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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상한 절약 비법

등록일 2025-12-15 17:02 게재일 2025-12-16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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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길수 수필가

세밑 달 중순 첫날이다.

앙상한 활엽수 가지들이 초겨울 유리알 하늘에 매달렸다. 쓸쓸하다. 정열 불태우던 단풍잎들은 봄에 나서, 늦가을에 떠나는 짧은 생만 살고 가는 기분이 어땠을까. ‘하루살이도 있는데, 세 계절이나 살았으니 여한 없다’라고 할까. ‘나무는 수십 년씩 사는데, 우리는 겨우 세 철을 살게 하다니요. 하느님 너무해요’하고 원망이라도 할까.

생기 찬란했던 봄날도, 성숙 일렁이던 여름철도, 황금 들판 빛나던 가을도 가고 초겨울이 왔다. 지난 한 해 햇볕과 공기와 물로 양분을 만들어 자신도 살고, 나무도 키워온 나뭇잎들. 오늘은 왠지 앙상한 나무가 마치 우리나라 같다. 자칫 나라가 겨울로 갈 수도 있는 요즈음일 테니까. 나라란 나무는 기관, 기업, 단체 등 생산‧유통‧소비자를 망라한 국민일 터.

연구자들은 설명한다. 나뭇잎이 단풍들어 낙엽 지는 건 나무의 ‘생존 전략’이라고…. 광합성의 촉매제 엽록소 결합 단백질이 아미노산으로 분해되어 줄기나 뿌리로 비축되며 단풍이 물든다. 활엽수는 잎에서 수분이 증발한다. 겨울엔 뿌리의 수분 흡수가 어렵다. 때문에, 나무는 코르크 세포 장벽 떨켜를 만들어 낙엽 지게 해 ‘수분 절약’을 한다. 곧, 활엽수는 겨울을 ‘앙상한 절약’으로 살아낸다.

결국, 나무는 살기 위해 나뭇잎을 떠나보내고 낙엽은 나무를 살리기 위해 떠난다. 한 해 동안의 행복했던 삶이, 단풍이란 아름다움과 낙엽이란 아쉬움으로 마감되는 자연의 섭리가 깔끔하다. 이론(異論)도, 미련도 없다. 낙엽은 나뭇가지에 새 눈을 남겼고, 나무는 다음 한해살이를 위해 새 눈들의 도입 교육에 들어갔으리라.

지금, 나라에 겨울을 예고하는 징표들이 나타나고 있다. 낙엽 져 가지들이 앙상하듯, 우리 경제란 나무도 그래 보인다. 거침없던 성장의 잎사귀들은 정치 바람에 낙엽처럼 흩어지고, 억지로 버티는 앙상한 가지들만 남았다. 원화 가치는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고, 외환 위기 우려가 커진다. 제2의 IMF가 온다는 소리도 떠돈다. 국민연금으로 환율하락을 막겠다는 보도가 국민 심장을 찌른다.

국민 대다수가 반대할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안’같이 괴상한 법률들이 입법부 단상에 막무가내로 진상(進上)되고, 물가는 돌아서면 오른다. 가계 수입이 같아도 실질소득은 줄어든다. 한미환율협상 후유증으로 비어가는 상가와 공장들이 늘어난다. 나랏빚이 천문학적인데, 위정자는 ‘민생지원금’이란 구실로 빚을 내서 공짜로 나눠준다. 누가 갚으라고···. 각자도생이란 말이 가슴에 박혀도 기댈 언덕이 안 보이는 세태다.

하지만, 앙상한 나뭇가지가 ‘수분 절약’으로 설한풍에 맞서 도생을 꾀하듯, 국민도 ‘절약’으로 닥칠 나라 겨울을 견뎌내야 한다. 정부도 앙상한 가지같이 ‘절약’해야 겨울을 견딜 것 아닌가. 예전 IMF 때, 국민이 근검절약하고 금 모으기 정신으로 외환 위기를 이겨냈듯 이번에도 그러리라 믿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낙엽 졌다’라는 탄식보다 새잎을 피우기 위한 용기와 절약이다. ‘앙상한 절약’이 우리나라에 내려주는 하늘의 든든한 국가 도생 비법일 테니까···.

/강길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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