 메었다. 본방송은 차마 보지 못하고 며칠 지난 후에야 찾아보았다. 본방 시청률은 높지 않았지만, 방송사 유튜브(Youtube) 채널 영상의 조회 수가 800만에 육박했다고 하니, 많이들 비슷한 마음이었나 보다.비판의 글도 보였다. 사람들의 감정을 상업적으로 이용했다거나, 남은 자녀들에게 너무 가혹했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나연이 엄마의 블로그는 너무 많은 관심이 쏠려 비공개로 돌렸다고 한다. 관점이 다른 사람들이 쏟아낸 댓글에도 적잖이 시달렸으리라.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짤막한 영상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이끌어 낸 것은, 누구에게나 대상이 다를 뿐 꿈에서라도 좋으니 얼굴 한번 봤으면 싶은 사람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꼭 삶과 죽음이 아니더라도 공간적 거리나 다른 여러 이유들로 만날 수 없어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사람 말이다.주변에서 빨리 잊으라고 닦달해도,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존재는 결코 잊히지 않는다. 좋았던 기억은 희미해져서 사진 속에만 남고, 오히려 내가 했던 나쁜 말과 행동, 못해준 것, 꼭 그런 것들만 오래 생각난다. 잊었다 싶다가도 생활 속 사물들이 문득 그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우리 가족에게는 외할머니가 그런 존재이다. 돌아가신지 삼십년이 다되어가는데 아직 그 이름만 떠올려도 눈물부터 글썽거린다.골목길, 철 대문, 석류나무 한그루만 봐도 할머니 생각이 나서 운다. 대문을 ‘딸랑’하고 열어젖히고 ‘할머니’하고 부르면, 맨발로 석류나무 앞까지 달려 나와 구수한 안동 사투리로 “엄머이 싸암들아~”하며 맞아 주시던 외갓집 앞마당의 기억 때문이다.길 가다 지구본을 봐도 목이 메어 온다.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시기 1주일 전 마지막 뵈었을 때였다. 다 낡은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이걸 들여다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몰라”하며 환하게 웃으시던 모습을 보고, 아르바이트해서 하나 사드리려 마음먹었던 지구본을 끝내 못 사드렸기 때문이다.한번만 더 생전의 고운 모습으로 움직이고 말하시는 할머니를 뵙고, “그때 제가 아르바이트해서 지구본 하나 사 드리려고 했는데 못해 드려서 아쉬워요”라고 한마디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할머니를 모셔둔 산소에 가더라도 모습을 뵐 수는 없으니, 가상세계 속에서라도 한번만 만나고 싶다는 나연이 엄마의 마음이 같은 마음 아니었을까.“아…. 한번만 만져봤으면 좋겠어….”라며 흐느끼던 나연이 엄마 얘기가 머리에 남아, 훌쩍이면서도 책을 뒤적여 가상 촉감 구현 기술에 대해 찾아본다.

2020-02-11

“TK는 동네북이 아니다”

이광오 자유한국당 경북도당 상임부위원장21대 총선을 앞두고 여야를 막론하고 인적교체 폭풍이 거세다. 혁신과 쇄신이라는 이름 아래서다. 정당마다 나름의 속사정이 있겠지만 자유한국당의 인사 혁신은 걱정스럽다. 혁신이 오로지 대구·경북(TK) 현역 국회의원 물갈이에 맞춰져 있다.혁신의 필요성을 이해하지만 왜 바꿔야하는지에 대한 설명과 이해를 구하는 것이 순서다. 그 순서도 국회의원을 주민 대표로 뽑은 주민들에게 먼저 물어야 하는 것이다. 한국당 지도부는 이런 과정을 생략하고 얼마를 자르겠다는 구체적인 선까지 내 놓고 있다. 한국당 지도부가 대구 경북 시도민을 완전히 장기판의 졸(卒)로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밖에 생각할 수 없다. 공천만 하면 대구 경북 시도민은 무조건 찍어라는 오만함이 느껴진다. TK는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 최근 서울의 여러 장외집회에도 적극 동참하고 지지하며 현재 한국 보수의 심장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그런데 대구 경북시도민의 동의도 없이 누구 마음대로 대구 경북 국회의원 대거 물갈이라니. 대구·경북 시도민들 사이에 “TK는 동네북인가”라는 자조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이유이다. 합리적이고 수긍할만한 공천기준도 없이 단지 TK지역에만 높은 교체율을 적용한다면 흔들리는 지역민들의 마음을 붙잡기에 역부족일 것이다. 정치의 구조개혁과 제도 변화없이 사람만 바꾼다고 대대적인 혁신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인적교체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도 아니다. 소신 발언으로 국회의 변화를 이끌어내려는 인물도 간혹 있었지만, 당론과 진영논리에 묻히며 구태정치로 회귀하는 것을 무수히 봐 왔다. 단순한 인적쇄신만으로는 역부족이라는 것은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자유한국당이 4·15총선을 앞두고 현역의원 ‘컷오프’를 위한 여론조사에 들어갔다. 일반 유권자를 대상으로 현역 의원에 대한 의정활동 평가, 지지 여부 등을 물어 그 결과를 당무감사 등과 합산해 컷오프 대상을 추릴 예정이다. 그러나 여론조사가 있기 훨씬 전부터 중앙당의 TK의원들에 대한 대폭 물갈이 소문으로 인해 이 지역 현역의원들은 본의아니게 죄인의 누명이 덧씌워졌다. 이로 인한 눈에 보이지 않는 지지율 유보는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현역의원들이 공천을 앞두고 이중, 삼중으로 불이익을 받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더욱이 지금 여권에 대한 민심이반이 점차 늘어가고 있지만, 야당인 자유한국당에 대한 지지율이 오르지 않고 있는 이 현실이 오로시 TK의원들의 책임인 것처럼 호도돼 있다.이번 총선에서 정권심판론만 외치며 반사이익만을 얻겠다는 식으로는 유권자들의 폭넓은 선택과 지지를 받기는 어렵다. 검증된 능력과 도덕성을 갖춘 인재를 영입하고 비전을 제시하는 등 환골탈태하는 새로운 모습의 공천도 중요하지만 그동안 모범적인 의정활동과 열심히 지역구 활동을 해온 현역의원들의 공적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단순히 선수가 많다는 이유로 또는 나이가 많다는 이유하나만으로 무조건 교체대상에 포함시킨다면 정당이나 지역의 발전을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닐 것이다.

2020-02-10

농촌의 미래, 여성농업인 창업에서

박은미 경북여성정책개발원 정책실장현재 농업 및 농촌의 환경변화에 따른 영향력은 첫째, 경쟁력 있는 고부가가치 농업으로 구조조정과 농산물 수입증가 및 수출시장이 확대된다. 둘째, 과학기술발전으로 인해 첨단기술 수용의 격차 확대, 정밀농업 발전, 농산물 상품화, 유통체계와 지속가능한 환경농업이 발전될 것으로 보인다. 셋째, 농촌어메니티 활성화, 농촌관광과 귀농·귀촌 인구 증가와 전원생활 수요가 증가한다. 넷째, 농업 생산력의 증가세 둔화와 농촌사회의 초고령화, 고령친화 실버농업의 부상, 청장년 전업농업으로 주력화 된다. 이와 같은 환경변화 아래 지역 농업은 고령자와 여성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 우선 과제일 것이다.그리고 농업은 제1차 산업 중심의 성격을 벗어나, 외식산업 그리고 식탁에 이르는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제2차 산업인 가공식품을 포함한 식품산업의 발전이 두드러지고 있으며, 문화·서비스업 등의 제3차 산업부분도 농업발전의 중요한 대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농촌현장 가공식품산업은 일거리 창출, 일자리 제공 그리고 제1차 산업부분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가공식품산업은 농가소득 증대에 큰 기여를 하고 있는 실정이며, 여성농업인 참여가 다른 영역에 비해 많은 양적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여성농업인의 사회적 지위향상과 전문농업인력 확보 교육, 노동가치 평가 등에 대한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현장에서 느껴지는 그 체감도와 실효성은 아직도 미비한 것으로 보여진다. 때문에 새로운 영역인 여성농업인 창업 활성화 정책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다. 첫째, 여성농업인 창업과 관련한 특성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창업으로 이어지게 되는 이유와 창업 형태, 그리고 창업 시 필요한 요소들에 대하여 적절히 이해하고 이를 기반으로 관련 정책 및 프로그램을 개발·운영할 필요가 있다. 여성농업인의 창업 지원 체계를 구현해야 할 것이다. 단순히 젠더적 측면에서 가질 수 있는 특성 뿐만 아니라 지역의 특수성을 함께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지역 여성농업인의 창업은 차별화, 특성화 및 소득화를 달성할 수 있는 체계적인 지원 프로그램 및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창업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대부분 가업 혹은 주변에서 친근하게 접할 수 있는 아이템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경향이 있다.창업이전 단계에서부터 진행되어야 할 차별화, 특성화 및 소득화 등에 대한 고민이 결여된 상태에서 창업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이에 여성농업인 창업과 관련하여 현장감 있는 교육과 컨설팅이 연계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 여성농업인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 특히 보수적인 농업사회의 분위기를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성농업인을 육성하고 사회적으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여성농업인 스스로의 비전 제시도 필요하다. 지역사회와의 동반성장에 관한 중장기적인 방향을 도모할 수 있는 내적 여건도 함께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2020-02-10

오늘은 뭘 배웠지?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의 작가 레오 버스카글리아는 어렸을 때부터 잠자리에 들 때마다 ‘오늘은 뭘 배웠지?’라고 스스로 물어보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초등학교 5학년에 학교를 그만두었지만 ‘세상이 곧 학교’라는 믿음과 ‘아침에 일어나 아무것도 배우지 않고 잠드는 것은 죄악’이라는 생각을 신념으로 갖고 있던 분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가족 모두가 한자리에 모이는 저녁 식탁에서 항상 이렇게 물었습니다. “오늘 네가 배운 건 뭐지?”아버지의 질문에 가족들은 한 가지 이상씩 꼭 대답해야 했습니다. 만약 배운 것이 없다고 말할 때는 식사를 못하게 할 정도로 엄격했습니다. 대신 아버지는 가족들이 말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하찮게 여기거나 소홀히 생각하지 않았고, 날마다 가족들이 말한 지식을 서로 연결하며 5∼6개의 새로운 사실과 경험들을 함께 배우고 나눌 수 있도록 했습니다.레오버스카글리아는 아버지가 늘 들려주었던 말을 잊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인간의 수명에는 한계가 있지만, 배움에는 끝이 없단다. 인간은 무엇을 배우느냐에 따라 달라진단다.”배움이란 무엇일까요? 호모에루디티오(Homo Eruditio), 즉 배우는 인간이란 용어를 만들어낸 연세대 한준상 명예교수는 ‘배우다’라는 의미를 이렇게 풀어 설명합니다. ‘배우다’라는 말은 ‘배다(임신하다)’에 하게 하다는 의미의 ‘우’가 들어가 ‘임신하게 하다’ 즉 속에서 자라게 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무언가를 배우는 일은 스스로 지식의 어미가 되어 우리 내면에서 피와 살을 붙이고 생명을 만들어내는 일입니다. 또 하나는 ‘스며들게 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스며드는 것은 조금씩 배어들어 큰 부분을 적시는 과정입니다.오늘도 배우는 삶의 현장으로 나갑니다. 무엇을 잉태하고 무엇을 스며들게 할지, 호기심 가득한 눈길로 세상을 바라봅니다./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2-10

느티나무 아래에서… 달성 도성암(道成庵)

햇살을 동무삼아 도성암까지 걷기로 했다. 굽이굽이 비슬산을 감고 오르는 콘크리트길을 한 시간 가량 걸으면 비슬산 최고의 참선도량, ‘천인득도지(千人得道地)’로 불리는 도성암이 나온다. 저마다 다른 수피의 나목들이 인사를 건네 오는데 나무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 사진을 찍고 눈을 맞춘다. 청량한 기운이 온몸으로 퍼지는 행복한 산행이다.남편은 목적지를 향해 성큼성큼 앞서 걷고 나는 겨울 산의 매력에 빠져 엉뚱한 짓을 하느라 시간을 지체한다. 그런 나를 재촉하거나 책망하지 않고 남편은 한 번씩 뒤돌아보고 기다려 준다. 우리는 서로를 인정하며 다른 생각에 잠겨 같은 길을 걷고 있다.잡목 숲이 끝나자 잘 생긴 소나무 숲이 한참 이어지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확 트인 골짜기 건너편, 해발 700미터 고지에 청기와가 보인다. 도성암은 선산 도리사, 팔공산 성전암과 함께 경북 3대 참선수도처 중 하나로 신라 혜공왕 때 도성(道成) 스님이 창건하였다.삼국유사에는 도성과 관기의 득도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신라 때 포산(비슬산)에 도성과 관기라는 두 성사가 있었다. 도성은 북쪽 굴, 관기는 남쪽 고개 암자에서 살며 구름을 헤치고 달을 노래하며 10여 리 거리를 서로 왕래하였다. 도성이 관기를 부르려고 하면 산속의 나무가 모두 남쪽으로 굽어 영접하는 것처럼 보여 이를 보고 관기는 도성에게 달려갔으며, 관기가 도성을 맞이하고자 하면 나무가 북쪽으로 구부러져 도성이 관기에게로 달려갔다.어느 날, 도성이 굴 뒤 큰 바위에서 좌선을 하던 중 바위를 뚫고 하늘로 올라갔는데 그 간 곳을 알 수가 없다. 얼마 뒤 관기도 도성을 따라 세상을 떠났는데 그 역시 간 곳을 알 수 없었다. 지금은 두 성사의 이름을 따서 그들이 살던 곳에 도성암과 관기봉이라 이름 붙였다. 도성이 도를 통하여 바위를 뚫고 사라진 바위를 도성암(道成巖) 혹은 도통바위(道通巖)라 부르고 그 아래에 도성암(道成庵)을 지은 것이다.대나무로 만든 소박한 정낭이 암자의 산문을 대신한다. 활짝 열려 있지만 수행도량이라 발소리를 낮춘다. 스님의 털신 하나가 단정히 놓여 있는 도성선원, 유리문에는 오후의 햇살이 그려놓은 나뭇가지들이 황홀하게 일렁인다. 청기와로 치장한 대웅전이나 푸른 소나무 숲, 예사롭지 않게 솟아 있는 도통바위조차 잊은 채 홀린 듯 커다란 느티나무를 바라본다.느티나무 아래에는 부부인지 연인인지 모를 남녀가 서 있다. 서쪽으로 기우는 햇살 때문에 얼마만큼의 거리를 둔 그들의 풍경은 검은 실루엣이 되어 그림처럼 아름답다. 마당 한 가운데 서 있는 삼층 석탑이 무색하리만치 다가가도 미동을 않는다. 간절한 몸짓이나 우수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옹이진 싸늘함이 감도는 그들의 침묵을 나무는 느긋하게 내려다보고 있다. 그들 사이에 흐르는 냉랭함을 피해 남편과 나는 조용히 대웅전 법당으로 향한다.뜰아래에는 잔설이 남아 있지만 비닐 방한복으로 무장을 한 법당 안은 아늑하다. 최고의 기도처에서 특별한 기도를 하고 싶은데 난감하다. 적당한 기도가 떠오르질 않는다. 마당 끝에 서 있는 느티나무만 아른거리다 얼떨결에 조금 전에 본 두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말았다. 행여 서로의 무게가 버겁고 힘겹더라도 모진 말로 상처주지 않기를, 인간은 슬프려고 태어났다는 말로 부디 위안 삼기를.법당을 나오자 그들은 떠나고 없다. 대신 중년 남자 하나 나무의자에 앉아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남자의 고독은 둘 사이에 흐르는 냉랭함보다 더 무겁고 안쓰럽다. 무너지지 않으려고 버티는 몸짓과도 같은 아픔이 느껴진다. 그것이 비록 잠깐의 휴식이라 할지라도. 곁에 있는 느티나무의 자태는 정령이 깃든 것처럼 신령스럽다.아무도 없는 느티나무 아래 남편과 나란히 선다. 미세먼지로 산 아래는 뿌연 허공에 잠겨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도성대사 나무’라는 이름을 가진 250살의 느티나무가 벼랑 끝을 지킨다. 고개를 젖히고 우러러 본다. 섬세한 가지들이 참선하듯 허공을 향해 저마다 길을 내고 있다. 맑고 청아한 기운들이 뻗어가는 길을 따라 아름다운 생명의 언어들이 물결친다.조낭희 수필가시름에 젖어 홀로 찾아와 머물다 가도 좋을 자리, 눈길이 향하지 않아도 무언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위로받고 용기를 얻을 수 있으리라. 조용히 서쪽을 응시하는 남편, 문득 그의 쳐진 어깨를 보고 말았다. 허무함으로 구멍 난 내 시간에 집착하느라 상대를 살피지 못했다. 언제나 햇살처럼 은은하고 든든한 존재로만 여겨왔다.가까운 사이일수록 거리를 두고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는 느티나무 같은 존재여야만 했다. 지치고 쓰러져서는 안 될 무게로 버티는 나무. 그가 가진 긍정성이 아픔과 시름 속에서도 사랑하며 살도록 이끌었으리라. 가끔은 모든 것 내려놓고 고독 속에 남겨지고 싶었을지도 모른다.숙연하다. 눈먼 나를 위해 기도한다. 나보다 남을 보살피는 마음으로 삶을 채색하고 싶다. 평온한 저녁 인사처럼. 암자를 나서는데 비슬산 정상에 하얗게 쌓인 눈이 보인다. 잔설 같은 낮달 하나 멀찌감치 서성인다. 낮달을 처음 본다는 남편의 말이 애잔하게 따라 걷는다.

2020-02-10

올바른 내용이 구축한 형식의 아름다움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의 영화 ‘두 교황’은 실화를 기반으로 한다. 우리는 이미 영화 속 결과를 알고 있고, 결과의 진행형 속에 살고 있다. 이 영화는 그 결과를 만들어 낸 과정과 교회가 오랜 세월 속에서 구축한 내용을 담는 그릇(형식)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2005년 요한 바오로 2세의 서거로 전 세계의 추기경이 바티칸으로 소환된다. ‘콘클라베’를 통해 라칭거 추기경은 베네딕토 16세로 교황에 즉위하고 종신직에 임한다. 하지만 그가 즉위한 뒤 교회는 보수화되고 가톨릭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각종 추문들이 물밀듯이 밀려들고 있었다. 변화무쌍한 시대에 엄숙하고 경직된 교리의 해석은 뒤쳐지고, 과거에 발목을 잡혀 진행되는 느린 행보에 대한 개혁의 목소리가 바티칸의 깊고 높은 곳으로 전달되고 있었다.2013년 베네딕토 16세는 교황직을 사임한다. 그리고 다시 ‘콘클라베’를 통해 남미의 호르헤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으로 선출된다. 영화의 시작을 전임 교황의 서거와 선출의 과정인 ‘콘클라베’로 시작해 교황의 사직과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로 끝을 맺는다.‘콘클라베’는 가톨릭 교회의 수장인 교황을 선출하는 선거 시스템이다. 라틴어에서 온 단어로 ‘열쇠로 걸어 잠글 수 있는 방’ ‘열쇠가 있어야 들어갈 수 있는 방’을 의미한다. 일체 외부의 간섭을 방지하고 선출되는 과정과 풍경을 사전에 차단해 비밀을 유지하는 엄격하고 장엄한 행사이기도 하다.영화에서 두 번의 ‘콘클라베’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선출된 2005년의 교황과 2013년의 교황, 두 교황의 대중을 향한 첫 발걸음을 준비하는 장면이 뒤따르고 같은듯 다른 모습이 흘러간다. 내용을 담는 형식이 달라진 것이다. 가톨릭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종교가 구축해 온 의식(형식)은 오랜 세월을 거쳐 진화되고 다듬어진 것으로 정통을 당대의 요구에 맞게 유지하고 변형시켜 온 결과물이다. 시대의 요구가 바뀔 때 종교는 어디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하는가. 오랜 세월동안 쌓아왔던 찬란한 형식, 그 속에 담겼을 종교의 숭고했던 정신과 시대정신이 충돌하여 또 다른 해답을 요구할 때 지도자는 어떤 결단을 내려야 하는가에 대한 과정을 영화 ‘두 교황’은 보여준다.교회에 실망한 아르헨티나의 호르헤 베르고글리오(현 프란치스코 교황) 추기경은 수차례 바티칸에 사직서를 보내지만 아무런 답신을 받지 못한다. 바티칸이 각종 문제로 당대요구를 원만히 수용하지 못하던 시점, 베네딕토 16세는 베르고글리오를 바티칸으로 호출하고 며칠을 함께 보낸다. 스스로가 적임자가 아님을 알고 퇴임을 마음먹은 베네딕토 교황과 현 바티칸의 행보에 사직서를 준비한 추기경의 며칠은 부드럽고 날카롭게 다가와 아름답고 유쾌하게 전개된다. ‘내용’과 그 내용을 담고 있는 ‘형식’이 다양하게 펼쳐지고 팽팽하게 당겨졌다 풀어지는 긴장과 이완의 과정이 바티칸을 배경으로 두 사람의 대화로 진행된다.올바른 내용이 구축한 형식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오랜 역사를 통해 다듬어진 형식에 대한 논쟁은 날카롭게 벼려진 단검을 들고 상대의 급소를 향하는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세상이 변화된 내용을 요구할 때, 형식의 경계를 허무는 일은 절대적 존재에게 또 다른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에 앞서 무릎꿇고 고해하는 스스로의 과오는 얼마나 숭고한가.‘신’은 이미 교황의 팔목에 채워진 만보계를 통해 ‘멈추지 말고 끊임없이 나아가라’고 계시를 내리지만 인간은 다른 곳에서 ‘신’의 응답을 찾고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 변화된 내용이 담겨질 새로운 형식을 찾아 만보를 지나 이만보 십만보.…. 끊임없이 행하라고 하셨으니, 스스로가 쌓은 형식을 허무러뜨리고 다시 짓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아름다운 일인가./문화기획사 엔진42대표*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의 영화 ‘두 교황’은 서울과 부산 일부 극장과 넷플릭스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2020-02-10

5%룰

5%룰은 상장기업의 의결권 있는 주식을 5% 이상 보유하게 된 경우와 보유한 자의 지분이 해당 법인 주식 총수의 1% 이상 변동된 경우, 그 내용을 5일 이내에 금융감독원과 한국거래소 등에 보고하도록 의무화한 제도를 말한다.이는 상장기업의 경영권 안정과 공정성을 위해 2005년 개정된 증권거래법 제200조 2항에 명시된 제도다. 이 제도의 목적은 자본 시장의 개방으로 투기적 펀드에 의한 기업 사냥이나 기업 간의 적대적 인수합병(MA)이 늘어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대응책의 일환이다.국민연금은 이같은 5%룰에 막혀 주주권 행사를 자유롭게 하지 못해왔다. 그러던 것이 지난 해 12월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가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 가이드라인’을 바꿔 주식 등의 보유목적 ‘경영권 영향 목적’활동이 아닌 ‘단순투자 목적’일 경우 보고기한 연장 및 약식보고가 허용되도록 했다. 이달 1일부터 시행된 개정 자본시장법 시행령에 따르면 배당관련 주주활동이나 단순한 의견표명, 회사및 임원의 위법행위에 대응하는 해임청구 등은 ‘경영권 영향 목적’활동에서 제외되고, 새로 신설된 ‘일반 투자 목적’으로 분류됐다.이에 따라 국민연금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차, 대한항공 등 국내 상장사 56곳에 대한 주식보유목적을 단순투자 목적에서 일반투자 목적으로 변경한다고 공시했다. 즉 국민연금이 이들 기업에 대해 배당확대를 요구하거나 위법행위를 한 이사에 대한 해임을 청구하는 등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 쌈지돈인 국민연금으로 확보한 주식으로 기업들의 경영권에 개입하는 것은 ‘연금사회주의’란 비판도 있다.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격언을 잊지말아야 한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2-10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국민의 기대가 너무 컸다.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으니 말이다. 정말로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대통령은 국민의 기대를 저버렸다. 기대는 실망으로, 실망은 분노로 바뀌었다. 대통령에게 속았다는 배신감 때문이다.대통령이 약속했던 진정한 국민통합은 허언(虛言)이었고, 나라는 ‘한 나라 두 국민’으로 분열되면서 서로를 부정하고 있다. 나라가 이처럼 두 동강 난 적이 없었는데,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중심에 대통령이 있다는 사실이다. ‘통합의 상징’이어야 할 대통령이 오히려 ‘분열의 원천’이 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의 ‘공화주의’가 무너지고 있다. 이제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대통령의 편 가르기’이다. 내 편만 바라보는 대통령의 ‘외눈박이 사고’는 정치지도자의 자세가 아니다. 베버(M. Weber)가 지적했듯이 정치인은 “국민에 대한 책임윤리와 자신의 신념윤리가 충돌할 때 당연히 책임윤리가 우선”이기 때문이다.청와대와 검찰의 정면충돌 역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다. 대통령이 임명한 검찰총장과 청와대가 전쟁 중이다. 대통령은 윤석열 총장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살아 있는 권력도 엄정히 수사하라”고 당부해 놓고서는 검찰의 칼날이 청와대를 향하자 ‘윤석열 죽이기’에 혈안이 되고 있다. 조국 사건의 수사팀을 교체하여 수사를 방해하면서도 대통령은 인사권의 정당한 행사라고 강변했다. 또한 검찰이 조국 사건의 공범으로 청와대의 최강욱 비서관을 기소하자, 그는 “검찰의 기소는 쿠테타이며, 윤석열 총장은 향후 출범하는 공수처의 수사를 받게 될 것”이라고 협박했다. 적반하장(賊反荷杖)이다. 범죄피의자가 검찰총장을 겁박하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이다. 대통령이 역설했던 ‘정의로운 나라’가 이제 보니 ‘내로남불 나라’였다.청와대의 선거개입 및 하명수사 의혹을 받고 있는 정무수석·민정비서관·반부패비서관·울산시장·전 울산경찰청장 등 13명이 무더기로 기소되었다. 대통령의 친구인 송철호를 울산시장에 당선시키기 위하여 청와대가 총동원되었다는 혐의이다. 국회가 검찰의 공소장 제출을 요구하자 추미애 법무장관은 무엇이 무서운지 “내가 책임지겠다”면서 이를 거부하였다. 이게 정의부(正義部)의 책임자인 법무장관의 행태인가? 국민이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는데도 두려움을 모른다. 동아일보의 특종보도로 공개된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청와대가 총괄 지휘하여 7개의 비서관실이 조직적으로 선거범죄를 저질렀다. 참으로 놀랍다. 청와대가 마치 범죄소굴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이게 나라인가?대통령의 언행은 일치되지 않고, 비서들은 내 편 챙기기에 바쁘다. 통합을 말하면서 갈등을 부추기고, 정의를 말하면서 불의를 합리화한다. 친구를 위해서라면 선거부정도 서슴지 않는 권력, 범죄피의자가 권력의 힘을 믿고 수사검찰을 겁박하는 나라, 그것이 바로 대통령이 말하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인가?

2020-02-10

타조의 밀명(密命)

안재휘 논설위원꿩은 다급하면 머리를 풀숲에 처박는 습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눈에 세상이 안 보이면, 세상도 자기를 못 볼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타조 역시 맹수를 만나면 모래 속에 머리를 처박는 것으로 소문나 있다. 17세기 아프리카에 당도한 탐험가들은 타조가 위협을 느꼈을 때 머리를 감추는 반응을 목격했다는 기록이 있다.조류와 포유류처럼 태생부터 환경 인지력을 가진 개체의 경우 유체시절에는 자기중심적으로 환경을 인식하기 때문에 ‘내가 못 보는 건 상대도 못 본다’는 방식의 지각을 한다고 한다. 프랑스어에는 ‘불편한 진실’을 애써 외면하려는 아둔한 짓을 일러 ‘타조 행세를 한다’라는 말이 있다. 대략 ‘꿩은 머리만 풀 속에 감춘다’는 우리 속담과 의미가 다르지 않을 것이다.무더기로 기소된 청와대의 2018년 6월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관계자들 공소장의 국회 제출을 거부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에 대한 정치권 논란의 파장이 심각하다. ‘잘못된 관행’이라며 하필이면 청와대 관련 공소장부터 제출을 막은 추 장관의 행태를 놓고 호사가들은 ‘다급해서 머리를 풀숲에 처박은 어리석은 꿩’에 빗댄다.결국 추 장관의 결정은 오히려 공소장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최고조로 끌어올렸고, 언론에 의해 전문(全文)이 공개됐다. 비장한 문투로 작성 제출된 72쪽 분량의 공소장을 읽어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혀를 찬다. 박근혜 정부를 ‘국정농단’의 죄목으로 잔인하게 단죄해온 이 정부가 저지른 일이라곤 도무지 믿기지 않을 만큼 범죄혐의 내용이 험악하다.사람들 복장을 더욱 터지게 하는 대목은 도무지 앞뒤가 안 맞는 추 장관의 거듭된 변명이다. 실정법을 장관의 훈령으로 뒤집은 것부터가 명백한 하자인데, 하다 하다 안 되니까 공소장 공개 자체가 ‘위헌’이란다. 이 나라가 언제부터 헌법재판소장도 아닌 법무장관이 ‘위헌’여부를 결정하는 나라가 됐나. 사건을 담당해온 수사팀들을 공중 분해하다시피 해놓은 횡포도 그렇거니와, 추 장관이 욱대기는 ‘사법 정의’는 도무지 합법적이지도 양심적이지도 않다.여당에서마저 ‘긁어 부스럼’이라는 비판이 대두되면서, 추 장관의 정치 행보가 주목거리다. 과거 추미애 의원이 국회에서 공소장을 흔들며 핏대를 세우던 여러 편의 동영상을 보면 볼수록 자꾸만 모래밭에 머리를 처박은 타조의 모습이 연상된다.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들을 사법처리할 적에는 입도 벙긋 안 하던 ‘피의자 인권’을 자기들 범죄 수사에만 적용하는 극단적인 후안무치는 멀쩡한 정신으로 견뎌주기가 참으로 벅차다.하긴, 모래 속에 머리를 처박는 타조의 행동을 놓고 ‘진동을 느껴 도망칠 방향을 찾는 지혜’라는 다른 주장도 있으니 좀 더 두고 볼 일이다. 대한민국이 언제부터 고작 이런 수준의 어설픈 권력 농단으로 점수를 따서 국무총리도 되고, 대통령도 되는 나라였던가 싶다. 필경 타조가 은밀히 받아들었을 밀지(密旨)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 궁금하고 또 궁금하다.

2020-02-09

흔들리는 중국몽

중국몽(中國夢)은 시진핑의 대표적 통치이념이다. 위대한 중화민국의 부흥을 뜻한다. 하지만 내심으로는 봉건왕조 시대 조공질서를 통해 세계의 중심역할을 했던 전통 중국의 영광을 21세기에 되살리겠다는 뜻으로 보는 해석이 정통이다.중국의 G-2 부상으로 서방국가는 중국을 경계의 눈으로 살피고 있다. 특히 트럼프 미 대통령은 중국 경계의 선봉장에 서있는 인물이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이달 17일 발행될 주간지 표지에 마스크를 쓴 시진핑 주석의 일러스트를 게재한다고 밝혔다. 커버스토리는 “코로나 바이러스 대유행은 ‘중국의 세기’를 만들고 싶어한 시진핑의 꿈을 깨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지금 중국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대량 확산으로 최대 위기에 봉착해 있다. 중국 공산당의 치밀한 통제에도 소셜미디어에선 교묘히 시주석을 비난하는 글들까지 나돈다. 뉴욕타임스는 기고가 글을 통해 “중국 소셜미디어는 강력한 검열에도 온갖 화로 가득 차 있다”고 했다. 중국은 현재 공식적으로 3만명이 넘는 신종 코로나 감염환자가 발생했으며 사망자는 700명을 넘었다.중국내 불안감은 극에 달해 있다. 최근 우한 폐렴의 내부 고발자였던 젊은 의사 리원량의 죽음으로 중국인의 분노가 점차 시진핑을 향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중국 공산당의 불투명하고 권위적인 통치가 신종 코로나 사태를 키웠다는 것에 대한 원성이다.시진핑 주석은 미중 무역전쟁과 홍콩의 반정부 시위에 이어 또 한번의 시련에 봉착했다. 신종 코로나는 사태 수습을 예측할 수 없다는 점에서 어떤 것보다 불안한 정치적 변수다. 신종 코로나가 올 중국의 경제성장률을 4%가까이 떨어뜨릴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시진핑의 중국몽이 온전치 않아 보인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2-09

우리 안의 불안과 경쟁: 수우족과 유록족의 이야기(2)

앞선 글에서, 우리는 수우족의 관대함, 유록족의 정결과 절제라는 미덕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상이한 미덕의 저변에는 각기 다른 불안이 자리 잡고 있었다. 수우족의 불안은 무리로부터 낙오되는 것이었다. 가령 버팔로 떼나 적이 나타나면 그들은 서둘러 이동해야 했고, 그 때 마침 누군가가 산통 중이었다면 그 여성은 홀로 남아 아이를 출산하고는 서둘러 부족을 뒤따라가야 했다. 반면, 연어잡이 유록족에게 있어 가장 큰 불안은 연어 떼가 오지 않는 것이었다. 연어가 회귀하기까지 1년이라는 긴 시간을 기다려야만 했던 유록족은 그들의 일상을 정결과 절제라는 미덕을 중심으로 조직하였다.이 두 부족의 사례가 반드시 각각의 맥락 내에서 이해되어야 함은 분명하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잠시 불안이라는 심리적 기제에 한정하여 비교와 유형화라는 과감한 시도를 해보자. 의외의 시사점들이 발견된다. 먼저 우리 사회가 수우족과 유록족 중 어느 쪽과 더 닮아 있는지 질문해 보자.에릭슨이 수우족을 방문했을 때, 근대식 학교의 교사들은 아이들이 걸핏하면 결석하거나 일이 생기면 그냥 집으로 가버린다며 불평하였다. 수우족 아이들이 근대식 교육의 경쟁에 적응하지 못했던 사실은 쉽게 납득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유록족은 이미 소유와 근대적 화폐 개념을 가지고 있었고, 서부로 밀려드는 백인과 소유권 소송을 하고 있었다. 에릭슨의 기술 내에 유록족 아이들의 근대식 학교 적응에 대한 설명은 부재하지만, 그들의 양육에서 강조되었던 강박적 자기 절제 훈련이 근대 학교에서의 적응에 긍정적으로 작용하였으리라는 추측은 합리적일 것이다.유록족의 강박적 절제는 연어 떼의 회귀에 대한 불안을 견디기 위해 환상과 환각을 일상화시키고, 이 환상을 통해 내면과 신체를 통제하는 과정의 산물이었다. 그들이 환각에서 연어를 보는 일은 연어가 현실에서 오는 것과 동일한 것이었다. 즉 그들은 기다림의 시간에서 현실을 그들의 내면에 종속시켰던 것이다. 어찌 보면, 그들에게 연어는 열흘 동안만 현실일 뿐, 나머지는 모두 내면화된 연어였다. 그들은 각자의 내면에 존재하는 자신만의 연어와 관계하고 있었고, 그들에게 부족이란 매우 느슨한 개념이었다. 그들은 철저히 개인주의자들이었고, 이들이 서구적 개인주의와 친화성을 가지리라는 것은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환상과 내면화된 연어가 우리에게 비범하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 안에 존재하는 연어에 대한 반증일 수 있다.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근대식 학교와 경쟁에 적응할 수 없었던 수우족에게서 우리와의 기묘한 유사성을 발견하게 된다. 유록족의 불안이 개인과 개인의 내부에서 개별화된 세계와의 사이에 놓여 있었다면, 수우족의 불안은 개인과 자신을 두고 떠나는 부족과의 사이에 놓여 있었다. 수우족의 불안은 결코 내면으로만 향하도록 통제되지 않았다. 이는 유록족이 연어 떼를 기다려야만 하는 수동적인 행위자였던 반면, 수우족은 버팔로를 쫓아 사냥하는 능동적인 행위자라는 점에서도 차이를 찾아볼 수 있다. 능동적 행위자였던 수우족은 그들의 불안과 공포를 외부의 적을 향해 전환의 형태로 완화시킬 수 있었던 반면, 유록족은 그들의 불안을 내면으로 체화시켜야만 했던 것이다. 이러했기에 에릭슨은 짧은 관찰에서도 수우족이 어떻게 그들의 공격성을 분출시켰는지에 대해 기술할 수 있었다. 그의 관찰에 따르면, 3년에 달하는 긴 수유기간 동안 아이의 이가 나면서 발생하는 최초의 공격성은 어머니의 젖을 무는 행위가 처음 나타났을 때 아이의 이마를 세게 가격하는 것으로 억제되었고, 이 때 아이의 우렁찬 울음은 용맹한 전사와 사냥꾼의 자질로 격려되었다. 즉 아이들의 공격성은 유예되었고, 이후 사냥감과 외부의 적을 향한 용맹함으로 전환 분출되었던 것이다. 또한 양육과정에서 아이들은 형제들을 지켜봄으로써 배뇨와 배변훈련을 익혔고, 놀림과 수치심을 의식하면서 사회성을 습득하였다. 에릭슨은 이러한 방식으로 습득된 사회성이 버팔로 사냥에 필수적이었던 협력과 형제애의 토대와 맞물려 있었다고 추론한다. 다시 말해, 수우족은 그들의 확대가족과 무리로부터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었던 것이다.우리가 가진 교육열의 중심에는 타자와 이웃, 주위를 끊임없이 살피는 우리의 모습이 공존한다. ‘대세’라는 용어만큼 오늘의 우리사회를 보여주는 언어는 드물지도 모른다. 주위와 대세에 예민한 오늘의 모습은 우리가 겪어온 근대적 경험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근대화와 식민지 지배라는 험난한 시기를 거쳐 급격한 산업화의 역사에서 우리는 그 누구보다 능동적 행위자로 적응해야 했고, 시간적, 역사적 연속성(historical continuity)의 감각에 예민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능동적 행위자로서 변화에 적응했는가 혹은 대세를 놓치지 않았는가는 실제 현실에서의 커다란 차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맨 손으로 시작한 사업이 어떠한 선택들을 통해 재벌로 성장하였는지의 성공신화에서부터, 당시 강남에 땅 한 귀퉁이라도 사놓았는지, 그 아파트에 청약을 넣었는지, 학군을 잘 골라 이사를 갔었는지, 우리 아이를 그 학원에 보냈는지 등등 말이다. 아메리칸 드림이 노력에 대한 보상의 꿈이라면, 우리의 성공 신화는 급변하는 대세와 시류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해왔는가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시류에 대한 민감성과 현실적 부의 창출 사이에서 개인이 경험한 인과성은 능동적 행동주의를 더욱 부추기며 효능감을 불러일으킬만한 것이었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의태(mimicry)는 유기체가 스스로를 보호하거나 먹이를 잡아먹기 위해 주변에 맞춰 자신의 모양, 색깔, 자세 등을 변화시키는 현상을 말한다. 이러한 의태는 급변하는 사회에서 생존을 위해 우리 사회와 개인들이 자연스럽게 터득한 적응방식일 수 있다. 그리고 이제 대세, 경쟁으로부터의 이탈과 낙오는 우리가 안고 있는 불안일지도 모른다. 주변에 맞추어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유기체에게 있어, 내면의 초점은 스스로가 아닌 주변과 타자에 맞추어져 있을 것이고, 타자와의 끊임없는 비교는 개인의 내면을 고갈시키는 관성일 수 있다. 종일 교실에 엎드려 있다가 방과 후 학원으로 향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이제 오늘날 일상의 일부가 되었다. 승자가 없어 보이는 이 끝없는 경쟁에서 쉽사리 내려설 수 없는 것은 의태가 가진 관성 그리고 낙오에 대한 불안일지도 모르겠다.안동 하회마을의 강 너머에는 높은 절벽이 있다. 절벽의 정상에 오르면, 하회 마을과 굽이치는 낙동강 상류의 절경을 보게 된다. 절경을 보고 내려오면, 중턱 즈음 나무들로 가려진 곳에서 유성룡 선생과 그의 형님이 거주했던 곳들을 발견한다. 왜 이들은 절벽의 정상에 떡하니 스카이캐슬을 짓지 않고, 중턱에 집을 지었던 것일까? 하회탈을 꼼꼼히 살펴보면, 당시에도 대세와 시류에 대한 대중의 열망은 분명 존재했었다. 그러나 그들은 스카이캐슬을 택하지 않았고, 그 미덕은 우리의 내면 어느 깊은 곳에 집단 무의식의 형태로 남아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미덕은 앞으로 우리가 교실이라는 공간에서 다시 불러일으킬 희망의 한 자락이 될 것이다. /경북대 교수

2020-02-09

헬렌 니어링의 삶

김현욱 시인책은 인간관계와 비슷하다. 어떤 책은 항상 가까이 두고 자주 보고 싶지만 또 어떤 책은 몇 장 넘기다 이내 멀리 던져둔다. 이사를 다녀도 꼭 챙기는 책이 있는가 하면 이때다 싶어 분리수거장으로 내다버리는 책도 있다. 첫사랑 같은 책이 있는가 하면 두고두고 꺼내 읽으며 위안을 받는 오랜 친구 같은 책도 있다. 내 돈 들여 사는 꼭 사야하는 책이 있고,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 책이 있다. 모서리를 접거나 삼색 볼펜으로 정성스레 밑줄을 치는 책이 있는가 하면 잡지책처럼 설렁설렁 훑어보고 덮어버리는 책이 있다. 책과 인간은 참 많이 닮았다. 인간을 통해 다른 인간으로 나아가듯 책을 통해 다른 책으로 나아간다. 최근에 읽은 헬렌 니어링(1904∼1995)의 자서전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가 그러하다.헬렌의 삶을 이해하려면 인도철학자 크리슈나무르티와 경제학자 스코트 니어링을 알아야 한다. 헬렌은 한때 크리슈나무르티의 연인이었다가 스물네 살에 스코트 니어링을 만나 평생을 함께 한다. 스코트는 헬렌보다 스물한 살이나 많았다. 1928년 스코트가 삶의 밑바닥까지 추락했을 때, 헬렌은 스코트의 든든한 반려자가 되어주었다. 두 사람은 1932년 버몬트 숲으로 들어가 농장을 일구며 단순하고 소박한 삶의 원칙을 지키며 스무 해를 살았다. 그 보석 같은 삶의 기록이 바로 ‘조화로운 삶’이다. 소로우의 ‘월든’(1854)과 함께 인간 문명의 위선과 인간다운 삶, 지속가능한 환경에 대해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고전이다.‘조화로운 삶’, ‘조화로운 삶의 지속’을 읽으며 꼿꼿한(?) 스코트 보다는 유연한 헬렌에게 더 큰 호감을 느꼈다. 헬렌이 없었다면 스코트는 백 살 생일 때 “스코트 니어링이 백 년 동안 살아서 이 세상은 더 좋은 곳이 되었다.”라는 마을 사람들의 축하를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백 살이 된 스코트 니어링은 스스로 음식을 끊고 죽음으로 삶을 완성했다. 스코트가 죽고 8년 뒤에 헬렌은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라는 책을 펴냈다. 헬렌의 삶은 ‘친절과 배려, 사랑’으로 압축할 수 있다. “45년의 연구와 공부 뒤에 얻은 다소 당혹스러운 결론으로, 내가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최상의 조언은 서로에게 조금 더 친절 하라는 것이다.”라는 올더스 헉슬리의 말에 헬렌은 전적으로 동의했다. 1983년 8월 24일 아침, 헬렌은 스코트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하며 아메리카 토착민의 노래를 조용히 읊조렸다고 한다. “나무처럼 높이 걸어라. 산처럼 강하게 살아라. 봄바람처럼 부드러워라. 네 심장에 여름날의 온기를 간직해라. 그러면 위대한 혼이 언제나 너와 함께 있으리라.” 스코트는 “좋…아. 하….”하며 마지막 숨을 내쉬었다고 한다.마흔 중반을 겨우 넘기는 와중에 뒤늦게 스코트와 헬렌은 만났다. 잘못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이 삶을 당장 어찌할 도리는 없다. 바꿀 수 있는 건 세상이 아니라 ‘자기 자신’뿐이라고 헬렌과 수많은 성자들이 말했다. 삶의 나침반을 ‘소박한 삶’으로 맞춰본다.

2020-02-09

위성(衛星)정당과 우당(友黨)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정당정치는 자유민주주의 꽃이다. 다양한 정치적 의견이 정치에 투영되어 민주주의를 꽃피울 수 있기 때문이다.현재 우리나라의 선관위에 등록된 정당은 34개이지만 등록 준비 중인 정당이 16개에 이른다. 지난번 국회를 통과한 준 연동제 선거법은 3%이상의 지지 정당에 비례대표의원을 할당 받는다. 21대 총선을 눈앞에 둔 시점이지만 등록정당은 늘어날 전망이다. 비례 대표를 의식한 신당이 창당되기 때문이다. 개정 선거법이 초래한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다.자유한국당은 비례대표용 미래한국당을 창당하였다. 황교안 대표는 이 당을 자유한국당의 ‘자매정당’이라고 했지만 언론에서는 이미 ‘위성 정당’으로 지칭하고 있다. 미래한국당 창당식에는 자유한국당 대표와 사무총장까지 참여하였다. 4선의 한선교 의원이 대표로 선출되고, 자유한국당 출마 포기 의원 3명이 미래한국당에 입당하고 앞으로 의원 수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제1야당이 비례대표용 위성 정당을 급조한 것은 정당사에 유례없는 일이다. 미래한국당이 비례대표 의원을 얼마나 당선시킬지는 유권자들의 표심에 달려 있다.더불어민주당은 위성 정당을 창당한 자유한국당의 정치 행태를 꼼수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사실 위성 정당 탄생으로 가장 피해를 보는 측은 정의당이다. 이들의 비판이 거세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정의당은 비례 득표용 정당의 창당은 헌법과 정당법에도 위반된다고 검찰에 고발하였다. ‘떴다방 식’ 정당의 급조는 민주 정치의 도의에 어긋날 뿐 아니라 정치 개혁의 본질에 역행한다는 것이다. 이에 자유한국당은 국회의 패스트 트랙을 통한 준연동제선거법에 대한 불가피한 자구책이라 강변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비례대표 후보를 공천하지 않고 미래한국당을 통해 비례대표의원만을 확보한다는 것이다.북한에는 위성 정당에 비견되는 우당(友黨)이 있다. 북한노동당이 친구 정당으로 사회민주당과 천도교청우당을 두고 있다. 북한노동당은 사회민주당과 천도교청우당을 조직하여 정치 선전에 이용한지 오래다. 천도교청우당은 월북한 남한의 전 외무장관 최덕신과 부인 류미영이 중앙위원회 위원장직을 맡았다. 최근 남한의 그의 아들이 월북하여 뒤를 잇는다는 보도가 있었다. 북한 당국은 사회민주당을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에 참석시키고 천도교청우당은 민족 종교를 통해 인민들의 충성을 강요하는 수단이다. 그들은 우당을 통해 북한체제가 일당독재가 아님을 선전하려는 의도이다. 모두 그들의 위장된 통일 전선 조직일 뿐이다. 북한의 우당은 노동당 일당의 외곽 단체이며 선전 수단이다. 그러나 미래한국당은 준연동형비례대표제의 맹점을 교묘히 활용한 급조정당이다. 정치적으로 비난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현재로서는 불법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문제는 집권 여당이 위성 정당 창당을 맹렬히 비난하지만 이에 대한 마땅한 해법이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집권 여당인 더불 민주당까지 위성 정당을 모방 창당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여기에 집권 여당의 고민과 딜레마가 있다. 이번 총선에서 위성 정당 문제는 선거의 쟁점이 될 것은 분명하지만 그 결과는 예측하기 어렵다. 4·15 총선의 결과를 기다려 보자.

2020-02-09

당신은 ‘린치핀’인가요?

명지휘자로 알려진 미겔 코스타 경이 이끄는 오케스트라가 중요한 연주회를 위해 최종 리허설을 할 때 있었던 실화입니다. 연주는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트럼펫이 울리고 팀파니가 퉁탕거리고 모든 악기가 신나게 연주하고 있었지요. 그때 피콜로 연주자에게 갑자기 묘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100명이 훨씬 넘은 연주자들이 온갖 악기로 이렇게 크게 연주하고 있는데 나처럼 작은 피콜로라는 악기 소리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생각하며 슬그머니 자기 연주를 멈춥니다.그 순간 미겔 코스타 경은 모든 연주를 중단시키고 이렇게 크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피콜로는 어디로 갔어!”피콜로 연주자는 자기 소리가 아무것도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정말 그 음악을 알고 완벽하게 해석해 심금을 울리는 연주를 하고자 했던 지휘자에게 그 작은 피콜로 소리가 들리지 않는 순간 전체 음악이 엉망으로 변했던 거지요.혹시 ‘린치핀(linchpin)’이라는 용어를 아십니까? 린치핀은 바퀴와 다른 부품들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사용되는 핀의 일종입니다. 이 핀이 없으면 거대한 기계가 즉시 동작을 멈추고 마는 핵심 부품인 셈입니다. 마치 피콜로 연주자처럼. 최근에는 이 용어가 다른 의미로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대체 불가한 작은 존재’라는 의미가 린치핀에 붙기 시작합니다.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마케팅 그루, 세스고딘이 묻습니다. “당신은 린치핀인가?” 작아도 자신만의 존재를 드러낼 수 있는 대체 불가능한 존재. 인공지능이 넘 볼 수 없는 사람, 자신을 둘러싼 주변 모든 이들에게 공헌할 수 있는 사람, 바로 이들이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권력을 가진 사람입니다.시대가 무서운 속도로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고유한 아름다움과 역량으로 세상을 빛나게 하는 삶을 꿈꾸는 그대가 눈부신 새벽입니다.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2-09

이 시대에도 필요한 새마을정신

이승율 청도군수‘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나도 일어나 새마을 가꾸세’ 지금은 듣기가 쉽지 않은 새마을노래의 도입부 가사다. 새마을운동은 1970년대의 한국사회를 특징짓는 중요한 사건으로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의 한 축을 담당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 새마을운동이 올해 50주년을 맞았다. 청정지역이며 대다수 군민이 농업과 관련된 업종에 종사하는 청도의 자치단체장으로 새마을운동 50주년은 큰 의미로 다가온다.1969년 8월 박정희 전 대통령은 경남지역 수해복구 현장을 시찰하고자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가던 중에 철로 주변에 있는 청도읍 신도마을의 슬레이트 지붕을 보고 기차를 멈추게 했다.잘 단장된 지붕, 우마차가 다니기에 불편함이 없도록 닦여진 마을 안길, 정비된 우물과 넓어진 농로를 보며 신도리 주민들의 협동심과 자조심을 직접 눈으로 목격했다. 이를 바탕으로 마을 가꾸기 사업을 제창하고 이것을 ‘새마을 가꾸기 운동’이라 부르면서 대한민국의 새마을운동이 시작되었다. 새마을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새마을운동의 정신인 ‘근면(勤勉)·자조(自助)·자립(自立)’이 정착되며 대한민국은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었다. 세계의 개발도상국들이 새마을운동과 정신을 본받고자 청도를 찾거나 교육에 열중하는 것을 보면 새마을운동의 가치는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청도군은 새마을개발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새마을 세계화 사업, 재활용품 모으기 경진대회 등으로 새마을정신을 계승하고 세계화 등 새마을운동의 발상지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에 노력하고 있다. 2017년부터 매년 시행하고 있는 새마을개발 국제학술대회는 지난해 ‘지구촌 환경의 변화와 글로벌 새마을개발의 새로운 방향 모색’을 주제로 열띤 토론을 펼친 것처럼 매년 30여 개 국가 250여 명이 참석해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였다는 평을 받았다.지난 2000년부터 시작된 재활용품 모으기 경진대회는 폐자원을 모아 환경을 보호하고 판매 수익을 창출해 내는 일석이조의 사업 효과로 제2의 새마을운동이라 불리고 있다. 청도군은 올해 국가 성장의 밑바탕이 된 새마을운동 가치를 재조명하고 널리 알리기 위한 다양한 기념사업을 추진한다. 엠블럼 제작, 생명살림 환경대축제 개최, 새마을대학 개설 및 운영, 새마을운동기록물 자료전시관 설치사업 등이다. 엠블럼은 청도출신 미술작가와 시각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는 손복수씨가 재능 기부한 것으로 적극적인 활용으로 새마을운동 50주년을 홍보한다. 3월에는 재활용품 모으기 경진대회 21주년을 기념해 생명살림운동을 환경대축제로 격상시키며 새마을운동 사진전과 전시회도 함께 열어 새마을지도자, 지역민에게 다양한 볼거리도 제공할 예정이다.6개월 과정으로 개설될 청도새마을대학은 새마을운동정신 기본이해와 공동체 의식교육, 인문학, 자산운용 등 다양하고 심도 있는 프로그램으로 새마을운동발상지 청도인의 자긍심을 고취시키며 새마을운동발상지 기념관 내에 새마을운동기록물 자료전시관을 설치해 새마을운동의 역사적 유물을 쉽게 이해하게 할 것이다.베트남 타이응웬성 딩화현 프엉띠엔 토마을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던 새마을 세계화 사업은 푸닌마을을 제2의 토마을로 육성한다. 토마을은 2018년 베트남 농업농촌개발부의 신농촌프로그램 최우수마을로 선정돼 견학과 방문 명소가 됐다. 새마을국제학술대회도 상반기에 열려 다양한 국가와의 새마을운동 공감대를 형성한다.새마을운동의 정신인 ‘근면·자조·자립’은 이 시대에도 필요한 정신이다.자조·자립에는 ‘나’만이 아닌 ‘우리’라는 뜻이 포함돼 있다. 잘살게 되어 먹을거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아직도 우리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다. 얼마의 재산이 있는가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만큼 타인을 위해 나누었는가를,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실천하는 봉사도 반드시 필요한 시기에 살고 있으며 근검절약은 말할 필요가 없다.청도군은 지금까지 추진해온 새마을 관련 다양한 사업을 더욱 확대 추진해 새마을운동발상지로서의 책임감을 다할 것이고 반세기 역사를 군민과 함께 기념하며 새마을 정신으로 지역이 부농의 고장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2020-02-09

철갑을 두른 소나무를 지키자

김영체 진솔 산림기술사사무소 대표며칠 전, 포항에서 대구로 향하던 중 서포항 나들목 근처를 지나다가 저절로 눈길이 머무는 경험을 했다. 직업은 속일 수 없는 법. 내 눈에는 제일 먼저 산(山)이 시야에 들어온다. 이 지역은 소나무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임지(林地)다. 운전 중 눈길이 머문 이유가 있다. 벌겋게 죽은 소나무가 보였기 때문이다. 병든 소나무를 보는 순간 가시에 찔린 듯 마음이 따끔했다. 소나무숲이 주는 푸르름은 간데없고 벌겋게 변한 소나무들이 눈에 밟힌다. 한두 그루가 아니었다. 이미 많은 소나무가 벌겋게 변했다. 산이 일터인 필자는 이런 장면을 보면 보통 사람들보다 몇 배 더 가슴이 아프다.벌겋게 서 있는 소나무는 소나무재선충병에 걸린 나무이다. 재선충(材線蟲)병에 감염된 소나무는 서 있는 채로 말라버린다. 이 병에 걸린 소나무는 고사할 확률이 100%에 가깝다. 재선충은 소나무의 양분과 수분을 빼앗아 간다. 인위적으로 소나무에 영양제를 투여하지 않는 이상 재선충에게 소나무의 영양분을 대부분 뺏겨 말라 죽는 것이다. 재선충은 스스로 다른 나무로 이동하지 못한다. 솔수염하늘소와 같은 매개충을 통해 이동한다. 솔수염하늘소는 2~3cm 크기의 작은 벌레다. 산림청에서는 소나무재선충병 방제를 위하여 매년 예산을 배정한다. 솔수염하늘소 같은 매개충의 서식처를 없애는 일이다. 매개충의 서식처가 되는 고사목에 대해서 훈증 및 매몰 파쇄 작업을 하는 것이 소나무재선충병 방제사업이다.필자는 2014년도에 포항 나들목 인근 소나무재선충병 방제사업의 설계용역을 한 적이 있었다. 벌써 6년 전 일이다. 그 당시에도 재선충병에 감염된 소나무가 많았었다. 그 이후 매년 꾸준히 산림청과 포항시에서 방제작업을 해왔다. 다행히 죽어가는 소나무가 조금씩 줄어들었다. 그런데 2020년 초, 6년 전 못지않게 다시 소나무재선충병이 확산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동해 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익숙한 노랫말이다. 애국가이다. 식전행사로 국민의례를 할 때 주로 듣는다. 70~80년대 필자의 학창 시절에는 거의 매일 들었다. 애국심을 고취시켜 국민을 통합하고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국민적으로 이끌어내려는 의도가 짙게 깔려있었을 것이다. 심지어 국기 강하식이라는 행사도 매일 거행했는데 관공서와 학교에 게양한 태극기를 내릴 때 애국가가 전국에서 흘러나왔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광경이다. 애국가가 울려 퍼지면 국민은 누구라도 가던 길을 멈추고 태극기를 향해 가슴에 손을 얹어야 했다.시대가 바뀌어 이제는 쉽게 듣지 못하는 애국가다. 그래도 애국가 1절은 많이 들어 볼 기회를 접하지만 4절까지 전부를 듣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애국가 2절 가사에 소나무가 등장한다.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소나무는 다른 수종에 비하여 성장이 느린 편이지만 수명이 길다. 자연히 장수의 상징이다. 불로장수라는 꽃말이 붙였다. 소나무 모양은 다양하다. 곧게 자라기도 하고 구불구불하게 자라기도 한다. 쭉 곧게 자란 소나무는 전통 건축물 목재로 사용하기에 제격이다. 백 년 이상 모진 비바람을 견디면서 성장한 소나무가 불타버린 남대문 축조에 쓰였다. 구불구불하게 자라는 소나무는 조경수로 으뜸이다. 척박한 토질에서도 자란다. 바위산에도 홀로 서 있는 소나무를 볼 수 있다. 소나무는 쓸모없는 구석이 하나도 없다. 곧게 자라면 건축 자재로, 못생겨도 그 나름대로 조경수로, 아니면 생활에 필요한 땔감으로, 여러 용도로 사용이 가능하다.지금은 우리나라 어디든 소나무를 흔하게 볼 수 있지만 지구 온난화로 인해 기상이변이 일어나 우리나라에서 소나무가 점점 사라질 수도 있다는 예측을 하고 있다. 2100년에는 백두산 같은 고지대에서만 볼 수 있는 희귀종으로 변할지 모른다고 한다. 지구 온난화를 막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소나무재선충병 방제는 임업인은 물론이고 많은 국민의 작은 관심만 가진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민족의 애환과 함께해 온 소나무를 지켜야 한다. 다시 반만년 역사를 이어가도록 온 국민의 작은 관심이 절실한 시기다.

2020-02-09

가난한 사람들

춥다. 서울의 겨울이 추워졌다. 요즘 겨울은 겨울도 아니라더니 어디 한 번 겨울맛을 보라 한다.겨울을 좋아하던 나인데 디스크를 앓으면서 몇 년씩 겨울이 무섭다가 최근 들어 겨우 겨울이 좋아졌다. 몸이야 아프든 말든 손가락 관절이 쑤시든 말든 겨울은 역시 상쾌한 계절이다.그래도 연로하신 부모님은 걱정이 아니될 수 없다.서울, 대전 사이를 돌아온 탕자처럼 왔다갔다 하다보니 끼니를 제 때 찾아 먹기 어려운 때가 많다.가만 있자, 뭐 먹을 만한 게 없나? 대전역사 안에 성심당 분점이 있지만 맛있다는 튀김소보로도 하루 이틀이지 오늘은 다른 게 먹고 싶어진다.광장을 빠져나와 오른쪽으로 막 꺾어 들면 옥수수며 가래떡이며 군밤을 파는 아주머니들이 계신다. 그중 어느 한 분에게 흰 가래떡을 가리키며 얼마냐고 여쭙는다. 헉. 천원이라 한다. 가래떡 하나에 천 원이 아니라 두 개가 천 원이라는 것이다.옥수수는 두 개 한 묶음에 이천 원 이라 하신다. 서울에서는 삼천 원였다.서울이냐 대전이냐가 문제가 아니라 세상에는 돈을 세는 단위가 다른 사회들이 있다.아파트를 사고파는 곳에서는 10억, 20억이 예사인 경우도 많다.공부하는 사람들이 회의라는 곳엘 가면 십 만원도, 이십 만원도 쉽게 받는다. 택시 운전사들은 미터기에 몇백 원 올라가고 내려가는 것이 작지 않은 문제다. 역 앞의 행상들은 다들 한 묶음에 천 원, 이천 원, 삼천 원을 매긴다.대전 중앙로역 성심당 본점 앞에 가면 행상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데 닭꼬치도 팔고 오뎅도 판다. 빨간 오뎅이든 그냥 오뎅이든 한 개에 칠백 원인데, 세 개를 사면 이천 원이다. 백 원을 깎아 주는 셈이다.서울 지하철 6호선 불광역 앞에 가면 날이면 날마다 오뎅과 떡볶이를 파는 집이 있는데 1인분에 삼천 오백 원이다. 언젠가 오백 원짜리 동전이 없어 제발 삼천 원어치만 주십사 했다. 그랬더니 절대 안 된다고 고개를 흔들다가 나중에 지나가는 길에 오백 원을 더 내라고 했다.세상에는 확실히 ‘등급’이 다른 사회들이 있다.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더 높은’ 사회에 소속되고 싶어한다. 그런데 간과하기 쉬운 것이 하나 있다. 백 원짜리 천 원짜리를 세는 사회에 무슨 거짓이 있겠으며 설혹 있다한들 그 크기가 얼마나 되겠는가.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은 성스럽다고 하는 것이다. 성스럽다는 것이 무엇인지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나도 그럴 것이다.좋은 옷, 고상한 취미를 가지면 성스럽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것은 성스러운 흉내를 내는 것이다. 그 외투 안에 숨어있는 거짓을 우리는 모두 볼 수 있어야 한다./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20-02-06

달집태우기와 바이러스

8일은 정월대보름날이다. 우리 조상은 이날을 설명절만큼 큰 비중을 둔다.‘한국의 세시풍속’자료에는 12달 동안 한국의 세시풍속은 모두 189건에 달한다고 했다. 그중 정월 한달 이뤄지는 세배, 설빔 등과 같은 세시풍속이 78건으로 한해의 절반 가깝다.그러나 정월 78건 가운데서도 대보름날 하루와 관련되는 세시풍속이 무려 40여 건이 된다고 했다. 세시풍속만 본다면 정월 대보름은 우리의 가장 큰 명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이는 달의 움직임을 표준으로 삼는 농경사회에서 우리의 조상은 그 어떤 날 보다도 정월 대보름날을 가장 소중한 날로 삼았다는 반증이다. 중국에서는 정월 대보름을 상원(上元)이라하고 천관(天官)이 복을 내리는 날이라 했다. 중국 역시 정월 대보름을 중요 날로 섬겼다.정월 대보름날 행해지는 세시풍속을 살펴보면 그 사정을 더 잘 짐작할 수 있다. 오곡밥, 약밥, 묵은 나물, 부럼, 귀밝이 술 등 먹는 것부터 지신밟기, 별신굿, 쥐불놀이, 줄다리기, 달집태우기 등 온갖 행사가 이날 축제로 벌어진다.한해가 시작되는 달에 첫 번째 뜨는 보름달은 우리 조상에게는 풍요와 모든 부정을 살라버리는 정화의 상징이다. 따라서 이날은 지신 밟고 달집 태우며 가능한 많은 정성을 들여 한해 농사의 풍요로움과 가족의 안녕을 달에게 빈다.특히 달이 떠오를 때 생솔가지 등을 쌓아놓고 불을 질러 노는 달집태우기는 질병도 태우고 근심도 태워 한해의 밝음을 소망하는 행사다. 지금도 그 전통이 매년 대보름날 이어진다.그러나 올해는 ‘신종 코로나’로 대보름 행사 일체가 중단됐다. 질병을 막아보자는 염원의 민족 전통이 공교롭게도 바이러스에 의해 중단됐다. 서운한 마음이 없을 수 없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02-06

황교안 일병구하기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자유한국당의 수도권 공성전략이 초장부터 꼬이고 있다. 통상 총선에서 가장 많은 수의 국회의원 당락이 걸린 수도권 공략을 위해서는 전국적인 지명도를 가진 대표주자끼리 건곤일척의 승부와 천번지복의 한판대결을 벌이는 게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4·15총선에서는 ‘서울의 정치 1번지’로 불리는 종로지역구가 바로 그 현장이다. 그런데 이같은 대결구도를 억지로라도 만들어내야 할 제1야당 대표가 오히려 여당 후보로 나설 이낙연 전 총리와의 대결을 피하는 모양새로 비쳐 지역 정치권에서도 볼멘 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망신살이 뻗치려나. 황 대표가 우물쭈물 결단을 미루는 동안 호남에서 자유한국당 후보로 당선돼 ‘지역정서 타파의 선두주자’란 명예로 당 대표까지 지낸 무소속 이정현 의원이 전격적으로 종로에 출마하겠다고 출사표를 던지고 말았다. 이왕 호남지역에서 힘을 잃은 이 전 대표야 격전지에서 장렬하게 전사한다해도 밑질 일없다는 계산이니, 그의 정치적 순발력은 상당하다 평가할 만 하다. 이런 상황에서 자유한국당 대표이자 차기 대권주자로 뛸 황교안 대표는 지난 5일 자신의 총선 출마 지역과 관련한 논란에 대해“‘이리 와라’ 그러면 이리 가고,‘인재 발표해라’ 그러면 발표하고, 그렇게 하는 건 합당하지 않다”면서 자신의 행보는 자신의 판단, 자신의 스케줄로 해야하고, 이번 총선에서 이기기 위해 필요한 큰 전략 하에 자신의 스케줄을 짜겠다고 말했다. 한 마디로 종로 출마는 않겠다는 뜻을 피력한 셈이다.논어 위령공편(衛靈公篇)에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이란 말이 나온다.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은 다른 사람도 마땅히 하기 싫어할 것이기 때문에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남에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황 대표의 행보는 이같은 공자의 가르침에 정면으로 어긋난다. 중진의원들의 험지출마론을 설파해온 황 대표가 수도권에서 여권의 대권후보로 가장 유력한 이낙연 전 총리가 출마한 종로지역을 피해 다른 수도권의 험지에 출마하겠다면 어떤 의원들이 납득할까 싶다. 자신의 출마지역을 결정하기 위해 서울 용산, 양천구, 마포 등지에서 지지도 여론조사를 통해 승산을 점치느라 북새통을 벌이고도 공천신청이 끝난 오늘까지도 출마지역을 결정하지 못한 채 미적거리는 모습은 당 안팎의 비판을 자초한다.이런 마당에 당 대표를 지낸 홍준표 전 대표나 총리 물망에 올랐던 김태호 전 경남지사가 각각 자신의 고향에서 교두보를 확보하겠다며 출사표를 던졌다 한들 무슨 염치로 험지출마를 강권할 수 있을까. 무릇 지도자는 타인의 모범이 되고, 솔선수범해야 한다. 원외 당대표로서 겪어온 불편함을 어떻게든 해소하고, 대권가도에 진력하기 위해서 이같은 무리수를 서슴치 않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짐작은 되지만 총사령관이어야 할 당 대표의 구차한 행보는 자유한국당 후보들의 전체 사기에도 나쁘다. 이리저리 둘러봐도 자유한국당 공천관리위원회가 감행하고 있는 ‘황교안 일병 구하기’작전은 실속없고, 볼품없는 최악의 작전으로 기록될 듯 하다.

2020-02-06

사막에 채소밭을 만들기까지

레바논 출신의 무사 알라미는 전쟁으로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는 요르단 강 유역 황량한 사막으로 갔습니다. 그 지방은 수천 년 동안 뜨거운 태양빛만이 내리쬐는 풀 한 포기 나지 않은 곳이었습니다.사막에서 지하수를 이용하여 곡물 재배에 성공하였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그는 이 타는 듯한 뜨거운 모래라도 밑으로 계속 파고들면 반드시 물이 있을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사막 사람들은 무모한 짓이라며 말렸지만, 그는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사막 한가운데로 갔습니다.함께 한 사람 중엔 죽음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도 있었습니다. 일행은 곡괭이와 삽으로 땅을 파 들어갔습니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그들은 삽질을 멈추지 않았습니다.수개월 후, 드디어 습기에 찬 촉촉한 모래가 나오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시원한 물이 차오르자 그들은 엉엉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습니다. 노인은 울먹였습니다. “여보게 나는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네. 이 메마른 사막에서 물이 나오는 것을 이 눈으로 보았으니….”수백 년 버려졌던 사막에 지금은 온갖 과일과 채소를 재배하고 있습니다.‘서른, 기본을 탐하라’ 책에 나오는 말입니다. “대부분의 실패는 환경이 나쁘거나 실력이 부족해서 보다는 스스로 한계라고 느끼고 포기했을 때 찾아온다.또한, 자주 한계를 느끼는 사람들은 자신을 ‘실패자’ 혹은 ‘패배자’라고 느낀다. 스스로 한계를 만들지 마라. 자신을 낮추는 데 익숙해지면 새로운 이미지도 만들 수 없다.”무사 알라미와 우리가 처한 입장이 다르지 않습니다. 그는 사막에 곡괭이 질을 했고, 우리 역시 무언가 결과를 바라며 맡은 일을 열심히 하며 살아갑니다. “이것이 내 한계”라고 스스로 선을 긋고 물러서는 나약한 정신이 아니라, “끝까지 간다!” 스스로 다짐하는 정신 승리가 인생의 진정한 매력 아닐까요?/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2-06

양비론의 오류

김병래시조시인서로 충돌하는 두 의견을 모두 틀렸다고 하는 이론을 양비론(兩非論)이라 하고, 그 반대말은 양시론(兩是論)이다. 상당한 경우 대립하는 주장들이 나름의 근거와 타당성을 가지고 있고 복합적인 요소들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한 쪽의 입장에서만 바라보는 것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또 한편, 대부분의 논쟁이나 토론에서 대립하는 양측의 주장은 모두 한계나 모순, 단점, 불합리한 면을 가지고 있다. 만약 한쪽 주장에만 모순이나 단점, 불합리성, 한계가 있고 다른 쪽 주장에는 그런 것들이 없다면 애초에 문제가 없는 주장이 당연히 정론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니 논란이 일어나지도 않을 것이다. 따라서 논쟁의 소지가 있다는 것은 양시론이나 양비론이 나올 여지도 있는 것이다.얼핏 보면 양비론이나 양시론이야말로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은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중도(中道)인 것처럼 보인다. 불가의 팔정도(八正道)가 그러하듯 중도란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한 중간이 아니라 엄정한 정도(正道)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양비론은 사태의 본질에 대한 천착과 성찰의 부족이거나, 쟁점을 흐리고 물타기 하려는 불순한 의도일 때가 많다. 아니면 매사에 냉소적인 태도를 가졌거나 세상사의 시비나 논쟁을 초월해 홀로 고고한 척 하는 사람들이 자기우월감의 표출 수단으로 양비론을 펴기도 한다.건축을 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수평계(水平計)는 어느 한 쪽으로 기울이면 유리관 속의 물방울은 반대쪽으로 이동한다. 수평계의 물방울이 가운데를 가리킨다는 것은 어느 쪽으로도 기울어지지 않고 평형을 유지하고 있다는 증거다. 분명히 기울어졌는데도 물방울이 가운데 있다면 그 수평계는 고장이 난 것이다. 마찬가지로 물위의 배가 한 쪽으로 기울면 중심축은 반대쪽으로 가기 마련이다. 이때 배에 실은 물건이나 사람들이 그 기울어진 쪽으로 몰리게 되면 배는 전복하고 만다. 전복을 막으려면 오히려 반대쪽으로 이동해서 무게중심을 바로 잡는 것이 무엇보다 급선무다.올바른 지성(知性)을 가진 사람이라면 사회현상에 대해 수평계와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 사회가 한쪽으로 기울면 금방 알아채는 직감과 통찰력을 가진 사람이라야 지성인이라 할 수 있다. 요트를 타는 사람이 배가 왼쪽으로 기울면 반사적으로 몸을 오른쪽으로 이동해 중심을 잡는 것처럼, 양식과 정의감이 있는 사람들은 사회가 한 쪽으로 기울면 반발과 저항의 행동을 하게 마련이다. 지금의 정권은 지나치게 좌경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청와대는 물론 언론과 사법부, 교육계, 노동계, 문화계 전반을 걸쳐 좌파성향의 코드 인사들이 장악하여 전복의 위험성을 보이고 있다.이런 판국에도 매스컴에 자주 등장하는 논객들 중에는 점잖게 양비론을 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시국이 분명 심하게 좌측으로 기울었는데도 위기의식을 못 느낀다면 고장 난 수평계처럼 상황판단 능력을 상실한 것이고, 알고도 모른 척 하는 거라면 이권이나 보신을 위해서 현실을 왜곡하고 호도하려는 불순한 저의가 있는 것이다.

2020-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